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와 회귀
최인 지음 / 글여울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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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도피와 회귀』는 제목에서부터 소설이라기보다 오히려 철학서나 종교서, 혹은 사회학 책으로 보인다. 작품의 줄거리는 소설적 요건인 '허구'이지만 사용되는 단어가 철학 등 학문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자주 사용되는 말들로 구성되어 있는 특색을 갖고 있다. 제목, 소제목 등도 대부분 학문적 용어들이다. 우선 제목에 있는 '도피'라는 단어 역시 사회적 사건일 때 뜻하는 '범인이 도피(도망) 중이다'는 예처럼 쓰이지 않고, 일상에서 권태로운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뜻의 현실 도피와 어우러지는 단어다. 또 회귀는 종교서적이나 철학서에서 많이 이용된다. 언어가 철학적 단어나 심리학적 단어로 완벽히 구별되어 사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뜻의 일상 용어가 소설에서 주로 사용되는 반면 학문적인 용어로 사용될 때는 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의미의 용어를 쓴다. 각 단어의 뉘앙스 차이로 생각될 수 있지만, 그것은 학자들이 학문을 할 때 정확한 뜻의 단어를 써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른바 전문용어로 점찍어 사용되기 때문이다. 소설가나 시인들이 도피나 회귀의 단어를 몰라 못 쓰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가진 뉘앙스의 차이가 있기 때문으로 독자는 추정한다. 물론 독자가 관련 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추정'일 뿐이니 양해를 먼저 구한다.

이 소설은 15장(章)으로 구성돼 있다. 1장 「고독으로부터의 탈출」, 2장 「존재와 비존재」, 3장 「야만적인 너무나 야만적인」, 4장 「이데올로기의 부활」, 5장 「특화된 다수는 항상 부정하다」, 6장 「우연 그리고 필연」, 7장 「진지함의 가벼움, 사소함의 무거움」, 8장 「선택과 판단」, 9장 「모든 사람을 위한,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10장 「현상과 본질」, 11장 「군중 속의 고독」, 12장 「탄생과 죽음」, 13장 「이것이냐 저것이냐」, 14장 「가는 자와 오는 자」, 15장 「도피와 회귀」이다. 눈여겨볼 만한 것은 1장의 제목과 15장의 제목이다. 현실 도피와 일상 회귀를 암시하는 듯한 단어들이다. 이 소설의 또다른 특징은 1월1일부터 12월25일까지 주인공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철학적 탐구이다. 탐구의 주체는 저자이자 독자다. 주인공은 철학 교수이다.

 


 

이 소설은 다음과 같은 소제목을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행동은 자유를 지향하는 적극적 의사 표시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1장 1월 1일이 소설의 시작이다. 이 장은 「고독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저자의 설명에는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단초가 나온다. 현실 도피, 자유, 해방 등의 단어가 등장한다. "현대인은 전개인적 사회가 안정감을 부여하면서, 자신을 구석하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졌다. 그럼에도 거대사회라는 조직 속에서 숨 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은 참다운 의미의 자유는 실현하지 못했다." 이 날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야 저자는 "사람들은 권태로운 현실과 따분한 일상으로부터 끊임없이 도피를 꿈꾼다. 남자나 여자나 청년이나 노인이나 소년이나 소녀를 가리지 않고. 그는 새해 아침, 무위로부터 자신을 탈출시켜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이불을 쓰고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p.10) 주인공의 등장을 알린다.

자유는 일차적으로 심리학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 경제적, 정치적, 생물학적 측면에 걸친 다양한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이 소설은 각 장의 소제목 아래 역사적 사건들을 대여섯 줄의 한 단락 분량의 문장을 첨가했다. 저자가 세운 가설에 대해 역사적 사건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다. 1월 1일엔 소제목 아래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노예 해방에 대한 전개 과정을 별도로 부가했다. 노예 해방이 자유를 지향하는 적극적 의사 표시라고 본 것이다. 물론 선언은 당시 링컨 대통령이 했지만 이는 남북 전쟁의 정점에 달하는 도화선이 됐을 것이다. 다음은 1월 7일로 뛴다. 소제목은 '잠은 이성의 일시적 탈출 상태이다'이다. 역사적 사실이 대한민국 1949년 1월 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승만 대통령의 중대시책 발표날이다. 대일 배상을 요구하는 데 있어서, 피해 기간을 어느 때부터 산정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내용이다.

 


 

이날은 역사 속의 장면에 자본주의 속성을 보여준다. 저자의 의식 속에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전쟁 피해를 배상하기 위해 국민들이 36년 간 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 억압과 수모를 어떻게 돈으로 계산해서 받느냐는저자의 저항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현대 자본주의가 사람 개개인에게 가져다준 현상은 소외감이고 주석처럼 설명한다. 소외의 결과 사람은 수동적으로 변했으며, 더 이상 창조적인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됐다고 첨언한다. 이제 소설이 흐름을 타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그(주인공)는 어느 날 갑자기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괴리된 고독감을 느꼈다. 그것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독감이고 근원을 알 수 없는 무력감이었다. 그는 자신의 내부에서 솟구치는 무력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하루 종일 책을 읽기도 하고, 밤새워 술을 마시기도 하고, 머리가 아프도록 고민도 해 보았다. 하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무력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학기 종강 이후 줄곧 방 안에 틀어박혀 무위도식하며 지냈다. 일은 물론이고 독서, 산책, 헬스, 섹스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행위를 일체 하지 않고 잠만 잤다. 그런 다음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처럼 방에서 기어 나왔다. 그가 방에서 나와 처음 한 행동은 전화를 거는 거였다. 그의 예상대로 미주는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방에 처박혀서 잠만 잤어."

"잠을 두 달이나 다 되도록 잔다는 말이야?"

두 사람의 잠에 대한 대화가 이어지다 '잠'에 대한 철학적 생각을 저자는 다시 전개한다. 잠이란 외계와 아무런 관련이 맺지 않으려고 하는 심리적 거부 상태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잠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그 안으로 도피한다. 지친 나 대신 행복한 나를 만들어, 그 안에서 안식하려는 게 잠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의 잠깐의 대화가 이어진다.

"우리 만난 지 오래됐잖아."

"그건 그렇지만···"

미주는 섹스를 핑계 삼아 사랑 운운하지 않는 여자였다. 또한 몇 번의 육체 관계로 사람을 구속하지 않았다. 그는 자유분방하게 사는 대학 후배와 몇 년간 밀애를 계속해 왔다. 등장한 미주, 그리고 그(주인공)과의 관계를 짐작케 한다.

 


 

다음날 1월 8일이다. 소제목은 '이드는 모든 리비도의 원천이고 본질이다'. 역사적 사실에 갈릴레이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대부분 알고 있는 갈릴레이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에 대한 설명을 한다. 지동설을 입증했지만 16세기 세상의 중심이었던 가톨릭의 교리를 완전히 벗어난 이단아라고 배척된 역사적 사실이다. 그(갈릴레이)는 1642년 1월 8일 78세의 일기로 영면의 세계로 회귀했다. 여기서 저자는 '회귀' 란 단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미주와의 성관계 장면으로 옮겨 간다. 오럴 섹스와 성교 지속시간에 대해 자세한 표현은 독자가 설명하기 조금은 민망해 두 사람의 성관계에 대한 일은 독자들이 직접 읽어야 더 확실한 느낌이 될 테니 직접 읽기를 서평자인 독자는 권한다. 이후 섹스 장면이 자주 등장하지만 서평자가 역시 독자들이 직접 읽기를 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인공 이름은 '명하'라고 밝혀진다. 두 사람 사이의 대화에서다.

"명하 씨, 운동 부족인가 봐."

두 사람은 다시 1월 16일 자에 등장한다. 이날은 '현대인은 자유라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존과 굴종으로 도피했다'는 제법 긴 제목이 나온다. 1979년 1월 16일 팔레비 이란 왕은 시민의 반정부 시위에 굴복하고 38년간의 왕정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내용을 소개한다.

소설은 본격 주인공의 뒤를 따른다. 아내가 등장하고 딸도 있다. "그는 한동안 미주 외에 어떤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가족과 친구, 이혼한 전처, 하나뿐인 딸아이조차 만나지 않았다. 그는 미주를 만나면서 섹스 이외에 다른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즉 쇼핑을 하러 백화점에 간다거나, 오페라를 보러 극장에 가는 식의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그는 그 정도로 무력감에 빠진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 자폐적 심리 상태를 그는 병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인류의 생존과 번영이 도피와 회귀의 법칙으로 진행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즉 선과 악, 생과 사, 이념과 제도, 문명과 역사까지도 도피와 회귀의 법칙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의 삶 속에서도 도피와 회귀의 법칙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만남과 헤어짐, 사랑과 증오, 긍정과 부정, 탈출과 복귀 등이 그것이다. 이 도피와 회귀는 세계사 속에서 재현되며 문화와 문명을 견인해 왔다. 과학과 철학 속에서도 도피와 회귀는 원리와 이론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즉 에리히 프롬은 인간이 집단에서 도피해 자유롭게 되었지만, 다시 집단을 그리워해 회귀하고자 하는 의지를 '자유로부터의 도피'라고 피력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1941)는 에리히 프롬(1900∼1980)이 1941년에 쓴 사회심리학 저서로, 오랜 역사 동안 자유를 얻기 위해 싸워 온 인간들이 근대사회에 와서 자유를 포기하고 도망가려는 경향을 드러내는 현상을 해명하려고 한 책이다. 근대사회에서 인간은 거대한 사회ㆍ정치ㆍ경제라는 톱니바퀴의 한 톱니에 불과한 존재이자 자신들이 이룩한 질서에 짓눌린 존재다라고 주장한다. 프롬은 사회 심리학적 입장에서 나치즘(Nazism)이 부각된 원인을 분석하고, 또한 그의 기반이 된 현대문명의 획일성과 인간소외현상을 비판하면서 자유와 인간의 존재양상에 대한 반성을 촉구했다. 이제 인간은 이전의 '본능과 자연, 신과 권위로부터의 자유'라는 소극적 의미의 자유에서 보다 독립적이고 자발적인 적극적 의미의 자유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S.프로이트와 K.마르크스의 영향하에서 출발한 프롬은, 파시즘의 선풍에 대중이 말려들어가는 것을 목격한 체험을 통해 ‘근대인에게서의 자유의 의미’를 추구하는 데에 그의 사색활동의 전부를 바쳤다. 현대에 와서 일반화되어 가는 신경증상이나 정신적 불안은 개인적인 정신분석 요법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으며, 프랑크푸르트학파에 프로이트 이론을 도입하여 사회경제적 조건과 이데올로기 사이에 그 나름의 사회적 성격이라는 개념을 설정하였다.

 


 

이 소설엔 수많은 철학자, 사상가, 이데올로기, 변증법의 논리 등 등장하지만 저자의 소설을 쓰는 데 큰 힘을 준 아놀드 토인비를 뺄 수 없다. 토인비는 문명이 도전과 응전의 연속 과정으로 탄생했으며, 도전과 응전이 인류를 진화시키고 과학과 문화를 발전시켰다고 『역사의 연구』에서 주장했다. 이와 같이 생성과 소멸, 전진과 후퇴, 진보와 퇴보, 건설과 파괴는 도피와 회귀를 바탕으로 역사를 만들고 문명을 꽃피웠다.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전쟁과 이념의 대립, 종교적 갈등, 문명의 충돌 또한 이 법칙 아래서 발생하고 봉합되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사용한 변증법의 논증과, 헤겔이 현상학적 인식론에 적용한 정립(테제)- 반정립(안티테제)- 종합(진테제)도 도피와 회귀의 틀 안에서 구현되었다. 이와 같이 도피와 회귀의 법칙은 학문과 역사, 종교, 이데올로기를 견인하며 인류를 성장시켰다. 저자가 토인비의 이론을 도입, 소설에 적용한 예이다.

이 처럼 소설 『도피와 회귀』는 위와 같은 현상들에 대해 논증을 해 보이면서 줄거리를 끌고 간다. 저자는 또한 한반도가 처한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도피와 회귀의 법칙을 적용해 분석하고 풀어간다. 소설의 주인공은 남북분단과 좌우 이데올로기의 충돌로 인해 파멸의 길을 걷는다. 남과 북 그 어디에서도 살 수 없는 주인공은 결국 제3국으로의 도피를 결심한다. 이는 작고한 고(故) 최인훈 작가의 『광장』이란 소설에서도 다뤘다. 그야말로 주인공의 도피는 이념적 도피가 아니라, 삶 그 자체로부터의 도피이다. 남한당국은 주인공이 북으로 망명할 것을 우려해 방해공작을 펼친다. 남한당국의 시선으로 보면 주인공의 망명은 체제에 대한 불복일 뿐이다. 이처럼 도피와 회귀는 주인공의 삶을 날카롭게 재단하며 그 존재를 드러낸다.

저자 최인은 80여 권의 철학서를 본문 곳곳에 인용하는 한편,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제한하고 결정짓는 중요한 개념들을 소설 속에 등장시킨다. 즉 사랑, 행복, 진리, 진실, 희망, 절망, 슬픔, 고독, 죽음, 삶에 대해 하나하나 정의를 내리면서 독자로 하여금 함께 고뇌할 기회를 선물한다. 일단 용어와 이론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이해한 다음 스토리 과정을 살펴보면 독자들은 놀라운 인간 존재에 대한 숙고와 삶의 원리, 어쩌면 삶에의 활력 있는 투지를 선물 받을지도 모른다.

 


 

"(그는) 푸른 하늘을 향해 빨아들인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태초에 남자와 여자는 에덴동산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살았다. 거기에는 평화가 존재했으며, 생계를 유지해야 할 의무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선택이 없었고, 판단이 없었으며, 갈등도 없었다. 그와 같은 것이 없는 대신 그들에게는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가 금지되었다. 그들은 용감하게도 신의 명령을 어기고 자연과의 조화상태를 깨뜨렸다. 선과 진리의 명령에 반항하는 것은 강제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행위를 뜻한다. 그것은 또한 인간 이전의 무의식적인 존재로부터 인간의 수준으로 나오게 되는 행위를 의미한다. 권위의 명령에 대항하는 행위, 즉 죄를 범하는 것은 최초의 인간적인 행위였다. 신화에서 죄악은 그 형식적인 측면으로 볼 때, 신의 명령에 대항해 행위하는 것이다. 반면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죄악은 지혜의 열매를 따먹는 창조적 시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로운 행위인 불복종은 이성의 시작이고 지성의 각성인 셈이다. 이성의 시작과 지성의 각성.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샤워를 하는 화니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외쳤다.

“역시 그곳으로 가는 게 좋겠어.”

 

『도피와 회귀』는 작가 최인이 2005년 3월에 집필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났다. 그동안 최인은 도피와 회귀를 108번이나 수정했다고 한다. 그 숫자를 정확히 짚어낼 정도로 도피와 회귀에 대한 그의 애정은 남달랐다. 집필 시작 시점은 오래 전이지만 소설이 가리키는 것은 우리의 ‘오늘’이다. 주인공 최명하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 보면, 우리 내면에 잠재되어있는 ‘떠나고 싶은 욕구’와 ‘다시 돌아가고 싶은 욕구’를 발견하게 된다. 소설 속에 그려진 1년은 거대한 역사의 축적이며, 최명하의 삶은 도피와 회귀의 굴레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같다. 역사는 반복되며, 우리는 우리가 존재하기 전의 과거까지 돌아봐야 한다는 걸 소설은 알려준다.

『도피와 회귀』는 이 시대를 돌아보고, 가름하고, 통섭(統攝)하는 소설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범국민 교양서이자 인문학적 소양을 쌓을 수 있는 철학소설이다. 일반인, 대학교수, 정치인, 종교인, 언론인, 예술가, 공무원, 회사원, 노동자, 학생 모두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미래를 전망하고 통찰할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 : 최인(崔仁鎬)

 

본명은 최인호다. 경기도 여주시 명성황후탄강구리에서 태어났다.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 「비어 있는 방」으로 등단했으며 2002년 『문명, 그 화려한 역설』로 1억 원 고료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2008년-2019년 12년간 ‘최인소설교실’을 운영했다. 인천지방경찰청에서 13년 근무했으며 파출소장과 형사반장을 역임하였다. 저서 『안개 속에서 춤을 추다』, 『킬리만자로 카페』, 『뒤로 가는 버스』, 『장미와 칼날』, 『크리스마스 전야』, 『그 바다엔 낙타가 산다』, 『인베이더』, 『그들 그리고』,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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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나는 죽어도 좋았다
김병종 지음 / 너와숲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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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이 책 『거기서 나는 죽어도 좋았다』의 저자 김병종을 이름만으로 알고 있다. 그의 전작을 몇 권 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의 선택은 그의 글의 아름다움에 반해서이다. 그는 화가로만 알려져 있지만 '미학' 전공자로 독자는 알고 있다. 서울대 미대와 동대학원에서 동양학을 전공했다. 미학은 일반 사람들에게도 자주 사용되기는 하지만 '아름다움'이란 현상, 아름답게 보이는 것들에 대한 학문적 탐구 영역으로 알고 있다. 독자도 마찬가지다. 개념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미학은 그렇게 아름다움만 추구하는 이론은 아니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두산백과사전에 따르면 미학(Aesthetics, 美學)은 가치로서의 미, 현상으로서의 미, 미의 체험 등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굳이 학문 분야로 분류하면 철학에 가깝다. 플라톤이 미에 대한 연구를 최초로 제기했다. 이 사전에도 여러 학문의 상위에 있는 미 그 자체의 학문을 제창한 플라톤을 대표로 하는 서양의 전통적 미학은 초월적 가치로서의 미를 고찰한다고 밝히고 있다.

미학이라는 말을 오늘날과 같은 의미로 처음 사용한 사람은 라이프니츠볼프학파의 A.G.바움가르텐이다. 그는 그때까지 이성적 인식에 비해 한 단계 낮게 평가되고 있던 감성적 인식에 독자적인 의의를 부여하여 이성적 인식의 학문인 논리학과 함께 감성적 인식의 학문도 철학의 한 부문으로 수립하고, 그것에 '에스테티카(Aesthetica)'라는 명칭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미(美)란 곧 감성적 인식의 완전한 것을 의미하므로 감성적 인식의 학문은 동시에 미의 학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여기에 근대 미학의 방향이 개척된 것이다. 고전 미학은 어디까지나 미의 본질을 묻는 형이상학이어서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초감각적 존재로서의 미의 이념을 추구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근대 미학에서는 감성적 인식에 의하여 포착된 현상으로서의 미, 즉 ‘미적인 것(das Asthetische)’을 대상으로 한다. 이 ‘미적인 것’은 이념으로서 추구되는 미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우리들의 의식에 비쳐지는 미이다. 그러므로 미적인 것을 추구하는 근대미학은 자연히 미의식론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임마뉴엘 칸트는 감성적 현상으로서의 미의식의 기초를 선험적인 데 두었지만, 의식에 비쳐지는 단순한 현상으로서의 미적인 것을 탐구하는 방향은 당연히 경험주의와 결부된다.

 


 

오늘날에는 미적 현상의 해명에 사회학적 방법을 적용시키려는 ‘사회학적 미학’이나 분석철학의 언어분석 방법을 미학에 적용하려고 하는 ‘분석미학’ 등 다채로운 연구분야가 개척되고 있다고 한다. 같은 사전에 의하면 '추'(ugliness, 醜)를 미(美)에 대립하는 미적 범주의 한 부분이라 풀이하고 있다. 추는 미학상의 용어로서, 추와 미의 관계를 엄밀히 따지면 ① 추가 미 이전이라고 생각되는 경우 ② 반미적이라고 생각되는 경우 ③ 보조적 의미로, 미적 카테고리의 하나라고 생각되는 경우 ④ 자립적 의미로, 미적 카테고리의 하나라고 생각되는 경우로 나뉜다. ①에서 추는 미적 형성화 이전의 소재로서 미적 가치에 대한 중성적 성격을 띠어, 다른 일체의 소재와 평등하게 취급된다. 예를 들면, 예술을 위한 예술을 기치로 하는 입장(일종의 미적 형식주의)으로서 성모와 채소를 평등시하는 것과 같은 입장이다. ②에서 추가 미적 형성화를 거부하는 경우 그것은 반미적이 된다.

예를 들면, 칸트는 추 중에서도 구토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미적 형성화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추 일반을구토적·반미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고전주의 예술에서는 숭고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추는 반미적인 취급을 받는 것이 보통이다. ③의 경우 미적 카테고리론의 대부분은 추를 우미·숭고·골계와 병행하는 미적 카테고리로서 인정하지만, 엄밀하게는 이 경우 추는 숭고 및 골계를 위한 보조수단으로서만 미적 카테고리로서 인정된다. 예컨대 고전주의의 숭고가 선을 목표로 하는 데 대하여, 진을 목표로 하는 사실주의(일종의 미적 내용주의로서)의 예술에서도, 추는 마찬가지로 보조적 의미로 인정된다. 예술을 위한 예술주의와 사실주의와는 어느 의미에서는 반대 방향을 지향하고 있으며 전자가 추에 대하여 무기적인데 대하여, 후자는 추에 대하여 수단적 의미에 있어 호의적이다. ④의 경우 추는 근대 데카당파의 예술에 이르러 비로소 자립적·미적 카테고리의 지위를 획득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포나 와일드를 선구로 하는 불쾌·악·허위·배신 등으로서의 추의 예술이 그것이다. 또한 실존주의 예술에서는 보다 깊은 의미의 추가 자립적·미적 카테고리로서 인정된다. 예컨대, 구토를 불러일으키는 것마저도 거기서는 미적 카테고리로 인정된다.

 


 

이 책은 저자의 '화첩기행' 중 가장 최근작이다. 전작이 여러 권 있다는 말이다. 물론 '화첩기행'은 저자의 독자적 저서명이기도 하지만, 저자가 낸 책의 상당수가 그림과 글이 함께 실려 있어 '화첩기행' 시리즈로서 발간되기도 한다. 저자는 이 책 『거기서 나는 죽어도 좋았다』를 출간하면서 "아름다운 것에 허기져 한세월 세상의 풍경을 헤집고 다녔다. 여기 다시 꺼내 보고 싶은 그 풍경 스케치의 일부를 내놓는다. 몇 쪽은 이미 발표된 글과 겹쳐지기도 하고 더러는 세월이 흘러 시간의 퍼즐이 잘 맞지 않는 곳도 있다. 풍경 자체가 바뀌었거나 혹은 그 풍경을 대했던 마음 자리 또한 달라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설렘 속에 내가 만나거나 지나왔던 곳들은 첫사랑처럼 기억 창고에 차곡히 보관되어 있다. 가끔씩 햇빛에 바래거나 희미해진 그 기억들을 다시 꺼내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나의 여행을 새로 시작해본다. 이번에는 나 역시 여행의 추억을 들려줄 그대가 필요하다. 그 기억들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 풍경이 풍경에 연이어 있듯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자는 저서 『화첩기행』 이후 약 7년 여 만에 돌아온 김병종 화백이 여러 나라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그의 눈에 저장된 풍광과 외국 예술가에 대해 탐구하고 사색한 내용을 담았다고 출판사 측은 책 소개글을 남겼다. 예술가들의 흔적을 비롯해 그들이 재능을 키워간 도시에도 초점을 맞춰 공간과 예술가의 유기성을 작가만의 섬세한 사유로 그리고,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여행자의 시선으로 그려냈다는 평과 함께다.

 

왜 지극한 아름다움 앞에서는 눈물이 나는 걸까.

왜 그 아름다움의 한가운데 고여 있는 마알간 슬픔이 보이는 걸까.

왜 모든 아름다움은 곧 지고 말 것 같은 떨림을 주는 걸까.

왜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이 책에는 전작 『화첩기행 5』에 실린 여행지가 겹친 곳도 있다. 그러나 저자가 밝혔듯 겹친 지역은 있지만 전작을 그대로 옮겨 심은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는 그때 쓴 느낌과 또 다른 감정을 말하고 있다. 해가 지는 서쪽이라는 뜻의 마그레브(Maghreb). 지는 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실제로 마그레브 지역은 유럽사람들의 휴양지로 인기가 많다. 그렇지만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한국에서 가기는 쉽지 않다. 알려진 정보도 아시아나 유럽 그리고 북미에 비해서는 많지 않다. 이런 마그레브 지역을 찾기로 한 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던 어떤 여름. 원래 혼자 떠나려 했지만 아내와 아들 그리고 전문 사진가 겸 가이드 이렇게 4명이 떠났다. 목적지는 알제리와 튀니지, 모로코 그리고 몰타. 책에는 몰타가 빠지고 이집트를 넣었다. 몰타를 북아프리카로 보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많았고, 북아프리카를 논하면서 이집트를 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책에는 「치유하는 사하라」에 잘 나타나 있다. 사하라의 황량한 풍경 속에는 가난하고 외롭게 죽어간 이들의 공동묘지도 있다고 말한다. 동양화가이지만 '색'을 중요시한다는 저자는 사하라의 강렬한 붉은 해에서 '더 붉은색'을 보고, 사막에서 꽃과 나무도 '더 진한색'으로 느낀다고 한다. 공동묘지는 평생을 남의 장례식에 불려 다니며 대신 곡을 해주는 일을 하다가 죽어간 이른바 '대곡자의 묘'다. 대신 울어주는 일을 업으로 하며 살다가 죽어간 여인들의 공동묘지다. 밤이면 가끔씩 여우며 이리가 몰려다니며 묘를 파헤친다고 하여 기분 나쁜 곳이라 일컬어져 지나가는 차들조차 빨리 가려고 한다는 사하라의 어느 지점에서 저자는, 밤 비행을 하다 추락한 체험을 살려 『어린 왕자』를 쓴 생텍쥐페리를 생각해 내기도 한다. 낮에는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사막이지만 밤이 되면 기분 좋은 서늘함으로 바뀐다고 한다. 그러나 사막의 모래바람을 만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모로코에서 길 안내하던 한국 여인을 생각해 낸다. 모든 여행객의 발을 묶어도 이 여인은 사막으로 여행을 계속해 남들은 모르는 치유와 회복, 그리고 삶에 대한 열망을 안고 돌아오는 것을 보고 영감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죽어도 좋을' 장소는 어디일까. 독자는 꼭 기억해뒀다가 못 가본 곳이라면 버킷리스트에 올릴 참이다. 다행히 저자는 1부 1장에 책 표제어와 같은 제목으로 썼다. "작은 여객선을 타고 파트모스 섬(성경에는 '밧모'라고 번역되는, 세례 요한이 〈요한 계시록〉을 썼다고 전해지는 섬)을 찾아가던 에게해 여행을 잊을 수 없다. 옥색과 청회색과 은색, 그 위에 보석 가루를 뿌린 듯한 바다. 뱃머리로 나와 황홀한 그 바닷속을 바라보자니 불현듯 '여기서라면 죽어도 좋겠다'라는 생각이 스친다."고 표현한다. 이어 저자의 사유가 계속된다. "내 남루한 육신마저도 저 신비한 바닷물에 씻기고 헹구어져 함께 흘러갈 수 있다면, 그렇게 흐르고 흘러 마침내 빛의 문 앞에 닿을 수 있다면 하는 생각. 왜 지상의 죽음은 늘 음침함과 상(傷)함과 애곡 속에 있어야 하는 걸까. 사는 일이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라면 죽음 또한 그러해야 할 것 아닌가. 아니, 사는 일이야 눈물겹다고 하더라도 죽음만은 아름다워야 하지 않겠는가. 저토록 황홀한 물빛의 아름다움 속에 마지막 육신이 뉘어질 수는 없는 것일까. 물이 있는 곳에는 생명이 있다. 그런데 모태의 양수 속에서 나온 생명체는 왜 물이 아닌 습기 찬 땅속에 묻혀야 하는 걸까. 저 시리도록 푸른 물속으로 내려지는 죽음은 왜 없는 것일까."

저자는 에게해의 물빛을 떠올리다 보면 늘 죽음이 함께 떠오른다고 말한다. 화사한 죽음이. '거기서라면 죽어도 좋았다' 저자의 죽음에 대한 사유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2월 타계한 고(故) 이어령 선생에 대해 「밤중에 온 하얀 꽃」에서 세상을 떠나기 몇 시간 전 저자의 집에 소담하고 하얀 양란을 보내왔다고 한다. 저자는 자신은 어디에서 지상의 삶을 마감하게 될까. 내게 죽음의 미학을 가르쳐주고 떠난 이어령 선생처럼 나도 창밖에 푸르고 청정한 소나무가 있는 나의 집에서 죽음을 맞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이처럼 가족들이 둘러선 속에서 일상의 한 자락처럼 그렇게 죽음의 페이지로 넘어가고 싶다. 내가 퍼트린 색의 분자들이 ‘밈’이 되어 민들레 꽃씨처럼 퍼져 나가는 가운데 고요히 떠나고 싶다. 아련히 찬송가의 코러스를 들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라는 생각을 추스리기도 한다.

 


 

이 책은 다른 여러 책과 마찬가지로 '여행 산문집'이란 문학 분류상 성격을 표지에 실었다. 이는 저자가 여행을 하면서 얻은 그림과 글이 책으로 발간될 경우 많은 독자들에게 심리적 치유와 희망, 의지를 담은 메시지를 강렬하게 표현하기에 매우 적절한 방법으로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독자에게는 보인다.

“여행을 하면 나도 잘 모르는 제3의 에너지가 발동되는 것 같아요. 신명이랄까. 그리고 독특한 성벽인데, 나는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것을 글로 적고 그림으로 그렸을 때 비로소 여행의 완성, 즉 마침표를 찍을 수 있어요. 그래서 아주 오래전부터 여행을 떠나면 글을 끄적거리고, 평소엔 잘 그리지도 않으면서 여행을 할 땐 호들갑을 떨면서 그림을 그리죠. 숙제처럼 밤에 아무리 피곤해도 꼭 글을 쓰고 그림은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스케치만이라도 해두죠.눈으로 보고, 소리로 듣고 그런 지각적인 체험, 망막 속에 남아 있는 사람과 사물의 풍경, 그런 것들을 체험하는 것으로 여행이 종료되는 게 아니라, 낮 동안 내 감성의 포충망 속에 잡혔던 것들을 밤이 되어 다시 끄집어내 글로 정리하고, 그림으로 그려야 해요. 내 나름대로의 문장과 그림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영 찜찜한 기분입니다. 표현하지 않은 채 구경만 하고 돌아오면 어쩐지 변죽만 울린 것 같죠. 표현을 한 후에야 여행이 육화(肉化)되는 것 같아요. 제 여행의 방식은 그런 면에서 좀 독특한 것 같아요.”

여행의 방식이 독특한 저자 덕분에 여행의 제약이 따르는 요즘, 간접적으로나마 눈과 마음을 충족시켜 주는 이야기를 만나게 된 자체만으로도 독자들은 위안을 받을 수 있다. 꼭 필요했던 이야기이기에 마음에 풍족한 힐링을 가져온다. 저자의 에세이 여행을 마치는 즈음엔 독자도 기억하고 싶은 삶의 순간들을 많이 경험하고 어떠한 방법으로든 표현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삶의 에너지가 솟는 이유다.

 


 

얼마 전 작고한 이어령 선생은 화가 김병종에 대해 “날치가 물을 차고 오르듯 힘찬 붓질과 아름다운 색채로 생명의 시를 쓰는 화가”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서울대 미대 학장을 지낸 김병종 저자는 2010년대 ‘생명의 노래’에 이어 최근 2, 3년 전부터 ‘풍죽’과 ‘송화분분’ 등의 작품을 공개, 국내외 미술애호가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다. 런던의 사치갤러리(Saatchi Gallery)는 김병종 화백을 올가을 런던 아트페어에 초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저자 김병종의 최신 작품은 이 책에도 수록되었으며, 중국 최대의 현대미술관인 진르(今日)미술관과 독일의 구아르드니 미술관, 헝가리 기욜미술관, 프랑스 몽트니갤러리와 가나 보브르갤러리, 전북도립미술관 등에서 대규모의 초대전과 기획전을 열은 바 있는 저자는 세계 3대 아트페어로 일컬어지는 피악(FIAC), 바젤, 시카고 등의 아트페어에도 두루 작품을 출품했다.

 

저자 : 김병종(金炳宗)

 

1953년에 태어나 서울대 미대와 동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서울, 파리, 시카고, 브뤼셀, 도쿄, 바젤 등지에서 수십 차례 개인전을 가졌으며, 국제 아트페어와 광주 비엔날레, 베이징 비엔날레, 인디아 트리엔날레 등에 참여해왔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미술기자상, 선미술상, 대한민국 기독교미술상, 안견미술문화대상 등을 수상했고,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다. 대영박물관과 온타리오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내외 저명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에도 초기작 〈바보 예수〉부터 근작인 〈풍죽〉 〈송화분분〉까지 다수의 작품이 상설전시되고 있다. 중국 시진핑 주석의 국빈 방문 때는 그의 작품이 증정되기도 했다.

글 쓰는 화가 김병종은 대학 시절 동아일보,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함과 동시에 전국대학미전에서도 대통령상을 받는 등 일찍부터 글과 그림의 경계를 허무는 전방위적 예술가의 행보를 보여왔다. 동양철학 연구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중국회화연구』를 통해 한국출판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서울대 미대 학장, 서울대 미술관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로 있다. 대표작 『화첩기행』(전5권) 외에 『바보 예수』 『생명의 노래』 『오늘 밤, 나는 당신 안에 머물다』 『자스민, 어디로 가니?』 『나무 집 예찬』 『감히, 아름다움』(공저) 등을 썼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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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사랑입니다 - 心聽이가 써 내려간 감성 시
임정희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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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우리는 사랑을 가졌고, 사랑은 세상의 모든 것에 깃들어 있다. 이로써 우리 삶의 상처나 내면과의 불통도 치유되고 회복한다. 희�로�애�락�애�오�욕 칠정(七情)이 하나 되어 인생 전체의 숲이 만들어졌고, 삶은 선물이었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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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사랑입니다 - 心聽이가 써 내려간 감성 시
임정희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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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상처가, 심해질 경우 정신적인 장애로 발전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로 일반화된 의학 상식이다. 정신적인 장애가 발생될 경우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회복될 수도 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고 한다. 사실 의학계에서는 인간의 힘으로 치료하기 힘든 병 중의 하나로 정신 장애를 꼽는다. 이를 두고 "아직까지 인간의 두뇌 치료는 신의 영역이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끊임없는 의학계의 노력과 발전으로 수많은 병을 치료해온 의사들은 실제 인간의 몸에서 일어난 병 중에서 인간이 정복시킨 병은 천연두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팬데믹으로 이어진 유명한 감염병 중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 균도 아직 완전히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의사들의 의견도 있다고 하니, 인간 몸의 신비스러움에 다시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어 접촉하지 말 것을 요구받고 있지만 인간의 삶이 비대면으로 소통하고 유지될 수 있을지는 또다른 문제여서 쉽게 정복되지 않을 것 같다. 거기에 호흡기 병은 바이러스의 자체 진화하는 능력(변이)에 의해 치료제 개발도 더디다고 의사들이 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바이러스 감염병은 전염이 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병이지만 정신 장애는 감염의 우려가 없는 질환이기 때문에 인류의 존속에는 현재까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서 치료제 개발이 더딘 게 아니냐는 의문도 생긴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의사라 할지라도 아직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고 육체에 명령을 전달해 실행케하는 역할에 대해서는 밝혀냈지만 이상이 생긴 경우의 원인에 대해서는 대부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정신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을 찾아가는 의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神)이 허락하지 않은 영역이라는 표현은 그만큼 치료가 어렵다는 다른 표현으로 들린다. 정신 장애 치료는 그 증상이나 경중의 차이를 두고 치료하는 것으로 대략은 알고 있다. 그 중의 하나의 치료법이 심리 치료라고 한다. 현대 심리 치료의 개척자는 프로이트로서 동료인 브로이어가 심리 치료하는 장면을 본 것을 계기로 프로이트는 심리 치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브로이어가 치료하고 있었던 안나 O라는 젊은 여성은 두통, 기침, 오른쪽 팔의 마비와 같은 여러 유형의 신체 질환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치료자가 안나 O에게 과거의 정서적 문제를 이야기하도록 하면서 앓고 있던 신체 증상이 사라졌다. 브로이어와 프로이트는 자신의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이 증상을 야기시킨 억압된 감정들을 해소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 그러나 브로이어는 치료 중에 환자와 치료자 사이에 강한 정서적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 그 이상 진전시키지 않았으나, 프로이트는 이를 다른 환자에게 적용하여 정신분석이라는 체계적 치료 방법을 확립했다. 그의 정신분석은 많은 추종자들이 생겨났으며, 현대 심리 치료의 영역은 크게 확대되어 다양한 치료법이 개발되어 치료 유형이 매우 다양해지게 되어 오늘에 이른다고 두산백과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이 시집의 저자 임정희는 심리상담치료 전공자로 심리 치료에는 시(詩) 등 예술이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치료 경험상 예술의 모든 분야가 인간의 정신활동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이를 심리치료에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예술의 여러 분야 중에서 저자가 사용하는 방법은 어떤 것인지 독자로서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시(詩)도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하기에는 어렵지 않다. 심리 치료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독자로서 한 추정이니 널리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독자의 추정 근거는 저자가 시를 쓰고 시집을 낸 시인이기 때문이다. 시는 인간의 오랜 정신활동 중의 하나로 나온다. 자신의 정신생활이나 자연, 사회의 여러 현상에서 느낀 감동 및 생각을 운율을 지닌 간결한 언어로 나타낸 문학 형태로 시를 일컫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는 어떤 경로를 거쳐 발생하며 또 발전해 왔을까. 문학이론에 어두운 독자는 두산백과사전에 의존한다. "어린이가 내적 감정의 솟아오름을 육체적으로 나타내려 할 때, 표정과 함께 몸까지 떨며 그리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노래를 입속으로 흥얼거리는 수가 있다. 미개인에게 있어서도 이와 같아서 희로애락의 감정은 춤이나 소박한 노래라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오늘날의 춤의 기원과 더불어 시의 기원을 거기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단계에서 한걸음 나아가 생산 노동에 수반하여 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집단적으로 불리어진 노동가요나 언어의 초자연적인 힘을 믿는 고대 신앙과 결부되어 욕망이나 기대의 실현을 바라는 주문(呪文)으로서의 기도가(祈禱歌)의 단계를 지나 그 자체로서 양식을 완성하려는 자각이 생김으로써 문학으로서의 시가 탄생되는 것이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 시집은 3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다. 1장 「계절에 관한 단상」, 2장 「내면의 고백」, 3장 「사랑에 관하여」에 모두 99편의 시가 실려 있다. 이 시집에는 모든 등장인물과 물건, 자연현상, 인간행위 등에 '사랑'이 담겨 있다. 심지어는 인간에게 해로움을 줄 수도 있는 것들, '외도', '소주'마저 사랑이 넘쳐 흐른다. 첫 시 '아침'이다.

 

어둠을 뚫고

내게 온 당신은

고요하지만 설렘을 안겨 줍니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을 품으며

살아가는 기쁨을 안겨 준 당신!

 

당신은 내게

선물이고 모두의 희망입니다

 

아침의 메타포로 당신(배우자나 연인)을 노래했지만 엄연히 사랑의 마음이 없다면 나올 수 없는 표현이다.

 


 

이런 시들이 이어지다 마지막 99번째 시에는 '고백'이다.

말할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

용기 낸다

 

"사랑해!"

말하고 보니 쑥스럽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사랑이

두 배가 되었네

 

라고 노래하고 있다. 시인은 사랑의 마음으로 시를 썼고, 시는 사랑의 마음을 두 배로 키워줬다. 시인은 「에필로그」에 "인생을 돌아보면 제대로 살았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냈던 순간뿐이다."라는 헨리 드루먼스의 말을 인용한다. 시인은 이어 희·로·애·락·애·오·욕 칠정(七情)이 하나 되어 인생 전체의 숲이 만들어졌고, 삶은 선물이었다는 깨달음과 그 숲속에 열매 맺은 칠정이라는 과실은 모두가 '사랑'이었음을 알게 됐다고 토로한다.

 

저자 : 임정희

 

인천에서 3녀 2남 중 셋째 딸로 태어나 ‘필남(남자가 필요하다)’이라 불리며 성장함. 이후 심리상담치료 전공자로 현재 예명은 心聽(심청)이. 우리나라 고전 소설 심청전에서 맹인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띄우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팔아 인당수에 몸을 던진 효녀 심청이가 아니라 마음 心(심)에 들을 聽(청)을 쓰는, 상대의 마음 이야기를 왕같이 받들어 열 개의 눈으로 보고 귀로 귀하게 들어 주는 사람. 현재 한국인성교육실천협회, 임정희 심리상담센터, 모바일 심청이 마음학교를 운영하며 통합예술치료사로 미술, 음악, 춤, 사진, 독서, 영화, 연극, 그림책, 시로 내담자의 지친 마음을 치유, 회복, 변화, 성장을 돕고 있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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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블루스처럼
권순정 지음 / 메리포핀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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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잘 몰라도 삶의 방향과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에세이다. 저자의 일과 삶을 바탕으로 인생을 이야기하는 에세이라 더욱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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