오리엔트 특급 살인 (리커버 특별판. 페이퍼백) 애거서 크리스티 리커버 컬렉션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신영희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단지 이국적인 디자인을 한 새로운 표지의 유혹만으로도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다시금 손에 들게 할 만큼 매혹적인 추리 문학 작품이다. 시리아의 겨울 아침 5, 알레포역을 출발하는 이스탄불 행 타우루스 특급’, 이 열차 식당칸 아래 작은 불로 잠시 지체되자 더벤 햄이라는 영국 여성의 시간지연을 걱정하는 장면이 예사롭지 않은, 중요한 암시의 하나임을 이젠 알아보게 된다. 이처럼 다시 읽기 여정은 작가가 여기저기에 지뢰처럼 묻어둔 장치들을 발견하며 그 섬세한 호흡에 일체가 되는 또 다른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준다.

 

    

 

이 소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외부의 어떤 조력도 받을 수 없는 철저하게 한정된 장소에서 사건이 발생하고 그것을 해결해야하는, 문자 그대로에르퀼 푸아로라는 탐정의 순수한 추리력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스탄불 출발 칼레 행 심플론 오리엔트 특급열차침대칸에 모든 용의자를 몰아넣고, 눈사태로 고립된 열차 내에서 한 남자가 피살된 채 발견되는, 완벽한 밀실 구조의 수수께끼에 던져지는 것이다. 오직 용의자의 진술들과 현장의 단서에만 의존해서 풀어내야 하는 지성의 총체적 대결이 곧 이 작품의 미덕일지도 모르겠다.

 

라쳇이라는 미국인 남성이 살해된 채 발견된다. 떨어진 손수건, 성냥, 없어진 담배 파이프, 115분을 가리킨 채 멈춘 시계, 사라진 살해 도구 등등 산만한 단서들, 탐정 푸아로는 침대칸의 승객들을 한 사람씩 불러 진술조사를 시작한다. 침대칸 차장을 비롯한 13명 승객의 아무런 실마리를 제공해주지 않는 듯한 진술로부터 그 위장된 껍질들을 한 겹 한 겹 벗겨내는 쾌감이 책장 넘기는 속도를 재촉하게 한다.

 

한편, 이 소설의 마지막 장에 작품해설을 쓴애거서 크리스티의 손자 매튜 프리처드가 지적하고 있듯이 피살된 인물의 과거 행적으로 드러나는 잔혹한 어린이 유괴 살해자로서 암스트롱가 살인 사건을 이 작품의 거대한 축으로 은밀히 내장시킴으로써 생명의 존귀함, 사회정의의 실현에 대한 작가적 열망의 정도를 가늠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추리문학의 영원한 고전적 지위를 갖도록 하는 요소는 탐정 푸아로가 발휘하는 방법론으로서 추리의 명쾌함일 것이다.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도대체 무엇에 대해 왜 거짓말을 하는 걸까 하고요. (....)

 만약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그는 이런 이유로 이 거짓말을 한다는 답을 만들어 보는 겁니다.”

그렇지만 당신 추측이 잘못된 것이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은 완전히 혐의를 벗는 거지요.”       

                                                              (P 310 ~311 에서)

 

소거법이라 할 이 수단의 사용은 사건 해결의 절대적인 결과를 낳는데, 은폐되어있던 용의자들의 정체는 물론 경이로울 만큼 사실을 드러내는 강력한 도구로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아마 즐비하다고 할 정도로 널려 있었던 암시를 확인하는 이 과정은 지적 쾌락 최고의 맛을 느끼는 그런 즐거움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마치 이것은 전희에 불과한 것이야! 라고 말하려는 듯이 놀란 뇌세포의 꿈틀거림을 감각할 만큼의 상식 전복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걸 환천희지(歡天喜地), 열광적 즐거움이라 해야 할 것이다. , 범인이 누구라고! 올 여름을 애거서 크리스티가 선사하는 지적오락과 함께하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