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고 싶은 수학
사토 마사히코.오시마 료.히로세 준야 지음, 조미량 옮김 / 이아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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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학교 다닐 때 수학을 매우 싫어했다. 지금은 모르지만 독자가 고등학교 다닐 시기에는 대학 입학을 위해 '문과반'과 '이과반'으로 나뉘어 있었다. 문과반이라고 해서 수학을 배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수학1. 수학2로 나뉘어 있었고, 문과반은 수학1만 배웠다. 당연히 대입에서도 문과학생들은 수학1 범위에서 출제됐고, 수학2는 이과반이나 공대 의대 등의 몫이었다. 우리나라 산업화 시대이니만큼 이과반은 대학문도 넓었고, 취직에도 쉬웠다. 당연히 7대 3, 학교에 따라서는 8대 2까지 이과반으로 몰렸다. 독자 역시 부모님의 의견을 좇아 이과반을 선택했다. 그러나 수학은 잘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수학이 '걱정반 기대반'의 과목이었다. 그러나 절반의 기대는 절망으로 마침내 포기로 바뀌었다. 왜 그런지 지금도 원인은 모르지만 그렇게 문과대학으로 진학했다. 그 이후 수학은 독자의 머릿속에 '싫은 과목'으로 남았다. 지금도 수학 얘기가 나올 때면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다. 반면 책 읽기나 국어 영어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정상적이라 할 정도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당연히 대학 졸업 이후 수학에 관련된 책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안 좋은 기억을 바꿀 수는 없어도 수학과 친해지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아주 기초적인 수학의 원리부터 배우면 빠른 시간 내에 왜 미적분을 배우는지도 모른 채 수학 공부를 했던, 안 좋은 추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사실 수학을 배울 때는 미적분이 어디에 필요한지, 어떤 원리로 생겼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공식을 외우고 문제를 보면 문제가 요점은 무엇인지 해결하려 들고, 끙끙매며 대입한 공식이 실패했을 때의 좌절감과 열패감을 떨쳐버릴 것 같아서이다.

 


 

이 책 『풀고 싶은 수학』은 사실 '어린이용 도서'이다. 아마 초등학생용인 것 같다. 독자는 초등학교 때 '수학'이란 과목이 없었고 사칙연산이란 '산수'만 배웠다. 지금은 어린이들도 '수학'이란 과목이 있는가 싶다. 이 책은 일본의 수학자들이 수학과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학의 원리와 문제 풀이의 원리 등을 제대로 짚어 설명하는 책이다. 출판사 측이 소개하는 '어른도 빠져드는 신기한 수학책'이란 표현이 딱 맞다. 책을 펼쳐보면 “이게 수학책이라고!?”란 생각이 먼저 든다. 『풀고 싶은 수학』엔 수학 공식 대신 흔히 볼 수 있는 우리의 일상 속 사진으로 가득하다. 부둣가 말뚝에 로프가 걸려 있는 사진이 있고 아래엔 딱 네 줄의 간단한 설명과 질문이 있다. “왼쪽의 배가 먼저 출항하려면 로프를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를 보는 순간 초등학교 도형 문제 이후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수포자’도, 초등학생도, 학부모도, 심지어 수학 능력자까지 퀴즈를 풀듯 시간을 잊고 빠져드는 묘한 마법이 시작된다.

이 책은 일본 NHK에서 수학 교육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는 유명 수학자가 만든,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혁신적인 수학 문제집이라고 한다. 복잡한 공식과 원리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하는 ‘비주얼 수학’이다. 처음 발간되자마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일본 사회에 유례없는 수학 열풍을 가져온 화제의 베스트셀러이다. 일본 〈아사히신문〉, 〈문예춘추〉 등 각종 유력 매체에서 앞다투어 책을 소개하였으며, 수학 분야 도서임에도 매우 이례적으로 아마존 종합 베스트 1위에 장기간 올라 이 또한 큰 이슈가 될 정도로 화제가 됐던 책이다.

 


 

책을 펼치면 한눈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제가 가득하다. 수수께끼를 푸는 듯한 재미를 즐기면서 자신도 모르게 논리를 세우는 방법을 익히고 사고력이 훌쩍 향상된다. 총 23문제, 휘리릭 넘기면 30분도 안 돼 다 볼 수 있지만 30분 만에 책장을 덮는 이는 없다. 어느새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 뚫어지게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이 책의 저자들은 모두가 영상 미디어를 이용해 수학 교육의 혁신을 주도해온 최고의 전문가들이다. 특히 1저자인 사토 마사히코는 이미 20년 넘게 영상으로 일본의 수학 교육의 저변을 다져왔으며 비주얼 수학 교육의 개척자이다. 그가 직접 제작한 NHK의 교양프로그램 〈피타고라스위치〉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시청률 톱을 기록하는 최고의 교양 예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일본을 넘어 미국에서도 마니아를 양산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칸 영화제는 그가 제작한 독특한 수학 다큐멘터리에 주목하여 이례적으로 두 번이나 단편 경쟁 부분에 초청하기까지 했다고 하니 수학을 외면했던 독자에게도 눈에 번쩍 띌 만큼 친근한 수학책이다.

이와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사토 교수는 일본 수학회 출판상과 교육부 장관상을 받았다고 한다. 2저자와 3저자 역시 영상과 IT혁신 분야에서 일본 최고의 크리에이터에게 수여되는 D&AD 상을 수상한 실력파 수학자들이다. 그동안 사토 마사히코 교수와 그의 팀이 축적해온 수학 교육의 철학과 노하우가 이 책에 고스란히 집약되어 있다. 사토 마사히코 교수는 ‘비주얼 수학’의 장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이용해 수학 문제를 만들면 한눈에 문제 의도가 보인다. 한눈에 문제를 풀고 싶어진다.”(P.131) 사토 마사히코는 이 책의 대표 집필자다. '후기를 대신하여' 「이 책은 이렇게 탄생했다」란 글을 적었다. "인간의 중요한 인지능력 중 하나는 '지각 향상성'이다. 같은 대상이라도 보는 방향, 거리, 조명 등 상황이 다르면 그것을 보는 방법(=망막에 비치는 모습)이 변한다. 그러나 인간은 그 변화된 모습에서 대상이 변함없이 가진 본래의 형태와 색을 지각할 수 있다. 이것이 지각 향상성이다. 내가 돌발적으로 한 행동, 즉 화장실 타일을 촬영하고 그 사진의 왜곡된 도형에 거칠게 선을 그리고 글귀를 쓴 행동은 결과적으로 문제를 푸는 사람에게 지각 향상성을 불러일으킨 셈이다. 즉 주어진 문제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후, 왜곡된 부분을 수정해 자신에게 다시 제시한 것이다. 실제 타일 사진을 보고 내면에서 새로운 이상적인 정사각형의 모눈을 만들어 거기에 수학 문제를 적용한 것이다. 조금 비약적일 수 있지만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오랫동안 수학을 가르치는 방법을 연구하고 모색해왔다."(p.130)

이후 저자는 영상 교재를 실제로 사용해 〈눈으로 보는 산수〉, 〈피타고라스위치〉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모두 교실에서 영상 교재로 사용하는 성과물이다. 왜 서적, 즉 문자를 중심으로 한 미디어에서는 수학을 다루지 않았을까? 아니, 왜 다루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을 갖고 있다 왜곡된 타일 사진으로 문제를 만들었을 때 그 이유를 알았다고 토로한다. "수학의 문장은 문제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수학의 문장은 의무감이 들게 한다." 이 두 가지 난제가 수학 교육에 늘 가로놓여 배우는 사람의 앞길을 막았다고 주장한다. 이 왜곡된 타일 사진이 알려준 것이라고 말한다. "한눈에 문제 의도가 보인다." "한눈에 문제를 풀고 싶어졌다."

 


 

“버스의 창문을 조금 열었다. 열린 부분의 면적을 구하라”(P. 20) 창의 높이와 창문이 열린 너비는 제시되었지만, 창문틀과 창문의 둥근 모서리 면적을 알아내기 위해 눈씨름을 한다. 하지만 정작 이 문제의 해답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달걀처럼 사고의 전환을 통해 지극히 단순한 이론으로 정답을 찾아내는 것이 『풀고 싶은 수학』의 진짜 재미이다. 공식을 달달 외워 무조건 대입해서 정답을 도출하는 딱딱한 수학적 머리로는 이 책의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수학이 사는데 무슨 도움이 되는지 의문을 품어온 모든 사람들에게 『풀고 싶은 수학』은 아주 좋은 모범 답안이 되어줄 것이다. 수학 문제가 현실의 세계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 비로소 눈을 뜨게 된다.

이 책엔 모두 23개의 문제가 들어 있다. 대단히 단순하지만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수학적 정의와 논리 사고를 담고 있기 때문에 교육 관점에서 대단히 가치가 있다. 수학이 명확한 규칙을 확립하는 학문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우치게 된다. 무엇보다 『풀고 싶은 수학』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수학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일상생활 속의 친숙한 비주얼, 예컨대 포장도로의 블록 사진이 그래프의 좌표가 되어 패턴을 만들고, ‘비둘기집 원리’라는 완전히 다른 사고체계로 확장되어 간다. 저자의 조금은 길고 장황한 듯한 설명은 이상하게도 책을 펼쳐 하나하나 풀기 위해 들여다볼수록 정확한 지적이고 올바른 해결법이란 생각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독자 역시 놀라움과 '왜 예전엔 이런 책이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만약 그때 독자가 이 책을 보고 수학에 재미를 붙여 조금 더 열심히 수학을 공부했다면 인생의 바뀌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비약일까?

 


 

이 책을 읽은 많은 성인 독자들에게서 가장 많았던 리뷰가 “내가 어릴 때 이 책이 나왔더라면 더 좋았을텐데”였다고 한다. 책의 의도가 매우 잘 구현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풀고 싶은 수학』은 학생에겐 진정한 수학의 재미를, 어른에겐 딱딱하게 굳어 있던 뇌를 말랑하게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연령에 상관없이, 부모와 아이가 함께 보는, 모두를 위한 책이다. 특히 ‘두뇌 체조’가 필요할 땐 언제든 펼쳐보면 뇌가 맑아져 몰랐던 문제를 푸는 새로운 시각이 생길지도 모른다. 특히 요즘 어린이를 비롯해 성인 역시 텍스트보다는 비주얼에 더 친근하다. 『풀고 싶은 수학』은 문자도 하나의 그림으로 인식하는 현대인들에게 맞춤형 학습법을 제시하며, 수학을 멀리했던 사람들까지 빠져들게 만든다.

 

저자 : 사토 마사히코

일본 시즈오카에서 태어나 도쿄대학교 교육학부를 졸업하고, 지금은 도쿄예술대학교 대학원 영상연구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NHK교육텔레비전 「피타고라스위치」의 기획과 감독 및 새로운 게임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 『매달 신문』 『모래사장』 『딱 맞는 책』 『안을 상상해 보자』 『뭔가가 있다』 등이 있다.

 

저자 : 오시마 료

1986년생으로 게이오기주쿠대학 대학원 정책·미디어 연구과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학부 재학 중에 사토 마사히코 연구실 소속으로 두뇌 활용 프로그램 ‘피타고라 장치’ 제작에 참여하는 등 표현 방식을 연구했다. 졸업 후 프로그래머 인터랙션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2014년 <손가락을 놓다>전의 실험 장치를 제작했다. 독립 행정법인 정보처리추진기구 2011년 프런티어 IT 인재 발굴·육성 사업에서 프런티어 슈퍼크리에이터로 선정되었다. 2012년에 D&AD 상을 수상했다.

 

저자 : 히로세 준야

1987년 가나가와현 출생으로 2012년 게이오기주쿠대학 대학원 정책·미디어 연구과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학부 재학 중에 사토 마사히코 연구실 소속으로 두뇌 활용 프로그램 ‘피타고라 장치’ 제작에 참여하는 등 표현 방식을 연구했다. 현재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2012년에 D&AD 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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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게 빛나는 안전가옥 쇼-트 15
김혜영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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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비현실과 치밀한 현실, 그 낙차만큼의 공포가 닥쳐온다. 우리 시대 청년 세대의 슬픔과 두려움을 예리하게 포착한 신예작가의 첫 호러단편집이 멋진 편집과 함께 독자들의 독서욕을 강하게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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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게 빛나는 안전가옥 쇼-트 15
김혜영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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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푸르게 빛나는』은 소설을 담은 책이지만 시집보다 예쁘고 아름답다. 예전 '문고판'처럼 작은 크기다. 손 안에 몇 권이라도 한꺼번에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한' 크기다. 소설을 담는 그릇이 달항아리처럼 아름답다면 '시집은 어떻게 내야 할까'란 숙제를 내줄 정도로 크기나 편집, 표지그림 등이 모두 "예쁘다"는 표현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단편소설 3편이 다소곳이 독자를 기다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연애 나 로맨스를 다루는 것도 아니다. 분류상 '호러' 소설이다. 이 책은 신예작가이지만 호러물에 특화된 작가로 봐도 무방하다. 저자 김혜영은 "괴물을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밝힌다. 전작들 역시 호러물이라고 한다. 독자가 독서가 짧아 못 본 새 이미 '호러작가'로 출판계에선 소문이 나 있는 모양이다. 출판사 〈안전가옥〉 스토리 PD 윤성훈은 「프로듀서의 말」에서 기획부터 원고청탁에 관한 이야기 등을 짧게나마 책 뒷 부분에서 밝히고 있다.

"2021년 봄, 안전가옥은 '호러'를 키워드로 스토리 공모전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겨울 공모전에 선정된 이야기들을 엮어 『호러』라는 작품집을 선보였지요. 다채로운 공포의 풍경을 담은 이 작품집 첫머리에는 김혜영 작가님의 「습습 하」가 실려 있습니다. 이 작품을 처음 읽었던 때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몰래 엿본 옆집'이라는 소재, 낯익은 낯선 곳으로 만들어 알 수 없는 불길함이 바로 앞에 와 있음을 느끼게 하는 생생한 묘사 등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작년 가을, 『호러』가 만들어지는 동안 작가님께 더 으스스하고 더 전율이 흐르는 이야기, 무서움을 넘어 매혹을 선사하는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보자고 요청했고, 작가님께서는 흔쾌히 수락해 주셨습니다."(p.189)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작가님께서 보여 주신 상상력은 단순히 '호러(horror)'라고 분류되기보닩 '코즈믹 호러(cosmic horror)'라고 불릴 만한 이야기였습니다. 코지믹 호러는 흔히 인간이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어떤 미지의 존재로 인한 공포, 인간이 지닌 어떠한 가치도 아무 의미가 없음을 말하는 절망적인 공포 정도로 정리되곤 합니다."

'코즈믹 호러(cosmic horror)'란 용어를 독자는 처음 들었지만 프로듀서는 더 친절한 말을 들려준다. 이에 따르면 '코즈믹 호러(cosmic horror)'란 장르를 본격적으로 분류하고 정의했으며 연구한, 19세기의 작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 P. Lovecraft)는 기묘한 미지의 존재들과의 조우, 그로 인한 파멸을 통해 인간이 영위하고 있는 일상적인 세계가 얼마나 기만적이고 허위로 가득 찬 세계인지 직접 창작해 보여 주기도 했다. 문자 그대로 ‘우주적인 공포’를 이야기한다. 이 장르에 등장하는 공포의 대상은 상식 밖의 무언가이다.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왜 나타났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우리는 모른다. 미지의 존재가 너무나 압도적이기에 대항은커녕 사태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 아득한 장르는 뜻밖에도 평범한 감정을 정확히 파고든다. 삶 전체에 낮은 배경음처럼 깔려 있는, 완전히 해소할 수 없는 불안을 짚어 내는 것이다.

기이한 미지의 존재는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이것에 다가가게 하는 요소는 '매혹'이라는 점도 알려 주었다. '더 무서운 이야기를 보고 싶다'란 자신의 단순한 요구를 뛰어넘는 결과물인 『푸르게 빛나는』으로 김혜영 작가의 작품에서 공포와 매혹의 뒤섞임, 두려움과 아름다움의 공존, 규정하기 어려운 어떤 무엇과의 만남을 잘 보여주었다. 이 작품집에 실린 「열린 문」, 「우물」, 「푸르게 빛나는」이란 세 개의 작품과 연결되어 독자들을 더욱 거대한 파경과 붕괴, 더욱 깊은 매혹과 현혹의 세계로 안내할 다음 작품들을 바로 이어서 소개해 드리고자 준비하고 있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의 열다섯 번째 작품집 『푸르게 빛나는』은 경기도의 한 신도시에서 시작되어 지구 밖의 존재를 암시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가족, 친구와 멀어질지 모른다는 평범한 불안은 어느새 무자비한 상대에 의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아득한 공포로 바뀐다. 폭이 큰 감정 변화에 자연스럽게 동참하고 있노라면 우리가 청년 세대의 슬픔과 두려움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또 한 명의 근사한 신예 작가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외로운 아이들의 밤에 찾아온 불청객을 그린 「열린 문」, 땀과 체취 때문에 외롭게 살아 온 여성이 정체 모를 이로부터 기묘한 물을 받으면서 겪게 된 인생 역전을 담은 「우물」, 신축 아파트에 생겨난 신종 벌레의 정체를 파헤칠수록 파국에 가까워지는 부부를 다룬 「푸르게 빛나는」 등의 세 작품이 실려 있다. 각 작품은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완결성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들로서의 연결성을 함께 지닌다. 앞서 언급한 대로 기묘하게 낯설어 매혹적이기까지 한 작품 속 세계는 쇼-트 시리즈의 다음 작품집 『그분이 오신다』에서 더욱 확장된다고 한다.

이 책은 호러물이고 '불안'과 '공포'는 키워드이다. 불안과 공포는 우리 모두에게 내재한 감정이다. 다만 똑같은 상황을 다른 사람들은 공포로 느끼지 않는 것은 정상이다는 의학계는 불안과 공포는 고층건물에 설치된 화재경보기에 비유해서 설명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발간한 『정신이 건강해야 삶이 행복합니다』에 따르면 화재경보기는 화재를 감지할 경우 신경이 곤두서는 소리와 불빛으로 건물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위협을 알리고 반응하도록 한다.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장치인 것이다. 그러나 화재경보기의 센서를 지나치게 예민하게 설정할 경우, 우리는 별일이 아닌데도 매번 울리는 경고음을 듣고 대피해야 하는 등 건물에서 편안하게 지낼 수가 없게 된다.

 


 

불안과 공포 역시 마찬가지다. 위험한 상황에서 이 감정들은 매우 큰 도움이 되지만, 너무 과하면 항상 불안에 휩싸이고 공포감에 시달려 행복한 일상을 제대로 누릴 수가 없다. 스트레스로 작용되어 자칫 정서적, 육체적인 부작용으로 이어지고 심지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는 경우도 있다. 불안과 공포는 우리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센서의 민감도는 적당하게 조절해야 한다. 불안이나 공포가 밀려올 때는 이성적으로 본인을 설득을 시켜보자. 불안은 이성에 영향을 주는 감정이므로 이성적인 상황분석이 도움이 된다. 본인이 어려울 경우 나를 대신해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봐 줄 수 있는 친구나 동료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좋다. 불안감이나 공포감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경우에는 전문 치료 기관을 찾아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정신의학자들은 불안과 공포를 적당한 수준으로 조절하는 수많은 약물과 치료방법을 연구해 왔다.

독자가 신경정신학회에서 발간한 책까지 동원한 것은 다음처럼 출판사와 이 책에 대해 불안과 공포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 측은 '불안의 이유'와 해결책을 책 소개글에서 밝히고 있다. 이에 따르면 불안의 이유는 첫째 가까이하고픈 대상과 멀어질 때이다. 우리는 언제 불안을 느낄까? 『푸르게 빛나는』 속 주인공들은 모두 가까이하고픈 대상과 본의 아니게 멀어진다. 「열린 문」의 주인공 남매는 초등학생임에도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 아빠는 집을 나가 버렸고 바쁘게 일하는 엄마는 늘 피곤해한다. 심각한 액취증 환자인 「열린 문」의 주영은 만성 축농증 환자인 친구의 코 수술을 말린다. 후각을 되찾은 친구가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서다. 「푸르게 빛나는」에 등장하는 신혼부부 여진과 규환은 배 속의 아이가 잘못될까 봐,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이 따돌릴까 봐, 경기도에서 서울로 영영 이사하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한다. 걱정이 깊어지는 동안 두 사람 간 감정의 골도 점차 깊어진다.

 

 

그렇게 10대, 20대, 30대를 지나는 동안 모두가 알게 된다. 가족과 친구에게 사랑받는 것이 썩 당연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호감을 얻으려는 노력이 언제나 보답받지는 못한다는 것을. 지금 애정을 주고받는 사이라 해서 미래에도 그러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계속 불안에 떨며 발버둥쳐야 한다. 어째서 발버둥까지 쳐야 하는지 의문을 품어 볼 수는 있다 해도 ‘인간에게는 사랑이 필요하다’라는 대전제에 대항하기란 불가능하다.

두 번째 멀리하고픈 대상이 다가올 때이다. 사람들은 멀리하고픈 대상이 다가오는 것을 감지할 때도 불안해한다. 『푸르게 빛나는』 수록작 주인공들의 일상은 코즈믹 호러의 장르 특성에 충실한 미지의 존재들을 만나면서부터 무너진다. 지구상의 생명체와는 다른 외양을 지닌 존재는 호기심에 이어 일종의 매혹마저 일으키지만, 인간을 무심하게 해치는 모습이 드러남과 동시에 바로 공포의 대상이 된다. 언제 어디에서 나타날지 예측할 수 없고 일단 마주쳤다면 피할 수 없다.

살아남아도 문제다. 다른 사람에게 경험을 공유하고 위험을 알리려던 인물들은 난관에 봉착한다. 인간의 이해 범위를 넘어선 이야기인 탓에 아무리 설명해도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푸르게 빛나는」의 여진은 자신의 경험담을 듣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라고 대꾸하는 남편 규환을 향해 절규한다. “내가 있다는데! 내가 봤다는데! 내가 경험했다는데, 내가 무섭다는데!” 여진은 공포에 이어 고독까지 감당해야 하는 처지에 이른다. 작중의 상황이 조금 더 극적일 뿐 비슷한 일은 일상에서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나를 온전히 수용해 달라는 부탁의 끝에는 절망이 있다. 이 절망은 사랑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불안을 해소할 방법은 없을까? 코즈믹 호러는 명쾌한 해결을 말하는 장르가 아니다. 그리고 사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모른다. 가장 현실에서 먼 장르 중 하나로 보이는 코즈믹 호러는 이러한 접근법으로 현실을 ‘쿨하게’ 반영한다. 이를테면 ‘만들어 낸 이야기’라는 안전장치가 마련된 아찔한 번지점프대인 셈이다. 불안을 맛보고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호러 독자들은 기꺼이 이 번지점프대에 서서 뛰어내릴 준비를 할 터다.

『푸르게 빛나는』이 그저 허황된 이야기로 읽히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정교한 재현이다. 세 작품의 주인공들은 같은 지역에 살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공통점이 많지 않다. 연령대와 사회적 위치가 각각 다른 인물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어조와 상황을 채택해 몰입도를 높이는 솜씨를 보면 다음번에는 작가가 어떤 세계를 펼칠지 절로 궁금해진다. 뒤이어 출간될 단편집 『그분이 오신다』가 이 작품집과 세계관을 공유하니, 머잖아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열린 문」

 

초등학생 세나의 집은 건물 바깥 계단을 올라가면 나오는 5층에 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심심해하던 세나의 오빠는 도둑 잡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며 야구방망이를 들고 현관문을 연다. 열린 문 사이로 도둑이 들어오면 때려잡겠다는 것이었다. 두 아이는 잠들기 전 가볍게 시간을 때울 만한 일을 원했을 뿐이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은, 머릿속에 소용돌이치는 의문 중 단 하나도 입 밖으로 낼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우물」

 

주영은 외롭게 살아왔다. 땀을 너무 많이 흘리고 체취가 너무 심한 체질을 타고난 탓이다. 친구라고는 냄새를 거의 맡지 못하고 수시로 재채기를 하는 만성 축농증 환자 한 명뿐이다. 친구가 수술을 받은 뒤 둘 사이는 멀어지고, 주영은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난다. 여자는 주영의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며 검은 물을 마시라고 권한다. 속는 셈 치고 그 물을 마셨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그 물을 구하는 데 왜 우비와 장화와 삽이 필요한지를.

 

「푸르게 빛나는」

 

여진과 규환은 신혼부부다. 경기도의 한 신도시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로 이제 막 이사했다. 임신 중인 여진은 밤중에 깨어났다가 주먹만 한 푸른 구체를 보고 태몽을 꾸었다고 규환에게 알린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여진은 집 안 곳곳에서 새파란 점 같은 벌레들을 발견한다. 반면 규환의 눈에는 여진이 말하는 벌레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규환이 보기엔 여진의 불안이 지나치고 여진이 보기엔 규환이 너무나 무심하다. 둘 사이가 조용히 멀어지는 사이 아파트 주민들은 세입자가 배제된 단톡방에서 아파트 내 각종 사건 사고를 비밀스레 공유한다.

 

저자 : 김혜영

 

괴물을 사랑한다. 이 말을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매체를 뛰어넘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영상과 글을 넘나들며 작업을 하고 있다. 단편영화 〈BJ PINK〉 와 〈소년의 자리〉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고,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 단편 수상 작품집 2021》에 수록된 단편 〈토막〉과 안전가옥 앤솔로지 《호러》에 수록된 단편 〈습습 하〉를 집필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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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숲길을 단테와 함께 걸었다 - 나다운 삶을 위한 가장 지적이고 대담한 여정
마사 벡 지음, 박여진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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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두운 숲길을 단테와 걸었다』는 「나다운 삶을 위한 가장 지적이고 대담한 여정」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세계 지성들이 극찬하는 불멸의 고전 단테(1265~1321)가 쓴 장편 서사시 〈신곡〉의 여정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나로 온전한 삶을 되찾아가는 방법을 다룬 책이다. 〈신곡〉은 단테가 33살 되던 해(1298)의 성 금요일 전날 밤 길을 잃고 어두운 숲속을 헤매며 번민의 하룻밤을 보낸 뒤, 빛이 비치는 언덕 위로 다가가려 했으나 3마리의 야수가 길을 가로막는 바람에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때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그를 구해 주고 길을 인도한다. 〈신곡〉에서 길을 안내하는 시인 베르길리우스(Vergilius)와 단테는 많은 점을 공유한다. 기원전 70년에 태어난 베르길리우스는 극심한 분열을 통해 수없이 반복되는 전쟁을 경험했고, 이러한 내전을 종식시키고 제정 시대를 연 아우구스투스에게 큰 기대를 건다. 혼란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믿었을 뿐만 아니라, 제국을 통해 보편적 평화가 도래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

단테가 평화를 위해서는 신(神)이 세운 신성 로마제국에 모든 나라가 종속되어야 한다고 본 것과 일맥상통한다. 즉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에게 단순히 시적 영감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제국’을 통한 평화에 대한 전망도 공유한 것이다. 베르길리우스는 먼저 단테를 지옥으로, 다음에는 연옥의 산으로 안내하고는 꼭대기에서 단테와 작별하고 베아트리체에게 그의 앞길을 맡긴다. 베아트리체에게 인도된 단테는 지고천(至高天)에까지 이르고, 그 곳에서 한순간 신의 모습을 우러러보게 된다는 것이 전체의 줄거리이다. 먼저 〈신곡〉은 제 1막 「어두운 과거의 숲」에서 시작한다. 이곳은 상실감과 고단함, 근심과 불확실성이 자욱한 곳이다. 단테가 말한 어두운 과오의 숲은 대부분 사람이 겪는 삶의 부조화를 상징한다.

 


 

우리는 살면서 삶의 어떤 부분이 혹은 삶 전체가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많다. 제1막에서 우리는 잘못 들어선 길을 어떻게 끝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혼돈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누구나 인생에 한 번은 크게 흔들리는 때가 온다. 그럴 때 우리는 마치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잃어버린 듯 불안해하며 방황한다. 오프라 윈프리의 멘토로 알려진 저자 마사 백(하버드대학 사회학 박사)은 인생 중반 갑자기 찾아온 불안과 혼란을 겪는 이들에게 단테와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을 떠나기를 권한다. 인생의 불안과 혼란은 마음이 원하는 것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신곡〉 속 단테의 여정을 차용해 진짜 자신의 감정과 열망 그리고 본성을 깨닫고, 더 늦기 전에 매 순간 나다운 삶, 나를 위한 삶으로 향하는 길을 보여준다.

살다 보면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는 느낌, 인생을 망쳤다는 느낌이 밀려올 때가 있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회사 일이 물밀듯이 쏟아질 때, 영원히 사랑할 것 같았던 사람과 죽도록 싸우고 돌아섰을 때,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텅 빈 집안에 들어섰을 때, 불현듯, 갑자기, 그런 감정들이 폭풍처럼 밀려온다. 몇 년 동안 지속해온 직장 생활, 인간관계, 현재 자신의 모습 등 모든 것이 낯설고 부질없고 공허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때 우리는 텅 빈 순간을 응시하며 생각한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여긴 어디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지? 원래 이러려고 했던 게 아니잖아!’ 저자 마사 백은 그러한 감정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고 위로한다.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인간으로서 느끼는 혼란, 불안, 불만 등은 당연한 것이며 그것이 바로 진정한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는 전환점이라 조언한다. 이 책 『어두운 숲길을 단테와 걸었다』는 어느 순간 인생의 길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지도를 건네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

 


 

독특하게도 이 책은 진정한 자기 감정과 열망, 본성을 되찾고, 나로 온전한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불멸의 고전 〈신곡〉 속 단테의 여정을 토대로 보여준다. 왜 하필 〈신곡〉일까? 저자는 이 걸작이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고, 온전한 삶을 회복하며, 더 나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매우 강력한 지침서라고 보았다. 〈신곡〉은 천태만상의 인간상을 그린 고전, 시대를 초월한 인생 철학과 지혜가 담긴 책이다. 그리고 한 남자가 신비로운 여정을 떠나, 지옥부터 천국까지 한 단계 한 단계씩 모든 과정을 거치는 이야기 구조로 되어 있다. 이 여정을 천천히 여유 있게 따라와도 좋고 올림픽 육상선수처럼 맹렬하게 달려도 좋다. 각자 자신의 호흡과 속도로 가면 된다. 하지만 여정을 결심한 이상 4단계를 모두 거쳐야 한다.

이 책에서 안내할 여정을 소개하면 1막에 이어 대략 다음과 같다. 그다음 단계는 제2막 〈지옥편〉이다. 단테가 점점 더 지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듯, 이 단계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직면하고 깊이 이해하면서 고통의 원인을 찾을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본성을 찾아 자유롭게 놓아줄 것이다. 이때 우리는 사회문화적으로 학습된 신념이 아니라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진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알게 된다. 우리 마음의 소리를 듣고 치유하기 시작하면 제3막 〈연옥편〉에 들어가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이제야 깨닫게 된, 진짜 감정과 열망, 본성을 외적 행위와 조화시킨다. 이 과정은 계속해서 할수록 더욱 쉬워진다.

마지막으로 내적·외적으로 일치하는, 온전한 삶에 가까워지면 드디어 〈천국〉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는 따로 해야 할 일이 없다. 마음과 일과 삶이 무리 없이 순탄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긋하게 즐기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당신의 주변과 사회 역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을 통해 우리가 함께하게 될 경이로운 여정이다.

 

 

저자는 단테의 상징과 은유뿐 아니라 심리학, 사회학, 신경학 등 최근 과학에서 얻은 통찰력, 저자 자신과 저자를 찾았던 내담자들의 실제 경험담, 또 평생토록 연구한 사례 및 훈련 방법까지 종합적으로 활용해 온전한 자신으로 회복하는 명료한 과정을 제시한다. 『어두운 숲길을 단테와 걸었다』는 따뜻하게 감정을 어루만지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은 때로 마음의 아픈 구석을 건드리고 현재와 과거를 계속 반추하게 하며 떠올리기 싫었던 여러 사건과 생각들을 끄집어내 직시하게 만든다. 그러나 책을 끝까지 읽어내려간다면 타인의 인정과 칭찬을 과도하게 신경 쓰고, 평생 반복되어온 부정적인 사고방식 등을 해결할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단테를 동반자 삼아 내면의 신호에 귀 기울이고 진정한 열망을 따르는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돕는다.

이 책을 더 자세하고 촘촘하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은 단테가 살았던 피렌체와 중세 기독교 사회의 분위기, 그리고 〈신곡〉을 읽어봤다면 훨씬 도움이 될 듯하다. 성경의 당시 사회는 『시편』 90편 10절을 따라 인간의 평균 수명을 70세 정도로 보았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인생 여정의 중간’은 1300년, 바로 그가 피렌체 정치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간 때를 말한다. 바로 그 해에 단테는 피렌체 공화정을 통치하는 6인의 최고 정무위원 중 한 사람으로 선출되었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당시 피렌체 정치는 또다시 불거진 파벌싸움으로 혼란스러웠다. 1289년 교황파(Guelfa)가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파(Ghibellina)를 누르고 권력을 차지한 후, 교황을 지지하는 흑파(Neri)와 교황을 반대하는 백파(Bianchi)로 다시 분열되어 극심한 긴장을 조성했던 것이다. 급기야 교황 보니파키우스(Bonifacius) 8세의 요청을 받은 샤를(Charles de Valois)의 군대가 피렌체로 진격하고, 1301년 10월에 단테는 다른 두 명과 함께 피렌체의 특사로 교황을 설득하기 위해 로마에 파견되었다.

 


 

그러나 단테가 로마에 있던 11월 1일에 샤를의 군대는 피렌체로 진격했고, 이것을 기회로 흑파가 모든 최고 정무위원을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한다. 그리고 1302년 1월 27일에 흑파는 백파에 속했던 단테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를 덮어씌워 엄청난 액수의 벌금, 2년 동안의 추방, 그리고 공직 자격을 영구적으로 박탈하는 칙령을 발표한다. 이후 3월 10일에 법적 기한 안에 벌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단테는 피렌체로 귀국하는 즉시 사형에 처해질 운명에 놓인다. 인생의 정점에서 그는 조국으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운명에 처한 것이다. 그가 말한 ‘캄캄한 숲’은 바로 피렌체의 분열과 교황이 초래한 전쟁의 소용돌이였다.

〈신곡〉이 포함하는 영역의 광대함과 거기에 의탁된 메시지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시에 사용된 상징의 대요를 설명한 『제정론』을 읽을 필요가 있다. 그 책에 의하면, 인간은 신이 정했다고 하는 자연계에서의 목적과 초자연계에서의 목적을 향하여 살아간다. 현세에 있어서의 행복(지상낙원을 상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윤리적·지적 미덕이 명하는 바에 따라 살아가며, 제2의 목적(영원의 행복)을 얻는 길은 신의 은총에 힘입으면서 그리스도교의 믿음·소망·사랑에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간다. 그리고 인류를 현세의 행복으로 안내하는 것은 황제의 의무이고, 천국의 행복으로 인도하는 것은 교황의 의무이다. 이것이 〈신곡〉의 중요한 장면에 나오는 이미지와 일치하는 점이다. 따라서 단테의 상상 속에서 나온 우의적 여행담은 실제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생활체험에서 얻은 진실을 의식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조잡한 생활, 이성과 덕이 결핍된 생활을 상징하는 ‘어두운 숲’은 ‘3마리의 야수’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데, 이들 야수는 원죄에 유래하는 3가지 아집(색욕·교만·탐욕)의 상징이다. 그러나 베르길리우스에 인도된 단테는 이 숲을 벗어나 이성과 덕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걸맞는, 현세에 있어서의 지선(지상낙원)에 이른다.

우의적인 면에서 볼 때 〈신곡〉에 명문화된 여러 가지 체험은 파란만장한 인생체험을 통하여 단테 자신의 영혼의 성장과정을 나타낸 것이며, 망명 이후 심각한 정치적·윤리적·종교적 문제로 계속 고민했던 그가 자신의 양심과 영혼 속에서 그 해결방법을 찾아내기까지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베르길리우스나 단테가 말하는 ‘제국’이 근대 이후 ‘제국주의’ 시대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후자에서는 주로 ‘시장의 확보’나 ‘물질적 자원’이 팽창의 주된 동기를 형성한다. 반면 근대 이전 ‘제국’에서는 경제적 동기만큼이나 내부에서 유발된 정치적 동기가 중요하다. 아테네 민주정이 보여주듯 정치 세력들 사이의 긴장이나 개별 정치인의 야망이 팽창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특정 정치 체제와 반드시 일치될 필요는 없지만 하나의 단일한 통치체제로 여러 정치 공동체들이 복속되는 형태를 취한다. 그리고 도시 국가들 사이의 긴장이 조성한 불안한 상황 속에서 평화를 확보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제국’은 종종 도덕적 동기까지 부여받았다.

베르길리우스의 작품들은 ‘제국’(imperium)적 팽창에 대한 고전적 동기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는 『목가』(Eclogae, BC44-38)에서 지난했던 분쟁과 전쟁의 시대가 끝나고 신의 가호를 받은 한 소년을 통해 ‘황금종족’의 시대가 다시 올 것이라고 노래한다. 로마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황금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희망을 담은 것이다. 물론 그의 기대는 내란의 종식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로마가 중심이 되어 이탈리아의 대지가 다시 풍요로워지고, 그 힘을 바탕으로 로마가 세계를 다스리는 ‘제국’을 열망한다. 궁극적으로 ‘로마 제국을 통한 평화’(Pax Romana)를 꿈꾸었던 것이다.

단테도 베르길리우스의 ‘제국’에 대한 기대를 공유한다. 당시 ‘제국’은 신성 로마 제국과 로마 교회로 양분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안과 밖에서 두 제국을 지지하는 세력들의 전쟁터로 변해 있었다. 피렌체도 마찬가지였다. 1260년 몬타페르티 전투에서 교황파가 시에나와 결탁한 황제파에게 패배했을 때, 아르비아(Arbia)강 근처의 평원은 전통 귀족에게 대항하던 사람들의 피로 물들었다. 반대로 1266년 베네벤토 전투, 그리고 1289년 단테가 직접 참전했던 캄팔디노 전투에서는 교황파의 황제파에 대한 살육이 벌어졌다. 그는 이 처참한 상황을 “노예 같은 이탈리아”(serva Italia)라고 한탄한다. 도선사도 없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진 이탈리아를 구제해 줄 새로운 ‘제국’을 열망한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잠시 머물면서/사랑의 빛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거란다.” 시인 윌리엄 브레이크는 이렇게 썼다. 그렇다. 사랑의 빛은 햇빛처럼 우리 삶을 환히 비춘다.(p.326)

 

저자 : 마사 벡(Martha Beck)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라이프 코치. 하버드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커리어 경로와 인생 전환에 대해 연구했다. 하버드 대학교와 미국 국제경영대학원(American Graduate School of International Management)에서 사회학, 사회심리학, 조직 행동 및 경영 관리를 가르쳤으며 지금은 개인과 집단이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성공을 성취하도록 하는 코칭과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아홉 권의 논픽션과 한 권의 소설을 썼다.

그를 찾는 내담자들은 대개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혼란 그리고 공허함을 토로하곤 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계속 노력하는데도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삶의 갈증을 느끼는 것이다. 저자는 그 이유를 자기 내면의 진짜 감정과 열망, 본성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음 깊숙한 곳의 자신을 마주할 때야 비로소, 진정으로 원하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생의 한가운데서 마치 길을 잃은 듯한 방황을 멈추고, 흔들리지 않는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신곡’ 속 단테의 여정을 차용해 사유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일과 지위, 역할, 목표, 심지어 이름까지 다 벗어던져서도 충만한 삶을 살게 하는, 오직 나로 온전한 삶으로 향하는 길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역자 : 박여진

한국에서 독일어를, 호주에서 비즈니스를 전공했다. 기업 경영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다 영미 문학 단편집을 기획하며 번역가가 되었다. 주중에는 주로 번역을 하고 주말에는 여행을 다닌다. 파주 번역가 작업실 ‘번역인’에서 번역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 『토닥토닥, 숲길』, 『슬슬 거닐다』가 있고, 번역서로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더 터치』, 『의미 수업』,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영국 산책 2』, 『인생 전환 프로젝트』, 『익스트림 팀』 외 수십 권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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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보낸 7일 - 안기부에서 받은 대학 졸업장
신정일 지음 / 창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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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걷기 열풍을 일으킨 선구자 ‘우리땅걷기’ 이사장 신정일의 41년 간 가슴속에 감춰둔 안기부와의 악연, 고통은? 국가 권력의 오남용은 개인의 삶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던 시절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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