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 대화
서경희 지음 / 문학정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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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꽃들의 대화』는 '출판 실험'의 본보기로 인식되는 책이다. 출판(publishing, 出版)이란 문서·그림·사진 등의 저작물을 인쇄, 기타의 방법으로 복제하여 다수 독자에게 발매 또는 배포하는 일을 말한다고 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독자가 아는 범위 내에서 인쇄술이 행하여지지 않던 시대에는, 책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필사(筆寫)에 의해서 복제되어 소수의 독자에게 반포되었다.

이 시대에는 판매가 목적이었다기보다는 소수의 수신자에게 보내거나 보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인쇄술(특히 활자 인쇄)의 발명으로 대량 출판의 시대가 열렸고, 지식을 전달하는 출판업은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다. 특히 르네상스 이후 대량의 출판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늘날은 인쇄술의 놀라운 발전으로 컬러는 물론 실물에 가까운 정교한 인쇄로 독자들의 사랑과 인기를 한몸에 받았으나, 이젠 디지털 영상 시대로 전환하면서 기존의 신문 등 인쇄에 의한 지식 전달 수단으로서의 역할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독자가 알기로는 책을 한 권 내기까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관여하는,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대량 생산하더라도 출판 전(全) 과정의 비용 등을 감안해 제작 비용이 나오지 않는다면 출판을 담당하는 출판사에서 발행을 꺼릴 것이다. 문학 작품의 경우 시는 수십 편을 함께 묶어야 한 권의 책으로 제작 가능하고, 200자 원고지 80장 안팎의 단편소설도 10편은 넘어야 한 권의 책으로 출판이 가능하다. 이는 독자들이 책값을 지불하고 책을 사서 보는 기준으로 산정하는 것 같다. 즉, 몇 권 팔릴 것인지를 추정하고 이익분기선을 넘어야 출판사 측은 출판을 결정하지 않겠는가? 단편소설 한 편으로 한 권의 책을 낸 이 책은 실험적 출판물이란 말이 그래서 나온다.

이 책에 대한 출판사 측 소개글에 따르면 단편소설은 대부분 소설집에 속한 형태로 다른 여러 단편들과 함께 독자들과 만난다. 단편소설 역시 작가가 창조한 하나의 세계인데, 어쩐지 그렇게만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게 작가로서 못내 아쉬웠던 것일까? 단편소설 한 편을 한 권의 완성된 책으로 선보이는 출판 실험을 시도했다. 정사각형 판형에 본문의 문단을 나누고 컬러 일러스트도 함께 담았다. 나누어진 문단은 얼핏 시(詩)처럼 보이기도 하고,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일러스트는 그림책을 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예전에 외국 작가 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이 책처럼 짧은 글(단편소설의 길이보다는 더 길었다)의 우화를 번역해 크게 히트 치면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었다.

 


 

저자 서경희는 “단편소설을 이런 방식으로 출간하는 건 나의 오랜 꿈이었다. 나는 내가 쓴 단편소설에 제대로 된 표지와 함께 온전한 세계를 선물하고 싶었다.” 섬세한 저자의 오랜 꿈을 실현시킨 것이다라고 밝힘으로써 출판계의 실험작으로 발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책을 처음 내는 것도 아니다.

앞서 ‘하우스 마루타(부실시공된 아파트에 들어가서 사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를 소재로 청년들의 눈물 나는 생존 투쟁을 그린 장편소설 『수박 맛 좋아』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단편소설 「미루나무 등대」로 김유정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독자들과 처음 만났다고. 「미루나무 등대」는 원전마을을 둘러싼 주민들 간의 갈등에 다문화가정의 문제를 겹쳐놓은 작품으로, 초등학생 소녀를 내세워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눈높이를 낮게 설정해 오히려 어른들의 위악을 부각시킨 점이 높게 평가됐다고. 필리핀 사람인 엄마와 그런 엄마를 ‘이천만 원’이라고 부르는 할머니 사이에서 사라진 엄마를 그리워하며 “내가 등대였다면 엄마에게 길을 가르쳐 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소녀의 마음은 애잔하게 독자들의 마음에 와닿았다.

 


 

이 『꽃들의 대화』에도 세상에 태어나 처음 “꽃”이란 말을 내뱉은 소녀가 등장한다. 「미루나무 등대」와는 다른 모습이지만 역시나 엄마와 할머니가 등장해 작가가 소녀, 엄마, 할머니까지 여성들의 관계에 관심 갖고 창작 세계를 넓히고 있음을 드러낸다. 소설가 윤영수는 이 아름다운 책과 책을 탄생시킨 서경희에 대해 “그녀는 작가다. 자신만이 아는 은밀한 재료와 귀한 향료를 섞어 한 방울의 마약을 짜내는 마녀처럼, 그녀는 글 한 줄 낱말 하나를 찾아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아름다운 글은 삶에 지친 이들에게 위로를 준다. 각박한 세상을 살아내는 일이 헛되지 않음을 알려준다. 마치 한 송이 꽃처럼.” 하고 추천사를 보탰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한 말은 ‘엄마’가 아닌 ‘꽃’이었다. 어눌한 발음으로 꽃을 가리키며 ‘꼬오’라고 불렀다. 소녀의 어린 시절 유일한 친구 역시 꽃이었다. 모래로 만든 밥 위에 제비꽃을 점점이 뿌리고 잡초로 만든 국수에는 민들레꽃을 올려놓았다. 소녀가 만들었다는 꽃으로 만든 음식들. 진달래꽃으로 장식한 진흙 케이크, 원추리꽃을 둘둘 말아서 만든 김밥 등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애틋해진다. 어른이 된 소녀는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쓴 〈꽃들의 대화〉 희곡으로 신진작가 공모전에 당선되어, 공연을 준비 중이다. 봄은 벚꽃, 여름은 장미, 가을은 국화, 겨울은 동백. 계절을 꽃으로 나누고 그와 연관된 에피소드를 만든 것이다.

 


 

꽃이 유일한 친구였던 소녀. 말 걸어줄 가족도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도 없는 여자. 자신의 마음을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그는 원하는 대로 무사히 공연을 올릴 수 있을까? 산뜻하고 화사한 그림과 함께 전해지는 이야기 속에서 화자는 사람을 꽃에 비유한다. “인동꽃”을 닮은 아빠, “작약꽃”처럼 예뻤던 엄마, “새침한 능소화” 같은 동생. 연출은 “어떤 꽃보다 크고 화려하며 고개를 들어야만 볼 수 있는 해바라기”, 볼품없어진 자신의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어주는 규는 “여름철 장독대 옆에 피어 있던 봉선화”다. 그렇다면 화자 자신은 어떤 꽃일까?

“꽃보다 예쁜 밥상을 차리길 좋아하던 할머니, 본인이 꽃보다 아름다워지고 싶었던 엄마”라고 설명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쓴 희곡의 두 주인공 배우와 같이 꽃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으며 그녀는 혼자였던 지난날의 아픔 위에 새로운 추억을 포갠다. 꽃 같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 그녀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진짜 원하는지 알아갈 것이다. “외롭고 곁에 아무도 없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를 계속 써나가고 싶다.”는 작가의 각오처럼 이 책 역시 혼자인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고 싶은 책이다. 이제 꽃을 마주하는 날이면 독자들은 한 송이 아름다운 꽃 같은 이야기 『꽃들의 대화』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암만케도 쟈가 꽃에 홀렸지 싶다. 그만 델꼬 가라. 여 더 뒀다가는 사람 구실 몬한데이."(p.10)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유년시절로 돌아간다. 소녀는 다섯 살이 되도록 대여섯 개의 단어밖에 말하지 못할 정도로 말문이 늦게 트였다. 소녀의 어린 시절 유일한 친구는 꽃이었다. 모래로 만든 밥 위에 제비꽃을 점점이 뿌리고 잡초로 만든 국수엔 민들레꽃을 올려놓았다. 진달래꽃으로 장식한 진흙 케이크, 원추리꽃을 둘둘 말아서 만든 김밥은 소녀 스스로 보아도 먹음직스러웠다. 어느 날 학교 화단에서 꽃을 먹다 친구한테 들킨 뒤로 이상한 아이라는 소문과 동시에 아무도 소녀와 놀아주지 않았다. 이후 오랫동안 꽃을 입에 대지 않았다.

 

저자 : 서경희

 

2015년 단편소설 「미루나무 등대」로 김유정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하우스 마루타’를 소재로 수박 한 조각 마음 편히 먹지 못하는 청년들의 현실을 담은 장편소설 『수박 맛 좋아』를 출간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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