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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 신, 여신, 영웅 핸드북
리브 앨버트.사라 리차드 지음, 이주만 옮김 / 시그마북스 / 2022년 5월
평점 :
그리스·로마 신화는 어렸을 적 초등학교 때부터 '필독서'였다. 어린이 때도, 청소년 때도, 대학과 일반 직장인이 되었을 때도 늘 필독 교양서적에 자리하고 있었다.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든 대부분 한 번 이상 읽었을 것이다. 독자도 무척 여러 번 읽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경우는 없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독자의 경우 첫 번째 이유는, 비슷비슷한 이야기의 연속이라는 생각에 큰 감흥이 일지 않았기 때문에 읽다 말고 책을 덮었다. 두 번째 이유는 인명이나 지명이 어려워(영어도 어려운데 영어보다 더 어려웠다) 잘 외워지지 않아서다.
그렇지 않아도 헷갈리는데 이름을 보면 앞에 나온 신(神)과 비슷한 이름인데 아주 다른 사람이다. '아'자로 시작하는 것만 보더라도 아마 수십명이 등장하지 않나 싶다. 아킬리우스, 아가멤논, 아르테미스, 아레스··· 대부분 발췌본이어서 수백 페이지에 압도당하는 일은 없었지만 제대로 완역해놓은 것은 분량이 얼마나 될지 지금도 모르는 상태다. 세 번째는 신과 조금 약한(하위 신) 신, 영웅, 인간 등이 혼재돼 나타났다 사라지는 등 정신을 쏘옥 빼놓아 '다음 기회에 읽자'는 생각에 책을 책꽂이에 꼽아놓는 일이 많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독자 입장에서 보면 완전 요약해 일목요연하게 써놓은 책을 한 번도 발견하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 이는 독자의 독서 부족이라고 탓하고 만다.
이 책 『그리스 신화 : 신, 여신, 영웅 핸드북』가 이 같은 문제점을 일시에 제거해준 책이다. 최소한 그리스 신화에 있어서는 독자의 정신과 머릿속을 말끔하게 정리해준 책으로 꼽고 싶다. 우선 매우 일목요연하게 신, 하위 신, 영웅, 인간을 구별해 파트를 나눴다. 목차만 보아도 헷갈리는 이름의 관계를 잘 알 수 있도록 간명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이른바 그들의 역할 이전에 이름과 신의 지위 등을 제대로 구별하게 정리했다. 또 각 신에 대해 간략한 설명-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족보 캐기-과 함께 '우리가 알아둘 이야기'와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를 덧붙여 각각의 신에 대한 완전한 설명을 시도했다.
주요 신과 자주 등장하는 신은 멋진 그림(애니메이션)이 제각각 한 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림만 가만히 들여다보아도 신의 역할, 인간과 좋은 관게인지 나쁜 관계인지 알 수 있도록 정교한 그림이 이 책의 특장점이다. 저자 리브 앨버트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책과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웹툰에 그리스 신화가 등장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며 "그리스 신화가 주는 즐거움은 끝이 없고 시대를 초월한다. 수많은 신과 여신, 크고 작은 온갖 동식물, 그리고 결점과 약점이 있는 인간이 함께 어울려 자연 속에서 펼치는 이야기에는 감동이 있고 웃음이 있으며 폭력이 난무한다."고 「들어가며」에서 밝히고 있다. 사실 오늘날 문학도 그리스 신화에서 스토리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그림과 음악 등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역할을 도맡아 했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다.
지금은 바뀌었지만 그리스 신화는 '문학의 원형'이라고 배웠다. 이 지식은 수메르 문명, 신과 영웅에 대한 예찬을 쓴 대서사시가 발견되기 전까지 그대로 전해져 왔다. 수메르 문명으서 발견된 점토판의 대서사시 〈길가메시〉 등 신화는 인류 역사 문명이 더 거슬러 올라갔지만. 그러나 작가가 밝혀진 것으로는 아직까지 그리스 신화를 꼽고 있다.신들의 감정과 그에 따른 행동이 인간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인 것 같다. 그리스 신화는 말이 신화이지, 인간 사회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올림포스 산의 신들은 인간 못지않게 질투하고 갈등하며 복잡하게 얽힌 사랑에 거침없이 뛰어든다.
인간계의 영웅도 마찬가지다. 기분이 거슬린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인 영웅도 있다. 하지만 읽다 보면, 어느새 그리스 신화에 빠져들게 된다. 욕하지만 시청률은 높은 막장 드라마 같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단군 신화가 신성시되는 걸 생각하며 더 그렇다. 그런데 왜, 어떻게 보면 막나가는 스토리에 가까운 그리스 신화를 읽어야 할까? 바로 그리스 신화가 성경과 더불어 서양 문명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태양계 끝자락에 있는 명왕성을 서양권에서는 ‘플루토’라고 하는데, 이 플루토가 바로 저승의 신 ‘하데스’의 로마식 이름이다. 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엘렉트라 콤플렉스 같은 정신분석 관련 용어에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 이름이 사용된다. 이런 것들의 배경을 찾다보면, 결국 그 근간에는 그리스 신화가 등장한다. 저자의 빈틈 없는 해석에 독자의 신화에 대한 지식이 크게 늘어날 계기를 마련했다. 이 책에서.
역시 그리스 신화는 누가 뭐래도 오늘날 서양 문명의 근원이 된 것임에 틀림없다. 문화는 로마 문화를 이어받은 것이라고 서양 각국은 제각각 자랑하고 있지만 그것은 로마 제국의 영광을 선망하고 동경하기 때문이다. 서양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완벽에 가까운 국가 제도, 법, 군대, 정치, 건축 등에서 오늘날까지 대부분 이어지고 있는 것만 봐도 서양인들의 로마제국에 대한 동경을 엿볼 수 있다. 그런 로마는 사실 그리스 문화를 계승했고 더 발전시킨 데 로마제국이 성립되고 지속됐다는 점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으니 결과적으로는 서양 문명의 원형은 그리스 신화에서 찾는 것이 순리적일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책 『그리스 신화』에서는 서양 문명의 근원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4부로 나누어 올림푸스 신들의 드라마와 비밀을 캐릭터별로 정리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올림푸스 산과 인간계의 슈퍼스타들이 겪은 시험과 시련을 낱낱이 훑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화려한 삽화와 함께 그리스 신화의 드라마와 비밀을 다룬다. 필멸의 영웅이 어떻게 스스로 신의 반열에 올랐는지와 올림푸스 산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신들의 막나가는 스토리를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양 문명의 근간이라는 그리스 신화가 우리 주위의 수많은 대중문화(특히 서양 쪽)에 어떻게 녹아들어 시대를 초월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혹은 가장 좋아하는 신화(예를 들어 에로스와 프시케의 러브 스토리)가 실제 신화와 어떻게 다른지도 배우게 될 것이다. 또한 그리스 신화에서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그리고 왜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은 고리타분한 신화 입문서에서는 좀 벗어나 있다. 아름다운 삽화와 더불어 캐릭터별로 항목을 나누어 각 캐릭터의 이름과 별명, 그들이 주재하는 영역과 과제, 전문 분야, 그들의 기원, 그리고 가장 잘 알려진 그들의 모험담에 관해 설명한다. 일부 캐릭터 항목에는 하위 항목이 따로 있다. 해당 캐릭터의 이해를 돕기 위해 밀접한 관계에 있는 신이나 인간을 함께 다룬다. 신화 속 신, 여신, 영웅의 프로필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가 현대인의 상식과 교양이라도,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모르면 검색을 하거나 빅스비와 시리(혹은 카카오 미니 같은)에게 물어보는 시대다. 그래도 여전히 재밌는 이야기를 즐기는 동시에 상식과 교양을 쌓기에는 그리스 신화만한 것이 없다.
이 책에 가장 많이 나오는 「제우스」에 대해 알아본다. 설명과 해석, 앞서 언급한 '알아둘 이야기'와 '몰랐던 이야기'가 첨가돼 있다. 물론 한 면의 그림은 엄청난 설명을 시각적으로 뒷받침하고 있기도 하다. 책에 따르면 제우스는 신들의 왕이다. 엄밀히 구분하면 그는 하늘과 날씨 등을 지배하는 신이지만, 사실상 신들의 신이다. 그는 막강한 힘과 영향력으로 자기가 만나는 이들의 신세를 망쳐놓기 일쑤였다. 디즈니 만화영화 〈헤라클레스〉에 묘사된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와는 거리가 멀고고, 2010년도 영화 〈타이탄〉에서 리암 니슨이 연기한 제우스와 더 닮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폭군 스타일인가 보다. 아니면 요즘 말하는 '상남자'인가.
저자는 역시 제우스도 족보 캐기에 들어간다. 우리가 알아둘 이야기가 있다. 제우스가 유명한 진짜 이유는 제우스를 아버지로 둔 신들이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지적은 참신하다. 또 제우스는 몇몇 인간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아들이고, 크레타 앙 미노스도 제우스의 아들이다. 스파르타의 헬레네와 언니 클리타임네스트라도도 제우스의 딸이다. '바람둥이'인지 진짜 신인지 헷갈린다.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는 더 재밌다. 목성(주피터, 제우스)의 위성에는 대부분 제우스의 '애인들' 이름을 따서 붙였다(다시 말하지만 제우스의 행위는 강간에 더 가까웠다). 유로파, 이오 칼리스토도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발사한 목성 탐사선의 이름이 주노(그리스어로 헤라)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나사는 제우스의 아내를 보내 제우스와 불륜 관계에 있는 여자들을 감시하도록 한 셈이다.
포세이돈은 정말로 황소를 보냈다. 잘생긴 황소 한 마리가 바다에서 나타났고, 미노스는 그가 서약한 대로 그 황소를 바로 신에게 바칠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 황소는 너무 아름답고 찬란해서 도저히 제물로 바치고 싶지 않았다! 미노스는 그 황소 대신 자신이 갖고 있던 또 다른 황소 한 마리(크레타 신화와 전설에는 황소가 정말 많이 등장한다)를 제물로 바치고 포세이돈이 보낸 황소는 살려두었다. 포세이돈은 서약을 지키지 않은 미노스에게 몹시 진노했고, 그에 대한 벌로 미노스의 아내인 파시파에가 남편이 제물로 바치지 않고 빼돌린 황소에게 반하도록 만들었다.(p.187)
저자 : 리브 앨버트
그리스 신화의 매력에 흠뻑 빠져 지낸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콘코디아 대학에서 고전 문명과 영문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고, 토론토의 험버 컬리지에서 창의적 도서출판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리브 앨버트는 토론토에서 주요 출판사들과 협상하며 계약을 체결하는 등 다른 작가의 출판을 돕는 일을 했다. 그리고 2017년에 《신화 얘기 좀 해볼까요!》(LET’S TALK ABOUT MYTHS, BABY!)라는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여자가 거실에 앉아 떠들던 수다에 불과했던 이 팟방은 이제 그녀의 작업실에서 떠드는 수다로 성장했다. 이 팟캐스트 방송은 매년 수백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캐나다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독립 팟캐스트 방송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빅토리아 시에 거주하는 리브 앨버트는 신화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아파트에서 루팽이라는 고양이와 함께 지낸다.
역자 : 이주만
서강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번역가들의 모임인 바른번역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미라클 모닝 밀리어네어』, 『아이를 위한 돈의 감각』,『힘이 되는 말, 독이 되는 말』, 『끌림』, 『탈출하라』, 『다시, 그리스 신화 읽는 밤』,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사람들』, 『심플이 살린다』, 『회색 코뿔소가 온다』, 『사장의 질문』, 『다시 집으로』, 『나는 즐라탄이다』, 『모방의 경제학』, 『케인스를 위한 변명』 등이 있다.
그림 : 사라 리차드
아이스너 상과 링고 상 후보에 오른 화가로 뉴햄프셔 출신이다. 그녀는 만화책 업계에서 주로 표지 디자이너로 8년간 일했다. 그전에는 해즈브로 장난감 회사에서 장난감 조각가로 일했으며 작은 공룡을 전문적으로 제작했다. 사라 리차드는 주로 아르데코, 아르누보, 1980년대 패션, 빅토리아 시대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는다. 그림이나 글을 창작하지 않을 때는 공포 영화를 즐기거나 방치된 묘의 묘비들을 청소하거나 19세기의 오래되고 특이한 유물을 수집한다. 사라리차드닷컴(SARARICHARD.COM)에 가면 사라 리차드의 작품을 일부 감상할 수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