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 - 우리가 영화를 애정하는 방법들
김도훈 외 지음 / 푸른숲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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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의 저자분들은 왜 모였을까? 독자는 '영화광'에는 못 미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팬' 정도는 된다. 영화를 보는 횟수를 기준으로 한다는 규정도 없는 한 영화 '애호가'라고 표현해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독자는 여기 모인 저자분들보다 나이가 조금은 더 됐으니 '올드팬'으로 말한다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이 책에는 모두 다섯 분의 저자가 등장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이상은 이름을 들어봤음 직하다. 제목에 맞게 영화를 평하는 평론가나 영화 전문잡지 기자들이다. 모두 영화에 관한 한 '미쳤다'고 말할 만큼 영화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영화를 평하는 직업을 갖고 있으니 영화에 대한 지식도 남다르다. 저자 중 한 사람을 먼저 소개한다.

김미연 JTBC 예능국 CP(chief producer)다. 신작 소개 일변도였던 영화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단연 독자적인 매력을 드러냈던 영화 예능 〈방구석1열〉의 연출자다. 과연 이 프로그램은 어떤 사람이 만들었을까? 오랜 기간 영화를 사랑해온 시네필 김미연 PD는 영화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잘 모르기 때문에 <방구석1열>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감독, 평론가, 작가 등 영화계의 사람들과 함께 영화에 대해 보다 넓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픈 마음에서다. 그가 어떻게 영화를 사랑해왔고, 또 〈방구석1열〉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 책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에 가득 담겨 있다. 이들 저자의 이야기를 가만히 읽어가다 보면 오늘날 우리의 문화가, 특히 우리의 영화가 세계 무대에서 제대로 인정 받고 세계 영화를 주도하는 위치에 서기까지 영화 주변 인물들의 숨겨진 열정과 노력이 얼마나 눈물겨운 것이었는지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잡지의 시대였던 1990년대부터 영화를 향유해온 대표 시네필 5인방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이 책을 제작하기 위해서다. 저자 김도훈, 김미연, 배순탁, 이화정, 주성철은 영화가 선사하는 재미와 사유를 〈필름2.0〉, 〈키노〉, 〈씨네21〉 등 영화전문지와 〈전체관람가〉, 〈방구석1열〉 등 방송 프로그램과 라디오 채널을 통해 더 깊고 넓게 전해온 자타공인 영화전문가들이다. 유튜브 채널 〈무비건조〉를 통해서 4만여 명의 시네필들과 소통하고 있는 이들은 이 책에서 보다 내밀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비디오로 영화를 돌려보고 잡지에서 평단의 반응을 살피던 1990년대 시네필들의 영화에 대한 순정과 ‘라떼는’ 에피소드들이 왁자지껄하게 펼쳐진다.

그렇다고 고루하게 과거의 향수만을 늘어놓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영화판에 입성했는지 그 시작부터, 영화판의 외곽에서 살아남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노하우와, 영화 팬들이 가장 애정하던 영화 토크쇼 〈방구석1열〉과 이 책의 기획 과정에서 탄생한 유튜브 채널 〈무비건조〉의 제작 비화까지 폭넓은 이야기를 담았다. 각자가 풀어놓은 개인적인 이야기들이지만 한데 모여 공통된 시대적 풍경과 문화 속 경험을 재현하였다. 영화를 애정하는 사람들이라면 세대를 불문하고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는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무려 목표 금액의 600퍼센트 이상 모금하며 시네필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서 선 공개된 바 있다.

 


 

시네필의 영화 사랑은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에서 느낀 감흥을 조금이라도 더 길게 잡아두고 나누고자 “왜 이 영화를 좋아하는가?”라는 문장 단 하나로 긴긴밤의 끝을 잡은 채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움을 확장한다. 전 세계적으로 영화가 다른 대중문화 매체와 달리 예술과 학문으로서 자리 잡는 데는 이들의 영향이 지대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대가 바로 시네필의 전성시대였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발행되던 영화잡지만 10여 종이 넘었을 정도로 영화 담론은 융성한 꽃을 피웠다. 문화를 향유하는 청춘들의 가방과 책상에는 어김없이 영화잡지가 한 권씩 들어 있었다. 이들의 열정과 영화 사랑으로 오늘날 아카데미상 수상작도 나온 데 작은 보탬이 되었을 것이라 추정하는 데 무리가 없다.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의 다섯 저자 역시 그러한 영화잡지들의 애독자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내 몇몇은 탐독하던 영화잡지에 글을 쓰게 되었다. 자연스러운 흐름이기도 했다. 당시 영화의 문화적 위상은 대단했고, 그들에게 있어서 영화란 취미 그 이상이었으니 당연했다. “영화는 인생이었다.” 멋진 표현이자 정확한 언급이다. 이 책에는 각기 다른 인생과 사랑이 담겨 있다. 영화잡지계의 ‘시조새’ 이화정은 영화잡지 폐간의 애잔한 역사를 되짚고, 오컬트 영화를 사랑하는 김미연 PD는 공포 영화의 의외의 사랑스러운 지점을 이야기한다. 또 SF·장르 영화 애호가 김도훈은 스필버그에게 반성문도 쓴다. 그런가 하면 홍콩 영화 애호가 주성철은 끝내 홍콩을 찾아가 주인공들의 행적을 쫓고, 음악평론가이자 게임 애호가인 배순탁은 영화만큼 긴 음악과, 영화보다 영화 같은 게임을 향한 애정을 목 놓아 외친다. 조금은 극성맞아 보이는 이들의 영화 사랑은 진지해서 웃기고, 각별해서 애틋하다.

 


 

영화계를 뒤에서 묵묵히 받쳐온 이들에게 그 누구보다 먼저 영화계의 유명 시네필들이 응원과 찬사를 보냈다. 〈화차〉의 변영주 감독,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김초희 감독, 〈남극일기〉의 임필성 감독을 비롯해 〈방구석1열〉에서 중심을 잡아온 윤종신과 봉태규가 입을 모아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를 추천했다. 특히 김초희 감독은 “영화를 만들지 않는 영화인들의 이야기가 사뭇 서글프면서도 새삼스레 고마웠다. 기꺼이 영화를 하게 만드는 책이다”라고 말하며 ‘영화를 만들지 않는 영화인’들이 기꺼이 영화를 하게 만들어준다며 치켜세웠다. 이는 비단 다섯 저자뿐만 아니라 영화를 사랑하는 수많은 시네필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변영주 영화감독(〈화차〉)는 "창작물을 비평한다는 것은 이제 조금 곤란한 일이 되어버렸다. 다양한 사회관계망 서비스의 혁신은 모두를 생산자로 만들고 모두를 비평의 영역에서 뛰어놀 수 있게 했다. 영화를 비평한다는 것이 마치 맛집 탐방처럼 각자의 취향과 경험 안에서 소비되는 새로운 형태의 아고라 활동이 되어버린 지금, 나를 영화와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던 순간을 고백하고 교감하는 일은 꽤 멋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을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친구들이 함께 해냈다. 방송을 통해 친숙해진 이들의 과거를 되돌려 보는 재미를 많은 분들이 공유하길 바란다."고 추천평을 더했다. 배우 봉태규(〈방구석1열〉 3대 회장)는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영화에게 구구절절하게 고백을 하는 책이다. 원래 대부분의 고백이 순수할수록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이들의 고백은 절절하지만 담백하고, 진심이 묻어나며, 덤으로 애틋하기까지 하다. 참고로 나는 이미 이들의 고백에 승낙한 상태다. 다음은 이 책을 읽을 당신들 차례다."고 응원의 찬사를 보냈다.

 


 

이 책은 또 “영화를 만들지 않는 영화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삶인지도 자세히 소개된다. 일종의 업계 비화처럼 보이는 이 글들 역시 오랜 기간 영화잡지계와 방송계에서 몸 담아온 저자들의 경력이 빛을 발하는 이 책의 백미다. ‘인터뷰의 기술’, ‘칸국제영화제 취재기’, ‘마감의 법칙’ 등 영화로 어떻게 먹고살 수 있는지는 물론, 김미연 PD의 ‘섭외의 기술’, 김도훈의 ‘영화 글쓰기의 십계명’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독자들은 영화를 좋아하다 못해 결국 영화를 업으로까지 삼은 사람들의 좌충우돌 스토리를 확인할 수 있다.

이화정 〈씨네21〉 기자는 「꿈꾸던 국제영화제 취재기」에서 "우리가 지금, 작열하는 칸의 태양 아래 한 시간째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작품은 관계자들을 빼고는 지금까지 누구도 보지 못한 최초 공개작이다. 그 작품이 세계 영화사를 발칵 뒤집어놓을 수도 있다. 최초의 관객이라는 담보에, 걸작을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나는 그래서 또 기꺼이 속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과거 칸 영화제 취재기를 되새긴다. 자신이 '운 좋게' 칸 영화제를 갔을 때의 기억은 아름답지 많은 않은 것 같다. "복장 규제도 심하다. 감독과 배우가 참석하는 갈라 상영 때는 남자는 반드시 슈트에 보타이와 블랙 슈즈를, 여자는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 요트 위에서 칵테일 파티에 참여할 것 같은 사람들이 한껏 멋을 내고 극장에 온다. '규칙'은 엄격하다. 보타이가 없어서 줄을 서고도 되돌아가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여기서 보타이를 팔면 암표보다 더 받겠다. 반짝 아이디어가 샘솟을 정도."(p.232)라고 말한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음악작가 겸 음악 평론가로 활동 중인 배순탁은 전작 『청춘을 달리다』를 출간한 후 〈예스24〉와의 인터뷰를 통해 "배철수 선배는 정말로 존경할 만한 어른입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꼰대가 될 수밖에 없거든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에요. 20대 때는 윗세대 욕하고 30대는 중간에 껴서 어물쩍거리고 40대는 20대 욕하는 게 무한반복됩니다. 이게 세대론이에요. 나이가 들면 누구나 고집불통, 꼰대가 됩니다. 다만, 강약은 있어요. 누가 더 꼰대이고 덜 꼰대가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배철수 선배는 제가 본 분 중에서 가장 꼰대스럽지 않은 어른이에요. 젊은 사고를 갖고 여전히 젊은이가 즐기는 문화를 함께 공유하려고 노력해요. 라디오 DJ를 하려면 필수거든요. 50~60대만이 아니라 10~20대도 라디오를 들으니까요. 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DJ가 모르면 방송이 안 되죠."라고 음악인들의 '세상 모르고 살던 때'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도 한다.

세월이 흐르고, 문화가 변하고, 매체가 달라졌지만 영화가 주는 감동과 전율은 변치 않았다. 여전히 수많은 이들이 영화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글을 쓰고, TV프로그램을 만든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시네필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음을 확인하고, 이야기를 공유하며 시네필의 사랑법에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주성철 주성철 전 〈씨네21〉 편집장은 '에필로그' 「영화를 만들지 않는 영화인으로 살아가기」에서 "우리는 ‘영화의 엔드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릴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찌감치 감독과 배우를 인터뷰하며 그 영화를 ‘팔로우’하고, 개봉 이후 내가 사랑하는 영화에 대해 아무리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도, 결국 우리는 영화 바깥에서 살아가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함을 곱씹었다."고 씨네필의 여운 있는 말을 남겼다.

 


 

"나는 한국 영화를 사랑한다. 한국 영화를 보며 울고 웃으며 자라왔다. 그런데 재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그 자체를 부정하게 되는 영화가 있다. 아무리 좋은 의미를 담았다고 해도 일련의 연출로 인해 트라우마가 될 단 한 장면만 관객의 가슴속에 남는 영화가 있다. 그래서 부탁드린다. 폭력이 필요한 장면에서 강한 인상이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면 폭력의 전시가 아니라 다른 방법을 조금 더 연구해주시길.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부탁드리는 바다. 19금 영화라고 해서 모든 표현이 허락되는 것이 아니다. 성인에게도 보호받아 마땅한 감수성이 있으므로."(p.65) - 김미연, 「나의 첫 19금 영화」 중에서

 

저자 : 김도훈

SF·장르 영화 애호가. 전 영화전문지 〈씨네21〉 기자. 〈GEEK〉 피처 디렉터, 〈허밍턴포스트〉 편집장.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 저자.

저자 : 김미연

〈방구석1열〉, 〈전체관람가〉, 〈그림도둑들〉 연출자.

저자 :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배순탁의 B사이드〉 DJ. 『평양냉면』, 『청춘을 달리다』 저자, 『모던 팝 스토리』 역자.

저자 : 이화정

영화 GV·인터뷰 전문가. 전 영화전문지 〈필름2.0〉 기자, 〈씨네21〉 취재팀장. 『언젠가 시간이 되는 것들』, 『시간 수집가의 빈티지 여행』 저자.

저자 : 주성철

홍콩 영화 애호가. 전 영화전문지 〈키노〉, 〈필름2.0〉 기자, 〈씨네21〉 편집장.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 『영화기자의 글쓰기 수업』, 『데뷔의 순간』,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 저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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