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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싫어 떠난 30일간의 제주 이야기
임기헌 지음 / 커리어북스 / 2021년 12월
평점 :
우울증은 갑자기 찾아오는 병이라고 한다. 우울증을 앓다 회복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독자가 직접 들은 말이다. 흔히 병은(바이러스 감염병 제외) 걸리기 전에 전조 증상이란 게 있다는 것이 보통의 의학 상식이다. 이 전조 증상을 잘 살펴 현명하게 대처하면 병을 피해갈 수 있다는 민간의 믿음은 사실이 아닌 듯하다. 의학자 및 의사들도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일부 병은 전조 증상 없이 바로 올 수도 있다는 것이 공통의 의견인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우울증 역시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전조 증상이 없는 것 같다.
경험한 지인의 경우 어느 날 자고 일어났을 때 무기력함이 다른 날에 좀 심하게 느껴져 하루 결근한 후 조금 쉬면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고 잘 쉬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고 어쩔 수 없이 출근은 했지만 무기력증이 몸을 짓누른 상태가 계속됐다고 한다. 처음엔 과로에 의한 것으로 자가 판단하고 영양제도 먹어보고, 또 이른바 '보약'도 먹어봤지만 회복 증세가 없어 몇 달 고생하다 병원에 찾아갔다고 한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을까? 내과 의사는 큰 병원에 가서 검진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대학 병원에서 진단 검사를 받은 결과 특별한 내과 소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고민하다가 할 수 없이 신경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상담을 했다가 우울증이 깊진 않지만 여러가지 증세를 종합해 진단과 처방을 받아 치료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 지인의 경우 무기력증이라는 과로에서 오는 심한 무기력증이 전조 증상이라고 할 순 있지만 일반인들은 이 정도로는 잘 알아채지 못한다. 다행히 지인은 증세가 심각할 정도는 아니라서 출퇴근도 정상적으로 하고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의사의 지시대로 꾸준히 했다고 한다. 지금은 일반인과 거의 다름이 없는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감사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우울증 환자들은 심한 경우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라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우울증의 원인 중의 하나가 스트레스라고 하니 현대인들은 누구나 우울증에 노출돼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 끔찍한 일이긴 하다.
특히 2년 전부터는 코로나로 인한 우울증(코로나 블루)도 심했다고 한다. 코로나가 지속됨으로써 코로나 레드(분노조절장애), 코로나 블랙(극단적 선택) 등으로 진전된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로 표현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 『죽기 싫어 떠난 30일간의 제주 이야기』의 저자 임기헌도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며 우울증이 갑자기 찾아왔다고 한다. 이런 저런 방법으로 고쳐보려 했지만 잘 나가는 직장 생활도 접고 옛말로 '요양차' 제주로 갔다. 직업이 기자였기 때문인지 치료 과정을 일기 식으로 남겼던 것 같다. 30일이란 한시적 체류지만 제주와 함께 저자의 우울증 치료는 어느 정도 치유되지 않았나 싶다.
우울증 진단을 의사로부터 받았을 땐 인생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저자 역시 그렇게 허망하게 자신의 삶이 완전히 무너지는 느낌이었고, 마음을 가다듬어 "이렇게 무너질 순 없다"는 각오로 치료를 시작한 듯하다. 저자는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멀쩡히 살던 내가 이렇게까지 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어제 세상을 떠난 그 누군가에겐 너무나 소중했을 하루를 나는 이렇게나 무기력하게 쓰다 버린 꼴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 끝에 정신과를 찾았다고 하니 정신과의 병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기피하고 감추는 경향이 있다. 아마 사회적 눈이 겁이 나서일 것이다.
정신적인 병은 유전적이고 못 고치는 병이라고 인식하는 한 사회에서 조직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를 꺼려하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그래서 친한 친구들의 반응은 '못 믿는 것'이다. 엊그제 멀쩡하며 같이 웃고 같이 울던 친구에게 그런 병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이다. 우울증을 고백한다면 친구들의 반응은 대체로 같을 것이다.
“나도 우울해! 인생은 원래 우울한 거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
“뭔 개소리야? 살기 편하니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거야! 사는 게 버거우면 그런 생각할 시간이 어딨어?”
이 책을 보면서 우울증의 판단을 자신이 내려서는 안 되는 것이란 것도 처음 알았다. 정신과 의사와 임상심리사가 참고하는 DSM-5에 따르면 우울증은 아래 증상 가운데 5가지 이상이 2주 연속 지속되었을 경우에 진단되는 질병이다.
① 하루 중 대부분 거의 매일 지속되는 우울 기분에 대해 주관적으로 보고(예, 슬픔, 공허감)하거나 객관적으로 관찰됨(예, 눈물 흘림).
② 거의 매일 하루 중 대부분 모든 일상활동의 흥미나 즐거움이 뚜렷하게 저하됨
③ 체중 조절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미 있는 체중의 감소(예, 1개월 동안 5% 이상의 체중 변화)나 체중 증가, 거의 매일 식욕의 감소나 증가가 있음
④ 거의 매일 나타나는 불면이나 과다수면
⑤ 거의 매일 나타나는 정신운동 초조나 지연
⑥ 거의 매일 나타나는 피로나 활력의 상실
⑦ 거의 매일 나타나는 무가치감 또는 과도하거나 부적절한 죄책감을 느낌
⑧ 거의 매일 나타나는 사고력이나 집중력 감소 또는 우유부단함
⑨ 반복적인 죽음에 대한 생각, 구체적인 계획 없이 반복되는 자살 사고, 또는 자살 시도나 자살 수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우리는 아직도 심리적인 질환에 대한 이해가 낮다. 그래서 증상이 생긴 친구에게 정신 차리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것은 정신장애에 관한 무지에서 오는 말이라는 말에 독자도 반성을 한다. 그것이 이들에게 얼마나 상처를 줄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알게 된 사실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생은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는 말에 새삼 공감한다.
저자가 책머리에 쓴 「프롤로그」를 통해 우울증에 관한 공감을 가질 수 있게 됐고, 의학적 지식도 늘었다. 저자가 진정성 있게 쓴 이 부분은 두 번이나 거듭 읽었다. 저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살고 싶었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며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에 이렇게 무너질 순 없었다.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치료와 약물도 점점 임계치를 드러내며 올라오는 감정선을 제어하기 힘들어질 무렵 스스로 길을 찾아야 했다. 술로 지새우든지, 수면제를 늘리든지 등의 방법도 그중 하나의 길이었다. 멀쩡히 살던 내가 이렇게까지 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나라 굴지의 경제 언론사에서 7년간의 직장생활. 그리고 갑작스런 아버지의 부고로 고향에 엄마를 혼자 덩그러니 둘 수 없다는 생각으로 택한 귀향! 어쩌면 그때부터 감정의 골이 켜켜이 쌓여 왔는지도 모르겠다. 장사해보겠다며 3년 차에 접어든 돈가스 장사와 한 번의 결혼과 이혼도 앞선 감정의 고름에 불을 지핀 것만 같다. 장사를 시작하고부터는 집, 일터, 잠으로 이어지는 쳇바퀴의 연속이었다. 책을 읽지도, 글을 쓸 수도, 운동할 수도, 잠잘 수도 없던 시간들이 휑하니 지나갔다. 어제 세상을 떠난 그 누군가에겐 너무나 소중했을 하루하루를 나는 이렇게나 무기력하게 쓰다 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멍한 상태를 안고 나는 정신과를 찾아갔다."
오늘 하루 아무것도 못하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써 내려간다. 웬걸, 요 며칠 진척이 없던 글도 참 잘 써진다. 이렇게나 간사하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올 무렵, 나는 얼마나 처연해질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가족과 날 지탱하던 주위 몇몇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 마지막 내 마음을 전할지에 대해 말이다.
암 말기 시한부 진단(2개월)을 받고 투병 중인 ‘아시아의 별’인 보아 오빠 권순옥 감독. 그는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왜 나에게 이런 꿈에서나 볼 법한 일이 나타난 건지 믿을 수 없지만 잠에서 깨어나면 언제나 현실이다.”라며 자책했다. 그들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까지 아들을 찾으며 어두운 중환자실서 눈물을 머금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마음도 말이다.(p.113)
잠든 동안 꾸는 꿈은 참 기묘하다. 현실에서 간절히 원하는 바를 이뤄주기도 하고 거친 액션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너무 슬퍼 눈물 흘리다 깨기도 하고 출근 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꿈속에서는 출근해 일상을 먼저 보낸 적도 적지 않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데카르트와 같은 유명한 학자도 꿈에 관한 연구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들에게 꿈은 사유의 대상이었는지, 신의 어떤 놀음 중 계시였는지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지만, 연구적 개입 자체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라는 이상적 진리는 현실보단 꿈 안에서만 통용되는 표상이 아닌가 싶다.(p.181)
저자 : 임기헌
통계학, 경영학, 언론학을 공부하고 경제 신문사에서 증권부, 해외 금융팀을 두루 거쳤다. 앞서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현재는 고향으로 돌아와 개인 장사하며 글을 쓴다. 1년 전부터 우울증을 앓으며 ‘사랑하는 섬’ 제주도에서 한 달을 보내며 책을 집필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