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너머로, 지맥(GEMAC) 그래비티 픽션 Gravity Fiction, GF 시리즈 20
전윤호 지음 / 그래비티북스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 『경계 너머로, GEMAC』은 작가 전윤호가 탄생시킨 IT 테크노스릴러 하드 SF다. 전작 『모두 고양이를 봤다』에 이은 두 번째 장편 하드 SF 작품이다. 30여 년간 IT 분야에서 기술 개발에 매진한 저자의 이력은 이 작품 속에서도 치밀하고 정교한 과학적 디테일로 구현되어 이 작품을 하드 SF의 교과서적인 작품으로 완성시켰다. 이 작품은 이미 진화된 과학기술을 인간과 가장 유사한 영장류인 침팬지에게 적용해 증강동물을 만들어내고, 그 증강동물을 인간의 탐욕으로 이용하고 희생시키려는 세력과 그에 반해 지맥을 인류의 동반자로 인정하고 인간 외의 생명체를 존중하려는 주인공들의 싸움을 그리고 있다.

저자 전윤호는 인간의 오만함과 더불어 인간이 지구를 공유하고 있는 다른 존재들과 어떤 방식으로 공존하고 공생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서술함에도 저자는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한 암호와 같은 과학기술을 나열하지 않는다. 작품 속 IT 기술은 그 디테일이 오히려 생생하고 정교하여, 전문기술을 기반으로 했음에도 독자가 힘들여 암호 해독하듯 풀어낼 필요가 없다. 뛰어난 필력으로 휘몰아치는 사건을 뒤쫓아 달리다 보면, 어느새 주인공들과 함께 BCI(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을 받아들이고 작품 속에 스며들어 있음을 자각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 등장인물인 '지맥(GEMAC)'은 침팬지를 유전적으로 개량하고 컴퓨터로 지능을 보완한 증강동물을 일컫는 말이다. 동물은 인간의 기술에 힘입어 집단지성 혹은 집단사고를 발전시킨다. 그리고 그 집단 사고의 네트워크에 인간도 합류하는 설정이다. 독특하지만 인공 지능이 개발된 현시점에서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텔리전스'라는 회사는 수십 년간 투자가 이루어진 AI와 로봇기술이 한계를 가지고, 그동안의 성과가 기대에 못 미쳤기에 유인원의 두뇌를 활용하고 부족한 부분을 컴퓨터로 보완하는 방식이 낫다고 확신한다. 지맥은 이런 인간을 대신해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인데, 동물권에 관해서는 인류는 예로부터 동물을 개량하고 이용해왔는데, 멸종할 침팬지를 개량하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이라 주장한다. 소설에서 그려내는 미래 사회의 모습은 조금 암담하다. 사람들은 조류독감 변종 바이러스로 인해 한자리에 모이지 못하고, 감염을 우려해 창문을 닫고 생활해야하며 외출 시에는 전신 방호복을 착용해야한다.

최악의 전염병이 발생한 상황에서 신텔리전스는 평택 단지에 방호복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그곳은 모든 생활 기반시설을 내부에 갖춘 복합 단지였는데, 가장 큰 구역인 도두 공원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한다. 어려운 설정이나 용어로 이해가 더디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독자의 기우였다. 소설은 몰입도가 높았고, 읽을수록 흥미진진했다. 다만, 소설 속에 그려진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저 책 속의 상상으로만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평택항 전경(사진 출처 : 평택시)

지리적 배경은 평택이다. 시대적으로는 가까운 미래 2040년대다. 이는 '신텔리전스'라는 회사의 CEO인 류현규가 보내는 공문에 2040년, 2049년 등으로 표기돼 정확하게 나온다. 즉, 이 소설은 2040년대 대한민국 평택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때쯤은 대기오염이 심해질 것이고, 기후변화도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진 것으로 묘사된다. 평택복합단지는 이에 대비해 새로 조성된 미래도시이다. 평택항과 미군 주둔기지가 있었던 곳이어서 여러가지를 감안해 미래형 복합단지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중국과 마주하고 있는 곳잉어서 저자가 구상한 소설의 배경으로 알맞은 곳이었을 것으로 추정 가능하다.

이곳의 분위기는 미래복합단지지만 암울하게 그려진다. 중국은 2020년 현재 인공비 기술을 확보했고, 선진국이라 일컫는 유럽과 미국 등은 기온이 최고 섭씨 50도에 육박할 정도로 이상 기후가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라 이 같은 설정이 2020년대 시도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러나 기후는 인간이 살기에는 적절한 온도가 따로 있으니 이 기온이 넘어가거나 밑으로 내려가도 거주하기가 힘들 것이라는 것은 지금도 예측되는 일이라 복합단지 조성은 불가피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만일 더우면 끝없이 덥고 추우면 끝없이 추운 날씨가 계속되어 우리나라의 경우 봄, 가을이 없어진다면 '사계'란 개념도 사라진 상황인 것 같다. 이 책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저자의 전작 『모두 고양이를 봤다』를 읽지 못한 독자로서는 궁금증과 기대감이 더 커진다.

 


 

독자는 사실 GEMAC(지맥)이 표제어에 등장하는 순간, SF소설이니만큼 미래시대 등장할 용어란 것을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몰라서 혹시 우주대탐험이나 우주를 무대로 펼쳐지는 싸움인 줄로 생각했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지맥은 유인원(침팬지 등)을 유전적으로 개량하고, 인공 지능을 보완한 증강동물를 가리킨다. 즉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유인원 무리다. 로봇인데 생체기능을 갖고 있는 것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숫자로 번호가 매겨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완전한 인간에는 이르지 못한 것인 만큼 지맥들을 훈련시키는 인간 조련사들이 나온다. 지맥은 어느 조련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역할이 달라질 것이라는 건 쉽게 추정 가능하다. 인공지능과 증강현상을 이해하고 있다면 소설 읽기는 무리가 없다. 아쉬운 점은 독자가 아직 완전히 디지털 문화에 익숙지 못한 아날로그 세대여서 독서와 이해애 다소 장애가 있지만 소설로 읽기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사람과 지맥은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이 있다. 사건이나 사고 등 문제가 발생하기 전과 후의 한정적인 부분만 볼 수 있는 반면 지맥은 어떤 지점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조련사 준우에게 보고할 정도로 짧막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태다. 즉 준우에게 짧막한 명령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준우가 민호 쪽으로 달려가려는 순간, 큰 손이 그의 팔을 움켜쥐고 강한 힘으로 잡아끌었다. 지맥 87이었다.

위험

“나도 알아!”

87의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87은 쉽사리 놔주지 않았다. 그 순간 온 사방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구조물과 솟아오르는 흙먼지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맥들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콜록거렸고 페이스 실드는 필터의 성능이 저하되었다는 경고를 울렸다. 눈앞을 가리는 먼지와 귀가 먹먹해지는 굉음 속에서 그들은 함께 엎드려 머리를 싸맸다. 돔의 구조물이 이미 떨어졌던 곳에는 다시 떨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며 두려움 속에 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p.15)

 


 

아직 초기 단계인 인공 지능이나 증강현실 등이 더욱 발전되리라고는 지금도 가능한 예상이다. 특히 이번 코로나19가 더 빠른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들어가게 한 추진력을 불어넣었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금도 인간의 이동에 제한이 따르고 전쟁을 치르는 등 개인간 이해 충돌, 국가간 이해 충돌 현상은 계속될 것으로 보여 이런 돔 형태의 복합단지가 들어서게 되리라는 것은 어렸을 때 본 '공상만화'에도 나온 것 아닌가. 그때는 단지 상상과 공상이라고 생각했을 뿐이고, 지금이 현실성 있는 이야기로 들린다. 작품에 대한 몰입도가 커지는 이유다. '비대면'이란 단어가 코로나19 이후 활성화됐듯이 어쩌면 2040년대 우리 현실은 돔 속에 인간들끼지 부딪치며 소통하고, 만나서 정을 나누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현 시대에 생각하면 가능한 복합단지 형성은 그 자체로 암울한 미래를 엿보게 하는 것이다.

이 소설 『경계 너머로, 지맥(GEMAC)』에서 '증강 쥐'가 나타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고, 당장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일 수 있다. 즉 소설의 현실감과 사실성을 높여주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돔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행한다. 그 원인은 증강 쥐일 수 있다는 점이다. 증강 쥐는 인간이 만든 지맥과과 흡사한 쥐 아바타 역할을 한 것이다. 다만 독자의 증강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인지 증강 쥐가 우연히, 혹은 증강동물의 다른 종에 의해 나타난 것인지,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만일 인간이 만들어낸 쥐가 아닌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 증강 쥐라면 돔이나 복합단지, 방역, 천체 우주 등의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우리 앞에 수많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자연히 발생한다는 사실은 어쩌면 우리가 신앙보다 더 굳게 믿는 '과학'이 무너지는 단계로까지 갈 수도 있을 것이란 새로운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한다. 인간이 스스로를 편리하게 이용하기 위해 발전시켜 온 과학이 인간을 이롭게 하지만 해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예가 될 수도 있어 두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독자 같은 문외한을 위해 박상준 서울SF아카데미 대표가 '서평'을 책 뒷 부분에 남겨 독서에 많은 도움이 된다. 이에 따르면 더 이상 인간은 절대적 기준이 아니며, 동물은 인간의 기술에 힘입어 집단지성 혹은 집단사고를 발전시킨다. 그리고 그 집단사고의 네트워크에는 인간도 합류한다. 이러한 설정에서 엿보이는 새로운 사회윤리적 상상력의 다층적 가능성, 그 입체적 가능성을 치밀하고 설득력 있게 형상화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진가는 충분히 입증된다. 기존 비슷한 SF 작품과 다른, 이 작품의 미덕은 동물(유인원)의 개조라는 민감한 주제를 내용 전체에 관통시키며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동물권을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논란이 될 수 있는 설정임을 작가는 당연히 잘 인식하고 있다. 이미 인류는 오래 전부터 동물들을 여러 용도로 이용하고 개량해 왔으며 '지맥'도 맹도견이나 수색견과 사실상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두뇌가 컴퓨터로 연결되었다 해서 강제로 조종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인간 조련사가 지맥의 생각과 감정을 읽고 적절한 행동 지침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중략)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은 작품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유지되는 탄탄한 디테일 묘사다. 단순히 이론이나 신기술을 나열하는 차원이 아니라 각각의 요소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정합성을 형성하여 상황이나 설정에 대한 설득력을 극대화한다. 하드 SF로서 거의 교과서적인 모범을 보인다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며 덕분에 작품에 대한 몰입이 수월하다. 의외로 많은 SF들이 별로 성공하지 못한 부분이다.

 


 

 

최 형사는 평택 단지에 관한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SF 영화에서 본 도시 전체를 덮는 거대하고 매끈한 유리 돔을 상상했었다. 완공된 단지는 그 기대에는 못 미쳤으나 그래도 대단한 장관이었고, 실내에 갇혀 지내는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동경하는 장소가 되었다. 단지의 인공 환경은 바이러스와 미세먼지를 차단할 뿐만 아니라 1년 내내 쾌적한 온도와 습도, 조도를 유지했다. 회사 시설과 직원 사택을 제외한 주거 공간은 일반인들에게 경매로 분양되었고 낙찰된 가격은 평택 단지를 다시 한번 기네스북에 등재시켰다.(p.30)

 

“다들 꼼짝 마. 경찰이다. 무기 버려.”

뒤에서 소리가 났다. 동시에 여자가 준우를 잡아채 머리에 총구를 갖다 댔다.

“물러나! 안 그러면 이 녀석 머리에 기생충 대신 총알이 박힐 거야!”

다른 남자도 어느새 총을 꺼내 유진에게 겨누고 있었다. 다가오던 경찰특공대가 멈춰 섰다. 준우는 하얗게 질린 유진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 알파 팀에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 | 미안(p.178)

 

저자 : 전윤호

 

서울대학교에서 전기컴퓨터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30여 년간 IT 분야에서 기술 개발에 매진하다가 2019년부터 SF를 쓰기 시작했다.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소프트웨어융합대학 산학교수로 재직중이다.2020년 과학스토리텔러 1기 당선작품집 《페트로글리프》에 SF 단편 〈노인과 지맥〉이 수록되었고, 2020년 장편 SF 소설 《모두 고양이를 봤다》를 출간하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