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물쇠 속의 아이들 - 어린 북파공작원의 비밀
김영권 지음 / 작가와비평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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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파공작원'이란 단어는 듣기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무섭다. 그들이 공식적인 조직도 아닌데다 임무가 북한에 직접 침투해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 군인들도 쉽게 할 수 없는 일들이다. 발각되거나 잡히면 대부분 죽을 사람들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 단어에서 받는 느낌은 공포 그 자체였다. 북파공작원들은 한국전쟁중인 1952년부터 1972년 7ㆍ4남북공동성명 발표 때까지 북한 지역에 파견되어 활동한 무장첩보원이란 사실은 뒤늦게 알려졌다. 또 실제했더라도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런 사실은 그들이 더 공포스럽게 비쳐졌고, 아무도 극비활동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어 실체는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했었다.

이들의 존재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사건이 터졌다. 이른바 '실미도 사건'이다. 그들은 김신조 등 31명의 남파 무장공비에 대해 똑같은 보복을 이유로 인천 앞바다 실미도에서 비밀 특수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남북간에 채택한 7ㆍ4남북공동선언(1972)으로 부대의 해체가 불가피해지자 당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대우를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는 점이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실제 언론을 통해 제대로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그때 훈련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망했기 때문에 사건 발생 이유가 제대로 밝혀질 수 없었다.

 


 

북파공작원의 임무 자체가 정부나 군 당국에서 공식적으로 밝힐 수 없는 첩보작전 등이다. 이런 첩보 작전을 맡은 곳에서 그들에게 제대로 대우를 해주면 비밀 누설 가능성 때문에 제대로 대우를 해줄 수도 없었을 것이다. 특히 한국(남한)과는 달리 거주 이동의 자유가 없는 북한 지역에서 첩보 활동은 더 어려울 것이란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 이들은 특수훈련을 받고 무기 없이도 적의 목숨을 순식간에 빼앗을 수 있는, 말 그대로 '인간 병기'로 추정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들로 알려졌다.

이 소설은 실제 운영됐던 북파공작원 임무를 띠고 지금까지 살아 존재하는 일부 사람들이 보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함으로써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소설 『자물쇠 속의 아이들』은 그들의 과거를 직접 인터뷰한 저자가 쓴 것이다. 이때 북파공작원 중에는 공작원 대결이 가장 치열했던 1960~1970년대에는 실제로 8~17세의 어린 소년들이 중정 물색조의 허풍에 속거나 반강제적인 방법에 의해 첩보 부대로 끌려갔고, 북파공작을 수행하다 목숨을 잃거나 행방불명되었다는 사실은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저자의 전작 『선감도-사라진 선감학원의 비극』의 후속작 성격을 띠고 있어 사실성을 더한다.

 


 

북파공작원들은 최초 한국전쟁 당시 남한에 있는 지리산 빨치산처럼 북한의 후방을 교란시킬 목적으로 양성됐다고 한다.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적 생포 및 사살, 적군진지 주요시설물 폭파, 적지에서 각종 테러를 통한 사회혼란 야기, 첩보수집, 첩보망 구축 등을 주임무였다. 이들을 선발, 양성한 부대는 'HID(Headquarters Intelligence Department)'로 불리는 '육군첩보부대'가 모체인 것으로 알려졌다. 1948년께 만들어진 이 부대는 60년대말부터는 'AIU(Army Intelligence Unit)'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이 곳 말고도 `실미도' 부대 등 북파공작원을 관리하는 특수 침투부대는 여러 곳 더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군이 아닌 미군 정보부대에 소속돼 북파공작에 종사했던 요원들도 수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공작원 양성기능은 1968년 청와대 습격사건 직후 창설된 공군 특수부대를 거쳐 국군정보사령부로 이어졌다. 북파공작원들은 원래 군인 신분이었으나 1953년 정전협정이 남과 북의 무력도발을 금지한 까닭에 군과 군의 공개적 전투행위는 불가능해짐에 따라 이후 민간인 신분으로 훈련받고 북파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군 당국은 그동안 북한과의 관계를 우려해 북파공작원의 실체를 공식 인정하지 않았으나 1999년경부터 유족들이 이들의 명예회복과 보상을 요구하고 나서기 시작했다.그러다가 2000년 10월 민주당 김성호 의원이 북파공작원 양성ㆍ파견부대였던 HID(첩보부대) 소속 북파공작원 가운데 1953∼1956년까지 활동했던 HID 1기∼3기 366명의 명단을 생존 공작원중 1명으로부터 입수해 공개함으로써, 북파공작원 실체가 처음 공개되었다. 1953년 휴전 이후 72년 남북 공동성명 때까지 북파된 공작원은 1만여명에 달하며 그중 사망ㆍ실종된인원은 모두 7726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소설은 주인공 ‘청운’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앞서 언급한 저자의 전작 『선감도』에 나온 주인공이 이 소설에서도 활약하므로 『선감도』의 속편 격이다. 1부에서는 선감학원에서 탈출한 청운이 엄마를 찾기 위해 사이비 종교에 침투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곳에서 청운은 해괴망측하고 경악스러운 사이비 종교의 실체를 발견한 후 쫓겨나다시피 그곳을 나온다. 2부에서는 방랑자 신세가 된 청운이 중정 물색조의 감언이설에 속아 첩보 부대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북파공작원이 되기 위해 목숨을 건 훈련을 받는 모습을 그린다. 3부에서는 청운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일부 동료들과 훈련을 마무리하고 북한으로 올라가 임무를 수행하는 이야기가 긴장감 넘치게 전개된다.

 


 

저자는 ‘사이비 종교’에 갇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아이들과 국가에 속은 채 첩보 부대에 들어가 목숨을 잃는 아이들을 통해 국가의 민낯을 그려내며,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독자들의 가슴속에 던진다. 특히 어린 북파공작원들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무관심 속에서 베일에 가려진 채로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 어쩌면 '소년 공작원'이란 말을 처음 들어본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독자도 마찬가지다. 영화나 책 등 이런 저런 이유로 북파공작원의 실체는 규명됐으나 '소년'들이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은 충격을 더한다.

책에 따르면 국가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을 바쳤지만 이들에게 돌아온 건 지옥 같은 현실뿐이었다. 책 제목의 ‘자물쇠’는 바로 그러한 의미로 저자가 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국가에 속고 권력에 이용된 아이들의 삶은 마치 폐쇄되고 거짓스러운 비밀 자물쇠 속에 갇혀 있는 것과 같다는 의미라고 한다. 과연 주인공 청운과 아이들은 ‘자물쇠’ 속에서 나와 희망의 빛을 볼 수 있을까?

 


 

"나도 고아가 되어 세상을 헤매다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선감도 청소년 수용소에 끌려가서 생지옥을 체험하기도 하고······ 바다를 헤엄쳐 탈출하던 도중에 죽을 뻔하기도 했지만······ 바다는 정말 두려워······ 수중고혼이라도 빨리 꺼내줬으면······."

* "이 이야기는 어느 일간지의 미담란에 소개된 기사를 바탕으로 119대원을 수소문해 당시의 상황을 전해 듣고 또한 주인공 노인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한 후 사실에 따라 재구성한 것이다." - 지은이

 

저자 : 김영권

 

진주에서 태어나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시와 소설을 공부했으며,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소」가 당선됐다. <작가와 비평>에서 장편소설 『성공광인의 몽상 : 캔맨』을 출간하며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지금은 문예지에 『잘난 니 똥』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시대의 부조리를 풍자한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선생님은 어른들을 위한 소설도 쓰지만, 청소년 소설에도 관심이 많다. 그것은 어린 시절에 읽은 좋은 책 한 권이 인생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소설로 펴낼 예정이다. 낸 책으로는 『수상한 형제복지원과 비밀결사대』,『수상한 선감학원과 삐에로의 눈물』, 『선감도』, 『어린 북파 공작원』, 『형제복지원』, 『보리울의 달』, 『동상의 꽃꿈』, 『퀴리부인 : 사랑스러운 천재』, 『몽키 하우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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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괜찮냐고 시가 물었다 - 시 읽어주는 정신과 의사가 건네는 한 편의 위로
황인환 지음 / 웨일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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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신과 의사와 시(詩)는 잘 어울린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정신과 의사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또 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둘 사이의 연결은 자연스럽다. 정신과 의사는 사람들의 정신과적인 병을 치료한다. 정신과적 치료란 사람의 정신이 혼란을 겪을 때 이를 약과 심리 상담을 통해서 치료하는 일이다. 정신적 혼란이란 의사들이 말하는 우울증, 공황장애, 조현증 등 모두 정신적 혼란을 느끼는 증세를 말한다. 이는 정신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혼란을 일으키는 일도 포함된다.

아마 우리 뇌속에 감정뇌가 있다는 점을 들어 감정 혼란도 뇌의 신경 이상으로 분류하는 듯하다. 이에 비해 시는 우리의 정신을 맑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시를 굳이 쓰는 사람이 아니고, 읽는 것만으로도 시는 우리의 마음이나 정신을 맑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시를 읽어본 사람들은 많은 사람이 독자의 주장에 동의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시는 우리의 영혼까지도 맑고 순수하게 정화시키는 기능도 한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만큼 시를 쓴 사람의 영혼에 다가가는 일이라는 반증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시의 이 같은 기능은 정신과 의사가 시를 통해 정신과적 병을 고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을 뒷받침해 준다고 믿는다.

 


 

이 책 『마음은 괜찮냐고 시가 물었다』의 저자 황인환은 정신과 의사다. 저자는 시의 속성을 잘 알고 있어 정신과 환자를 치료하는 데 시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아마 치료하면서 느낀 경험적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한 것으로 이해된다. 물론 모든 문학 작품은 우리의 얽히고설킨 마음이나 정신을 풀어주고 정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 중에서도 시는 짧은 시어의 조합을 통해 사물과 우리 환경, 그리고 그 속에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우리를 형상화시켜 표현한다. 그 시어들에 대해 읽고 생각하는 동안 시인의 시 속의 의미를 풀어내고, 우리 마음이나 정신은 정화된다. 특히 살면서 느끼는 정신적 혼란이나 마음의 흐트러짐을 잘 수습해준다. 맑고 깨끗한 영혼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시가 정신과 의사의 치료 방법과 닮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치료와 시의 연결은 「프롤로그」를 통해 잘 드러난다.

"시와 마음은 많이 닮았습니다. 모두 가만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으니까요. 시는 짧지만, 그렇다고 빠르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긴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단편적인 기분보다 안에 더 많은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마음은 복잡하고 오묘하여 시처럼 가만히 들여다보아야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는 우리의 인생과도 닮았습니다."(p.8)

 


 

책에 따르면 “오늘 기분이 어때?” 간단한 질문이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의 속도에 맞추다 보면 나의 마음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일쑤다. 무심하게 일상을 살아가다 문득 치밀어오르는 감정은 낯설고 또 당황스럽기만 하다. 외로울 땐 무엇을 하는 게 좋을지, 인간관계에서 찾아오는 실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번아웃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우리는 우리의 삶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은 마음의 문제에 너무 소홀한 것인지도 모른다.

‘시 읽어주는 정신과 의사’ 황인환 원장은 마음을 잃은 사람들에게 시를 읽을 것을 권한다. 해결하기 힘든 내면의 심연에 대해 오래도록 고민해 온 황인환 원장은 때로는 시 한 편이 복잡하게 얽힌 내면의 혼란에 대한 정답이 되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시는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방어기제를 마주하게 하고, 외롭고 지친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러다가 뜻밖에도 무기력에서 우리를 건져 올리고, 피해사고에 빠진 왜곡된 마음에 냉철한 조언을 건네기도 한다. 이 책은 자신의 마음속 세상에서 길을 잃은 이에게 건네는 마음 안내서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진다면, 우선 “오늘 마음이 어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건 어떨까. 질문하기가 망설여진다면, 또 대답하기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유난히 지치고 피로했던 하루의 끝, 스스로에게 시를 읽는 시간을 선물할 수 있다. 이 책이 첫걸음을 떼게 해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저자가 왜 ‘시 읽어주는 정신과 의사’가 되었을까? 궁금하다. 그는 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많은 매체 중 시를 선택한 것일까? 어떠한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순간,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것 같은 순간이 있다. 자칫 타인의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또 나의 아픔을 전달할 방법이 없어 홀로 동떨어진 기분을 느끼곤 한다. 이럴 때 시를 읽으면 시인 및 시의 화자, 그리고 시를 읽은 많은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은 차가운 사회를 살아가는 데에 든든한 안전망이 되어준다. 무엇보다 시는 압축되어 기억하기 쉽다는 편의성 또한 갖추고 있다. 파편적으로 기억되는 소설이나 영화와 달리, 시는 필요할 때마다 전문을 꺼내어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자신의 감정이 낯설고, 관계가 힘들고, 삶이 막막한 이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말을 건네고자 한다. 1부는 외면해 왔던 현재의 감정을 마주하도록 하고, 2부는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 건강한 관계를 맺는 방법을 탐색한다. 그리고 마지막 3부는 마음의 덫에서 벗어나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가 현재의 감정으로 이야기를 열어가는 것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모든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 불안과 무기력부터 이별과 번아웃, 피해의식까지 삶의 힘든 국면에서 언제든 꺼내어 마음을 치유하도록 하는 상비약 같은 시를 담았다. 모두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음을 지켰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시와 전문적인 심리 용어를 자연스럽게 연결해 마음을 읽어내는 것을 넘어 그 해결책까지 제시한다. 마치 시와 심리 개념이 질문과 답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누는 듯 읽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해 늘 상대의 마음을 시험하고, 결국 떠나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계속 버림받는 상황에 두는 이들이 있다. 이는 발달과정에서 대상영속성과 대상항상성을 제대로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상영속성은 눈앞에 보이던 물체가 사라진다고 해서 그 존재가 소멸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능력을, 대상항상성은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 존재하며, 더 나아가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능력을 의미한다. 대상항상성과 대상영속성을 잘 발달시킨 이들은 관계에서의 좌절을 보다 성숙하게 받아들이고, 세상을 우호적으로 인식하며 타인을 신뢰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어렸을 때 제대로 애착이 형성되지 못한 이들에게 상대가 자신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미래의 확정적인 사실로 존재한다. “내 집은 왜 종점에 있냐”고 자신의 상태를 단정하며, “그러니 모두/내게서 서둘러 하차하고 만 게 아닌가”라고 한탄하는 시의 화자처럼 말이다.(박소란, 「주소」) 저자는 이들에게 “상류로 거슬러오르는 물고기떼처럼”(이성복) 과거의 아픔이 현재를 결정하도록 하지 않는 의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렇듯 심리학 이론과 시는 딱딱하게 굳은 마음을 다른 방식으로 어루만진다. 가장 따뜻한 텍스트인 시와 가장 따뜻한 학문인 심리학의 만남에는 기대 이상의 울림과 효용이 있다.

 


 

이 밖에도 김소연의 시에서 늘 괜찮다고만 하는 억제의 방어기제를 발견하고, 우루과이 작가 마리오 베네데티의 시에서 ‘무주의 맹시’에 빠져 행복을 인지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마주한다. 윤동주의 시는 번아웃증후군에 빠져 일상의 존재감을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박두순의 시는 완벽주의에서 벗어나 메타인지를 인지할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시가 마음의 안부를 물으면 심리학 개념은 그 마음이 가야 할 곳을 제시한다. 그 대화의 끝에서 일상을 지켜나갈 힘을 가지게 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문제가 해결되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끌어안고 나아갈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요?”,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요”, “불만족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을까요?” 고민을 상담할 때, 대부분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기억을 제거하고 삶의 악조건을 극복하는 법을 묻는다. 이에 시는 대답한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정호승, 「수선화에게」), “그 씨 한 톨마저 없으면 우리는 쓰러지지/자신을 설명할 길이 없지”(이병률, 「비밀이 없으면 우리들은 쓰러진다지」), “너의 자리는/이 세상 모든 곳에 있다”(메리 올리버, 「기러기」). 결국 부정적인 감정과 기억마저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어떠한 삶의 조건에서도 발 디디고 설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저자가 책을 통해 건네는 조언도 이와 비슷하다. 그는 어떠한 마음도 극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모든 감정을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로 삼는다. 늘 최선의 선택을 내리기 때문에 삶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선택을 내려도 최선을 다하는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느끼는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는 우리의 마음과 닮아 있고, 시를 읽어내는 과정은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도 비슷하다. 속도와 생산성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호하고 정답이 없는 시를 어렵다고 느낀다. 시의 느슨한 문장을 곱씹으며 의미를 찾는 것을 점점 더 꺼리게 된다. 이는 우리가 모호한 마음을 낯설게 느끼고, 삶의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시의 여백에 의미를 채워 넣는 일은 불확실한 마음을 끌어안고 위태로운 삶을 건너가기 위한 연습이 된다. 시를 읽으면 이상하고도 애틋한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고, 삶의 다양한 변수를 받아들일 수 있다. 성가신 마음을 외면하거나 해결하려 애쓰기보다 응시하고 이해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마음과 더불어 잘 살아낼 수 있다. 우리에게 한순간 부정적인 감정이 걷히고 삶의 조건이 개선되는 마법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을 덮을 때쯤, 마음에 갇히고 삶의 조건에 휘둘렸던 이전의 삶에서 벗어나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한 변화의 시작이라고 저자는 믿는다.

 


 

하지만 기꺼이 감내하여 순서를 바꿔보려 합니다. 모호하거나 어두운 것들을 억지로 외면하지 않고 마음 한편에 둔 채로, 불편함을 조금은 느끼며 일상을 살아내 보려 합니다. 눈앞에 놓인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걸어가다 보면 또 다른 어떤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 한편에 놓아두었던 그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기도 하고, 뜻밖에 해결되기도 하고,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되기도 하지 않을까요. 그럴 수 있는 나의 건강함을 믿어보면 좋겠습니다.

- 「에필로그 : 시와 같은 마음으로」 중에서

 

저자 : 황인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여의도힐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대표원장으로 있다.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효율성을 추구하고 정답을 강요하는 이 세상 속에서, 모호하고 정답이 없는 마음을 다루는 일을 하고 있다. 해결하기 어려운 마음의 문제를 안고 있는 이들이 그의 병원을 방문한다. 그중에서도 지역적 특성상 바쁜 일상에 지쳐 자신을 돌아보는 데에 소홀해진 2030 직장인들이 많다. 무기력, 우울, 외로움 등을 호소하며 찾아오는 이들에게 그는 답을 제시하기보다 함께 답을 찾아가고자 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려 하기보다, 이에 잘 대처할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을 키울 것을 제안한다.

시를 읽는 것은 삶의 불확실성에 익숙해지는 연습이 된다. ‘시 읽어주는 정신과 의사’로 1년 넘게 《정신의학신문》에 글을 연재한 이유이다. 시와 같은 환자들의 마음을 읽으며 오늘도 진료실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짧지만 오랜 시간을 들여 읽어야 하는 시처럼, 사람들의 마음도 오래도록 들여다보려 한다.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기 위해 대한정신건강재단 상담의, 코로나생활치료센터 심리지원단 지정 전문의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정신의학신문》 운영진으로 참여하고 트라우마 치료법 중 하나인 EMDR 트레이닝 코스를 수료한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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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싫어 떠난 30일간의 제주 이야기
임기헌 지음 / 커리어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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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모르는 이의 그늘’을 통해 이겨내는 것이 아닌 견뎌야 하는 우울과 함께 삶을 어떻게 공존하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또 제주에서의 당일 에피소드와 그날의 우울감을 100점 만점으로 표시해 행동과 감정의 변화를 수치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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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싫어 떠난 30일간의 제주 이야기
임기헌 지음 / 커리어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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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갑자기 찾아오는 병이라고 한다. 우울증을 앓다 회복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독자가 직접 들은 말이다. 흔히 병은(바이러스 감염병 제외) 걸리기 전에 전조 증상이란 게 있다는 것이 보통의 의학 상식이다. 이 전조 증상을 잘 살펴 현명하게 대처하면 병을 피해갈 수 있다는 민간의 믿음은 사실이 아닌 듯하다. 의학자 및 의사들도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일부 병은 전조 증상 없이 바로 올 수도 있다는 것이 공통의 의견인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우울증 역시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전조 증상이 없는 것 같다.

경험한 지인의 경우 어느 날 자고 일어났을 때 무기력함이 다른 날에 좀 심하게 느껴져 하루 결근한 후 조금 쉬면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고 잘 쉬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고 어쩔 수 없이 출근은 했지만 무기력증이 몸을 짓누른 상태가 계속됐다고 한다. 처음엔 과로에 의한 것으로 자가 판단하고 영양제도 먹어보고, 또 이른바 '보약'도 먹어봤지만 회복 증세가 없어 몇 달 고생하다 병원에 찾아갔다고 한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을까? 내과 의사는 큰 병원에 가서 검진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대학 병원에서 진단 검사를 받은 결과 특별한 내과 소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고민하다가 할 수 없이 신경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상담을 했다가 우울증이 깊진 않지만 여러가지 증세를 종합해 진단과 처방을 받아 치료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 지인의 경우 무기력증이라는 과로에서 오는 심한 무기력증이 전조 증상이라고 할 순 있지만 일반인들은 이 정도로는 잘 알아채지 못한다. 다행히 지인은 증세가 심각할 정도는 아니라서 출퇴근도 정상적으로 하고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의사의 지시대로 꾸준히 했다고 한다. 지금은 일반인과 거의 다름이 없는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감사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우울증 환자들은 심한 경우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라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우울증의 원인 중의 하나가 스트레스라고 하니 현대인들은 누구나 우울증에 노출돼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 끔찍한 일이긴 하다.

특히 2년 전부터는 코로나로 인한 우울증(코로나 블루)도 심했다고 한다. 코로나가 지속됨으로써 코로나 레드(분노조절장애), 코로나 블랙(극단적 선택) 등으로 진전된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로 표현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 『죽기 싫어 떠난 30일간의 제주 이야기』의 저자 임기헌도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며 우울증이 갑자기 찾아왔다고 한다. 이런 저런 방법으로 고쳐보려 했지만 잘 나가는 직장 생활도 접고 옛말로 '요양차' 제주로 갔다. 직업이 기자였기 때문인지 치료 과정을 일기 식으로 남겼던 것 같다. 30일이란 한시적 체류지만 제주와 함께 저자의 우울증 치료는 어느 정도 치유되지 않았나 싶다.

 


 

우울증 진단을 의사로부터 받았을 땐 인생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저자 역시 그렇게 허망하게 자신의 삶이 완전히 무너지는 느낌이었고, 마음을 가다듬어 "이렇게 무너질 순 없다"는 각오로 치료를 시작한 듯하다. 저자는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멀쩡히 살던 내가 이렇게까지 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어제 세상을 떠난 그 누군가에겐 너무나 소중했을 하루를 나는 이렇게나 무기력하게 쓰다 버린 꼴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 끝에 정신과를 찾았다고 하니 정신과의 병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기피하고 감추는 경향이 있다. 아마 사회적 눈이 겁이 나서일 것이다.

정신적인 병은 유전적이고 못 고치는 병이라고 인식하는 한 사회에서 조직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를 꺼려하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그래서 친한 친구들의 반응은 '못 믿는 것'이다. 엊그제 멀쩡하며 같이 웃고 같이 울던 친구에게 그런 병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이다. 우울증을 고백한다면 친구들의 반응은 대체로 같을 것이다.

“나도 우울해! 인생은 원래 우울한 거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

“뭔 개소리야? 살기 편하니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거야! 사는 게 버거우면 그런 생각할 시간이 어딨어?”

 


 

이 책을 보면서 우울증의 판단을 자신이 내려서는 안 되는 것이란 것도 처음 알았다. 정신과 의사와 임상심리사가 참고하는 DSM-5에 따르면 우울증은 아래 증상 가운데 5가지 이상이 2주 연속 지속되었을 경우에 진단되는 질병이다.

① 하루 중 대부분 거의 매일 지속되는 우울 기분에 대해 주관적으로 보고(예, 슬픔, 공허감)하거나 객관적으로 관찰됨(예, 눈물 흘림).

② 거의 매일 하루 중 대부분 모든 일상활동의 흥미나 즐거움이 뚜렷하게 저하됨

③ 체중 조절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미 있는 체중의 감소(예, 1개월 동안 5% 이상의 체중 변화)나 체중 증가, 거의 매일 식욕의 감소나 증가가 있음

④ 거의 매일 나타나는 불면이나 과다수면

⑤ 거의 매일 나타나는 정신운동 초조나 지연

⑥ 거의 매일 나타나는 피로나 활력의 상실

⑦ 거의 매일 나타나는 무가치감 또는 과도하거나 부적절한 죄책감을 느낌

⑧ 거의 매일 나타나는 사고력이나 집중력 감소 또는 우유부단함

⑨ 반복적인 죽음에 대한 생각, 구체적인 계획 없이 반복되는 자살 사고, 또는 자살 시도나 자살 수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우리는 아직도 심리적인 질환에 대한 이해가 낮다. 그래서 증상이 생긴 친구에게 정신 차리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것은 정신장애에 관한 무지에서 오는 말이라는 말에 독자도 반성을 한다. 그것이 이들에게 얼마나 상처를 줄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알게 된 사실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생은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는 말에 새삼 공감한다.

 


 

저자가 책머리에 쓴 「프롤로그」를 통해 우울증에 관한 공감을 가질 수 있게 됐고, 의학적 지식도 늘었다. 저자가 진정성 있게 쓴 이 부분은 두 번이나 거듭 읽었다. 저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살고 싶었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며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에 이렇게 무너질 순 없었다.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치료와 약물도 점점 임계치를 드러내며 올라오는 감정선을 제어하기 힘들어질 무렵 스스로 길을 찾아야 했다. 술로 지새우든지, 수면제를 늘리든지 등의 방법도 그중 하나의 길이었다. 멀쩡히 살던 내가 이렇게까지 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나라 굴지의 경제 언론사에서 7년간의 직장생활. 그리고 갑작스런 아버지의 부고로 고향에 엄마를 혼자 덩그러니 둘 수 없다는 생각으로 택한 귀향! 어쩌면 그때부터 감정의 골이 켜켜이 쌓여 왔는지도 모르겠다. 장사해보겠다며 3년 차에 접어든 돈가스 장사와 한 번의 결혼과 이혼도 앞선 감정의 고름에 불을 지핀 것만 같다. 장사를 시작하고부터는 집, 일터, 잠으로 이어지는 쳇바퀴의 연속이었다. 책을 읽지도, 글을 쓸 수도, 운동할 수도, 잠잘 수도 없던 시간들이 휑하니 지나갔다. 어제 세상을 떠난 그 누군가에겐 너무나 소중했을 하루하루를 나는 이렇게나 무기력하게 쓰다 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멍한 상태를 안고 나는 정신과를 찾아갔다."

 


 

오늘 하루 아무것도 못하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써 내려간다. 웬걸, 요 며칠 진척이 없던 글도 참 잘 써진다. 이렇게나 간사하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올 무렵, 나는 얼마나 처연해질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가족과 날 지탱하던 주위 몇몇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 마지막 내 마음을 전할지에 대해 말이다.

암 말기 시한부 진단(2개월)을 받고 투병 중인 ‘아시아의 별’인 보아 오빠 권순옥 감독. 그는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왜 나에게 이런 꿈에서나 볼 법한 일이 나타난 건지 믿을 수 없지만 잠에서 깨어나면 언제나 현실이다.”라며 자책했다. 그들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까지 아들을 찾으며 어두운 중환자실서 눈물을 머금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마음도 말이다.(p.113)

 

잠든 동안 꾸는 꿈은 참 기묘하다. 현실에서 간절히 원하는 바를 이뤄주기도 하고 거친 액션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너무 슬퍼 눈물 흘리다 깨기도 하고 출근 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꿈속에서는 출근해 일상을 먼저 보낸 적도 적지 않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데카르트와 같은 유명한 학자도 꿈에 관한 연구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들에게 꿈은 사유의 대상이었는지, 신의 어떤 놀음 중 계시였는지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지만, 연구적 개입 자체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라는 이상적 진리는 현실보단 꿈 안에서만 통용되는 표상이 아닌가 싶다.(p.181)

 

저자 : 임기헌

 

통계학, 경영학, 언론학을 공부하고 경제 신문사에서 증권부, 해외 금융팀을 두루 거쳤다. 앞서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현재는 고향으로 돌아와 개인 장사하며 글을 쓴다. 1년 전부터 우울증을 앓으며 ‘사랑하는 섬’ 제주도에서 한 달을 보내며 책을 집필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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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 몰랐던 일본 문화사 - 재미와 역사가 동시에 잡히는 세계 속 일본 읽기, 2022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도서
조재면 지음 / 블랙피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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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학창 시절 일본은 우리 대한민국을 무력으로 짓밟은 나라로 배웠고, 실제 강점한 후 36년간 잔인할 정도로 많은 그들이 행한 증거들을 제시한 책을 읽고 자랐다. 당시 어려운 시절에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 하신 분들을 애국지사, 항일투사라고 배웠다. 그것은 역사의 정당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책과 선생님들이 가르친 대로 '항일'과 '반일'이 머릿속 깊이 박혔다. 그들의 우리나라 강제 합병도 불법이고, 그들이 식민지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우리 민족은 점점 더 악랄한 수탈과 억압에 시달렸다.

식민지 정책도 서구 열강들의 세계적인 흐름을 뒤따라 배워 시행한 것은 나중에 좀더 자란 후에 배웠다. 우리 역사 교과서에는 미국이나 중국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부분이 일본은 우리의 '철천지 원수'라는 사실을 가르쳤다. 그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았고, 일본은 우리가 밟고 일어서야 할 존재였다. 이웃나라란 개념은 없었다. 임진왜란 역시 그들의 야욕에서 비롯된 것은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배워 알고 있는 사항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약했던 국력과 내부적 갈등에 대한 부분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대학에 가서 하나 둘씩 한일 강제합병이나 임진왜란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을 배울 무렵부터는 일본은 우리가 밟고 넘어서야 할 국가였다. '극일'의 대상이었고 '지일'의 이유였다. 그래서 그들에겐 어떤 동정심도 없었고, 그들의 사정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일본이라면 무조건 적이었다. 이런 감정들은 스포츠 경기에서 극력하게 드러났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국권 강탈뿐만 아니라 위안부, 강제징용 등 우리에게 행한 만행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실들이 생각할수록 적개심만 커져갔다. 다른 나라들은 이웃끼리 싸우다가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다시 서로의 이익을 위해 힘을 합치기도 한다는 사실은 세계사를 배울 때부터 수많은 책들로부터 지식을 얻었다. 그런데 왜 일본은 가까워지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이 잘못한 부분에 대한 사과도 하지 않고, 반성도 없는 일본이 우리의 적개심을 더욱 부채질할 뿐 우리와 선린 관계를 맺을 의지가 없는 것으로 읽을 수 있을 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도상 거리는 가깝지만 심리적 거리는 한없이 먼 일본으로 지금까지 마음속의 응어리로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미디어조차 일본을 소개할 때 ‘감정’을 싣는다. 배울 점은 없이 비난할 거리만 가득한 미디어 속 일본 이야기를 접하는 사이, 역사와 외교 문제에 대한 경계심만 남고 이웃 나라 문화를 알아가고자 하는 의지는 나날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극일'을 앞세워 '지일'을 한 것이 문제일까. 그들은 세계적으로 선진국으로 대우받고 있는 것은 단순히 돈 많이 벌어 잘살기 때문일까. 이런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란 생각과는 다르게 그들의 언행은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을 버릴 수 없다. 세계와의 상호성이 더욱 요구되는 시대에 이렇게 두 나라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멀어질 수밖에 없을까? 당연한 의문이 생긴다.

 


 

이 책 『은근 몰랐던 일본 문화사』는 미디어가 주는 편협한 정보에서 벗어나 세계를 바라보는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썼다고 저자는 밝힌다. '무조건' 적대적일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아야' 감정이나 피해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주장엔 이의가 없다. 독자가 이 책을 읽기로 선택한 이유다. 과거로부터 비롯된 편견과 선입견을 접고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일본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를 폭넓게 다루고자 했다고 저자는 「시작하는 글」을 통해 밝힌다. 저자는 우리 국민 감정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이 때문인지 "무턱대고 일본을 비난하지도, 그렇다고 무분별한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간혹 잔인한 사건이나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트린 대형 사고가 등장하지만, 이는 일본 사회의 문제점인 동시에 일본을 고민하게 하고 또 진보하게 만든 사건으로서 소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오히려 이런 사건들이 벌어졌던 사회를 보여주면서 독자들에게 타산지석으로 삼기를 원하고 있다. 일본 사회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해왔고, 비슷한 사건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일본 헌법엔 군대를 두지 않겠다는 ‘평화조항’이 있다?”, “일본 국회엔 좀비도 있고 소도 있다고?”, 등의 글들은 독자의 머릿속의 감정을 다소나마 누그러뜨리는 데 한몫을 한다.

 


 

저자는 반문한다. 우리는 그저 일본을 역사에 대한 반성이 부족한 나라, 우리 땅 독도를 자꾸 자기네 것이라 우기는 나라라고만 여기고 미워하면 끝일까? 저자는 답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 문화론의 고전 『국화와 칼』도 이미 출간된 지 수십 년이 흘렀다. 우리는 과거의 일본은 잘 알지만 현대의 일본은 잘 모른다. 세계와의 상호성이 더욱 요구되는 시대, 현대의 일본을 안다는 건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똑바로 마주하는 일이다. 이 책은 일본의 근현대를 뒤흔들었던 흥미로운 사건을 중심으로 우리가 일본에 대해 알고 있던 지식을 새롭게 업데이트해준다.

가령 갑작스러운 쓰나미에도 생존율 99.8%를 기록하게 했던 어느 방재 교육의 힘, 부족한 지방 재원 확보를 위해 마련한 ‘고향세’라는 독특한 제도, 사회보장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낸 ‘인간재판’ 등 우리가 몰랐던, 그러나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참고해도 좋을 유익한 내용이 가득하다. 저자는 교토 리츠메이칸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하며 경제, 역사, 지리 등을 모두 전공한 검증된 일본통으로서, 이 책에서 법,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폭넓게 아우르며 일본의 다채로운 면모를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에서 소개하고자 했다. ‘혐오’로만 가득 찬 미디어 속 분위기 때문에 일본이 궁금했지만 왜곡된 정보밖에 얻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이 갈증 해소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도 경제성장기에 미나마타병 등 심각한 공해병을 앓아온 나라,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인 일본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다. 그렇다면 쓰나미가 와도 가족은 찾지 말라고 가르치는 나라, ‘죽음’에 관심이 많아 장례식 때 불경을 읽는 로봇까지 개발한 나라, 빚이 1조도 아니고 1경이 넘는 나라라는 사실은 알고 있는가. 이 책 『은근 몰랐던 일본 문화사』는 일본 사회를 뒤흔들었던 다양한 사건 사고를 마치 뉴스 소식처럼 생생하게 전한다.

핵과 원자력의 위험성을 피부로 깨닫게 하는 제5후쿠류마루 사건이나 도카이무라 JCO 방사능 누출 사고, 매뉴얼의 나라 일본에서 벌어졌던 최악의 열차 사고인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 차별에 반대하며 일어났던 일본 최초의 인권 선언인 수평사 선언, 존속살인죄가 위헌임을 이끌어냈던 도치기현 친부 살인 사건까지, 교과서에서는 본 적 없는 ‘진짜 일본’ 이야기가 실감 나게 펼쳐진다. 또한 이 책은 일본 하면 떠오르는 ‘버블경제’, ‘오타쿠’, ‘황실’, ‘원자력’ 등 30여 가지 핵심 키워드와 함께 현대 일본을 풀어내고 있어, 역사서를 즐겨 읽는 성인부터 세계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길러야 할 청소년까지 누구든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3년간 인기 교양 팟캐스트 〈조재면의 일본연구소〉를 운영한 저자는 스토리에 힘을 불어넣는 특유의 해설로 유튜브만큼이나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에도 시대, 헤이안 시대 등 역사 순으로 일본을 읽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으로 최대한 쉽고 가볍게 이웃 나라 일본을 여행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책에 따르면 일본의 현재는 우리나라의 과거 및 미래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일본의 버블경제 시기 이야기는 현재 우리나라의 부동산 호황의 위험을 떠올리게 하고, 고령화 문제에서도 두 나라는 닮은 구석이 많다. 심지어 초고령 사회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근래 출산율은 훨씬 더 낮을 정도.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한국보다 앞서 여러 사회문제를 겪어온 일본을 제대로 알면 다가올 미래에 더 현명하게 대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좋은 대처는 본받고, 잘못된 대처는 반면교사 삼아 나아갈 수 있다는 것. 2016년 경주 지진, 2017년 포항 지진 등을 겪으며 익숙하지 않은 사건들을 조금씩 맞닥뜨리고 있는 우리가 일본의 방재 교육 등 재난 대처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다.

이 밖에도 두 나라의 차이를 발견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우리나라의 백정과 달리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사회적 차별에 시달리는 일본의 부라쿠 이야기나 세습되는 일본의 정치판 이야기, 한국의 MZ 세대와 다른 성향을 보이는 일본의 유토리, 사토리 세대 등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세계의 다양성을 깨닫고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통찰하게 된다. 이 책은 한국과 일본, 나아가 세계 속 두 나라를 연결 지어 생각해보게 돕는다. 세계 평화와 식민지배 시대의 반성을 담은 ‘헌법 9조 평화주의 조항’을 둘러싼 일본 내의 논쟁을 살펴보기도 하고, 전쟁 배상금 차원에서 시작된 일본의 국제 공헌을 알아보기도 한다. 이 책을 읽을수록 세계는 결국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같은 종류의 고민을 거쳐 진보해나가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르지만, 보통 의사방해라고 하는 '우설전술'과 '우보전술'이 있습니다. 우설전술이 일본에서 인식하는 필리버스터인데요. 장시간 연설을 통해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일본 국회는 연설이나 답변의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의장이 제지하거나 배제 등의 명령을 내리므로 실제로 큰 효과는 없습니다. (중략) 우보전술은 말 그대로 소걸음 전술입니다. 일본 국회에서는 의원 5분의 1 이상이 요구할 경우 기명 투표를 해야 합니다. 원래는 버튼을 눌러 투표하지만 기명 투표의 경우에는 직접 단상에 올라가서 투표를 해야 하는데요. 그때 소수파가 바로 투표하지 않고 매우 느리게 이동하는 것을 우보전술이라고 합니다. 10~20미터도 채 되지 않는 거리를 몇 시간에 걸쳐서 이동하기도 합니다. 특히 1992년 자위대가 해외로 처음 파견되었던 PKO협력법 체결 때에는 특별위원회장이었던 시모조 신이치로에 대한 문책 결의로 13시간 8분 동안 소걸음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 「입법부 / 일본 국회에는 좀비도 있고 소도 있다?」 중에서

 

저자 : 조재면

 

일본 교토 리츠메이칸대학교 국제관계학부를 졸업하였으며 현재 일본 유학시험인 EJU 전문강사로서 꾸준히 유학생을 배출해오고 있다.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역사를 아우르는 종합과목을 가르치며 오프라인 강의 전 타임 마감 신화를 기록한 명실상부 1타 강사이다. 수험생들에게 매년 업데이트되는 지식을 전하는 만큼 최전방에서 현대 일본의 트렌드를 다루고 있다. 3년간 팟캐스트 채널 〈조재면의 일본연구소〉를 운영하며 미디어나 교과서는 알려주지 않았던 ‘진짜 일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편견을 만들지 않는 교육을 지향하며, 미래의 한일관계의 가교를 키운다는 생각으로 세계 속 일본의 다양한 모습을 왜곡 없이 소개하는 것이 목표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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