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태어났는데 엄마가 황서미 - 이상한 나라의 엄마와 도도한 사춘기 소녀의 별거 생활
황서미 지음 / 느린서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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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쩌다 태어났는데 엄마가 황서미』는 제목부터 묘하다. 제목대로라면 화자는 딸이고, 딸이 태어나보니 엄마가 '황서미'였다. 그렇다면 황서미는 누구인가. 이 책의 지은이라고 표지에 당당하게 이름이 박혀 있다. 그런데 왜 저자 황서미의 관점이 아니고, 딸의 관점에서 제목을 지었을까. 부제 「이상한 나라의 엄마와 도도한 사춘기 소녀의 별거 생활」에서 실마리가 아닌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

부제가 말해 주는 것은 엄마와 딸은 별거 중이고, 딸은 사춘기 소녀다. '이상한 나라의 엄마'란 외계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보다는 성격이 일반 엄마들과 조금 다르다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출판사 측의 책 소개글에서 힌트를 찾으려 읽어본다. "어쩌다 보니 엄마가 되었다. 게다가 이제는 딸이 그 이름도 무서운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엄마와 딸, 심지어 두 사람이 한집에 살지 않는다. 어쩐 일인지 두 사람은 각자의 집에서 각자 살고 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엄마와 딸은 아니다. 한집에 살지는 않지만 사춘기 '곰돌'은 엄마에게 비밀이 없다. 심지어 유튜브 계정도 같이 사용한다. 시시콜콜 오늘 있었던 일을 전부 이야기하는 사춘기 곰돌. 하지만 이상한 나라에서 온 엉뚱한 엄마는 어쩐 일인지 비밀이, 과거가 너무 많다. 아침드라마 열 편 정도의 과거를 가진 엄마 황서미, 무사히 사춘기 곰돌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낼 수 있을까?" 독자도 궁금하고 조심스럽다.

 


 

이 책의 처음은 「편집자의 글」로 시작된다. 편집자는 이 글을 통해 이 책의 출판 비하인드 스토리를 간략하게 적어놓았다. 책의 앞 부분에 적어놓을 것으로 미루어 출판이 '쉽지는 않은 듯'하다. 어느 날 카톡이 왔다. 이 책의 저자분이다. 당시 프리랜서 작가였던 것 같다. 중학생 딸의 이야기를 브런치에 연재하고 있는데 시간이 나면 재미 삼아 보라고 하는 내용의 카톡이다. 편집자는 '중학생 딸'이라는 사실에 '중학생 소녀의 일상을 어느 정도 알게 되고, 씩씩한 소녀의 이야기가 원고에 빼곡히 적힌 모양이다. 편집자는 무엇에도 기죽지 않는 소녀, 자신만의 철학도 있는 소녀라고 판단해 흥미를 가졌다. 소녀의 이름은 바로 '곰돌'이다.

원고에 얽힌 우여곡절을 들어보니 한 출판사와 계약 후 진행한 원고였는데 어쩔 일인지 편집의 방향이 잘 맞지 않아 출판이 무산된 원고라 한다. 편집자의 생각에 조금은 특별한 중학생 소녀와 조금은 이상한 엄마의 이야기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저자의 허락을 얻어 출판 대여섯 곳에 출판을 의뢰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출판사에서 출판을 완곡히 거절하는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① 재미있지만 엄마와 딸이라는 소재가 너무 뻔해서 안 팔릴 것 같다. ② 저자의 인지도가 아쉽다.라고 전했다. 몇 곳의 거절을 당하다 보니 이젠 편집자의 자존감도 동시에 하락했다고 한다. 마치 자신이 거절당하는 느낌이었다고. "거절은 아무리 많이 당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괜찮다며 스스로를 위로해봐도 자꾸만 거절이 반복되다 보니 급격이 우울해졌다"고 편집자는 밝힌다. 편집자는 지금의 출판사 사장이다. 말하자면 상한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이 책의 출판을 맡은 것 같다. 이유는 충분하다. 이 책이 출판할 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편집자이자 출판사 측에 보인 '곰돌'은 사춘기 소녀(원고 작성 당시 중2)였다. 편집자는 곰돌에게 매력을 느꼈다고 풀어놓는다. 책이 잘 팔릴지, 안 팔릴지는 둘째 문제고, 이 소녀를 소개하고 싶어 미치겠다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은 편집자의 말은 충분한 이야깃거리의 소녀보다는 씩씩한 사춘기 소녀의 원형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편집자는 원고를 다듬으면서 어쩌면 곰돌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읽는 걸 싫어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단다. "곰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할지도 모른다. 이 책으로 인해 곰돌이가 어쩌면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인쇄를 넘기기 전까지도 걱정이 들어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다짐했다. 그런 걱정이 들 때마다 곰돌에게 민트초코 맛 아이스크림을 건네야겠다고. 너의 이야기를 읽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볼 용기를 낸 사람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독자로서는 「편집자의 글」에서 엄마와 딸, 두 사람의 삶의 희망, 진정성과 역경 극복의 선한 의지를 읽어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책의 내용에서 1980년대를 지나온 엄마의 사춘기와 지금 사춘기인 딸이 교차된다. 이들이 겪는 삶 역정에서 새대차를 읽을 수 있고, 가족의 정, 엄마와 딸의 사회적 관계, 한 인간으로서의 엄마와 딸, 사춘기의 세대차 등 한 편의 인생 드라마가 펼쳐진다. 초고속 인터넷을 공기처럼 마시며 사는 대한민국에서 곰돌은 사춘기를 보내는 중이다. 공부도 해야 하고, 다이어트도 해야 하고, SNS도 해야 하고, 코로나19 때문에 학교는 가는 둥 마는 둥, 살다 살다 상상도 못해본 특별한 몇 년을 사춘기와 함께 보내게 되었다. 마스크를 쓰고 2년이나 중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 입시 면접도 온라인에서 줌으로 하는 경험도 했다. 참으로 급격하게 변하는 2020년대를 보내는 중인 사춘기 곰돌의 일상은, 불만이 가득해 보이기도 하지만 참 씩씩하고 당당하다. 서울에서 제일 알아주는 학원가 근처에 살면서도 학원 컨베이어 벨트 속으로 깔려 들어가지 않고 곰돌은 자신만의 인생행로를 찾아가는 중이다.

 


 

그런데 곰돌의 엄마, 황서미의 과거가 흡사 아침드라마 수준이다. 약간 이상한 나라에서 온 곰돌의 엄마는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걸까? 엄마가 이혼을 해버리는 친아빠의 존재는 알 수 없게 되어버렸고 더구나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발달 장애 동생까지 생겨버린 상황, 도저히 아저씨 그리고 갑자기 생긴 동생 만두와 함께 살 수 없어 옆 아파트-외할머니 댁에 피신 중인 곰돌, 그러다가 중3이 되어 이제는 독립하여 자취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라이프를 즐길 수 있어 조금 행복해진 사춘기 소녀, 곰돌의 다사다난한 사춘기 하루하루가 눈물겹도록 재미난 이유, 그리고 도도한 이 소녀를 자꾸만 응원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뭘까? 어쩐 일인지 그녀에게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22년을 사는 도도한 사춘기 소녀의 이야기도 판타스틱하고 재미있지만, 엄마 황서미가 살아온 1980년대의 사춘기 이야기도 여기에 함께 보태지며 교차된다. 1980년대를 지나온 엄마는 다이어트를 하는 딸을 바라보며 탈모까지 겪으며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했던 자신의 학창시절을 생각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선생님과 싸우고 속상해하는 딸을 보며 자신이 겪었던 무수한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돌아보기도 한다. 아직은 미래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곰돌, 그러나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힘들었던 엄마의 사춘기도 묘하게 비교가 된다. 아직 남자친구가 없다는 곰돌의 모태솔로 고백에 엄마는 박수를 보내고, 그와 반대로 무수하게 사랑하고 헤어지고를 반복했던 엄마는 자신의 복잡한 연애를 떠올리기도 한다.

 


 

수학여행에 가서 술을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곰돌의 이야기에, 옛날 옛적에 수학여행에 가서 술 싸가지고 온 친구들이 담임 선생님에게 줄줄이 뺨을 맞던 기억도 포개진다. 더불어 지금의 새로운 문화들-당근 마켓에서 활약하는 곰돌의 이야기,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 못하고 잠옷 입고 ‘온클’로 수업하는 요즘 중딩의 이야기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사실, 나날이 몸도 마음도 커져가는 사춘기 딸에 대한 소중한 기록이자, 엄마로서 미안한 마음을 담아 이런저런 자신만의 사정을 변명처럼 해보며 시작한 글이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딸에게 조금은 특별한 삶을 선사하게 된, 엄마의 짠한 마음을 담은 일종의 변명기라고 하면 어떨까.

이것저것 불만은 많지만 곰돌은 아직 엄마 황서미가 제일 좋다고 한다. 가끔은 세탁을 잘못해서 옷을 잔뜩 줄여놓기도 하는 엄마지만, 가족 중에 제일 말이 통하는 사람이 바로 엄마이기 때문이다. 엄마 황서미는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곰돌에게만은 든든한 비빌 언덕이 되어주겠다고 다짐한다. 앞으로 겪게 될 무수한 인간관계와 앞으로 겪게 될 인생살이가 분명히 만만하지도 않고 예상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겠지만 언제든지 곰돌이 찾아와서 종알종알 이야기할 수 있는 엄마, 경제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기댈 수 있는 엄마가 되는 게 자신의 목표라고 선언한다.

 


 

딸에게 남들처럼 평범한 가족을 만들어주지 못해 미안해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끈끈하고 친밀한 엄마인 황서미, 아이의 기를 꺾어서 엄마에게 그저 순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라톤을 함께하는 페이스메이커처럼 옆에서 호루라기를 불며 지치지 말라고 응원하는 엄마가 되겠다고 그녀는 다짐한다. 학교 끝나고 학원 뺑뺑이 돌리는 거 말고, 같이 쇼핑도 하고 핫한 카페에서 데이트도 하면서 알콩달콩 추억을 곰돌과 만드는 중인 엄마 황서미. 이 책은 유쾌하고도 확실한 철학을 가진 그녀의 멋진 엄마 되기 분투기, 그런 엄마와 매일 우당탕탕 귀여운 신경전을 벌이는 사춘기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소중하고도 소소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 : 황서미

 

1974년생, 호랑이띠로 태어났다. 격동의 1980년대에 사춘기를 보냈다. 그리고 2020년대에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딸이 하나 있다. 어렸을 때는 글짓기 대회만 하면 불려 다니던 백일장 키드였다. 인생의 쓴맛, 단맛, 짠맛, 매운맛 골고루 맛보며 영화처럼 판타스틱하게 살았다. 1999년, 광고대행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한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다양한 직업을 거쳐 왔다. 지금은 몸도 마음도 알맞은 곳에 정착하여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현재, 그동안 살아온 삶이 아까워 한 6~7년째 그 재료로 드라마 한 편 쓰려고 노력 중이다. 식당에서 혼밥하고 있을 때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재미난 이야기들을 [서울신문]에서 「황서미의 시청각 교실」이라는 이름으로 연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시나리오 쓰고 있네』 『아무 걱정 없이, 오늘도 만두』가 있으며 곧 『이혼학교』를 출간할 예정이다. 학교 앞 분식집에서는 꼭 ‘만두’ 라면을 시키고, 용돈을 모아 슈퍼에서 ‘고향만두’를 한 봉지 사 와서 데워 먹던, 꽤 오래된 만두 마니아다. 좋아하는 만두는 칼칼한 김치만두. 많은 한국 사람들의 군만두 사랑이 어려서부터 의아했으나, 한참 어른이 되고 나서야 잘 튀겨진 군만두의 육즙에 반했다. 취미는 틈만 나면 음식에 관한 다큐멘터리 보기. 요즘 OTT에서 잘 차려진 음식 다큐멘터리들이 계속 나와 기쁘다. 또 하나의 취미는 혼자 여행하기. 콘셉트는 무조건 ‘식도락 여행’. 처음 가보는 곳에서 맛있는 한 끼를 먹는 시간은 최고의 낙이다. 그리고 그 순간의 느낌을 차곡차곡 기록한 것을 소중한 재산으로 여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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