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 싸부 - Chinese Restaurant From 1984
김자령 지음 / 시월이일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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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요리를 소재로 하지만 갖고 있는 큰 줄기, 주제는 환경 변화에 따른 인간의 나약한 모습이 드러나기도 하고, 어떻게 순응해가는지도 잘 보여준다. 인간이 변화를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은 조금씩 변해간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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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 싸부 - Chinese Restaurant From 1984
김자령 지음 / 시월이일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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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健啖)은 '잘 먹는다', '먹성이 좋다'는 뜻의 한자어라고 한다. 이 책 『건담 싸부』를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우리 일상에서 자주 쓰이지 않는 용어라서 중국 혹은 일본의 말을 한자로 표현한 걸까?라고도 생각해 봤지만, 이 책의 저자 김자령이나 소설의 주인공 두위광의 이름으로 미루어 중국 한자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건(健)' 자는 '건강'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기 때문에 쉽게 알았는데 역시 '담(啖)'는 생소하다. 어쩔 수 없이 자전을 찾아보는 수밖에. 입 '구(口' 변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먹는 것과 관련이 있을 듯하다. 찾아보니 '먹을'이란 뜻을 가지고 있고 '건담'은 '잘 먹는다', '많이 먹는다'는 뜻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주방장 두위광이다.

이 책은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등장인물과 중국집 주방의 업무별 직급과 화교 용어를 따로 페이지를 마련해 풀어주고 있다. 이에 따르면 주인공 두위광은 70대 중반의 산둥 출신의 화교 요리사다. 40년 가까이 중국집 '건담'의 주방을 지켜왔다. '펑즈(미친 사람)'라 불릴 정도로 고집스럽고 괴팍하지만 평생 수도승처럼 요리에 정진하며 살아온 중식계의 전설이라고 한다. 서양의 유명한 요리사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만의 요리 비법을 간직해 요리에서의 고집은 이해할 만하다. 특이한 점은 '중국식 냉면'이란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한다. 사연이 있어 보이지만 누구도 이유를 묻지는 못한다. 어릴 때부터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건담 두위광은 몸으로, 어깨너머로 중식을 배운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배웠던 방법으로 가르쳤다. 그런데 이유가 그 방법 밖에는 알지 못했으니까라니 조금은 터무니없다.

 


 

이 소설에서는 세대 간의 갈등과 실패자의 도전과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과 노력 없이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의 모습들이 우스꽝스럽게, 적나라하게, 짠하게 그려진다. 책을 읽는 동안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날 정도다. 이런 집이 우리 동네에 하나 있으면 자주 시켜 먹고 싶은 생각이 든다. '건담 식구'들의 이미지가 좁은 주방에서 웍을 돌리고, 화력 좋은 불앞에서 땀을 흘리고, 담벼락에서 담뱃불을 피우며, 좁은 홀안을 우아하게 돌아다닌다. 흔히 동네 중국집에서 보았던 광경이라 큰 거부감은 없다. 두위광 만큼이나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때론 독자를 반성케 하고, 독자를 응원하게 하고, 독자를 위로하기도 해서 책을 놓고 싶지 않다. 이 소설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건담 식구는 건담의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말한다. 도본경도 그중 한 명이다. 20대 후반으로서 건담 입사 6개월 차의 신입 직원이다. 책에 소개된 대로 읽으면서 쉽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인물이다. 거대한 체격에 잘 웃고, 긍정적이며 매사 심각할 거 하나 없는 단발머리의 청년이다. 설거지를 비롯해 온갖 잡일을 맡아 하는 '싸완(설거지와 잡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이러저러한 기술적 문제들을 담당하는 해결사이다. 드라마로 표현하는 조연인 셈이다. 중식 만드는 실력으로 봐서는 요리가 처음인 듯한데 가끔 꺼내 드는 요리 핀셋이나 서양 조리용어가 정체를 의심하게 한다.

 


 

이밖에 20대 중반의 건담의 튀김과 후식 담당 강나희. 그녀는 입사 1년을 훌쩍 넘어가지만 다들 그녀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다기 세트를 챙겨 다니며 항상 차를 마시고 찬바람이 쌩쌩 불 정도로 냉정한 말투와 표정 때문에 '차차'라는 별명이 있다. 흰 피부에 깡말랐고, 머리카락 한 올 빠짐없이 당겨 묶은 말총머리가 트레이드마크다. 고장모는 50대 중반의 지성과 교양을 갖춘 관악대 출신의 매니저이다. 젊어서부터 손님으로 건담을 오가다가 어느 날 이력서를 내밀고 일하기 시작한 지가 20년이 넘었다. 말이 매니저지 홀 담당부터 바쁠 땐 설거지까지, 온갖 잡일을 하면서도 불평불만 한 번 없다. 관악대, 대기업 출신인 그가 왜 건담에 머무르는지 누구나 궁금해한다.

주원신이라는 40대 중반의 건담 만년 실장도 있다. 입사 4년차다. 중국집 실장보다는 배우가 더 어울리는 외모지만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호텔 부주방장을 거치는 등 요리계에서 잔뼈가 굵은 실력파 요리사다. 내리 3번의 폐업을 겪으며 만신창이가 되 채로 떠돌다 두위광의 요리에 반해 일을 시작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뭐든 배워보겠다는 각오로 입사했지만 제대로 가르쳐주는 법이 없는 데다 괴팍하기까지 한 두위광과 사사건건 부딪친다. 구레나룻이 있고 맵거나 화가 나면 왼쪽 눈썹이 올라간다.

건담에는 긍정적 이미지의 인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곡미소, 그는 50대 후반의 남자로서 건담의 명동 시절, 주방에 불을 지르고 홀연히 사라졌던 옛 직원이다. 2년 전 연희동에 나타나 곡씨반점을 열고 화교 행세를 하는 중이다. 중국식 냉면(그의 식으로 중화냉면)을 개발했다고 떠들고 다니는데 어느덧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두위광이 '원숭이'라고 부르며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라고 노래를 부른다. 이밖에도 건담 주방의 칼판(장만옹), 주방의 면판 겸 홀 담당(이정판), 홀 직원(오선주)과 잠깐 얼굴을 비치는 유명 음식평론가 하장식, 대기업 식음료부 총괄 부사장 차금정이 있다.

 


 

마치 드라마 시작할 때 '나오는 사람들'을 보는 기분이다. 중국 화교 음식점에는 나름대로의 담당 업무별 직급이 있는 듯하다. 이 책에는 주방장을 정점으로 아래 업무를 담당하는 직급도 소개하고 있다. 소설을 읽을 때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사항(이해하기 쉽게)이니 소개했을 터, 신중하게 읽는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전체 요리를 책임지고 주방과 직원을 관리하는 사람을 '주방장'이라 한다. 업소에 따라 조리장, 실장으로 부르기도 한다. 화교가 운영하는 중식당 주방에서는 '싸부(師傅)'라 불렀다. 다음이 '칼판'이다. 칼질로 재료를 다듬고 준비하는 사람을 이른다. 과거에는 재료 구입까지 도맡은 주방의 최고 서열자였다. 그 대장을 칼판장이라고 한다. 뚠얼(燉兒). '燉'은 '이글거릴 돈'이다.

'불판'이 그 다음 서열에 있다. 불과 웍으로 조리하는 사람으로 음식의 간을 담당하는 자리다. 현재는 칼판보다 우위에 있다. 그 대장을 불판장이라고 한다. 훠얼(火兒). 기름으로 튀기는 일을 전담하는 사람을 튀김장 '짜훠얼'이라 하고, 면을 관리하는 면장, 면장 보조, 손님의 주문을 표에 적는 사람을 '점표(깐딴얼)'이라고 한다. 중식당의 규모는 적어 놓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흔히 말하는 '청요리집' 규모일 것으로 추측되고 종사하는 사람의 수도 늘리거나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용어가 중국말이어서 바로 외우기는 힘들지만 조금만 신경 써서 소설을 읽는 동안 수시로 들춰보면 소설을 다 읽을 무렵이면 익숙해질 것 같다. 지나치게 큰 비중을 두거나 중국어를 배운다고 하다가는 소설의 흥미를 놓쳐버릴 수 있으니 독자들의 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 책에 나오는 두위광은 수십 년 간 중화요리를 만들어 온 사람으로 화교이다. 그는 괴팍하고 고집스럽지만 실력 하나만큼은 비길 데가 없는, 걸출한 능력의 소유자이다. 중반부까지 자신의 요리 철학을 답답하리만큼 고수하는 모습이 오히려 보기 좋다. 요리사의 자부심이랄까? 그런 느낌이다. 그런 요리사가 해준 음식은 맛도 훨씬 좋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그도 생물체다. 모든 생물체는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어려운 유전학의 정설을 비켜갈 수 없는 인물이다. 결국은 변화를 결심하지만 그 고집스러움은 옛것을 지키려는 장인의 외고집 같은 것이라는 느낌이어서 비범한 사람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두위광은 변화를 모색한다. 아들, 손자뻘인 제자에게 요리를 배우기도 한다. 이전에 고수했던 정통 중화요리를 벗어나 다른 요리와의 접목을 시도도 해본다. 중요한 가치는 고수하되 변화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예전에는 자신의 신념이나 철학이 무너지더라도 결코 허리를 굽히거나 무릎을 꿇지 않는 선비의 정신, 정의로운 사람의 행동을 높이 샀다. 지금도 결코 꺾이지 않은 선비 정신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다. 그 반대로 변화를 거듭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들은 오롯이 빛난다. 주위의 여건 때문에 변화를 모색하는 두위광의 외고집은 오히려 요즘 세상에서 찾기 힘들다. 두위광이 더욱 빛나는 인물도 대접받을 수 있는 이유다. 그의 고집스러움은 꺾이지만 변화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여전히 자신의 요리 철학이나 자부심은 변화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독자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중국 식당의 일을 소설로 써서 영화처럼 코믹의 소재로 쓰였을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고 편견에 불과했다.

이 책은 요리 장인이 자신의 요리 철학을 굽히지 않고 변화에 맞서다 결국은 고집과 변화를 함께하는 것으로 결말을 끌어가지만, 독자들에게는 여운이 남는 생각 많아지는 소설이다. 특히 원칙과 옳은 길을 무시한 채 변화해가는 사람들의 변화와는 다른 결과를 빚어낼 것이란 생각이 소설 끝날 때까지 가시지 않는다. 그것이 이 소설의 목적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작가의 말」을 통해 저자는 이 요리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는 이유에 대해 쓰고 있다. "그가 어떻게 중국식 냉면을 제일 처음 만들어냈고 또 빼앗겼으며, 명동 최고의 화상 주사의 청요리집에서 동네 중국집으로 쪼그라들었는지··· 하는 과거의 이야기들. 하지만 저는 그의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의 뜨거운 요리 열정과 그 일을 지키려는 집념, 변해야 한다는 각성,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이들과의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 같은 이야기 말이죠. 뜻이 길을 만든다는 의지에 관한 이야기지만 그것을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인생은 우연이 지배하는 불합리의 세상을 살아가는 것. 노력과 변화가 언제나 보상을 받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그 출렁다리를 건너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그 누군가를 붙들 지혜와 용기를 낸다면 실패와 좌절을 견디고 의지를 발휘하는 게 좀 더 쉽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저자는 '산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지만, 소소한 낙(樂)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삶은 이울지 않는다'는 어느 선인의 말을 되새기며 사람들과 어울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자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고 밝힌다.

 

저자 : 김자령

 

단막극 <고씨 가족 갱생기>로 드라마작가협회 신인상의 최우수상, 장편 영화 <홀>로 부산국제영화제 Film Workshop의 1등상을 수상했고, 몇 편의 장·단편 영화 각본을 썼다. 2022년 첫 장편소설 『건담 싸부』를 출간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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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 - 우리가 영화를 애정하는 방법들
김도훈 외 지음 / 푸른숲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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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좋아서 영화계의 인물로 스포트 라이트도 못 받지만 욕 먹을 각오로 영화 평을 쓰는 기자나 제작 관련자들의 열정과 ‘영화 사랑‘이 오늘날 한국 영화의 위치를 세계 최고 무대에 올려낸 뒷심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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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 - 우리가 영화를 애정하는 방법들
김도훈 외 지음 / 푸른숲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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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의 저자분들은 왜 모였을까? 독자는 '영화광'에는 못 미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팬' 정도는 된다. 영화를 보는 횟수를 기준으로 한다는 규정도 없는 한 영화 '애호가'라고 표현해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독자는 여기 모인 저자분들보다 나이가 조금은 더 됐으니 '올드팬'으로 말한다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이 책에는 모두 다섯 분의 저자가 등장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이상은 이름을 들어봤음 직하다. 제목에 맞게 영화를 평하는 평론가나 영화 전문잡지 기자들이다. 모두 영화에 관한 한 '미쳤다'고 말할 만큼 영화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영화를 평하는 직업을 갖고 있으니 영화에 대한 지식도 남다르다. 저자 중 한 사람을 먼저 소개한다.

김미연 JTBC 예능국 CP(chief producer)다. 신작 소개 일변도였던 영화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단연 독자적인 매력을 드러냈던 영화 예능 〈방구석1열〉의 연출자다. 과연 이 프로그램은 어떤 사람이 만들었을까? 오랜 기간 영화를 사랑해온 시네필 김미연 PD는 영화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잘 모르기 때문에 <방구석1열>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감독, 평론가, 작가 등 영화계의 사람들과 함께 영화에 대해 보다 넓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픈 마음에서다. 그가 어떻게 영화를 사랑해왔고, 또 〈방구석1열〉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 책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에 가득 담겨 있다. 이들 저자의 이야기를 가만히 읽어가다 보면 오늘날 우리의 문화가, 특히 우리의 영화가 세계 무대에서 제대로 인정 받고 세계 영화를 주도하는 위치에 서기까지 영화 주변 인물들의 숨겨진 열정과 노력이 얼마나 눈물겨운 것이었는지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잡지의 시대였던 1990년대부터 영화를 향유해온 대표 시네필 5인방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이 책을 제작하기 위해서다. 저자 김도훈, 김미연, 배순탁, 이화정, 주성철은 영화가 선사하는 재미와 사유를 〈필름2.0〉, 〈키노〉, 〈씨네21〉 등 영화전문지와 〈전체관람가〉, 〈방구석1열〉 등 방송 프로그램과 라디오 채널을 통해 더 깊고 넓게 전해온 자타공인 영화전문가들이다. 유튜브 채널 〈무비건조〉를 통해서 4만여 명의 시네필들과 소통하고 있는 이들은 이 책에서 보다 내밀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비디오로 영화를 돌려보고 잡지에서 평단의 반응을 살피던 1990년대 시네필들의 영화에 대한 순정과 ‘라떼는’ 에피소드들이 왁자지껄하게 펼쳐진다.

그렇다고 고루하게 과거의 향수만을 늘어놓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영화판에 입성했는지 그 시작부터, 영화판의 외곽에서 살아남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노하우와, 영화 팬들이 가장 애정하던 영화 토크쇼 〈방구석1열〉과 이 책의 기획 과정에서 탄생한 유튜브 채널 〈무비건조〉의 제작 비화까지 폭넓은 이야기를 담았다. 각자가 풀어놓은 개인적인 이야기들이지만 한데 모여 공통된 시대적 풍경과 문화 속 경험을 재현하였다. 영화를 애정하는 사람들이라면 세대를 불문하고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는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무려 목표 금액의 600퍼센트 이상 모금하며 시네필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서 선 공개된 바 있다.

 


 

시네필의 영화 사랑은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에서 느낀 감흥을 조금이라도 더 길게 잡아두고 나누고자 “왜 이 영화를 좋아하는가?”라는 문장 단 하나로 긴긴밤의 끝을 잡은 채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움을 확장한다. 전 세계적으로 영화가 다른 대중문화 매체와 달리 예술과 학문으로서 자리 잡는 데는 이들의 영향이 지대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대가 바로 시네필의 전성시대였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발행되던 영화잡지만 10여 종이 넘었을 정도로 영화 담론은 융성한 꽃을 피웠다. 문화를 향유하는 청춘들의 가방과 책상에는 어김없이 영화잡지가 한 권씩 들어 있었다. 이들의 열정과 영화 사랑으로 오늘날 아카데미상 수상작도 나온 데 작은 보탬이 되었을 것이라 추정하는 데 무리가 없다.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의 다섯 저자 역시 그러한 영화잡지들의 애독자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내 몇몇은 탐독하던 영화잡지에 글을 쓰게 되었다. 자연스러운 흐름이기도 했다. 당시 영화의 문화적 위상은 대단했고, 그들에게 있어서 영화란 취미 그 이상이었으니 당연했다. “영화는 인생이었다.” 멋진 표현이자 정확한 언급이다. 이 책에는 각기 다른 인생과 사랑이 담겨 있다. 영화잡지계의 ‘시조새’ 이화정은 영화잡지 폐간의 애잔한 역사를 되짚고, 오컬트 영화를 사랑하는 김미연 PD는 공포 영화의 의외의 사랑스러운 지점을 이야기한다. 또 SF·장르 영화 애호가 김도훈은 스필버그에게 반성문도 쓴다. 그런가 하면 홍콩 영화 애호가 주성철은 끝내 홍콩을 찾아가 주인공들의 행적을 쫓고, 음악평론가이자 게임 애호가인 배순탁은 영화만큼 긴 음악과, 영화보다 영화 같은 게임을 향한 애정을 목 놓아 외친다. 조금은 극성맞아 보이는 이들의 영화 사랑은 진지해서 웃기고, 각별해서 애틋하다.

 


 

영화계를 뒤에서 묵묵히 받쳐온 이들에게 그 누구보다 먼저 영화계의 유명 시네필들이 응원과 찬사를 보냈다. 〈화차〉의 변영주 감독,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김초희 감독, 〈남극일기〉의 임필성 감독을 비롯해 〈방구석1열〉에서 중심을 잡아온 윤종신과 봉태규가 입을 모아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를 추천했다. 특히 김초희 감독은 “영화를 만들지 않는 영화인들의 이야기가 사뭇 서글프면서도 새삼스레 고마웠다. 기꺼이 영화를 하게 만드는 책이다”라고 말하며 ‘영화를 만들지 않는 영화인’들이 기꺼이 영화를 하게 만들어준다며 치켜세웠다. 이는 비단 다섯 저자뿐만 아니라 영화를 사랑하는 수많은 시네필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변영주 영화감독(〈화차〉)는 "창작물을 비평한다는 것은 이제 조금 곤란한 일이 되어버렸다. 다양한 사회관계망 서비스의 혁신은 모두를 생산자로 만들고 모두를 비평의 영역에서 뛰어놀 수 있게 했다. 영화를 비평한다는 것이 마치 맛집 탐방처럼 각자의 취향과 경험 안에서 소비되는 새로운 형태의 아고라 활동이 되어버린 지금, 나를 영화와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던 순간을 고백하고 교감하는 일은 꽤 멋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을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친구들이 함께 해냈다. 방송을 통해 친숙해진 이들의 과거를 되돌려 보는 재미를 많은 분들이 공유하길 바란다."고 추천평을 더했다. 배우 봉태규(〈방구석1열〉 3대 회장)는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영화에게 구구절절하게 고백을 하는 책이다. 원래 대부분의 고백이 순수할수록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이들의 고백은 절절하지만 담백하고, 진심이 묻어나며, 덤으로 애틋하기까지 하다. 참고로 나는 이미 이들의 고백에 승낙한 상태다. 다음은 이 책을 읽을 당신들 차례다."고 응원의 찬사를 보냈다.

 


 

이 책은 또 “영화를 만들지 않는 영화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삶인지도 자세히 소개된다. 일종의 업계 비화처럼 보이는 이 글들 역시 오랜 기간 영화잡지계와 방송계에서 몸 담아온 저자들의 경력이 빛을 발하는 이 책의 백미다. ‘인터뷰의 기술’, ‘칸국제영화제 취재기’, ‘마감의 법칙’ 등 영화로 어떻게 먹고살 수 있는지는 물론, 김미연 PD의 ‘섭외의 기술’, 김도훈의 ‘영화 글쓰기의 십계명’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독자들은 영화를 좋아하다 못해 결국 영화를 업으로까지 삼은 사람들의 좌충우돌 스토리를 확인할 수 있다.

이화정 〈씨네21〉 기자는 「꿈꾸던 국제영화제 취재기」에서 "우리가 지금, 작열하는 칸의 태양 아래 한 시간째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작품은 관계자들을 빼고는 지금까지 누구도 보지 못한 최초 공개작이다. 그 작품이 세계 영화사를 발칵 뒤집어놓을 수도 있다. 최초의 관객이라는 담보에, 걸작을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나는 그래서 또 기꺼이 속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과거 칸 영화제 취재기를 되새긴다. 자신이 '운 좋게' 칸 영화제를 갔을 때의 기억은 아름답지 많은 않은 것 같다. "복장 규제도 심하다. 감독과 배우가 참석하는 갈라 상영 때는 남자는 반드시 슈트에 보타이와 블랙 슈즈를, 여자는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 요트 위에서 칵테일 파티에 참여할 것 같은 사람들이 한껏 멋을 내고 극장에 온다. '규칙'은 엄격하다. 보타이가 없어서 줄을 서고도 되돌아가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여기서 보타이를 팔면 암표보다 더 받겠다. 반짝 아이디어가 샘솟을 정도."(p.232)라고 말한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음악작가 겸 음악 평론가로 활동 중인 배순탁은 전작 『청춘을 달리다』를 출간한 후 〈예스24〉와의 인터뷰를 통해 "배철수 선배는 정말로 존경할 만한 어른입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꼰대가 될 수밖에 없거든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에요. 20대 때는 윗세대 욕하고 30대는 중간에 껴서 어물쩍거리고 40대는 20대 욕하는 게 무한반복됩니다. 이게 세대론이에요. 나이가 들면 누구나 고집불통, 꼰대가 됩니다. 다만, 강약은 있어요. 누가 더 꼰대이고 덜 꼰대가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배철수 선배는 제가 본 분 중에서 가장 꼰대스럽지 않은 어른이에요. 젊은 사고를 갖고 여전히 젊은이가 즐기는 문화를 함께 공유하려고 노력해요. 라디오 DJ를 하려면 필수거든요. 50~60대만이 아니라 10~20대도 라디오를 들으니까요. 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DJ가 모르면 방송이 안 되죠."라고 음악인들의 '세상 모르고 살던 때'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도 한다.

세월이 흐르고, 문화가 변하고, 매체가 달라졌지만 영화가 주는 감동과 전율은 변치 않았다. 여전히 수많은 이들이 영화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글을 쓰고, TV프로그램을 만든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시네필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음을 확인하고, 이야기를 공유하며 시네필의 사랑법에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주성철 주성철 전 〈씨네21〉 편집장은 '에필로그' 「영화를 만들지 않는 영화인으로 살아가기」에서 "우리는 ‘영화의 엔드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릴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찌감치 감독과 배우를 인터뷰하며 그 영화를 ‘팔로우’하고, 개봉 이후 내가 사랑하는 영화에 대해 아무리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도, 결국 우리는 영화 바깥에서 살아가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함을 곱씹었다."고 씨네필의 여운 있는 말을 남겼다.

 


 

"나는 한국 영화를 사랑한다. 한국 영화를 보며 울고 웃으며 자라왔다. 그런데 재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 자체를 부정하게 되는 영화가 있다. 아무리 좋은 의미를 담았다고 해도 일련의 연출로 인해 트라우마가 될 단 한 장면만 관객의 가슴속에 남는 영화가 있다. 그래서 부탁드린다. 폭력이 필요한 장면에서 강한 인상이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면 폭력의 전시가 아니라 다른 방법을 조금 더 연구해주시길.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부탁드리는 바다. 19금 영화라고 해서 모든 표현이 허락되는 것이 아니다. 성인에게도 보호받아 마땅한 감수성이 있으므로."(p.65) - 김미연, 「나의 첫 19금 영화」 중에서

 

저자 : 김도훈

SF·장르 영화 애호가. 전 영화전문지 〈씨네21〉 기자. 〈GEEK〉 피처 디렉터, 〈허밍턴포스트〉 편집장.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 저자.

저자 : 김미연

〈방구석1열〉, 〈전체관람가〉, 〈그림도둑들〉 연출자.

저자 :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배순탁의 B사이드〉 DJ. 『평양냉면』, 『청춘을 달리다』 저자, 『모던 팝 스토리』 역자.

저자 : 이화정

영화 GV·인터뷰 전문가. 전 영화전문지 〈필름2.0〉 기자, 〈씨네21〉 취재팀장. 『언젠가 시간이 되는 것들』, 『시간 수집가의 빈티지 여행』 저자.

저자 : 주성철

홍콩 영화 애호가. 전 영화전문지 〈키노〉, 〈필름2.0〉 기자, 〈씨네21〉 편집장.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 『영화기자의 글쓰기 수업』, 『데뷔의 순간』,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 저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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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 사전 - 작가를 위한 갈등 설정 가이드 작가들을 위한 사전 시리즈
안젤라 애커만.베카 푸글리시 지음, 오수원 옮김 / 윌북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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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당초 인간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거나, 무대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시작됐다. 시가 개인의 감정이나 느낌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면 소설이나 희곡은 이야기, 즉 서사(스토리)를 가진 예술 작품이다. 이 서사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인물(캐릭터)이고, 스토리의 핵심은 인물의 '갈등'이다. 이 갈등은 긍정 역할을 하는 인물과 부정 역할을 하는 인물의 부딪침이며, 이 부딪침은 극이나 소설의 긴장감을 높이고 관객과 독자의 몰입도를 높인다. 스토리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극적 갈등이 없다면 밋밋한 스토리가 될 것이고, 약해도 관객이나 독자들의 흥미를 잃기 쉽다.

하나의 극이나 소설에도 크고 작은 갈등이 많을수록 더욱 흥미 있고, 흡입력을 높인다. 이 책 『딜레마 사전』은 극중 인물이 겪을 수 있는 갈등과 딜레마의 유형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사전식으로 정리해 나열한다. 생동감 넘치는 스토리 창작에 반드시 필요한 갈등 설정의 기본기와 시나리오를 친절히 유형별로 구체적으로 안내한다. ‘사랑하면 안 될 사람을 사랑하게 되다’, ‘부정부패를 목격하다’ ‘내기에 지다’ ‘모두를 구할 수는 없게 되다’와 같이 캐릭터를 궁지로 몰 만한 110가지 갈등 유형을 풍부하게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은 현업 작가들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얻어온 안젤라 애커만과 베카 푸글리시의 '작가를 위한 사전' 시리즈 신작으로 장르 불문, 이야기꾼의 책장에 한 권씩 꽂혀 있어야 할 긴요한 가이드북으로 활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공들여 창조한 캐릭터에게 고통과 시련을 안겨줄 온갖 갈등 상황과 딜레마 양상을 집약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대적으로, 지역적으로 다른 곳에서의 갈등은 다양하고 다르기 때문이다. 두 공동저자 안젤라 애커만과 베카 푸글리시는 이에 따라 각 유형마다 예상 가능한 캐릭터의 행동 패턴 및 심리적 특성 등 장면에 바로 적용해볼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예시를 될수록 많이 제시한다. 시대적·지역적 차이를 감안, 1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서문」은 대중적인 영화와 소설을 사례로 들며 플롯과 갈등을 조합하는 방법, 내적 갈등과 외적 갈등의 차이 등 캐릭터의 딜레마를 창조하고 처리해야 할 작가의 기본기를 꼼꼼하게 다져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시선을 붙잡는 스토리의 필수 요소, 바로 갈등에 빠진 캐릭터를 창조하는 작가들은 어쩌면 작품 구상의 절반 이상을 갈등 창조에 쏟을 것이다. 마음을 사로잡는 캐릭터는 이야기 속에서 언제나 크고 작은 위기에 빠진다. 목표를 가진 캐릭터가 적수와 대적하고, 선택 앞에 번민하는 장면들이 촘촘히 이어질수록 이야기의 몰입도는 더욱 높아지기 마련이다. 두 저자는 이 책을 매일 글을 쓰는 작가들의 갈등 창조에 도움을 주고, 작품을 쓰는 작가의 열정에 조금이라도 참조할 갈등을 조사 정리했다.

 


 

'작가를 위한 사전' 시리즈 그동안 『트라우마 사전』, 『디테일 사전』, 『캐릭터 직업 사전』까지 매력적인 이야기의 핵심 요소를 짚어주고 적재적소의 재료를 선사해 창작자들의 열띤 호응을 받아왔다. 이번 출판된 『딜레마 사전』은 전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글쓰기 코치인 안젤라 애커만과 베카 푸글리시 콤비의 연작이다. 높아진 기대에 부응하는 이 책이 집중하는 것은 바로 탄탄한 스토리 구성에 꼭 필요한 자원이자 요소인 ‘갈등’이다.

작품에서 잘 짜인 갈등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소설, 영화, 드라마를 조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무리 멋진 설정과 배경을 지닌 캐릭터가 등장한다 하더라도, 정작 캐릭터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야기는 시작될 수 없고, 그다음 장면 역시 있을 수 없다. 캐릭터는 자신이 사는 세상 안팎에서 손쓰기 어려운 사건에 부딪히거나, 다른 인물과 대립하거나, 내면의 문제로 씨름한다. 일상을 건드리는 크고 작은 위기에 빠져 고통받고 행동하는 캐릭터의 모습은 독자와 관객들이 마음을 쓰게 만들고 다음 장면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에 따라 독자나 시청자가 이야기에 몰입하며 재미와 감동을 느끼는 척도는 갈등 양상이 얼마나 긴밀하게 엮여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창조해낸 캐릭터가 어떤 실수를 할지, 무슨 의심을 할지, 어떤 유혹과 압박을 받아 흥미로운 선택을 이어 나갈 것인지 그 다양한 선택지를 펼쳐주는 가장 실용적이고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바이블'이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선 반드시 도둑질을 해야 한다면?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면? 평화로운 아침에 사고로 조난을 당한다면? 사소한 거짓말을 했는데 사태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면?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다면? 다양한 갈등의 형태와 적수, 위기 사례 등 캐릭터가 부침을 겪게 만들 장치들이 속속들이 들어찬 이 책은 더욱 치밀하고 짓궂게 캐릭터를 방해할 문젯거리들을 제공한다.

캐릭터가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게 만들고 싶거나, 긴장감을 더욱 높이고 싶다면, 이 책의 ‘관계상의 갈등’과 ‘실패와 실수’ 항목을 참고하면 된다. 이외에도 ‘도덕적 딜레마와 유혹’, ‘승산 없는 시나리오’ 등 캐릭터를 곤경에 빠뜨릴 110가지 아이디어가 가득 실려 있어 독자의 마음을 툭툭 건드릴 장면들을 하나씩 구상해볼 수 있다.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캐릭터의 처지에 이입해가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갈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공들여 미끼를 마련하고 고안해야 하는 작가의 곁에서 『딜레마 사전』은 창작의 순간순간을 함께할 책상 위의 가장 믿음직한 친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은 여섯 가지 주제로 정리됐다. 1장 「관계상의 갈등」에는 '가정폭력'부터 연애와 이별, 이혼이나 배신, 인간 관계의 갈등 요소를 망라해 실었다. 2장 「실패와 실수」에서는 거짓말, 내기, 비밀, 사고, 불시의 감정, 분실 등 심적 갈등을 부채질할 요소들을 살핀다. 3장 「도억적 딜레마와 유혹」에서는 조작, 윤리와 도덕, 탐닉, 부정부패, 위법, 불법 등 악행에 의한 갈등 요소를 알아본다. 4장 「의무와 책임」에서는 관행적 악습, 상대방의 처벌, 사생활의 일탈, 직장 해고 등 인간 관계에서 지켜야 할 의무나 책임에 등을 돌릴 때 일어나는 갈등으로 주로 다루고 있다.

또 5장 「압력 증가와 시간 압박」은 시간, 시기, 시대, 예상치 못한 비용 부담, 협박 등 시시콜콜한 일상의 문제도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는 사례를 모았다. 마지막 6장 「승산 없는 시나리오」에서는 말 그대로 '딜레마' 상황을 예시한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를 희생시켜야 할 때, 상충된 욕구와 욕망,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갈등 등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 대한 설명이다. 이 갈등 유형 사전은 장면의 시작점에서 특정 상황과 사건을 브레인스토밍해보고 싶을 때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캐릭터가 어떤 상황에서 무슨 선택을 해야 설득력이 있을지, 혹은 어떤 행동이나 심리를 보여야 더욱 치밀하게 구성할 수 있을지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마다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잘 구성돼 있다. 캐릭터의 입장에서 고려해볼 수 있는 선택지와 감정들을 디테일하게 펼쳐놓아 구상 단계에서 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틈틈이 책장을 열어보며 영감을 얻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이 바로 뽑아서 쓸 수 있는 다양한 딜레마의 유형과 아이디어 외에도, 이 책에는 훌륭한 서사 작품 안에서 갈등 요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문학적으로 알기 쉽게 설명하는 이론 칼럼이 100여 쪽의 「서론」 형태로 실려 있다. 이제 작가 수업을 시작했거나 작가를 꿈꾸고 있는 문학도들에게 필수적인 이해 사항이니만큼 작가를 하고 싶은 사람은 꼭 읽어볼 내용이다. 또 책을 좋아하는, 특히 소설이나 극적 스토리텔링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들도 잘 읽어두면 작품 이해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일반 독자라 하더라도 알고 넘어가야 할 내용이 가득 담겨 있다. 플롯 형성에 꼭 필요한 ‘갈등’의 핵심 개념을 짚어주어 창작의 기본기를 필요할 때마다 꺼내볼 수 있는, 장르 불문 이야기꾼의 책장에 한 권씩 꽂혀 있어야 할 긴요한 가이드북으로 이 책의 추천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작가 심너울의 추천평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다.

"욕망하고 고뇌하고 분투하는 인물의 여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것. 작가라면 누구나 속을 끓일 과제다. 여기 『딜레마 사전』이 있다. 이 사전에는 인간사의 온갖 고통과 고뇌가 다 들어있는 듯하다. 수많은 갈등 양상과 그 속에서 비롯되는 인물의 행동과 감정을 하나씩 짚고 있자니, 실로 재미있고 놀라운 장면들이 저절로 펼쳐져서 당장이라도 다음 장면이 쓰고 싶어진다. 말하자면, 이 책은 모든 길 잃은 작가들을 위한 이정표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데이터베이스에는 의심과 실수, 유혹이 도사린 갈등이란 웅덩이에 인물을 집어 던질 방법이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단언컨대 온갖 장면이 샘솟는 가장 실용적인 작법서이다." - 심너울 (작가)

 


 

저자 : 안젤라 애커만(Angela Ackerman)

어린이책 작가협회(The Society of Children's Book Writers and Illustrators, SCBWI) 회원이며 주로 사춘기 청소년들의 어두운 이면 세계에 관하여 다루는 작가이다. 침대 밑에 괴물이 서식한다고 믿는 동화적 상상력의 소유자로, 최선을 다하여 나눔과 기부의 선행에 헌신하고 있다. 현재 남편과 두 자녀와 함께 캐나다 록키 산맥에 인접한 앨버타의 캘거리에 살고 있다.

 

저자 : 베카 푸글리시(Becca Puglisi)

청소년 판타지와 역사소설의 작가이자 잡지 기고가이며 어린이책 작가협회(SCBWI)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남편과 두 자녀와 함께 햇살 밝은 플로리다 남부에 살고 있다. 안젤라 애커만과 베카 푸글리시는 자신들의 블로그 [The Bookshelf Muse]로 온라인 참고자료상을 수상했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이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여러 분야의 유의어 사전들을 공유함으로써 자신들의 작업에 큰 도움을 얻고 있다.

 

역자 : 오수원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프랑켄슈타인』을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정리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주인공 프랑켄슈타인이 아닌 이름 없는 존재인 ‘괴물’의 관점에서 소설을 다시 보면서 인간의 많은 모순과 문제의 면면을 새롭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현재 파주출판도시에서 동료 번역가들과 ‘번역인’이라는 공동체를 꾸려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인문, 과학, 정치, 역사,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영미권 양서를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문장의 일』, 『조의 아이들』, 『데이비드 흄』, 『처음 읽는 바다 세계사』, 『현대 과학·종교 논쟁』, 『포스트 캐피털리즘』, 『세상을 바꾼 위대한 과학실험 100』, 『쌍둥이 지구를 찾아서』, 『비』, 『잘 쉬는 기술』, 『뷰티풀 큐어』, 『우리는 이렇게 나이 들어간다』 등을 번역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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