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오브제 - 사물의 이면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궁리가 있다
이재경 지음 / 갈매나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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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과 기술의 발달로 우리 주변에는 과거의 그 어느 시절보다 많은 물건들이 넘쳐난다. '풍요의 시대' 더 나아가 '공급 과잉의 시대'라고 불릴만하다.

하지만 이렇게 넘쳐나는 물건들도 허투루 만들어진 것들은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오브제(Objet)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담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책은 설레는 사물들의 뒤를 밟은 작은 결과물이다. 사물의 뒤를 캐다 보면 고전부터 대중문화까지 인문의 다양한 분야가 두루 소환된다. 사물을 매개로 현실과 환상이 만나고 지식과 감상이 얽힌다."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 노트에 필기했었던 마지막 기억을 뒤돌아 보니 대학교 시절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컴퓨터의 발달과 온라인 문화의 형성으로 인해 거의 대부분의 글이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로 형상화되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연필은 경도가 같아도 제조사마다 브랜드마다 필기감이 제각기라서 나만의 연필을 찾는 즐거움이 있다. 연필은 이제 완상, 동호, 수집의 대상이다. 도구에서 오브제가 됐다. 연필이 예술을 한다."

몇 년 전에 우연찮은 기회에 만년필을 접하게 되면서 그동안 거의 잊고 지냈던 아날로그 감수성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만년필은 쥔 손, 연필을 쥔 손의 어색함에 신기함과 함께 참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구나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미래의 기술이 어느 정도까지 발전할지 섣불리 예측할 수 없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난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그리워하는 인간 본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연필이 주는 손맛과 종이와의 사각거리는 그 마찰음은 아날로그적 감성의 대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커피를 좋아하고 즐겨마시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사람의 커피 사랑은 참 대단하다는 사실은 안다. 거리를 조금만 걸어 봐도 그 어느 가게보다 많이 보이는 게 바로 커피숍임은 우리의 커피 사랑이 다른 여느 나라 못지않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한다.

"espresso는 이탈리아어로 '특급'이라는 뜻이다. 십여 초 만에 커피가 완성되는 추출 속도를 반영한 이름이다. 하지만 espresso에는 '특별히'라는 뜻도 있다. 에스프레소는 주문 순서대로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한 잔씩 뽑는다. 에스프레소는 커피 원두 50알을 가장 극적으로, 가장 알차게 소비하는 방법이다. 에스프레소는 다크초콜릿이나 블루치즈 혹은 청국장처럼 처음에는 충격적이지만 서서히 중독되는 기호다. 길들여진 기호가 다 그렇듯 한번 길들여지면 없이 살면 살았지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는 힘들다."

가끔씩 회사에서 직장 동료와 씁쓸한 커피 한 잔을 나누며 담소를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커피의 마력을 조금씩 느끼는 것 같다. 요즘의 음료가 너무 단맛에 치중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중년의 나이에 인생의 씁쓸함과 커피의 그 씁쓸함이 묘하게 맞아떨어지며 동질감을 느끼게 해 준다.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좀 더 생긴다면 기가 막힌 경치의 해변을 배경으로 해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 한 잔을 곁들여 보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커피가 삶에 애착을 일으킨다는 저자의 표현이 마냥 과장되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여러 책들을 한꺼번에 읽다 보면 어디까지 읽었는지 갸우뚱할 때가 많다. 이런 상황을 여러 번 접하다 보니 최근의 전자책이 주는 편의성에 가끔씩 매료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책은, 독서는 앞에서 언급했던 연필과 마찬가지로 아날로그적 감성을 내려놓기에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오브제이다.

이러한 상황에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바로 책갈피이다.

지금은 과거보다 좀 더 문명의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예전에는 서점이나 문구점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다양한 책갈피를 더 이상은 볼 수 없게 되었다.

특히나 이성이 선물해 주는 잘 마른 빨간 낙엽의 책갈피는 단순한 책갈피를 넘어서 사랑의 매개체, 추억의 공유물 역할까지도 담당한다.

"우리는 시간을 잡아두듯 책에다 읽던 자리를 매인다. 앤 패디먼(Anne Fediman은 <<서재 결혼시키기 Ex Libris>>에서 책을 읽다가 엎어두는 것이 일시정지 버튼이라면 책갈피로 책을 닫는 것은 스톱 버튼을 누르는 것이라고 했다."

책을 다 읽으면 더 이상 그 낙엽 책갈피는 책에 자리를 매김 할 수 없기에 추억도 함께 날아갈까 봐 일부러 천천히 읽으며 시간을 잡아두고 싶었던 아련했던 기억이 소환된다.

감성과 추억이 깃든 사물은 사물 그 자체의 영역을 넘어선 설렘을 우리에게 주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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