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사라진다니 더 쓰고 싶다
강병융 지음 / 마음의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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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문학이 사라진다니 더 쓰고 싶다』는 저자가 '멈춤'과 '반복'의 연습을 기록한 흔적이다. 이 말은 저자가 책 앞 부분의 「작가의 말」에서 사용한 단어들이다. 멈춤과 반복은 어떤 행위를 하다가 중단하거나 다시 시작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무엇을 멈추고 무엇을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해야 했을까. 저자는 친절하게 이 말의 사용 의미를 설명한다. 유럽 슬로베니아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자는 딸과 함께한 한 스키장에서의 일을 기억해낸다. 멈춤과 반복의 연습을 거듭했던 추억이다. 슬로베니아 크르바베츠 스키장에서 난도가 가장 높은 코스의 정상을 가리치며 딸이 스키를 타고 내려올 수 있다고 말한 데서 시작된다.

딸의 단호한, 자신감에 찬 말투에 의심할 틈도 없이 저자만 쑥스럽게 되고 말았다. 저자는 스키를 타지 못하는 상태에서 가족 여행을 갔던 것 같다. 스키장에 가서 저자의 표현대로 '처음 타는 주제에' 교육도 없이 초급 정도의 코스는 가볍게 정복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던 것이다. 스키를 잘 타지 못한 독자가 생각해도 자신감이라기보다 아마 '허세'였던 것으로 보인다. 큰소리 친 댓가로 초급자 중 가장 빠른 속도로... 탄 것이 아니라 거대한 눈사람이 될 만큼 데굴데굴 굴러 내려왔다고 고백한다. 그것도 여러 번 같은 방식으로 '눈사람 구르기'를 했던 모양이다. 당연히 초급 반에서 가장 유명 인사가 되었을 것 같다.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물론 비하하는 뜻은 아니겠지만. 그런데 딸이 가장 어렵고, 가장 높은 난코스를 내려온다니··· 어떻게 가능해? 딸은 단호하게 답한다. "멈출 줄만 알면 가능해! 아빠는 그냥 내려올 생각만 하잖아. 멈출 줄만 알면 어느 코스라도 탈 수 있어!"

 


 

그러나 나이도 나이지만 초보자가 고급 난도의 코스의 말 한마디를 듣고 실천해본다고 쉽게 가능한 일은 아닌 듯하다. 독자들도 예상하겠지만 저자의 도전은 같은 '눈사람 구르기'를 몇 번씩이나 더 하고 같은 반 초급자들에게 희망과 웃음을 선사하고 말았다고 한다. 딸의 말을 듣고, 나름 스키에 관한 동영상으로 교육을 넘칠 만큼 받은 후 아내와 함께 가 도전했으나 실력은 여전히 제자리다. 스키장에서의 에피소드에 불과한 일이지만 스키는 못 배운 대신 '멈춤과 반복'을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여전히 스키는 못 타지만 '멈춤과 반복'의 교훈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다.

멈출 수 있는 사람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포기하지 말고 반복하면 많은 것을 극복할 수 있다. 이 멈춤과 반복을 저자는 삶과 문학에도 새기려 한다. 걷다가 혹은 뛰다가 멈출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속마음을 꺼내놓는다. 그냥 내뱉는 작가가 아닌, 생각을 반복해서 고민한 뒤 정리해 표현할 줄 아는 작가로 거듭나고 싶다는 희망을 품는다. 저자가 멈춤과 반복은 지금까지 살아온 일상에서 가끔은 반복이 부족해 괜찮은 결말에 이르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이 역시 멈춤과 반복의 과정이라고 믿는단다. 이 책의 제목 '문학이 사라진다니 더 쓰고 싶다'와 묘하게 맥락을 같이한다.

 


 

저자 강병용은 세태를 풍자하는 날카로운 시선과 독특한 소재의 활용으로 자신만의 독자층을 탄탄히 쌓아온 소설가다. 그의 이번 산문 『문학이 사라진다니 더 쓰고 싶다』는 한국인에게 다소 낯선 슬로베니아라는 환경에서 내딛는 발걸음으로부터 뻗어 나가며 전작보다 한층 더 솔직하고 단단해진 사유를 보여준다. 오후의 산책처럼 유쾌한 그의 문장에는 재미뿐만 아니라, 문학과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도 함께 깃들어 있다는 것이 출판, 문학 비평 관계자들의 평이다. 문학의 쓸모를 발굴하는, ‘샤페코엔시’ 같은 문학을 꿈꾸는 소설가의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샤페코엔시’*가 무엇인지, 그의 이야기가 문학을 어떻게 소생시킬지는 책장을 넘겨봐야 알 일이다. 문학을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그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왕래가 끊겨 못내 그리웠던 옛 친구의 전화 한 통처럼 울리고 있다. 응답하지 않을 수 없게끔.

* 브라질의 작은 도시, 샤페코의 축구팀이었던 샤페코엔시. 이 팀은 최하위 리그인 세리에 D리그에 속했던 팀이었지만 놀라운 팀워크로 2014년 세리에 A리그에 진출, 2016년에는 남미 주요 클럽 대항전인 코파 수다메리카나의 결승전에 진출했다. 그러나 선수와 스태프들이 경기를 위해 콜롬비아로 향하던 과정에서 비행기가 추락하고, 당시 비행기에 타고 있던 80명 중, 19명의 선수, 25명의 스태프, 20명의 기자, 그리고 7명의 승무원이 사망했다. 이 팀과 사건을 소재로 〈기적의 팀: 샤페코엔시〉가 지난해 개봉되었고 절망에서 다시 일어서는 샤페코엔시 축구팀의 도전과 극복, 용기를 담았다.

 


 

저자는 문학을 ‘꾸며낸 진실’ 혹은 ‘순수한 거짓말’이라고 바꿔 부를 수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그 문학의 죽음이 뼈저리게 와닿은 것도 꽤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죽음의 선언과 수용은 다른 일이어서 저자는 문학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꺼지지 않은 문학의 불씨를 찾아 맨발로 헤맨다. 스스로 ‘활자 중독자’임을 자처하는 저자의 문학과 텍스트에 대한 통찰은 진지하고 심각하게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생활 반경에서 ‘시름시름 앓는’ 문학의 병증을 섬세하게 알아차린다. 일례로 텍스트 위주의 포털 사이트 검색에 익숙한 자신과 영상으로만 가득한 유튜브 속 검색이 당연한 딸을 비교하며, 저자는 어느덧 정보의 기능까지 빼앗긴 텍스트의 현실을 섬세하게 알아차리고 이에 관해 다방면으로 고민한다. 지금 이 시대에 텍스트는, 문학은 어떤 쓸모를 품고 있는가? 저자는 이 책에서 나름의 답을 기어이 찾아내고야 만다.

텍스트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문학의 쓸모를 찾아 헤매는 소설가의 여정은 누군가에게 멸망한 왕국을 반추하는 회고록 혹은 어떤 신성한 세계를 굳건히 믿고 그곳에 당도하려는 순례처럼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그 모든 비유에 앞서 소설가에게 있어 문학의 재발견은 ‘생존 활동’에 다름 아니다. 밥을 벌기 위한 모든 노동이 신성하다던 누군가의 말을 굳게 믿자면, 이 치열한 사색이, 절박한 생존 활동이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감동으로 와닿지 않을 도리도 없는 것이다.

 


 

사유는 종종 산책과 비유되곤 한다. 목적지 없이 이리저리 부유하지만 ‘귀가’로서 마침내 끝나는 산책처럼, 사유 역시 여러 갈래로 종잡을 수 없이 뻗어 나가지만 특정한 ‘결론’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산책길에 나선 사람들의 집이 제각각 다른 것처럼, 사유의 결론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듯 목소리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이 차이를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야말로 수필이 끊임없이 쓰이고 읽히는 이유 중 하나이리라. 저자의 우직한 수필은 이러한 독자들의 속셈을 배반하지 않는다. 사색의 시작은 다양한 순간에 찾아오지만, 저자의 경우에는 ‘산책’과의 유사성을 놓지 못하겠다는 듯 발걸음으로부터 뚝심 있게 시작된다. 그리고 뚜벅뚜벅 펼쳐진다.

어쩌면 루소로부터 최초로 발명되었을 이 ‘고독하고 몽상적인 산책’은 언제나 의외의 공간으로 산책자를 이끈다. 저자 또한 예외가 아니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근처의 공동묘지를 거닐며 공동묘지 산책을 예찬론자가 되고,(p.53) 한국영화를 보러 이탈리아 국경 부근의 우디네로 향하는 여정에서 색다른 공간이 선물하는 깨달음을 얻는다.(p.82) 발걸음을 옮기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사유의 다발이 이 산문집에 한 아름 묶여 있다. 자신의 일상을 사랑하게 되는 생각들로 만발한다. 낯선 곳에서 탄생한 그의 문장에는 생기가 감돌고, 그 안에 깃든 사유는 여태껏 모르던 향기로 독자들의 삶에 스며든다.

 


 

산책을 닮은 그의 끊임없는 사색과 문학을 염려하는 그의 진심 어린 마음은 모두 한 가지 깨달음에 다다른다. ‘멈춤과 반복을 연습하는 삶’의 추구가 바로 그것이다. 그의 이번 산문은 문학 앞에서, 삶 앞에서 취한 이 겸손한 자세에 관한 사설이자 해설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멈춤과 반복’을 잊고 살았던가. 유튜브 세상에는 멈춤이 없고, 다만 ‘건너뛰기’만 존재한다. 넷플릭스 세상은 빈지 워치(binge watch)를 위해 만들어진 콘텐츠로 가득하다. 멈출 틈을 주지 않는다. 세상은멈추는 것을 낭비라고 정의한다.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더 빨리, 더 많이 보기 위해 멈춤을 제거하는 일에만 몰두한다. 그런데 독서는 다르다. 독서는 우리를 멈추게 한다. 우리는 멈춰서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 평소 우리가 잘 하지 않는 그 생각을 하게 한다. 그 문장에 대해서, 그 감동에 대해서, 그 문장과 감동 뒤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든다. 생각의 끝에서 우리는 ‘나’를 만나고 만다.(p.162~163)

다른 취미활동과 독서의 차별점을 ‘잠시 멈춤’에서 발견하고, 매일 집 앞을 찾아오는 고양이를 반복적으로 마주치며 짐승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이 소설가의 삶은, ‘멈춤과 반복’을 스스로 실현하려는 평생의 연습이자 작업 그 자체다. 저자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긴 이 산문은 눈밭처럼 선명한 에피소드와 그 위에 찍힌 발자국처럼 명징한 메시지를 품고 있지만, 일독(一讀)으로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고 실천하기란 어려울지도 모른다. 멈춤과 반복이 중요하다고, 멈춰서 읽고 반복해서 읽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깊은 뜻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을 것이라고, 누가 말했지 않은가.

 


 

우리가 공동체 오로빌에서 배워야 할 것은 어쩌면, 다름 아닌 믿음일지도 모르겠다. 여기가 이상향이라는 믿는, 여기가 낙원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그 정신! 낙원을 찾아가기보다는 여기를 멋지게 만들어보고 싶다. 육식을 해도, 선물 경제가 없어도, 심지어 술집이 많아도 행복할 수 있는 그런 마을을 만들어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지금 내딛는 한 걸음에 만족해야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라디오를 끄고, 다시 내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정해진 템포 없이 그 순간을 즐기면서 말이다.(p.197)

 

무언가가 우리의 마음에 소중히 남아 있는 것은 그것이 디지털이기 때문도, 아날로그이기 때문도 아니다. 그냥 그 추억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가 되어서 세상이 각박해졌다느니, 아날로그 시대가 더 인간적이었다느니 하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저 우습기까지 하다. 한 시대를, 어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기술이 아닌 사람인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추억의 알맹이에는 나, 너, 우리와 같은 ‘사람’이 담겨 있다. 그 이외에 더 중요한 것은 없다.(p.211~212)

 

저자 : 강병융

 

1975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3년부터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에서 살고 있다. 명지대학교와 모스크바국립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현재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학교 아시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소설 《손가락이 간질간질》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나는 빅또르 최다》 《Y씨의 거세에 관한 잡스러운 기록지》 등을, 에세이 《아내를 닮은 도시》 《도시를 걷는 문장들》 《사랑해도 너무 사랑해》 등을 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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