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끊어보자고요
안도 미후유 지음, 송현정 옮김 / FIKA(피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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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이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처럼 술이나 마약 등을 장기간 사용하여 그것이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된 상태를 의미하는 중독(addiction)이 가장 대표적이다. 또 ‘일 중독’이나 ‘사랑에 중독되었다’는 식으로 무언가에 너무 빠져 버린 상태를 표현할 때도 중독(-holic)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한다. ‘식중독’, ‘농약 중독’과 같이 음식물이나 약물 따위의 독성으로 인해 신체에 이상이 생기거나 목숨이 위태롭게 되는 경우에도 중독(poisoning)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이 책 『잠시만 끊어보자고요』가 지칭하는 SNS에 빠져 일상 등에 많은 부작용을 나타내는 경우를 독자 임의로 '중독'으로 표현했을 뿐, 저자 안도 미후유 역시 'SNS 중독'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독자가 중독이란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쾌감 혹은 만족감을 주는 것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게 되면 만성적 뇌의 질환으로서의 중독(addiction)을 의미한다는 의학적 판단 때문이다. 책의 내용을 전달하는 입장에서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SNS' 중독란 표현을 사용했음을 밝힌다. 특히 ‘조절 능력의 상실’은 중독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신호라고 의학계는 말한다. 조절 능력을 상실을 시작으로 건강을 잃고, 빚을 지고, 직업을 잃고, 소중한 가족관계를 악화시키며, 부모로서, 가장으로서, 자식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역할뿐만 아니라 미래의 기회까지 잃게 되는 사람들이 나오기 때문에 예방 차원에서 조금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지금 우리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우리 일상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2010년대에 일어난 가장 놀랄 만한 혁명은 누가 뭐래도 ‘스마트폰 혁명’이다. 출시된 지 10년 조금 넘은 스마트폰은 인터넷이 가능한 컴퓨터를 손에 들고 다닌다는 점에서 급격한 인기와 문화적 혁명을 몰고 오기에 충분했다. 필요하면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해 컴퓨터가 가진 거의 모든 기능을 즉석에서 구동해 원하는 정보를 얻고, 일처리까지 끝낼 수 있다. 인터넷의 발전이 몰고 가장 큰 변화는 SNS라고 해도 될 정도로 SNS는 상상을 뛰어넘는 폭발적인 가입 현황을 보이고 있다. SNS 자체도 진화해 글-사진-동영상 등을 순식간에 주고 받는다. 누구나 정보를 받는 입장에서 전달하는 입장이 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유튜버, 인스타그래머, 인터넷 방송 진행자 등 온라인상에서 자신만의 캐릭터와 화술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새로운 직업들이 탄생했다.

어디 그뿐일까. 누구나 SNS만 있으면 ‘6단계 분리 이론’처럼 여섯 명만 거치면 전 세계 모든 사람과 연결될 수 있고, 인터넷만 있으면 동서고금의 정보를 쉽고 빠르게 찾아볼 수도 있다. 이처럼 스마트폰은 21세기의 인프라이자 영향력 있는 무기이며 꿈을 현실로 만드는 도구임과 동시에 다양한 사람과 사회를 연결하는 파트너다. 하지만 이점이 많은 만큼 안 좋은 점도 있다. 우리를 병들게 하고 괴롭히는 것 역시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 중독’과 ‘SNS 피로 증후군’이 대표적인 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이' 이어져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마음을 좀먹는 SNS와 쓸데없이 많은 정보, 인간관계까지. 과연 이 중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얼마나 될까? 많은 것과 ‘연결’되어 있는 지금이야말로 ‘끊어내기’가 필요한 때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 책의 목적이 ‘끊어내기’는 아니다. 진짜 소중한 것과 이어지기, 이것이 이 책의 진짜 목적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인생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고 집중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지나친 연결로 인한 마음의 피로는 차곡차곡 쌓여간다. SNS나 인터넷뿐 아니라 나와 연결된 인간관계나 세상의 상식도 우리의 마음을 지치고 힘들게 한다. 이 책 『잠시만 끊어보자고요』는 잠깐 연결을 끊음으로써 정말 소중한 것을 찾는 47가지 방법을 담았다.

저자는 SNS, 인간관계, 부정적인 정보, 나쁜 감정 등 나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들과 ‘멀어지는’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하고, 더불어 정말 소중한 것을 찾기 위한 ‘이어지는 연습’도 함께 알려준다. 온종일 누군가와의 연결과 무차별적으로 밀려 들어오는 정보로 마음이 피폐해지는 와중에도 우리는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한시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고 SNS나 뉴스,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정보를 얻고, 그 정보 때문에 일희일비한다. 정작 정말 중요한 ‘자신의 마음’은 잘 들여다보지 않으면서 말이다.

 

 

저자도 한때는 ‘SNS 전도사’라 불리며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활발하게 활동했고, 그 덕분에 다수의 TV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SNS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온 저자는 어느 날 문득, 인생에서 진짜로 중요한 것은 내버려 두고 쓸데없는 것에 온 신경을 쓰며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눈앞의 현실보다 손바닥만 한 세상에서 더 열심히 살았던 저자는 그동안 계속된 피로감의 원인이 의미 없는 수많은 연결과 정보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그 후 피로해진 마음을 다스리려 인터넷과 거리를 두고 모든 SNS 계정을 없애며 스마트폰과 인터넷 사용을 제한했다.

이 책은 저자의 경험과 깨달음에서 시작되었다. 지나친 연결 속에서 피로해진 현대인의 나쁜 습관을 해결하기 위해 이 책은 모든 연결에서 잠시 거리를 두는 연습을 제안한다. 스마트폰이나 SNS를 잠시 내려놓는 연습, 부정적인 정보와 신경질적인 사람을 멀리하는 연습 방법 등을 소개하고, 진짜 중요한 것과 가까이하는 방법을 함께 담았다. 이 책의 목적은 쓸데없는 것들을 ‘끊어내고’ 정말 소중한 것과 ‘이어지는’ 데 있다. 그래서 전반부인 1장부터 5장까지는 SNS나 정보, 인간관계처럼 지금까지 이어져 있던 것들을 끊어내는 방법과 함께 상식에 얽매이지 않고 부정적인 감정을 버리는 ‘이어지지 않는 연습’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6장과 7장은 ‘이어지는 연습’을 주제로 자신의 마음과 더불어 진짜 소중한 것과 이어지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저자가 말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가장 쉽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은 스마트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것이다. 아침 기상 후 한 시간과 취침 전 한 시간은 스마트폰을 비행기 모드로 설정하고 SNS는 물론이고 인터넷 자체에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시작하면 좋다. 이렇게 물리적으로 스마트폰과 거리 두기를 했다면 그다음은 본격적으로 유해한 것들로부터 나를 지키면 된다. 친구가 올린 SNS 게시물에 부러운 마음이 들거나 신경이 쓰인다면 ‘좋아요’ 버튼을 누르지 않거나 쓸데없는 정보는 굳이 검색해보지 않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나만의 기분전환 방법을 찾아보는 것 등이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이런 소소한 방법들이 모였을 때 비로소 건강한 거리 두기가 가능해진다.

저자는 모든 것을 단번에 끊는 올 디톡스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말한다. 지금 당장 손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지 못할 거라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무런 준비 과정 없이 갑자기 올 디톡스에 들어가면 부담스러운 마음만 커지고 오히려 뇌도 거부반응을 일으킬지 모른다. 욕심내지 말고 조금씩 천천히 개선해 나가면 된다. 이 책도 빠르게 무리해서 읽을 필요는 없다. 조용한 장소에서 차분한 마음으로 읽고 싶을 때 한 장씩 여유를 가지고 읽고, 책에서 제안하는 방법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까지만 따라 해도 충분하다. 이 책의 목적은 나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지키는 것. 오직 그뿐이다. 저자의 집필 취지에 공감한다면 인터넷과 SNS를 사용하는 모든 독자들이 한 번쯤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중독이란 자신의 의지로 헤어나올 수 없는 늪이란 것을 들은 바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예방'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홀로 합숙의 목적은 나를 이해하는 데 있다.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내 마음속 목소리를 가만히 들어보자. 앞으로 커리어를 어떻게 쌓아갈 것인지, 업무상 파트너나 부부관계 등 특정 인간관계를 어떻게 유지해 나갈 것인지, 현재 내가 무엇에 행복을 느끼고 어떨 때 행복하지 않은지 등등. 노트와 펜을 준비해서 자기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나누어보자.(p.200)

 

저자 : 안도 미후유

1980년 도쿄에서 태어난 작가이자 프리랜서와 창업의 새로운 형태를 제안한 개척자이다. 게이오대학교 재학 중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교로 유학을 가서 워크셰어링으로 일하는 방식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일본 대형 출판사에 들어가 7년간 근무했고, 회사를 그만둔 후에는 책과 칼럼을 집필하며 노트북과 스마트폰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는 노마드워크 스타일을 실천 중이다. KLM 네덜란드 항공, 인텔, SK-II 등 다수의 광고에 출연하며 일하는 여성의 아이콘으로 주목받았고,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기도 했다. 현재는 여행과 일, 배움을 주제로 한 온라인살롱 ‘Meet up Lounge’의 대표로 활동하고, 유료 서평 채널 ‘miffy의 Book Journey’에서 책을 소개하는 북프레젠터로 활약하고 있다.

 

역자 : 송현정

연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과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오랜 꿈을 찾아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책을 통해 말과 생각, 그리고 사람을 잇는 번역가가 되는 것이 꿈이자 목표이다. 현재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며, 옮긴 책으로는 《앞으로의 남자아이들에게》, 《때려치우기의 재발견》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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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장갑 속 하트뿅 사과밭 문학 톡 10
고정욱 지음, 자몽팍 그림 / 그린애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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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아무리 어려워도 사람들 마음속에는 남을 배려하고 돕는 자비심이 남아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이웃은 언제나 이웃들에게 따뜻하고 훈훈한 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어린이들은 절실하게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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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장갑 속 하트뿅 사과밭 문학 톡 10
고정욱 지음, 자몽팍 그림 / 그린애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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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털장갑 속 하트뿅』은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어린이용 동화이다. 대략 초등학교 3~4학년용이라고 한다. 초등학생들에게 따뜻한 마음이란 무엇이며, 우리가 어떻게 하면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더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교훈을 주는 동화이다. 원래 동화 자체가 어린이용이고 어린이의 마음에 감동, 훈훈한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 쓰여진 이야기이다. 우리 사회에도 옛날부터 동화가 많이 있었다. 대부분의 위인전처럼 교훈을 주는 내용이 많다. 물론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해 동물을 등장시키고, 쉽게 풀어가기 위해 억지스러운 전개도 있지만 전래동화는 교훈이 목적이기에 구성이나 전개보다는 안에 담긴 메시지가 중요했다. 이런 것은 어린이들 마음에 동물은 친구다라는 의식을 심어줄 수 있고, 무섭거나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애정과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동물의 등장이 잦은 것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동화는 겨울철 따뜻한 아랫목에서 뒹굴뒹굴 읽기가 좋아 어린이들의 감성 발달에도 큰 도움이 되는 문학 장르이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신문사들이 일년에 한 번씩 신춘문예를 실시하는데 동화나 동시가 꼭 들어가 있었다.

독자도 어렸을 때 많은 동화를 읽었다. 학교에서는 글짓기나 산수 등을 가르쳐도 동화 읽는 시간을 따로 두고 가르치지는 않았다. 때문에 아버지가 사다주신 동화책이나 세계명작전집에 포함된 동화를 많이 읽었다. 대부분 전래동화보다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작가들의 동화다. 이솝, 안데르센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전래동화보다 좋은 점은 이색적인 풍습이 많이 등장한 데서 더 호기심이 생겼고, 더 열심히 읽었던 것 같다. 그때는 어린이 세계명작전집에는 세계적 대문호들이 쓴 소설이나 극작을 어린이가 읽을 수 있도록 동화 형식으로 번안한 것도 많았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나 디포우의 『로빈슨 크루소』 등도 전집의 단골 메뉴였던 것으로 독자는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그 내용은 생생하다.

 


 

특히 『로빈슨 크루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가 식사도 거르는 바람에 부모님께 야단 맞은 특별한 기억도 있다. 그때는 주인공이 무인도에 들어간 이유가 타던 배가 암초에 걸려 파손돼 겨우 살아남은 채로 들어간 것으로만 표현됐기 때문에 주인공의 직업이 어떤 것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인공 로빈슨 크루소는 노예상이고 노예를 팔기 위해 배를 탔다는 말은 없었다. 나중에 읽은 소설에도 그런 말은 없었다. 우연히 노예선에 관한 책을 읽다가 인용돼 있어서 유심히 읽었는데 거기에 노예선의 노예상이었다는 말이 나오는 바람에 알게 됐다.

이 책의 저자 고정욱은 이미 중견 동화 작가인 것 같다. 독자로서는 처음 접하는 작가이지만 문단에서는 꽤 알려진 듯하다. 저자의 동화 「가방 들어주는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국어 교과서에 수록됐고, 「안내견 탄실이」, 「아주 특별한 우리 형」 등 우리 사회를 더 따뜻하게 하는 이야기들을 집필해 왔다고 한다. 이 책 역시 초등 중·고학년을 위한 그린애플의 동화 시리즈 〈사과밭 문학 톡〉 열 번째 책이다. 단편 동화 모음집 『털장갑 속 하트뿅』 역시 훈훈한 감동이 담긴 여섯 편의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다. 할머니를 걱정하는 손자, 장애가 있는 아들을 위해 학교 청소를 시작한 아빠, 생명의 은인인 포장마차 주인을 위해 용돈을 내놓는 아이, 금은방을 습격한 강도에게 온정을 베푼 주인, 웹툰만 보는 아들을 위해 기발한 조언을 하는 동화 작가 아빠, 화장실에서 책을 읽는 아들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 엄마의 이야기는 어디서든 마주할 수 있는 우리 이웃의 삶을 담아낸다. 가족애가 사라져 가고, 타인을 위한 봉사와 헌신이 그 빛을 잃어 가며, 나 혼자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 책은 마음속에 따뜻한 온기를 전해 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며 성장하는 아이들이 많다. 가족보다는 친구, 직접 대면하는 친구보다는 온라인 게임으로 이어진 친구에게 더 관심을 기울이는 세상이 됐다. 하지만 가족은 인간에게 더없이 소중한 자산이다. 이 책이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동화로 주로 집필됐다고 이해된다. 이 책에서 성운이는 쇠약해진 할머니를 걱정하며 담장 아래 핀 꽃들에게도 할머니를 지켜 달라고 부탁한다. 또 성준이 아빠는 아들이 장애를 딛고 사회에서 제대로 교육받고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기른다.

화장실만 들어가면 함흥차사인 아들에게 화를 내고 잔소리를 하지만, 결국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알고 넓은 가슴으로 품어 준 엄마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가족애를 이야기한다. 가족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편이 되어 주는 존재이며, 내가 잘되었을 때 기쁨의 눈물을 흘려주는 존재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이 책을 읽으며 가슴 따뜻한 가족애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될 것이다.

세상은 이웃 간의 배려와 공감이 사라지고 점점 삭막해지고 있다. 연말이 되어 구세군의 종소리가 들려오면 지갑을 열어 나눔을 실천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눈과 귀를 내 관심사에만 고정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어쩌면 그렇기에 이 책 『털장갑 속 하트뿅』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큰 울림을 주는지도 모른다.

태민이의 아빠는 자신과 아들의 목숨을 구해 준 포장마차 주인에게 고마움을 느껴 사례하려 하지만, 포장마차 주인은 “낡아 빠진 포장마차로 사람 목숨 구했으면 됐다.”며 한사코 거절한다. 서로를 배려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태민이의 마음을 녹였고, 결국에는 통장에 저축해 둔 용돈을 포장마차 주인이 푸드트럭을 구매하는 데 보태게 한다. 얼굴에 화상을 입고 삶을 포기한 민용이를 위로하며 지원하는 금은방 주인도 마찬가지다. 생면부지의 아이지만, 그는 기꺼이 손을 내밀어 민용이가 세상의 따뜻함을 다시 느끼게 한다.

 


 

「저승 사자를 물리친 자개장」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의 부쩍 수척해진 모습을 보고 성운이는 아픈 할머니를 지켜달라고 해바라기와 예쁜 꽃들, 잡초, 그리고 자개장 속 십장생에게 부탁한다. 그날 밤 저승 사자들이 할머니를 저승으로 모셔 가려고 찾아오고, 십장생들은 기지를 발휘해 저승 사자를 물리친다. 할머니는 가까스로 고비를 넘기고 성운이와 함께 마지막으로 짐을 챙기기 위해 집을 방문한다. 그나저나 성운이는 할머니를 위한 십장생들의 활약을 알게 될까?

「아빠는 슈퍼맨」

성준이 부모가 성준이를 특수 초등학교가 아닌 일반 초등학교에 다니게 한 건, 세상을 살아가려면 친구가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성준이가 초등학교 입학한 뒤 아빠는 학교 선생님들을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청소 봉사도 한다. 어느 날 평화롭던 학교에 괴한이 침입하는데, 특수 부대 요원 출신인 아빠는 괴한을 온몸으로 진압한다. 학교에서는 고마움의 표시로 학교 성준이 아빠에게 청소 일을 위임하고, 학교는 더욱 반짝반짝 윤이 난다.

「크리스마스에 있었던 일」

태민이는 집안에 아들이 하나밖에 없어 양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이기적인 아이로 자랐다. 그 결과 남과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영화를 보고 나온 태민이와 아빠는 달려오는 트럭에 치일 위기에 처한다. 다행히도 포장마차 주인이 자신의 포장마차로 트럭을 막아주어 태민이와 아빠는 목숨을 구한다. 태민이는 영화 속 주인공과, 포장마차 주인의 살신성인한 행동을 통해 마음의 변화를 느끼고 포장마차 주인에게 놀라운 선물을 전한다.

 


 

「금은방에서」

화재로 얼굴에 큰 화상을 입은 민용은 사회에서 사고뭉치로 낙인찍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결국 민용은 소년원에라도 들어가 보호받기 위해 금은방에 침입한다. 금은방 주인 역시 어릴 적에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지만 금은 세공 기술을 배워 금은방을 열었기에 민용이 남 같지 않다. 주인은 민용의 처지에 공감하며 종업원으로 일하게 하고, 금은 세공 기술을 배우게 하는 등 새로운 삶을 살도록 인도한다.

「기발한 기부금」

강혁이는 핸드폰으로 웹툰만 보다가 엄마에게 크게 혼이 난다. 그런 강혁이에게 아빠는 자신도 어려서 만화만 봤다며, 만화야말로 사물 인식 교육을 하는 데 최고라고 말해 준다. 동화 작가인 아빠는 힘들고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써서 유명해지자 그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한다. 아울러 아빠는 강혁이에게 웹툰을 보면서 포인트로 기부하는 방법을, 엄마에게는 후원 쇼핑을 통해 기부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렇게 가족은 ‘기부’라는 주제로 더욱 가까워진다.

「화장실 도서관」

화장실만 들어가면 나올 생각을 안 하는 민식이.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민식이는 잘 꾸며진 책상을 두고 늘 화장실에서 책을 읽는다. 집중이 잘된다나 어쨌다나. 그런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학교 강연에 참석한 엄마는 작가의 조언에 깜짝 놀랐다. “엄마 의도와는 달리 민식이에게는 화장실이 자신만의 공간일지도 모른다.”라는 것. 엄마는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기보다 자기 생각만 강요했음을 깨닫고, 화장실을 도서관으로 만든다.

 


 

글 : 고정욱

 

어린이 청소년 도서 부문의 최강 필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성균관대학교 국문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문학박사이다. 소아마비로 인해 중증장애를 갖게 되었지만 각종 사회활동으로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작가가 되었고, 장애인을 소재로 한 동화를 많이 발표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실이』,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또한 전공을 살려 『양반전』, 『홍길동전』, 『사씨남정기』 등의 고전문학 작품을 현대화하기도 해서 총 320여 권의 저서를 발간했다. 특히 『가방 들어주는 아이』는 MBC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선정도서이며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고정욱 삼국지』는 필생의 역작으로, 어린이 청소년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고전 작품들을 새롭게 엮고 싶다는 수십 년의 열망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현재 활동하는 작가 중 가장 많은 책을 펴냈고 (약 330권), 가장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으며 (약 450만 부), 가장 많은 강연을 다니고 (연 300회 이상)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자기계발과 리더십 향상에도 관심이 많은 작가는 독자들의 메일에도 답장을 꼭 하는 거로 유명하다.

 

그림 : 자몽팍

 

행복한 기억이 오래갈 수 있도록 기억의 조각과 상상력을 더해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을 통해 아날로그 공간의 이야기와 사람들의 따뜻한 온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한국문화재단, 쌍용자동차, 행정안전부, 지학사 《독서평설》 등 다양한 매체에 일러스트를 그렸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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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 - 쉼이 있는 삶을 위하여
이승원 지음 / 돌베개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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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이 소비하고, 더 잘사는 것 같은데 우리는 왜 불안한가? 일과 소비의 끊임없는 악순환, 대안이 없는 곳에 ‘쉼’은 없다. 존엄을 지키며, 함께 살고 함께 기뻐하기 위한 인문학자 이승원의 ‘쉼’의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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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 - 쉼이 있는 삶을 위하여
이승원 지음 / 돌베개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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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인은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위기 상황의 추이를 볼 때 '절멸의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기후 비상사태, 에너지·식량·경제 위기, 사회경제적 불평등, 약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후퇴한 민주주의가 일상을 무너뜨리고 있다. 거기에 3년 전 시작한 코로나 팬데믹도 끝간 데 모를 정도로 일시 주춤을 거듭하며 더 큰 기세로 확산되고 있다. 지구 인류 대부분이 체감을 넘어 고통을 느끼고 있다. 이제 행동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어 절멸로 치달을 수 있다는 위험을 감지하고 있다. 설상가상 우크라이나 전쟁은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는 사람도 늘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더 힘찬 행동은커녕 하루하루 일상에 찌들어버린 우리에게 당장 걸터앉아 쉴 수 있는 곳조차 없는 형국이다. 전 지구가 이들 위기 요인으로부터 어디 하나 안락한 쉼을 제공하도록 안전한 지대도 없는 데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감염병, 전쟁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위기의 시대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반복되는 일상의 탈진으로부터 벗어나는 데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느 한 곳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할 수 있는 안전지대가 없는 형편이다. 이에 이 책 『우리는 왜 쉬지 못하는가』는 무엇이 우리의 쉼을 빼앗고 어떻게 쉼을 되찾을지를 사유하는, 우리 시대의 비판적 인문학이자 성찰적 에세이다. 이 책은 경쟁적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불안이 어떻게 개인과 사회를 잠식하는지, 소비 문화가 우리의 여가와 쉼을 어떻게 장악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소비가 삶의 주요한 리듬인 사회에서 ‘쉼’이 사라지게 되는 근본적 이유를 살피고, 쉼의 상태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상상력을 제시한다.

 


 

저자 이승원은 우리의 현실을 먼저 짚어본다. 교육 수준이나 학벌, 재산 규모, 인종, 종교, 성적 정체성, 문화적 취향, 정치적 견해, 하다못해 사는 동네나 부모의 직업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우연히 마주쳐 함께 앉아 잠시 서먹하다가도 서로 안부를 묻고, 위로와 힘을 건네며 건네던 시절을 추억한다. 또 덕담을 나누고,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헤어질 수 있는, 혹은 같은 방향을 향해 걷기 위해 잠시 쉴 수 있는 그런 의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물론 물리적 실체를 갖는 의자가 아니라 쉼과 삶의 의지를 회복의 기폭제로 전환시키기 위한 에너지 재충전의 의미이다. 다른 많은 나라가 그렇듯이 대한민국 사회도 쉽지 않은 위치로 흘러온 느낌이 든다.

저자는 단순할지 모를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불안이 희망을 압도하는, 그래서 생명을 돌보지 못하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우울한 단면을 '자살'이라는 현상을 통해 먼저 살펴본다. '쉼'과 정반대편에 있는 자살에서 시작해, 자살이 늘어가는 이 사회에 가득 찬 불안의 내부를 들여보겠다는 말이다. 불안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 때, 공포 영화의 주인공처럼 그 원인과 마주해도 더 이상 뒤로 밀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삶에서 '의자'가 왜 필요한지, 어디에 있는지 답을 구하기 위해 '존엄한 쉼'의 의미를 찾아 나서고자 이 책을 썼다. 이 과정에서 존엄한 쉼이 우리의 존재를 지속시킨다는 의미를 담은 표현, '레퀴에스코 에르고 숨(Requiesco ergo sum, 나는 쉰다. 그러므로 존재한다)을 끌어냈다. 이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에서 차용했음도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이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공공재, 커먼즈, 자기결정권, 자원접근성 등의 개념을 발전시킨다고 밝힌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쉼이란 단지 개인의 행위나 결심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는 함께 '의자'를 만들어야 하고, 함께 쉼을 상상해야 한다. 이 의자는 힘 있는 자가 독점하거나 힘이 없다고 해서 밀려나는 자리가 아닐 것이다. 의자에 앉으려면 잠시 멈춰야 한다. 잠시 멈춘다는 것은 또 다른 여정을 위한 시간이 되기도 하는데, 이와 관련해 '정지 운동'에 대해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정지, 즉 멈춘다는 것은 그냥 힘을 빼고 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멈추기 위해서는 관성에 대한 반작용만큼의 힘, 습관처럼 나아갔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정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닐 뿐더러, 새로운 힘을 모으는 운동이기도 하다. 멈추는 힘은 새로운 방향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멈추는 힘은 특정 집단이나 계층에서 나온다기보다는, 지금 자신을 어디론가 밀고 가는 어떤 힘의 속도와 방향에 불안과 고통을 느끼는 사람 모두에게서 비롯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가던 길을 멈추고자 하는 이들은 함께 길을 걷던 서로에게 기대서야 발걸음을 붙잡을 수 있다. 관성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나의, 내가 누군가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의자가 되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서로의 협력이 필요성을 강조하는 말처럼 이해된다. 지금까지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경쟁의식과 의심보다 연민과 공감을 느끼는 순간, 정지 운동은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정지 운동과 함께, 우리는 그동안 왜 제대로 쉴 수 없었는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정해진 방향으로 가속화되면서 밀려가기만 했는지 반성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란 저자의 주장에 공감한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에는 기꺼이 자리를 내주는 빈 의자들이 곳곳에 있기를 저자와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은 저자의 집필 취지에 따라 모두 4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왜 잘살려고 할수록 불안해지는가?」, 2장 「일과 소비에 대하여 착각하는 사람들」, 3장 「우리는 언제 편안함에 이를 수 있을까?」, 4장 「빼앗긴 쉼을 되찾기 위하여」로 돼 있다. 1장은 잘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더 노력하기 위해 경쟁하고, 자유를 위해 돈을 버는(일하는) 것부터 재점검한다. 이 장에는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지만 전혀 다른 뜻으로 변주되는 용어도 등장한다. 또 지금까지 했던 최선이나 경쟁이 시작부터 잘못 꿴 단추 같다는 생각도 하게 한다. 저자는 누구에게 책임을 씌우고 누구는 피해를 당하고는 별로 문제 삼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런 세계에서 살아왔다는 인식에서는 어떻게 공존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며 살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함이다. 즉 닥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협력하고, 위기를 벗어난 후 위기를 맞게 한 용의자 집단을 처벌할 수도 없고 처벌한다면 당초 협력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일은 문제 해결에 필요한 일이니 만큼 생략할 수는 없을 터, 앞으로 "어떻게 존엄성을 지키며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풀어나간다.

저자의 이 같은 주장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상품화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소비 능력’ 을 갖춰야 하고, 그러려면 끊임없이, 더 많이 일을 해야 한다. 과로와 일 중독을 잊기 위해 또 다른 소비에 열중하는데, 오늘의 소비는 내일의 노동을 담보로 하기에 이 삶의 패턴은 계속 악순환된다. 직장인, 자영업자 등 대부분의 서민들은 하루하루 빠듯하게 돌아가는 ‘노동’의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오히려 그러한 일상이라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해한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의 쳇바퀴를 이탈하게 되면 어김없이 낭떠러지로 추락하기 때문이다. 삶을 영위할 또 다른 대안이 없는 곳에 ‘쉼’은 있을 수 없다."

 


 

2장에서 저자는 다소 생경한 용어들 등장시킨다. '착각 노동'과 '환타지' '소비를 쉼으로 착각하는 현실' 등을 지적한다. 책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자살뿐만 아니라 혐오를 앞세운 범죄,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구조적 살인과 사회적 재난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생존을 위한 가계 대출 규모는 이미 치명적인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 사회의 미래에 대한 예감에는 기대감과 비관이 공존하다. 불안에서 벗어난 어떤 평안을 위해, 사람들은 최신 캠핑 도구와 등산 장비를 SUV 차량에 싣고 천연의 삶을 즐기러 산으로 들로, 강과 바다로 떠나곤 한다. 웰빙, 행복, 건강의 뜻을 모두 담은 단어 '웰니스'는 21세기 신종 산업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의 철학이자 생활양식이 되었다. 노후 연금, 양육에서 벗어난 중년의 목가적 삶, 가족과 이웃이 함께하는 품격 있는 주택, 고가의 빈티지와 최첨단 디지털 제품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21세기형 답을 주는 듯하다. 사람들은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일하려 한다.

웰니스 열풍의 반대편, 2003년 카드 대란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자살이 급격히 늘어났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자살률은 이후 18년 이상 계속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삶은 언제나 그렇게 우울한 것일까? 대한민국도 한때(2002년부터) 주5일 근무제로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했던 바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서구에서는 2차 세계대전이 지나면서 주 40시간 노동이 규범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실시해온 서구와는 달리 노동을 멈추고 삶의 여유와 즐거움을 만낄해야 할 이틀의 휴일을 즐기기 위해 사람들은 일하는 5일 동안 오히려 초과 근무까지 악착같이 해야만 했다. 더 큰 문제는 일주일 중 이틀 동안 쓴 카드 비용 때문에 나머지 닷새를 점점 더 노예처럼 일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를 저자는 '저당 잡힌 미래'라고 표현한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피로사회, 성과사회, 일 중독, 자기계발, 취업 걱정 등은 바로 고도로 정교화된 칸트식 노동 예찬의 다른 이름들이라고 비판한다. 금수저와 흙수저가 노동 예찬의 대상일 수 없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는다. 이렇게 현실을 뒤로한 채 외치는 노동 예찬은 주어진 노동의 욕망를 실현하고 결핍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하고 최종적인 방법이라는 '착각 노동'의 판타지를 퍼뜨린다는 주장이다. 일을 자아실현과 동일시하는 사회는 직업 또는 일을 개인의 문제를 해결할 최상의 방법으로 여기지만, 이는 판타지에 불과하다. 이 판타지가 진실에 가깝다면, 우리는 일을 많이 할수록 행복해져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반대논리가 현실을 장악하고 있는 실정도 꼬집는다. 이 때문에 저자는 현대인들로 하여금 일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고 믿게 하는 메커니즘을 ‘착각 노동’ 판타지라고 한다. 그리고 소비 문화가 우리의 여가 시간마저 장악하여, 신용카드를 긁어야 잘 쉬는 듯한 느낌이 드는 현실을 포착한다. 물론 이것 역시 착각이라는 것이다.

 

저자 : 이승원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 경기도 안양과 영국의 몇몇 작은 도시에서 살았던 시절을 빼고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지금도 여전히 멋진 사회복지사 아내, 동물병원에서 일하며 음악을 공부하는 딸, 권투할 때가 가장 맘이 편하다는 아들, 치매 속에서도 늘 웃으시는 어머니, 큰 병을 이겨내고 있는 강한 누나와 함께 살고 있다. 청소년 시절 육상, 야구, 농구, 중창단, 교회 학생회 활동에 빠져 지냈으며, 이후 대학에서 철학, 종교학, 국제학, 정치학 등을 공부했다. 책보다는 다양한 사람들과 더불어 현장 경험을 하며 더 많은 삶의 지혜를 얻었다. 한동안 생업으로 국회, 중간지원조직, 공공연구기관 등에서 일하기도 했다. 주로 민주주의, 포퓰리즘, 도시 정치, 사회혁신, 세계 시민교육 등을 연구하고 관련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민주주의』(2014), 『커먼즈의 도전』(공저, 2021)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에르네스토 라클라우·샹탈 무페, 2012),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샹탈 무페, 2019) 등이 있다. 현재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커먼즈 네트워크, 시시한 연구소, 지식공유 연구자의 집,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등에서 동료들과 함께 배우고 활동한다.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면, 불광천에서 달리기와 자전거 타기, 북한산과 봉산 오르기, 드라마 보기, 동네 목욕탕 가기를 즐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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