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책 : 문학 편 1 - 르몽드, 뉴욕타임스 선정, 세기를 대표하는 100권의 책
디오니소스 지음 / 디페랑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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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책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꽤 읽었다. 학교 다니는 동안만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학교를 마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잘 읽던 책이 점점 멀어진 것이 독자뿐 아닐 것이다. 바쁘지 않은 직장 없고, 회식 없는 직장 없다. 핑계로는 참 좋다. 타인에게 대는 핑계가 아니라 자신에게 "왜 요즘은 책을 안 읽어?"라며 자문자답할 때의 핑계다. 무려 이십 년의 공백을 두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 게 코로나 팬데믹 때문이었다. 직장과 집에서의 시간이 주체 못할 정도로 많아졌다.

이때 우연히 눈에 띈 게 옛날, 한창 책 읽던 시절에 탐독했던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었다. 책 좀 읽었다는 사람들은 번역본으로 한두 번쯤 읽었을 법한 양서이다. 당시 러시아 서적은 구 소련 체제여서 공산주의와 관련된 사상 서적이나 이념 책들은 금서로 지적된 게 많았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푸시킨 등의 책들을 금서 목록에 오르지 않았다. 아마 러시아가 구 소련으로 공산화되기 전에 쓰인 책이고 공산주의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러시아 사회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그랬을 것 같다. 또 그들은 세계적인 문호로 이미 잘 알려진 작가이고 시인인데 그들의 책까지 금서로 지정해 못 읽게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도 하지 못할 일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왜 독자의 책장에 꽂혀 있는지도 기억이 안 날 만큼 오랫동안 책장에 꽂혀 있었던 것 책 중의 하나다. 이 책 『세기의 책- 문학 편1』에 당연히 들어가 있을 줄 알고 찾아보았지만 아쉽게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죄와 벌』,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등 예전에 읽었던 책들이 빠져 있어 조금은 아쉽다.

 


 

이 책 『세기의 책』은 '양서(良書)'를 소개하는 책이다. 양서이며 문학하는 사람들에게는 필독서일 수도 있다. 물론 문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무척 인기 있고 꼭 읽어야 할 책들이지만. 이들 책은 처음 출판 당시 제정 러시아의 국민들의 삶과 사회 분위기, 부정부패, 부조리 등 소설의 양(量)만큼 많은 부정한 사회를 고발하는 소설이다. 세상 삶의 이치나 현재의 세상, 삶의 원칙이나 삶에서 중요한 것 등 삶에 관한 일을 문학적으로 표현해 낸 걸작이다.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독자의 눈으로는 프랑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과 맞먹는 대작이라고 생각한다. 조그만 책에 많은 책을 다 담을 수는 없다. 때문에 저자나 출판사들도 이 같은 책을 내기가 쉽지 않을 터다.

그래도 힘들여 내는 것은 좋은 책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것도 출판사나 출판업계의 의무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저자나 출판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 터인데 투정을 부린 것 같다. 독자들도 아다시피 세상에 양서가 한둘이던가? 그 많은 책들 중 뭘 기준으로 양서로 선정할 것인가라는 필연적인 문제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 출판사 측은 캐나다의 문화비평가 마셜 맥루언의 말을 인용해 출판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정보의 양이 늘어나면 정보의 밀도가 떨어진다. 그가 우려했던 정보화 시대는, 그때로부터 40여 년이 더 지난 오늘날에 보다 절감하는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전문가를 넘어서는 블로거와 유튜버들도 존재하지만, 검색되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되레 선별의 어려움을 겪는, 밀도의 문제 너머에서 신뢰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맥루언의 분석은 서점가에도 유효하다. 출판사의 수가 많아지고 출간의 벽도 낮아진, 하루에 100권의 신간이 쏟아져 나오는 시절이다 보니 양서(良書)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은 일. 쇼펜하우어는 이런 경우엔 그냥 고전을 집어 들라고 말했다. 인류의 통시적 공시적 선택으로 증명된, 시간의 마모를 견뎌낸 컨텐츠. 가다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앞서 잡은 완전함’의 전제를 통해 보다 큰 지평으로 옮아가는 확장성. 그런 취지에서 가장 '가까운 시대'의 고전 목록을 담은 기획이다. 물론 서점가에 이런 기획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아니 너무 많다. 선정 기준의 신뢰도는 그것을 선정한 매체의 타당도에 기반하기도 하기에, ‘르몽드’와 ‘뉴욕타임스’라는 변별도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그 중에서도 ‘문학 편’의 매뉴얼을 모은 첫 권이다.

저자는 물론 출판사 편집진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다. 합리적인 판단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르몽드'와 '뉴욕타임스' 선정 100권에도 제정 러시아 작가들과 작품들은 모두 빠져 있다. 출판사 측이 '가까운 시대'라는 말을 뺐다면 어쩌면 이 책의 신뢰도는 현저히 떨어질 뻔했다. 독자는 '고전'의 의미는 세월이 가도, 지역이 바뀌어도 인간이 읽는다면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개인이 아닌 '문학, 예술, 철학 등 인문학 전반을 아우르는 니체의 키워드로 이름한 인문 프로젝트 팀'이라고 한다. 물론 그 팀에 합류해 일한 분들의 이름과 활동 사항은 저자란에 별도로 기재했다. 독자도 그렇지만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디오니소스'는 잘 알지만 '디오니소스적 가치'란 말은 생소하다. 어쩔 수 없이 사전을 찾아 무엇인가를 간단하게 적는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니체 철학의 과제는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을 수립하는 일이다. 디오니스소적 긍정의 대상이 되는 것은 생성의 법칙이 지배하는 이 세상,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 및 인간의 삶이다. 이 과제는 1881년 이후 니체에 의해 자신의 철학의 과제로 설정된 이후 니체 사유의 마지막까지 일관되게 유지된다. 생성에 대한 철학적 정당화인 생기 존재론, 관점주의 인식론, 비도덕주의 윤리학, 신체로서의 인간관 등은 니체가 이 과제 수행을 위해 내놓은 답변들이다. 이 답변들은 각각 서양의 기존 자명성 및 철학을, 니체 자신의 과제와는 대립되는 과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비판하고 그 한계를 지적하면서 주어진다. 더불어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로 극단적 상황(인식허무적 상황; → 2. 허무주의)을 스스로 구성해 본다. 이런 방식의 철학함을 니체는 '실험 철학'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실험철학은 기존의 자명성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였거나 아직도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허무적 상태를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창조자이자 해석자로, 의미와 가치 설정의 주체로 인정하고 자신의 힘을 행사하는 인간에게는 허무적 상황을 극복하게 한다. 이런 인간만이 유일하게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의 주체가 될 수 있기에,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은 곧 인간의 (위버멘쉬로의) 자의식의 변화를 전제하는 철학이며,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철학이다. 이 철학적 프로그램이 사유의 완성도 측면에서나, 프로그램을 진행시키는 집약도 측면에서 절정에 이르는 시기가 바로 1885~1889년 사이의 시기이며, 이 시기의 글들이 『유고』의 형태로 남아 있다. 두세 번을 거듭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그냥 외우든지 그런 줄 알고 이해하는 선에서 그쳐야겠다는 생각이다. 다른 곳으로 방향이 바뀔지도 모르니.

 


 

이 책은 4개의 테마로 나뉘어져 있다. ① 고도를 기다리며 ② 멋진 신세계 ③ 인간의 조건 ④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 4개다. 모두 고전 작품의 제목이다. ①번 테마에는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토마스 만의 『마(魔)의 산』, 치누아 아체배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어라』, 베르코르의 『바다의 침묵』,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이 실려 있다. 이들 작품에 대한 내용과 해설이다. ②번 테마에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셰계』, 조지 오웰의 『1984』, 사르트르 『구토』,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말테의 수기』, 보리스 비앙의 『세월의 거품』, 옴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호르헤 루이스 보르해스의 『픽션들』이 각각 다루어진다. ③번 테마엔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경멸』, 펄 벅의 『대지』, 루쉰의 『아Q정전』,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억척어몀과 그 자식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하일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등이다.

마지막 ④번 테마에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유진 오닐 『밤의로의 긴 여로』, 미셀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등이 각각 자리하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작가들이고 불후의 고전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저자가 「프롤로그」 첫 문장에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본문에도 적혀 있듯, '읽지 않았으면서 읽은 척하는 책 1위'라고 한다는 말에 독자도 '뜨끔'했다. 상당히 많이 독자도 여기에 소개되는 책 전부를 읽지는 못했지만 3분의 2 이상은 읽었고,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스스럼없이 아는 척 떠들었는데 너무나 정확하게 지적했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솔직한 고백에 독자도 더 이상 숨기지 못할 것 같다. 읽은 것처럼 예전처럼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려면 해결책이자 유일한 방법은 저자의 권유대로 한권 한권 찾아 읽는 길뿐이다.

 


 

이 책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처음 소개한다. 독자가 대학 다닐 때 책보다 연극으로 상연되는 것을 먼저 본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그때 '고도'가 누군인지도 연극을 보고서 알게 됐으니... 언제 올지, 안 올지조차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은, 이런저런 기다림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낸다. 오지 않는 고도와 기다림을 포기하지 못하는 두 남자. 저자는 "덧없는 희망이 지니고 있는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고 조심스럽게 해석한다. 저 자신들이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르면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행위 자체로 위안을 삼는 삶 말이다. 저자는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한 글을 소개하며 "무엇을 기다리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아직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도래할 것이 아직 남아 있다는 믿음 자체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라 달래고 어르는, 곧 '강림'의 속성인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때로 그 강림의 속성으로 하염없이 뒤로 물러나는, '언젠가는'이라는 순간에 대한 기다림."이라는 마지막 문장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고도가 누구인지, 뭘 의미하는지, 학실히 알 수 없는 건, 사실 우리가 삶의 목표나 의미를 명확히 하나로 정리할 수 없는 일과 같지 않을까? 의미 있는 삶의 목표로 하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고고와 디디가 자꾸만 지금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는 걸 잊듯, 그렇게 망각 속에서 한 시절을 보내곤 한다. 달리 생각해 보면, 어쩌면 고도는 거창한 삶의 이유나 가치보다 그저 한 오라기 실낱 같은 희망일지도 모르겠고, 고단한 삶을 평안하게 만들 생의 마지막 순간일 수도 있겠다. 언젠가 고도가 드디어 액석 장소에 나타난다면, 흥미진진하고 신나는 새로운 삶의 한 장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때까지의 이야기가 종결되고 마는 건 아닐까?"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건, 긴 설명 없이도 이해하고 이해받는다는 느낌과 동시에, 저 사람의 깊은 속을 들여다볼 수 있고 나 또한 드러내지 않은 속을 이미 다 들킨다는 불편함을 안겨 주기도 한다. 내 영혼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사람에게 내가 평화롭지 못할 때 내 속을 가차 없이 들키는 것은 상당히 불편하다. 그리고 만약 둘 사이의 관계가 온전치 못할 때는 배로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p.184)

 

저자 : 디오니소스

문학, 예술, 철학 등 인문학 전반을 아우르는 니체의 키워드로 이름한 인문 프로젝트 팀.

 

저자 : 나승철

독서와 함께 글과 강연으로 먹고삶. 고등학교와 대학 입시 컨설팅과 인문학 강연 중. 교양과 기술의 융합적 사유와 실천을 추구하는 리버럴아츠밸리 대표.

 

저자 : 송민경

회사생활의 지친 마음을 책으로 위로 받고 감성을 충전 중인, 문학으로 인간과 세상에 대해 눈뜨고 있는 책 여행자

 

저자 : 안정희

아름다운 문장을 만날 때 행복해하고 쓰면서 위로받는 회사원. 문학을 통해 당신과 나를 알아간다.

 

저자 : 민이언

니체를 사랑하는 한문학도, 프루스트를 좋아하는 철학도, 글 쓰는 편집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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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태어났는데 엄마가 황서미 - 이상한 나라의 엄마와 도도한 사춘기 소녀의 별거 생활
황서미 지음 / 느린서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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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눈을 떠보니 태어나버렸다. 어쩌다 태어났는데 엄마가 황서미란다. 황서미? 그녀는 누구일까. 삶에 대한 선한 의지와 희망으로 누구보다 찰떡궁합으로 합을 맞춰가는 철없는 엄마와 똑똑한 사춘기 딸의 일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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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태어났는데 엄마가 황서미 - 이상한 나라의 엄마와 도도한 사춘기 소녀의 별거 생활
황서미 지음 / 느린서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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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쩌다 태어났는데 엄마가 황서미』는 제목부터 묘하다. 제목대로라면 화자는 딸이고, 딸이 태어나보니 엄마가 '황서미'였다. 그렇다면 황서미는 누구인가. 이 책의 지은이라고 표지에 당당하게 이름이 박혀 있다. 그런데 왜 저자 황서미의 관점이 아니고, 딸의 관점에서 제목을 지었을까. 부제 「이상한 나라의 엄마와 도도한 사춘기 소녀의 별거 생활」에서 실마리가 아닌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

부제가 말해 주는 것은 엄마와 딸은 별거 중이고, 딸은 사춘기 소녀다. '이상한 나라의 엄마'란 외계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보다는 성격이 일반 엄마들과 조금 다르다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출판사 측의 책 소개글에서 힌트를 찾으려 읽어본다. "어쩌다 보니 엄마가 되었다. 게다가 이제는 딸이 그 이름도 무서운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엄마와 딸, 심지어 두 사람이 한집에 살지 않는다. 어쩐 일인지 두 사람은 각자의 집에서 각자 살고 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엄마와 딸은 아니다. 한집에 살지는 않지만 사춘기 '곰돌'은 엄마에게 비밀이 없다. 심지어 유튜브 계정도 같이 사용한다. 시시콜콜 오늘 있었던 일을 전부 이야기하는 사춘기 곰돌. 하지만 이상한 나라에서 온 엉뚱한 엄마는 어쩐 일인지 비밀이, 과거가 너무 많다. 아침드라마 열 편 정도의 과거를 가진 엄마 황서미, 무사히 사춘기 곰돌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낼 수 있을까?" 독자도 궁금하고 조심스럽다.

 


 

이 책의 처음은 「편집자의 글」로 시작된다. 편집자는 이 글을 통해 이 책의 출판 비하인드 스토리를 간략하게 적어놓았다. 책의 앞 부분에 적어놓을 것으로 미루어 출판이 '쉽지는 않은 듯'하다. 어느 날 카톡이 왔다. 이 책의 저자분이다. 당시 프리랜서 작가였던 것 같다. 중학생 딸의 이야기를 브런치에 연재하고 있는데 시간이 나면 재미 삼아 보라고 하는 내용의 카톡이다. 편집자는 '중학생 딸'이라는 사실에 '중학생 소녀의 일상을 어느 정도 알게 되고, 씩씩한 소녀의 이야기가 원고에 빼곡히 적힌 모양이다. 편집자는 무엇에도 기죽지 않는 소녀, 자신만의 철학도 있는 소녀라고 판단해 흥미를 가졌다. 소녀의 이름은 바로 '곰돌'이다.

원고에 얽힌 우여곡절을 들어보니 한 출판사와 계약 후 진행한 원고였는데 어쩔 일인지 편집의 방향이 잘 맞지 않아 출판이 무산된 원고라 한다. 편집자의 생각에 조금은 특별한 중학생 소녀와 조금은 이상한 엄마의 이야기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저자의 허락을 얻어 출판 대여섯 곳에 출판을 의뢰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출판사에서 출판을 완곡히 거절하는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① 재미있지만 엄마와 딸이라는 소재가 너무 뻔해서 안 팔릴 것 같다. ② 저자의 인지도가 아쉽다.라고 전했다. 몇 곳의 거절을 당하다 보니 이젠 편집자의 자존감도 동시에 하락했다고 한다. 마치 자신이 거절당하는 느낌이었다고. "거절은 아무리 많이 당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괜찮다며 스스로를 위로해봐도 자꾸만 거절이 반복되다 보니 급격이 우울해졌다"고 편집자는 밝힌다. 편집자는 지금의 출판사 사장이다. 말하자면 상한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이 책의 출판을 맡은 것 같다. 이유는 충분하다. 이 책이 출판할 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편집자이자 출판사 측에 보인 '곰돌'은 사춘기 소녀(원고 작성 당시 중2)였다. 편집자는 곰돌에게 매력을 느꼈다고 풀어놓는다. 책이 잘 팔릴지, 안 팔릴지는 둘째 문제고, 이 소녀를 소개하고 싶어 미치겠다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은 편집자의 말은 충분한 이야깃거리의 소녀보다는 씩씩한 사춘기 소녀의 원형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편집자는 원고를 다듬으면서 어쩌면 곰돌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읽는 걸 싫어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단다. "곰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할지도 모른다. 이 책으로 인해 곰돌이가 어쩌면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인쇄를 넘기기 전까지도 걱정이 들어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다짐했다. 그런 걱정이 들 때마다 곰돌에게 민트초코 맛 아이스크림을 건네야겠다고. 너의 이야기를 읽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볼 용기를 낸 사람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독자로서는 「편집자의 글」에서 엄마와 딸, 두 사람의 삶의 희망, 진정성과 역경 극복의 선한 의지를 읽어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책의 내용에서 1980년대를 지나온 엄마의 사춘기와 지금 사춘기인 딸이 교차된다. 이들이 겪는 삶 역정에서 새대차를 읽을 수 있고, 가족의 정, 엄마와 딸의 사회적 관계, 한 인간으로서의 엄마와 딸, 사춘기의 세대차 등 한 편의 인생 드라마가 펼쳐진다. 초고속 인터넷을 공기처럼 마시며 사는 대한민국에서 곰돌은 사춘기를 보내는 중이다. 공부도 해야 하고, 다이어트도 해야 하고, SNS도 해야 하고, 코로나19 때문에 학교는 가는 둥 마는 둥, 살다 살다 상상도 못해본 특별한 몇 년을 사춘기와 함께 보내게 되었다. 마스크를 쓰고 2년이나 중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 입시 면접도 온라인에서 줌으로 하는 경험도 했다. 참으로 급격하게 변하는 2020년대를 보내는 중인 사춘기 곰돌의 일상은, 불만이 가득해 보이기도 하지만 참 씩씩하고 당당하다. 서울에서 제일 알아주는 학원가 근처에 살면서도 학원 컨베이어 벨트 속으로 깔려 들어가지 않고 곰돌은 자신만의 인생행로를 찾아가는 중이다.

 


 

그런데 곰돌의 엄마, 황서미의 과거가 흡사 아침드라마 수준이다. 약간 이상한 나라에서 온 곰돌의 엄마는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걸까? 엄마가 이혼을 해버리는 친아빠의 존재는 알 수 없게 되어버렸고 더구나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발달 장애 동생까지 생겨버린 상황, 도저히 아저씨 그리고 갑자기 생긴 동생 만두와 함께 살 수 없어 옆 아파트-외할머니 댁에 피신 중인 곰돌, 그러다가 중3이 되어 이제는 독립하여 자취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라이프를 즐길 수 있어 조금 행복해진 사춘기 소녀, 곰돌의 다사다난한 사춘기 하루하루가 눈물겹도록 재미난 이유, 그리고 도도한 이 소녀를 자꾸만 응원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뭘까? 어쩐 일인지 그녀에게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22년을 사는 도도한 사춘기 소녀의 이야기도 판타스틱하고 재미있지만, 엄마 황서미가 살아온 1980년대의 사춘기 이야기도 여기에 함께 보태지며 교차된다. 1980년대를 지나온 엄마는 다이어트를 하는 딸을 바라보며 탈모까지 겪으며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했던 자신의 학창시절을 생각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선생님과 싸우고 속상해하는 딸을 보며 자신이 겪었던 무수한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돌아보기도 한다. 아직은 미래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곰돌, 그러나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힘들었던 엄마의 사춘기도 묘하게 비교가 된다. 아직 남자친구가 없다는 곰돌의 모태솔로 고백에 엄마는 박수를 보내고, 그와 반대로 무수하게 사랑하고 헤어지고를 반복했던 엄마는 자신의 복잡한 연애를 떠올리기도 한다.

 


 

수학여행에 가서 술을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곰돌의 이야기에, 옛날 옛적에 수학여행에 가서 술 싸가지고 온 친구들이 담임 선생님에게 줄줄이 뺨을 맞던 기억도 포개진다. 더불어 지금의 새로운 문화들-당근 마켓에서 활약하는 곰돌의 이야기,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 못하고 잠옷 입고 ‘온클’로 수업하는 요즘 중딩의 이야기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사실, 나날이 몸도 마음도 커져가는 사춘기 딸에 대한 소중한 기록이자, 엄마로서 미안한 마음을 담아 이런저런 자신만의 사정을 변명처럼 해보며 시작한 글이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딸에게 조금은 특별한 삶을 선사하게 된, 엄마의 짠한 마음을 담은 일종의 변명기라고 하면 어떨까.

이것저것 불만은 많지만 곰돌은 아직 엄마 황서미가 제일 좋다고 한다. 가끔은 세탁을 잘못해서 옷을 잔뜩 줄여놓기도 하는 엄마지만, 가족 중에 제일 말이 통하는 사람이 바로 엄마이기 때문이다. 엄마 황서미는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곰돌에게만은 든든한 비빌 언덕이 되어주겠다고 다짐한다. 앞으로 겪게 될 무수한 인간관계와 앞으로 겪게 될 인생살이가 분명히 만만하지도 않고 예상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겠지만 언제든지 곰돌이 찾아와서 종알종알 이야기할 수 있는 엄마, 경제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기댈 수 있는 엄마가 되는 게 자신의 목표라고 선언한다.

 


 

딸에게 남들처럼 평범한 가족을 만들어주지 못해 미안해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끈끈하고 친밀한 엄마인 황서미, 아이의 기를 꺾어서 엄마에게 그저 순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라톤을 함께하는 페이스메이커처럼 옆에서 호루라기를 불며 지치지 말라고 응원하는 엄마가 되겠다고 그녀는 다짐한다. 학교 끝나고 학원 뺑뺑이 돌리는 거 말고, 같이 쇼핑도 하고 핫한 카페에서 데이트도 하면서 알콩달콩 추억을 곰돌과 만드는 중인 엄마 황서미. 이 책은 유쾌하고도 확실한 철학을 가진 그녀의 멋진 엄마 되기 분투기, 그런 엄마와 매일 우당탕탕 귀여운 신경전을 벌이는 사춘기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소중하고도 소소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 : 황서미

 

1974년생, 호랑이띠로 태어났다. 격동의 1980년대에 사춘기를 보냈다. 그리고 2020년대에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딸이 하나 있다. 어렸을 때는 글짓기 대회만 하면 불려 다니던 백일장 키드였다. 인생의 쓴맛, 단맛, 짠맛, 매운맛 골고루 맛보며 영화처럼 판타스틱하게 살았다. 1999년, 광고대행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한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다양한 직업을 거쳐 왔다. 지금은 몸도 마음도 알맞은 곳에 정착하여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현재, 그동안 살아온 삶이 아까워 한 6~7년째 그 재료로 드라마 한 편 쓰려고 노력 중이다. 식당에서 혼밥하고 있을 때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재미난 이야기들을 [서울신문]에서 「황서미의 시청각 교실」이라는 이름으로 연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시나리오 쓰고 있네』 『아무 걱정 없이, 오늘도 만두』가 있으며 곧 『이혼학교』를 출간할 예정이다. 학교 앞 분식집에서는 꼭 ‘만두’ 라면을 시키고, 용돈을 모아 슈퍼에서 ‘고향만두’를 한 봉지 사 와서 데워 먹던, 꽤 오래된 만두 마니아다. 좋아하는 만두는 칼칼한 김치만두. 많은 한국 사람들의 군만두 사랑이 어려서부터 의아했으나, 한참 어른이 되고 나서야 잘 튀겨진 군만두의 육즙에 반했다. 취미는 틈만 나면 음식에 관한 다큐멘터리 보기. 요즘 OTT에서 잘 차려진 음식 다큐멘터리들이 계속 나와 기쁘다. 또 하나의 취미는 혼자 여행하기. 콘셉트는 무조건 ‘식도락 여행’. 처음 가보는 곳에서 맛있는 한 끼를 먹는 시간은 최고의 낙이다. 그리고 그 순간의 느낌을 차곡차곡 기록한 것을 소중한 재산으로 여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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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장차 붓다가 되리라 - 소설로 읽는 붓다의 가르침
김정빈 지음 / 덕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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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책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철학서이기도 하다. 책에서는 세 주인공이 등장한다. 전생과 현생을 거듭하며 윤회의 삶을 살아가는데, 죄악을 저지른 빙기사도 붓다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책의 주제이며, 제목이다. 삶과 죽음은 무엇인지 등 근원적 질문의 답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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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장차 붓다가 되리라 - 소설로 읽는 붓다의 가르침
김정빈 지음 / 덕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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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그대는 장차 붓다가 되리라』는 소설책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철학서이기도 하다. 책에서는 세 주인공이 등장한다. 전생과 현생을 거듭하며 윤회의 삶을 살아가는데, 죄악을 저지른 빙기사도 붓다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책의 주제이며, 제목이다. 삶과 죽음은 무엇인지,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 누구나 품게 마련인 근본 질문에 대해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빌려 불교사상으로 답한다. 삶과 초월, 선과 악, 운명과 자유의지, 꿈과 이상에 대한 불교 사상이 장엄하게 전개되어 있으며, 한역대장경, 티베트대장경 등 3대 불교 경전의 핵심 사상을 소설을 읽다 보면 절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저자는 밝힌다.

독자는 불교에 대해 고등학교 때 세계사 시간에 잠깐(분량으로 보나 시간으로 보나) 배운 기억이 있고, 그것도 주로 '간다라 미술', 불교 전래, 우리나라의 불교 수용 등 정도만 배웠다. 불교 철학이나 불교 사상은 개인적으로 책 몇 권 읽거나 우연한 기회에 절에서 얻어 들은 게 전부다. 그러니 불교 경전을 제대로 알기는커녕 읽은 기억도 없다. 역사 시간에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던 부분은 남방불교과 북방불교에 대한 내용이다. 이 때문에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기까지는 꽤 어려웠는데 저자가 각주 등을 통해서 잘 풀어주어 해결할 수 있었다. 소설을 읽었다기보다 불교를 배운다는 의미가 더 컸고, 배우는 재미가 배가된 셈이다. 불교를 종교로서, 학문으로서, 철학으로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경전의 내용이 너무 어려워 이해하기가 쉽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경전은 원전이 각지로 뻗어나갈 때 한자와 티베트어로 번역된 게 많다고 한다. 특히 우리는 한역대장경을 기본으로 한다고 들었다.

 


 

책의 내용은 사끼야국의 왕 밧디야, 아름다운 왕비 아유타, 아유타를 사랑하는 음유시인 빙기사 세 주인공의 전생, 전전생, 금생의 사랑과 우정, 배신과 복수, 용서와 화해의 이야기가 마치 판타지 영화처럼 웅장한 스케일로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세 사람이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 속에서 독자들은 붓다의 존엄한 가르침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사리뿟따(사리불), 목갈라나를 비롯한 으뜸제자들의 설법도 책의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저자 김정빈은 1985년에 불교에 귀의하였고, 1989년부터 위빠싸나 명상을 수행하고 있다는 분이다. 그는 불교의 논리와 철학을 대중화, 세계화하기 위해 불교 사상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비롯한 서양 철학에도 관심을 갖고 열린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한다. 이 책은 붓다의 가르침을 명료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으므로 불교 교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도 붓다의 가르침을 삶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게 특장점이다. 또한 이 책은 일반적인 소설과 다른 특별한 장치가 되어 있는데 무려 128개나 되는 각주다.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붙여둔 각주만 읽어도 불교 교리를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다. 독자가 각주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이미 앞서 밝혔다.

 


 

이 책은 불교 교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한 내용이 담겨 있다. 470페이지에 이르는 두꺼운 분량이지만 흥미진진한 판타지 소설을 읽어나가듯 내용에 빠져들고, 때론 자세를 고쳐앉으며 심오한 불교 경전에 담겨 있는 존엄한 붓다의 가르침에 집중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고단한 오늘을 살아가며 힘겨워하는 사람들의 고민거리들이 해소되고 삶의 희망과 힘을 얻길 기대한다.

1984년 소설 『단(丹)』으로 1년 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며 전국적으로 단학 열풍을 일으키며 초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던 김정빈 작가가 불교 경전의 핵심 사상을 소설 속에 녹여내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저자는 2012년 발행된 3400장에 이르던 방대한 『소설경』의 내용을 불교에 관심을 갖고 있는 영미권 독자를 위해 1700장으로 간결하게 줄여, 우리나라에서는 『그대는 장차 붓다가 되리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는 『Six Month with Buddha』라는 제목으로 동시 출간했다고 설명한다. 이 작품은 천상계와 인간계를 넘나들면서 윤회를 거듭하며 인간의 운명과 자유의지, 선과 악, 고통과 행복 등 삶의 진리를 찾고자 하는 세 주인공의 이야기와 주인공 중 한 명인 빙기사를 만나기 위해 6개월간 수많은 제자들과 함께 먼 여행을 떠나는 붓다의 장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엄청난 죄업을 저지른 빙기사는 어떻게 붓다로부터 “그대는 장차 붓다가 되리라”는 선언을 듣게 되었을까? 천남 라자와 천녀 시리마는 첫눈에 서로에게 반해 부부가 된다. 보통은 아기가 엄마의 몸을 통해 세상에 태어나지만 천인은 엄마의 몸을 통해 태어나지만 태어나지마자 성인의 모습을 가지게 된다. 천남은 스무 살, 천녀는 열여섯 살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라자가 도리천에 나타나고 천인들이 교육을 받고 있는 삭까 왕의 웨자얀따 궁전으로 간다. 그곳에서 미인 시리마를 만난다.

둘은 부부가 되고 자신들이 전생을 이야기하는데 라자는 한 평범한 가정의 외아들로 태어났지만 열여섯 살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곧 부모님 또한 차례로 돌아가시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그렇게 길을 떠나 수루 노인을 만나 대화를 하고 죽음과 삶을 알게 된다. 시리마는 전생과 전전생 두 번의 생을 살았다. 전생은 사누라는 승려 가문의 외아들로 끊임없이 수행일 해야했지만 수행에 전념하지 못했다. 전정생은 미모의 여성 야소자였지만 폭력적이고 난폭한 아버지에게 결혼 전 그만 능욕당하고 임신을 하게 된다. 결혼 전 임신을 한 몸으로 결혼할 수 없어 약을 먹고 죽음을 선택한다.

 


 

라자와 시리마는 도리천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붓다의 특별제자가 되어 6개월 동안 여러 가지 사건을 지켜보며 불법을 배운다. 붓다는 뛰어난 수행자를 만나기 위해 6개월 동안 여행한다. 그 과정에 밧디야 왕과 아내 아유타 왕비를 만나게 된다. 밧디야는 사리쁫다의 제자로 밧디야와 함께 다른 길로 여행을 하다 붓다와 만나게 된다. 밧디야는 전생에 자뚜라는 장군으로 아사타라는 아내를 두었다. 자뚜에겐 담마딘나라는 장교가 있었고 아사타를 사랑했지만 자뚜와 아사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자뚜는 그런 담마딘나의 희생을 모르고 죽음을 맞이하는데 담마딘나는 금생에 빙기사로 태어난다. 밧디야는 사리뿟따와 여행을 하며 깨달음을 얻고 아유타와 빙기사와 화해를 하게 된다. 아내 아유타는 담마딘나를 연민하였고 아유타로 태어나 보살행의 깨달음을 얻고 반열반에 오른다. 인물들은 전생의 삶에서 얻은 업보를 금생을 통해 진정한 불교의 깨달음을 얻고 다음생을 살아간다.

 

"시리마는 라자의 생각을 금방 알아챘다. 두 천인은 연인들끼지만 통하는 짧은 눈짓을 주고받은 뒤 시녀들에게 둘러싸여 환희동산으로 산책을 나섰다. 과연! 환희동산에 들어서자마자 두 천인의 마음은 아련한 황홀경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쌍무지개가 뜬 공중에 붉고 노란 날개를 가진 수만 마리의 하늘 새들이 날아가고 있는 가운데 은은한 종소리가 우웅우웅 결을 지으며 들려왔다.(p.27)

 


 

“혹 세존께서 언급하시는 빙기사가, 밧디야 테라와의 악연으로 비구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는 음유시인 빙기사는 아니겠지요?”

“바로 그 빙기사이다.”

“하지만 세존이시여, 그는 밧디야 테라가 사끼야국의 왕이었던 시절 그의 아내 아유타를 유혹하여 간음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러고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삿된 믿음에 빠져들어 수만 명의 생명과 재산을 파괴하는 종교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로써 볼 때, 그는 다음생에 가장 고통스러운 지옥에 떨어져 오랫동안 고통의 과보를 받음도 오히려 부족하다고 하겠거늘, 무엇 때문에 인간과 하늘세계의 스승이신 세존께서 그 비루한 중생을 만나기 위해 여섯 달이나 걸리는 먼 여행길을 떠나시겠다는 것입니까?”(p.99)

 

그 괴로움의 정황은 중생으로 하여금 두 가지 갈림길 앞에 서게 합니다. 그때 중생은 자신의 좌절과 눈물을 정당한 방법으로써 해결하는 길과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써 해결하는 길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오직 정당한 방법으로써만 그 문제를 다루는 중생이 과연 있을까요? 그런 중생을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경우에나 양심을 거리끼지 않고 사는 삶은 얼마나 깨끗한 삶이겠습니까? 얼마나 개운한 삶이며, 얼마나 훌륭한 삶이겠습니까? 그러나 중생은 그런 삶을 살지 못합니다. 바꿔 말해서 어떤 생명 존재가 중생이라 불 리는 것은 그가 안으로는 부끄러운 마음을 일으킨다는 것을, 밖으로는 창피한 행위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p.299)

 


 

마음 한가운데서 ‘아니다! 이 피흘림이 거룩할 수는 없다!’는 소리가 들려왔소. 어린 시절 어머니가 불러 주시던 다정한 자장가처럼, 오래 잊고 있었던 소년 시절의 그리운 피리 가락처럼 그 양심의 언어가 내 마음에 되살아났던 거요. 갑자기 엄청난 고통이 온몸을 강타했소. 나는 미치광이처럼 허둥대며 시신 사이에서 무기를 찾았소. 그런 끝에 나는 칼 한 자루를 찾아 내 심장을 찔렀소. 아니, 심장을 찌르려는 바로 그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힘의 강력한 제지를 받으며, 아마도 과거생에 지은 작으나마의 공덕의 제지를 받으며 풀썩 쓰러졌소.(p.414)

 

저자 : 김정빈

 

1980년 《현대문학》에 수필 추천, 198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로 등단하였다. 1984년에 낸 소설 《단丹》이 다음해 1년 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으며, 이후 《도道》, 《숭어》, 《성자들의 마을》, 《감꽃마을》, 《마음을 다스리는 법》, 《리더의 아침을 여는 책》, 《근본불교의 가르침》, 《만화 불교》(전5권, 최병용 공저) 등 문학, 종교, 명상, 리더십에 관한 70권의 책을 냈다. 1985년에 불교에 귀의하였고, 1989년부터 위빠싸나 명상을 수행하고 있다. 계몽사어린이문학상 수상. 전 현대문학수필작가회 회장. 전 맑은마음명상원 원장. 전 목포과학대학 웰빙명상 교수. 그는 문학을 사랑하고 성스러움을 우러르며 살아왔다. 문학 작가로 출발하여 인류의 사대성인을 두루 탐구한 끝에 《단》이 널리 읽히던 1985년에 불교에 귀의하였다. 이후 한동안 종교와 명상 수행에 전념하였으나 여러 해가 지나 세속정신에도 성스러움이 있음을 깨우침으로써 인간의 모든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2012년에 문학과 성스러움을 결합한 작품 《소설경》을 발표하였다. 2022년 4월, 영미권 독자를 감안하여 보다 간결하게 정리된 《소설경》이 미국 출판사 MASCOT BOOKS를 통해 《SIX MONTH WITH BUDDHA》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SIX MONTH WITH BUDDHA》의 한국어판이다. 한편으로는 문학소설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교사상서인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삶은 무엇인지와 어떠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반드시 불교에만 제한되지는 않는다. 불교라는 웅대하고 장엄한 산봉우리 아래에 불교 밖의 수많은 철학과 종교를 골짜기, 동굴, 능선으로 품어 안는다. 더하여 그 산봉우리 위에 문학예술로써만 그려 낼 수 있는 멀고도 아슴아슴한 무언가를 하늘로, 빛으로, 바람으로, 흰 구름으로, 무지개로 그려 내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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