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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괜찮냐고 시가 물었다 - 시 읽어주는 정신과 의사가 건네는 한 편의 위로
황인환 지음 / 웨일북 / 2021년 12월
평점 :
정신과 의사와 시(詩)는 잘 어울린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정신과 의사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또 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둘 사이의 연결은 자연스럽다. 정신과 의사는 사람들의 정신과적인 병을 치료한다. 정신과적 치료란 사람의 정신이 혼란을 겪을 때 이를 약과 심리 상담을 통해서 치료하는 일이다. 정신적 혼란이란 의사들이 말하는 우울증, 공황장애, 조현증 등 모두 정신적 혼란을 느끼는 증세를 말한다. 이는 정신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혼란을 일으키는 일도 포함된다.
아마 우리 뇌속에 감정뇌가 있다는 점을 들어 감정 혼란도 뇌의 신경 이상으로 분류하는 듯하다. 이에 비해 시는 우리의 정신을 맑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시를 굳이 쓰는 사람이 아니고, 읽는 것만으로도 시는 우리의 마음이나 정신을 맑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시를 읽어본 사람들은 많은 사람이 독자의 주장에 동의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시는 우리의 영혼까지도 맑고 순수하게 정화시키는 기능도 한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만큼 시를 쓴 사람의 영혼에 다가가는 일이라는 반증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시의 이 같은 기능은 정신과 의사가 시를 통해 정신과적 병을 고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을 뒷받침해 준다고 믿는다.
이 책 『마음은 괜찮냐고 시가 물었다』의 저자 황인환은 정신과 의사다. 저자는 시의 속성을 잘 알고 있어 정신과 환자를 치료하는 데 시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아마 치료하면서 느낀 경험적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한 것으로 이해된다. 물론 모든 문학 작품은 우리의 얽히고설킨 마음이나 정신을 풀어주고 정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 중에서도 시는 짧은 시어의 조합을 통해 사물과 우리 환경, 그리고 그 속에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우리를 형상화시켜 표현한다. 그 시어들에 대해 읽고 생각하는 동안 시인의 시 속의 의미를 풀어내고, 우리 마음이나 정신은 정화된다. 특히 살면서 느끼는 정신적 혼란이나 마음의 흐트러짐을 잘 수습해준다. 맑고 깨끗한 영혼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시가 정신과 의사의 치료 방법과 닮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치료와 시의 연결은 「프롤로그」를 통해 잘 드러난다.
"시와 마음은 많이 닮았습니다. 모두 가만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으니까요. 시는 짧지만, 그렇다고 빠르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긴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단편적인 기분보다 안에 더 많은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마음은 복잡하고 오묘하여 시처럼 가만히 들여다보아야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는 우리의 인생과도 닮았습니다."(p.8)
책에 따르면 “오늘 기분이 어때?” 간단한 질문이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의 속도에 맞추다 보면 나의 마음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일쑤다. 무심하게 일상을 살아가다 문득 치밀어오르는 감정은 낯설고 또 당황스럽기만 하다. 외로울 땐 무엇을 하는 게 좋을지, 인간관계에서 찾아오는 실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번아웃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우리는 우리의 삶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은 마음의 문제에 너무 소홀한 것인지도 모른다.
‘시 읽어주는 정신과 의사’ 황인환 원장은 마음을 잃은 사람들에게 시를 읽을 것을 권한다. 해결하기 힘든 내면의 심연에 대해 오래도록 고민해 온 황인환 원장은 때로는 시 한 편이 복잡하게 얽힌 내면의 혼란에 대한 정답이 되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시는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방어기제를 마주하게 하고, 외롭고 지친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러다가 뜻밖에도 무기력에서 우리를 건져 올리고, 피해사고에 빠진 왜곡된 마음에 냉철한 조언을 건네기도 한다. 이 책은 자신의 마음속 세상에서 길을 잃은 이에게 건네는 마음 안내서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진다면, 우선 “오늘 마음이 어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건 어떨까. 질문하기가 망설여진다면, 또 대답하기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유난히 지치고 피로했던 하루의 끝, 스스로에게 시를 읽는 시간을 선물할 수 있다. 이 책이 첫걸음을 떼게 해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저자가 왜 ‘시 읽어주는 정신과 의사’가 되었을까? 궁금하다. 그는 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많은 매체 중 시를 선택한 것일까? 어떠한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순간,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것 같은 순간이 있다. 자칫 타인의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또 나의 아픔을 전달할 방법이 없어 홀로 동떨어진 기분을 느끼곤 한다. 이럴 때 시를 읽으면 시인 및 시의 화자, 그리고 시를 읽은 많은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은 차가운 사회를 살아가는 데에 든든한 안전망이 되어준다. 무엇보다 시는 압축되어 기억하기 쉽다는 편의성 또한 갖추고 있다. 파편적으로 기억되는 소설이나 영화와 달리, 시는 필요할 때마다 전문을 꺼내어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자신의 감정이 낯설고, 관계가 힘들고, 삶이 막막한 이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말을 건네고자 한다. 1부는 외면해 왔던 현재의 감정을 마주하도록 하고, 2부는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 건강한 관계를 맺는 방법을 탐색한다. 그리고 마지막 3부는 마음의 덫에서 벗어나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가 현재의 감정으로 이야기를 열어가는 것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모든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 불안과 무기력부터 이별과 번아웃, 피해의식까지 삶의 힘든 국면에서 언제든 꺼내어 마음을 치유하도록 하는 상비약 같은 시를 담았다. 모두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음을 지켰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시와 전문적인 심리 용어를 자연스럽게 연결해 마음을 읽어내는 것을 넘어 그 해결책까지 제시한다. 마치 시와 심리 개념이 질문과 답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누는 듯 읽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해 늘 상대의 마음을 시험하고, 결국 떠나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계속 버림받는 상황에 두는 이들이 있다. 이는 발달과정에서 대상영속성과 대상항상성을 제대로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상영속성은 눈앞에 보이던 물체가 사라진다고 해서 그 존재가 소멸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능력을, 대상항상성은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 존재하며, 더 나아가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능력을 의미한다. 대상항상성과 대상영속성을 잘 발달시킨 이들은 관계에서의 좌절을 보다 성숙하게 받아들이고, 세상을 우호적으로 인식하며 타인을 신뢰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어렸을 때 제대로 애착이 형성되지 못한 이들에게 상대가 자신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미래의 확정적인 사실로 존재한다. “내 집은 왜 종점에 있냐”고 자신의 상태를 단정하며, “그러니 모두/내게서 서둘러 하차하고 만 게 아닌가”라고 한탄하는 시의 화자처럼 말이다.(박소란, 「주소」) 저자는 이들에게 “상류로 거슬러오르는 물고기떼처럼”(이성복) 과거의 아픔이 현재를 결정하도록 하지 않는 의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렇듯 심리학 이론과 시는 딱딱하게 굳은 마음을 다른 방식으로 어루만진다. 가장 따뜻한 텍스트인 시와 가장 따뜻한 학문인 심리학의 만남에는 기대 이상의 울림과 효용이 있다.
이 밖에도 김소연의 시에서 늘 괜찮다고만 하는 억제의 방어기제를 발견하고, 우루과이 작가 마리오 베네데티의 시에서 ‘무주의 맹시’에 빠져 행복을 인지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마주한다. 윤동주의 시는 번아웃증후군에 빠져 일상의 존재감을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박두순의 시는 완벽주의에서 벗어나 메타인지를 인지할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시가 마음의 안부를 물으면 심리학 개념은 그 마음이 가야 할 곳을 제시한다. 그 대화의 끝에서 일상을 지켜나갈 힘을 가지게 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문제가 해결되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끌어안고 나아갈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요?”,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요”, “불만족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을까요?” 고민을 상담할 때, 대부분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기억을 제거하고 삶의 악조건을 극복하는 법을 묻는다. 이에 시는 대답한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정호승, 「수선화에게」), “그 씨 한 톨마저 없으면 우리는 쓰러지지/자신을 설명할 길이 없지”(이병률, 「비밀이 없으면 우리들은 쓰러진다지」), “너의 자리는/이 세상 모든 곳에 있다”(메리 올리버, 「기러기」). 결국 부정적인 감정과 기억마저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어떠한 삶의 조건에서도 발 디디고 설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저자가 책을 통해 건네는 조언도 이와 비슷하다. 그는 어떠한 마음도 극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모든 감정을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로 삼는다. 늘 최선의 선택을 내리기 때문에 삶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선택을 내려도 최선을 다하는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느끼는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는 우리의 마음과 닮아 있고, 시를 읽어내는 과정은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도 비슷하다. 속도와 생산성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호하고 정답이 없는 시를 어렵다고 느낀다. 시의 느슨한 문장을 곱씹으며 의미를 찾는 것을 점점 더 꺼리게 된다. 이는 우리가 모호한 마음을 낯설게 느끼고, 삶의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시의 여백에 의미를 채워 넣는 일은 불확실한 마음을 끌어안고 위태로운 삶을 건너가기 위한 연습이 된다. 시를 읽으면 이상하고도 애틋한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고, 삶의 다양한 변수를 받아들일 수 있다. 성가신 마음을 외면하거나 해결하려 애쓰기보다 응시하고 이해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마음과 더불어 잘 살아낼 수 있다. 우리에게 한순간 부정적인 감정이 걷히고 삶의 조건이 개선되는 마법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을 덮을 때쯤, 마음에 갇히고 삶의 조건에 휘둘렸던 이전의 삶에서 벗어나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한 변화의 시작이라고 저자는 믿는다.
하지만 기꺼이 감내하여 순서를 바꿔보려 합니다. 모호하거나 어두운 것들을 억지로 외면하지 않고 마음 한편에 둔 채로, 불편함을 조금은 느끼며 일상을 살아내 보려 합니다. 눈앞에 놓인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걸어가다 보면 또 다른 어떤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 한편에 놓아두었던 그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기도 하고, 뜻밖에 해결되기도 하고,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되기도 하지 않을까요. 그럴 수 있는 나의 건강함을 믿어보면 좋겠습니다.
- 「에필로그 : 시와 같은 마음으로」 중에서
저자 : 황인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여의도힐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대표원장으로 있다.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효율성을 추구하고 정답을 강요하는 이 세상 속에서, 모호하고 정답이 없는 마음을 다루는 일을 하고 있다. 해결하기 어려운 마음의 문제를 안고 있는 이들이 그의 병원을 방문한다. 그중에서도 지역적 특성상 바쁜 일상에 지쳐 자신을 돌아보는 데에 소홀해진 2030 직장인들이 많다. 무기력, 우울, 외로움 등을 호소하며 찾아오는 이들에게 그는 답을 제시하기보다 함께 답을 찾아가고자 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려 하기보다, 이에 잘 대처할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을 키울 것을 제안한다.
시를 읽는 것은 삶의 불확실성에 익숙해지는 연습이 된다. ‘시 읽어주는 정신과 의사’로 1년 넘게 《정신의학신문》에 글을 연재한 이유이다. 시와 같은 환자들의 마음을 읽으며 오늘도 진료실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짧지만 오랜 시간을 들여 읽어야 하는 시처럼, 사람들의 마음도 오래도록 들여다보려 한다.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기 위해 대한정신건강재단 상담의, 코로나생활치료센터 심리지원단 지정 전문의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정신의학신문》 운영진으로 참여하고 트라우마 치료법 중 하나인 EMDR 트레이닝 코스를 수료한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