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상식사전 - 인공지능, 전공은 아니지만 궁금했어요,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한규동 지음 / 길벗 / 2022년 6월
평점 :
절판


가까운 미래 내 직업이 없어지나? 궁금했지만, 배우고 싶지는 않았던 인공지능. 이젠 아는 척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알아야 하는 생존의 문제다.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상식 수준으로 쉽게 풀어 설명한 책으로 흥미롭게 배울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I 상식사전 - 인공지능, 전공은 아니지만 궁금했어요,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한규동 지음 / 길벗 / 2022년 6월
평점 :
절판



 

독자는 아날로그 세대여서 컴퓨터는 여전히 미숙하다. 스마트폰도 아직 많은 기능은 손도 대지 못한 채 사용하고 있다. 디지털로 세상이 바뀌었지만 IT 업종이나 관련 업종에 근무하지 않아서 비교적 느긋했었다. 그러나 회사의 업무 처리가 컴퓨터로 바뀌면서 자판 치기부터 인터넷 사용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려 익숙해질 정도가 됐다. 2~3년 불편함이 없이 일했는데 디지털의 속성이나 원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인지 갑자기 AI 시대에 맞부닥친 듯한 느낌이다. 사실 AI는 지난 세기말에도 인구에 회자되곤 했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피부에 와 닿은 일이 2016년 시작됐다. 당시 세계 바둑 최강의 선수로 꼽히던 우리 이세돌과 AI의 대결이 성사됨으로써다. 대결 전 바둑계에는 이세돌 9단의 승리를 예상했고, 선수 자신도 무난히 승리할 것으로 인터뷰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나 첫 번째 대국이 끝난 후부터 AI의 위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모두 5번을 두기로 돼 있었는데 유일하게 제 4국에서 한 번만 이 9단이 승리했다. 이세돌 9단의 일방적(?) 패배보다 충격적인 것은 AI의 완승과 더불어 스스로 학습하고 실력을 배양해 놀랄 만한 학습 효과를 거둔 컴퓨터(AI)의 능력이었다. 이전 체스나 바둑을 둘 때만 하더라도 "컴퓨터는 인간의 창조 능력이나 학습 능력에 뒤떨어진다"는 게 일반적 평가였다.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 이후 인공지능과 딥러닝, 머신러닝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 독자는 비컴퓨터 직종이어서 언론이나 책을 통해 인공지능 관련 소식을 듣지만 어디까지 진화하는지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컴퓨터 능력의 발전 속도는 '빛의 속도'였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능력이 하나씩 더해지는 느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독자에게도 위협이 다가온 것은 코로나-19의 대유행 이후부터다. 비대면 컨택이라는 팬데믹 상황 아래서 컴퓨터에 의존하는 업종은 물론 일부 IT 업종이나 관련 산업뿐만 아니라 전 업종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독자가 종사하는 업종도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면 없어질 업종으로 꼽히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전 업종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래 저래 책으로 지식을 접할 수밖에 없는 독자로서는 출퇴근 시간도 없고 근무일수도 감소되는 업무에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관해 공부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일은 만만치 않았다. 생소한 용어들이 난무하고 하지만 컴퓨터에 대한 지식의 문외한이었던 독자에게는 위기감마저 느껴졌다. 그때 이 책 『AI 상식사전』이 독자의 눈에 들어왔다. 어렸을 때 처음 영어를 배울 때처럼 사전부터 찾았다. 그때는 회화 중심의 영어 공부가 아니라 문법이나 이해력 테스트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사전은 필수였다. 그때처럼 아날로그 시대의 습관이 되살아난 것이다.

 


 

사실 우리 사는 세상에서 인공지능이 어디에 적용되고 있는지 아는 사람도 인공지능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고 한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이 책은 평소 인공지능에 대해 알고 싶지만 깊이 있게 공부하기에는 부담스러웠던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따라서 복잡한 수식이나 어려운 프로그래밍 용어는 최대한 배제하고 인공지능을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한다. 전공은 아니지만 궁금했던 인공지능의 역사부터 인공 신경망, 머신러닝, 딥러닝 등 인공지능과 관련 기술의 개념, 기계 번역에 활용되는 언어 모델, 이미지 처리의 원리 등을 다양한 사례를 사용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 이 책을 덮는 순간부터 ‘아, 인공지능이요? 존 매카시가 다트머스 회의에서 처음 언급했죠.’라고 여유 있게 아는 척할 수 있다.

저자 한규동은 대한민국 특허청 근무 시절부터 인공지능을 정부 업무에 활용하기 위해 노력해온 분이다. 지금은 스위스 제네바의 국제기구에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에서도 수학을 공부했고 전산학도 부전공으로 이수했다. 국제 IT 업계나 학계의 학술회의에 참여해 토론의 패널로 활동하기도 했다. 저자는 책의 앞 부분에 「저자의 말」 통해 '인공지능을 알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적절한 비유로 인공지능에 대해 말을 끄집어 낸다. "과거에는 '증기 기관'과 '전기'가 세상을 바꾸었지만, 현대에는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며 "우리의 삶이 이미 인공지능으로의 변혁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터넷 쇼핑을 할 때,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사용할 때, 기계 번역을 사용할 때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다. 인력거가 자동차로 대체되고 사람의 노동이 포크레인으로 대체되는 등 육체 노동이 기계에 대체된 이후, 최근에는 사람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지던 정신 노동까지 인공지능이 대체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사람은 인공지능이 사람을 지배할지 모른다며 두려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故) 이어령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이 사람을 지배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말과 사람의 달리기 경주를 예로 들면서 “사람이 말과 직접 경주할 것이 아니라, 말에 재갈을 물리고 올라타서 말보다 나아져야 한다.

따라서 질문을 ‘사람이 만든 인공지능에 사람이 올라탈 수 있느냐, 올라탈 수 없느냐?’로 바꿔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인공지능에 관련된 질문을 ‘인공지능을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로 바꾸면 좀 더 구체적이고 생산적인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입이다."고 인공지능은 움직일 수 없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역이고,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영향력의 범위가 넓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 것이다, 아니다'는 쓸데없는 논의를 계속할 때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젠 인공지능과 경쟁하기보다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인공지능과 협업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때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지금 우리는 디지털 전환 시대를 맞아 인공지능의 속성을 파악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것이다. 인터넷의 보급과 정보화가 시작되던 시기에도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대응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았다고 저자는 되새긴다. 인공지능에 따른 디지털 전환은 직업의 속성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고, 사회와 개인에 미치는 파급 효과와 영향력이 측정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는 사실을 인식시킨다. 직업적으로 직접 관련돼 있지 않더라고 인공지능에 대해 알아야만 곧 펼쳐질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인식한 후 한국어로 된 교육 자료의 부족함을 느끼던 중 많은 사람에게 인공지능의 기본 개념을 쉽고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고, 결국 2019년부터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한 후 출판사의 연락을 받았다는 것. '인공지능'에 대해 알고 싶지만, 전공 공부처럼 접근하기는 싫은 사람들을 위한 책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받게 됐다고. 이는 저자가 블로그에 글을 쓰며 추구하던 방향과 일치해 좀 더 다듬어 쉽고 명료한 뜻을 완성하기 위해 적잖은 노력을 기울여 책을 펴내게 되었다.

 


 

이 책은 우선 인공지능이 어떤 원리로 움직이고, 앞으로 어떻게 더 발전할 것인지를 쉽고 명쾌하게 설명한다. 이와 함께 어떤 잠재력이 있는지까지 살펴본다. 이 부분은 독자처럼 인공지능의 문외한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줘야 이 책을 계속 읽어나갈 것이기 때문에 될수록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특히 제 3장 「인공지능의 개념」 중 〈인공지능의 4가지 유형-일상생활 속 인공지능 이해하기〉는 흥미로웠다. 쉽고 이해하기 좋게 잘 기술돼 독자들은 '인공지능 요약집'이란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일본 인공지능 연구의 선구자 마쓰오 유타카의 『인공지능과 딥러닝』에 수록돼 있지만 저자가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인용했다. 이하 존대어를 독자 임의로 예삿말로 바꿈) 이에 따르면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4가지 수준으로 구분된다. '이 제품에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있다'라고 표시한다면 인공지능 유형 중 몇 단계에 해당하는지 잘 살펴보고 다음 말과 비교해본다.

<수준 1>은 인공지능 세탁기나 인공지능 청소기와 같이 단순 제어 프로그램을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으로 홍보하는 경우이다.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한 1990년대에도 가전제품을 홍보하면서 '인공지능 탑재'라는 문구가 자주 이용됐다.

<수준 2>는 자체적인 학습 기능은 없지만, 입출력이 많고 기능이 복잡한 경우이다. 대표적인 예로 고전적인 인공지능 문제인 탐색(미로 찾기)이나 논리적인 추론 또는 특정 분야의 지식을 활용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전문가 시스템 등을 들 수 있다.

<수준 3>은 학습 데이터를 이용해 규칙이나 지식을 스스로 학습하면서 품질을 높여나가는 '머신러닝' 기법을 활용하는 경우이다. 수준 2의 인공지능에 머신러닝 기법을 활용해 수준 3의 인공지능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수준 4>는 '딥러닝'을 이용하는 경우이다. 머신러닝은 학습 데이터에서 데이터를 추출하는 작업이 별도로 필요하지만, 딥러닝은 딥러닝 알고리즘이 직접 특징을 추출한다. 경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음성 인식', '이미지 인식'은 머신러닝보다 딥러닝의 성능이 뛰어난다. 하지만 딥러닝은 학습 데이터가 많은 때만 적용할 수 있다.

 


 

이 책은 8장(章)으로 나뉘었지만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인공지능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이다. 인공지능 기수의 발전에 따른 일자리의 변화와 이에 대한 개인의 대응 방향(1장), 인공지능의 편견·윤리·가짜 뉴스 등 인공지능이 사회에 미치는 문제점에 대해 설명한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인공지능의 기본 개념을 비롯한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본다. 3~6장세서는 인공지능, 머신러닝, 인공 신경망, 딥러닝의 개념 등에 대해 알아보고, 7~8장에서는 인공지능의 대표적인 응용 분야의 자연어 처리와 이미지 처리 분야에서 활용되는 인공지능에 대해 설명한다. 이 책은 이에 따라 인공지능에 따라붙는 복잡한 수식이나 어려운 프로그래밍 용어를 가능한 한 배제했다. 또 교양서 수준의 AI 개념서에서 다루지 못하는 영역까지 접근해, 비유와 예시를 통해 알기 쉽게 전달해 준다. 독자 역시 이미 '생존의 문제'로 대두된 인공지능에 대해 얼마간 자신감이 붙었다고 할 수 있다. '상식사전'이어서 아날로그 세대인 독자는 사전식으로 용어 해설 중심으로 나열돼 있을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 읽듯히 단숨에 내리 읽을 수 있도록 설명과 사례가 바로바로 포함돼 있다는 점이 독자의 친근감을 이끌어냈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에게 강력히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 : 한규동

 

현재 스위스 제네바의 국제기구에 근무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수학 교육을 전공하고 전산학을 부전공했다. 특허청 과장으로 IT 분야에 근무하면서 인공지능을 정부 업무에 활용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인공지능 개념과 지식재산 분야의 응용 현황에 대한 강의를 활발히 해 왔으며, 지식재산 분야의 인공지능 관련 국제 논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세계지식재산기구의 인공지능 국제 컨퍼런스에 한국 대표의 자격으로 참여해 발표를 하거나 토론회에 패널로서 참여하기도 했다. 특허 분야 선진 5개국 특허청 모임의 인공지능 태스크 포스 회의에서 '특허행정분야 응용'이라는 주제의 의장을 맡기도 했다. 사람들과 인공지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며, 인공지능 교육에 관심이 많다. 인공지능의 개념을 사람들에게 쉽게 설명하고 전달하기 위해 항상 고민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무처럼 자라는 집 - 임형남·노은주의 집·땅·사람 이야기
임형남.노은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집은 인간 삶의 필수요건인 의식주 중의 하나이다. 집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밥이나 옷과 같은 필수적인 것이라는 이야기다. 시대에 따라 의식주 3대 요소는 변화와 발전을 거듭했지만 삶의 필수요건에서 한 번도 빠질 수 없는 절대적인 요건이다. '요즘은 집 없이도 사는 사람이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집의 개념이 변화하긴 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것은 '집'의 개념을 단순 주거지로서의 개념으로 보는 입장에서 하는 말이지, '신변 안전과 휴식'을 위한 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이다. 독자는 후자의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집의 개념에 더 가깝다고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족이 함께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능력이 없어 집을 못 사는 경우는 있어도 필요치 않아서 안 사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한반도, 현재 생활 공간인 남한 쪽만 생각해보면 인구밀도가 세계 최상위권에 해당한다. 이를 사람이 밀집해 사는 도시의 경우로 국한해보면 인구밀도는 훨씬 높아질 것이다. 그러니 집값이 평생 벌어도 마련하기 힘들 정도로 뛰는 이유이기도 하다. 집은 적어도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주거나 휴식의 개념에 '축재', '이재'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이유도, 땅값·집값이 폭등하는 이유도 모두 한정된 공간에서 높은 인구밀도가 빚어낸 결과라는 주장엔 반박할 공간이 없을 것 같다. 건축가인 저자도 집을 짓는다는 것은 기초를 깔고 기둥을 세우고 벽을 붙이고 지붕을 덮는 물리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가족의 생활을 깔고 가족의 이야기로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는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땅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집은 사람이 짓지만 시간이 완성한다고 한다. 집은 엄마 혹은 고향 같은 단어처럼 온도를 가지고 있다. 건축은 어딘가 차갑고 무뚝뚝한 구석이 있지만, 집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따뜻해진다. 특히 ‘우리 집’이라는 말처럼 좋은 말이 또 있을까? 집은 땅과 사람이 함께 꾸는 꿈이다. 지금도 집은 자라고 있다. 아이들이 자라듯이 집은 자랄 것이다. 그리고 그 집은 나무처럼 열매를 맺고 자랄 것이다. 집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가 담기고 역사·문화까지 고려한 말이다. 단순히 축재나 이재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그 집은 역사가 담길 수도, 우리 삶의 이야기들이 담길 공간도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저자는 건축에는 시간이 담긴다고 강조한다. 어떤 찰나일 수도 있고, 어느 길고 긴 시간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의 생각일 수도 있다. 저자는 건축은 타임캡슐이라는 입장이다. 좋은 시간이든 나쁜 시간이든 건축에는 그런 시간들이 담긴다. 그래서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이고, 그 안에서 살아간 사람이 남기는 기록의 저장소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에게 집이란 매우 독특한 의미를 가진다. 단순히 비와 바람을 피하는 물리적인 껍질만이 아닌, 자아의 실현이라는 의미를 함께 가진다. 그래서 건축이란 땅과 같은 리듬을 가져야 하고, 주인과 같은 리듬을 가져야 하며, 무엇보다도 성장하는 것이다. 건축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땅의 이야기를 듣고 그 둘 사이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가 쓴 『나무처럼 자라는 집』은 이들이 생각하는 땅과 사람이 함께 '꿈꾸는 집'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에는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집을 설계해온 임형남·노은주의 집에 대한 성찰과 건축 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들에게 집은 살아 있는 생명체이고, 나무처럼 자라고 괴로우면 신음을 내고 즐거우면 모두에게 복이 되는 그런 생물체다. 또 집은 시간이 갈수록 아름다워진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바로 집이라는 공간이고 집이라는 단어이고 집이라는 온도다. 행복은 바로 집에 있다. 체온이 남아 있는 이불 속에, 햇살이 내려앉은 낡은 소파에, 보글거리는 찌개 냄비 속에 있다. 집은 얼었던 마음을 풀어주고 딱딱하게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고 ‘괜찮아’ 하면서 위로해줄 것만 같은 한없이 넓고 넉넉한 품을 가진 곳이다. 이에 따라 이들은 집은 생각으로 지어야 한다고 말한다. 집이란 생각의 집적체이며, 집의 이름을 짓는 것은 그 생각을 정리해서 집의 토대를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집의 이름을 짓는 것은 자신이 살아가는 동안의 자세를 정하는 것이고, 가족의 미래를 꿈꾸는 일이다.

『나무처럼 자라는 집』은 임형남·노은주가 20년 전에 출간한 첫 책으로, 2022년에 새롭게 개정·증보한 ‘출간 20주년 기념판’이다. 이들은 첫 번째 집을 설계하고 완성한 이후 그 이야기를 담은 첫 책인 이 책을 냈다. 이들은 이 책을 10년마다 개정판을 낸다면 몇 번이나 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나무처럼 자라는 책’이라고 했다. 이들은 집을 한 채 짓고 나면 책을 한 권 쓰고도 남을 만큼 이야기가 모이기 때문에, 그 안에 사는 한 가족이 모두 한 권의 책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의 이야기를 남기기 때문에 100권 정도의 책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 「집은 땅과 사람이 함께 꾸는 꿈」은 최근 10년 동안 집을 지으면서 썼던 글들이다. 집에는 시간이 담기고 이 시간이 모여서 이야기가 된다는 「오래된 시간이 만드는 건축」(제2장)과 집짓기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인 땅, 돌, 나무, 빛 등에 대한 이야기인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제3장)과 충주 산척면 상산마을의 김 선생 댁을 지었던 이야기인 「나무처럼 자라는 집」(제4장)은 초판의 원고를 다듬고 일러스트를 추가로 그려 넣었다. 표지도 앞표지는 20년 전의 표지를, 뒤표지는 20년 후 즉 2022년의 표지를 담았다. 어쩌면 2002년과 2022년이 공존하는 느낌의 표지다. 그만큼 이 책에는 20년이라는 시간이 축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건축가의 새로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본다. 금산주택은 충남 금산 외곽, 진악산이 마주 보이는 언덕에 있다. 이 집은 거주 면적 43제곱미터(약 13평), 마루 26제곱미터(약 8평)의 소박한 집으로 마루에 앉으면 산이 걸어 들어오고, 발아래 경쾌하게 흘러가는 도로를 내려다보는 시원한 조망을 가졌다. 한옥 같은 느낌이면 좋겠다는 집주인에게 진악산을 바라보는 동서로 긴 집을 권했다. 집의 여러 가지 조건이 600여 년 전의 철학자 이황의 집 ‘도산서당’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이 집은 교육자인 집주인과 책들과 학생들과 동료 선생님들을 위한 집이다. 그리고 서양식 목구조를 적용하되 한국 건축의 공간을 담은 집이다.

 


 

임형남·노은주는 “왜 우리는 우리의 몸에 맞지 않는 집을 원하는 것일까요?”라고 묻는다. 현대인들은 집에 집착하고 집의 크기에 집착한다. 그리고 집도 커져야 사회적 성공을 이룬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화려한 집에 담기는 것은 빈곤한 마음이다.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집도 사람을 기형으로 만든다. 어느 날 물밀듯이 밀려오는 존재에 대한 회의처럼, 집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집은 달에서도 보일 정도로 큰 신전과 같은 거대한 집이 아니라 생각이 담긴 집이어야 한다. 금산주택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담기면서 자연과 조화롭게 마주 보고 있다.

또 제따와나 선원은 강원도 춘천에 있는 ‘처음도 과정도 결과도 즐거운 중도의 집’이다. 당시 선원장 스님에게서 불교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설계의 가이드라인 중 사성제는 고집멸도(苦集滅道), 즉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소멸에 대한 고찰이다. 집착을 통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행 공간이므로 사성제가 기본적인 개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중도’라는 개념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다.’ 그래서 과거의 방식과 불교적인 교리를 바탕에 깔되 현대적인 생활 습관에 적합하게 설계했다. 그리고 불교의 기본 정신을 되살렸다. 대부분의 사찰처럼 한옥으로 짓지 않고 콘크리트 구조로 뼈대를 만들고 벽돌로 옷을 입혔다. 그렇게 1년 동안의 설계 기간을 거쳐 공사를 시작했고, 뼈대를 올리고 벽돌을 외부에 쌓고 바닥에 깔아서 무려 30만 장의 벽돌로 공간을 완성했다. 처음도 과정도 결과도 즐거운 중도의 정신이, 집의 안과 밖에 스며든 공간이 완성되었다.

 


 

특히 까사 가이아는 바다색이 아름다운 김녕 바닷가에 제주도의 풍광을 담은 집이다. 건축주는 제주도 토박이 부부로, 제주도 바닷가의 전망 좋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란한 형태와 색채를 집어넣은 집은 결코 짓지 않겠다고 했다. 단지 바다가 훤히 보이는 욕실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바다를 가리지 않으며 바닷바람에 견딜 만한 집을,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던 제주도의 돌처럼 단단하게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그 자리에 옛날부터 있었던 오랜 집처럼 보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까사 가이아는 무수한 비바람을 견디며 살아온 제주도의 강인한 여성성을 상징하고, 어머니의 안온한 품처럼 따뜻하고, 바다와 오름 사이를 넘나들며 오가는 햇빛과 바람과 바다라는 제주도의 자연으로 채워졌다. 까사 가이아는 2021년 1월 EBS 〈건축탐구 집 : 그 집으로의 특별한 초대〉에 소개되기도 했다.

책에 따르면 집은 사람이 짓지만 시간이 완성한다. 집이란 짧은 시간 동안 단번에 지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집 자체가 스스로 완성을 유보한 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완성되어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에게 집을 짓는 것을 허락한 땅과 돌과 나무들도 집에 대해서 일정 부분의 몫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집은 사람이 계획하고 쌓고 세워서 짓기 시작하면 어느 정도의 모양과 공간은 갖추게 되겠지만, 최종 완성은 집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과의 원만한 합의와 조화가 이루어질 때다. 시간은 그렇게 사람이 만들어놓은 건물에서 풀기를 빼주기도 하고, 생경한 색깔을 누그러뜨려주기도 하고, 성질을 눌러주기도 한다.

 


 

이들 건축가는 집에도 격이 있다고 설명한다. 집에도 안에서부터 은은히 번져 나오는 향기가 있다는 것. 산천재는 격이 있고 향기가 있는 집이다. 집이 크지도 깊지도 않다. 그저 빠르게 지나가는 국도변 강가에 앉아 있는 낮고도 단순한 집이다. 그러나 위엄이 있다. 산천재 뒷마당은 지리산 천왕봉이 잘 보이는 몇 곳 중의 하나다. 산천재는 지리산 천왕봉을 쳐다보며 고즈넉이 앉아 있다. 특히 산천재가 지리산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 좋다. 아무런 자기 주장도 없어 보이는 낮은 집이지만, 집을 드러내지 않고 산의 흐름에 몸을 맡긴 그 모습이 근엄하다. 그리고 절대 낮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주위와 어울리는 품위가 있다.(p.238)

 

저자 : 임형남

건축은 땅이 꾸는 꿈이고, 사람들의 삶에서 길어 올리는 이야기다. 임형남&노은주 부부는 땅과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둘 사이를 중재해 건축으로 빚어내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동문으로,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가온’이란 순우리말로 가운데·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이들은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 그 여정에서 집이 지어지고, 글과 그림이 모여 책으로 엮인다. 2011년 ‘금산주택’으로 한국공간디자인대상을, 2014년 ‘루치아의 뜰’로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우리사랑상을, 2020년 ‘제따와나 선원’으로 아시아건축사협의회 건축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공간을 탐하다』, 『건축탐구 집』, 『도시 인문학』, 『집을 위한 인문학』, 『골목 인문학』, 『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 『생각을 담은 집 한옥』,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 『사람을 살리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나무처럼 자라는 집』, 『이야기로 집을 짓다』, 『서울 풍경 화첩』 등이 있다. EBS <건축탐구-집>에 출연해 집의 존재 이유와 중요성을 전하고 있고, 최근 ‘이야기로 집을 짓다(이집)’라는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다. 홍익대, 중앙대 등에서 강의를 했고, ‘금산주택’으로 2011년 공간디자인대상, 2012년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제따와나 선원’으로 2020년 아시아건축가협회 건축상을 수상했다. 『건축탐구 집』, 『집을 위한 인문학』, 『골목 인문학』, 『도시 인문학』 『서울풍경화첩』 『이야기로 집을 짓다』 『나무처럼 자라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사람을 살리는 집』, 『생각을 담은 집 한옥』 등 15권의 저서가 있고, 동아일보와 한겨레신문에 건축칼럼을 집필 중이다. 또한 EBS 〈건축탐구-집〉에 프리젠터로 출연해 집의 존재 이유와 중요성을 전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금산주택(House in Geumsan)〉 〈루치아의 뜰(Lucia's earth)〉, 〈까사 가이아(CASA GAIA〉, 〈제따와나 선원(Buddhist temple ‘Jetavana’〉 등이 있다.

 

저자 : 노은주

건축은 땅이 꾸는 꿈이고, 사람들의 삶에서 길어 올리는 이야기다. 임형남&노은주 부부는 땅과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둘 사이를 중재해 건축으로 빚어내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동문으로,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가온’이란 순우리말로 가운데·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이들은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 그 여정에서 집이 지어지고, 글과 그림이 모여 책으로 엮인다. 2011년 ‘금산주택’으로 한국공간디자인대상을, 2014년 ‘루치아의 뜰’로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우리사랑상을, 2020년 ‘제따와나 선원’으로 아시아건축사협의회 건축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꽃들의 대화
서경희 지음 / 문학정원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은 어떤 꽃을 닮았나요?” 꽃을 만나면 떠올리게 될 아름다운 이야기. 유년시절 꽃들에게 배운 언어로 작가는 희망을 노래한다. 독자는 작가의 노래에서 조금은 모나지만 마음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감동하고 희망을 따라 읽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꽃들의 대화
서경희 지음 / 문학정원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꽃들의 대화』는 '출판 실험'의 본보기로 인식되는 책이다. 출판(publishing, 出版)이란 문서·그림·사진 등의 저작물을 인쇄, 기타의 방법으로 복제하여 다수 독자에게 발매 또는 배포하는 일을 말한다고 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독자가 아는 범위 내에서 인쇄술이 행하여지지 않던 시대에는, 책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필사(筆寫)에 의해서 복제되어 소수의 독자에게 반포되었다.

이 시대에는 판매가 목적이었다기보다는 소수의 수신자에게 보내거나 보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인쇄술(특히 활자 인쇄)의 발명으로 대량 출판의 시대가 열렸고, 지식을 전달하는 출판업은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다. 특히 르네상스 이후 대량의 출판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늘날은 인쇄술의 놀라운 발전으로 컬러는 물론 실물에 가까운 정교한 인쇄로 독자들의 사랑과 인기를 한몸에 받았으나, 이젠 디지털 영상 시대로 전환하면서 기존의 신문 등 인쇄에 의한 지식 전달 수단으로서의 역할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독자가 알기로는 책을 한 권 내기까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관여하는,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대량 생산하더라도 출판 전(全) 과정의 비용 등을 감안해 제작 비용이 나오지 않는다면 출판을 담당하는 출판사에서 발행을 꺼릴 것이다. 문학 작품의 경우 시는 수십 편을 함께 묶어야 한 권의 책으로 제작 가능하고, 200자 원고지 80장 안팎의 단편소설도 10편은 넘어야 한 권의 책으로 출판이 가능하다. 이는 독자들이 책값을 지불하고 책을 사서 보는 기준으로 산정하는 것 같다. 즉, 몇 권 팔릴 것인지를 추정하고 이익분기선을 넘어야 출판사 측은 출판을 결정하지 않겠는가? 단편소설 한 편으로 한 권의 책을 낸 이 책은 실험적 출판물이란 말이 그래서 나온다.

이 책에 대한 출판사 측 소개글에 따르면 단편소설은 대부분 소설집에 속한 형태로 다른 여러 단편들과 함께 독자들과 만난다. 단편소설 역시 작가가 창조한 하나의 세계인데, 어쩐지 그렇게만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게 작가로서 못내 아쉬웠던 것일까? 단편소설 한 편을 한 권의 완성된 책으로 선보이는 출판 실험을 시도했다. 정사각형 판형에 본문의 문단을 나누고 컬러 일러스트도 함께 담았다. 나누어진 문단은 얼핏 시(詩)처럼 보이기도 하고,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일러스트는 그림책을 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예전에 외국 작가 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이 책처럼 짧은 글(단편소설의 길이보다는 더 길었다)의 우화를 번역해 크게 히트 치면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었다.

 


 

저자 서경희는 “단편소설을 이런 방식으로 출간하는 건 나의 오랜 꿈이었다. 나는 내가 쓴 단편소설에 제대로 된 표지와 함께 온전한 세계를 선물하고 싶었다.” 섬세한 저자의 오랜 꿈을 실현시킨 것이다라고 밝힘으로써 출판계의 실험작으로 발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책을 처음 내는 것도 아니다.

앞서 ‘하우스 마루타(부실시공된 아파트에 들어가서 사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를 소재로 청년들의 눈물 나는 생존 투쟁을 그린 장편소설 『수박 맛 좋아』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단편소설 「미루나무 등대」로 김유정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독자들과 처음 만났다고. 「미루나무 등대」는 원전마을을 둘러싼 주민들 간의 갈등에 다문화가정의 문제를 겹쳐놓은 작품으로, 초등학생 소녀를 내세워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눈높이를 낮게 설정해 오히려 어른들의 위악을 부각시킨 점이 높게 평가됐다고. 필리핀 사람인 엄마와 그런 엄마를 ‘이천만 원’이라고 부르는 할머니 사이에서 사라진 엄마를 그리워하며 “내가 등대였다면 엄마에게 길을 가르쳐 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소녀의 마음은 애잔하게 독자들의 마음에 와닿았다.

 


 

이 『꽃들의 대화』에도 세상에 태어나 처음 “꽃”이란 말을 내뱉은 소녀가 등장한다. 「미루나무 등대」와는 다른 모습이지만 역시나 엄마와 할머니가 등장해 작가가 소녀, 엄마, 할머니까지 여성들의 관계에 관심 갖고 창작 세계를 넓히고 있음을 드러낸다. 소설가 윤영수는 이 아름다운 책과 책을 탄생시킨 서경희에 대해 “그녀는 작가다. 자신만이 아는 은밀한 재료와 귀한 향료를 섞어 한 방울의 마약을 짜내는 마녀처럼, 그녀는 글 한 줄 낱말 하나를 찾아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아름다운 글은 삶에 지친 이들에게 위로를 준다. 각박한 세상을 살아내는 일이 헛되지 않음을 알려준다. 마치 한 송이 꽃처럼.” 하고 추천사를 보탰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한 말은 ‘엄마’가 아닌 ‘꽃’이었다. 어눌한 발음으로 꽃을 가리키며 ‘꼬오’라고 불렀다. 소녀의 어린 시절 유일한 친구 역시 꽃이었다. 모래로 만든 밥 위에 제비꽃을 점점이 뿌리고 잡초로 만든 국수에는 민들레꽃을 올려놓았다. 소녀가 만들었다는 꽃으로 만든 음식들. 진달래꽃으로 장식한 진흙 케이크, 원추리꽃을 둘둘 말아서 만든 김밥 등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애틋해진다. 어른이 된 소녀는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쓴 〈꽃들의 대화〉 희곡으로 신진작가 공모전에 당선되어, 공연을 준비 중이다. 봄은 벚꽃, 여름은 장미, 가을은 국화, 겨울은 동백. 계절을 꽃으로 나누고 그와 연관된 에피소드를 만든 것이다.

 


 

꽃이 유일한 친구였던 소녀. 말 걸어줄 가족도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도 없는 여자. 자신의 마음을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그는 원하는 대로 무사히 공연을 올릴 수 있을까? 산뜻하고 화사한 그림과 함께 전해지는 이야기 속에서 화자는 사람을 꽃에 비유한다. “인동꽃”을 닮은 아빠, “작약꽃”처럼 예뻤던 엄마, “새침한 능소화” 같은 동생. 연출은 “어떤 꽃보다 크고 화려하며 고개를 들어야만 볼 수 있는 해바라기”, 볼품없어진 자신의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어주는 규는 “여름철 장독대 옆에 피어 있던 봉선화”다. 그렇다면 화자 자신은 어떤 꽃일까?

“꽃보다 예쁜 밥상을 차리길 좋아하던 할머니, 본인이 꽃보다 아름다워지고 싶었던 엄마”라고 설명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쓴 희곡의 두 주인공 배우와 같이 꽃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으며 그녀는 혼자였던 지난날의 아픔 위에 새로운 추억을 포갠다. 꽃 같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 그녀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진짜 원하는지 알아갈 것이다. “외롭고 곁에 아무도 없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를 계속 써나가고 싶다.”는 작가의 각오처럼 이 책 역시 혼자인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고 싶은 책이다. 이제 꽃을 마주하는 날이면 독자들은 한 송이 아름다운 꽃 같은 이야기 『꽃들의 대화』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암만케도 쟈가 꽃에 홀렸지 싶다. 그만 델꼬 가라. 여 더 뒀다가는 사람 구실 몬한데이."(p.10)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유년시절로 돌아간다. 소녀는 다섯 살이 되도록 대여섯 개의 단어밖에 말하지 못할 정도로 말문이 늦게 트였다. 소녀의 어린 시절 유일한 친구는 꽃이었다. 모래로 만든 밥 위에 제비꽃을 점점이 뿌리고 잡초로 만든 국수엔 민들레꽃을 올려놓았다. 진달래꽃으로 장식한 진흙 케이크, 원추리꽃을 둘둘 말아서 만든 김밥은 소녀 스스로 보아도 먹음직스러웠다. 어느 날 학교 화단에서 꽃을 먹다 친구한테 들킨 뒤로 이상한 아이라는 소문과 동시에 아무도 소녀와 놀아주지 않았다. 이후 오랫동안 꽃을 입에 대지 않았다.

 

저자 : 서경희

 

2015년 단편소설 「미루나무 등대」로 김유정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하우스 마루타’를 소재로 수박 한 조각 마음 편히 먹지 못하는 청년들의 현실을 담은 장편소설 『수박 맛 좋아』를 출간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