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선택을 강요하는가? : 여성, 엄마, 예술가 사이에서 균형 찾기 - What Forces Women Artists to Give Up: Balancing Being a Woman, Mother, and Artist
고동연.고윤정 지음 / 시공아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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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누가 선택을 강요하는가?』는 대한민국 현대 미술계의 여성 작가들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짚어내고 있다. 예술가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여성, 그리고 엄마와 예술가의 세 가지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우리나라 미술계 여성 작가의 분투기로 요약 가능하다. 척박한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엄마이기 때문에 당하는 불이익과 편견, 곱지 않은 시선 등 많은 것들과 싸워야 했다. 이에 1, 2, 3세대 화가 11명이 각 세대를 대표해 인터뷰에 응하고 그들의 인생 역정, 화가로서의 길, 또 엄마 화가의 거친 삶을 털어놓는다. 이 책이 현대미술 100년의 우리 대한민국 미술계에 확실한 변곡점을 가져올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그동안의 분투 과정을 가감없이 이 책에 녹여냄으로써 전환점을 이룰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나 비엔날레에 가면 떠올려 봐요. 이 중에 여성 작가는 몇이고, 몇 명이나 아이를 낳았는지. 육아와 창작을 함께한다는 건 목에 칼이 들어오는 듯한 힘든 경험이니까요.” 육아와 예술 활동을 병행하는 어느 여성 작가의 말은 이렇게 바꿀 수 있다. ‘육아하면서 회사를 다닌다는 건’, ‘육아하면서 공부를 한다는 건’…. 이 책은 여성이면서 엄마이고, 동시에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열한 명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독자들은 여성의 경력 단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결혼’과 ‘엄마’의 역할이 어떻게 작가들의 활동과 연관되는지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여기 실린 생생하고 솔직한 경험담,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그리고 세대를 아우르는 연대는 우리 인간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반증하는 위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여성이면서 엄마이고, 그리고 현직 예술가로 활동 중인 열한 명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여성, 엄마, 예술가라는 세 가지 정체성을 동시에 가진 이들은 드물다. 일을 위해 결혼을 늦추거나(비혼이거나) 아이를 갖지 않거나 혹은 아이나 가정 때문에 활동을 중단한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비단 예술가만이 아니다. 현재도 대다수의 여성들이 육아로 휴직이나 퇴직을 하는 게 씁쓸한 현실이다. 그래서 ‘결혼’과 ‘엄마’의 역할이 여성의 일에 미치는 영향을 단도직입적으로 파고드는 이 책의 파급력은 크다. 열한 명의 작가들은 ‘한국 여성 미술’의 상징과 같은 70-80대 작가들부터 대학에서 여성학을 배우고 여성 미술의 태동을 목격했으며 민중 미술에도 가담했던 50대 작가들, 마지막으로 현재 한참 육아와 작업 활동을 펼치고 있는 40대 작가들까지 다양하다. 저마다 예술을 하게 된 계기, 지향하는 바, 표현 방법은 다르지만 공통점도 많다. 솔직한 경험담과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펼쳐 나간 예술 세계는 독자들로 하여금 바로 나의 이야기라고 느끼게 만들기 충분하다. 또한 어머니, 선배, 친구와 뜨거운 포옹을 나눈 듯한 힘을 준다.

"작가들의 오랜 시간 인고의 세월이 최근의 사회적 변화와 이 책을 통해서 빛을 발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터뷰 과정은 70~80대 선생님들에게는 지나간 이야기를 다듬는 기회가 되었고, 50~60대 작가분들에게는 최근 미투를 통하여 일어난 변화를 반기면서도 '세상'이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하여 기대 반, 우려 반을 표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젊은 40대 작가들에게 N번방 사건이나 미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희롱, 성폭력 사건은 진행형이다."(p.6)

 


 

열한 명의 인터뷰 참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여성, 엄마이자 한국 예술계에서 오래 활동해 온 두 명의 저자는 지금 미술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들을 가감 없이 다루었다. 왜 부부 작가의 작품이 남자(남편)의 이름으로 발표되는가부터 대한민국 사회를 뿌리부터 뒤흔들었던 미투 논란과 그 이후까지 빠짐없이 훑었다. 먼저 부부 작가를 이야기했다. 부부 작가가 서로가 배우자인 사실을 밝히지 않는 이유, 일과 가정 내 역할 분담, 파트너이면서 동시에 경쟁자가 되어야 하는 고충 등을 살펴본다.

두 번째는 여성 작가의 ‘몸’이다. 몸은 실질적이고 상징적인 의미가 있고, 오랜 세월 많은 여성 작가들이 몸을 다루어 왔다. 책에서는 작가의 신체 기관으로써의 몸과 예술적 탐구 대상으로써의 몸을 함께 들여다본다. 세 번째는 여성 작가의 연대다. 과거와 달리 SNS 등 온라인 소통 창구가 다양한 요즘에는 자신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통로가 많아졌다. 저자들은 이것이 꼭 장점으로 작용하는가에 대한 고찰도 논의에 포함시킨다. 마지막으로 미술계 성차별이다. 미투 열풍이 지나갔다고 하지만 고질적으로 존재하던 문제들은 그대로다. 진솔하고 심층적인 인터뷰를 통해 참여 작가들은 현실에 좌절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는 이유를 밝혔다.

 


 

저자들은 참여 작가들의 오래된 기억을 역추적하는 일, 그들의 개인적인 경험을 현재 시점에 맞추어서 유의미한 일로 해석하고 다시금 이야기로 풀어내는 인터뷰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말한다. 여성, 엄마, 예술가라는 세 가지 정체성을 모두 지키고 균형을 찾아 가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엄마라는 사실을 숨기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 자칫 작가의 엄마로서의 경험이 강조되어 작품이 왜곡되어서 해석될 수도 있다.

여성으로 태어나 직업과 모성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고, 필연적으로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역사를 살아온 그녀들은 곧 우리 자신이다. 따라서 자신을 그대로 보여 주는 한편으로 각각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 나가는 이들의 생존 전략에 귀를 기울일 만하다. 여기 실린 작가들뿐 아니라 모든 여성, 인간이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서로 다른 정체성을 지키고 균형을 찾는 데도 이 책은 필요하다. 이 책은 모두 3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들의 뜻으로 세대별로 나눈 것으로 보인다. 1장 「언니들은 아직도 달린다」에서는 윤석남, 박영숙, 홍이현숙이 참여했다. 이들은 한국 현대미술 여성 작가 1세대들이다. 회화는 물론 예술사진, 설치 및 퍼포먼스가 이 땅에서 쉽게 정착됐을 리 만무하다. 더욱이 지난 세기까지는 우리 사회에 유교의 물이 그대로 살아 있을 때이니 오죽했겠는가 생각하면 안타까운 심정도 감출 수 없다.

 


 

2장 「여성의 연대가 시작되다」에서는 정정엽(회화), 황수정·김수진·김성미 등의 이름이 등장한다. 또 진달래(디자인), 김시하(설치) 등이 힘을 보탠다. 이들은 비로소 '연대의 세대'다. 50대 후반의 정정엽과 50대에 막 들어선 ‘공간:일리’, 그리고 ‘사공토크’의 대표 작가, 부부 작가 듀오 진달래의 일원인 작가 진달래, 설치 작가 김시하를 인터뷰했다. 이들은 본격적으로 대학에서 여성학을 배우고 여성 미술의 태동을 목격한 세대다. 동시에 1990년대 말 대안 공간 중심의 한국 미술계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덕을 보았다기보다는 소외되기도 했다. 국내 미술계에서 유학생 위주의 특정 대안 공간이 내세우는 여성 작가들이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했고, 잘나가는 국제적인 스타일과 그렇지 않은 스타일의 구분이 더 극명하게 나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성실히’ 대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대학원 졸업 이후 ‘최전방’ 미술계에서 자리 잡기는 어려워졌다. 따라서 이들은 지난 20여 년간 급변하는 한국 미술계의 상황에서 개인적인 경력 단절과 전통적인 미술 교육의 공백을 몸소 체감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40대 후반을 지나서도 작업을 지속하는 여성 작가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들에게 한국 미술계의 변화가 작가에게 어떻게 투영되었고 이들은 생존을 위해 어떤 전략을 사용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이들 중 대표격인 정정엽에 대해 공동저자는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2018년 고암(이응노) 미술상과 2020년 '올해의 양성 평등 문화인상'에 선정된 정정엽은 한국 여성 미술의 발전 과정을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작가다. 1980년대 민중 미술 운동에 참여했고, 1990년대 이후로는 '팥과 콩'을 주제로 한 회화와 2000년대 설치 작업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을 뿐 아니라 여성미술연구회, 터, 입김 등 국내의 주요 여성 미술 공동체나 모임의 주요 멤버이기도 하다."(p.167)

 


 

3장 「동등하다는 환상 : 말과 행동의 이중성」에서는 1970년대 후반 출생으로 현재 한참 육아와 작업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정직성, 김도희, 조영주, 국동완 작가를 인터뷰했다. 이 여성, 엄마 작가들은 국내 미술계에서 1990년대 후반 대안 공간이 생겨나고, 예술적 매체나 장르가 급격하게 확장되며, 국내 대학에서 여성학 교육이 시작되던 시점에 미술대학을 다니거나 작가의 길에 접어든 세대다. 그러나 여전히 미술계에 계속되는 젠더적 차별을 경험했고 여성, 엄마 작가로서 가정사를 노출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은 않은 세대이기도 하다. 동시에 여성 작가가 성공하기 위해서 결혼이나 육아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성공한’ 동료 여성 싱글 작가의 예를 보면서 뼈저리게 경험한 세대다. 따라서 우리 시대 여성 미술의 의미, 여성성을 다루는 방식, 육아의 의미를 새롭게, 그러나 보다 현실적으로 정의해 가고 있다. 세대가 바뀌면 세상이 달라질 법도 한데 정직성, 김도희, 조영주, 국동완 작가들은 여전히 미술계 내부, 가족, 사회에서 여성 엄마 작가를 향한 차별적인 시선을 안고 산다고 한다. 지잔 5년간 미술계 내에서도 유명 미술관의 기획자, 비평가, 작가의 성폭력이나 성희롱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흐지부지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라는 존재로서 30~40대 육아의 부담을 갖지 않은 동료 여성 작가드에 비하여 시간이나 에너지에 있어서 저돌적으로 맞서기도 힘들다. 이에 다가오지 않은 '동등한' 시대에 대한 염원은 절실하지만 젠더적인 관점에서 '동등한 미술계'라는 미완의 과제는 아직도 30~40대 여성, 엄마 작가를 짓누르고 있다. 정직성 작가에 대한 설명을 잠깐 살펴본다. "2000년대 중·후반 성공한 회화 작가로 통하기도 했던 정직성이 미술 시장에 뛰어든 것은 흥미롭게도 계급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기인한다. 2000년대 초 도시 개발과 자본주의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룬 작가 공동체 '플라잉시티'의 멤버였고, 자본주의 비판이라는 미술계의 거대 담론과 여성 동료이자 엄마, 며느리 작가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미시적인 차별 상황에서 드러나는 모순적인 상황을 몸소 경험했다."(p320)

 


 

이 책을 만들게 된 데는 또 다른 배경이 있어요. 아예 성공하기 위해서 결혼을 미루는 여자 작가들이나 개인적인 삶을 공공의 장소에서 밝히는 것을 꺼렸던 이전 세대와 달리 요새 젊은 작가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육아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하기도 하잖아요. 더 다양하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여성 엄마 작가의 이야기가 공유되더라고요. 육아나 남편과의 관계에 있어 세대마다 다른 이야기들이 구체적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지요.(p.12) - 「들어가는 말」 중에서

 

저자 : 고동연(DONG-YEON KOH)

국내외 아트 레지던시의 멘토, 운영위원, 비평가로 활동 중이며, 2014년부터 국내 미술인의 인터뷰 책을 출간해 왔다. 2017년과 2018년 고양 야외조각축제의 커미셔너를 역임했다. 『응답하라 작가들: 우리 시대 미술가들은 어떻게 사는가?』(2015), 『STAYING ALIVE: 우리 시대 큐레이터들의 생존기』(신현진 공저, 2016), 『소프트파워에서 굿즈까지: 1990년대 이후 동아시아 현대미술과 예술대중화 전략』(2018), 『THE KOREAN WAR AND THE POSTMEMORY GENERATION(한국 전쟁과 후기억 세대: 동시대 미술과 영화)』(ROUTLEDGE, 2021) 등을 썼다.

 

저자 : 고윤정(YOONJEONG KOH)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퍼포먼스 아트를 중심으로 한 《프롬나드런》(2019), 세종문화회관의 《행복이 나를 찾는다》(2020), 《하나의 당김, 네 개의 눈》(2021) 등을 기획했다. 2018년 『퍼포먼스 아티스트 레코딩』으로 한국의 퍼포먼스 아트, 공동체 기반의 예술을 실천하는 젊은 작가들에 대한 작은 비평서를 썼다. 끊임없이 생동하는 동시대 미술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예술가, 큐레이터, 비평가, 전시 공간 등 독립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술계 일원이 자생하는 생태계에 주목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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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가라, 숨 쉬며 그리고 웃으며 - 틱낫한, 그가 남기고 간 참된 깨달음의 노래
틱낫한 지음, 라샤니 레아 그림, 이현주 옮김 / 담앤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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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문장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랑과 지혜의 메시지, 짧지만 여운 긴 문장들을 음미하다 보면 과거 혹은 미래에 얽매여 있던 마음이 어느새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물러 있음을 의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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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가라, 숨 쉬며 그리고 웃으며 - 틱낫한, 그가 남기고 간 참된 깨달음의 노래
틱낫한 지음, 라샤니 레아 그림, 이현주 옮김 / 담앤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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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지구별 '살아 있는 부처(生佛)'로 불리던 틱낫한 스님이 향년 96세로 타계했다. 코로나 팬데믹 만 2년이 지날 즈음이다. 틱낫한 스님은 그렇게 사랑하던 지구별과 지구별 가족들을 두고 홀연히 다른 세상으로 갔다. 지구별 가족들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렇게 스님의 입적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영적 지도자이던 틱낫한 스님은 평생 지구별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로 세계를 변화시키고 전 세계인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이 책 『천천히 가라, 숨 쉬며 그리고 웃으며』는 80여 년 동안 선불교의 승려로 진정한 마음의 평화와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그가 인류에게 남기는 마지막 이야기다. 그 어느 때보다 상처 입고 고통받고 있는 인류와 아름다운 행성 지구별에 대한 사랑과 불안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마음수련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 책은 그가 살아 있을 때 들려주던 메시지를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틱낫한 스님이 이 책에서 말하는 진정한 깨달음이란 우리의 육체가 이토록 아름다운 지구의 일부임에 눈을 뜨는 것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가 겪고 있는 고통에 눈을 뜨는 것이다. 그가 살아 있을 때 인류에게 주던 위로와 격려, 평화를 위한 통찰력, 생명을 위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각고의 노력를 다한 메시지를 그대로 담고 있다.

 


 

책에서 틱낫한 스님은 개인과 세계, 지구 전체는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며, 명상 또한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 고통받는 모든 생명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먼저 나 자신의 고통이 줄어야 다른 이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며 손을 내밀어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고, 자신부터 일깨워야만 다른 이들에게도 깨달음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메시지가 온전히 담겨 있다. 그는 이렇듯 깨달음은 나 개인으로부터 시작되지만, 개인의 깨달음을 통해 집단적 변화를 만들어낼 때 비로소 세상의 변화가 찾아온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경이로운 지구의 일부임을 깨달으며 불안과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다섯 가지 마음다함(Mindfulniss)의 수련법을 제시한다. 경이로운 행성 지구별 여행을 마치고 우리 곁을 떠나간 틱낫한 스님의 마지막 글은 상처 입고 고통받고 있는 지구와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깨달음의 메시지를 선물한다.

독자들은 깨달음이란 무엇일까?를 알기 위해 이 책을 읽는다. 우리가 명상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위해 명상을 실천해보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깨달음과 명상을 개인적인 수준에서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틱낫한 스님이 말하는 진정한 깨달음이란 우리의 육체가 이토록 아름다운 지구의 일부임에 눈을 뜨는 것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가 겪고 있는 고통에 눈을 뜨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나는 붓다께서 진작부터 여기 계신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충분하게 마음을 챙기면 모든 것 안에, 특히 승가 안에 있는 붓다를 볼 수 있다. 당신이 충분하게 마음을 챙기면 모든 것 안에, 특히 승가 안에 있는 붓다를 볼 수 있다. (…) 강물은 틀림없이 바다에 이르겠지만 물방울은 중간에 증발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계시는 붓다를 인식할 수 없는 것이 그 때문이다. 우리가 마음을 챙겨서 하는 모든 발걸음, 모든 호흡, 모든 말들 그대로가 붓다의 나타나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곳에서 붓다를 찾지 마라. 당신 인생의 모든 순간에 마음 챙겨 살아가는 방식, 그 안에 그분이 있다.”(p.35)

갈등과 대립, 분열이 점점 극으로 치닫는 작금의 시대 상황을 생각할 때 올 1월에 전해진 그의 입적 소식은 적지 않은 이들의 가슴에 더욱 깊은 아쉬움을 남겼다. 그런 가운데 지난 2월, 미국에서는 『GO SLOWLY, BREATH AND SMILE』이라는 틱낫한 스님의 신간이 출간되어 화제를 모았다. 이 책은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길어 올린 틱낫한 스님의 사랑과 지혜의 메시지, 그리고 그의 가르침에 깊은 영감을 받아 이를 콜라주 방식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탄생시킨 아티스트 라샤니 레아의 그림을 함께 담았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틱낫한 스님은 라샤니 레아가 그린 “그림의 색깔과 추상적 디자인에 자신의 말을 섞어 놓는 방식”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처럼 독자들은 한 편의 시 혹은 한 곡의 노래 같은 틱낫한 스님의 메시지와 이를 특별한 감각과 개성적인 컬러로 표현한 라샤니 레아의 콜라주를 함께 접함으로써 한층 다양하게 열린 감각으로 참된 깨달음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틱낫한 스님의 문장은 간결하고 소박하다. 그러나 읽는 이의 가슴을 강하게 울리며 마음속 깊은 곳을 파고드는 힘이 있다. 세계 독자들이 그의 저서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가르침은 아직도 수많은 이들의 가슴에 남아 맑고 깊게 울려 퍼지고 있다. 틱낫한 스님은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와 함께 '살아 있는 부처', '영적 스승'으로 불리는 동시에 선불교의 위대한 스승, 세계적인 평화운동가로 꼽혔다. 갈등과 대립, 분열이 점점 극으로 치닫는 작금의 시대 상황에서, 1월에 전해진 그의 입적 소식은 적지 않은 이들의 가슴에 깊은 아쉬움을 남겼다.

마틴 루서 킹은 그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추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베트남에서 온 이 온화한 불교 승려보다 더 노벨 평화상을 받기에 적당한 인물을 알지 못한다.” 그만큼 틱낫한 스님은 자신의 내면에 고요히 타오르는 사랑과 지혜의 가르침을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헌신적으로 전해 왔다. 이 책은 한 편의 시 혹은 한 곡의 노래 같은 틱낫한 스님의 메시지와 더불어 그의 가르침을 특별한 감각과 개성적인 콜라주로 재해석한 라샤니 레아의 작품을 함께 엮은 독특하고 아름다운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1부 「천천히 가라」는 책의 콜라주를 작업한 라샤니 레아가 써 내려간 ‘그린이의 말’로 시작된다. 그녀는 틱낫한 스님을 조금 더 친숙한 호칭인 ‘태이’라고 부르며 그와의 만남을 회상한다. 그녀는 1988년 틱낫한의 말을 삽입한 카드 디자인을 시작으로 계속 여러 전통에서 온 살아 있는 다르마로 카드를 제작해 왔고, 1990년 틱낫한에게서 인터빙 교단에 들어오라는 초대를 받았다.

그녀는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며 피폐하게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한 번에 몇 시간이고 녹슨 피리를 불어주던 태이의 모습, 그의 가르침에 영감을 받아 열정적으로 노래와 시를 썼던 나날들, 그리고 마침내 태이에게 자신의 시를 노래로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일화 등을 기록하며 태이와의 만남을 통해, 그리고 플럼 빌리지에서의 나날들을 통해 자신의 가슴 안에서 ‘무한한 감사’가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녀는 “틱낫한의 지혜로운 말들과 함께 엮어서 여러분과 나누게 된 것이 고맙고 기쁘다”는 소감을 전하며 그의 가르침이 “마음 챙김의 종소리처럼” 되울려 퍼지기를 바란다고 밝히고 있다. 더불어 1부에서는 삶에 대한 관점과 태도, 행복의 바탕을 이루는 방법, 내면의 부드러움으로 인생의 고통을 어르는 법 등 우리가 조금 더 여유로운 걸음으로 삶의 여정을 걸어가라는 그의 가르침을 담았다.

 


 

2부 「숨 쉬며」에서는 시인이자 틱낫한 스님의 저서를 다수 번역한 모비 와렌(Mobi Warren)이 틱낫한의 가르침 중심에 자리 잡은 ‘예술’의 의미를 곱씹는다. 그녀는 마음 챙겨 깨어남과 자비를 수련하는 행위는 노래와 시, 춤 등을 꽃피우는 촉매제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며 “라샤니가 피워낸 콜라주들, 그 모든 이미지들이 정확한 모양과 색깔로 지혜의 보석을 담고 있는 것은 태이의 가르침과 현존이 우리 안에 있는 예술가를 어떻게 살려내는지, 또한 어떻게 예술이 우리를 바꿔 놓고 치유하는지를 보여 주는 훌륭한 증거”라고 말하며 라샤니의 아름다운 예술과 틱낫한의 지혜의 말을 함께 엮은 이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책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숨 쉬며’라는 제목처럼, 2부에는 바쁜 일상 속 거친 숨을 가라앉게 해주는 틱낫한 스님의 평온한 언어가 담겨 있다.

 

“숨이 들어오게 놔둬라. 아무것도 억지로 하지 말고 간섭도 하지 말고,

숨 쉬어지는 대로 두고, 그저 들숨을 즐겨라.

자신의 호흡에 깨어 있는 것만으로 당신은 현존하게 된다.”

 

“숨은 삶과 의식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다. 그것이 당신 몸과 생각을 하나 되게 한다.”

그의 가르침 안에서 ‘호흡’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모든 만물과 연결되는 통로이자 순간에 머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며 그가 들려주는 지혜의 말에 귀 기울이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점차 비워지는 마음의 공간을 발견하게 된다.

 


 

3부 「그리고 웃으며」에는 활짝 만개한 꽃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들로 가득하다. 틱낫한 스님이 적어내려간 사랑의 문장들은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볕처럼 어둑한 마음을 환히 비춰주는 부드러운 힘이 있다.

 

“웃음은 일종의 ‘입으로 하는 요가’다.

우리가 웃으면 얼굴의 긴장이 풀어진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웃음으로 되돌려줄 것이다.”

 

그는 웃음을 ‘요가’에 비유하며 때때로 웃음이 세계의 상황을 바꿔 놓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웃는다는 것은 자신이 경험하는 ‘현재’에 집중하며 그에 대해 무한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태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순간, 우리는 분명 이전보다 더 많이 미소짓고, 웃게 될 것이다. 틱낫한 스님은 “우리 인생이 곧 메시지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잊고 있는 ‘근원’을 상기시키며 삶의 정수로 독자를 안내한다. 천천히 가고, 집중하며 숨을 쉬고, 그리고 웃는 일. 이것은 우리가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갈 때 제일 먼저 잊게 되는 것들이지만 동시에 내면의 평화, 행복 혹은 사랑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요소이다. 200쪽이 채 되지 않는 이 책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하루에 한 쪽 혹은 두 쪽씩 틱낫한 스님의 맑고 투명한 언어와 그림을 함께 음미해 보자. 그러다 보면 ‘너와 나’라는 구분은 사라지고, 우리는 어느새 ‘근원’에서 맞닿아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 틱낫한(THICH NHAT HANH)

오늘날 선불교의 가장 위대한 스승 중 한 명이자 세계적인 교육자로 평가받았던 틱낫한은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와 함께 ‘살아있는 부처’, ‘영적 스승’으로 꼽혔다. 1960년대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 곳곳을 순회하며 베트남전쟁의 비극을 알리고 평화를 호소하는 등 반전평화운동을 펼쳤다. 1967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으나 베트남 정부에 의해 귀국 금지 조치를 당한 뒤 1973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후 1982년, 프랑스 남서부 보르도 근처에 위치한 시골 마을에 ‘플럼빌리지PLUM VILLAGE, 자두마을’공동체를 설립하여 걷기 명상과 마음 챙김 등과 같은 명상 프로그램을 이끌어 유럽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00여 권의 저서를 출간했으며, 국내에 소개된 대표도서로는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집입니다』, 『틱낫한 명상』,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 『화해』, 『화』 등이 있다. 2022년 1월 세수 96세로 입적했다.

 

역자 : 이현주

관옥(觀玉)이라고도 부르며, ‘이 아무개’ 혹은 같은 뜻의 한자 ‘무무无無’라는 필명을 쓰고 있다. 1944년 충주에서 태어나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했다. 목사이자 동화작가이자 번역가이며, 교회와 대학 등에서 말씀도 나눈다. 동서양의 고전을 넘나드는 글들을 쓰고 있으며, 무위당无爲堂 장일순 선생과 함께 『노자 이야기』를 펴냈다. 옮긴 책으로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집입니다』, 『너는 이미 기적이다』, 『틱낫한 기도의 힘』, 『길 없는 길 위에서』 등이 있다.

 

그림 : 라샤니 레아

1988년 틱낫한의 말을 삽입한 카드 디자인을 시작으로 계속 여러 전통에서 온 살아 있는 다르마로 카드를 제작. 1990년 틱낫한에게서 인터빙 교단에 들어오라는 초청을 받은 뒤, 수년 간 그의 가르침에 영감을 얻은 노래와 그의 시로 만든 다르마 음악을 자두마을과 세계 도처에서 열리는 그의 법회와 수련 모임에서 선보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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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행복론 - 97세 경제학 교수가 물질의 시대에 던지는 질문
리처드 이스털린 지음, 안세민 옮김 / 윌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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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지적 행복론』은 미국 경제사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의 저작이다. 독자는 그의 경제학 이론이나 책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경제 문외한이라고 해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래도 '이스털린'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다. 유명한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 paradox)' 때문이다. 이 역설의 핵심은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이스털린이 1974년 주장한 개념이다.

그는 1946년부터 빈곤국과 부유한 국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국가 등 30개 국가의 행복도를 연구했는데,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도와 소득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는 당시 논문을 통해 비누아투, 방글라데시와 같은 가난한 국가에서 오히려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게 나타나고, 미국이나 프랑스 같은 선진국에서는 오히려 행복지수가 낮다는 연구 결과를 주장의 근거로 제시했다. 이는 언론이나 TV 경제학 강연, 국민행복지수 등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이론이어서 몇 번 듣고 알게 된 것이다. 경제학의 방향을 바꾼 그의 이론은 ‘소득과 행복’의 관계를 말할 때 자주 인용된다. 이번에 출간된 『지적 행복론』은 그 후에도 50년간 지속된 그의 연구를 쉽고 명쾌한 언어로 풀어 쓴 책이다. 그의 관심은 언제나 개인과 행복, 부와 행복, 사회와 행복, 국가와 행복의 관계를 경제학의 언어로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00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베시 스티븐슨 교수팀은 이스털린의 설문보다 더 광범위한 실증조사를 통해 이스털린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스티븐슨은 “132개국을 대상으로 지난 50년간 자료를 분석한 결과 부유한 나라의 국민이 가난한 나라의 국민보다 더 행복하고,국가가 부유해질수록 국민의 행복수준은 높아졌다"고 말했다. ‘돈이 있어야 행복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사실을 확인해준 셈이다.

물론 국민 개개인을 보면 돈보다 명예나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보면 국민소득이 늘어날수록 복지 수준과 행복감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다수의 견해다. 좀 더 많이 벌면 더 행복해질까? 결혼하고 자녀가 생기면 더 행복할까? 어떤 정책을 약속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져야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문득문득 우리의 내면에서 떠오르는 행복에 관한 거의 모든 질문에 대해 평생 행복경제학에 투신해온 97세의 석학이 들려주는 촘촘하고도 다정한 대답으로 가득한 책이다. 직접 강의를 열고 학생들과 문답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쓰여 있어 경제학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술술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복지 정책부터 환경오염, 종교, 자원봉사, 정치체제에 이르기까지 행복에 영향을 끼치는 영역들을 두루 살피고, 현실적이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학생들의 질문에 대해 데이터를 기반으로 추론하면서 함께 ‘행복의 진짜 모습’을 찾아나가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행복’이라는 인간의 감정이 경제학의 프레임 속에서 더욱더 구체성 있게 드러난다. 어느 때보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물질에 대한 욕망이 큰 시대, 오랜 세월 학생들과 호흡하며 ‘행복과 경제의 방정식’을 풀어내려 한 노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듣고 싶다. 행복이 과연 무엇인지, 행복해지기 위한 현명한 선택이 무엇인지, 국민의 행복을 위해 국가는 어떤 정책을 펴야 하는지, 우리가 행복에 대해 품었던 궁금증이 하나둘 풀릴 것으로 기대한다.

사실 행복은 인간의 가장 내밀한 감정이다. 행복을 눈에 보이는 수치로 측정하는 일은 그래서 불가능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구체적인 말에 주목할 때, 행복은 객관화할 수 있는 모습으로 우리 눈앞에 나타난다. 경제학 최초로 사람들의 감정과 목소리에 집중한 행복경제학. 이를 창시한 이가 바로 이 책의 저자인 리처드 이스털린이다. 이스털린은 당시 주류경제학계에서 배제해왔던 사람들의 감정에 최초로 주목한 경제학자였다. 데이터로서 사람들의 행동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통념과 달리 그는 사람들이 직접 자기 감정에 대해서 하는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연구의 결과로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소득이 아무리 증가해도 행복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수없이 인용되는 유명한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1974년 이스털린이 이 충격적인 주장을 담은 논문을 발표하며 경제학계를 뒤흔들 당시, 기존의 경제학은 소득이 행복에 절대적이라는 믿음이 지배하고 있었다. GDP를 신봉하며 경제 성장만 지속된다면 사람들이 행복해지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50여 년 후 과연 현실은 어떤가? GDP 10위 그러나 행복지수 59위. 부유하지만 행복하지는 않은 나라.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짧은 시간 동안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뤄냈지만 한국은 OECD 우울증 1위, 자살률 1위의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행복해지기 위해 돈을 버는데, 막상 돈을 벌어도 떨칠 수 없는 공허함에 대해서도 토로가 이어진다. 독자가 이 책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답은 GDP가 아닌 복지 정책과 사회안전망이라고 경제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스털린은 통념에 대한 여러 반례와 데이터 분석을 통해, 안정적인 고용 상태를 유지하고 다양한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면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경제체제는 큰 변수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책 『지적 행복론』은 어느덧 97세가 된 경제학 석학이 50년 가까이 헌신한 행복경제학의 모든 것을 총정리한 책이다. 그가 행한 일련의 행복 연구가 지적 행복론인 셈이다. 이스털린은 최근 몇 년간 학교에서 진행한 행복경제학 강의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실제로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이 된 것처럼 노교수의 친절한 수업을 따라가게 된다. 독자는 이런 책을 좋아한다. 경청하는 자세로 듣도록 구성되거나 대화하는 식으로 구성된 책을 독자는 선호한다. 이 책도 독자의 선호에 맞춰 쓴 것처럼 좋다. 특히 행복경제학에 대한 가장 쉽고 친절한 입문서로 손색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행복해지고 싶은 모든 이들을 위한 훌륭한 대중 교양서로 오랫동안 사랑받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책에 따르면 이스털린은 경제학이라는 분야에 한계를 두지 않고 활발한 학제 간 연구를 꾀했다. 그간 사람들의 감정에 주목한 학문은 심리학이었기에 경제학자로서는 독특하게도 그는 심리학의 방법론을 수용했다. 심리학은 주관적 감정인 행복에 최초로 주목한 학문이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에드 디너를 필두로 한 심리학자들은 행복에 관한 설문 조사가 얼마나 귀중한 데이터인지 입증했다. 이스털린은 이 데이터의 활용을 경제학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데 성공한 선구자다. 행동경제학의 패러다임을 깨고, 인간의 감정에 집중하면서 인류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탐색했다. 한편 역사적 흐름에서 행복 연구를 바라보려는 시도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창시한 ‘행복경제학’은 이처럼 다양한 학문 분야에 바탕을 두고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경제와 행복은 언뜻 보면 상관없는 주제로 느껴지지만, 행복은 경제학의 언어로 설명될 때 구체적인 모습으로 우리 눈앞에 나타난다는 것이 행복경제학의 핵심 메시지다.

 


 

행복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거쳐 이 책은 ‘행복혁명’이라는 개념에 도달한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봤을 때 인류는 산업혁명, 인구혁명을 거쳐 행복혁명을 맞이하리라는 것이다. 산업혁명과 인구혁명은 인간이 이전보다 훨씬 더 개선된 생활 여건에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했다. 이 안정된 조건을 기반으로 이제는 삶의 질에 눈을 돌릴 때다.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행복혁명의 핵심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은 건강과 가정생활을 개선하는 데 힘쓰고, 국가는 복지 정책을 펼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데 총력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 100세를 바라보는 저자가 세상을 향해 내놓는 진단이자 고언이다. 이 점은 미국식 경제 정책에 회의를 느끼는 독자의 구미에 잘 맞아 떨어진다. 게다가 출판사의 책 소개글 "행복은 막연한 유토피아가 아니다. 부자가 되어야만 행복해진다는 편견을 버린다면, 행복으로 향하는 문이 활짝 열린다."는 말은 독자의 독서 의욕뿐만 아니라 삶에의 의지와 희망을 더욱 키우는 힘이 되어 준다. 물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평생 누구보다 진지하게 개개인과 공동체, 인류의 행복에 대해 학문적으로 고민한 노학자의 이론과 성과 등을 알게 되고, 그의 이론에 흠뻑 빠진 이번 기회는 뒤늦었지만 행운이라는 생각이다. 이 책은 돈과 삶의 의미에 지쳐가는 독자에게 다시 행복으로 가는 삶의 나침반이 되어준다.

 


 

저자 :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

 

“일정 소득을 넘어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더 증가해도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이스털린의 역설’로 학계를 뒤흔든 경제학자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경제학과 명예 교수로 있으며, 미국과학아카데미 회원이자 미국경제학회 명예 회원이기도 하다. 또한 미국인문과학아카데미, 계량경제학회, 노동연구소 회원이고, 미국인구학회, 경제사학회, 미국서부국제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행복, 성장 그리고 생애 주기』(2010), 『꺼림칙한 경제학자』(2004), 『의기양양한 성장: 역사의 관점에서 본 21세기』(1996) 등 다양한 저서를 남겼다. 『지적 행복론』은 그가 최근 몇 년간 진행한 행복경제학 강의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경제와 행복은 언뜻 보면 전혀 상관없는 주제로 느껴지지만, 행복은 경제학의 언어로 설명될 때 구체적인 모습으로 우리 눈앞에 나타난다. 이 책은 영원한 난제 같았던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한 실마리를 알려준다.

 

역자 : 안세민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캔자스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과정을 수학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한국에너지공단, 현대자동차 등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금융 도둑』, 『슈독』, 『블루오션 시프트』,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안티프래질』, 『베조노믹스』, 『로코노믹스』, 『100세 인생』,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 『회색 쇼크』, 『자본주의 사용설명서』, 『경쟁의 종말』 등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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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예수님 동화 컬러링북 - 베드로가 들려주는 이야기
김호신 지음 / 북샤인 / 2022년 4월
평점 :
절판


아이들을 위한 성경 동화는 많이 있지만, 성경 동화 컬러링북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장점과 매력을 갖고 있다. 한번 읽고 끝나는 책이 아닌, 두고두고 꺼내서 읽고 칠하는 시간을 통해 예수님의 이야기를 더 깊게 묵상하게 도와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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