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사람
좋은 시인이란 어쩌면 듣는 사람인지 모른다.
그래야 깊은 산 삭풍에 가지 부러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고
놀라서 달음박질치는 다람쥐의 재재바른 발자국 소리도 조심조심 들을 수 있다
때론 벼락처럼 첨탑 높은 교회당을 때리는 야훼의 노한 음성도
어릴 적 볏짚 담 너머 키 작은 어머니의 다듬이 소리도 함께 들을 수 있다
좋은 시인이란 그러므로 귀가 쫑긋 솟은 사람인지 모른다.
그래야 잉크병 얼어붙은 겨울밤 곱은 손 불며
이 모든 소리를 백지 위에 철필로 꾹꾹 눌러쓸 것이다. - P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