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부자로 가는 4가지 습관 - 딸들에게 보내는 재테크 에세이
김병연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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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의 꿈이 '부자'일 정도로 자본주의 사회, 아니 인간 사회와 돈은 이제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관계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좀 더 젊었을 때만 해도 돈에 초연한 줄 알았는데 그것은 그만큼 돈이 필요한 나이가 아니었던 때라 그렇게 느꼈을 뿐 일상의 삶 속에서 '돈'을 단 하루도 생각하지 않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왜 이렇게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일까? 바로 돈이 있으면 지금보다 좀 더 행복해질 거라는 믿음이 밑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돈의 정의는 참으로 다양하겠지만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자유'라는 정의가 참으로 와닿는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돈이 없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의 제약이 참으로 많다. 의식주는 기본이고 교육, 문화, 여가생활 등등 무엇인가 즐겁고 재밌는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다.

그렇다 보니 자칫 이런 재미에 빠져들게 되면 자기 자본 없이 채무, 즉 부채의 함정에 빠져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현대판 노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자유를 박탈당한 살게 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인생을 생애 주기 전체로 봤을 때 돈을 벌어들이는 구간보다 쓰는 구간이 훨씬 더 김을 알 수 있다. 특히나 요즘처럼 평균 수명은 늘어났으나 정년은 예전과 비슷한 상황에서는 인생 후반부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노후의 삶의 편차가 엄청 커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20대 후반까지는 독립하기 전이라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독립하고 나서 실제 소득이 발생하는 시점과 소득이 최고점을 찍을 때까지의 시점의 차이는 불과 10여 년에 불과하다. 40대 중반을 넘어서게 되면 소득은 감소하게 되지만 소비는 횡보 내지는 늘어날 가능성이 다분하다. 자녀와 건강 등이 그 변수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보다 젊었을 때 소득과 지출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야 하며 중간중간 변화된 상황에 맞게 계획도 업데이트해 가며 보다 예측의 정확도를 높일 필요가 있겠다.



코로나로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세계 각국은 지난 몇 년 간 저금리에 기반한 양적 완화를 통해 시장에 엄청난 유동성을 공급해 왔고, 그 결과 지금은 인플레이션 또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걱정할 처지가 되었다.

외부에서 식사를 하거나 마트, 시장에서 장을 보면 물가 인상이 뉴스의 수치상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경기는 어쨌건 상승과 하강 곡선을 반복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투자 계획을 세워야만 하는 것이다.

물가는 장기적으로 상승하므로 현재 시점의 돈의 가치는 시간이 흐른 미래에는 현재의 가치보다 줄어들게 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물가 상승률 이상의 투자 성과를 이뤄야만 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돈을 불리는 재테크의 핵심은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들어오는 돈인 수입은 늘리고 나가는 돈인 지출은 줄이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좀 더 세분화해서 사칙연산에 대입하였는데,

+ 모으기: 사람의 힘으로 돈 벌기

x 불리기: 돈의 힘으로 돈 벌기

- 줄이기: 나가는 돈 줄이기

÷ 나누기: 나가면 돌아오는 돈 만들기

가 바로 그것이다.

지출을 줄이고 돈을 모아서 불리는 것은 많이 들어 익숙한 내용이지만 나누기에 대한 부분이 색다르다.

- 목표를 나누어 힘을 줄이자

- 소득을 나누어 습관을 기르자

- 시간을 나누어 배움에 투자하자

- 마음을 나누어 스스로 돕는 자가 되자

돈이란 물질적인 것에만 너무 국한하지 말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목표를 작게 나누어 설정하고, 시간을 나누어 배움에 투자하는 등의 방법론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특히나 행복한 부자가 되기 위한 핵심인 나누는 삶에 대한 아래 문구가 가슴속에 깊이 와닿는다.

"집은 살 수 있지만 가정은 살 수 없고, 시계는 살 수 있지만 시간을 살 수 없으며, 침대는 살 수 있지만

쾌적한 수면은 살 수 없고, 책은 살 수 있지만 지식은 살 수 없다. 명의는 살 수 있지만 건강을 살 수 없고,

지위는 살 수 있지만 존경은 살 수 없으며, 피는 살 수 있지만 생명은 살 수 없고,

섹스는 살 수 있지만 사랑은 살 수 없다."

- 마담 호 <<부의 시크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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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오브제 - 사물의 이면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궁리가 있다
이재경 지음 / 갈매나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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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과 기술의 발달로 우리 주변에는 과거의 그 어느 시절보다 많은 물건들이 넘쳐난다. '풍요의 시대' 더 나아가 '공급 과잉의 시대'라고 불릴만하다.

하지만 이렇게 넘쳐나는 물건들도 허투루 만들어진 것들은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오브제(Objet)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담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책은 설레는 사물들의 뒤를 밟은 작은 결과물이다. 사물의 뒤를 캐다 보면 고전부터 대중문화까지 인문의 다양한 분야가 두루 소환된다. 사물을 매개로 현실과 환상이 만나고 지식과 감상이 얽힌다."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 노트에 필기했었던 마지막 기억을 뒤돌아 보니 대학교 시절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컴퓨터의 발달과 온라인 문화의 형성으로 인해 거의 대부분의 글이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로 형상화되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연필은 경도가 같아도 제조사마다 브랜드마다 필기감이 제각기라서 나만의 연필을 찾는 즐거움이 있다. 연필은 이제 완상, 동호, 수집의 대상이다. 도구에서 오브제가 됐다. 연필이 예술을 한다."

몇 년 전에 우연찮은 기회에 만년필을 접하게 되면서 그동안 거의 잊고 지냈던 아날로그 감수성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만년필은 쥔 손, 연필을 쥔 손의 어색함에 신기함과 함께 참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구나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미래의 기술이 어느 정도까지 발전할지 섣불리 예측할 수 없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난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그리워하는 인간 본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연필이 주는 손맛과 종이와의 사각거리는 그 마찰음은 아날로그적 감성의 대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커피를 좋아하고 즐겨마시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사람의 커피 사랑은 참 대단하다는 사실은 안다. 거리를 조금만 걸어 봐도 그 어느 가게보다 많이 보이는 게 바로 커피숍임은 우리의 커피 사랑이 다른 여느 나라 못지않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한다.

"espresso는 이탈리아어로 '특급'이라는 뜻이다. 십여 초 만에 커피가 완성되는 추출 속도를 반영한 이름이다. 하지만 espresso에는 '특별히'라는 뜻도 있다. 에스프레소는 주문 순서대로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한 잔씩 뽑는다. 에스프레소는 커피 원두 50알을 가장 극적으로, 가장 알차게 소비하는 방법이다. 에스프레소는 다크초콜릿이나 블루치즈 혹은 청국장처럼 처음에는 충격적이지만 서서히 중독되는 기호다. 길들여진 기호가 다 그렇듯 한번 길들여지면 없이 살면 살았지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는 힘들다."

가끔씩 회사에서 직장 동료와 씁쓸한 커피 한 잔을 나누며 담소를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커피의 마력을 조금씩 느끼는 것 같다. 요즘의 음료가 너무 단맛에 치중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중년의 나이에 인생의 씁쓸함과 커피의 그 씁쓸함이 묘하게 맞아떨어지며 동질감을 느끼게 해 준다.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좀 더 생긴다면 기가 막힌 경치의 해변을 배경으로 해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 한 잔을 곁들여 보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커피가 삶에 애착을 일으킨다는 저자의 표현이 마냥 과장되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여러 책들을 한꺼번에 읽다 보면 어디까지 읽었는지 갸우뚱할 때가 많다. 이런 상황을 여러 번 접하다 보니 최근의 전자책이 주는 편의성에 가끔씩 매료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책은, 독서는 앞에서 언급했던 연필과 마찬가지로 아날로그적 감성을 내려놓기에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오브제이다.

이러한 상황에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바로 책갈피이다.

지금은 과거보다 좀 더 문명의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예전에는 서점이나 문구점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다양한 책갈피를 더 이상은 볼 수 없게 되었다.

특히나 이성이 선물해 주는 잘 마른 빨간 낙엽의 책갈피는 단순한 책갈피를 넘어서 사랑의 매개체, 추억의 공유물 역할까지도 담당한다.

"우리는 시간을 잡아두듯 책에다 읽던 자리를 매인다. 앤 패디먼(Anne Fediman은 <<서재 결혼시키기 Ex Libris>>에서 책을 읽다가 엎어두는 것이 일시정지 버튼이라면 책갈피로 책을 닫는 것은 스톱 버튼을 누르는 것이라고 했다."

책을 다 읽으면 더 이상 그 낙엽 책갈피는 책에 자리를 매김 할 수 없기에 추억도 함께 날아갈까 봐 일부러 천천히 읽으며 시간을 잡아두고 싶었던 아련했던 기억이 소환된다.

감성과 추억이 깃든 사물은 사물 그 자체의 영역을 넘어선 설렘을 우리에게 주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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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둘리지 않는 말투, 거리감 두는 말씨 - 나를 휘두르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책
Joe 지음, 이선영 옮김 / 리텍콘텐츠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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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고 어렸던 학창 시절만 해도 친구들과의 가벼운 언쟁이 있을 수 있었지만 인간관계에 대해 딱히 큰 스트레스를 받은 기억은 없다.

아닌 경우도 분명 있겠지만 학창 시절에는 이익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보니 성인이 됐을 때보다는 좀 더 순수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반면에 성인이 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게 되고 학창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넓은 범위와 예상치 못했던 인물들을 여러 다양한 경로로 많이 만나게 된다. 대부분 바탕에는 업무와 이익이 바탕이 되다 보니 확연하게 인간관계에 대한 순수성이 떨어지게 된다.

사회생활은 곧 조직 생활과도 같아서 수직적인 계층 구조를 많이 띄다 보니 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거기다가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착한 사람 증후군'을 가지고 있어 상대방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잘 받아주는 등의 행동이 인간관계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제 속 마음은 분명히 스스로에게 거절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지만 많은 경우 이 속마음을 직접 상대방에게 표현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거부 의사를 전달했을 경우 상대방과의 관계가 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가까이 가려고 할까요? 그것은 인간관계는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좋은 것이라는 잘못된 확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도 그럴 수 있습니다. 상대로부터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다고 느꼈을 때도 '나의 친밀함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나를 더 자주 보여주면 잘 될 것이 틀림없다.'라고 믿고 상대와의 거리를 좁히려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더욱 휘둘리는 원인이 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아닐까요?"

책에서 말한 얘기가 정답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관계가 중요한 현대사회에서 인간관계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당하거나 불합리한 대우를 받더라도 도리어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더 다가가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특성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하려는 상대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최근에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가스라이팅'이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구조는 악순환의 고리일 가능성이 커 점점 더 수렁으로 빠지게 되고 시기 상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폭발하고 마는 시간폭탄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한 상황이 되기 전에 우리는 스스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나올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당신을 휘두르는 사람을 곤란하다고 생각할 뿐 싫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싫지는 않다.'라고 생각하면, '그저 그렇다.'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런 무의식의 분류에 따라 좋아하니까 더 가까워지고 싶다, 가까워지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이제 '그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라고 자문할 때 '보통'이라고 확실히 자답할 수 있도록 합시다. '아니, 조금은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그렇지 않아?'라고 물어도 '아니, 완벽하게 보통이야.'라고 단언하는 것입니다"

이분법적 사고로 인간관계를 정의하려는 사람들도 많다. '좋은 사람' 아니면 '나쁜 사람'으로 관계를 분류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상대방도 그렇게 여길 거라 생각하고 나쁜 사람으로 인식되기보다는 상대방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각인을 새기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들어주면 나를 좋은 사람으로 생각해 줄 거야', '내가 더 노력하면 더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을 거야'라는 착각 속에 빠져 있다.

하지만 관계를 무 자르듯 깔끔하게 두 가지 분류를 나눌 수는 없다.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으면 보통인 사람도 있는 것이다. 보통과 좋은 사람 사이의 관계도 있을 수 있고 당연히 보통과 나쁜 사람 사이의 관계도 있을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관계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법이다.



"객관적으로 봐도 당신에게 잘못이 없다면 거절한 뒤 일부러 먼저 연락을 하거나 상대를 만나러 갈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만일 거절하는 시점에서 당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해도, 그 시점에 사과하면 그걸로 그 일은 끝난 것이고, 두고두고 그 일에 대해 질질 끌어도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그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대화를 시작하면 됩니다... 거절이라는 행위를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언제나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거절한 후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을 건네는 것입니다. 마치 거절하는 일이 나에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하고 말을 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애초에 상대방이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권유하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이고, 그것을 거절하는 것 또한 당신의 권리입니다... 상대의 반응이 탐탁지 않아도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겠다고 생각하고, 굳이 자신의 탓을 하지 말고 평소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언짢은 얼굴도 일종의 연기입니다. '얼마 전에 당신에게 거절당해 상처받았습니다. 미안하다고 느끼세요. 사과하세요.'라고. 그런 표정에 반응할 필요는 없습니다... 상대도 마찬가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를 이어나간다면 그대로 그 관계를 이어가도 좋습니다. 만약 당신이 말을 걸어도 언짢은 듯이 행동한다면 자연스럽게 그 관계를 놓아주세요.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감정을 굳이 신경 써주려 하지 않는 둔감함입니다."

어렵게 거절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뒤의 대처(행동) 또한 중요하다. 힘을 내서 용기를 내서 상대방의 불합리한 부탁을 거절했지만 오히려 거절한 당사자가 상대방이 안 좋은 기분을 느끼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만큼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여린 마음이 기본 성격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책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과감하게 둔감해질 필요가 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상대방을 평상시처럼 대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언짢아하거나 싫은 내색을 한다면 이 관계는 더 이상 깊게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 자명해지는 것이고 상대방도 평상시처럼 대한다면 나와의 관계를 신경 쓰고 있는 사람이니 이 사람과는 좀 더 알아봐도 괜찮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과감함과 둔감함이다. 이어질 인연이 있다면 더한 시련에도 이어지는 것이 인연이고 연이 없다면 아주 사소한 일에도 끊길 수 있는 것이 인간관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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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 우리 모두의 진짜 자존감을 찾는 심리학 공부
김태형 지음 / 갈매나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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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뿐만 아니라 아이를 위한 육아에 있어서도 요즘은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참으로 많이 언급되는 것 같다.

이 얘기는 역설적으로 자존감으로 인해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좋게 얘기하면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지만 부정적으로 보자면 남의 시선이나 눈치를 많이 본다는 우리나라 사람들.

도대체 이 '자존감'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자존감'을 높일 수 있을까?


"자존감은 유전적인 산물이 아니고 순수하게 개인적인 산물도 아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사회적인 산물에 가깝다. 사실 사람이 사회적 존재가 아닌 동물이었다면 자존감 문제는 아예 제기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존감은 자신이 사회적 쓸모가 있는, 사회적 가치가 있는 사람이기를 바라는 기본 욕구가 얼마나 실현되었는지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심리이다. 사회에 이바지하려는 사람의 본성적 열망이 곧 자존감인 것이다. 따라서 사회를 떠나서는 자존감도 없다."

혼자나 극소수의 사람들만 모여 살아가는 곳이 있다면 아마도 자존감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아끼고 존중하는 자신 내부의 성숙한 사고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씨족 사회에서 점점 더 발전하여 현대의 커다란 사회를 이루는 인간의 사회적인 습성의 특성상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누구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에 이바지하려는 잠재적인 열망이 있을 것이다. 책에서는 이러한 사회적인 특성으로서의 자존감을 정의하고 있다.


"자기존중의 욕구는 인간 본성에 기초하는 기본 욕구이다. 따라서 건강한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이 자존감을 유지하고 높여나갈 수 있다. 반면 병든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이 자존감 손상이나 상실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 사회는 자존감을 지켜주는 건강한 사회일까, 아니면 사정없이 파괴하는 병든 사회일까?"

우리 한국 사회가 자존감을 지켜주는 건강한 사회라고 묻는다면 쉽게 '그렇다'다는 대답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최근 몇 년의 선거들을 보다 보면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회적 갈등이 언론 지상에 오르내린다. 지역, 세대뿐만 아니라 최근의 젠더 문제까지 세월이 흐를수록 갈등이 해소되기보다는 점점 더 증폭되어 가는 느낌이다.

사회 내부적인 갈라 치기들이 실제 현상이든 아니면 의도한 바든 간에 악화되어 가는 상황에 가슴이 아플 뿐이다. 사회에서 갈등은 없을 수 없겠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건전하고 발전적인 대화가 아닌 서로의 주장만 소리 높여 얘기해서는 평행선만을 달릴 뿐이다. 건강한 사회에서 건강한 자존감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무력감과 정반대로 낮은 자존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 하나 있다. 바로 존중받기 위한 도구에 집착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도구를 획득하면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한다. 이 또한 결국 가짜 자존감에 불과하다.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대부분 존중받기 위한 도구를 획득하는 데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이들에게 존중받기 위한 도구란 한국 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것들이 될 수밖에 없다. 학생의 경우에는 성적, 여성의 경우에는 외모, 직장인의 경우에는 연봉이 존중받기 위한 대표적인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명품, 외제차, 학력, 사회적 지위 등도 이러한 도구로 간주된다."

다른 사람의 내면을 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의 외부적인 모습들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 외부적인 모습에는 외모, 지위, 권력, 명예, 돈 등이 있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리고 실제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쉽기 때문에 외부적인 모습, 도구에 집착하여 스스로를 높이려고 한다. 특히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대한 갈망은 참으로 대단하다. 돈만 많다면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보기도 하고 돈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물질 만능주의, 물질 숭배주의가 팽배한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 본성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알고 그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회에서는 이 자존감이라는 사회적인 문제는 아마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에도 나를 수용해 주며 사랑해 주고 존중해 주는 소속 집단의 존재는 잘못된 사회가 강요하는 스트레스를 치유해 주고 올바른 신념과 가치관을 굳건히 고수하도록 돕는다. 즉 선한 이웃들과의 굳건한 연대나 건강한 소속 집단은 자존감의 수호자이자 중요한 원천인 것이다."

집단이나 사회의 특성과 문화를 도외시한 채 혼자만 올바른 신념과 가치관을 고수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특히나 집단으로부터의 유무형의 압력을 견뎌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렇다 보니 자기가 현재 속한 사회의 특성이나 가치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설령 혼자만 정상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회에서는 반대로 여겨질 공산이 크다.

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그 구성원들이 해야 될 의무이지 몫이다. 지금껏 존재해 왔던 수많은 문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해 왔던 우리 사회와 구성원들의 잠재력을 충분히 믿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보다 건전하고 건강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다 보면 성숙된 사회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은 구성원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가짜 자존감이 아닌 진정한 자존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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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행복과 삶의 의미
강영석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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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여러 미디어에서 행복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질적인 풍요는 인류사에 있어서 그 어느 시대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하지만 왜 시간이 갈수록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스스로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

그것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에만 치중한 나머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정신적인 부분에는 소홀히 한 인간의 그릇된 욕심이 야기한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원하지만 정작 행복해지기 위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진정한 행복이란 작고 소소한 것에서 느끼는 즐거움이다. 당신이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행복의 기준선을 너무 높게 설정했기 때문이다. 일상의 작은 즐거움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움켜쥐는 연습을 하라. 행복은 매 순간 경험하는 일상적인 것들을 만끽하고 음미하며 감탄하는 습관에 의해 결정된다. 마치 향기 나는 와인을 음미하듯 즐거운 감정을 최대한 향유하는 게 행복의 지름길이다."

'소확행'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작지만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좋고 바람직한 일이다. 우리가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행복의 기준선을 너무 높게 잡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러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분명히 좋은 직장에 높은 연봉,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정작 당사자는 더 높은 것만 바라볼 뿐 현재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가 매일 지극히 평범하게도 잠자리에서 일어나 두 발로 걸어서 직장에 출근하는 모습은 중한 질병으로 몇 개월, 몇 년 동안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지극한 행복일 것이다. 사람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행복에 대한 눈높이는 낮추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요즘같이 화창한 날씨에 미세 먼지 없는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여유와 함께 말이다.



"부정성 편향으로 인간은 행복해지기보다 불행해지기가 더 쉽다. '불행은 부르지 않아도 잘 찾아오지만, 행복은 불러도 잘 찾아오지 않는다.'거나 '행복은 찾아와도 금방 달아나지만, 불행은 한번 찾아오면 잘 떠나가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불행이 행복보다 우리와 가까운 곳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부정성 편향은 예전에 인간이 동물과 생사를 함께 하던 약육강식 시대에 생존을 위한 본능으로 뇌에 새겨진 것이라고 한다. 포식자의 출현, 화재나 홍수,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 나타나는 위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개체는 위험한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개체는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말았다.

그러한 본능은 현재의 생활에서도 그대로 태어나 인간은 이익보다는 손해에 훨씬 더 민감하고 강렬하게 반응한다. 이익으로 주어지는 혜택에 대해서는 당연하고 덤덤하게 생각하지만 사소한 손해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큰 부당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성 편향은 행복의 추구에 있어서는 커다란 장애물이라 할 수 있다.

국어 92점, 영어 85점, 과학 75점, 수학 42점을 받은 자녀의 성적표를 보고 왜 수학 점수가 이렇게 낮은지 꾸중하고 비판할 것이 아니라 국어, 영어를 잘하는 것에 대한 칭찬을 먼저 볼 수 있는 시야의 전환이 필요하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 자녀가 부족한 것만 봐서는 결코 행복의 길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노력 ==> 성공 ==> 행복

지금까지 행복의 방정식은 위와 같았다. 현재 열심히 노력하면 훗날 성공할 것이고, 성공하게 되면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고 말이다.

행복 ==> 성공

하지만 위 방정식은 더 이상 맞지 않다. 성공하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것, 노력하여 행복해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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