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사라진다니 더 쓰고 싶다
강병융 지음 / 마음의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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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사라진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가는 어느 소설가의 고뇌와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사유가 돋보인다. 문학은 물론 문학 외적인 부분까지 넘나들며 소설가가 다다른 곳은 ˝내일 문학이 없어져도 난 오늘 여기서 소설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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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사라진다니 더 쓰고 싶다
강병융 지음 / 마음의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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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문학이 사라진다니 더 쓰고 싶다』는 저자가 '멈춤'과 '반복'의 연습을 기록한 흔적이다. 이 말은 저자가 책 앞 부분의 「작가의 말」에서 사용한 단어들이다. 멈춤과 반복은 어떤 행위를 하다가 중단하거나 다시 시작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무엇을 멈추고 무엇을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해야 했을까. 저자는 친절하게 이 말의 사용 의미를 설명한다. 유럽 슬로베니아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는 딸과 함께한 한 스키장에서의 일을 기억해낸다. 멈춤과 반복의 연습을 거듭했던 추억이다. 슬로베니아 크르바베츠 스키장에서 난도가 가장 높은 코스의 정상을 가리치며 딸이 스키를 타고 내려올 수 있다고 말한 데서 시작된다.

딸의 단호한, 자신감에 찬 말투에 의심할 틈도 없이 저자만 쑥스럽게 되고 말았다. 저자는 스키를 타지 못하는 상태에서 가족 여행을 갔던 것 같다. 스키장에 가서 저자의 표현대로 '처음 타는 주제에' 교육도 없이 초급 정도의 코스는 가볍게 정복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던 것이다. 스키를 잘 타지 못한 독자가 생각해도 자신감이라기보다 아마 '허세'였던 것으로 보인다. 큰소리 친 댓가로 초급자 중 가장 빠른 속도로... 탄 것이 아니라 거대한 눈사람이 될 만큼 데굴데굴 굴러 내려왔다고 고백한다. 그것도 여러 번 같은 방식으로 '눈사람 구르기'를 했던 모양이다. 당연히 초급 반에서 가장 유명 인사가 되었을 것 같다.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물론 비하하는 뜻은 아니겠지만. 그런데 딸이 가장 어렵고, 가장 높은 난코스를 내려온다니··· 어떻게 가능해? 딸은 단호하게 답한다. "멈출 줄만 알면 가능해! 아빠는 그냥 내려올 생각만 하잖아. 멈출 줄만 알면 어느 코스라도 탈 수 있어!"

 


 

그러나 나이도 나이지만 초보자가 고급 난도의 코스의 말 한마디를 듣고 실천해본다고 쉽게 가능한 일은 아닌 듯하다. 독자들도 예상하겠지만 저자의 도전은 같은 '눈사람 구르기'를 몇 번씩이나 더 하고 같은 반 초급자들에게 희망과 웃음을 선사하고 말았다고 한다. 딸의 말을 듣고, 나름 스키에 관한 동영상으로 교육을 넘칠 만큼 받은 후 아내와 함께 가 도전했으나 실력은 여전히 제자리다. 스키장에서의 에피소드에 불과한 일이지만 스키는 못 배운 대신 '멈춤과 반복'을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여전히 스키는 못 타지만 '멈춤과 반복'의 교훈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다.

멈출 수 있는 사람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포기하지 말고 반복하면 많은 것을 극복할 수 있다. 이 멈춤과 반복을 저자는 삶과 문학에도 새기려 한다. 걷다가 혹은 뛰다가 멈출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속마음을 꺼내놓는다. 그냥 내뱉는 작가가 아닌, 생각을 반복해서 고민한 뒤 정리해 표현할 줄 아는 작가로 거듭나고 싶다는 희망을 품는다. 저자가 멈춤과 반복은 지금까지 살아온 일상에서 가끔은 반복이 부족해 괜찮은 결말에 이르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이 역시 멈춤과 반복의 과정이라고 믿는단다. 이 책의 제목 '문학이 사라진다니 더 쓰고 싶다'와 묘하게 맥락을 같이한다.

 


 

저자 강병용은 세태를 풍자하는 날카로운 시선과 독특한 소재의 활용으로 자신만의 독자층을 탄탄히 쌓아온 소설가다. 그의 이번 산문 『문학이 사라진다니 더 쓰고 싶다』는 한국인에게 다소 낯선 슬로베니아라는 환경에서 내딛는 발걸음으로부터 뻗어 나가며 전작보다 한층 더 솔직하고 단단해진 사유를 보여준다. 오후의 산책처럼 유쾌한 그의 문장에는 재미뿐만 아니라, 문학과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도 함께 깃들어 있다는 것이 출판, 문학 비평 관계자들의 평이다. 문학의 쓸모를 발굴하는, ‘샤페코엔시’ 같은 문학을 꿈꾸는 소설가의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샤페코엔시’*가 무엇인지, 그의 이야기가 문학을 어떻게 소생시킬지는 책장을 넘겨봐야 알 일이다. 문학을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그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왕래가 끊겨 못내 그리웠던 옛 친구의 전화 한 통처럼 울리고 있다. 응답하지 않을 수 없게끔.

* 브라질의 작은 도시, 샤페코의 축구팀이었던 샤페코엔시. 이 팀은 최하위 리그인 세리에 D리그에 속했던 팀이었지만 놀라운 팀워크로 2014년 세리에 A리그에 진출, 2016년에는 남미 주요 클럽 대항전인 코파 수다메리카나의 결승전에 진출했다. 그러나 선수와 스태프들이 경기를 위해 콜롬비아로 향하던 과정에서 비행기가 추락하고, 당시 비행기에 타고 있던 80명 중, 19명의 선수, 25명의 스태프, 20명의 기자, 그리고 7명의 승무원이 사망했다. 이 팀과 사건을 소재로 〈기적의 팀: 샤페코엔시〉가 지난해 개봉되었고 절망에서 다시 일어서는 샤페코엔시 축구팀의 도전과 극복, 용기를 담았다.

 


 

저자는 문학을 ‘꾸며낸 진실’ 혹은 ‘순수한 거짓말’이라고 바꿔 부를 수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그 문학의 죽음이 뼈저리게 와닿은 것도 꽤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죽음의 선언과 수용은 다른 일이어서 저자는 문학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꺼지지 않은 문학의 불씨를 찾아 맨발로 헤맨다. 스스로 ‘활자 중독자’임을 자처하는 저자의 문학과 텍스트에 대한 통찰은 진지하고 심각하게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생활 반경에서 ‘시름시름 앓는’ 문학의 병증을 섬세하게 알아차린다. 일례로 텍스트 위주의 포털 사이트 검색에 익숙한 자신과 영상으로만 가득한 유튜브 속 검색이 당연한 딸을 비교하며, 저자는 어느덧 정보의 기능까지 빼앗긴 텍스트의 현실을 섬세하게 알아차리고 이에 관해 다방면으로 고민한다. 지금 이 시대에 텍스트는, 문학은 어떤 쓸모를 품고 있는가? 저자는 이 책에서 나름의 답을 기어이 찾아내고야 만다.

텍스트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문학의 쓸모를 찾아 헤매는 소설가의 여정은 누군가에게 멸망한 왕국을 반추하는 회고록 혹은 어떤 신성한 세계를 굳건히 믿고 그곳에 당도하려는 순례처럼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그 모든 비유에 앞서 소설가에게 있어 문학의 재발견은 ‘생존 활동’에 다름 아니다. 밥을 벌기 위한 모든 노동이 신성하다던 누군가의 말을 굳게 믿자면, 이 치열한 사색이, 절박한 생존 활동이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감동으로 와닿지 않을 도리도 없는 것이다.

 


 

사유는 종종 산책과 비유되곤 한다. 목적지 없이 이리저리 부유하지만 ‘귀가’로서 마침내 끝나는 산책처럼, 사유 역시 여러 갈래로 종잡을 수 없이 뻗어 나가지만 특정한 ‘결론’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산책길에 나선 사람들의 집이 제각각 다른 것처럼, 사유의 결론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듯 목소리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이 차이를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야말로 수필이 끊임없이 쓰이고 읽히는 이유 중 하나이리라. 저자의 우직한 수필은 이러한 독자들의 속셈을 배반하지 않는다. 사색의 시작은 다양한 순간에 찾아오지만, 저자의 경우에는 ‘산책’과의 유사성을 놓지 못하겠다는 듯 발걸음으로부터 뚝심 있게 시작된다. 그리고 뚜벅뚜벅 펼쳐진다.

어쩌면 루소로부터 최초로 발명되었을 이 ‘고독하고 몽상적인 산책’은 언제나 의외의 공간으로 산책자를 이끈다. 저자 또한 예외가 아니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근처의 공동묘지를 거닐며 공동묘지 산책을 예찬론자가 되고,(p.53) 한국영화를 보러 이탈리아 국경 부근의 우디네로 향하는 여정에서 색다른 공간이 선물하는 깨달음을 얻는다.(p.82) 발걸음을 옮기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사유의 다발이 이 산문집에 한 아름 묶여 있다. 자신의 일상을 사랑하게 되는 생각들로 만발한다. 낯선 곳에서 탄생한 그의 문장에는 생기가 감돌고, 그 안에 깃든 사유는 여태껏 모르던 향기로 독자들의 삶에 스며든다.

 


 

산책을 닮은 그의 끊임없는 사색과 문학을 염려하는 그의 진심 어린 마음은 모두 한 가지 깨달음에 다다른다. ‘멈춤과 반복을 연습하는 삶’의 추구가 바로 그것이다. 그의 이번 산문은 문학 앞에서, 삶 앞에서 취한 이 겸손한 자세에 관한 사설이자 해설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멈춤과 반복’을 잊고 살았던가. 유튜브 세상에는 멈춤이 없고, 다만 ‘건너뛰기’만 존재한다. 넷플릭스 세상은 빈지 워치(binge watch)를 위해 만들어진 콘텐츠로 가득하다. 멈출 틈을 주지 않는다. 세상은멈추는 것을 낭비라고 정의한다.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더 빨리, 더 많이 보기 위해 멈춤을 제거하는 일에만 몰두한다. 그런데 독서는 다르다. 독서는 우리를 멈추게 한다. 우리는 멈춰서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 평소 우리가 잘 하지 않는 그 생각을 하게 한다. 그 문장에 대해서, 그 감동에 대해서, 그 문장과 감동 뒤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든다. 생각의 끝에서 우리는 ‘나’를 만나고 만다.(p.162~163)

다른 취미활동과 독서의 차별점을 ‘잠시 멈춤’에서 발견하고, 매일 집 앞을 찾아오는 고양이를 반복적으로 마주치며 짐승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이 소설가의 삶은, ‘멈춤과 반복’을 스스로 실현하려는 평생의 연습이자 작업 그 자체다. 저자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긴 이 산문은 눈밭처럼 선명한 에피소드와 그 위에 찍힌 발자국처럼 명징한 메시지를 품고 있지만, 일독(一讀)으로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고 실천하기란 어려울지도 모른다. 멈춤과 반복이 중요하다고, 멈춰서 읽고 반복해서 읽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깊은 뜻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을 것이라고, 누가 말했지 않은가.

 


 

우리가 공동체 오로빌에서 배워야 할 것은 어쩌면, 다름 아닌 믿음일지도 모르겠다. 여기가 이상향이라는 믿는, 여기가 낙원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그 정신! 낙원을 찾아가기보다는 여기를 멋지게 만들어보고 싶다. 육식을 해도, 선물 경제가 없어도, 심지어 술집이 많아도 행복할 수 있는 그런 마을을 만들어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지금 내딛는 한 걸음에 만족해야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라디오를 끄고, 다시 내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정해진 템포 없이 그 순간을 즐기면서 말이다.(p.197)

 

무언가가 우리의 마음에 소중히 남아 있는 것은 그것이 디지털이기 때문도, 아날로그이기 때문도 아니다. 그냥 그 추억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가 되어서 세상이 각박해졌다느니, 아날로그 시대가 더 인간적이었다느니 하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저 우습기까지 하다. 한 시대를, 어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기술이 아닌 사람인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추억의 알맹이에는 나, 너, 우리와 같은 ‘사람’이 담겨 있다. 그 이외에 더 중요한 것은 없다.(p.211~212)

 

저자 : 강병융

 

1975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3년부터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에서 살고 있다. 명지대학교와 모스크바국립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현재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학교 아시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소설 《손가락이 간질간질》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나는 빅또르 최다》 《Y씨의 거세에 관한 잡스러운 기록지》 등을, 에세이 《아내를 닮은 도시》 《도시를 걷는 문장들》 《사랑해도 너무 사랑해》 등을 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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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메모만 했을 뿐인데
유영택 지음 / 니어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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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는 일상생활에서 필수다. 해야 할 일을 잊지 않고, 구입할 물품을 확인하는 데 메모는 큰 도움이 된다. 메모는 보통 일회적인 용도로 사용되지만, 때론 가슴 뛰는 삶을 위한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오랜 기간 이 책은 메모의 중요성과 효과(위력)에 대해 쉽고 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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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메모만 했을 뿐인데
유영택 지음 / 니어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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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단지 메모만 했을 뿐인데』의 뒷 부분에는 두 개의 〈부록〉이 있다. 첫 번째는 「국내외 메모광들」이고, 두 번째는 「참고하면 좋은 책 10권」이다. 이 가운데 전자에는 '해외 인물'로 빌 게이츠, 괴테 등 위대한 인물이고, 후자에는 '국내 인물'로서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메모의 중요성을 강조한 각계 각층의 인물들이 즐비하다. 이 책의 저자 유영택은 '메모광'들에 대한 설명에서 "메모광들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들을 중심으로 정리했다"며 "메모에 관한 책을 쓴 저자들은 대단한 메모광이지만 부록에는 포함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또 국내의 메모광들은 역사 속 인물과 작가, 기업인, 연예인, 운동선수·감독 등 5개 분야로 나눠 소개했다고 밝힌다. 저자는 이밖에 각계에 포진한 수많은 숨은 고수들 가운데 단지 일부분일 뿐이라고 덧붙인다. 우리 주위에는 성공한 '메모광'들이 많다는 뜻이다.

책은 앞을 못 보고 소리도 듣지 못하는 헬렌 켈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암흑과 고통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헬렌 켈러는 어느 날 가정교사인 설리반 선생님이 우물가에서 손바닥에 ‘WATER’라고 적어준 순간 모든 사물에 이름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로 인해 헬렌 켈러에게는 빛과 희망의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대학생이던 래리 페이지는 잠을 자다가 ‘모든 인터넷 웹을 링크할 수 있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생각을 메모지에 적는다. 그리고는 친구를 찾아가 자신의 구상을 밝힌다. 이렇게 해서 공동으로 창업한 스타트업 기업이 구글이다. 미스터트롯 프로그램을 통해 일약 연예계 스타로 부상한 임영웅은 가수로 데뷔하기 전 수첩에 ‘2020년 엄마 생일날 현금 1억원 주기’라고 적는다. 그리고 5년 후인 2020년에 미스터트롯에서 우승을 함으로써 그 꿈을 이룬다.

 


 

이러한 감동적인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뭘까? 메모가 그 밑바탕에 깔려있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적는 행위가 없었더라면 헬렌 켈러가 장애를 딛고 사회활동가이자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 구글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임영웅이 꿈을 적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을까? 이렇듯 메모의 힘은 대단하다. 그래서 메모가 가진 힘을 ‘마법’, ‘기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메모는 나 자신을 바꾸는 계기가 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추진력이 된다. 그러한 사례들은 수없이 많다. 메모를 일상생활과 업무에 적용함으로써 효과를 거둔 사람들의 사례도 엄청나게 많다.

저자는 "메모가 이렇듯 엄청난 힘을 갖고 있지만 그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며 메모라고 하면 ‘잊어버리기 않도록 적어두는 것’ 정도로 간단히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시대에 맞지 않는 ‘뒤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지적한다. 설혹 메모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실제로 실생활에서 활용하는 사람은 일부-전 국민의 약 5% 수준-에 불과하다. 메모를 잘만 사용하면 엄청나게 유용한 삶의 도구가 될 수 있는데 이처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지내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 책의 집필 이유이다. 이에 따라 이 책은 메모가 왜 중요한지 잘 모르거나, 메모의 효율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북이다. 나와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아니라 임영웅과 같이 나와 같은 공간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메모가 가진 엄청난 힘,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은 기적들에 대해 알려준다.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읽어도 되겠지만 당장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메모법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파트2로 바로 건너뛰어도 좋다고 저자는 읽고 싶은 부분을 찾아서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메모법을 찾는 독자라면 저자의 개인적인 메모의 역사와 노하우를 다루는 파트3에서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귀띔한다. 메모 방식이야 어찌 됐든 적어두었다가 필요할 때 활용할 수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메모를 하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알고 이중에서 내게 맞는 방법을 찾거나 적용한다면 훨씬 더 효율적으로 메모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단지 메모만 했을 뿐인데’ 삶이 변화되고, 매 순간순간 활력이 넘치고, 어쩌면 성공으로까지도 이어지는 ‘기적’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이 그러한 길로 가는 조그만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책은 3개 파트와 부록으로 구성돼 있다. 파트 1은 '사례 모음집'이다. 저자가 뒷 부분을 먼저 읽고 이 부분은 나중에 읽어도 상관없다고 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례 모음집은 우리 주변 사람들이 메모를 활용하는 사례들을 수록하고 있기 때문에 메모가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고, 활용분야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메모를 하고 있는 분이라면 메모활용 방법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아직 메모를 시작하지 않은 분이라면 '나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파트의 목적은 달성된 셈이라는 설명이다.

 


 

이어지는 두 개 파트는 메모의 기본적인 원칙과 기술을 설명(파트2)하고 필자의 개인적인 메모 방법을 소개(파트3)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독자들은 이들 파트를 통해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메모법들을 접할 수 있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단지 메모만 했을 뿐인데' 삶이 변화되고, 매 순간순간 활력이 넘치고, 어쩌면 성공으로까지도 이어지는 '기적'을 만날 수도 있다고 언급한다. 이 책이 그러한 길로 가는 조그만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메모는 자기가 편한 방식으로 하면 된다'고 한다. 저자도 이 말에 동의한다. 방식이야 어찌 됐든 적어두었다가 필요할 때 활용할 수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모를 하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알고 이중에서 네게 맞는 방법을 찾거나 적용한다면 훨씬 더 효율적으로 메모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는 이유이고 이 책을 쓴 이유이다. 앞서 잠깐 언급한 대로 3개 파트로 나뉜 이 책은 파트1 「메모의 활용」, 파트2 「메모의 스킬」, 파트3 「9와 2분의 1 메모」의 제목을 각각 갖고 있다. 저자가 언급한 대로 따로 아무거나 관심이 있는 것부터 읽어도 된다. 이 뜻은 각 파트가 서로의 파트에 유기적인 연관이 돼 있어 앞부터 읽거나 뒤죽박죽 읽어도 전체적인 뜻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즉 메모의 기술을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메모란 것이 이것저것 섞어놓아도 날짜나 고유의 표시 등 구별 가능한 메모가 표시돼 있을 경우 나중에 보아도 메모 전체의 맥락을 메모 당사자는 읽고 짜맞춰 이해할 수 있듯이 말이다. 말하자면 철저하게 메모의 이야기를 완전하게 정리해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집필됐다고 독자는 판단한다.

 


 

저자는 파트1 「메모의 활용」에서 냉장고와 같은 가전제품에 메모 기능이 포함되고, 다양한 메모앱과 메모용 문구상품들도 꾸준히 개발되고 있고 말한다. 이것은 메모가 점점 더 깊숙이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오고 있고, 사람들이 메모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으로 저자는 판단한다. 실제로 메모를 일상생활과 업무에 활용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성공을 위해서는 메모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이 파트에서는 이러한 메모 활용사례를 기억, 자료, 아이디어, 생각·마음 정리, 소통·전달 등 다섯 가지 카테고리로 나눠 살펴본다. 파트2 「메모의 스킬」에서는 파트1에서의 메모를 우리의 일상생활에 적용하고, 습관처럼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파트2는 6개 챕터로 나눠 다양한 메모기술과 활용법을 소개한다. 앞의 네 개 챕터는 메모를 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고, 나머지 2개 챕터는 메모한 것을 정리하고 이것을 일상생활이나 업무에서 유용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메모를 하는 방법에 국한하지 않고 정리와 활용 방법도 함께 소개하는 것은 메모의 궁극적 목적이 활용에 있기 때문이란 게 저자의 소신이다. 파트3 「9와 2분의 1 메모」가 무슨 말인지 독자로서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놀랄 필요는 없다. 역시 메모에 관한 내용이다. 다름 아닌 저자 고유의 메모 경험과 메모법을 소개한다. 저자가 메모에 관심을 갖게 된 경위와 주로 사용하는 메모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는 메모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따르면서도 나름대로 독특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파트3은 메모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이런 방식도 가능하다'는 것을 중점적으로 제시한다. 숫자로 표시된 '9와 2분의 1'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위 사진은 출판사에서 직접 보내온 메모지이고 홍보용으로 자체 제작한 것입니다.(사진=독자)

 

"조 앤 롤링의 『해리포터』에서 해리포터는 마법학교 호그와트에 가기 위해 런던 킹스크로스 기차역의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특급열차를 탄다. 해리포터에게 승강장은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인 셈이다. 내게도 이러한 비밀 통로가 있다. 바로 9와 2분의 1 메모다. 이렇게 말하니까 엄청난 것이 숨겨져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는데, 9.5cmX9.5cm 크기의 메모지에 메모하는 것을 혼자 이렇게 부르고 있다. 이 사이즈의 메모지를 부르는 통일된 명칭이 없어서 크기에 착안해 이런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다. 9.5cm는 9와 2분의 1cm이니까."(p.160)

 

저자 : 유영택

 

고려대학교에서 러시아어문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오랜 기간 공직에 근무하면서 국제정세, 특히 러시아정세를 분석하고 이를 보고서로 만드는 일을 했다. 보고서를 작성하고 첫 책인 《오후반 책쓰기》(2015년 출간)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자료정리와 메모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그래서 관련내용을 책으로 엮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으며, 먼저 자료정리에 대한 생각과 경험을 《정리의 스킬》(2020년 출간)에서 풀어냈다. 이번에 출간한 《단지 메모만 했을 뿐인데》는 그 후속작업이다. 저자의 세 번째 책이자 아내ㆍ딸과 함께 시작한 가족출판사 ‘도서출판 니어북스’의 첫 번째 책이기도 하다. 도전하는 삶은 언제까지나 계속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책을 ‘읽고, 쓰고, 만드는’ 일을 평생 추구해나갈 목표로 삼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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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
절판



 

'잠'에 대한 책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전쟁이나 옛날 일제강점기, 혹은 우리 군사독재시대의 얘기가 생각난다. 독자들에게 죄송하게도 '고문'이야기다. 수사기관 등 범죄자 신문할 때, 전쟁 포로에게 군사 기밀을 알아내려 할 때 가하는 고문은 전 근대적 수사 기법이라 하여 전 세계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우리도 지금은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 근절되지 않은 악행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 고문의 방법도 상상하기 어려운 기술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꾸준히 개발 발전(?)돼 왔다고 한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고문 중의 으뜸은 극심한 고통을 주는 각종 신체에 가하는 물리력이 아니라 '잠 안 재우기'라고 알려져 있다. 다른 어떤 극한 고문도 견뎌낸 사람도 잠 안 재우기는 가장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왜 잠이 다른 신체에 가하는 물리력보다 더 큰 고통을 주는가?

이 책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은 불면증에 대해 연구하고 임상 시험, 그리고 치료 경험 등을 분석해 '불면증'의 원인을 찾아내고 치료법을 찾으려는 목적을 두고 쓰여졌다. 국어사전에서는 자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상태를 바로 ‘불면증’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습관성 불면 또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잠이 개인의 내밀한 활동의 영역이듯, 더군다나 불면증은 티가 잘 나지 않는다. 창백한 안색, 퀭한 눈으로 간접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천근만근의 몸, 메말라가는 마음은 설명할 길이 없다. 불면증에 대한 이야기가 아직 넓고 깊게 다뤄지지 못한 건 이 때문인지 모른다. 이처럼 다양한 원인에 의한 불면증은 의학사전에서는 불면장애(primary insomnia)로 표기한다고 한다. 불면장애란 잘 수 있는 적절한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수면의 시작과 지속, 공고화, 그리고 질에 반복되는 문제가 있어 그 결과 주간 기능의 장애를 유발하는 상태를 일컫는 용어이다. 그래서 세 가지 요소 - 적절한 수면의 기회, 지속되는 수면의 문제, 동반되는 주간기능장애가 함께 불면장애를 정의한다.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에 따르면 불면장애는 수면의 시작과 수면의 유지에 문제가 있고, 자고 일어나서 원기 회복이 되지 않는다. 이의 진단을 위해서는 적어도 3개월 이상 증상이 지속되어야 하며, 다른 내과적, 정신건강의학과적 장애 또는 물질(남용물질, 치료물질)로 인한 불면증이 아니어야 한다. 성인에서 불면장애는 잠들기 어렵고 반복해서 깨는 것을 주 증상으로 하는 경우가 흔하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생리학적, 심리학적 각성이 증가하고 수면에 대한 부정적 조건화(negative conditioning)가 뚜렷이 나타난다. 환자들은 보통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데에 몰두되어 있다. 그러나 자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잠은 달아나고 좌절감과 고통만 더 커진다.

이 증상의 원인은 흔히 여러 요인으로 인해 발생하기 때문에 불면증을 겪는 개인에서 원인을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일시적으로 겪는 불면증의 흔한 원인은 새로운 직장, 이사 등으로 규칙적인 생활리듬이 바뀌는 경우, 여행으로 인한 시차, 소음 등의 환경적인 요인 등이 있으며 이 경우는 처음의 유발 사건이 사라지면 대부분 며칠 이내에 증상이 호전된다. 그러나 만성적인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통증, 관절염, 두통,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불면증과 동반될 수 있다. 기분이 우울하거나 불안한 심리적인 문제도 불면증에 영향을 준다. 수면제 복용 기간이 너무 오래 되어도 수면 단계의 변화로 불면증이 심해질 수 있으며, 각성제, 스테로이드제, 항우울제 등의 약물이나 카페인이 많이 함유된 커피나 지나친 음주도 불면증의 원인이다. 그 밖에도 코콜이(수면무호흡증), 하지불안증후군, 주기적 사지운동증에도 불면증이 동반될 수 있다.

 


 

이 책은 다양한 글을 써온 영국의 작가 마리나 벤저민이 썼다. 이 에세이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은 제목처럼 불면증을 주요 소재로 삼는다. 물론 어떻게 하면 불면증을 없앨 수 있을지 같은 병리학적 접근과는 거리가 있다. 그 반대에 가깝다. 잠들지 못한 숱한 날들이 그를 잠과 불면증에 대한 연구자로 만든 걸까? 문학, 미술, 신화학, 역사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사회학을 경계 없이 넘나들며 잠과 불면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럼에도 가장 특징적인 면을 꼽자면, 고통과 결핍을 빼어난 이야기로 승화시켰다는 점과 그것이 위로와 공감의 목소리로 다가온다는 점일 것이다. 감각적이고 유려한 문체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에 대한 수많은 리뷰가 한목소리로 글 자체가 지닌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있다. 즉 이 책은 불면증 환자이든 아니든 읽으면 잠이 쏟아진다는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물론 어떤 책도 이런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을 테지만, 이 책만큼은 예외다. 저자가 아름답게 그려낸 밤의 세계는 우리를 편안한 잠으로 데려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원제는 ‘Insomnia’로 올리비아 랭, 대니 샤피로 등 해외의 유명 에세이스트가 추천했으며, 국내에서는 다방면으로 글을 써온 두 작가 임경선과 김겨울이 추천했다. 독립 출판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의 저자 김나연이 번역했다.

 


 

책에 따르면 가까이 다가가려 할수록 멀어지고 노력하면 할수록 달아나는 것. ‘잠’이다. 생각에서 떨쳐내야 이룰 수 있는데 그게 맘처럼 되지 않는다. 애쓸수록 끝 모를 ‘부재의 고통’만이 남는다. 자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상태. ‘불면증’이다. 습관성 불면 또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잠이 개인의 내밀한 활동의 영역이듯, 더군다나 불면증은 티가 잘 나지 않는다. 창백한 안색, 퀭한 눈으로 간접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천근만근의 몸, 메말라가는 마음은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인지 자신에게는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기 쉽지 않다. 불면증에 대한 이야기가 아직 넓고 깊게 다뤄지지 못한 건 이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수면 부족을 비롯한 잠과 관련한 문제를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다는 것은 굳이 통계를 빌리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불면증은 ‘현대인의 질병’이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 책은 불면증에 대해 가장 사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모든 고민은 무언가의 결핍과 그로 인한 고통에서 시작된다고 규정한다. 잠도 마찬가지다. 결핍과 고통이 애초에 없다면 좋겠지만,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임경선 작가의 말대로 “우리의 인생에 뜻밖의 고통이 찾아오는 건 대부분 통제할 수가 없”지만 “그 문제에 내가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서만 통제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경우 결핍과 고통은 그 문제에 대한 사유, 나아가 나에 대한 근본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결핍을 벌이자 축복이라고 말하는 건 지나치게 철없는 일일까. 어쨌든 마리나 벤저민은 잠의 결핍과 불면의 고통에서 시작된 고민을 치열한 사유로 이어갔고, 자신의 불면증을 재료 삼아 책으로 빚어냈다. 그리고 이역만리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다른 이에게 기꺼이 ‘불면의 동지’가 되기를 자처하며 공감과 위로의 손길을 내민다.

 


 

저자는 솔직하고 내밀한 고백과 잠과 불면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를 조화롭게 엮어서 이야기를 끌어간다. 마치, 책에도 등장하는 『아라비안나이트』의 셰에라자드처럼. 이야기의 행로는 문학, 미술, 그리스·로마 신화, 역사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사회학 어느 한 곳에 한정되지 않는다. 르네 마그리트에서 시작해 자크 라캉과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거쳐 『로빈슨 크루소』와 칼 마르크스를 지나 샤를로트 베라트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향연이 펼쳐진다. 연관성 없어 보이는 것들이지만, 마리나 벤저민의 ‘의식의 흐름’ 안에서 하나가 된다. 200페이지 정도의 작은 책이 자신의 고통을 처절하게 읊는 회고록이었다가, 동거인과 거쳐온 사랑의 역사를 숨겨놓은 서랍 속 일기였다가, 숨겨져 있던 정보와 지식으로 가득한 비밀의 도서관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이 책의 번역자 김나연도 말했듯이 불면증과 여성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룬 것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만사 걱정이 없이 늘 순수함을 유지한 아버지와 걱정거리를 달고 산 어머니를 비교함으로써, 순진무구함이 불균형한 권력관계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그러하다. 또한 낮에 짠 수의를 밤이면 다시 풀어 실타래를 감은 페넬로페의 행위를 재해석하고, 여성이 행하는 노동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특히 불면증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는 역자는 불면증의 경우 여성이 남성보다 유병률이 1.5배 높다는 조사결과에 주목한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휴식을 취하기 어렵고, 긴장 상태가 지속되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병원 치료에 대한 적극도 역시 여성에게서 훨씬 높게 나타나는데도 말이다.

 


 

굳이 입 아프게 수면 보조제라면 모르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진 않겠다. 불면증과 나의 관계는 역사가 길다. 우리는 불가분의 관계라 설렘, 당혹감, 지루함을 거쳐 다시 설렘을 느끼는 사랑의 모든 단계를 거쳐왔다. 마치 달이 차올랐다 지는 것처럼. 불면증은 내게서 평화를 앗아간 도둑이고 악마의 숭배자다. 각성 상태에 취해 잠들 수 없을 때마다 나는 나를 악마로부터 구원해줄 수면 보조제를 찾아 나섰고 다양한 조합으로 테스트해봤다. 대부분은 잠시 효과를 보이며 나를 희망으로 부풀게 했다 이내 납작하게 찌부러뜨렸다.(p.84)

 

불면증에 대해 글을 쓰고 있으니 내가 불면증 전문가라도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이제는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수면 문제에 관한 조언을 건넨다. 대개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내가 들어본 적 없는 불면증 관련 팁은 없는 데다 먹어보지 않은 약이 없고 시도해보지 않은 수면 유도법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가장」 중에서 괴롭히는 건 불면증의 수학적 측면이다. 모든 불면증 환자는 자신의 결함에서 비롯된 자기 연민의 기록으로 머릿속에 수면 장」 중에서 부를 만들어두고 불면증이 앗아간 수면 시간과 실제로 잠들었던 시간을 끊임없이 셈해 장」 중에서 부에 기록해둔다. 결국 우리 같은 불면증 환자에게 가장」 중에서 잘 어울리는 집합명사는 적분일지도 모른다.(p.87~88)

 


 

불면증에 사로잡히면 나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몸을 뒤척이며 느끼는 육체적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그저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나 뿌리가 뽑힌 식물이 느낄 법한 존재론적 불안감도 아닌 것이, 불면증은 감정뿐 아니라 온도의 문제도 되기 때문이다.(p.29)

 

저자 : 마리나 벤저민

 

글쓰기, 가족 이야기, 회고록 등 다양한 논픽션 분야의 글과 책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 작가다. 그는 지금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소재로 삼아왔다. 첫 번째 작품 『세상의 끝에 살다』에서는 죽음에 대한 인류의 강박을 다루었으며, 『로켓의 꿈』은 우주 여행을 독창적으로 그려냈다. 또한 『바빌론 최후의 날들』은 이라크 바그다드 출신의 할머니가 살아온 삶과 그 시대를 소설화한 가족 이야기로 풀어냈다.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는 『중년, 잠시 멈춤』이 있다. 이와 더불어 『이브닝 스탠다드』와 『뉴 스테이츠먼』에서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면서 영국 유수의 매체에 다양한 주제의 글을 기고해왔으며, 현재 디지털 매거진 『이온』의 선임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은 잠 못 드는 시간에 찾아오는 감정과 생각을 섬세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기록한 에세이다. 저자는 잠들지 못하는 불면의 상태를 고통과 불안의 시간임과 동시에 우리 자신과 창의성, 사랑에 대한 이해를 고양시키는 실존적 경험으로 묘사한다. 영국의 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 올리비아 랭은 이 책을 두고 “숭고한 언어로 끝을 알 수 없는 밤과 충혈된 눈으로 맞이하는 아침, 이 기이한 결핍의 해부도를 그린다”라고 평했다. [뉴요커], [가디언], [워싱턴 포스트] 등 다수의 매체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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