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위로 - 흐린 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
장일 지음, 남수현 그림 / 넥서스CROSS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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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결핍의 위로』는 독자에게 '결핍'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로의 참뜻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동안 독자는 결핍이란 낱말의 의미를 부정적인 의미로만 사용해왔다. 영양 결핍, 노력의 결핍, 사랑의 결핍 등 많은 좋은 의미의 단어와 결합해 독자 개인에게 좋지 않은 점을 강조할 때 사용해 왔다. 결핍이란 단어에 진지한 사색이 결핍됐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기도 했다. 결핍은 사전에서는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람'으로 풀이하고 있다. 사전적 해석으로 그친다면 우리 삶에서는 결코 긍정의 의미보다는 부정의 의미가 강조될 수밖에 없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핍에 대한 의미를 공자가 사용할 때나 성경에서 나오는 의미는 사전적 의미를 훨씬 넘어선 풀이가 있다.

공자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논어에서 말했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뜻이다. 지나치게 풍요로운 것은 오히려 조금 결핍인 삶이 더 낫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장일은 희귀난치성 질환 크론병을 17년째 앓고 있는 목사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 결핍을 채워준 눈물겨운 사건들, 결핍의 렌즈로 들여다본 우리 교회 그리고 결핍의 사회 대한민국의 모습을 담고 있다. 저자 자신이 결핍이 없었다면 결코 깨닫지 못할 많은 기적 같은 일들을 경험하면서 결핍으로부터 위로를 받았음을 말하고 있다. 독자도 이 책을 읽으면서 결핍의 의미에 대해 사유의 기회를 얻었다는 점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저자가 하루아침에 감당하게 된 일들의 목록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신체의 연약함에서 비롯된 일들은 삶의 곳곳에 침투해 일상을 어그러뜨렸다. 청년 시절 군에서 강제전역을 해야 했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려 할 때 붙잡을 수 없었고, 목숨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하나뿐인 딸과 양껏 놀아주지 못했다. 한때는 진지하게 개그맨을 꿈꿨던 사람이 자신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몸을 갖게 된 이후의 날들과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 이야기, 약함을 받아들이자 일어난 삶의 변화를 이 책에 담았다.

책에 따르면 불면증에 시달리다 겨우 일어나 아이의 등원을 챙기고 다시 잠이 든 저자는 낮 12시가 넘어서야, 출근한 아내의 기상 연락에 잠에서 깨는 날들이 많다. 그럴 때면 ‘다른 이들은 오전 업무 마치고 점심 먹고 티타임을 즐길 시간에 나는 이게 뭐하는 것인가’ 하는 패배감을 피할 수 없었다. 패배감에 자신을 채찍질하던 어느 날 이건 건강한 자극이 아니라 학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의 연약함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요즘 컨디션이 많이 떨어졌나 보다. 부드러운 죽으로 속을 좀 달래고 일과를 시작해야지.’ 하고 불필요한 엄격함을 내려놓고 결핍을 끌어안으니 깨어 있는 시간을 더 집중하여 쓸 수 있었다.

 


 

결핍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일상의 경험에서 그는 혈루증을 앓는 여인을 떠올린다. 주님 앞에 최선을 드린 여인, 세상에서는 배신으로 돌아왔던 그 최선을 주님은 오롯이 받으셨다. 주님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드리는 일상에서 얻는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자 살아갈 수 있는 힘이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다 잘 될 거야. 하나님 믿는 사람이 축 처져 있으면 안 되지.”

“하나님이 다 크게 쓰시려고 그러는 거다.”

얼핏 힘을 실어주는 말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말들은 오히려 당사자의 고통에 절망과 무기력을 더했다고 한다. 아프기 전에는 어렵지 않게 썼던 이런 말들이 아픔을 겪는 사람에게는 공허한 종교적 수사로 들릴 수 있다는 걸 깨달은 후로는 이런 말들을 쉽게 내뱉지 않는다. 특히 담임 목회를 하고 있는 지금, 코로나19를 겪으며 어려움을 겪는 성도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생각과 말과 행동을 고르고 고른다. 이 외에도 결핍이라는 렌즈를 통해 얻은 세상을 향한 새로운 시각과 지혜가 그에게 넘쳐난다. 결핍으로 점철된 삶에서 길어올린 저자의 글은 고통의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명확한 위로가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건조한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는 저자는 주위에서 마음으로 위로의 언어, 긍정의 언어, 고상한 신앙의 언어까지 총동원했지만 모두 공허하게 들렸다고 말한다. 그렇게 한동안 꺾인 날개를 부여잡고 침묵과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결핍과 오랜 세월 함께하며 사색 끝에 깨달은 점이 컸다고 언급한다. 주위를 보면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결핍은 모두의 문제임을 알 수 있었다. 특히나 코로나 팬데믹, 기후 위기, 사회적 양극화를 통해 보듯이 이미 현대사회는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깊숙이 진입했다. 그만큼 앞으로 인간이 느끼는 결핍의 크기도 더욱 커져갈 것이다. 한때는 희망마저 삼켜버린 결핍이 너무도 가혹하게 느껴졌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스스로 안고 있는 결핍이 너무 치명적이라 생각했기에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다고 체념했다고. 하지만 오병이어의 사건*처럼 텅 빈 자리는 역설적으로 풍요를 맛볼 수 있는 최적의 입지임을 깨닫게 됐다고 강조한다.

* 오병이어 사건 : 누가복음 9장 1~17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3차 갈릴리 사역을 시작하면서 제자들을 파송하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주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람임을 확신하며 감사하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하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독자 주)

 


 

저자의 글쓰기에 대한 에피소드는 독자에게 특별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책을 쓰기로 마음 먹고 혼신의 힘을 다해 원고를 쓰고 출판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책 안에 간단하게 썼다. 책에 따르면 모 출판사 부장님은 "목사님, 올해 들어온 메일 제목 중에 대상감입니다."라는 피드백을 주어서 용기를 얻었다. 출판사에 보낼 기획서를 보낼 때 제목에 "띵동~ 여기 혼을 갈아넣은 출판기획서가 도착했습니다'란 제목이다.

'혼을 갈아넣었다'라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첨부파일에 넣은 출판기획서와 10페이지짜리 샘플 원고를 작성하기 위해 무려 4개월 동안 새벽 2~3시까지 모니터 앞에서 씨름했다. 단군 이래 최악이라는 출판 경기에 투고를 뚫기란 정말 낙타가 바늘구명을 통과하는 격이었다. 과분하게도 출판사 여러 곳에서 연락을 받았고 그중 가장 잘 맞을 것 같은 곳과 계약하게 되었다. 저자는 "우리의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다." 허지웅 작가의 에세이 〈살고 싶다는 농담〉(웅진지식하우스 2020)에서 건진 문장임을 고백한다. 저자는 흔히 사람들은 자신이 걸어온 삶의 이야기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책을 읽고 글을 쓰려는 독자들에게 용기를 전해준다.

 


 

저자 : 장일

학창시절부터 빼어난 입담으로 유재석, 신동엽과 같은 개그맨을 꿈꾸었다. 군 복무 중 희귀난치성 질환인 크론병을 진단받고 투병 중에 목회자의 소명을 발견했다. 극한의 상황에서 신학의 문을 두드렸기에 정형화된 목회가 아닌 본질이 궁금했다. 올해로 17년째 결핍과 동거하며 일상과 신앙, 시대와 성경을 묵상하며 길어올린 글을 묶어 인생의 흐린 날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가벼운 힐링을 넘어 기독교적 위로를 전하고자 이 책을 집필했다. 광신대학교에서 개혁주의 신학을,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에서 복음주의 성경학을 전공했다. 현재 프란시스 쉐퍼에 의해 시작된 국제장로회(INTERNATIONAL PRESBYTERIAN CHURCH) 소속 목회자이며, 2018년부터 하나님 나라 제자도를 비전으로 팔로우교회를 섬기고 있다.

 

그림 : 남수현

화려하진 않지만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작가이기를 원합니다. 인스타그램 @NAMSU_98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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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의 세계 A.C.10 - 코로나 쇼크와 인류의 미래과제
JTBC 팩추얼 <A.C.10> 제작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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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우리 생활 전반의 변화를 초래했고, 그 변화의 중심에 디지털 기술이 자리하고 있다. 여전히 꺾이지 않은 코로나19의 기세로 비대면 기술, 즉 디지털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지속되고 있다. 다시는 올드 노멀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뉴노멀에 익숙해지고 고착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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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의 세계 A.C.10 - 코로나 쇼크와 인류의 미래과제
JTBC 팩추얼 <A.C.10> 제작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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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이 멈춘다면 우리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11월 1일부터 우리나라도 '위드 코로나'에 돌입함으로써 코로나와 일상을 함께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23개월의 코로나와의 사투를 벌인 우리들은 때마침 단풍철이라 너나 할 것 없이 들로, 산으로 나들이를 가고 마음껏 공기도 들이마시고, 아름다운 자연을 즐겼다. 모두 마스크를 쓴 채였다. 우리는 코로나가 끝나도 코로나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일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견뎌내는 모습들이 눈물겹다. 코로나 팬데믹 아래서도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고 백신을 외국에서 구입해와야 하는 악조건 아래서도 우리들은 결코 삶의 의지를 꺾이지 않았고, 힘겹지만 버텨내고 있다.

JTBC는 위드 코로나를 앞두고 슬라보예 지젝ㆍ장하준 등 세계적 석학들로부터 팬데믹 10년 후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고 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묻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이 책 『팬데믹 이후의 세계 A.C.10』은 지난달(10월) 세 차례에 걸쳐 방송한 JTBC 다큐멘터리 'A.C.10'에서 미처 소개하지 못한 내용들이 주로 담겼다. 백신ㆍ노동ㆍ국가에 대한 눈여겨볼 통찰들을 소개한다.



바야흐로 포스트코로나 뉴노멀 시대, A.C.(AFTER CORONA) 1년으로 기록될 수 있는 현 시점에서 세계의 석학과 글로벌 리더에게 묻는다. ‘세계를 멈추게 한 코로나19는 갑자기 찾아온 것일까? 예상된 것일까?’, ‘공통 백신의 꿈은 과연 이뤄질 것인가?’,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국가는 그리고 개인은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 것인가?’ 세 가지 주제로 세계 석학들로부터 전망과 의견을 들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10년 뒤 미래를 상상해보며, 국내 최초로 XR(확장현실) 스튜디오를 구축해 제작된 JTBC 다큐멘터리 〈A.C.10〉은 세계적인 석학들이 인터뷰이로 대거 출연해 방송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 책은 미방송분까지 더해 새롭게 엮은 것으로, 코로나 쇼크 이후 인류가 당면할 3가지 미래과제(백신의 현주소, AI와 노동, 국가의 역할)에 대해 다룬다. 이에 따라 바이러스가 몰고 올 '뉴노멀'의 실체를 더욱 날카롭게 파헤친다.

세계 최연소의 나이로 교수직에 오른 천재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 세계의 지각변동을 가장 예리하게 전망하는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 레온티예프 상(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경제학자에게 주는 상)을 최연소로 수상한 경제학자 장하준, 중국의 대표 지식인으로 떠오르는 원톄쥔, 21세기 가장 중요한 사상가로 꼽히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 국제노동기구 선임경제학자 가이 스탠딩, 국제백신연구소 사무총장 제롬 김, 사회전염병 학자 리처드 윌킨슨 등 이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과 글로벌 리더 18인이 다채로운 의견을 내놓으며, 미래사회에 대한 통찰력 있는 대담을 펼친다.



특히 이 책에서는 편성 시간상의 문제로 방송에서는 아쉽게 편집되었던 세계 석학 18인의 미방영 인터뷰 전문이 수록되었다. 뿐만 아니라 국내 최고 전문가 집단의 자문을 받아 완성된 빅데이터 자료 설명을 충실하게 실어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내용으로 독자들에게 공개됐다. 코로나와의 전쟁이 시작된 지 23개월째 접어들었다.

인류의 노력 끝에 힘겹게 백신이 개발되었지만, 또 다른 변이가 출현하면서 여전히 우리는 코로나의 위협 속에 살고 있다. 급기야 세계보건기구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이 “우리는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으며, 새로운 일상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라고 공식 선포하면서, 인류는 이제 ‘위드 코로나(With Corona)’로 대처해나가고 있다. 코로나와 공생하는 ‘뉴노멀’ 시대가 열린 것이다. 역사적 대변혁의 변곡점에서 글로벌 석학들은 하나같이 앞으로 세계가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과 코로나 이후(After Corona)로 나뉠 것이라 전망했다. 그렇다면 팬데믹 이후, 인류에게는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먼저 1부에서는 현재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백신’이 어떤 과정을 통해 생산되고 공급되는지를 다룬다. 소수의 국가가 백신을 독점하는 ‘백신 국수주의’와 백신 공급의 불균형 해소에 주목하는 한편, 코로나19 백신의 남겨진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세계 석학들은 백신을 개발한 나라들이 새로운 권력을 독식하게 될 것을 우려하며 백신 특허권 제거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팬데믹은 반드시 다시 찾아올 것이기에 신기술을 균등하게 분배해야 이번처럼 참혹한 상황을 피해갈 수 있다는 것. 우리가 백신 개발과 공급의 불균형 문제를 보다 전체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석학들은 백신이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도구임을 명심해야 한다며, 경쟁이 아닌 협력을 통해 팬데믹을 극복하는 글로벌 리더십과 국제공조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계속 함께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취약계층에게는 여전히 강한 위협이 될 것이고요. 변화는 국가적 차원에서, 지역적 차원에서, 세계적 차원에서 대응 방식이 이뤄질 것이고 향후 몇 년간 세계의 화두가 될 것입니다.”



2부는 '노동'의 문제를 다룬다. 팬데믹으로 인해 온라인 수업, 배달 앱 사용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했고, 이는 노동의 형태와 시장을 급격히 바꾸어놓았다. 비대면이 일상화된 우리의 삶에 가장 먼저 반응한 곳은 플랫폼 기업. 이들이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며 앱이나 SNS 등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노동이 거래되는 ‘플랫폼 자본주의’가 등장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했다. 우선 코로나로 인해 불평등과 양극화가 극심해지면서 노동의 가치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석학들은 플랫폼을 소유한 자, 플랫폼을 잘 이용하는 자가 향후 미래사회에서는 상위계급을 차지할 것이라 예측했다. 따라서 2부에서는 미래 계급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인적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 방법이 무엇일지 살펴본다. 또한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사회적인 우려 속에서 석학과 AI 전문가들은 우리가 일과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고, AI가 대체할 수 없는 노동의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인간과 로봇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명쾌하게 제시한다.

“플랫폼 내에서도 구조가 생겨날 거라고 봅니다. 앞으로는 샐러리아트에 속했다고 생각한 많은 사람들이 프레카리아트가 된 자신을 보게 될 겁니다. 그리고 수많은 프레카리아트 계층의 아들과 딸들이 생기겠죠.”



3부에서는 팬데믹 속에서 벌어지는 국가의 통제와 감시에 주목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강력한 국가권력’이라고 불리는 전염병 통제권이 등장한 가운데, 세계 석학들은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이 적은 ‘작은 정부’의 시대가 가고, 큰 정부의 귀환을 예고했다. 또한 전염병과 감시사회에 대한 두려움은 온갖 음모론과 가짜뉴스를 양산하고 있다. 이른바 인포데믹스는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지고, 개인의 사생활 침해는 물론 국가의 경제, 정치, 안보 등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에 가짜뉴스와 음모론 속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국민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어내는 지도자의 리더십, 그리고 건강한 시민사회의 자발적 통제에 대해 살펴본다.

“감시체제의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을뿐더러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디지털 독재로 곧장 이어질 것입니다. 이미 여러 국가에서 안보기관과 대기업들이 팬데믹을 이용하여 디지털 통제 정부를 만들려고 하는 움직임이 보입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인류는 전염병의 위협과 혼란, 혐오와 갈등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석학들은 하나같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오직 경쟁과 개발만을 지향해오던 세계가 신자유주의 시대의 끝자락에서, 소외되었던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팬데믹의 경험은 과연 인류에게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가장 급진적인 역사가 쓰이고 있는 포스트코로나 뉴노멀 시대. 이 책《팬데믹 이후의 세계 A.C.10》을 통해 세계 석학과 리더, 전문가 집단이 제시한 질문을 이제 스스로에게도 던져보길 권한다. 그들이 말하는 인류의 선택과 변화 속에 당신의 그리고 우리의 향후 10년을 결정지을 기회가 숨어 있다.

사실 누구도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하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우리 스스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이 기업들의 시스템을 쓰지 않으면 사는 게 매우 불편하기 때문이다. (…) 구글은 8월, 18세 미만 청소년에게는 관심사를 기반으로 한 맞춤형 광고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가짜뉴스에 대해서도 소셜미디어가 책임이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유튜브와 페이스북, 트위터는 코로나와 관련한 가짜뉴스를 차단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의 움직임도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들 기업들의 독점적 지위 남용을 막기 위한 규제 법안이 나온 상태다. 유럽연합의 경우 2010년부터 거대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조사를 시작했다.

- 「9장. 음모론과 가짜뉴스는 어떻게 우리를 현혹시키는가」 중에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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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의 역사 - 지도로 그려진 최초의 발자취부터 인공지능까지
맬컴 스완스턴.알렉산더 스완스, 유나영 옮김 / 소소의책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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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지도의 역사』는 역사적인 지도 제작에 평생을 바친 한 지도 제작자가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의 세계지도부터 역사적으로 중요한 주제도의 원본들과 항공사진까지, 65점의 지도를 완벽하게 되살린 책이다. 이들 지도 제작에는 세계 너머를 이해하고픈 충동에 이끌려 지도 제작자가 된 아버지를 따라 역시 지도 제작자가 된 아들이 함께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여러 곳을 직접 방문하면서 그에 연관된 각종 주제도를 보여주고 역사적 사건까지 세심하게 곁들이는 여정에서, 지도 제작의 가장 극적인 변화로 20세기 초의 항공사진 개발을 꼽는다. 기본도를 준비하기 위해 수많은 측량사와 지도 제작자를 파견하여 도보로 경관을 측량하던 이전과 달리, 고해상도 카메라 한 대와 공중 임무 한 번이면 수천 제곱마일을 기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에 따라 인류 역사를 재현하는 지도 제작자는 끝없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통계를 기반으로 이주, 인구 증가, 기후변화 같은 전 세계 사건들의 지도를 만들고 끊임없이 업데이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도는 여전히 주변 세계를 이해하고 주변 세계와 관련 맺는 능력을 반영하며, 지도 제작은 우리의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가 나아갈 길을 가리키는 데 특별한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해와 달과 천체의 움직임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읽고 시간의 개념을 발전시킨 고대인들은 자기 주변의 세계와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 지도를 만들었다. 이후 지도는 종교, 새로운 땅을 발견하기 위한 탐험과 이주, 무역 확대, 전쟁, 영토 분할 등 인류의 문명 발전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전보다 훨씬 다양하고 정밀한 지도를 만들게 되었다. 이 책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지도가 그려지기까지 끝없는 도전과 연구를 거듭한 지도 제작자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이 책의 첫 지도는 인류의 기원인 호모 사피엔스의 이주경로가 담긴 것이다. 이동시기와 함께 현재의 지도에 이동경로가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시작하여 남아메리카 최남단까지 약 12만년 동안의 이동경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먼저 이동한 곳이 기원전 3만5,000년께의 유럽이 아닌 기원전 9만년께의 아시아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도 유럽보다 1만년 전에 이주되었다는 것도 나와 있다. 독자들에게 귀한 경험을 지도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책에 따르면 1881년 한 고고학자가 한때 오스만 제국의 일부였던 바그다드 서쪽에서 쐐기문자가 새겨진 점토판 조각을 발견했다. 그것은 세계를 위에서 똑바로 내려다본,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였다. 두 동심원 사이의 공간은 세계를 둘러싼 소금 바다이고, 그 안쪽에 ‘알려진 세계’가 있으며 유프라테스 강으로 해석되는 표상이 이 ‘세계’를 관통하여 흐른다. 강 주변으로는 산, 늪지, 운하 등으로 표시된 기호를 비롯해 주요 도시와 중심지를 표시해놓았다. 기원전 6세기에 만들어진 이 세계지도에서 바빌로니아인들은 원을 360조각으로 등분하고 1년의 길이를 약 360일로 정의했다. 이러한 계산법은 현대에도 여전히 유용하며 지도 제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도 제작의 효시다.



『지도의 역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그리고 온갖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미지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탐사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불굴의 노력을 기울인 지도 제작자들의 이야기다. 단순히 세계 역사서도 아니고 전쟁사도 아니다. 저자들은 고대인들이 만든 최초의 세계지도부터 첨단 장비를 동원한 과학적 측량으로 오늘날의 세계지도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고 지도 제작의 미래를 가늠해본다. 50여 년간 지도를 제작해왔고 100여 권의 각종 분야사와 역사상 가장 많은 주제도를 만들어낸 지도 제작자의 풍부한 안목과 식견을 바탕으로 한 책이다. 수천수만 점의 사례 중에서 엄선한 65점의 지도를 저자들이 직접 재현하면서 각각의 지도가 들려주는 역사적 이야기를 담아내는 식으로 책을 구성했다.

이 책은 먼저 고대인들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어떤 연구를 수행했는지, 그 성과는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본다. 탈레스의 제자로 추정되는 아낙시만드로스는 세계가 ‘무한’ 가운데에 떠 있지만 원통형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그의 세계지도는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윗면이 고리 모양의 대양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바빌로니아인들의 관념을 연상시킨다. 다방면에 박식했던 고대 그리스의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의 크기를 측정하고 지도 제작의 기본 규칙 중 일부를 확립했으며 이후의 많은 지도 제작자에게 천문학의 중요성을 주지시켰다. 위선과 경선을 최초로 사용하고 천문 관측을 통해 장소들의 위치를 명시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와 저작들은 세계에 기하학적 질서를 적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오래도록 지속되어 르네상스 이후까지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그의 기념비적인 연구의 결과물인 '지리학'은 서양에서 향후 2,000년간의 지도 제작을 규정하게 된다.



'신의 시대' 중세에는 ‘기독교 지리학’이 지배한다. 지대형 지도를 비롯해 T-O 지도(3분할 지도), 베아투스 지도(4분할 지도), 복합형 지도(그레이트 맵) 등 다양한 형태의 마파문디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헤리퍼드 마파문디(1300년께 제작)는 거대한 크기의 피지 한 장에 성서의 열다섯 가지 사건과 고대 신화의 다섯 장면, 420개 도시와 소도시, 그리고 사람들과 동식물이 묘사되어 있다. 당대 이슬람 지도 제작의 대표자는 알 마수디다. 그의 세계지도는 아랍 전통에 따라 남쪽이 위로 가게 놓고 세계를 보았다. 그리고 이슬람과 기독교의 지리 전통이 결합된 알 이드라시의 지도는 제작된 이후 거의 300년 가까이 정확성의 표준이 되었다.

대항해 시대의 이야기를 다룬 부분에서는 바스코 다 가마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페르디난드 마젤란 등이 어떠한 경로로 대양과 신대륙을 탐험하고 교역로를 열고 정착지를 개척했는지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또 역사상 가장 유명한 ‘메르카토르’ 투영법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모든 항해사에게 활용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들여다본다. 독자들은 지도 한 장으로 신대륙 발견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 제임스 쿡을 비롯한 유럽 탐험가들의 오스트레일리아 발견 과정과 노예무역, 정확한 정보와 삼각측량 기술을 적용하여 현재의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고 체계적인 지도 제작을 위한 기준을 정립함으로써 각국의 지도 제작 사업을 위한 기틀을 닦은 카시니 집안의 이야기도 독자들의 흥미를 끌 것이다.



대항해 시대에 새로운 땅이 발견되면서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 전 세계로 제국을 확장하고자 한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전은 우리가 세계 역사에서 이미 배운 대로 더욱 치열해졌다. 곳곳에서 자국 영토와 식민지 측량이 진행되고 국가 간 합동 조사까지 시작되면서 더욱 정밀한 지도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그 사례 중 하나로 인도 전역에 걸친 대삼각측량을 들 수 있다. 이 엄청난 측량 조사는 1802년부터 1871년까지 진행됐다고 한다. 그 덕분에 영국 행정부는 인도 아대륙 내의 영토를 한눈에 꿰뚫어볼 수 있게 됐다.

지도 위의 선 하나가 크나큰 의미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1763년 이후 브리튼 제도에서 영국의 북아메리카 식민지로 향하는 이주민의 수가 급증하면서 이전까지 영국 정부가 불하해온 토지를 근거로 만들어진 부정확한 지도 때문에 식민지에서 토지 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그어진, 가장 유명한 경계선이 있다. 바로 ‘메이슨 딕슨 선’인데, 식민지 아메리카에서 측량한 이 선은 메릴랜드와 펜실베이니아와 델라웨어 사이의 영토 분쟁을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 경계선까지 만들어냈다. 북부와 남부, 자유민과 노예, 반란군과 연방군을 가르는 문화적 분계선이 된 것이다.



전쟁에서 지도의 역할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전황을 살필 뿐만 아니라 전략과 전술을 실행하는 데 결코 빠뜨릴 수 없다. 이 책은 성스러운 폭력이라는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하고 4차에 걸친 십자군의 이동 경로, 미국인 모두의 기억에 끔찍한 상처를 남긴 남북전쟁에서의 주요 전투도 담았다. 또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 투르크, 제정러시아 등 4개 제국의 종말을 가져온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작전 계획과 교두보 확보 전투 등을 지도로 보여준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전쟁의 승패를 가름할 정도로 치열하고 중요했던 네 차례의 전투로 꼽히는 영국 본토 항공전, 바르바로사 작전, 미드웨이 전투, 오버로드 작전을 통해 전쟁의 향방을 정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이 책은 런던, 파리, 뉴욕의 도시 역사도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런던 지하철 노선도를 최초로 디자인했고 전 세계의 지하철 및 기타 노선 지도에 영향을 끼친 해리 벡의 지도도 재현해냈다. 이 밖에 시민과 노동자들의 봉기로 수립된 혁명적 자치정부인 파리 코뮌의 진형도, 이전의 형태를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간직한 뉴욕의 모습 등 각각의 도시를 서사적으로 표현하는 지도를 함께 보여준다.



저자 : 맬컴 스완스턴(MALCOLM SWANSTON)

30여 년간 함께 고대 로마로부터 베트남에 이르는 광범위한 주제로 역사에 대한 글을 쓰고 지도를 만들어왔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다년간 조사, 집필하고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벌어진 중요한 전투와 사건을 지도로 구현했다. 최근작은 『남북전쟁 아틀라스(THE ATLAS OF THE CIVIL WAR)』, 『성서 역사 아틀라스(THE HISTORICAL ATLAS OF BIBLE)』, 『기사와 성의 역사 아틀라스(THE HISTORICAL ATLAS OF KNIGHTS AND CASTLES)』 등 다양한 주제에 걸쳐 있으며,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아틀라스 전차전』, 『아틀라스 세계 항공전사』 등이 있다.

저자 : 알렉산더 스완스턴(ALEXANDER SWANSTON)

30여 년간 함께 고대 로마로부터 베트남에 이르는 광범위한 주제로 역사에 대한 글을 쓰고 지도를 만들어왔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다년간 조사, 집필하고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벌어진 중요한 전투와 사건을 지도로 구현했다. 최근작은 『남북전쟁 아틀라스(THE ATLAS OF THE CIVIL WAR)』, 『성서 역사 아틀라스(THE HISTORICAL ATLAS OF BIBLE)』, 『기사와 성의 역사 아틀라스(THE HISTORICAL ATLAS OF KNIGHTS AND CASTLES)』 등 다양한 주제에 걸쳐 있으며,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아틀라스 전차전』, 『아틀라스 세계 항공전사』 등이 있다.

역자 : 유나영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옮긴 책으로 『네 번째 원고』, 『민족』,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왜 지금 지리학인가』 등이 있다. 개인 블로그 ‘유나영의 번역 애프터서비스(LECTRICE.CO.KR)’를 운영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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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를 보는 식물학자 - 식물의 사계에 새겨진 살인의 마지막 순간
마크 스펜서 지음, 김성훈 옮김 / 더퀘스트 / 2021년 10월
평점 :
절판


 

일부 불랙베리 덤불은 살인 현장에 흔하다고 한다. 이 덤불에 탐정 본능이 있어서가 아니다. 영양분을 크게 탐하는 종이어서다. 자연스럽게 이 나무는 인간 시체의 영양분을 좋아한다. 그래서 블랙베리 덤불의 나이를 추정하면 시체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 수도 있다. 이 책 『시체를 보는 식물학자』는 범죄를 둘러싼 식물의 종과 상태들을 잘 아는 사람이 경찰의 협조의뢰로 수사에 결정적 도움을 주는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 마크 스펜서는 런던 자연사박물관 식물 표본실 큐레이터로 일하던 식물학자다. 우연한 기회에 경찰의 의뢰를 받고 범죄사건을 조사하면서 법의식물학자가 됐다. 그의 10년 경험을 담았다. 시체가 생기면 주변 식물이 반응해 완전히 둘러싼다. 식물이 목격자가 될 수 있다고 저자는 본다. 범인의 몸에 묻은 꽃가루, 사체에 생긴 곰팡이 등이 증거가 되고 시체 유기 장소를 알아내는 역할도 한다. 저자는 범죄드라마 CSI 과학수사대의 길 그리섬은 현실성이 없는 인물이라 여긴다. 한 사람이 여러 분야를 통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법의식물학자들은 CSI에 나오는 첨단 도구가 아니라 현미경만을 쓴다. 그러나 책은 CSI를 보는 듯 흥미롭다.



이 책은 독자들을 '법의식물학'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안내한다. 시체가 얼마나 오래 현장에 있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블랙베리덤불의 나이를 추정해야 한다거나 사라진 시체를 찾는 데 아이비의 줄기가 어떻게 유용한지 또한 익사 사건에서 어떻게 규조류가 좋은 증거가 될 수 있는지 등 범죄과학에서 식물학 지식을 활용하는 방법은 당신이 지금까지 접한 식물학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코난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를 탄생시켰고, 한때 범죄과학의 중심지로 불리던 영국. 그곳에서 10년 넘게 전문 법의식물학자로 활동해온 저자가 전하는 이 생생한 기록을 통해 식물학이 선사하는 또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자. 식물이 주는 재미는 언제나 새롭고 끝이 없다.

인간은 죽는 순간부터 아주 풍부한 영양 공급원이 된다. 먼저 소화관과 피부에 들어있는 복잡한 미생물 생태계가 우리를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야외에 있는 경우라면 사망하고 몇 분 안으로 파리와 딱정벌레에게 발견되어 그들의 알자리가 된다. 새와 포유류의 먹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일부 블랙베리덤불은 범죄가 저질러지는 곳에 굉장히 흔한데, 인간이 공급하는 영양분은 이 덤불의 입맛에 잘 맞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대다수는 인간이 다른 생명체의 먹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몸서리치겠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이 책에서 가장 주요하게 다뤄지는 내용은 바로 ‘법의식물학자가 시체를 찾는 법’이다. 흙 속 꽃가루의 어떤 특성이 범죄수사에 활용되는지, 시체 위로 피어난 곰팡이가 어떻게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는지, 실제 식물 증거물 조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등 범죄드라마 마니아라거나 추리소설 탐독가도 쉽게 접하기 힘든 생생하고도 전문적인 현장 지식들을 담고 있다. 다만 여기에 첨단 과학이 만들어낸 도구가 등장할 것이라 기대하지는 말자. 법의식물학자들은 오로지 현미경과 예민한 손끝만을 사용한다.

하얀 가운을 입고 안경을 쓴, 멋들어진 신사·숙녀는 등장하지 않는다. 장화를 신고 진흙탕이나 늪지를 헤매고 딱딱한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며 쓰레기를 치우고 현장의 구석구석을 일일이 관찰해 스케치하는 등 현장 노동자가 등장할 뿐이다. 이 책은 어떻게 범인을 극적으로 잡았는지 긴장감 있게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현장의 뒷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이나 식물학의 새로운 측면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생생한 현장 이야기 외에도 법의식물학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식물학의 가치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저자 마크 스펜서는 법의식물학이 재정적 지원을 바탕으로 현대 과학기술과 만난다면 법정에서 모든 것을 입증하는 증인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실제로 DNA 추출 기술의 발전으로 장기미제사건인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잡혔다. 이와 같이 오래되고 이미 부패된 식물 또는 곰팡이에 남은 DNA를 추출할 수 있다면 오래된 미제사건의 목격자를 찾는 셈이 된다. 식물이 탐미의 영역에만 그치지 않고 우리가 이해해야 할 영역이라는 점을 재인식하기에 적절한 책이다.




책에서 한 사례를 읽어보면 왜 범죄수사에 식물학자가 필요한지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 남자가 한밤중에 여행 가방을 끌고 간다. 그 남자는 목적지에 다다르자 여행 가방을 펼치고 그 안에서 힘겹게 무언가를 꺼내버린다. 바로 시체다. 사체를 유기한 후, 그는 여행 가방을 다른 장소로 가져가 조각조각 자르고 프레임을 박살 내 망가뜨리려고 시도한다. 여행 가방은 확실하게 부서진다. 여행용 가방 안에서는 그가 누군가를 살해하고 유기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원래의 목표는 달성되지 못했다. 여행 가방 바깥 면에 그 남자의 유죄를 밝히는 증거가 된 ‘흙’이 묻었던 것이다.

어떤 식물은 영양이 풍부한 흙을 필요로 하고, 어떤 식물은 풍부한 햇빛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식물은 특정 유형의 환경, 즉 생물학에서 말하는 ‘서식지’에 국한되어 존재한다. 전 세계적으로 서식하는 식물은 아주 드물고, 심지어 영국과 아일랜드 안에서도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식물은 그리 많지 않다. 많은 식물이 뚜렷한 분포 패턴을 가진다는 의미다.

8장 〈꽃가루는 말한다, 당신이 현장에 있었다고〉 중에서

식물은 달력이자 타임캡슐이다. 어느 누구도 지켜주지 못한 누군가가 마지막으로 머문 곳 주변에는 반드시 식물이 있다. 그 생명체들은 자연의 흐름에 맞춰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뿐만 아니라 세상의 수많은 미세한 변화를 포착한다. 식물에 새겨진 한 인생의 마지막을 엿보는 이 책은 지금까지의 상상을 뛰어넘는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시체가 있으면 주변 식물이 반응해 시체를 완전히 둘러싸기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말해줄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이다. 이 점이 식물학자가 범죄 수사에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증거를 찾기 위한 세 가지 방법을 여기에 적어본다.

① 블랙베리의 나이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

블랙베리덤불은 매년 봄이면 하나나 그 이상의 순이 돋아나 줄기가 되고, 그 끝부분이 땅에 닿으면 새로 뿌리를 내려 나무로 자란다. 다음 해가 되면 이 줄기에서 또 다른 순이 돋아나고 꽃을 피우며 다른 줄기를 덮어버린다. 이런 식으로 새로 나온 줄기가 기존의 줄기 위로 자라면서 식물이 점점 커진다. 이러한 블랙베리의 뿌리줄기에서 돋아난 줄기의 위치와 나이를 관찰하면 시신이 그 자리에 얼마나 있었는지 알 수 있다.

② 무덤을 조사할 때는 찢어진 아이비를 찾아라

범죄자들은 묘지를 최후의 수단으로 이용한다. 이때 가장 쓸모 있는 부분은 발육단계의 아이비 줄기다. 아이비 줄기는 일반적으로 표면에 납작하게 눌려 붙어있다. 그리고 줄기 한쪽을 따라 짧고 미세한 뿌리를 가진다. 이러한 아이비 줄기가 붙어있다면 무덤 안에 무언가를 넣고 석판을 원래의 위치에 가져다놓는다고 해도 줄기를 끊어낸 흔적을 들킬 수밖에 없다.

③ 익사체를 부검할 때는 미생물을 찾아야 한다

사람이 물속에서 호흡을 시도할 때 폐의 압력 때문에 규조류가 폐의 막을 뚫고 혈류 속으로 밀려들어갈 수 있다. 규조류는 조류의 일종인 미생물이다. 규조류들은 피를 타고 몸속을 돌다가, 혈액순환이 멈추면 큰 기관에 가서 쌓인다. 따라서 익사의 형태에 따라서는 신체 기관에서 발견되는 규조류가 좋은 증거가 될 수 있다.



저자 : 마크 스펜서

세계적인 법의식물학자이자 식물학 컨설턴트. 큐왕립식물원에서 장학생으로 공부한 다음, 레딩대학교에서 식물학으로 학사학위를, 동대학교에서 수생균류의 진화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대런던당국(GLA)을 대표하여 런던 곳곳에서 야생식물을 조사하는 식물학자로 일하다가, 런던자연사박물관에서 12년 동안 식물 표본실 큐레이터로 일했다. 런던 린네학회 회원이다. 2009년, 그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법의식물학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하게 된다. 현재는 자연사박물관을 그만두고 전문 법의식물학자로 활약 중이다. 영국 전역에서 경찰 및 범죄과학 서비스 제공업체와 함께 현장에 나가거나 실험실에서 식물 증거물을 조사한다. 또한 법의식물학과 생태계의 다양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BBC2, BBC RADIO4 등에 출연하며 대중 강연가로서 활약하고 있다. 여가 시간에는 정원과 집을 가꾸거나 런던의 뒷골목에서 식물이나 곰팡이를 찾아다닌다.

역자 : 김성훈

치과의사의 길을 걷다가 번역의 길로 방향을 튼 엉뚱한 번역가. 중학생 시절부터 과학에 대해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틈틈이 적어온 과학 노트가 지금까지도 보물 1호이며, 번역으로 과학의 매력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기를 꿈꾼다. 현재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단위, 세상을 보는 13가지 방법》 《아인슈타인의 주사위와 슈뢰딩거의 고양이》 《세상을 움직이는 수학개념 100》 등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늙어감의 기술》로 제36회 한국과학기술도서상 번역상을 수상하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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