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도제희 지음 / 샘터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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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프로가 되는 지름길이며 또 그것만큼 인생에 도움이 되는 조건도 없다. 그렇게 산다 해서 모든 일이 잘되진 않겠지만 모른 채 산다면 자신을 더 힘들게 할 선택을 하게 될 것만은 분명하다. 잘 맞지 않은 회사에 아무 문제의식도 없이 입사하고 퇴사하기를 반복했던 나처럼 말이다. (p.48)

 

나는 자신만의 소박한 일상을 잘 지켜 나가면서도 품위있고, 지적이며, 편안하고 자유롭게 관계를 맺는 이를 몇 알고 있다. 나는 그 사람들이 내적 자산을 비교적 쉬이 갖출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온 이들보다 대단해 보이고, 그래서 그들을 만날 때마다 질투하고 부러워한다. 그렇게 부러워하다 보면 나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 말은 어쩌면 틀렸다. 부러우면 이기는 건지도 모른다. (p.102)

 

무언가 숨기거나 꾸밀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정신 상태로 사는 건 어떤 기분일까? 이럴 수 있다는 건 열등감을 느끼지도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는다는 뜻일 텐데, 상대적 박탈감으로 자괴감에 빠지지 않는 내적 힘을 어떻게 갖추게 되었을까? 혹시 백치 콘셉트로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한 고도의 전략일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것이다. 어떤 면모든 특출하다면 그건 타인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더욱이 그 면모가 ‘천진함+솔직함’ 같은 긍정적인 조합이라면 상대의 마음은 절로 움직인다. (p.168)

 

 

 

어느 날 그의 책이 날 건지러 왔다! 난데없는 퇴사로 시작된 생존 ‘고전’ 읽기,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제대로 읽기는 어려운 도스토옙스키. 이름은 정말 친숙한데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왜일까? 그건 바로 막연히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고정관념 때문이다. 저자 또한 그랬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은 후에는 그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던 책은 오히려 삶을 살아가면서 도움이 될 만한 인물과 이야기로 가득했다. 뭐랄까, 지금의 나와 비슷한,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충분히 활용 가능한 이야기였다.

 

200년 전 러시아에서 온 고전문학에는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다름 아닌 우리가 있었다. 울고 웃고, 좌절하고 일어서고, 지질하지만 빛나는 바로 우리가! 난데없이 다시 읽게 된 도스토옙스키. 저자는 이를 계기로 불안정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왜 나는 여전히 삶에 미숙한지를 점검하고 또 동시에 불안정해서 자신이 불완전하게 느껴지는 청장년 시기를 이겨내 보고자 한다. 이야기는 그야말로 각양각색. 분명 까마득하게 먼 과거의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지금의 우리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일, 자존감, 연애, 관계, 생계, 나이 듦 등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문제들을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 가져와 그 상황에 알맞게 풀어낸다. 도스토옙스키를 모른다? 전혀 상관없다. 이제부터 작가와 함께 차차 알아가면 되니까. 인생의 수렁에서 스스로를 구하는 생존법? 여기요~ 불안정하고 미숙한 자신의 삶에 지친 분, 도스토옙스키 고전의 반전 매력에 빠져 보고 싶은 분, 인생의 난데없는 터닝 포인트가 필요한 분들에게 슬쩍 추천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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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조의 말 - 영어로 만나는 조의 명문장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공보경 옮김 / 윌북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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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마치 양’이라고 불리면서, 긴 치마를 입고 과꽃처럼 칙칙하게 살아야 한다니 딱 질색이야. 난 남자애들이 하는 놀이와 일이 좋고 남자 같은 태도가 좋은데, 여자답게 살라고 하니까 미치겠어. 남자로 태어나지 않은 게 한스러워. 아버지와 함께 전장에 나가 싸우고 싶은데 굼뜬 할머니처럼 집에 들어앉아 뜨개질이나 해야 하니, 날이 갈수록 내 삶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겠지. (p.21)

 

늙어서 관절이 굳을 때까지,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하는 날까지 계속 뛸 거야. 나를 철들게 하려고 재촉하지는 마, 언니. 사람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잖아. 나는 최대한 오래 아이로 살고 싶어. (p.75)

 

난 개혁가가 좋은데.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되고 싶어. 세상은 개혁가를 달가워하지 않지만 개혁가가 없으면 세상은 굴러가지 않아. 넌 구세대고 난 신세대인 셈이네. 넌 세상에 맞춰 살아. 난 세상의 모욕과 야유를 즐기면서 내 뜻대로 신나게 살 거니까. (p.136)

 

 

19세기 가장 혁명적인 여성 캐릭터, 조 마치. 사실 조는 <작은 아씨들>의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로, 작가가 마음속에 품은 메시지를 전하는 핵심인물이다. 단순한 삶과 정신적 자유를 추구하는 초월주의 사상의 본산이라는 메사추세츠주 콩코드 마을과 보스턴에서 성장기를 보낸 루이자 메이 올컷은, 조가 그랬듯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즐겼고 글을 썼다. 네 자매 중 둘째였던 루이자는 가난한 집안 형편 탓에 신문과 잡지에 선정적인 단편소설을 실어 돈을 벌기도 했다. 당대 여성에게 기대하는 품위에 격렬하게 저항했고, 말괄량이 같은 성격에 걸핏하면 화를 내는 성질을 다스리려 일생 노력했다. 이 책은 그런 그녀가 아끼고 사랑했던 캐릭터 조 마치가 남긴 명문장만을 모아놓은 책으로 원작 <작은 아씨들>에서 그녀가 남긴 문장을 엄선하여 한국과 영어 원문을 함께 담아냈다.

 

 

많은 명대사를 탄생시킨 <작은 아씨들>. 책은 둘째 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오직 그녀 하나만을 따라 움직인다. 숙녀로 불리기를 거부하는 말괄량이 그녀가 파티에 초대받은 언니 메그의 머리를 망쳐놓는 순간부터, 동생 에이미와 싸우고 베스 때문에 아파하며, 부유하지만 외로운 이웃 소년 로리와 우정을 쌓는 장면,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고 결국 자신만의 사랑을 찾는 장면, 잘 팔리는 글이 아닌 진짜 좋은 글을 쓰겠다고 결심하며 마침내 자신만을 꿈을 이루는 장면까지 조가 소녀에서 어른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을 원작의 순서 그대로 그려냈다. 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깜짝 선물과도 같은 책! 자신에게 위로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을 위로하느라 항상 바쁜 조. 어떤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 조. 자신이 울고 싶은 순간에도, 언제나 먼저 울고 있는 베스를 위해 울음을 참는 조. 씩씩하고, 용감하고, 지혜롭고, 유머러스한 조를 미워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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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의 일을 냅니다 - 사장이 열 명인 을지로 와인 바 '십분의일'의 유쾌한 업무 일지
이현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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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들은 다 좋은 사람들이다. 문제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속 좁고 이기적이고 지갑에서 만원도 꺼내기 싫어하는 좀팽이인데 그릇이 큰 사람들을 좇아가며 좋은 사람 흉내를 내려니 숨이 가빴다. 그래도 함께 가고 싶어 열심히 좋은 사람을 연기했다.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그야말로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 모였는데 피곤하게 규칙이 무슨 필요람. 채찍은 악당들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p.72)

 

우리는 각자 취향도 이곳에서 하고 싶은 것도 모두 달랐다. 하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무언가 새로운 일에 뛰어들고 싶다는 욕구는 같았다. 그런 공통점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줬다. 한여름 뜨거웠던 그 자리는 우리가 단순히 가게를 만들기 위한, 창업을 위한 모임이 아니라는 걸 되새겨주었다. (p.102)

 

“열 명이서 월급의 십분의 일씩 모아서 하는 곳이니까, 십분의 일 어때?”

오, 음? 어감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새로운 게 등장했으니 우선 반가웠다. 뒤를 이어 십분의일은 입에 잘 안 붙으니 열에하나는 어떠냐는 말이 나왔고, 그런 식이라면 읽기엔 십프로가 제일 잘 붙는다는 말도 나왔다. 또다시 치열한 논쟁 끝에 난파선은 어디론가 가라앉았고 십분의일과 열에하나가 막판 경합을 하다 더 많은 득표를 얻은 십분의일이 당선됐다. 그렇게 ‘십분의일’이라는 이름이 정해졌다. (p.146)

 

 

 

지극히 평범했던 회사원이 ‘다 같이 행복하게 지내고 싶어서’, 을지로 와인 바의 사장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책 <십분의 일을 냅니다>. 십분의 일? 이곳 가게는 사장이 열 명이다. 회사 일 말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 사람, 너무 힘들어 퇴사를 선택한 사람, 자신이 원하는 사업을 준비하고 싶은 사람..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들이 모여서 을지로 인쇄 골목에 근사한 와인 바를 차렸다. 이 십분의 일에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운영 방식이 있다. 매달 각자 월급의 10%씩 내고, 수익은 똑같이 나눈다. 정말 이게 가능한 일일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이들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신기한데, 나도 해보고 싶다! 이들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각양각색! 이에 저자는 말한다. 혼자가 아니라 해낼 수 있었고, 함께 살아가는 게 중요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사장이 열 명인 이곳, 을지로 와인바 십분의 일의 유쾌한 업무 일지. “10명이 모여 월급의 10%씩 내서 운영하는 와인 바는 오늘도 영업 중입니다.” 책은 이곳에서 와인 바를 하게 된 우연한 계기에서부터 다사다난과 우여곡절이 거듭된 준비 과정, 가게를 오픈하고 난 이후의 일상들을 솔직하게 담아낸다. 너무나 솔직해서 웃픈 그래서 더 재미있는 이들의 이야기. 각자 취향도 하고 싶은 것도 모두 달랐던 이들이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었을까? 각자 본업이 따로 있기 때문에 내야 하는 월급이 저마다 다른데도 크게 불만이 없다. 왜냐고? 이들은 단순히 돈을 벌고 싶어 동업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니까.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서로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기 위해 모인 게 바로 이들이다. 그 결과 서로를 격려하고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며 3년 넘게 함께 하고 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처음부터 순조롭진 않았다. 임대 계약부터 인테리어까지 무작정 덤벼든 탓에 고생을 숱하게 했다. 하지만 결국은 해냈다. 오늘도 그들은 십분의 일을 찾아주는 손님들 덕분에 매일 배우고 성장하는 중! 창업을 앞두고 있는 분들이나 직장에 적응하지 못해 퇴사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강추~! 월급쟁이 사장님들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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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양장) - 개정판 새움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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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정말 묘한 것이다. 다시 재번역을 하면서 이전 번역을 보고 놀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떻게 이게 그때는 이렇게 보였던가 하는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볼 때마다 다르게 보일 수도 있는 것, 그게 곧 번역일 테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번역애 대해 왈가불가한다는 것조차 대단히 무모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더욱, 이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일 테다. (p.8)

 

시빨간 폭발은 그대로였다. 모래 위로, 바다는 아주 빠르게 부딪치며 헐떡였고 잔파도들이 숨 가쁘게 밀려왔다. 나는 천천히 바위를 향해 걸었는데 햇빛에 이마가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열기 전체가 나를 짓누르며 내 걸음을 막아서는 것 같았다. 얼굴을 때리는 뜨거운 숨결을 느낄 때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바지 주머니 속에 주먹을 움켜쥐며, 태양과 태양이 쏟아붓는 그 영문 모를 취기를 이겨 내느라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흰조개껍데기나 깨진 유리 조각, 모래에서 발하는 모든 빛의 칼날로 내 뺨은 긴장했다. 나는 오랫동안 걸었다. (p.84)

 

소설은 사물에 대한 표현 하나로도 읽는 맛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그것이 문학의 힘이고 문장의 힘이다. 그저 단순한 이야기만 전달하는 것이라면 굳이 작가가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p.175)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대부분 읽어 봤을 거라 생각되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대신 오늘은 책의 번역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2014년 번역 논쟁과 함께 출간되었던 이정서 번역의 <이방인>이 2020년 새롭게 다시 출간되었다. 전 세계 101개 국가에서 번역되어 수천만 부가 팔린 소설. 1957년 저자인 알베르 카뮈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긴 소설 <이방인>. 당시 이 원고를 검열했던 수석고문은 이렇게 말을 전한다. “그날 오후 원고를 받은 즉시 읽기 시작했는데, 새벽 4시까지 손에서 뗄 수 없었다. 문학에 일대 진보를 가져올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재미있다.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힐 만큼 하지만 뭐랄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는 쉽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렵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번역, 번역 때문이다. 하나의 문장을 두고 누가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그 뜻은 천차만별. 그렇기에 번역에 대한 비중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번역은 자기와 끝없이 싸움"이라는 이정서. 직역이냐, 의역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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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겨울
아들린 디외도네 지음, 박경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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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은 여섯 살, 나는 열 살이었다. 보통 남매들은 싸우고, 질투하고, 소리 지르고, 징징거리고, 서로 죽도록 치고받고 싸운다.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와도 같은 너그러움으로 질을 사랑했다. 그 애를 이끌고, 내가 아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다. 누나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순수한 사랑이었다. 아무것도 돌려받고자 하지 않는 사랑. 파괴될 수 없는 사랑. (p.14)

 

더 이상 아무것도 의미가 없었다. 나의 현실 세계는 녹아 사라졌다. 출구를 찾을 수 없는, 현기증 나는 무. 나를 에워싼 벽과 바닥과 천장조차 느껴질 정도로 너무나 명백한 무. 극심한 공황이 몰려와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가, 어른이, 내 손을 잡고 데려가 침대에 눕혀 주길 바랐다. 내 생의 방향을 바꾸어 주길 바랐다. 내일이 올 것이고, 이어서 또 그다음 날이 올 거라고, 그러면 결국 내 삶은 얼굴을 되찾을 거라고, 내게 말해 주길 바랐다. 피와 공포는 옅어질 것이라고.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p.33)

 

아버지는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머리를 들어 올려서는 식탁에, 똑같은 지점에, 깨진 접시 파편이 널린 곳에 여러 번 내리찍었다. 나는 어느 것이 어머니의 피이고, 어느 것이 스테이크의 피인지 더 이상 구분할 수가 없었다. 문득 나는 그 모든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모조리 지워 버릴 테니. 그러면 나의 새로운 미래에서는, 그 모든 게 존재하지 않았던 일이 될 것이었다. (p.63)

 

 

 

불러주는 이가 없으니 주인공 소녀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 소녀에게는 소원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자신의 네 살 어린 동생 질의 미소를 되찾아주는 일. 질의 웃음은 모든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그래서 소녀는 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다. 그런 질의 미소가 변했다. 아이스크림 할아버지의 끔찍한 죽음을 함께 목격한 이후부터였을 것이다. 점점 아버지의 잔혹성을 닮아간다. 이에 현실을 감당할 수 없는 소녀는 급기야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 사고도 막고 질의 미소도 되돌리겠다는 허무맹랑한 계획을 세운다.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가 사냥을 제외하고, 삶에서 열정을 보이는 대상은 딱 두 가지, TV와 위스키. 주된 기능은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 그 외 정원을 가꾸고 어린 염소들을 돌보는 일에만 집착하는 어머니. 그리고 그 속에서 방치된 채 살아가는 소녀와 그녀의 동생 질. 누구라 할 것 없이 금세 이야기에 녹아든다. 상황묘사가 세밀하여 마치 지금 그 상황들이 눈앞에서 벌어진 듯 생생하게 다가온다. 점점 예전과 다르게 변해가는 동생과 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누나의 절규.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이들에게 허울일 뿐이다. 이들에게 제대로 된 부모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안타까움과 분노가 하늘 끝까지 솟아오른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공포에 질린 어머니, 끔찍한 사고 후 아버지의 잔혹성을 닮아가는 동생까지 나락으로 치닫는 삶이지만 소녀는 절대 절망하지 않는다. 세상에 발을 내딛으며 홀연히 맞서 싸울 뿐. 그 과정이 무척이나 감동적이다. 폭력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의 삶이 꼭 절망적이지만은 않다는 걸 소녀의 삶을 통해 몸소 증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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