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
이동건 지음 / 델피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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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우린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는 범죄 소설이다. 추리를 동원하고 미스터리한 부분을 극대화한 심리묘사로 스릴러 장르로 뛰어든다. '그림자가 없다'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흔적이나 증거를 남기지 않는 완전 범죄를 다룬 추리소설일 수도 있다. 사건을 쫓는 수사관은 뒤를 쫓다가 결정적 단서로 범인을 체포할 것이다. 소설이 끝나는 부분에서 밝혀질 일이다. 제목에서는 단순 범죄 소설이 아니라는 인상을 준다. 완벽한 살인을 꿈꾸는 사이코패스 성향의 살인 행위를 그린 것일까? 그렇다면 너무 뻔한 잔혹한 범죄를 연쇄적으로 일으킨다는 것도 너무 뻔한 스토리 아닐까? 도대체 어떤 인간을 내세워 살인을 계속할 것인가?

저자도 고민했을 것이고, 독자는 더 궁금하다. '투명인간'을 내세울 수도 없을 터(투명인간의 범죄라면 SF 스릴러쯤으로 여기게 될 터) 과연 누가 연쇄 살인의 범인인가. 그렇다. 가장 평범한 인간이 수사관들의 눈을 피하기 가장 좋다. 용의선상에 잘 오르지도 않을 것이고 설령 오르더라도 알리바이만 만들어도 수사 대상에서 제외되기 십상이니까. 살인의 동기도 있어야 한다. 모든 범죄는 동기가 없다면 성립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소설은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범죄 소설이다. 그것도 주인공이 범인이다. 저자는 주인공이 범인인 사실도 일치감치 밝힌다. 그렇다면 이 소설을 어떻게 끌어가려고 그렇게 했을까. 저자와 독자 사이에 게임으로 본다면 자신의 패를 일찍 까발리고 계속 게임을 이어갈 수 있을까?

 


 

스토리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살인 동기가 없다면 범죄 구성이 되지 않는다. 저자는 기발한 생각을 한다. 수사에서 제외되기 쉬운 사람, 미성년자이다. 종혁은 첫 번째 살인을 터무니없게도 자신의 선생님을 대상으로 한다. 그것도 어린 나이 때 도덕 시간에 선생님의 말씀을 흘려들으며 가수 상태에서 '살인'을 문득 생각해낸다. 생각해냈다기보다 우연히 가수 상태에서 떠올랐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년 종혁은 졸면서 도덕 수업과는 멀어지고 '살인을 하면 어떤 느낌일까?' 란 생각을 한다. 지루한 도덕 선생님의 말씀이 어떻게 살인으로 연결됐을까.

아마 도덕 선생님은 이것저것 말하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 특히 사람이라면 절대로 생각조차 하면 안 된다'란 점을 강조했을 것이다. 그것이 인간으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살인의 느낌을 생각해 낸다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이젠 한 발 더 나아가 살인은 '상상도 못할 특별한 느낌일 것 같다'는 생각으로 비화한다. 그러나 이 궁금증을 풀고 싶을 땐 너무나 많은 것을 버려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그는 어린 한숨을 내쉬며 포기한다. 다시 눈을 감고 선생님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에 들려고 하다 무의식 속 생각의 줄기가 마음대로 뻗어 소년을 건들며 깨운다. 독자로서 이해는 안 되지만 소년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점점 '살인의 느낌'에 대한 궁금증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서도 하루종일 그 생각뿐이다.

'완벽하게 사람을 죽이면 되잖아.'

 


 

증거도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사람을 죽이면 된다. 아무도 모르게 절대로 걸리지 않는 완벽 범죄 말이다. 그럼 지금 자신을 미치게 만드는 궁금증은 해소되고 감옥에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가? 중학생 소년이 생각해 낼 정도로 쉬운 일이라면 지금까지 경찰에 붙잡힌 살인자들은 그냥 바보 멍청이인가? 하지만 소년을 그날부터 완벽한 살인을 위해 밤을 새우기 시작한다. 정말로 하면 안 되는 것인 것을 알고 있지만, 이미 악마 같은 생각이 소년을 집어삼켰다. 소년을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공책에 '완벽한 살인'을 위한 계획을 만들기 시작하낟. 여러 살인사건의 뉴스와 정보를 찾아보았다. 경찰의 수사법을 공부하고 심리학을 공부했다. 서점에 가서 책을 사 읽었다. 장기 미제 사건의 범인이 왜 체포되었는지, 연쇄살인마가 경찰에 어떤 실마리를 주었는지 모두 찾아보았다.

의학을 공부하고 도축법도 공부했다. 이쯤에서 독자의 머리를 '쩡'하는 생각에 눈길을 멈췄다. 이건 도무지 터무니없는 생각을 위해 어린 소년이 살인을 위해 이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시간을 들인다고? 아무 원한도 분노도 없는 상태에서 대상도 정하지 않고 공부를 계속할 수 있을까? 저자의 생각이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모든 공부를 포기하며 살인을 위한 공부만 1년을 하다니. 운동하고 책 읽고 하루의 모든 행동이 살인을 위한 공부와 수련이라니... 성적은 말할 것도 없고 친구도 멀리 떨어졌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해가 거듭되도록 소년은 '완벽한 살인' 하나만을 생각하며 지낸다. 드디어 어느 한 사람에게 집중한다. 이때부터 2개월에 걸쳐 계획을 짠다. 그리고 살인 후 시체 처리까지 나름 완벽한 살인이다.

 


 

소년을 살인을 끝내고 집에 도착한다. 그리고 사람 눈에 들킨 바퀴벌레마냥 후다닥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온몸을 떨고 숨은 불규칙하게 쉬어진다. 하지만 소년을 이를 악물고 눈물이 흐르는 눈을 감는다. 그리고 지금 사람을 죽인 자신의 감정을 느껴본다. 쾌락? 행복? 기쁨? 소년은 어떠한 좋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기괴한 공포와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 그리고 경찰이 곧 잡으러 올 것이라는 극도의 불안감. 소년을 눈을 뜨고 흘러나오는 눈물을 바닥에 흘린다. 무릎을 꿇고 고개을 푹 숙인다. 그리고 죽여버린 선생님에게 통곡하며 사과한다. 그러나 이미 늦은 일이었다.

이후에 학교에 경찰들이 찾아왔지만 별 소득 없이 떠났다. 선생님은 실종 처리되었으며 모든 게 끝이 났다. 학교에는 이상한 소물이 돌았다.

 

"엄청난 빚이 있어 야반도주를 했다."

"교장 선생님과 바람을 피우다 걸려 해외로 도망갔다."

"중국으로 납치되었다."

"갑자기 증발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선생님은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p.16)

 


 

이로써 우발적(?)으로 살인을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완벽한 살인을 수행하는 종혁이 탄생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위험한 능력을 숨기고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다. 주말마다 재즈 바에서 싸구려 위스키로 한 주를 버티며 살아가던 그에게 찾아온 미모의 여성. 종혁은 우연히 그 여성과 함께 술자리를 갖는다. 그리고 그 장면을 목격한 그녀의 남자친구에게 심하게 폭행을 당한다. 이후에도 계속되는 남자친구의 집요한 괴롭힘에 어쩔 수 없이 종혁은 또 한 번의 살인을 저지른다. 첫 번째 살인과는 다르게 이유가, 살인 동기가 생긴 것이다. 이후 종혁은 숨어살다시피 하지만 이런 종혁의 살인 능력을 간파한 김필정(대기업 회장)은 자신의 천적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종혁에게 접근해 뿌리칠 수 없는 제안을 건넨다. 그리고 장맛비가 내리는 어느 날, 종혁을 찾아온 또 다른 남자. 그는 자신을 검사라고 소개하며 지금껏 종혁의 범행을 모두 알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종혁을 체포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왜 찾아왔을까? 아니,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걸까?

그의 위험한 능력을 탐내는 이들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그는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져든다. 저자는 종혁이 청부 살인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피폐해지는 모습과 동시에 그를 매수하여 살인을 청탁하는 사람들에게 주목한다. 이미 성공하여 부와 명예를 거머쥔 그들의 끝없는 탐욕과 위선, 배신과 살인을 저지를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 같다. 저자는 종혁의 눈을 통해 그들의 추악함을 독자에게 낱낱이 고해바친다.

 


 

이 작품에는 살인자 종혁을 쫓는 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그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 뿐이다. 과연 완전 범죄를 꿈꾸는 종혁은 끝까지 잡히지 않을 수 있을까? 종혁이 잡힌다 하더라도 종혁을 고용한 그들의 어두운 그림자는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살인 병기 종혁을 통해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독자는 종혁의 첫 번째 살인을 제외하고는 '있을 수 있는 일'이란 점을 인정하지만 이 소설을 다 읽을 때까지 왜 소년 종혁이 첫 번째 살인을 저질렀을까에 대한 해답을 구하지 못해 아쉽다. 다음 네 개의 문장은 책 속에 실린 저자의 감정의 흐름을 잡아낼 수 있어 여기에 적는다.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증거가 없다. 그냥 일반인이 이 상황을 겪고 있다면 지금 뭐라고 할까?(p.128)

이제 일반인을 죽였다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다. 그저 곧 집 앞에 도착할 돈을 기다릴 뿐이다.(p.171)

흙탕물 위를 힘겹게 헤엄치고 있는 이름 모를 작은 벌레. 마치 나 같다. 나처럼 흙탕물 위에서 살기 위해 힘겹게 헤엄치고 있는 벌레.(p.183)

‘맞지, 이 금색 종이가 모두를 친절하게 만들고 나를 나락으로 떨어트린 쓰레기니까.’(p.209)

나쁜 것들은 흐릿하게 미화되고 기억에서 사라졌으며, 지금 남아있는 것은 조금 있었던 행복과 즐거웠던 기억, 가방에 든 돈뿐.(p.238)

 

저자 : 이동건

 

언제나 좋아하는 책을 쌓아두고 상상에 파묻혀 살았다. 학창시절 홀로 해외여행을 다니며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내가 지어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걸 좋아하는 2000년생 천상 이야기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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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너머로, 지맥(GEMAC)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20
전윤호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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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의 붕괴가 증강 쥐의 자살공격 때문임이 밝혀지고, 경찰은 테러 동영상을 공개한 과격 환경주의 집단 가이아 연대를 소탕하고자 하지만, 대유행 이후 치안을 포기한 산간지역을 수색하기에는 역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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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너머로, 지맥(GEMAC)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20
전윤호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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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경계 너머로, GEMAC』은 작가 전윤호가 탄생시킨 IT 테크노스릴러 하드 SF다. 전작 『모두 고양이를 봤다』에 이은 두 번째 장편 하드 SF 작품이다. 30여 년간 IT 분야에서 기술 개발에 매진한 저자의 이력은 이 작품 속에서도 치밀하고 정교한 과학적 디테일로 구현되어 이 작품을 하드 SF의 교과서적인 작품으로 완성시켰다. 이 작품은 이미 진화된 과학기술을 인간과 가장 유사한 영장류인 침팬지에게 적용해 증강동물을 만들어내고, 그 증강동물을 인간의 탐욕으로 이용하고 희생시키려는 세력과 그에 반해 지맥을 인류의 동반자로 인정하고 인간 외의 생명체를 존중하려는 주인공들의 싸움을 그리고 있다.

저자 전윤호는 인간의 오만함과 더불어 인간이 지구를 공유하고 있는 다른 존재들과 어떤 방식으로 공존하고 공생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서술함에도 저자는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한 암호와 같은 과학기술을 나열하지 않는다. 작품 속 IT 기술은 그 디테일이 오히려 생생하고 정교하여, 전문기술을 기반으로 했음에도 독자가 힘들여 암호 해독하듯 풀어낼 필요가 없다. 뛰어난 필력으로 휘몰아치는 사건을 뒤쫓아 달리다 보면, 어느새 주인공들과 함께 BCI(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을 받아들이고 작품 속에 스며들어 있음을 자각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 등장인물인 '지맥(GEMAC)'은 침팬지를 유전적으로 개량하고 컴퓨터로 지능을 보완한 증강동물을 일컫는 말이다. 동물은 인간의 기술에 힘입어 집단지성 혹은 집단사고를 발전시킨다. 그리고 그 집단 사고의 네트워크에 인간도 합류하는 설정이다. 독특하지만 인공 지능이 개발된 현시점에서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텔리전스'라는 회사는 수십 년간 투자가 이루어진 AI와 로봇기술이 한계를 가지고, 그동안의 성과가 기대에 못 미쳤기에 유인원의 두뇌를 활용하고 부족한 부분을 컴퓨터로 보완하는 방식이 낫다고 확신한다. 지맥은 이런 인간을 대신해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인데, 동물권에 관해서는 인류는 예로부터 동물을 개량하고 이용해왔는데, 멸종할 침팬지를 개량하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이라 주장한다. 소설에서 그려내는 미래 사회의 모습은 조금 암담하다. 사람들은 조류독감 변종 바이러스로 인해 한자리에 모이지 못하고, 감염을 우려해 창문을 닫고 생활해야하며 외출 시에는 전신 방호복을 착용해야한다.

최악의 전염병이 발생한 상황에서 신텔리전스는 평택 단지에 방호복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그곳은 모든 생활 기반시설을 내부에 갖춘 복합 단지였는데, 가장 큰 구역인 도두 공원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한다. 어려운 설정이나 용어로 이해가 더디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독자의 기우였다. 소설은 몰입도가 높았고, 읽을수록 흥미진진했다. 다만, 소설 속에 그려진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저 책 속의 상상으로만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평택항 전경(사진 출처 : 평택시)

지리적 배경은 평택이다. 시대적으로는 가까운 미래 2040년대다. 이는 '신텔리전스'라는 회사의 CEO인 류현규가 보내는 공문에 2040년, 2049년 등으로 표기돼 정확하게 나온다. 즉, 이 소설은 2040년대 대한민국 평택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때쯤은 대기오염이 심해질 것이고, 기후변화도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진 것으로 묘사된다. 평택복합단지는 이에 대비해 새로 조성된 미래도시이다. 평택항과 미군 주둔기지가 있었던 곳이어서 여러가지를 감안해 미래형 복합단지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중국과 마주하고 있는 곳잉어서 저자가 구상한 소설의 배경으로 알맞은 곳이었을 것으로 추정 가능하다.

이곳의 분위기는 미래복합단지지만 암울하게 그려진다. 중국은 2020년 현재 인공비 기술을 확보했고, 선진국이라 일컫는 유럽과 미국 등은 기온이 최고 섭씨 50도에 육박할 정도로 이상 기후가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라 이 같은 설정이 2020년대 시도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러나 기후는 인간이 살기에는 적절한 온도가 따로 있으니 이 기온이 넘어가거나 밑으로 내려가도 거주하기가 힘들 것이라는 것은 지금도 예측되는 일이라 복합단지 조성은 불가피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만일 더우면 끝없이 덥고 추우면 끝없이 추운 날씨가 계속되어 우리나라의 경우 봄, 가을이 없어진다면 '사계'란 개념도 사라진 상황인 것 같다. 이 책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저자의 전작 『모두 고양이를 봤다』를 읽지 못한 독자로서는 궁금증과 기대감이 더 커진다.

 


 

독자는 사실 GEMAC(지맥)이 표제어에 등장하는 순간, SF소설이니만큼 미래시대 등장할 용어란 것을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몰라서 혹시 우주대탐험이나 우주를 무대로 펼쳐지는 싸움인 줄로 생각했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지맥은 유인원(침팬지 등)을 유전적으로 개량하고, 인공 지능을 보완한 증강동물를 가리킨다. 즉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유인원 무리다. 로봇인데 생체기능을 갖고 있는 것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숫자로 번호가 매겨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완전한 인간에는 이르지 못한 것인 만큼 지맥들을 훈련시키는 인간 조련사들이 나온다. 지맥은 어느 조련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역할이 달라질 것이라는 건 쉽게 추정 가능하다. 인공지능과 증강현상을 이해하고 있다면 소설 읽기는 무리가 없다. 아쉬운 점은 독자가 아직 완전히 디지털 문화에 익숙지 못한 아날로그 세대여서 독서와 이해애 다소 장애가 있지만 소설로 읽기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사람과 지맥은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이 있다. 사건이나 사고 등 문제가 발생하기 전과 후의 한정적인 부분만 볼 수 있는 반면 지맥은 어떤 지점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조련사 준우에게 보고할 정도로 짧막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태다. 즉 준우에게 짧막한 명령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준우가 민호 쪽으로 달려가려는 순간, 큰 손이 그의 팔을 움켜쥐고 강한 힘으로 잡아끌었다. 지맥 87이었다.

위험

“나도 알아!”

87의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87은 쉽사리 놔주지 않았다. 그 순간 온 사방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구조물과 솟아오르는 흙먼지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맥들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콜록거렸고 페이스 실드는 필터의 성능이 저하되었다는 경고를 울렸다. 눈앞을 가리는 먼지와 귀가 먹먹해지는 굉음 속에서 그들은 함께 엎드려 머리를 싸맸다. 돔의 구조물이 이미 떨어졌던 곳에는 다시 떨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며 두려움 속에 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p.15)

 


 

아직 초기 단계인 인공 지능이나 증강현실 등이 더욱 발전되리라고는 지금도 가능한 예상이다. 특히 이번 코로나19가 더 빠른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들어가게 한 추진력을 불어넣었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금도 인간의 이동에 제한이 따르고 전쟁을 치르는 등 개인간 이해 충돌, 국가간 이해 충돌 현상은 계속될 것으로 보여 이런 돔 형태의 복합단지가 들어서게 되리라는 것은 어렸을 때 본 '공상만화'에도 나온 것 아닌가. 그때는 단지 상상과 공상이라고 생각했을 뿐이고, 지금이 현실성 있는 이야기로 들린다. 작품에 대한 몰입도가 커지는 이유다. '비대면'이란 단어가 코로나19 이후 활성화됐듯이 어쩌면 2040년대 우리 현실은 돔 속에 인간들끼지 부딪치며 소통하고, 만나서 정을 나누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현 시대에 생각하면 가능한 복합단지 형성은 그 자체로 암울한 미래를 엿보게 하는 것이다.

이 소설 『경계 너머로, 지맥(GEMAC)』에서 '증강 쥐'가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고, 당장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일 수 있다. 즉 소설의 현실감과 사실성을 높여주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돔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행한다. 그 원인은 증강 쥐일 수 있다는 점이다. 증강 쥐는 인간이 만든 지맥과과 흡사한 쥐 아바타 역할을 한 것이다. 다만 독자의 증강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인지 증강 쥐가 우연히, 혹은 증강동물의 다른 종에 의해 나타난 것인지,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만일 인간이 만들어낸 쥐가 아닌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 증강 쥐라면 돔이나 복합단지, 방역, 천체 우주 등의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우리 앞에 수많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자연히 발생한다는 사실은 어쩌면 우리가 신앙보다 더 굳게 믿는 '과학'이 무너지는 단계로까지 갈 수도 있을 것이란 새로운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한다. 인간이 스스로를 편리하게 이용하기 위해 발전시켜 온 과학이 인간을 이롭게 하지만 해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예가 될 수도 있어 두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독자 같은 문외한을 위해 박상준 서울SF아카데미 대표가 '서평'을 책 뒷 부분에 남겨 독서에 많은 도움이 된다. 이에 따르면 더 이상 인간은 절대적 기준이 아니며, 동물은 인간의 기술에 힘입어 집단지성 혹은 집단사고를 발전시킨다. 그리고 그 집단사고의 네트워크에는 인간도 합류한다. 이러한 설정에서 엿보이는 새로운 사회윤리적 상상력의 다층적 가능성, 그 입체적 가능성을 치밀하고 설득력 있게 형상화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진가는 충분히 입증된다. 기존 비슷한 SF 작품과 다른, 이 작품의 미덕은 동물(유인원)의 개조라는 민감한 주제를 내용 전체에 관통시키며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동물권을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논란이 될 수 있는 설정임을 작가는 당연히 잘 인식하고 있다. 이미 인류는 오래 전부터 동물들을 여러 용도로 이용하고 개량해 왔으며 '지맥'도 맹도견이나 수색견과 사실상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두뇌가 컴퓨터로 연결되었다 해서 강제로 조종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인간 조련사가 지맥의 생각과 감정을 읽고 적절한 행동 지침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중략)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은 작품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유지되는 탄탄한 디테일 묘사다. 단순히 이론이나 신기술을 나열하는 차원이 아니라 각각의 요소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정합성을 형성하여 상황이나 설정에 대한 설득력을 극대화한다. 하드 SF로서 거의 교과서적인 모범을 보인다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며 덕분에 작품에 대한 몰입이 수월하다. 의외로 많은 SF들이 별로 성공하지 못한 부분이다.

 


 

 

최 형사는 평택 단지에 관한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SF 영화에서 본 도시 전체를 덮는 거대하고 매끈한 유리 돔을 상상했었다. 완공된 단지는 그 기대에는 못 미쳤으나 그래도 대단한 장관이었고, 실내에 갇혀 지내는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동경하는 장소가 되었다. 단지의 인공 환경은 바이러스와 미세먼지를 차단할 뿐만 아니라 1년 내내 쾌적한 온도와 습도, 조도를 유지했다. 회사 시설과 직원 사택을 제외한 주거 공간은 일반인들에게 경매로 분양되었고 낙찰된 가격은 평택 단지를 다시 한번 기네스북에 등재시켰다.(p.30)

 

“다들 꼼짝 마. 경찰이다. 무기 버려.”

뒤에서 소리가 났다. 동시에 여자가 준우를 잡아채 머리에 총구를 갖다 댔다.

“물러나! 안 그러면 이 녀석 머리에 기생충 대신 총알이 박힐 거야!”

다른 남자도 어느새 총을 꺼내 유진에게 겨누고 있었다. 다가오던 경찰특공대가 멈춰 섰다. 준우는 하얗게 질린 유진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 알파 팀에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 | 미안(p.178)

 

저자 : 전윤호

 

서울대학교에서 전기컴퓨터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30여 년간 IT 분야에서 기술 개발에 매진하다가 2019년부터 SF를 쓰기 시작했다.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소프트웨어융합대학 산학교수로 재직중이다.2020년 과학스토리텔러 1기 당선작품집 《페트로글리프》에 SF 단편 〈노인과 지맥〉이 수록되었고, 2020년 장편 SF 소설 《모두 고양이를 봤다》를 출간하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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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노동 -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
데니스 뇌르마르크.아네르스 포그 옌센 지음, 이수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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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가짜 노동』은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란 부제를 갖고 있다. 자칫 제목만으로는 '스스로'라는 단어 때문에 일하는 사람(노동자)이 일을 지나치게 많이 해서 '번아웃' 현상을 가져온다는 뜻으로 잘못 읽힐 우려가 있다. 번아웃이란 단어가 가진 뜻이 대체적으로 한 가지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로 무기력증·자기혐오 등에 빠지는 증후군(Burnout syndrome)'을 일컫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막상 들어가 보면 사회와 노동의 시스템을 인류 스스로 잘못 축적하고 발전시켜 온 데 이유가 있다. 즉 노동자가 일을 너무 많이 해서도, 일을 기피해서도 생기는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 책의 공동 저자 데니스 뇌르마르크(Dennis Nørmark)와 아네르스 포그 옌센(Anders Fogh Jensen)은 번아웃 현상의 원인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하루 종일 자기 발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 실질적인 성과와 관련 없이 그저 바쁜 일, 즉 ‘가짜 노동’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한다고 본다. 문제는 정말 중요한 일과 하나도 중요하지 않는 일들이 뒤섞여 노동 시간이 늘어나도, 정작 일하는 사람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데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두 저자는 모두 덴마크 태생으로 대학에서 인류학과 철학을 각각 전공한 분들이다. 두 저자는 코로나19가 노동 시장의 높은 도덕성과 공정성을 자랑하는 나라 덴마크에서 직접 겪고, 노동 환경에 불어닥친 큰 변화에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목격했다. 사실 전 세계적인 문제로 대두됐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백신 발명과 치료제 출시 등으로 잠시 주춤해 일상은 정상으로 돌아온 듯했지만 일터에서는 여전히 크고 작은 문제들이 속출했다. 특히 재택 근무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온 사람들은 업무 환경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재택 근무를 할 때 두세 시간만에 끝낼 수 있었던 일들을, 사무실에서는 몇 배의 시간을 더 들여도 끝내지 못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 마음 한구석에서 이런 의문이 솟아나기 시작했고, 두 저자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의미 있는 일인가?’ 그러나 일에 대한 이런 의심, 불안과 불만족은 ‘바쁘다’는 핑계에 바로 가려져 쉽사리 드러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출근 후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지만 그 원인을 알아차린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일을 많이 할까?’ 이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이 책의 저자들은 우리가 일이라고 믿고 있는 것에 얼마나 많은 부조리가 존재하는지 두 저자는 직접 조사하기 시작했다. 사무직과 육체노동자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인터뷰를 했고, 번아웃의 주요 원인은 노동자의 일 감당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 시스템과 지금까지 관례적으로 해온 관리직의 비대화 등이 '가짜 노동'의 문제를 일으킨다는 결과를 밝혔다.

특히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가짜 노동(Pseudowork)’은 근본적인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분석하기 위해 두 저자가 새롭게 고안한 단어다. 사실 이 단어는 독자로서도 처음이지만 어쩌면 수많은 우리나라 독자들이 처음 접하는 단어일 게 분명하다. '가짜 노동'과 '진짜 노동'이 따로 있단 말인가? 하는 의구심으로 이 책을 읽게 된 독자로서는 새로운 단어 '가짜 노동'을 알게 된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그 단어의 뜻이 노동자 스스로가 아닌 조직, 경영, 리더십, 사회에 있다는 것을 밝혀낸 두 저자의 노력과 열정에 감사할 뿐이다. 두 저자는 「서문」을 통해 우리의 노동이 사회 전체로 볼 때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일 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파국적이고 존재론적 낭비인 상황에 대한 개념어로 '가짜 노동'이란 단어를 제시한다고 밝혔다.

 


 

두 저자가 현장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토론한 끝에 밝혀낸 가짜 노동의 원인은 다양했다. 그중 핵심은 현대사회의 합리성, 테크닉과 테크놀러지의 출현이었다. 인류의 발전과 발명을 위한 합리성과 신기술은 더 많은 ‘노동’을 창출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유행에 따라 바뀌는 시스템, 쓸데없이 행해지는 잡무, 시간을 잡아먹을 뿐인 회의, 산더미 같은 참조 이메일의 수렁에 빠져서 엄청나게 바쁘게 일하지만,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이상한 노동의 굴레에 갇힌다. 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끊임없이 바쁘기 때문에 휴식하거나, 자기 개발을 하거나, 가족과 보낼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악순환에서 탈출할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들은 사람들이 겉으로는 뭔가를 하고 있으나 사실은 안 해도 그만인 형식적인 잡무를 하면서 퇴근도 하지 못하는, 이 같은 상황을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즉 우리에겐,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의미 있는 반성과 무엇이 가짜 노동이고 무엇이 진짜 노동인지 구별하는 성찰적 판단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짜 노동: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는 이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가짜 노동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준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가짜 노동의 원인과 해결 방안에 대해 토론하며, “탈주하는 무의미한 노동이 우리를 점점 더 깊은 공허로 끌어당기는 문제”를 풀어간다.

 


 

전 세계에 불어닥쳤던 코로나19가 노동 환경에 끼친 영향은 이 책에서 보여주는 유럽 나라들의 사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나라 노동 환경 역시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재택, 원격 근무 등 근로 제공 방식의 다양화를 시작으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변화의 틈 사이에서 사람들은 일의 본질에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을 통해 자신이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기 어렵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발견된다. 최근 노동 시장에는 새로 유입된 MZ세대 사이에서 조기 퇴사율이 증가하는 경향이 보인다. 힘들게 취업한 곳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질적인 성과 없이 바쁘고, 소모되는 듯하고,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조직, 경영, 리더십, 사회 안에 있다.” 즉 사람들은 지금뿐 아니라 꽤 오래전부터 가짜 노동의 수렁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가짜 노동에서 벗어날 방법은 무엇인가?

저자들은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의미 없는 텅 빈 일들로 차 있는 현실로 더 깊숙이 들어가 탐구한다. 가장 먼저 함께 살펴볼 내용은 약 100년 전 존 메이너드 케인스, 버트런드 러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벤저민 프랭클린 등 많은 지식인들이, 미래에는 사람들이 훨씬 적게 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는 사실이다. 이 내용을 통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왜 더 많은 시간을 노동에 쏟고 있을까?’ 이 질문에서 촉발된 내용들이 책의 서두를 이끌고 있다.

 


 

이 책은 3부 15장(章)으로 이루어졌다. 1부 〈사라진 시간〉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일하는지, 대체 왜 아직도 그렇게 많이 일하는지, 노동 시간에 대해 알아본다. 석기시대부터 현재까지 노동의 본질과 노동량에 대한 내용부터, 공허하고 쓸모없는 노동에 대한 다양한 연구까지 두루 살핀다. ‘텅 빈 노동’이나 ‘빈둥거리기’ 대신 왜 ‘가짜 노동’이라고 부르는지 개념어에 대한 설명과 가짜 노동을 더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이는 직장 안에서 작동하는 기제가 무엇인지도 자세히 다룬다.

2부 〈사라진 의미〉에서는 가짜 노동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들려주는 다양한 직업의 취재원들을 만난다. 직장인이 하는 업무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사람들을 직장에 너무 오래 묶어두고 무의미한 행동을 하게 하는 의미 상실과 부조리의 다양한 면모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제 직장에서 무엇이 의미 없는 노동을 더 많이 창조하는지를 밝힌다. 또한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이 훨씬 더 많은 일거리를 낳고, 그 결과 너무나 바빠진 직장인들이 오후가 넘어가도록 정작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거의 하지 못하는 모습을 들여다본다. 업무량을 늘리는 또 다른 요인들, 예를 들어 실질적 필요와 상관없이 ‘다른 회사에서 하니까 그냥 우리도 하고 싶어지는’ 것들, 과시적인 말, 중요해 보이는 직함, 조직의 목표 선언과 다양한 꾸밈의 형식,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않은 기나긴 회의로 직장인들이 서로를 끊임없이 훼방 놓는 상황을 설명한다.

 


 

2부의 뒷부분에서는 목요일까지만 근무하는 주4일 근무 회사를 직접 방문한 내용을 담았다. 현대사회가 왜 시간을 노동량 측정의 척도로 사용하기를 고집하는지 질문하고, 초과 근무를 발생시키는 직원들에 대한 조직의 불신과 인사팀, 감사팀 등 직원들을 감시하는데 공을 들이는 기업의 감시 욕망에 대해 분석했다. 3부 〈시간과 의미 되찾기〉에서는 가짜 노동에서 벗어나 시간과 의미를 되찾는 방법을 알아본다. 의미를 되찾는 방법에 앞서 노동이란 무엇이고, 일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것이 인간에게 왜 중요한가에 대해 알아본다. 그리고 한 개인이 직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본다. 가짜 노동을 벗어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관리자에 대한 의미 있는 조언도 정리했다. 마지막 장에서는 가짜 노동이라는 금기를 제거하고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본다.

두 저자에 따르면 성과와 상관없는 일, 보여주기 식의 일,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위한 일, 단지 바빠 보이기 위한 무의미한 일들은 모두 가짜 노동이다. 일이란 그저 단순한 돈벌이와 생존 수단이 아닌 인간의 삶의 근본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가짜 노동은 개인의 자존감에 타격을 주고, 존재를 위태롭게 하며 보어아웃과 번아웃 증후군에 빠지게 해 오래 일할 수 없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왜 오래 일하는가?’ ‘나는 가짜 노동을 하고 있는가 진짜 노동을 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우리 삶과 일의 진짜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지금 우리 인류는 기후 변화, 저출산 고령화, 인플레이션, 경제 침체 등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있다. 우리는 가짜 노동이라는 오랜 기만에서 벗어나 진짜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할 때다.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책은 우리가 암묵적으로 숨기고 외면해 왔던 노동의 오랜 문제를 파헤친다. 만약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의미 있는 일인지 때때로 의구심이 든다면, 그 실체 없는 불안과 의심이 지속된다면, 이 책에 담긴 여러 목소리를 통해 자신의 상태를 진단해볼 수 있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매우 단순하다.

‘우리는 왜 그렇게 일을 많이 할까’라는 자연스럽고 근본적인 질문을 통해 자신의 노동을 주의 깊게 성찰할 것을 강조한다. 가짜 노동에 의한 시간 낭비를 멈추고, 무의미한 업무에 소비하던 시간을 보다 가치 있는 곳에 쓸 것. 이것은 결국 우리가 마음속으로 바라던 것들을 실현하는 일이기도 하다. 가짜 노동에 갇혀있던 시간을 해방시키면 진짜 일을 해야 할 시간에는 일을 하고, 그렇지 않는 시간에는 쉬거나 소중한 사람과 보내거나 자기 개발하는 등 자신이 바라는 일을 할 수 있다.

일과 삶의 의미를 되찾는 진정한 방법은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는 것에 있지도, 외부에 있지도 않다. 가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일을 하면서 느끼는 여러 답답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이들에게, 무의미한 일에서 해방되길 바라는 이들에게, 이 책이 제시하는 관점과 방법들은 분명 도움이 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방법을 찾기에 앞서 우선은 이 책의 저자들의 말처럼, 독자들도 현대 노동 생활에 깃들어 있는 부조리와 비이성으로의 여행을 즐겨볼 가치를 부여한다. 이 책과 함께하는 여정은 노동의 신성함과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길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저자 : 데니스 뇌르마르크(Dennis Nørmark)

데니스 뇌르마르크는 1978년 덴마크에서 태어나 오르후스 대학교에서 인류학 석사를 받고 노동, 정치, 문화에 대한 강사, 컨설턴트, 비평가로 일했다. 여러 회사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직장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얻었고 그를 바탕으로 현대사회를 통찰하는 깊이 있는 글을 써왔다. 그는 덴마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다양한 인류학 서적들의 저자이기도 하다. 여러 저서 중에 『가짜 노동Pseudowork』 『석기 시대의 문화적 이해Cultural Intelligence for Stone-Age Brains』 등이 영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저자 : 아네르스 포그 옌센(Anders Fogh Jensen)

아네르스 포그 옌센은 1973년 덴마크에서 태어나 오덴세 대학교에서 철학으로 석사를 받고 파리1대학(소르본)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한 후 코펜하겐 대학교에서 예술문화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강사, 작가, 극작가, 정치 및 사회 이슈에 대한 비평가로 알려져 있다. 여러 대학교에서의 강의와 연구를 통해 프로젝트 커뮤니티 개념을 다듬었고, 최근에는 철학적 대화를 통해 내면을 치유하는 여행 안내자로 활동하고 있다. 『은유의 힘Metaforens magt』 『프로젝트 사회The Project Society』 『가짜 노동Pseudowork』 등 열 권 이상의 저서를 집필했다.

 

역자 : 이수영

연세대학교 국문학과와 같은 대학원 비교문학과를 졸업했다. 편집자, 기자, 전시 기획자로 일했고, 『밴디트: 의적의 역사』 등의 인문서로 번역을 시작했다. 지금은 문학 번역에 전념하고 있으며 소설 『클로리스』 『XX』 『비하인드 도어』, 에세이 『국경 너머의 키스』 『마이 코리안 델리』, 여행기 『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 『너의 시베리아』 등을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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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
이재형 지음 / 디이니셔티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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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파리를 '예술의 도시'라고 부르는가? 최근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예술 도서들이 그 질문에 답하기라도 하듯 한결같이 파리를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책들은 자신의 주제에 맞추느라 '미술' '음악' '건축' 등으로 나눠 소개한다. 그 책들은 어쩔 수 없이 파리의 미술, 파리의 음악, 파리의 건축 등 예술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분야를 각각 나누어 조망한다. 예술사 책도 마찬가지다. 간혹 에세이가 파리의 삶을 소개하면서 부분적으로 파리가 예술의 도시임을 증명하는 글을 쓰기도 하지만 역시 주제에 맞춰야 하는 한계에 부딪힌다. 파리를 예술의 예술의 도시라고 칭하기에는 내용이 조금 빈약하다는 생각이다.

독자는 십여 년 전 해외여행을 처음 가면서 파리에 간 적이 있다. 처음 하는 해외여행이라 기본적인 일정이나 계획을 짤 수 없어 '패키지 여행'을 택했다. 파리 체류 기간은 2박 3일이었다. 그것도 파리의 예술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유명한 장소나 박물관, 성당 등 몇 군데만 둘러봤을 뿐이다. 말 그대로 여행이 아니라 '관광'이었다. 그때 파리를 나오면서 처음으로 "꼭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다. 십여 년이 지났는데도 그 다짐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머릿속에서 파리에 대한 인상이 서서히 지워져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파리에 대한 예술서를 보면서 조금씩 다시 파리 여행을 꿈을 키우고 있다. 이 책 저 책 두서없이 닥치는 대로 읽다보니 메모는 늘어가지만 일정을 짜기에는 더 혼란스럽기도 한 상황이다. 이 책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가 선물처럼 눈에 띄었다. 예술가가 아닌 불문학자인 저자여서 더 읽고 싶었다. 더욱이 파리에 30년 간 거주하고 있다니 파리 시민 못지 않게 파리를 잘 알 것이라는 기대감도 작용했다.

 


 

파리는 ‘2021년 세계에서 가장 여행하고 싶은 도시 1위’로 선정(유로모니터 리서치)될 정도로 매력 넘치는 도시다. 파리의 무엇이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것일까? 바로 영원불멸한 예술을 삶 속에서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 아닐까. 독자가 파리에 가고 싶은 이유가 정확하게 저자 이재형의 집필 이유와 맞아 떨어진다. 저자는 파리에서 예술은 현실과 유리된 상류층의 장식품이 아닌,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삶의 일부라고 말한다. 힘들 때 예술 작품을 보며 위로받고 용기를 얻기도 한다. 출판사 측은 파리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그 여정에 반드시 함께해야 할 책이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마치 독자의 마음을 아는 것 같다. 저자 이재형은 파리에서 살면서 150권이 넘는 프랑스 작품을 번역한 불문학자다. 프랑스 문화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해석이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주고 예술에 대한 애정이 파리의 예술을 빠짐없이 담게 된 이유다. 이는 독자에게도, 저자에게도 특별한 책이 될 것이다.

이 책에는 유명 미술관부터 알려지지 않은 거리의 구석까지, 예술 작품을 따라 파리에 녹아있는 숨겨진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생생한 사진은 덤이다. 프랑스 문화에 대한 지식과 애정이 담긴 여정에 저자를 따라 간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 가이드북이 아니다. 한 번도 안 가본 독자에게는 여행 안내서 역할을, 한 번이라도 가본 독자들에게는 한 걸음 나아가 좀 더 깊이 파리의 모든 곳에 스며 있는 예술의 힘을 찾아 안내해 주기도 한다. 미술관 도슨트가 파리와 파리의 예술을 해설해 준다. 역사 속의 유명 예술인들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들린다. 저자가 선택한 특별한 예술 작품들은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파리에 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집값이나 집세 등을 비롯한 생활비가 말도 안 되게 비싸고, 공기가 그렇게 맑지도 않다. 게다가 날씨도 그다지 안 좋고 교통도 불편하며 어떤 동네는 지저분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나는 1996년 프랑스로 건너와 오랫동안 파리에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떠날 생각이 없다. 나는 왜 이렇게 파리를 사랑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예술의 힘’이다. 나는 예술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고 믿는다.”(프롤로그 중에서)

이 책은 인상주의가 탄생한 몽마르트르부터 파리에서 영원히 숨 쉬는 예술가들이 묻힌 묘지, 걷는 사람만이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야외 예술품들, 오르세·루브르·오랑주리·로댕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작품들까지 빠짐없이 섭렵한다. 책에 실린 사진과 그림은 파리지앵인 저자가 파리의 구석구석을 걸으며 직접 찍은 기록의 산물이어서 어디선가 본 듯한, 그러나 사실 처음 보는 것들이다. 저자의 욕심은 파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파리만 보기 아쉬운 독자들을 위해 RER(파리외곽철도)선을 타고 ‘인상파의 길’이나 세잔과 고흐의 마을 ‘오베르쉬르와즈’, 17세기 프랑스를 느낄 수 있는 베르사유궁, 1300년 동안 계속되는 순례자들의 성지 ‘몽생미셸’로 떠나는 짧은 여행도 소개한다.

“불문학자이자 번역가인 이재형의 프랑스는 지도 위에 있는 유럽의 한 나라만이 아니다. 깊이 있고 세밀하게 추적된 프랑스 역사와 문화에 관한 관심은 그가 오랫동안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문화와 예술의 현장을 답사하며 직접 촬영한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전달된다.” 문화평론가 하재봉의 추천평이다.

 


 

이 책은 모두 6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파리의 가장 높은 곳 몽마르트르에서 피어난 인상주의」, 2장 「걷는 사람만이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야외 예술 작품들」, 3장 「빛이 색채가 되고 주인공이 되다 오르세 미술관 속으로」, 4장 「역사 속 이야기가 예술로 승화되다 루브르 미술관 속으로」, 5장 「조금 더 사적인 공간으로」, 6장 「파리만 보기 아쉬운 여행자를 위해」로 구성돼 있다. 저자는 1장에서 우리가 잘 아는 몽마르트에 대한 역사부터 더듬어 속속들이 세밀한 곳까지 찬찬히 살펴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몽마르트 언덕은 과수원과 포도밭(이 포도밭 일부가 북쪽 언덕에 남아 있다), 초가집, 40여 개의 풍차 방앗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당시 몽마르트는 아직 파리가 아니었고(파리로 편입된 것은 1860년의 일이다), 638명에 불과한 주민은 주로 방앗간 주인이나 몽마르트 지하에 매장되어 있던 석고 광산의 노동자들이었다. 집세가 싼 탓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몰렸다는 점을 설명한다. 가장 먼저 '인상파 화가들'있다. 그들의 미학적 원칙은 '자연'을 그리는 것이었다. 마치 눈에 잡힐 듯 섬세하고 세밀한 숫자까지 파악해 여기에 적은 이유는 저자의 이 책을 쓰기 위한 열정을 말해주는 듯하다.

"세입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피카소다. 월세가 15프랑이었던 이 건물에 들어오기 전부터 피카소는 이미 몽마르트르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삶이 전기를 이룬 것은 바로 세탁선에서다. 그는 여기서 페르낭드 올리비에를 만나 7년간 함께 살았다. 이들의 살림살이는 간단했다. 트렁크 하나, 침대 하나, 냄비 하나, 의자 하나, 책상 하나, 이젤, 붓. (…) 피카소는 1907년 여기서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그림으로써 입체파 미술운동의 시작을 알렸다."(p.16~17)

 


 

파리가 예술의 도시로서 만남과 사랑, 그리고 낭만의 도시였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리는 쇼팽에 대해서 몇 페이지를 할애해 소개한다. 세기의 연인으로 유명하고 파리를 떠들썩하게 했던 쇼팽과 상드 조루주의 만남부터 그들이 연인이었던 동안 쇼팽이 작곡한 〈발라드 2번〉 등에 대한 설명도 곁들인다. 쇼팽의 건강 상태가 나빠져 두 사람이 마요르카섬으로 간 사실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마요르카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추운 데다 비가 자주 내려서 산책조차 할 수가 없었던 두 연인은 다시 파리로 돌아와 〈전주곡, Op. 28, No 15〉를 작곡했다. 두 연인은 어쩔 수 없이 파리로 돌아온 후 몽마르트 남쪽의 누벨아테네 동네에 자리 잡았다.

들라크루아와 베를리오즈, 리스트, 마리 다구, 으젠 수, 성악가 플린 비아르도가 두 사람이 사는 오를레앙 광장으로 찾아왔다. 교유하며 지내는 유명한 예술가들의 이름이 열거된다. 근처 샵탈 거리에 사는 네덜란드 출신 화가 아리 쉐퍼(그가 살던 집은 지금 낭만생활 미술관으로 변했다)나 첼리스트 오귀스트 프랑스옴므도 자주 놀러왔다. 이 첼리스트를 위해 작곡한 것이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이다. 쇼팽이 실내악곡을 작곡한 것은 드문 일이라고 한다. 이밖에 르누아르 등 거장들의 이름이 나오고, 그가 그린 그림이 파리의 풍경과 파리 시민의 삶의 모습이었다는 것도 자연스럽고 필연적이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들 거장과 예술가들이 당시 어떻게 생활했고, 어떤 사람들이 당시에 파리 몽마르트에 살았는지 그 흔적을 일일이 찾아 소개할 정도로 몽마르트에 대해 섬세한 표현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책 한 권에 파리와 인근 주변에 대한 소개하는데 너무 많은 예술가들의 이름이 나오고, 독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명화들이 책 속에 각 페이지를 장식할 정도로 많아 파리가 예술의 도시라고 불릴 만한 충분한 자격과 역사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하는 '로댕 미술관' 소개는 인상적이다. 사실 로댕에 대해서는 어려을 적 독자가 교과서에서 보고 배운 로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로댕이 40세가 되던 1880년, 브뤼셀에서 〈청동시대〉를 전시하여 조각가로서 인정을 받고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 작품을 사들이는 한편 로댕에게 불에 타 없어진 감사원 건물 자리에 들어서게 될 장식미술관의 청동 문을 주문했다. 로댕은 단테가 쓴 『신곡』의 지옥 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이 문에 등장시키기로 했다. 그러나 1887년 이 주문은 취소되었다. 책에 따르면 로댕은 실망하지 않고 영원토록 지옥에서 고통받아야 하는 인간 300명을 자신의 〈지옥문〉에 조각하게 된다. 〈지옥문〉의 맨 꼭대기에 있는 세 유령은 〈유령들〉이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영혼들은 지옥의 입구에서 "여기에 들어온 당신,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라는 글을 가리키고 있다.

"합각머리 삼각 면에 조각된 인물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생각하는 단테다. 이 작품은 처음에는 ‘시인’이라고 불리다가 나중에 〈생각하는 사람〉으로 다시 이름 붙여졌다. 로댕이 〈지옥문〉에서 떼어내 동명의 독립적인 작품으로 만든 〈생각하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 작품이 되었다."(p.273~274)

 


 

이 책 저자는 〈고흐의 마지막을 함께한 사람들〉이란 마지막 제목에서 고흐의 천재적 생각과 그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 고흐를 잘 아는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그림은 독자의 가슴에도 영원히 남을 만한 에피소드와 함께 소개된다. 정신병원을 나와 파리에 들른 반 고흐는 동생 테오 집에서 지내다가 사흘 뒤인 5월 21일 오베르쉬르와즈로 갔다. 이곳에 도착한 그는 하루 방값이 3프랑 50상팀인 '라부 여관'에 자리를 잡았다. 여관 주인은 꼭 필요한 가구만 갖추어진 지붕 밑 방을 그에게 내주었다. (중략) 반 고흐의 행복한 시절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힘들었던 걸 다 잊고 즐거운 마음으로 종일 그림만 그렸다(두 달 동안 무려 일흔다섯 점의 그림을 그렸다). 거의 매일 저녁 가세 박사(정신과 의사)를 찾아갔고, 가세 박사와 그의 딸은 식사하로 가라며 반 고흐를 붙잡았다. 그러다가 7월 초, 모든 것이 무너져버렸다. 형의 뒤를 돌보아 주던 테오의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데다 화랑에서 일하기도 쉽지 않다는 말을 털어놓았다. 이때부터 툭하면 화를 내는 등 정신상태가 불안해졌다. 가세 박사와도 말다툼이 있었고 사이마저 틀어졌다. 그리고 며칠이 흘렀다. 그림을 그리다 고흐는 권총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 페이지에 실린 그림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거의 다 그린 무렵이었다.

 

저자 : 이재형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원대학교, 상명여자대학교 강사를 지냈다. 우리에게 생소했던 프랑스 소설의 세계를 소개해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많은 작품들을 번역했으며, 지금은 프랑스에 머물면서 프랑스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세상의 용도』 『부엔 까미노』 『어느 하녀의 일기』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꾸뻬 씨의 시간 여행』 『꾸뻬 씨의 사랑 여행』 『마르셀의 여름 1, 2』 『사막의 정원사 무싸』 『카트린 드 메디치』 『장미와 에델바이스』 『이중설계』 『시티 오브 조이』 『조르주 바타유의 눈 이야기』 『레이스 뜨는 여자』 『정원으로 가는 길』 『프로이트: 그의 생애와 사상』 『사회계약론』 『법의 정신』 『군중심리』 『사회계약론』 『패자의 기억』 『최후의 성 말빌』 『세월의 거품』 『밤의 노예』 『지구는 우리의 조국』 『마법의 백과사전』 『말빌』 『신혼여행』 『어느 나무의 일기』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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