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 : 신, 여신, 영웅 핸드북
리브 앨버트.사라 리차드 지음, 이주만 옮김 / 시그마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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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는 어렸을 적 초등학교 때부터 '필독서'였다. 어린이 때도, 청소년 때도, 대학과 일반 직장인이 되었을 때도 늘 필독 교양서적에 자리하고 있었다.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든 대부분 한 번 이상 읽었을 것이다. 독자도 무척 여러 번 읽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경우는 없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독자의 경우 첫 번째 이유는, 비슷비슷한 이야기의 연속이라는 생각에 큰 감흥이 일지 않았기 때문에 읽다 말고 책을 덮었다. 두 번째 이유는 인명이나 지명이 어려워(영어도 어려운데 영어보다 더 어려웠다) 잘 외워지지 않아서다.

그렇지 않아도 헷갈리는데 이름을 보면 앞에 나온 신(神)과 비슷한 이름인데 아주 다른 사람이다. '아'자로 시작하는 것만 보더라도 아마 수십명이 등장하지 않나 싶다. 아킬리우스, 아가멤논, 아르테미스, 아레스··· 대부분 발췌본이어서 수백 페이지에 압도당하는 일은 없었지만 제대로 완역해놓은 것은 분량이 얼마나 될지 지금도 모르는 상태다. 세 번째는 신과 조금 약한(하위 신) 신, 영웅, 인간 등이 혼재돼 나타났다 사라지는 등 정신을 쏘옥 빼놓아 '다음 기회에 읽자'는 생각에 책을 책꽂이에 꼽아놓는 일이 많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독자 입장에서 보면 완전 요약해 일목요연하게 써놓은 책을 한 번도 발견하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 이는 독자의 독서 부족이라고 탓하고 만다.

 


 

이 책 『그리스 신화 : 신, 여신, 영웅 핸드북』가 이 같은 문제점을 일시에 제거해준 책이다. 최소한 그리스 신화에 있어서는 독자의 정신과 머릿속을 말끔하게 정리해준 책으로 꼽고 싶다. 우선 매우 일목요연하게 신, 하위 신, 영웅, 인간을 구별해 파트를 나눴다. 목차만 보아도 헷갈리는 이름의 관계를 잘 알 수 있도록 간명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이른바 그들의 역할 이전에 이름과 신의 지위 등을 제대로 구별하게 정리했다. 또 각 신에 대해 간략한 설명-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족보 캐기-과 함께 '우리가 알아둘 이야기'와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를 덧붙여 각각의 신에 대한 완전한 설명을 시도했다.

주요 신과 자주 등장하는 신은 멋진 그림(애니메이션)이 제각각 한 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림만 가만히 들여다보아도 신의 역할, 인간과 좋은 관게인지 나쁜 관계인지 알 수 있도록 정교한 그림이 이 책의 특장점이다. 저자 리브 앨버트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책과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웹툰에 그리스 신화가 등장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며 "그리스 신화가 주는 즐거움은 끝이 없고 시대를 초월한다. 수많은 신과 여신, 크고 작은 온갖 동식물, 그리고 결점과 약점이 있는 인간이 함께 어울려 자연 속에서 펼치는 이야기에는 감동이 있고 웃음이 있으며 폭력이 난무한다."고 「들어가며」에서 밝히고 있다. 사실 오늘날 문학도 그리스 신화에서 스토리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그림과 음악 등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역할을 도맡아 했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다.

 


 

지금은 바뀌었지만 그리스 신화는 '문학의 원형'이라고 배웠다. 이 지식은 수메르 문명, 신과 영웅에 대한 예찬을 쓴 대서사시가 발견되기 전까지 그대로 전해져 왔다. 수메르 문명으서 발견된 점토판의 대서사시 〈길가메시〉 등 신화는 인류 역사 문명이 더 거슬러 올라갔지만. 그러나 작가가 밝혀진 것으로는 아직까지 그리스 신화를 꼽고 있다.신들의 감정과 그에 따른 행동이 인간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인 것 같다. 그리스 신화는 말이 신화이지, 인간 사회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올림포스 산의 신들은 인간 못지않게 질투하고 갈등하며 복잡하게 얽힌 사랑에 거침없이 뛰어든다.

인간계의 영웅도 마찬가지다. 기분이 거슬린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인 영웅도 있다. 하지만 읽다 보면, 어느새 그리스 신화에 빠져들게 된다. 욕하지만 시청률은 높은 막장 드라마 같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단군 신화가 신성시되는 걸 생각하며 더 그렇다. 그런데 왜, 어떻게 보면 막나가는 스토리에 가까운 그리스 신화를 읽어야 할까? 바로 그리스 신화가 성경과 더불어 서양 문명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태양계 끝자락에 있는 명왕성을 서양권에서는 ‘플루토’라고 하는데, 이 플루토가 바로 저승의 신 ‘하데스’의 로마식 이름이다. 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엘렉트라 콤플렉스 같은 정신분석 관련 용어에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 이름이 사용된다. 이런 것들의 배경을 찾다보면, 결국 그 근간에는 그리스 신화가 등장한다. 저자의 빈틈 없는 해석에 독자의 신화에 대한 지식이 크게 늘어날 계기를 마련했다. 이 책에서.

 


 

역시 그리스 신화는 누가 뭐래도 오늘날 서양 문명의 근원이 된 것임에 틀림없다. 문화는 로마 문화를 이어받은 것이라고 서양 각국은 제각각 자랑하고 있지만 그것은 로마 제국의 영광을 선망하고 동경하기 때문이다. 서양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완벽에 가까운 국가 제도, 법, 군대, 정치, 건축 등에서 오늘날까지 대부분 이어지고 있는 것만 봐도 서양인들의 로마제국에 대한 동경을 엿볼 수 있다. 그런 로마는 사실 그리스 문화를 계승했고 더 발전시킨 데 로마제국이 성립되고 지속됐다는 점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으니 결과적으로는 서양 문명의 원형은 그리스 신화에서 찾는 것이 순리적일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책 『그리스 신화』에서는 서양 문명의 근원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4부로 나누어 올림푸스 신들의 드라마와 비밀을 캐릭터별로 정리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올림푸스 산과 인간계의 슈퍼스타들이 겪은 시험과 시련을 낱낱이 훑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화려한 삽화와 함께 그리스 신화의 드라마와 비밀을 다룬다. 필멸의 영웅이 어떻게 스스로 신의 반열에 올랐는지와 올림푸스 산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신들의 막나가는 스토리를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양 문명의 근간이라는 그리스 신화가 우리 주위의 수많은 대중문화(특히 서양 쪽)에 어떻게 녹아들어 시대를 초월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혹은 가장 좋아하는 신화(예를 들어 에로스와 프시케의 러브 스토리)가 실제 신화와 어떻게 다른지도 배우게 될 것이다. 또한 그리스 신화에서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그리고 왜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은 고리타분한 신화 입문서에서는 좀 벗어나 있다. 아름다운 삽화와 더불어 캐릭터별로 항목을 나누어 각 캐릭터의 이름과 별명, 그들이 주재하는 영역과 과제, 전문 분야, 그들의 기원, 그리고 가장 잘 알려진 그들의 모험담에 관해 설명한다. 일부 캐릭터 항목에는 하위 항목이 따로 있다. 해당 캐릭터의 이해를 돕기 위해 밀접한 관계에 있는 신이나 인간을 함께 다룬다. 신화 속 신, 여신, 영웅의 프로필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가 현대인의 상식과 교양이라도,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모르면 검색을 하거나 빅스비와 시리(혹은 카카오 미니 같은)에게 물어보는 시대다. 그래도 여전히 재밌는 이야기를 즐기는 동시에 상식과 교양을 쌓기에는 그리스 신화만한 것이 없다.

이 책에 가장 많이 나오는 「제우스」에 대해 알아본다. 설명과 해석, 앞서 언급한 '알아둘 이야기'와 '몰랐던 이야기'가 첨가돼 있다. 물론 한 면의 그림은 엄청난 설명을 시각적으로 뒷받침하고 있기도 하다. 책에 따르면 제우스는 신들의 왕이다. 엄밀히 구분하면 그는 하늘과 날씨 등을 지배하는 신이지만, 사실상 신들의 신이다. 그는 막강한 힘과 영향력으로 자기가 만나는 이들의 신세를 망쳐놓기 일쑤였다. 디즈니 만화영화 〈헤라클레스〉에 묘사된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와는 거리가 멀고고, 2010년도 영화 〈타이탄〉에서 리암 니슨이 연기한 제우스와 더 닮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폭군 스타일인가 보다. 아니면 요즘 말하는 '상남자'인가.

 


 

저자는 역시 제우스도 족보 캐기에 들어간다. 우리가 알아둘 이야기가 있다. 제우스가 유명한 진짜 이유는 제우스를 아버지로 둔 신들이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지적은 참신하다. 또 제우스는 몇몇 인간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아들이고, 크레타 앙 미노스도 제우스의 아들이다. 스파르타의 헬레네와 언니 클리타임네스트라도도 제우스의 딸이다. '바람둥이'인지 진짜 신인지 헷갈린다.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는 더 재밌다. 목성(주피터, 제우스)의 위성에는 대부분 제우스의 '애인들' 이름을 따서 붙였다(다시 말하지만 제우스의 행위는 강간에 더 가까웠다). 유로파, 이오 칼리스토도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발사한 목성 탐사선의 이름이 주노(그리스어로 헤라)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나사는 제우스의 아내를 보내 제우스와 불륜 관계에 있는 여자들을 감시하도록 한 셈이다.

 

포세이돈은 정말로 황소를 보냈다. 잘생긴 황소 한 마리가 바다에서 나타났고, 미노스는 그가 서약한 대로 그 황소를 바로 신에게 바칠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 황소는 너무 아름답고 찬란해서 도저히 제물로 바치고 싶지 않았다! 미노스는 그 황소 대신 자신이 갖고 있던 또 다른 황소 한 마리(크레타 신화와 전설에는 황소가 정말 많이 등장한다)를 제물로 바치고 포세이돈이 보낸 황소는 살려두었다. 포세이돈은 서약을 지키지 않은 미노스에게 몹시 진노했고, 그에 대한 벌로 미노스의 아내인 파시파에가 남편이 제물로 바치지 않고 빼돌린 황소에게 반하도록 만들었다.(p.187)

 


 

저자 : 리브 앨버트

그리스 신화의 매력에 흠뻑 빠져 지낸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콘코디아 대학에서 고전 문명과 영문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고, 토론토의 험버 컬리지에서 창의적 도서출판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리브 앨버트는 토론토에서 주요 출판사들과 협상하며 계약을 체결하는 등 다른 작가의 출판을 돕는 일을 했다. 그리고 2017년에 《신화 얘기 좀 해볼까요!》(LET’S TALK ABOUT MYTHS, BABY!)라는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여자가 거실에 앉아 떠들던 수다에 불과했던 이 팟방은 이제 그녀의 작업실에서 떠드는 수다로 성장했다. 이 팟캐스트 방송은 매년 수백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캐나다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독립 팟캐스트 방송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빅토리아 시에 거주하는 리브 앨버트는 신화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아파트에서 루팽이라는 고양이와 함께 지낸다.

 

역자 : 이주만

서강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번역가들의 모임인 바른번역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미라클 모닝 밀리어네어』, 『아이를 위한 돈의 감각』,『힘이 되는 말, 독이 되는 말』, 『끌림』, 『탈출하라』, 『다시, 그리스 신화 읽는 밤』,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사람들』, 『심플이 살린다』, 『회색 코뿔소가 온다』, 『사장의 질문』, 『다시 집으로』, 『나는 즐라탄이다』, 『모방의 경제학』, 『케인스를 위한 변명』 등이 있다.

 

그림 : 사라 리차드

아이스너 상과 링고 상 후보에 오른 화가로 뉴햄프셔 출신이다. 그녀는 만화책 업계에서 주로 표지 디자이너로 8년간 일했다. 그전에는 해즈브로 장난감 회사에서 장난감 조각가로 일했으며 작은 공룡을 전문적으로 제작했다. 사라 리차드는 주로 아르데코, 아르누보, 1980년대 패션, 빅토리아 시대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는다. 그림이나 글을 창작하지 않을 때는 공포 영화를 즐기거나 방치된 묘의 묘비들을 청소하거나 19세기의 오래되고 특이한 유물을 수집한다. 사라리차드닷컴(SARARICHARD.COM)에 가면 사라 리차드의 작품을 일부 감상할 수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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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상처주지 않는 습관 - 남에게는 너그럽고 나에게는 엄격한 사람들을 위한 자기친절 수업 단단한 마음 1
김도연 지음 / 언더라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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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실현은 자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내 삶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단 하나의 존재는 바로 ‘나’이다. 이것이 스스로를 돕는 좋은 안내자가 바로 자신이 되기를 바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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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상처주지 않는 습관 - 남에게는 너그럽고 나에게는 엄격한 사람들을 위한 자기친절 수업 단단한 마음 1
김도연 지음 / 언더라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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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심리학에 관한 한 문외한이다. 학교에서 배운 바도 없고, 책도 심리학 관련 책은 읽지 않았다. 심리학은 독심술을 위해 하는 공부이며, 자기 계발을 위해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독자의 심리학에 대한 무지가 낳은 결과이지만 지금은 심리학에 대해 매우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코로나 이후 수많은 힐링과 불안, 우울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에세이가 쏟아져 나오고 심지어 정신분석학이란 의학 관련 서적도 언제나 베스트셀러 목록에 끼어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때부터 독서를 다시 시작한 독자도 에세이는 물론 심리학, 정신의학 관련 책을 여러 권 읽었다. 구스타프 칼 융의 전기나 그의 정신분석학 이론 등에 관해 꽤 여러 권을 읽었다. 프로이트의 책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그의 저서보다는 그의 이론을 해석해주는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이 책 『내 마음에 상처주지 않는 습관』은 심리와 마음과 정신의 구별을 잘 해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저자가 아니라 독자가 읽기에 그렇다. 심리·마음·정신은 비슷한 것 같기도 하지만 엄밀히 다른 의미이다.

 

* 마음 - 지(知), 정(情), 의(意)로 대표되는 인간의 정신작용의 총체, 또는 그 중심에 있는 것으로 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정신'과 동의어로 이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정신이 로고스(이성)를 체현하는 고차적인 심적능력으로 개인을 초월하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면, '마음'은 파토스(정념)를 체현하며 보다 많이 개인적ㆍ주관적인 의미를 가진다.

* 정신-인간의 마음이나 생각, 의식. 사물을 느끼고 생각하며 판단하는 능력이나 그런 작용. 육체나 물질에 대응하는 의미이다.

* 심리학(心理學, psychology)은 인간의 행동과 심리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경험과학의 한 분야를 뜻한다. 인간과 동물의 행동이나 정신과정에 대한 다양한 질문의 답을 찾는 과학 중의 하나가 바로 심리학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내가 상처받는 것보다 다른 이의 마음을 신경을 쓰고, 자신의 작은 실수에는 심하게 자책을 하지만 타인의 실수에는 관대하다. 더 심하게는 내 마음이 고통스러워도 자기연민을 발휘하지 않고, 자기비난을 넘어서 자기혐오를 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에게 매우 엄격하게 굴며, 자신의 마음을 잘 돌보지 못한다. 이들에게는 부정적인 상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을 ‘자기자비 또는 자기연민’이 필요하다. 20년간 수많은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돌본 임상심리학자는 상담센터를 찾는 사람들의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많은 내담자들은 자신을 사랑하고 이해하기보다 스스로에게 매우 가혹했다. 누군가나 어떤 일로 인해 상처받은 마음을 스스로 돌보지 않았다.

임상심리학자인 김도연 저자는 스스로를 아끼지 못하는 이들에게 스스로에게 친절을 베풀 때 변화가 일어남을 알려주었다. 그 동안의 연구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책이 심하거나 부정적 감정으로 휩싸인 사람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픈 많은 이들에게 남이 아닌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심리 기술을 알려주고자 한다. 이 책은 불완전한 자신을 감싸 안고 나아가는 마음의 습관 45가지의 방법을 매우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저자의 실제 경험을 비롯하여 자기친절을 수용하고 실천해가는 사람들의 경험을 보여준다. 또한 책의 꼭지마다 직접할 수 있는 자기친절 워크시트가 있고, Part 4에는 30일, 60일, 90일, 120일의 자기친절 멘토링 리스트를 실었다.

 


 

저자는 프롤로그 「불완전한 나를 보듬고 감싸 안는 법」을 통해 "임상심리학자의 삶에는 수많은 분들의 고통과 괴로움이 함께합니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차마 꺼낼 수 없던 심중의 아픔을 나누는 동안 슬픔과 절망, 분노와 좌절, 외로움과 공허함, 생과 사에 이르는 철저한 현존의 고통이 지나갑니다. 어떻게 해야 마음이 편해질 수 있냐는 질문이 가장 많습니다. 심리학에는 삶의 고통을 지혜롭게 다루도록 돕는 좋은 해법들이 참 많습니다."고 전제한 뒤 "자신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돕기 위한 잘 갖춰진 방법들은 단순히 문제를 극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에 대한 통찰과 사랑, 자신을 향한 자애로움과 수용의 관대함을 따뜻하게 안내합니다."라고 심리학과 심리학자, 심리상담가들이 하는 일들에 대한 이해를 강조한다.

이에 따라 저자가 그간의 임상심리 치료의 현장에서 자신을 돌보며 치유의 회복력을 보여주셨던 많은 분들의 이야기와 경험, 그리고 상처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나로서의 삶을 돕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들을 이 책에 썼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어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며 상처를 치유하는 인생의 지혜를 심리학이란 학문 안에서 하나하나 풀어내는 동안 여러분들의 삶 속에 있는 행복이 여러분 곁이길 소망한다고 밝힌다. 저자는 "'삶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왜 고통을 겪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이제는 이 물음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한다."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 책을 낸 취지와 목적을 덧붙인다. "상처를 보듬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바로 '나'일 때 삶은 우리를 향해 준비한 선물을 가득 내어준다."

 


 

이 책의 구성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시간의 흐름에 '나'의 대처 방법을 맡기는 것이다. 1부 「과거에서 배웁니다」, 2부 「현재에 머무는 연습」, 3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로 돼 있다. 이는 진단, 치료, 삶의 원칙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진단은 의사가 하듯이 심리적 증세는 자기 자신이 주치의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 같다. 저자는 보조 치료자 역할을 자처한다. 1부의 소제목들을 살펴보아도 저자의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나에게 공감해야 하는 이유', '불안을 허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자기 신뢰를 높이는 변화계획', '스트레스를 현명하게 다루는 법', '내 안에 잠든 정서 기억 다루기' 등 대부분 저자는 설명하고 독자가 스스로 해 나가야 할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떻게 환자 스스로에게 맡기느냐에 대한 걱정을 전혀 필요치 않다.

그냥 읽고 이해한 다음 이 책의 뒷 부분에 있는 「120일간의 자기친절 연습」을 천천히 해나가면 된다. 2부는 '판단하는 마음 내려놓기' '현재를 알아차리는 연습', '내 마음의 균형 찾기', '하루 10분 몸의 감각 알아차리기', '"그래"라고 말하기', '한 번에 한 가지씩 몰입하기', '감정을 치유하는 먹기 명상' 등 재미 있게 할 수 있는 것들도 눈에 띈다. 이어 3장은 '비극적 시나리오는 다시 쓰기', '유연한 완벽주의자의 길', '합리화라는 방어기제에서 벗어날 것', '지나친 낙관성이 문제가 될 때', '외로움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변하는 것들', '스스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법', '핵심 감정 돌보기', '분노의 덫에 빠지지 않는 법', '기분 좋은 순간 늘리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미 소제목만 봐도 어떤 흐름의 책인지 알았을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많은 심리학자들은 삶이 힘들어지고, 고통스러울수록 ‘자기자비, 자기연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기연민은 스스로를 안타까운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불완전한 스스로를 사랑하는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로 삶을 마주한다면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보다 너그러워질 수 있다. ‘나에게 친절하라’는 말이 매우 상투적으로 느껴지겠지만, 괴로움의 터널을 지날 때 자기연민 만큼 마음을 무너지지 않게 하는 심리 기술이 없다. 20년차 임상심리학자 저자는 스스로에게 자애를 베풀고, 자신에게 친절할 것을 거듭 강조한다. 우리는 타인에게는 매우 친절한 반면 스스로에게는 꽤나 엄격하다. 타인의 실수에는 “그럴 수 있죠”라는 말로 위로를 건네지만, 나의 실수는 ‘이런, 같은 실수를 반복하다니’라면서 스스로를 봐주지 않는다. 물론 스스로에게 너무 관대하면 자기 발전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기비판은 종종 심한 역효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불행과 스트레스를 증가시키고, 일을 미루거나 미래에 목표 달성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저자는 ‘왜 우리에게 자기자비, 자기친절이 필요한지’를 매우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자기자비는 자신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과 사랑으로 대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보살핌을 받으면서 위안을 얻는데, 타인에게 받는 위로는 한계가 있다. 또한 어떤 어려움에 닥칠 때마다 타인의 지지가 없으면 진정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내 마음은 스스로가 돌봐야 한다. 텍사스대 교육심리학 크리스틴 네프 부교수는 “우리 대부분은 인생에서 나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좋은 친구를 갖고 있다”고 말하면 스스로에게 따뜻하고 힘이 되는 친구가 되는 것이 자기연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기자비야말로 무례한 사람들과 스스로를 탓하는 마음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해주는 최선의 심리 기술이다.

 


 

저자는 자신이야말로 가장 귀한 배려를 받아야 할 일차 대상이라 강조하며, 자기와의 관계에서 친절하고 사려 깊을 때 마음의 평화도 삶의 균형도 유지된다고 말한다. 인생에는 이런저런 일을 해내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과의 시간이다. 이 책이 제안하는 자기친절 45가지의 방법으로 스스로의 마음에 상처주지 않는 습관을 몸에 익히고, 혹여 상처를 받았더라도 스스로가 보살피며 자신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길 바란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책이 치유의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책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건강이란, ‘완전한 육체적, 정신적, 사회복지의 상태를 포함하며, 단지 질병이나 병약함의 부재만은 아니다’라고 정의 내렸다. 또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현재에 살되 과거로부터 배울 수 있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며, 과거, 현재, 미래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행복지수를 높이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 책 『내 마음에 상처주지 않는 습관』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돌볼 줄 아는 방법을 과거에서 배우고, 현재에 집중하며,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지난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부터 스스로를 어떤 틀 안에 가두지 않는 법, 감사한 마음을 되돌리는 법 등 15개의 심리를 과거로부터 배우고, 현재에서는 ‘지금-여기’에 머무는 방법을 배운다. 현재에서는 자기자비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마인드풀 명상을 다루고 있으며, 판단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미래를 위한 준비에는 미래 자아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방법을 소개한다. 단단한 관계를 쌓는 법과 가치 중심의 삶을 사는 법,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 자기합리화에서 벗어나는 법 등을 소개한다. 총 45개의 마음 습관은 불완전한 자신을 이해하고, 감싸 안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데 큰 힘이 되어 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아동기에 양육자가 감정을 잘 받아주지 않았다고 해도, 자신을 돌보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감정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온전히 자신뿐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향한 수용을 자기 안에서 철회한다면 감정은 늘 삶의 괴로움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아이의 감정에 대한 이해를 잘해야 할 필요가 있고, 우리는 누가 뭐라고 하든, 어떤 상황이든 자신의 감정을 사랑으로 돌봐주어야 할 자기 존중이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애정과 사랑이 있을 때 존재는 존엄해지는 것이니까요.(p.211~212)

 

삶의 즐거움과 고요함은 모두 자기 안에 있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어느 날은 감당하기 어려운 느낌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복잡한 마음에서 빠져나와 얼마간이라도 좋아하는 음식이나 차를 즐기며, 또는 산책이나 명상을 하며 마음 회복을 위한 치유의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회복 탄력성은 의도적인 돌봄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잠깐이라도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고 감정의 불균형을 바로잡아 보세요. ‘의도된 돌봄’은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보호막이 되어 정신적 평온함을 줄 것입니다.(p.301~302)

 

저자 : 김도연

 

관계로 인한 우울증부터 번아웃, 정서학대까지 여러 가지 이유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20년 넘게 돌보고 있는 임상심리학자이다. 마인드풀니스 심리상담연구소와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의 대표이자 경희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지방경찰청 범죄피해평가 감수위원이다. 개인 상담뿐 아니라 클리닉을 찾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보건복지부 정신건강분야 R&D 평가위원, 가톨릭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임상심리치료와 연구 및 수련감독자, 사단법인 한국청소년자살예방협회장으로 활동했다. 한국형 마음챙김명상 전문가로서 강연, 언론, 방송, 교육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으며, 최근에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가스라이팅 관련 시그널 인식, 피해자다움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 올바른 연애 등을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어제 울었어도 오늘의 행복은 지킬 거야》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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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 여자 넷이 한집에 삽니다 - 프로 덕질러들의 슬기로운 동거 생활
후지타니 지아키 지음, 이경은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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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층 풍요로운 덕질과 쾌적한 생활을 위해 함께 꾸린 ‘덕질 일가’에서 4인 4색의 프로덕질러들이 좌충우돌 유쾌한 덕후 생활을 즐긴다. 서로 최애를 인정하고 조금만의 배려만 있다면 덕후 생활은 지속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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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 여자 넷이 한집에 삽니다 - 프로 덕질러들의 슬기로운 동거 생활
후지타니 지아키 지음, 이경은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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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덕후 여자 넷이 한집에 삽니다』를 읽기 위해선 '덕후'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얼마 전부터 부쩍 많이 사용되는 단어이다. '덕질'이란 파생어도 생겨난 상태이다. 독자도 이 단어가 미디어에서 자주, 거리낌없이 사용되는 것을 처음 봤을 때는 무척 당황했다. 외래어는 그대로 사용하면 안 되고 불가피할 경우 순화(우리말로 번역)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알고 있었다. 물론 일본어 자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인명·지명 등 고유명사는 현지음 그대로 사용한다. 또 우리말로 쓰이는(대체되는) 마땅한 말이 없을 경우에 한해 외래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특례 사항(국어대사전 편찬 원칙)이 있다고알고 있다.

덕후는 일본어에서 온 단어다.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일본어 오타쿠(御宅)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덕후’의 줄임말로, 현재는 어떤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일본어인 오타쿠(御宅)를 한국식 발음으로 바꿔 부르는 말인 '오덕후'의 줄임말로 뜻은 오타쿠와 동일하다. 오타쿠는 1970년대 일본에서 등장한 신조어로 본래 '집'이나 '댁(당신의 높임말)'이라는 뜻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이 의미가 확장되면서 초기에는 집 안에만 틀어박혀서 취미 생활을 하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어떤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 말이 왜 우리말로 대체되지 않고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을까 사뭇 불만스럽다.

 


 

이 책은 일본의 저자 후지타니 지아키가 썼기 때문에 번역상 다른 말이 없어서 그대로 사용되었거나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는 단어 그대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덕후란 말은 1970년대부터 일본에서 나타나기 시작해, 1990년대 중반 은둔형 외톨이들이 나타나면서 사회문제로 떠오른 용어인 히키코모리와 비슷한 뜻이다. 히키코모리는 '틀어박히다'는 뜻의 일본어 '히키코모루'의 명사형으로,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다고 한다. 일본말을 모르는 독자가 보기에는 두 단어의 뜻이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아무튼 이 책은 표제어에서 보이듯이 자신만의 취미나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네 명의 여성이 한집살이를 하면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덕후 생활'을 쓴 것이다.

이 책은 '덕후가 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덕질에 감동해 소리 지르다 언제까지 이럴 거냐며 엄마한테 등짝 맞았을 때, 수만 원의 티켓값이 차곡차곡 모여 체감 ‘수억’의 카드값으로 돌아왔을 때, 최애로 도배한 나와 달리 친구들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이 하나둘 아이들로 채워질 때…… N년차 덕후에게 이따금 찾아오는 ‘현실 자각’의 시간이 있다. 오래도록 설레고 즐겁고 싶은데, 비어가는 통장에 덜컥 겁이 나고 혼자가 될 미래가 불안하다. 덕후라면 한 번쯤 고민해본 적 있을 것이다. ‘나, 이대로 덕후로 살고 죽을 수 있을까?’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데도 힘들어 보인다.

 


 

저자 후지타니 지아키는 이 책의 서문 「들어가며」에서 "덕후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여기서는 '서브 컬처'에 한 발, 아니 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못박는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신작 제작 소식에 고기를 굽는 사람도 덕후, 소셜 게임에 빠진 사람도 덕후, 3차원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한 사람도 덕후, 최근에는 록 밴드 팬도 소비 형태에 따라 덕후로 정의하는 일이 많아졌다. 나 또한 비주얼계 밴드 팬을 그럭저럭 사반세기 넘게 하고 있다."고 말한다.

25년 넘게 덕질하며 살아온 한 비혼 1인 가구 세대주인 저자가 어느 날 문득 찾아온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해소하고 ‘지속 가능한 덕질’을 위해 덕후 세 친구와 함께 꾸린 덕질 친화 셰어 하우스 입성기이다. 저자가 셰어 하우스를 꾸리게 된 계기부터 멤버 모집, 우당탕탕 집 구하기, 입주, 좌충우돌 동거 생활까지 ‘덕질 메이트’ 네 여자가 실제로 동거를 결심하고 실행한 경험을 담았다. 서문에서 저자는 덕후 생활을 한 이유도 밝히고 있다. 그에 따르면 덕후는 좋아하는 것에 관련된 것은 전부 모으려는 욕구가 강하다. 좋아하는 게 많아질수록 물건도 늘어난다. 최애는 끝도 없이 늘기 마련인데, 도쿄 땅덩어리는 한정돼 있고, 집세는 비싸고, 수입은 그리 간단히 늘지 않는다. 안 그래도 공연 원정으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은데 덕후 굿즈 창고로 둔갑한 집에 터무니없이 비싼 집세를 내는 것이 어리석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털어놓는다.

 


 

이 책에는 4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저자는 친절하게 4명의 주인공을 모두 별도 페이지를 마련해 소개한다. 애니메이션, 코스프레, 아이돌, 밴드, 배우, 연극, 뮤지컬…… 좋아하는 것도 제각각인 네 여자가 ‘덕후로 살고 덕후로 죽기 위해’ 한집에 뭉쳤다는 것이다. 최애는 알아도 본명은 몰랐던 이들이지만, SNS라는 훌륭한 인성 지표를 통해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동거를 결심하고, 오랜 기간 다져온 검색 능력을 이용해 ‘가족이나 (결혼 예정) 연인이 아니라면 셰어 하우스 불가’라는 편견 가득한 조건을 뛰어넘어 덕후 네 명을 위한 이상적인 집을 찾아낸다.

이렇게 시작된 ‘덕후 하우스’에서 네 명의 덕후들은 덕질이라는 일상을 함께 즐기고, 문제 상황에는 덕후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전 지구적 팬데믹이 불러온 경제적, 정신적, 신체적(?) 위기를 덕질로 대동단결해 극복한다. 상대의 ‘지뢰’를 절대 밟지 않는 덕후의 예의로 갈등을 피하고, ‘최애’ 하우스에 대한 사랑으로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먼저 집안일에 나서는가 하면, 문제가 생기면 ‘드립 대결’로 불안감을 저 멀리 보내버리고, 코로나19로 재택을 하는 동안에는 모두가 좋아하는 덕질 콘텐츠로 온라인 상영회를 열며 전 지구적 재난을 버텨낸다. 서로에 대한 선을 지키면서도 재밌는 건 적극 ‘영업’하며 즐거움은 공유하고 생활을 나눈다. 4인 가족용 주택을 나눠 쓰니 다리를 쭉 뻗을 수 있는 욕조와 넓은 거실이 생긴 것은 덤이다.

 


 

도시에 불 켜진 세 집 가운데 한 집에는 외로운 노후, 불안한 경제적 지위에 대한 걱정을 뒤로 미루고 넷플릭스와 트위터를 여는 한 사람이 서식한다. 서울 사는 3가구 중 1가구가 1인 가구라는 시대다(‘2020년 서울시 복지실태조사’). 청년층의 경우 혼자 사는 삶에 대한 만족감이 높았지만, 통계는 1인 가구가 겪는 3대 어려움 역시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 바로 ‘위급할 때 대처의 어려움, 외로움, 경제적 불안’이다. 이런 불안을 타개하기 위해 여러 공유 주거 형태가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모르는 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결혼도 생각하지 않고, 종종 선을 넘는 가족도 나의 훌륭한 동거인이 되어줄 수 없다면, ‘지향’이 같은 이들을 모아보면 어떨까? 이 책의 저자는 그래서 ‘덕후’들의 동거를 시작했다. 덕질이 생활이고 생활이 덕질인 네 여자는 덕질의 씨실과 날실을 엮으면서 매일의 서사를 함께 써나간다. 덕후들의 동거에서, 서로는 무언가에 푹 빠진 친구의 얼굴을 보며 기쁨을 얻는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아는 이들끼리 때로 덕질의 고난을 위로하고 취향을 공유하면서 더 많은 즐거움을 함께 찾아 나선다. 이 책도 한집에 사는 세 사람의 덕후의 동의를 얻고 집필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4월 1일 저녁, 어느 밴드의 해체 소식을 인터넷 뉴스로 접하게 됐다. 만우절에 이건 아니지. 거실 식탁에 엎드려 있는데 동거인들이 속속 집으로 돌아왔다. …… 가쿠타 : 초밥 사 왔는데요. (쿵!) 호시노 : 나는 맥주를. (쿵!) …… 동거인들은 모두 같은 세대라서, 그 밴드의 인기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다. …… 그날 밤은 초밥을 먹으며 각자의 추억을 얘기했다. 그야말로 초상집이다. 그래도 슬픔을 나눌 사람이 집에 있는 건 나쁘지 않네.”(p.119~120)

 


 

저자 후지타니 지아키는 동거 생활을 게임에 빗대 이렇게 말한다. “(셰어 하우스 생활은) 게임으로 치면 목숨이 세 개 남은 상태다. 목숨 세 개가 잘못되더라도 게임 오버가 아니라는 사실은 꽤 든든하다.”(p.118) 닥쳐오는 위기에 조금쯤 휘청이더라도 절대 쓰러지지는 않는다. 거실에는 응원봉, 서재에는 만화책, 그리고 옆방에는 나와 함께 생활을 꾸리고 위기를 헤쳐 나갈 덕후가 있기 때문이다. ‘재밌으면 가보자고’를 외치는 덕후 여자 네 명의 왁자지껄 유쾌한 동거 생활을 보고 있자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은 사라지고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기대가 피어오른다. 비혼이라면, 혼자 살고 있고 혼자 될 노후를 고민해본 이라면 평점 좋은 애니메이션 신작처럼,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판타지 소설처럼 즐거운 상상의 실마리를 열어줄 ‘비혼 덕후 동거 장려 에세이’ 『덕후 여자 넷이 한집에 삽니다』를 읽어볼 것을 권유한다.

 

동거인들에게 ‘덕후 셰어 하우스 유지 포인트’가 무엇인지 물어봤다.

마루야마 : 아무래도 덕후와 함께 살면 느닷없이 발광하거나 물건이 쌓이는 걸 이해해주니 편해요.

가쿠타 : 덕후는 서로의 ‘지뢰’를 밟지 않으려고 하잖아요? 그게 실생활에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게 하는 것 같아요. ……

마루야마 : 진지하게 얘기하자면, 역시 어딘가 존경할 만한 부분이 있거나 매력적이라고 느껴지는 사람과 함께 사는 건 좋은 것 같아요.(p.188~189)

 


 

“이래저래 각자 온라인 회식을 즐기거나, 뜬금없이 트위터에서 화제가 된 ‘소蘇’를 만들며 집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태국 BL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중에서도 걸작으로 유명한 「보이프렌즈」를 SNS에서 강력하게 추천받아, 하우스 멤버나 덕질 메이트들과 우와~ 꺄악~ 소리를 내며(어느새 소리치고 있었다) 온라인 상영회를 한 것도 재밌었다. 우울해지기 쉬운 재택 기간에 열대 나라의 알콩달콩한 로맨틱 코미디는 위안을 주기에 충분했다. …… 덕후 콘텐츠와 SNS, 그리고 하우스 멤버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코로나19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p.173~174)

 

저자 : 후지타니 지아키(藤谷千明)

1981년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났다. 공업고교를 졸업 후 자위대에 입대했다. 그 후 서점 직원, 편집디자이너 등 여러 직업을 거쳐 프리랜서 작가가 됐다. 취미를 살려 주로 서브컬처 분야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공저로 『모든 길은 비주얼계로 통한다(すべての道はV系へ通)』 『물방울 자전 아방가르드 연대기(水玉自? ア?バンギャルドㆍクロニクル)』가 있다.

 

역자 : 이경은

일본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드라마 제작회사에서 일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영화 스태프로 일했다. ‘냥덕후’로, 고양이의 매력에 빠져 두 주인님을 모시고 있다. 길고양이가 학대로 고통 받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길 친구들을 돌보고 있다. 현재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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