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해하려는 치열한 노력, 세상이치 - 고대 그리스철학부터 현대입자물리까지, 단 한 권에 펼쳐지는 지혜
김동희 지음 / 빚은책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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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과학은 인류 문명 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는 학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지식으로는 철학과 과학은 완전 서로 다른 분야일 뿐 아니라 유기적 관련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독자가 철학이나 과학 공부를 전문적으로 해본 적이 없는 탓에 '무지(無知)'한 탓이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 『세상이치-세상을 이해하려는 치열한 노력』을 읽으면 기존 상식과 독자의 지식을 완전 뒤바꿔 놓는다. 조금이라도 철학·과학 공부를 위해 선택한 책에서 보기 좋게 '무지'만 드러낸 꼴이다. 저자 김동희는 미국의 시카고 대학에서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최첨단 과학의 시대에 철학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는 독자에게 선입견을 빨리 지울 것을 요청한다. 현대 물리학에 정통한 분이 하는 말씀이니만큼 허투로 하는 말은 아닐 듯하다. 저자는 철학자들의 말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사유가 없었다면 현대과학이 탄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런 면에서 철학자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는지를 이해하고 알아내는 것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매우 소중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철학자들 역시 세상을 이해하려 치열하게 노력했고, 그 덕분에 세상을 새롭게 바꿀 수 있었다는 것. 즉, 철학자들의 시선과 노력을 따라가다가 관찰과 실험이 발달한 덕분에 ‘과학’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고대그리스 철학자부터 현대입자물리 과학자들까지,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려 노력했는지,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시선도 바뀌게 되고, 자연스럽게 결국 우리의 삶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게 될 것이란 논리다. 저자의 집필 이유이다.

 


 

저자는 '머리말'을 통해 "세상 이치를 알려면 우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인간과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를 생각해야 한다"고 전제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과 자연에 관한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고자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개발한 사람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우리가 인지하든 하지 않은 그들의 사유가 인류 사회의 문명을 이끌어온 것이 사실이다. 저자의 주장과 논리는 설득력을 갖는다. 세상을 이해하는 건 일상생할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일 수도 있지만, 깊이 있는 이성이나 관찰로 이루어낸 성과를 통해 세상을 보는 방법일 수도 있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이성의 깊이를 논하는 면에서 철학과 물리학만큼 좋은 주제는 없다. 이 책은 철학과 물리학의 관점에서 세상을 이해하려고 치열하게 노력한 방식을 말하는 책이다. 철학이나 물리학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그렇다고 물리학과 철학의 내용만 획일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철학과 물리학의 관계에 접근하고 있지만 철학과 과학의 공통점을 설명할 뿐 한묶음으로 묶어도 될 만큼의 논리는 안 되어 보인다.

저자도 철학과 물리학은 각각 인문학과 자연과학에 속해 있어 다른 분야를 탐구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이 수행하는 탐구는 자연이든 사회이든, 그 속에서 가장 근원적인 의문을 풀려 한다는 점에서 두 학문은 같다고 말한다. 이 점이 철학과 물리학을 한데 묶어 탐구하는 타당성을 확인시켜 줄까? 워낙 과학과 철학에 문외한인 독자가 쉽게 이해하지 못함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또 저자가 제시하는 아인슈타인은 대학 시절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나 흄의 『인간오성론』을 즐겨 읽었다는 사실 역시 독자를 이해시키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저자는 아인슈타인이 훗날 그의 상대성이론을 정립하는 사고 실험을 수행할 때 철학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회고했다는 사실을 내놓는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얘기하는 측면에서 보면 철학과 물리학만큼 좋은 소재가 없다는 게 저자의 논지(論旨)다.

 

 

더욱이 저자는 물리학과 철학은 원래 별개의 학문이 아니었음을 말한다. 세상의 진실을 파악하는 것은 곧 자연과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자연의 근본적 법칙이나 인간 사회가 어떤 구조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내놓는 과정이 바로 고대철학이었다. 고대 그리스 사상가들은 자연과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깊은 사유를 선택했다. 그들의 사유는 철학과 물리학을 포함한다. 오늘날 두 학문으로 분리되었지언정 세상의 진실을 파악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서는 같은 선상에 있다는 말이다. 깔끔한 설명은 독자에게 신세계를 펼쳐준다. 아, 그렇구나,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세상과 인간, 자연을 위해 진실을 파악하려고 그렇게 치열한 노력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목숨까지 바친 소크라테스, 제자 플라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까지 모두가 치열한 노력 없이 세상의 이치나 자연의 진실 등을 그렇게 탐구하고 밝혀내려 했구나 하는 깨달음에 이른다.

그런 점에서 철학과 물리학은 방법의 차이일 뿐 모든 세상의 진리를 추구하려 한 것이다. 특히 저자는 고대나 근대, 현대 인간의 사고 능력은 비슷하다고 확신한다. 그렇지, 독자도 한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고대에나 지금에나 인간 지능과 기타 능력의 차이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다만 과학적 지식이 누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대 과학이 이루어낸 결과를 생각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이젠 독자도 저자의 설명에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없어졌다. 현대 물리학자가 주장하는 바를 부정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의문을 제기했던 것은 아무리 이 책을 읽어도 가설이 잘못되면 이해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양해를 바란다. 누가 뭐래도 최첨단 과학의 시대다. 3나노 공정의 반도체가 곧 나온다는 미시 세계의 뉴스가 전해지는가 하면, 제임스웹 망원경 뉴스는 수백 광년의 우주를 논한다. 과연 고대 철학이 현대과학에 어떤 기여가 있었는지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며 배운다.

 


 

이 책은 모두 10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의 제목과 부제를 열거해 본다. 이는 한눈에 여기에 등장하는 철학자들과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연대순 배열로 현대물리학에 이르는 관계와 맥락을 이해하기 쉽게 하도록 저자의 의도적인 배려로 보인다. 1장 「플라톤-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상(이데아)이 있다」, 2장 「아리스토텔레스-세상은 목적을 가지고 움직인다」, 3장 「갈릴레이-정확한 실험으로 세상을 설명할 수 있다」, 4장 「데카르트-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로부터 세상은 설명된다」, 5장 「뉴턴-만유인력이라는 법칙으로 세상을 예측할 수 있다」, 6장 「칸트-세상은 내가 인식한 것으로만 판단할 수 있다」, 7장 「헤겔-정반합의 원리에 따라 세상은 끊임없이 발전한다」, 8장 「아인슈타인-시공간도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변형된다」, 9장 「양자물리학-세상은 확정적이 아니라 확률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10장 「현대입자물리-세상은 이상적 입자간의 에너지 교환일 뿐이다」라는 제목과 부제를 붙였다. 제목과 부제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1~8장의 제목은 철학자·과학자의 이름이고, 9~10장은 물리학의 이름이다.

저자는 현대에 세워진 '양자물리학'과 '현대입자물리학'은 한 과학자가 이론을 확립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공통적으로 주장을 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또 부제에 달린 단어들은 대체적으로 '세상'에 대한 설명의 노력이고, 인식하고 발전해온 변화와 확정된 '설(說)'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플라톤」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그의 스승이자 '서양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소크라테스가 저서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읽은 대부분의 소크라테스의 저서들은 모두 그의 제자 플라톤이 그의 가르침이나 '대화' 중의 '말'이다. 플라톤이 저서를 펴낼 때 이같이 밝힌 데다 저자의 이름을 소크라테스로 분명히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플라톤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세상의 이면에는 이에 대응하는, 불변이고 영원한 원본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를 '이데아'라고 명명했다는 저자의 설명이다. 이데아는 '외적 현상의 이면에 숨어 있는 참된 것'이라는 뜻이라는 사실도 독자는 이제 확실히 알게 됐다.

 


 

책에 따르면 처음에 이데아는 도덕이나 가치와 같은, 정신적 측면과 관련된 단어였다. 하지만 사유가 발전하면서 그 범위가 확장돼 종국에는 사물에까지 적용됐다. 플라톤은 이데아는 사물이 존재하는 근거이기 때문에 모든 사물은 각각의 이데아가 있다고 주장했다. 각각의 이데아는 고유의 본성을 지닌 체계이지만 서로 흩어져 고립돼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고 있다. 이데아는 유사한 분륭 형태에 묶여 있고 계층을 이룬다. 동물은 동물의 이데아에 종속되고 동물 이데아는 다시 유기체라는 더 큰 속성의 이데아에 종속된다. 사물 이데아가 맨 아래층에 속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추상적인 것의 이데아가 있다. 층의 최상위에 위치하는 이데아는 선의 이데아다. 선의 이데아는 모든 이데아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목표라고 플라톤은 보았다.

이는 현대물리학의 최후 단계인 입자물리학과 선이 닿은 것일까. 저자가 유독 플라톤의 이데아를 강조하는 것은 결국 철학과 과학이 추구하는 목표는 같다는 주장을 했기 때문에 유기적 관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독자는 생각해본다. 독자의 지식의 범위를 엄청나게 벗어나는 잘못된 인식이기를 바라지만. 저자는 모든 만물은 이상을 추구한다고 본다. 하위 이데아는 상위 이데아를 추구한다. 가장 상위에 있는 선은 추구되어야 하는 것으로 모든 존재의 행동 목표이며 역으로 모든 존재를 행동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최고의 이데아로서 선은 또 다른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족한 것이고 완전한 것이다. 그래서 선의 이데아는 인식의 유일한 대상이요 모든 존재의 근거일 뿐 아니라 모든 사물이 나아갈 목표로서 가치의 궁극적 기준이 된다. 플라톤은 선의 이데아를 세상을 설명하는 '통일 법칙'으로 규정하였다. 철학과 과학을 오가는 저자의 모두 이해되지 않는 독자로서는 자책만 앞선다. 그러나 배우고 탐구하려 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는 희망도 남아 있다.

 


 

앞서 언급한 이데아와 현대입자물리학의 연계성을 위해서도 이 서평은 마지막 장인 「현대물리입자」의 장으로 넘어간다. 현대입자물리의 세계를 보여주는 이 장은 디렉, 파인만, 겔만, 와인버그 등 4명의 과학자와 그들의 이론에 힘입어 진전되어 가는 가장 최근의 물리학이다. 이 과학자들은 '세상은 이상적 입자 간의 에너지 교환일 뿐이다'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 같다. 저자는 이들의 주장이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세상은 아주 작은 무엇인가로 되어 있고, 그것들은 관찰할 수 없지만 수학적으로 완벽하다"고 말한다. '양자역학'은 자연을 설명하는 확실한 수학적 방법으로 인정받았다고 말한다.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의 연장선에서 물질을 구성하는 궁극적 기본 단위와 이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를 밝혀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상대성이론이 심오한 원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양자물리학은 관찰 결과를 어떻게든 방정식으로 풀어내려는 많은 뛰어난 물리학자의 치열한 노력 끝에 탄생했다.

과정은 복잡했고 안정적인 물리 체계를 정립하는 데까지 30여 년의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므로 양자물리학은 어느 한 물리학자가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 현대입자물리학은 물질과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와 같은 근볹거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다.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를 알아내고 이들이 어떻게 상호 반응하는지 그 전모를 밝혀내고 있다. 실험적 발견과 이론적 해석으로 기본입자와 힘에 관한 이해가 상당히 진전되었다. 우주의 운동을 지배하는 기본 힘은 우리가 알고 있는 '중력'과 '전자기력' 외에 20세게 들어 발견된 '강력'과 '약력'이 있다. 전자와 양성자 간의 전기력이 원자를 구성케 하지만 핵 안의 양성자와 중성자가 단단히 뭉쳐 있도록 하는 힘은 강력이다. 또한 방사성 원소가 안정화 과정을 거치게 하는 힘은 약력이다. 중력을 제외한 세 힘을 통합하는 통일장 이론을 구축하는 것이 입자물리학의 목표다. 입자물리학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적 사변이 창출된 지 2600여 년 만에 만물을 설명하는 실제 이론에 다가서고 있다.

 


 

이성적으로 무엇을 논증하고 탐구하는 관점에서 보면 철학과 물리학은 동일선상에 있다. 인간의 근본적인 호기심을 해결한다는 면에서 철학과 물리학은 구분이 안될 만큼 모호하다는 생각이 책을 완성해가면서 더욱 짙어졌다. 두 학문은 각기 서로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이해하려 했을 뿐이다. 더군다나 우리가 사는 21세게에 두 학문의 경계는 그다지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 (중략) 19세기 말부터 눈에 띄게 지식이 증가했다. 가히 기하급수적이라 할 만하다. 지식은 학문이 세분화하면서 더욱 방대해졌다. 그렇다고 지식이 계속 이런 속도로 팽창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알아내면 알아낼수록 또 다른 새로운 지식을 알아내는 작업은 그만큼 어려워졌고 점점 더 많은 인력이 피료해졌다. 그뿐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요구하낟. 오늘날 학문은 더욱 정교하고 전문적이 되었다. 물리학 분야를 예로 들면 세부 분야가 20개가 넘고 이들 각각은 상호 관계를 찾기 어려울 만큼 전문적이다. 그러나 인간이 이성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감성 또한 이성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다. 이성과 감성 말고 감정 또한 있다.(p.254~255, 「맺음말」 중에서)

 

저자 : 김동희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 대학에서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FNAL)의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현재 경북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이다. FNAL의 객원교수를 지냈다. FNAL과 유럽의 입자물리연구소(CERN) 실험의 강입자 충돌 물리학 전문가이다. 새로운 게이지 보존, 초대칭 입자 및 암흑물질 등 새로운 물리 현상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과학의 대중화와 철학에 많은 관심이 있다. 저서로는 ‘톱쿼크 사냥’(민음사, 1996), ‘바벨탑의 힉스사냥꾼’(사이언스북스, 2014)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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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핑크 후회의 재발견 - 더 나은 나를 만드는, 가장 불쾌한 감정의 힘에 대하여
다니엘 핑크 지음, 김명철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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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책을 읽다보면 가끔 우리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이나 상황 등을 가리키는 단어에 주목한 예를 볼 수 있다. 작가들은 그 단어를 집중 탐구해 의미를 구현해내고, 때로는 새로운 뜻을 부여하기도 한다. 단어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단어의 새로운 의미를 추출해내는 것이다. 이 책 『후회의 재발견』은 '후회'에 대한 관점을 갖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후회를 하면서 산다. 거짓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자체가 거짓말이듯이, 후회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말은 앞으로 더 많은 후회를 하게 될 것이라는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독자는 물론 저자도 살면서 후회를 했을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도 후회할 일이 있을 것이다. 독자는 '후회'라는 말을 들으면 어렸을 적 배웠던 '주자십회'가 먼저 떠오른다. 주자십회는 독자들도 아다시피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하기 쉬운 후회 가운데, 열 가지 '해서는 안 될 후회'를 이른다. 중국 송대(宋代)의 유학자 주자가 제시한 올바른 삶을 가르치는 말이다.

첫 번째 등장하는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는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뒤에 뉘우친다는 의미다. 돌아가시고 나면 후회해도 이미 늦으니, 살아 계실 때 효도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또 기억나는 부분은 '소불근학노후회(少不勤學老後悔)'으로 젊어서 부지런히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뉘우친다는 뜻이다. 젊음은 오래 가지 않고 배우기는 어려우니, 젊을 때 부지런히 배워야 한다는 가르침을 위해 한 말이다. 나머지 여덟 가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재산이 풍족할 때 아껴쓰지 않으면 가난해진 뒤에 뉘우친다는 말과 술에 취해 망령된 말을 하고 술 깬 뒤에 뉘우친다 등으로 일상 생활에서 조심해야 할 것 등을 가르치는 말들로 기억된다. 다른 말은 들어가지 않더라도 독자는 앞서 언급한 원문까지 기억하고 있는 두 가지마저 지키지 못해 늘 후회하고 다시금 새로운 마음으로 생활해왔다. 왜 그랬을까? 다른 사람들도 그런 것인가?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지나친 죄책감을 갖거나 다시 되풀이될 것을 미리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확신하게 해준다.

 


 

이 책은 세계적인 미래학자이자 비즈니스 사상가로 시대를 선도해온 다니엘 핑크의 신작이다. 4년 만의 일이다. 이 책에서 그가 새롭게 던진 화두는 인간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감정, ‘후회’다. 오랜 시간 비즈니스 사상가로 활동하며 동기부여·설득·타이밍과 같은 냉철한 주제를 다뤄온 저자가, 감정의 힘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며 인간에 대한 이해에 깊이를 더했다. 이 책은 부제를 통해 후회가 「더 나은 나를 만드는, 가장 불쾌한 감정의 힘」이라는 말로 정의한다. 다니엘 핑크는 〈아니,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로 유명한 샹송의 여왕 에디트 피아프의 후회 가득한 삶과 ‘후회하지 않는다(No Regrets)’는 문신을 새긴 각국 젊은이들의 후회 사연으로 포문을 열며 우리가 후회라는 감정에 대해 얼마나 착각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루어진 심리학·신경과학·경제학 분야의 후회 연구를 총망라하고 저자가 직접 진행한 두 가지 프로젝트 결과를 더해 인간의 ‘네 가지 핵심 후회’를 밝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다니엘 핑크는 후회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이며 인간이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열쇠임을 설명한다. 후회하는 능력은 고등동물만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특권이다. 이 능력 덕분에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뛰어난 존재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후회는 피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최적화’시켜 활용해야 하는 감정이다. 우리는 어제의 내가 맞닥뜨린 후회를 발판으로 오늘의 나를 만들어왔다. 내일의 나도 그러할 것이다. 이 책은 스스로를 업그레이드시켜온 인류의 놀라온 능력에 대한 과학적 증거이자, 두려움 없이 후회하고 기꺼이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가자는 희망찬 제언이다.

 


 

앞서 고백했듯이 독자의 후회는 왜 늘 일회성으로 끝나고 다시 반복 행동으로 더 큰 후회를 하는 일을 반복할까? 이 책을 읽고자 하는 이유이다. 저자는 우선 후회하지 않고 살겠다는 말은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후회 없이 살겠다고요? 그건 헛소리예요.” 모두가 후회 없는 인생을 꿈꾼다. 과거는 쿨하게 떨쳐버리고 ‘후회는 없다’며 나아가는 강한 멘탈의 소유자가 되고 싶어 한다. 저자 다니엘 핑크는 이 책을 통해, 후회는 인간의 두 가지 독특한 능력에서 시작된다고 언급한다. 첫째, 우리에겐 머릿속으로 과거와 미래를 방문할 수 있는 ‘시간여행’ 능력이 있다. 둘째, 우리에겐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능력이 있다. 이 두 가지 능력이 만날 때 후회라는 놀라운 현상이 일어난다. 과거로 돌아가 실제 일어났던 일을 부인하고 다른 선택을 해본 후, 다시 현재로 돌아와 과거가 바뀔 경우 지금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이건 거의 초능력에 가까운 힘이다. 해파리가 작곡을 하거나 너구리가 전기 공사를 하는 걸 상상하기 어려운 것처럼, 인간 외의 다른 어떤 종이 이렇게 복잡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명쾌하면서도 독특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반면 인간은 이 초능력을 쉽게 발휘한다. 실제로 이 능력은 인간의 뇌에 매우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으로, 연구 결과 후회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은 뇌가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6세 이하 아이들과 질병이나 부상으로 뇌가 마비된 성인들뿐인 것으로 밝혀졌다. 간단히 말해, 후회가 없는 사람들은 강한 멘탈의 소유자가 아니다. 그들은 보통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즉 건강한 뇌를 소유한 정상적인 성인이라면 모두 후회한다는 것이다.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우리의 바람과 달리, 후회는 인간이 가장 많이 느끼고 자주 언급하는 감정 중 하나다. 책에 따르면 가장 흔히 느끼는 감정 중 2위가 후회였다. 1위는 사랑이었다(결과적으로 부정적 감정 중 1위는 후회다). 그럼에도 우리는 후회로부터 달아나고 싶다. 후회는 너무 괴롭기 때문이다. 후회라는 초능력이 발동하는 동시에 우리 안에서는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더 나은 현재를 누릴 수 있었을 거라는 ‘비교’ 과정, 그리고 그 선택의 주체가 나 자신이기에 스스로를 탓할 수밖에 없는 ‘비난’ 과정이 일어난다. 비교와 자책만큼 쓰라린 게 있을까? 그 고통이 너무 커서 우리는 ‘후회하지 않는다’며 스스로를 속인다. 그러나 거짓말이다. 저자가 진행한 ‘미국 후회 프로젝트(American Regret Project, 2021)’에 따르면 응답자의 82퍼센트가 치실질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주 후회했다.

그럼 인간은 왜 후회하는 능력을 발달시켰을까? 저자는 이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설득력 있는 주장을 제시한다. 우리는 자기 파괴적인 마조히스트일까? 아니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프로그램된 유기체다. 후회의 고통이 우리의 삶을 개선시키기 때문에 그 능력을 강화한 것이다. 후회의 목적은 우리를 몹시 기분 나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내일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뼈저린 고통을 발판으로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게 돕는 것, 거기에 후회가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발전시켜온 비밀이 있다. 인간이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 중 하나인 만큼 후회가 표출되는 양상은 다양하다. 심리학·신경과학·경제학 분야에서 진행된 후회 관련 연구를 분석한 저자는 좀 더 명료하게 후회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두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4,824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미국 후회 프로젝트’와 105개국 1만 6,000명의 사연을 수집한 ‘세계 후회 설문조사가 그것이다. 저자는 수많은 후회를 분류·분석하고 후회의 심층 구조를 파악한 결과, 인간이 가장 많이 느끼는 후회를 ‘네 가지 핵심 후회’로 정리해 이 책에 기술했다.

 


 

첫째, 기반성 후회(Foundation regrets)는 ‘좀 더 열심히 운동했더라면’, ‘꾸준히 저축했더라면’처럼 건강·자산·교육 등 우리 삶의 기반을 형성하는 영역에 대한 후회다. 성실성과 관련 있는 이 후회는 우리가 신체적 안녕과 물질적 안정을 추구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둘째, 대담성 후회(Boldness regrets)는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더라면’, ‘그때 사업을 시작했더라면’처럼 더 대담한 결정을 했다면 더 많은 성취를 얻었을 것으로 예상될 때 찾아오는 후회다. 용기와 연결되어 있는 이 후회는 우리가 성장을 추구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셋째, 도덕성 후회(Moral regrets)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애를 괴롭히지 않았더라면’처럼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때 찾아오는 후회다. 도덕성의 기준에 대해 저마다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기에 다른 후회보다 다소 복잡한 후회로, 우리가 선함을 추구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넷째, 관계성 후회(Connection regrets)는 ‘부모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더라면’, ‘그 친구에게 먼저 손 내밀었더라면’처럼 배우자·부모·자녀·친구 등 소중한 인간관계가 단절되거나 망가질 때 발생하는 후회다. 네 가지 핵심 후회 중 가장 많이 나타나는 후회로 우리가 무엇보다 사랑을 추구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후회만큼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감정도 없다는 것이 저자의 탐구 결론이다. 우리는 물질적·신체적·정신적 행복의 견고한 기반인 안정을 추구한다. 우리는 새로움을 추구하고 대담하게 행동함으로써 탐구하고 성장하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옳은 일(도덕적 약속을 지키는 일,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사랑으로 결속된 우정과 가족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기를 갈망한다. 이처럼 후회라는 부정적인 감정은 역설적으로 긍정적인 삶의 방향을 보여주는 미러 이미지로(mirror image)로 작동하고 있다.

 


 

여기서 책이 끝난다면 많은 독자들이 실망할 것이다. 후회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그 힘을 온전히 활용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나 답을 저자가 내놓아야 한다. 이에 저자는 이미 ‘발생한 후회’와 아직 발생하지 않았지만 ‘예상되는 후회’, 두 가지로 나누어 '후회 대응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먼저 발생한 후회에 대해 ‘자기노출-자기연민-자기거리두기’라는 3단계 과정을 거치기를 권한다. 후회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적절한 전략을 세우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자신의 후회를 드러내는 자기노출 단계와 자신의 후회가 얼마나 보편적이고 정상적인지 깨닫는 자기연민 단계를 통해 후회를 완전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후 내가 아닌 타인이 나와 똑같은 후회를 한다면 그에게 어떤 조언을 할 것인지 생각해보거나 10년 후의 내가 현재를 되돌아본다고 가정하면 지금의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좋을지 상상해보는 등 한 발짝 떨어져 자신의 후회를 분석해보는 자기거리두기 단계를 통해 현명한 전략을 세울 수 있음을 알려준다.

저자는 이와 함께 예상되는 후회에 대해서는 먼저 중요한 경고를 던진다. 후회를 예측함으로써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지만, 예측에 갇히면 후회를 최소화하려고만 하기 때문에 결정 회피, 위험 회피 등 수동적인 태도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경고다. 따라서 후회를 최소화하는 게 아닌, ‘최적화’하는 프레임워크를 제안한다. 저자가 말하는 ‘후회 최적화 프레임워크’는 다음과 같다. 당신이 지금 결정해야 하는 일이 네 가지 핵심 후회와 관련이 없다면 쉽게 결정하고 적당히 만족하라. 그 결정은 당신 인생에 중대한 후회를 남기지 않을 것이다. 만약 네 가지 핵심 후회와 관련 있는 고민을 하고 있다면 숙고하라. 미래의 특정 시점에 자신을 투사하고 지금의 결정이 네 가지 핵심 후회 중 무엇과 연결될지 예상하라. 그 시간을 충분히 거친 후에 내리는 선택은 그야말로 최적의 결정이 될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수백 가지의 결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는 우리의 행복에 결정적인 것도 있지만, 대수롭지 않은 것도 많다. 그 차이를 이해하면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후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 우리가 진정으로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후회는 이처럼 우리에게 잘 사는 삶으로 가는 길을 알려 주고 있다.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가 늘 느끼면서 새로운 동력을 얻지 못하는 선에 머물러 있음을 깨닫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평소 후회를 자주 한다고 생각하고 있거나, 후회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 책의 주장은 설득력 있는 답을 줄 것이다.

 

저자 : 다니엘 핑크(Daniel H. Pink)

세계적인 미래학자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뉴웨이브 경제 잡지 〈패스트 컴퍼니(Fast Company)〉의 기고가 겸 편집위원으로 일했으며,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앨 고어 전 부통령의 수석 연설문 작성자로 백악관에서 일했다. 프리 에이전트 운동에 대한 탐험과 그에 대한 도발적이며 때론 논쟁적인 견해 때문에, '전국 독립 노동자의 선구자(〈샌프란시스코 크라니클이〉)', '프리 에이전시의 일인 옹호 집단(〈뉴욕 타임스 매거진〉)', '매우 열성적인 프리 에이전트 생활양식의 자칭 선구자'(〈가디언〉) 등으로 불리고 있다. 〈패스트 컴퍼니〉,〈뉴욕 타임스〉,〈워싱턴 먼슬리〉,〈뉴 리퍼블릭〉등에 경제·기술·노동에 관한 기사·평론·서평을 기고하기도 했다.

그는 사회변화를 예측하고, 심리학과 과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결과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명징하게 제시해왔다. 특히 사회 구조 변화를 주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미래를 살아갈 사람들의 변화에 천착하여 우리가 어떻게 일하고, 살아가게 될 것인지에 대해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현재는 워싱턴에서 아내와 두 딸과 함께 프리 에이전트의 삶을 직접 실현하고 있으며 경제변화와 기업전략, 미래 트렌드 등을 주제로 전세계 기업체, 대학, 기관 등에서 활발한 강의를 하고 있다.

 

역자 : 김명철

현재 바른번역 대표이자 글밥아카데미 원장이다. 그동안 수많은 동료 및 후배 번역가들을 안내하고 지도해 왔다. 그 과정에서 번역가들이 흔히 저지르는 오역의 유형들을 발견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번역가 지망생들을 위한 안내서인 『출판번역가로 먹고살기』와 빠르고 정확하게 책 읽는 방법을 소개한 『북배틀』을 썼으며, 『하워드의 선물』, 『파는 것이 인간이다』,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오 헨리 단편선』, 『새로운 미래가 온다』, 『정의란 무엇인가』 등 100권에 가까운 책을 번역했다. 특히 출판 및 영상번역 교육기관인 글밥 아카데미를 설립해 수많은 후배 번역가들을 양성해 오고 있으며, 지금까지 그의 수업을 들은 많은 제자들이 번역가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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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햄릿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1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영열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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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햄릿(Hamlet)』은 영국의 대문호로 불리워지는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5막 비극이다. 연극을 위한 대본('희곡')이란 말이다. 작가는 세계의 대문호로 추앙받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이다. 그는 독보적인 작품을 발표하며 영국의 문학을 세계 제일의 반열에 올려놓았다고 해서 식민지 인도와도 바꾸지 않을 정도의 인물이라고 표현했다니 그의 문학적 영향력은 대단했다고 보여진다. 그의 작품은 비극과 희극을 두루 망라하고 있고, 작품마다 독특한 인물 창조도 탁월하다. 이 책 『햄릿』처럼 극중 대사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는 40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 문구는 '햄릿형'이라는 인물을 창조해 문학 및 각종 예술과 철학에서 인간의 유형을 구별하는 데 있어 비유로 사용되고 있다. 이는 '창백하고 우울한 가운데 우유부단하고 어떤 일을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는 타입'의 햄릿의 사고 방식을 빗대어 말할 때 쓰인다. 한마디로 내성적인 '사색형'이라는 말이다. 이후 괴테와 콜리지 등이 관심을 가지고 해석하기도 했다. 돈키호테형(型)과 짝을 이룬다. 러시아 소설가 이반 투르게네프가 『햄릿과 돈키호테』라는 에세이를 통해 사색형 인간 햄릿과 행동형 인간 돈키호테를 나눈 것에서 유래되었다 '돈키호테형'이란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서 주인공 '돈키호테'는 남들이 보기에는 비정상적으로 보일 만큼 황당한 꿈이지만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간절한 소망을 향해(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온갖 우스꽝스러운 일을 벌이는 저돌적 모험가 스타일이란 데서 비롯됐다. 최근 햄릿을 행동형의 인간으로 무대 위에 올리는 새로운 견해가 나와 주목을 끌고 있기도 한다.

 


 

이 작품 『햄릿』은 1601년경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1603년 '해적판'이 나왔으나, 이듬해 정판본이 간행되었다는 것. 햄릿 왕자의 원화(原話)는 12세기 덴마크의 역사가 삭소 그라마티쿠스(Saxo Grammaticus)의 『덴마크사』(1514)에 보이고, 이미 1589년에는 런던에서 햄릿극(劇)이 상연되었다. 그 작자는 키드로 추정되며, 작품은 보통 『원(原)햄릿』이라 불렀으나 남아 있지는 않다. 셰익스피어는 이것에 의하여 새로운 희곡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 덴마크의 햄릿 왕이 급서하자 왕비 거트루드는 곧 왕의 동생 클로디어스와 재혼하고, 클로디어스가 왕이 된다. 햄릿 왕자는 너무 서둔 어머니의 재혼을 한탄하는데, 마침내 선왕(先王)의 망령이 나타나, 동생에 의하여 독살되었다고 말한다. 햄릿은 복수를 위하여 거짓으로 미친 체한다.

지식인인 햄릿은 망령의 존재를 의심하면서도 왕의 본심을 떠보기 위하여 국왕 살해의 연극을 해 보이는데, 왕은 안색이 변하여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 후 햄릿은 재상 폴로니어스를 왕으로 잘못 알고 죽이고, 그가 가장 사랑하는 폴로니어스의 딸 오필리아는 미쳐서 죽는다. 왕은 햄릿을 잉글랜드로 보내어 죽게 하려고 하나 왕자는 도중에서 되돌아온다. 폴로니어스의 아들 레어티스는 왕의 꾐에 빠져 햄릿을 독을 바른 칼로 죽이려고, 왕과 왕비 앞에서 펜싱 시합을 하게 된다. 그러나 왕의 계획은 틀어져, 왕비는 왕이 햄릿을 독살하려고 준비한 독주를 모르고 마셔 죽고, 레어티스와 햄릿은 독을 바른 같은 칼에 죽는데, 햄릿은 최후의 순간에 그 칼로 왕을 죽인 후 숨을 거둔다. 그리고 왕위는 노르웨이 왕자에게로 돌아간다.

 

덴마크 헬싱괴르에 있는 크론보리성으로 세익스피어 비극 '햄릿'의 주무대. <출처: corel>

 

『햄릿』은 당시 유행한 복수비극의 형태를 취하면서 부왕의 원수를 갚아 국가질서의 회복을 꾀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지식인 햄릿 왕자의 고뇌를 주제로 한 비극이다.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와 더불어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하나이다. 햄릿의 사색적 성격은 19세기의 낭만주의에 의하여 더욱 높이 평가되어 이 비극을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으로 간주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책은 '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햄릿'이라고 표지에 명기돼 있다. 즉 당시의 언어를 현대적 영어 표기로 바꾼 작품을 우리말로 번역 내놓은 『햄릿』 원작 번역에 충실한 판본이란 뜻이다. 역자 책 뒷 부분에서 「옮긴이의 말」을 통해 이 책을 재밌게 읽기 위한 방법을 기술해 놓았다.

연극 대본을 자주 접하지 못한 일반 독자들의 독서 편의를 위해서다. 독서 편의란 결국 '이해'를 뜻하는 말로서 소설처럼 생각하고 읽기는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독자도 소설 『햄릿』을 먼저 읽었다. 어렸을 때 동화책처럼 읽었으니까 번역 발췌본이었으리라. 이후로도 햄릿을 여러번 읽었지만 모두 소설이었다. 소설이 아닌 것으로는 대학 때부터 접한 연극을 통해서다. 대학 때만 두세 번, 사회 생활 하는 동안 두세 번, 합쳐 다섯 번은 연극 『햄릿』을 봤다. 그러나 워낙 유명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제외하고는 기억에 남는 대사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연극이 시작할 때의 부분은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바짝 긴장해서 봤기 때문이겠지만 묘하게도 연극 분위기 조성에 매우 알맞은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들이었기 때문이다. 『햄릿』의 1막 1장은 그렇게 독자에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다.

 


 

역자는 "시와 소설을 읽는 방법에 차이가 있듯, 희곡을 읽을 때도 그에 적절한 독서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희곡의 독서는 독자 스스로 연출가의 입장이 되어 상상력을 동원해 장면 속 인물들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구성해 나가지 않으면 대사들은 텅 빈 무대에서 공허하게 메아리치듯 그 의미의 절반도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연극배우들이 하듯이 주변 사람들과 역할을 분담해서 함께 소리 내 읽으면 훨씬 도움이 되겠지만, 그럴 여건이 안 된다면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머릿속으로 무대를 상상해보며 어떤 인물들이 등장해 어떤 대형으로 서 있는지, 무대에 대사 없이 존재하는 역할은 없는지, 존재한다면 그 역할은 대본에 쓰여있는 인물들의 대사에 귀 기울이고 있을지, 아니면 대화와는 상관없는 다른 행동을 하고 있을지 등을 상상해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다. 나는 주변 사람들이나 유명한 배우를 대입해서 상상하며 읽기도 한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서법을 제시하는 역자에 감사를 표한다.

역자는 이와 함께 소설, 비소설, 장르를 불문하고 번역할 때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술술 읽히는 책을 만들자’라고 말한다. 『햄릿』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나 공연을 전제로 쓰인 희곡이기에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두세 번 읽어야만 의미가 파악되는 글은 지면으로 존재할 때는 그 나름의 곱씹는 맛을 가질 수 있겠지만, 공연으로 만들어졌을 때는 대사로서 힘을 잃기 쉽다. 그런 맥락에서 번역을 시작하고 두 번째 날, 이 책에는 단 한 개의 주석도 달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뜻이 궁금한 단어가 있으면 손쉽게 검색해볼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주석을 읽으려고 시선이 한번 이동할 때마다 애써 연출한 상상 속의 무대가 흐려지는 것은 뼈아픈 손실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역자는 이밖에 주석에 달아야 할 내용은 최대한 본문에 녹여 넣으려고 했으나 그래도 설명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밝힌다. 이 책을 읽고 대사에 숨겨진 의미나 배경지식을 더 알고 싶어졌다면 시중에 나와 있는 해설집이나 주석이 많이 달린 번역본을 읽어보길 추천하고 있다. 이 책은 『햄릿』을 처음 읽는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흥미로운 독서 체험을 선사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번역했다는 사실에 독자들은 초첨을 맞춰 읽으면 이해에 다가가기에 훨씬 나을 것이란 기대다. 역자의 설명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 유명한 대사가 나오는 부분만 이 책 원문 그대로 여기에 발췌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쪽이 더 고귀한가?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도 참아야 하는가?

아니면 밀려드는 재앙의 바다에 힘으로 맞서 물리쳐야 하는가?

죽는다, 잠든다, 그뿐이겠지. 잠들어 만사가 끝나 가슴 쓰린 온갖

고뇌와 육체의 고통이 사라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바랄 수 있는 생의 극치가 아닌가.

(중략)

다만, 한 가지, 죽음 이후에 무엇이 올지 모르니 망설이게 되는구나.

그 누구도 돌아온 적 없는 미지의 나라, 그 공포가 우리의 결심을 흐리게 한다.

알지 못하는 곳으로 날아가느니 현재의 고통을 견디는 쪽을 택하는 거지.

이렇게 옳고 그름을 따지다 보면 우리는 겁쟁이가 되고 만다.

그러면 결의는 본래의 색을 잃어 창백하게

병들어 가고, 하늘을 찌르던 기세도 이내 꺾여

행동으로 옮길 힘을 잃고 마는 것이다.

가만, 아름다운 오필리아가 오고 있다!

숲의 요정이여, 그대의 기도문에 나의 죄도

잊지 말고 언급해주오.(p93~94)

 

 

출판사 측에 따르면 『햄릿』은 시카고 대학에서 실시한 '존 스튜어트 밀의 독서법을 따른 고전철학 독서교육 프로그램'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당시 이름 없는 사립대학에 불과했던 시카고 대학을 명문 학교의 반열에 오르게 한 프로그램이 ‘시카고플랜(Chicago Plan)’이다. 1929년 시카고 대학 제5대 총장으로 취임한 로버트 호킨스?(Robert Maynard Hutchins)가 추진한 ‘시카고플랜’은 그가 잘 알고 있던 ‘존 스튜어트 밀’ 식의 독서법을 따른 것으로 ‘철학 고전을 비롯한 세계의 위대한 고전 100권을 달달 외울 정도로 읽지 않은 학생은 졸업시키지 않는다’라는 고전 철학 독서교육 프로그램이다. 호킨스 총장은 학생들에게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과제를 주었다.

첫째, 모델을 정하라:너에게 가장 알맞은 모델을 한 명 골라라

둘째, 영원불변한 가치를 발견하라:인생의 모토가 될 수 있는 가치를 발견하라

셋째, 발견한 가치에 대하여 꿈과 비전을 가져라

그는 학생들이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필요한 삶의 지표를 설정할 것을 강조했다. 즉, 자신의 롤 모델의 선정, 불변하는 가치의 발견, 꿈과 비전의 개발의 필요성을 권유한 것이다.

 


 

저자 :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영국 최고의 시인이자 극작가이다. 1564년 4월 23일 존(John) 셰익스피어와 메리 아든(Mary Arden) 사이에서 태어났다. 셰익스피어는 아름다운 숲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인구 2,000명 정도의 작은 마을 영국 잉글랜드 워릭셔주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존 부부의 첫아들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고, 이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셰익스피어는 주로 성경과 고전을 통해 읽기와 쓰기를 배웠고, 라틴어 격언도 암송하곤 했다. 셰익스피어는 11살에 입학한 문법학교에서 문법, 논리학, 수사학, 문학 등을 배웠는데, 특히 성경과 더불어 오비디우스의 『변신』은 셰익스피어에게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 셰익스피어는 그리스어도 배웠지만 그리 신통하지는 않았다. 이 당시에 대학에서 교육받은 학식 있는 작가들을 ‘대학재사’라고 불렀는데, 셰익스피어는 이들과는 달리 대학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타고난 언어 구사 능력과 무대예술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 다양한 경험, 인간에 대한 심오한 이해력은 그를 위대한 작가로 만드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제대로 교육받지는 못했지만, 자연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운 자연의 아들이자 천재였다. 1582년 앤 해서웨이와 결혼하여 딸과 쌍둥이 남매를 낳았다. 이후 런던으로 거주지를 옮겨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극작가로 성공했으며 희극 배우로도 활동했다. 후원자 사우샘프턴 백작의 도움으로 궁정에도 출입하며 엘리자베스 여왕과 제임스 1세에게 후대를 받아 1594년에는 궁내부장관 극단의 전속 극작가로 임명되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사업적 기질을 물려받았는지 재산 관리에도 능숙해 상당한 부동산을 구입하여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웠다.

수많은 희곡 중 셰익스피어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무어인 장군 오셀로가 이아고의 간계에 빠져 사랑하는 아내를 질투하고 살해하는 비극을 다룬 『오셀로』, 자신에 대한 딸들의 충성을 시험하다 비극을 맞는 『리어왕』, 권력을 향한 욕망으로 비극을 초래하는 『맥베스』, 그리고 마지막이 이 4대 비극 중 가장 앞서 쓰였다는 『햄릿』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클로디어스에게 복수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그렸다. 인간을 들여다보는 깊이 있는 시선은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들에 길고긴 생명을 부여한다. 끊임없는 재해석이 그 방증이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인물들을 파고들고 해석하는데, 문학에서 찾아낼 수 있는 모든 가치를 그의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1590년 대 초반에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타이터스 안드로니커스』, 『헨리 6세』, 『리처드 3세』 등이 런던의 무대에서 상연되었다. 특히 『헨리 6세』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에 대한 악의에 찬 비난도 없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학 교육도 받지 못한 작가 셰익스피어 작품의 인기는 더해갔다. 1623년 벤 존슨은 그리스와 로마의 극작가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셰익스피어뿐이라고 호평하며, 그는 “어느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1668년 존 드라이든(John Dryden)은 셰익스피어를 “가장 크고 포괄적인 영혼”이라고 극찬했다. 1610년경 은퇴하여 고향으로 돌아온 셰익스피어는 대저택에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다, 1616년 4월 23일 52세의 나이로 서거하여 성트리니티 교회에 안장되었다. 셰익스피어는 1590년에서 1613년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의 극작가로서, 대표 작품으로는 『공연한 소동』, 『12야(夜)』, 『자(尺)에는 자로』, 등의 희극과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맥베스』, 『오셀로』, 『리어 왕』,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등의 비극을 비롯해 『베니스의 상인』, 『한여름 밤의 꿈』, 『헨리 4세』, 등 10편의 비극(로마극 포함), 17편의 희극, 10편의 역사극, 『비너스와 아도니스』, 등의 시집 및 『소네트집』도 남겼다. 대부분의 작품이 살아생전 인기를 누렸다.

 

역자 : 최영열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한 후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며,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자 및 전문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엘레멘티아 연대기. 1: 정의를 위한 퀘스트』, 『엘레멘티아 연대기. 2: 새로운 체제』, 『엘레멘티아 연대기. 3-1: 사라져가는 희망』, 『엘레멘티아 연대기. 3-2: 히로브린의 메시지』, 『리어 왕』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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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읽는 수학책 - 재미와 교양이 펑펑 쏟아지는 일상 속 수학 이야기
사이토 다카시 지음, 김서현 옮김 / 북라이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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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포자나 수학과 담을 쌓은 사람 등 미분, 기댓값, 여사건, 벡터를 몰르는 독자도 이 책을 읽는다면 삶을 살아 가는 데 탁월한 능력과 지식을 갖추는 데 큰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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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읽는 수학책 - 재미와 교양이 펑펑 쏟아지는 일상 속 수학 이야기
사이토 다카시 지음, 김서현 옮김 / 북라이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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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고등학교 때 '이과반'이었다가 결국 문과대학으로 갔다. 수학 점수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지만 담임선생님은 못내 아쉬워했다. "너 정도면 수학 실력 부족해도 좋은 대학 이과 갈 수 있다"고 타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수학과 너무 멀어진 독자로서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때 입시 제도는 그랬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고, 잘 알지 못하는 제도라 독자들이 듣기에 언제 이야기냐며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 『세상을 읽는 수학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 꺼낸 말이니 너그럽게 양해하시길 빈다. 이 책 선택할 때도 머뭇거렸다. 수학과 담 쌓은 지가 수십 년이 됐는데 이젠 수학을 다시 배울 것도 아니면서 무슨 수학 책을 새삼 읽으려 하느냐는 핀잔 아닌 핀잔도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수학을 왜 우리 생활에 필요한 기본 과목에 들어가 있는지를 절실하게 깨닫고 기초라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으려고 펼치자마자 놀랍게도 저자 사이토 다카시가 '프롤로그'에 쓴 글은 마치 독자 같은 사람을 위해 이 책을 쓴다고 말하는 것에 뜨끔하면서 놀라운 인연이란 느낌이 들었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문과생이 '수학과 무관한 생활'을 하게 되는 시기는 사회에 나온 다음이 아니다. 대학에 들어간 시점에서 문과생은 수학과 작별을 고한다. 경제학처럼 수학을 사용하는 문과 분야도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인문·사회 계열 학부에서는 수학을 쓸 일이 없다."고 말한다. 사실 독자가 그랬다. 그러나 사회에서 수학이 필요한 경우는 의외로 많았다. 수학을 몰라 삶에 불이익을 받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문제 해결에 있어 남보다 뒤처지는 경우가 있기는 했다. 또 동료나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 수학 이야기가 나올 때도 말문을 닫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수학을 다시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매일 매일이 바쁘고 그렇게 살도록 사회는 구성되어 있었다.

 


 

자신도 '천생 문과형'이라는 저자는 대학교 강의를 하면서 함수나 미적분 예시를 들 때마다 기겁하는 문과생들이 매우 안타까웠다. 그래서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수학을 놔버리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저자는 책에서 연애 감정을 느끼는 기간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데이트 설렘 곡선’을 미분적으로 설명하고, 신입사원의 액션 플랜을 이야기하다가 자연스레 ‘인생의 가속도’를 수학적으로 설명한다. 처음에는 “왜 수학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의심스럽지만 탄탄한 수학적 배경과 신선한 통찰로 가득한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아, 하고 탄성을 내뱉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렇듯 이 책은 수학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지 흥미로운 예시를 통해 알려준다. 주가를 예측하는 미분에서 무모한 선택을 막는 확률까지 ‘쓱’ 읽으면 ‘싹’ 이해되는 놀라운 수학 이야기가 가득하다.

과학, 음악, 미술, 철학, 문학, 역사 등 여러 분야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예를 드는 기발한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수학적 사고로 풀어가는 흥미진진한 놀라움이 있다. 주가의 움직임을 간파하고 예측하는 방법부터 사업에서 기회를 민첩하게 포착하고 시류의 변화를 알아채는 기술이 미분적 감각을 적재적소에 가져다 쓴 결과라는 기상천외한 발상에 웃음을 짓다가 어느새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 숨겨진 수학의 활용법을 습득하게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된다. 저자자 지적했지만 "수학 시험 두 번 다시 보나 봐라", "공식과 씨름하는 건 사절이다"고 생각했던 독자를 지적하듯 프롤로그를 통해 강조한 '수학의 활용법'을 담은 이 책을 통해 부디 독자들도 수학의 매력에 빠져들어 수학적 사고로 세상을 읽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길 바란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정말로 세상은 온통 수학임을 깨닫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은 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미분〉, 2장 〈함수〉, 3장 〈좌표〉, 4장 〈확률〉, 5장 〈집합〉, 6장 〈증명〉, 7장 〈백터〉이다.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에서 배웠던 것들이 모두 담겨 있다. 다시 말하면 수학의 기초 개념을 모두 망라하고 있다. 저자는 접근이 꺼려지는 독자들을 위해 지긋지긋한 '공식'을 가능한 한 다루지 않겠다는 약속을 여러 번 거듭한다. 수학을 싫어하는, 못하는 많은 독자들이 '공식'에 진저리를 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1장 〈미분〉에서 미분을 수학적 사고의 '꽃'이라고 표현한다. 부제에 적어놓고 있다. 이 장에 등장하는 소제목만 읽어도 어떻게 독자들의 마음을 그리 잘 읽는지 놀랍고 감탄할 정도다. 1장 〈미분〉을 설명하면서 등장하는 소제목으로 「문과는 좌절에 빠지고 이과는 감동에 빠지는 미분」, 「주식 투자 전문가는 어떻게 거품 붕괴를 예상할 수 있었나」, 「스포츠 지도자도 갖추어야 할 미분적 사고」, 「미분 감각을 익히면 매 순간의 행복을 깨달을 수 있다」, 「미분은 ‘특정 순간의 속도’를 알아내기 위해 태어났다」 등 미분의 개념 탄생과 활용법, 활용 범위 등을 설명한다.

"주식 초보자는 눈앞의 주가가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 ‘앞으로도 줄곧 오를 것’이라 기대했지만 전문가는 주가 상승이 거의 정점에 달했다는 사실을 간파했던 것이다. 그들은 주가가 최고치를 기록하고는 있지만 이미 상승 동력을 잃었으니 ‘곧 하락하리라’는 사실을 예상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전문가의 진단이 바로 ‘미분적 사고’다. 설령 지난 수개월간 주가가 계속 올랐다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치고 나가는 힘이 없으면 속도를 잃고 추락한다. 미분이란 ‘순간의 기세’다. 그래서 미분적 사고를 하면 변화의 방향을 예상할 수 있다. (중략) 미분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지금까지의 변화율에 휘둘리지 않고 각각의 변화가 앞으로 ‘오르막’으로 향할지 아니면 ‘내리막’으로 향할지 간파할 수 있다."(p.24)

 


 

2장 〈함수〉는 ‘f’에서 태어나는 무한한 아이디어를 다룬다. '함수'에서 '함(函)'은 '상자'를 뜻하는 것으로 함수는 블랙박스처럼 상자에 뭔가를 넣으면 다른 형태로 변환된어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변환시키는 '기능(function)'이 있기 때문에 'function'의 앞 글자를 따서 함수를 ‘f’라고 쓴다. 'y=f(x)'라는 함수는 x에 뭔가를 넣으면 y로 변환된다는 의미다. 고등학교 때는 무조건 그런 것으로 외우라고 했던 것인데 f에 대한 의미를 처음 알게 된 것 같다(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설명했는데도 독자가 잊었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저자는 이 장(章)을 통해 가수 이노우에 요스이의 '재즈화'를 설명하기도 하고, 화가의 일정한 변환성과 함수의 관계, 철학의 '관계주의'에 대해 매력적인 ‘f’의 위대함을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애플과 혼다의 변형 작용, 국가와 종교를 ‘거대한 f’로 말하기도 한다. 「노래방이라는 ‘y’는 어떤 함수에서 나왔을까?」과 「노래방과 프라모델의 공통점」은 흥미롭고, 실생활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함수에 관한 설명에도 적절한 비유로 보인다.

"예를 들어 노래방이라는 y는 어떤 f에서 나왔을까? 지금은 개별로 분리된 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 주점에 노래방 기계가 설치되어 있어서 술을 마시러 온 손님이 종업원에게 요청하면 곡을 틀어 주는 시스템이었다. (중략) 주점에서 술을 마시는 김에 노래하던 것이, 이윽고 놀이의 하나로 독립된 존재감이 생기면서 전용 서비스가 등장했다. 바로 노래방이다. 노래 주점이라는 x를 어떤 f에 넣었더니 노래방이라는 y로 변환되었다. 그것은 어떤 f일까? 명칭의 변화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노래 주점’을 ‘노래방’으로 변환한 것은 ‘개별화’라는 f다. (중략) 그 사실을 알고 나면 이제 개별화라는 함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개별화 함수의 x에 또 다른 것을 넣으면 노래방이 아닌 다른 y가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밖에도 개별화라는 f에서 생겨나는 다른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제 세상의 트렌드에 눈을 뜰 수 있다. 무언가를 개별화하는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세상을 f로 보면 그러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p.135~136)

 

 

4장 〈확률〉은 실생활에 가장 많이 이용되는 장인 듯하다. 실생활이라기보다 어떤 게임의 승부, 복권의 당첨 여부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이긴 하지만 의외로 이 책에서는 가볍게 다룬다. 옛날 하버드 대학 수학과 학생들이 카지노에 가서 '확률 게임'을 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이 같은 내용을 기대했던 독자에게는 실망이겠지만 확률이 수학 용어이고, 수학의 영역이 맞지만 제대로 이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무모한 선택'에 도전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서인지, '기대값' 설명으로 마무리한다. 책에 따르면 복권 구입 금액 역시, 복권 구입 후 당첨 발표일까지 큰 '드림'을 꾸기 위한 참가비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한 장보도 열장, 열 장보다 백 장을 사면 좀 더 달콤한 꿈을 꿀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기댓값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것이다. 어감상 '기댓값'은 우리의 기대감을 높여 주는 단어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기대만 부풀리지 말고 제대로 현실을 보라'고 꾸짖는 말이다. 복권 판매소 앞에서 '3억엔에 당첨될지도 몰라'라며 들떴다가도 기댓값을 알면 냉정해질 수 있다. 물론 세상에는 기댓값이 높게 나오는 일도 있지만, 그런 것은 대개 '높을 만해서' 높게 나오므로 가슴이 두근대지 않는다. 얄궂게도 '기댓값'이 높더라도 '기대'는 딱히 높아지지 않는다.

"기댓값은 ‘냉정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 보게 해주었다. 그에 반해 여사건은 ‘용기가 솟는 현실’을 가르쳐 준다. 어느 쪽이든 ‘현실’을 똑바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현실에서 눈을 돌린 채 무한정 의욕만 부풀려도 안 되고, 현실을 알지 못한 채 불안에 쫓겨 움츠러들어서도 안 된다. ‘공격’을 하든 ‘수비’를 하든, 현실을 바탕으로 올바르게 공격하고 올바르게 수비 하며 현명하게 살아가야 한다. 확률 사고는 그런 삶의 태도에 도움이 된다. 확률 사고법을 갖추면 무언가에 도전할 때 시간이나 에너지 배분에 낭비가 없어진다."(p.198)

 


 

뼛속까지 문과생이지만 수학 덕후이기도 한, 저자 사이토 다카시 교수는 세상의 모든 것을 ‘수학적 사고’로 바라본다. 그는 물가, 주가, 아이의 성적 변화, 데이트의 설렘 변화, 악기나 스포츠의 숙련도 변화 속에서 ‘미분’을, 화가의 개성, 작가의 문체, 운동선수의 플레이, 기업의 스타일부터 국가나 종교, 프라모델, 노래방, 색칠 공부, 틱톡이라는 ‘f’의 변환 속에서 ‘함수’를 발견한다. 또 회사 경영자나 인사 담당자, 가게 주인, 진로를 고민 중인 사람이라면 유용한 판단력을 얻을 수 있는 ‘좌표’에 대해 설명하고, 카지노, 복권 등 투자를 결정할 때 무모한 선택을 막아주는 ‘확률’에 대해 재밌게 풀어간다. 그뿐만 아니라 취직이나 결혼 같은 인생의 중대한 선택에서 셋집 구하기나 양복 고르기 같은 일상적 선택까지 벤 다이어그램을 통한 활용법을 ‘집합’으로 설명하고, 수치로 제시한 목표가 없는 정치인의 연설은 반증 가능성이 없다는 ‘증명’의 오류를 집어낸다. 마지막으로, 방향성이 달랐던 록 밴드의 해체 속에서 ‘벡터’의 차이를 찾기도 한다.

저자는 많은 사람을 만나며 ‘수학적 사고’를 활용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똑같은 주식을 하더라도 미분적 변화를 예측하여 대박을 터뜨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리저리 휘둘리며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경험했고, 또한 똑같은 공부를 하더라도 노력을 벡터적으로 분해해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것저것 손대며 실력이 답보 상태인 사람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그리고 이 차이는 바로 ‘수학적 사고’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수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본 세상은 어떨까? 수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일상의 수많은 부분이 흥미진진한 수학으로 가득한 세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장마다 미분, 함수, 좌표, 확률, 집합, 증명, 벡터 등 수학적 개념을 생활 속 다양한 사례에 접목하며 독자를 재미있는 수학의 세계로 안내한 이유이다.

 


 

이 책이 수학과 담을 쌓은 채 살아가면서 수학을 너무 어려운 학문으로 생각해 수학을 아예 외면하는 어리석음으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만큼의 독자들의 수학적 교양을 함양시키기 위해 쓴 책이다. 이처럼 술술 읽기만 해도 저절로 개념이 잡히는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평소 우리가 지나치는 것 중 수학과 무관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수학적 렌즈가 장착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해상도가 한층 높아졌음을 실감하게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 : 사이토 다카시(さいとう たかし, 齋藤 孝)

1960년 시즈오카 현 출생. 1985년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 과정을 밟으며 교육학, 신체론, 커뮤니케이션론을 공부했다. 『신체감각을 되찾다』로 산체학예상을 수상했으며, 250만 부 이상 판매된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일본어』로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어휘력이 교양이다』, 『어른의 어휘력 노트』 등 지식과 실용을 결합한 스타일의 베스트셀러를 다수 집필해 일본 현지 발행 부수만 1,000만 부를 넘는다. 현재 메이지대학 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NHK E텔레비전 〈일본어로 놀자〉 종합 지도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혼자 있는 시간의 힘』, 『잡담이 능력이다』,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내가 공부하는 이유』 외 다수가 있다. 수백만 독자에게 사랑받고 있는 사이토 다카시는 50대를 보다 당당하게, 의미 있게 살아갈 방법에 대해 성찰해왔으며, 현재 그 스스로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하며 평안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역자 : 김서현

대학에서 법을 전공했지만 법으로 밥을 먹는 길 대신 다른 길을 선택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수학을 가르치면서 세상만사가 수학처럼 명쾌하게 답이 정해져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현재 글밥 아카데미를 수료한 후 바른번역 소속으로 외서 기획 및 번역을 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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