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애하는 불면증 - 잠 못 이룬 날들에 대한 기록
마리나 벤저민 지음, 김나연 옮김 / 마시멜로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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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 대한 책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전쟁이나 옛날 일제강점기, 혹은 우리 군사독재시대의 얘기가 생각난다. 독자들에게 죄송하게도 '고문'이야기다. 수사기관 등 범죄자 신문할 때, 전쟁 포로에게 군사 기밀을 알아내려 할 때 가하는 고문은 전 근대적 수사 기법이라 하여 전 세계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우리도 지금은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 근절되지 않은 악행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 고문의 방법도 상상하기 어려운 기술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꾸준히 개발 발전(?)돼 왔다고 한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고문 중의 으뜸은 극심한 고통을 주는 각종 신체에 가하는 물리력이 아니라 '잠 안 재우기'라고 알려져 있다. 다른 어떤 극한 고문도 견뎌낸 사람도 잠 안 재우기는 가장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왜 잠이 다른 신체에 가하는 물리력보다 더 큰 고통을 주는가?

이 책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은 불면증에 대해 연구하고 임상 시험, 그리고 치료 경험 등을 분석해 '불면증'의 원인을 찾아내고 치료법을 찾으려는 목적을 두고 쓰여졌다. 국어사전에서는 자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상태를 바로 ‘불면증’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습관성 불면 또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잠이 개인의 내밀한 활동의 영역이듯, 더군다나 불면증은 티가 잘 나지 않는다. 창백한 안색, 퀭한 눈으로 간접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천근만근의 몸, 메말라가는 마음은 설명할 길이 없다. 불면증에 대한 이야기가 아직 넓고 깊게 다뤄지지 못한 건 이 때문인지 모른다. 이처럼 다양한 원인에 의한 불면증은 의학사전에서는 불면장애(primary insomnia)로 표기한다고 한다. 불면장애란 잘 수 있는 적절한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수면의 시작과 지속, 공고화, 그리고 질에 반복되는 문제가 있어 그 결과 주간 기능의 장애를 유발하는 상태를 일컫는 용어이다. 그래서 세 가지 요소 - 적절한 수면의 기회, 지속되는 수면의 문제, 동반되는 주간기능장애가 함께 불면장애를 정의한다.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에 따르면 불면장애는 수면의 시작과 수면의 유지에 문제가 있고, 자고 일어나서 원기 회복이 되지 않는다. 이의 진단을 위해서는 적어도 3개월 이상 증상이 지속되어야 하며, 다른 내과적, 정신건강의학과적 장애 또는 물질(남용물질, 치료물질)로 인한 불면증이 아니어야 한다. 성인에서 불면장애는 잠들기 어렵고 반복해서 깨는 것을 주 증상으로 하는 경우가 흔하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생리학적, 심리학적 각성이 증가하고 수면에 대한 부정적 조건화(negative conditioning)가 뚜렷이 나타난다. 환자들은 보통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데에 몰두되어 있다. 그러나 자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잠은 달아나고 좌절감과 고통만 더 커진다.

이 증상의 원인은 흔히 여러 요인으로 인해 발생하기 때문에 불면증을 겪는 개인에서 원인을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일시적으로 겪는 불면증의 흔한 원인은 새로운 직장, 이사 등으로 규칙적인 생활리듬이 바뀌는 경우, 여행으로 인한 시차, 소음 등의 환경적인 요인 등이 있으며 이 경우는 처음의 유발 사건이 사라지면 대부분 며칠 이내에 증상이 호전된다. 그러나 만성적인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통증, 관절염, 두통,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불면증과 동반될 수 있다. 기분이 우울하거나 불안한 심리적인 문제도 불면증에 영향을 준다. 수면제 복용 기간이 너무 오래 되어도 수면 단계의 변화로 불면증이 심해질 수 있으며, 각성제, 스테로이드제, 항우울제 등의 약물이나 카페인이 많이 함유된 커피나 지나친 음주도 불면증의 원인이다. 그 밖에도 코콜이(수면무호흡증), 하지불안증후군, 주기적 사지운동증에도 불면증이 동반될 수 있다.

 


 

이 책은 다양한 글을 써온 영국의 작가 마리나 벤저민이 썼다. 이 에세이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은 제목처럼 불면증을 주요 소재로 삼는다. 물론 어떻게 하면 불면증을 없앨 수 있을지 같은 병리학적 접근과는 거리가 있다. 그 반대에 가깝다. 잠들지 못한 숱한 날들이 그를 잠과 불면증에 대한 연구자로 만든 걸까? 문학, 미술, 신화학, 역사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사회학을 경계 없이 넘나들며 잠과 불면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럼에도 가장 특징적인 면을 꼽자면, 고통과 결핍을 빼어난 이야기로 승화시켰다는 점과 그것이 위로와 공감의 목소리로 다가온다는 점일 것이다. 감각적이고 유려한 문체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에 대한 수많은 리뷰가 한목소리로 글 자체가 지닌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있다. 즉 이 책은 불면증 환자이든 아니든 읽으면 잠이 쏟아진다는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물론 어떤 책도 이런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을 테지만, 이 책만큼은 예외다. 저자가 아름답게 그려낸 밤의 세계는 우리를 편안한 잠으로 데려다줄 것이기 때문이다. 원제는 ‘Insomnia’로 올리비아 랭, 대니 샤피로 등 해외의 유명 에세이스트가 추천했으며, 국내에서는 다방면으로 글을 써온 두 작가 임경선과 김겨울이 추천했다. 독립 출판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의 저자 김나연이 번역했다.

 


 

책에 따르면 가까이 다가가려 할수록 멀어지고 노력하면 할수록 달아나는 것. ‘잠’이다. 생각에서 떨쳐내야 이룰 수 있는데 그게 맘처럼 되지 않는다. 애쓸수록 끝 모를 ‘부재의 고통’만이 남는다. 자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상태. ‘불면증’이다. 습관성 불면 또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잠이 개인의 내밀한 활동의 영역이듯, 더군다나 불면증은 티가 잘 나지 않는다. 창백한 안색, 퀭한 눈으로 간접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천근만근의 몸, 메말라가는 마음은 설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인지 자신에게는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기 쉽지 않다. 불면증에 대한 이야기가 아직 넓고 깊게 다뤄지지 못한 건 이 때문인지 모른다. 하지만 수면 부족을 비롯한 잠과 관련한 문제를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다는 것은 굳이 통계를 빌리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불면증은 ‘현대인의 질병’이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 책은 불면증에 대해 가장 사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모든 고민은 무언가의 결핍과 그로 인한 고통에서 시작된다고 규정한다. 잠도 마찬가지다. 결핍과 고통이 애초에 없다면 좋겠지만,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임경선 작가의 말대로 “우리의 인생에 뜻밖의 고통이 찾아오는 건 대부분 통제할 수가 없”지만 “그 문제에 내가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서만 통제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경우 결핍과 고통은 그 문제에 대한 사유, 나아가 나에 대한 근본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결핍을 벌이자 축복이라고 말하는 건 지나치게 철없는 일일까. 어쨌든 마리나 벤저민은 잠의 결핍과 불면의 고통에서 시작된 고민을 치열한 사유로 이어갔고, 자신의 불면증을 재료 삼아 책으로 빚어냈다. 그리고 이역만리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다른 이에게 기꺼이 ‘불면의 동지’가 되기를 자처하며 공감과 위로의 손길을 내민다.

 


 

저자는 솔직하고 내밀한 고백과 잠과 불면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를 조화롭게 엮어서 이야기를 끌어간다. 마치, 책에도 등장하는 『아라비안나이트』의 셰에라자드처럼. 이야기의 행로는 문학, 미술, 그리스·로마 신화, 역사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사회학 어느 한 곳에 한정되지 않는다. 르네 마그리트에서 시작해 자크 라캉과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거쳐 『로빈슨 크루소』와 칼 마르크스를 지나 샤를로트 베라트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향연이 펼쳐진다. 연관성 없어 보이는 것들이지만, 마리나 벤저민의 ‘의식의 흐름’ 안에서 하나가 된다. 200페이지 정도의 작은 책이 자신의 고통을 처절하게 읊는 회고록이었다가, 동거인과 거쳐온 사랑의 역사를 숨겨놓은 서랍 속 일기였다가, 숨겨져 있던 정보와 지식으로 가득한 비밀의 도서관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이 책의 번역자 김나연도 말했듯이 불면증과 여성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룬 것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만사 걱정이 없이 늘 순수함을 유지한 아버지와 걱정거리를 달고 산 어머니를 비교함으로써, 순진무구함이 불균형한 권력관계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그러하다. 또한 낮에 짠 수의를 밤이면 다시 풀어 실타래를 감은 페넬로페의 행위를 재해석하고, 여성이 행하는 노동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특히 불면증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는 역자는 불면증의 경우 여성이 남성보다 유병률이 1.5배 높다는 조사결과에 주목한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휴식을 취하기 어렵고, 긴장 상태가 지속되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병원 치료에 대한 적극도 역시 여성에게서 훨씬 높게 나타나는데도 말이다.

 


 

굳이 입 아프게 수면 보조제라면 모르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진 않겠다. 불면증과 나의 관계는 역사가 길다. 우리는 불가분의 관계라 설렘, 당혹감, 지루함을 거쳐 다시 설렘을 느끼는 사랑의 모든 단계를 거쳐왔다. 마치 달이 차올랐다 지는 것처럼. 불면증은 내게서 평화를 앗아간 도둑이고 악마의 숭배자다. 각성 상태에 취해 잠들 수 없을 때마다 나는 나를 악마로부터 구원해줄 수면 보조제를 찾아 나섰고 다양한 조합으로 테스트해봤다. 대부분은 잠시 효과를 보이며 나를 희망으로 부풀게 했다 이내 납작하게 찌부러뜨렸다.(p.84)

 

불면증에 대해 글을 쓰고 있으니 내가 불면증 전문가라도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이제는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수면 문제에 관한 조언을 건넨다. 대개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내가 들어본 적 없는 불면증 관련 팁은 없는 데다 먹어보지 않은 약이 없고 시도해보지 않은 수면 유도법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가장」 중에서 괴롭히는 건 불면증의 수학적 측면이다. 모든 불면증 환자는 자신의 결함에서 비롯된 자기 연민의 기록으로 머릿속에 수면 장」 중에서 부를 만들어두고 불면증이 앗아간 수면 시간과 실제로 잠들었던 시간을 끊임없이 셈해 장」 중에서 부에 기록해둔다. 결국 우리 같은 불면증 환자에게 가장」 중에서 잘 어울리는 집합명사는 적분일지도 모른다.(p.87~88)

 


 

불면증에 사로잡히면 나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몸을 뒤척이며 느끼는 육체적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그저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나 뿌리가 뽑힌 식물이 느낄 법한 존재론적 불안감도 아닌 것이, 불면증은 감정뿐 아니라 온도의 문제도 되기 때문이다.(p.29)

 

저자 : 마리나 벤저민

 

글쓰기, 가족 이야기, 회고록 등 다양한 논픽션 분야의 글과 책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 작가다. 그는 지금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소재로 삼아왔다. 첫 번째 작품 『세상의 끝에 살다』에서는 죽음에 대한 인류의 강박을 다루었으며, 『로켓의 꿈』은 우주 여행을 독창적으로 그려냈다. 또한 『바빌론 최후의 날들』은 이라크 바그다드 출신의 할머니가 살아온 삶과 그 시대를 소설화한 가족 이야기로 풀어냈다.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는 『중년, 잠시 멈춤』이 있다. 이와 더불어 『이브닝 스탠다드』와 『뉴 스테이츠먼』에서 아트디렉터로 활동하면서 영국 유수의 매체에 다양한 주제의 글을 기고해왔으며, 현재 디지털 매거진 『이온』의 선임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은 잠 못 드는 시간에 찾아오는 감정과 생각을 섬세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기록한 에세이다. 저자는 잠들지 못하는 불면의 상태를 고통과 불안의 시간임과 동시에 우리 자신과 창의성, 사랑에 대한 이해를 고양시키는 실존적 경험으로 묘사한다. 영국의 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 올리비아 랭은 이 책을 두고 “숭고한 언어로 끝을 알 수 없는 밤과 충혈된 눈으로 맞이하는 아침, 이 기이한 결핍의 해부도를 그린다”라고 평했다. [뉴요커], [가디언], [워싱턴 포스트] 등 다수의 매체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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