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하는 자에게 축복을 안전가옥 오리지널 24
민지형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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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를 열자마자 튀어나온 망각이란 재앙을 오늘날 되살린다면 그것은 인간에게 재앙이 될까, 쾌락이 될까. 망각에 대한 저자의 깊은 사유를 형상화시킨 데 성공한 이 작품은 SF소설의 지평을 넓혀주는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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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하는 자에게 축복을 안전가옥 오리지널 24
민지형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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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기억'과 '망각'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면 으레 ‘판도라의 상자’가 떠오른다.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여성으로서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로부터 불을 얻은 인간을 벌하기 위해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진흙을 빚어서 만들게 하였다. 인간으로 태어난 판도라가 온갖 불행을 가두어 둔 상자를 호기심에 못 이겨 여는 바람에 인류의 모든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결과보다는 인류의 불행의 시작이 된 판도라의 상자에서 무엇이 나왔을까. 다 아다시피 판도라가 상자의 뚜껑을 연 순간, 욕심, 시기, 원한, 질투, 복수, 슬픔, 미움 등의 재앙들이 세상으로 쏟아져 나왔다. 깜짝 놀란 판도라가 상자 뚜껑을 닫았을 때 그 안에 남은 것은 딱 하나, 희망이었다. 그것을 안 판도라는 희망을 꺼내 주었다. 사람들은 아무리 힘든 일을 겪더라도 희망 덕분에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다는 이야기로 인구에 회자되어 왔다.

이때 나온 온갖 재앙 중에는 '망각'이 있었다는 점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마지막 남은 '희망'에 중점을 둔 신화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망각은 어떤 것일까? 망각이란 쉬운 사전적 풀이로는 '잊는 것'을 말한다. 망각은 기억을 전제로 한다. 전에 경험 또는 학습한 것을 상기하거나 재생하는 능력이 일시적 또는 영속적으로 감퇴 및 상실되는 일이라고 〈심리학용어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이처럼 망각과 기억은 인간의 심리적인 요인과 관련되어 연구 대상이기도 하고 발전 토대이기도 하다. 망각은 일종의 삭제나 퇴화로 본다면 우리 삶의 불안 요소가 되겠지만, 인생이 좋은 일보다 나쁘고 싫은 일을 극복해가는 차원에서 본다면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될 수도 있으리라.

 


 

이 책 『망각하는 자에게 축복을』은 표제어가 말하는 '망각'에 대한 저자 민지형의 사유를 형상화한 소설 작품이다. 이 소설엔 기억을 업로드하고 체험하게끔 하는 기기(라이프 랜드스케이프)가 나온다. 배경 시점이 현재나 근미래 정도이다. 이 소설은 이로써 SF 소설로써의 조건을 갖추어간다. 입주 가사 도우미 재이는 이 기기를 통해 전혀 다른 표정을 얻은 집주인 내외를 보며 호기심을 키우고, 한 사람의 가장 행복한 기억이 다른 한 사람에게는 가장 끔찍한 기억일 수도 있음 알아낸다. 슬슬 일에 질려가던 어느 날, 재이는 안방에서 난도질된 몸을 발견한다. 낭만적인 기기와 희대의 살인 사건이 맞물리자, ‘라이프 랜드스케이프’의 개발자이자 개발사 호라이즌의 차기 CEO 리사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재이를 찾아온다.

이 소설의 키워드는 등장인물을 제외한다면 단연 '라이프 랜드스케이프'다. 라이프 랜드스케이프는 기억을 사고팔 수 있는 소비재로 만드는 동시에, 그 과거를 전복하여 체험하는 복수 패치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괴로운 기억은 짐이지만, 짐을 인식할 때 이를 짊어질 힘과 의지를 발견하게 되는 법도 있다고, 소설은 양날이 빛나는 ‘라이프 랜드스케이프’를 들어 말한다. 나아가 “가장 돌아가고 싶은/싶지 않은” 작가 본인의 기억에서 출발했다고 밝힌 이 소설은 창작 역시 망각에 대한 대항임을, 그러므로 소설은 단순한 전리품이 아니라 그 대항의 자명한 증거임을 보인다.

 


 

인간은 망각이라는 특권을 지닌 존재다. 다만 『망각하는 자에게 축복을』 속 일부는 특권을 포기할 수 있는 특권조차 살 수 있다. 그리하여 기억하고자 하는 것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즐기며 잠시나마 살아간다. 그러나 개인의 기억이란 진실일지라도 사실이 아니며, 하물며 같은 사건을 복수의 당사자들은 다르게 기억한다. 한 인간의 행복이나 고통, 즉 개인성의 원천인 기억을 가촉적인 것으로 뒤바꾼 연금술로 인해 바야흐로 사실과 망상이 섞인 기억이 파일 형태로 공유되는 시대다. 이를 통해 이야기는 모험으로 나아간다. 재이와 리사 두 여주인공이 사람이 서로 쫓고 쫓기는 모습은 매초 망각되고 유실되는 세계 속에서 기억을 꼬리잡기하는 듯 그려지며 보는 이의 긴장감을 더한다.

이 소설의 서두는 “이것은 과학 기술을 가장 낭만적으로 이용한 사례가 될 것이며, 현대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발명품이 될 것입니다.” 신제품 개발에 대한 TV의 제품 소개로부터 시작된다. 가사 도우미 재이가 쪽잠에서 깨어날 무렵 어렴풋이 들리는 소리다. 재이가 잔 수천만 원짜리 소파에 대한 품평도 자신만의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 순간 별안간 누군가가 재이의 몸을 만지기 시작한다. 발목 언저리를 두툼한 손가락으로 더듬기 시작해서 종아리에서부터는 손끝을 세워, 손톱이 살갗을 스치는 느낌이 선뜩하다. 재이는 당황하지 않는다. 고개를 돌려 보니, 이 대저택의 주인, 재이가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60대 중반의 늙은 남자가 소파 끝에 앉아 태연한 얼굴로 TV를 보면서 손으로는 재이의 다리를 지분거리고 있었다.

입주 가사 도우미로서 재이의 제1 목표는 언제나 적게 일하고 많이 쉬는 거였다. 한 가지를 더 보태자면, 많이 엿보는 것.(p.11)

 

 

추천사를 쓴 소설가 전혜진이 소설의 전체를 아우르는 내용을 언급한다. "마치 SNS의 확장판 같은 발랄한 기술을 통해 사람들의 기억이 업로드되어 공유되고 재생되는 콘텐츠가 될 때, 경험한 기억과 생생한 망상이 뒤섞이고, 때로는 해상도를 높이거나 낮추며 수정될 때, 기억을 콘텐츠로 만들고 다시 체험하는 과정에서 어떤 기억이 타인의 의지에 따라 삭제되거나 변조될 때, 우리의 '기억'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사람들의 비밀에 관심이 많고 선을 넘나드는 트릭스터 가사 도우미 재이와, 라이프 랜드스케이프를 만들었지만 정작 자신의 근원을 알지 못한 채 아버지의 억압에 짓눌려 있는 리사, 그리고 재계를 대표하는 그룹 호라이즌의 총수로 냉혹한 신처럼 군림하는 노아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기억'에 대한 패러다임 자체를 흔들어 놓는다.

누군가의 끔찍한 기억이 타인의 음습한 욕망의 먹이가 되고, 개인의 기억을 권력을 쥔 자들이 입맛대로 손댈 수 있는 시대, 타인의 업적을, 정치인의 비리를, 기업의 과실을, 대형 참사와 노동자의 죽음을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지우고, 다크웹을 통해 누군가의 악몽 같은 순간들이 “죽이는 파일”의 형태로 돌아다닐 때, 이 강고한 벽에 균열을 내는 것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잊고 싶지 않은, 혹은 잊어서는 안 될 기억의 힘이다. 누군가는 욕망을 위해 이용하는 타인의 기억에, 누군가는 공감하고 연대하며 복수에 나선다. 시스템에서 그 기억이 지워지더라도, 혹은 그 당사자가 죽는다 해도, 기억을 이어받는다는 행위는 뜻을 이어받는 일이다. 망각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무지가 주는 마음의 평화라면, 고통을 기억하고 의지를 이어 가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미래로 가는 열쇠다. 기억하고 기록하여 과거를 미래로 만들어 가는 이들에게 영광이 있으라."(p.300~301)

 


 

저자 민지형은 「작가의 말」을 통해 창작 동기와 수정-완성 과정에서 단편이 장편으로 전환된 이유 등에 대해 자세히 기술한다. 이 소설의 구상은 어느 날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나는 그 방에서, 그 사람을 찌른다.

실제로 있던 일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피가 흐른다.

그 장면을 떠올릴 때, 나는 사실 그를 찔러 죽이고 싶은 것보다는 그때의 나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고 느낀다.

하지만 가끔 은밀히 상상해 보는 것이다. 쪽- 아래로 찢어발길 때 흐들흐들해지는 고무 같은 몸과 아무리 후려쳐도 얼굴에 일체형처럼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신비로운 안경, 갈라진 가슴팍에서 꾸룩 뿜어져 나오는 끈적한 액체 같은 것을.

*

이 소설을 쓰고 고치면서, '기억'이라는 것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잊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중략)

이 소설은 원래 단편으로 쓰였다. 자전적인 그를 써야 하는 워크숍이었다. 덕분에 지금의 '나'를 만들어 낸 순간들과 그 기억들을 떠올리게 되엇고, 그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나열할 수 있는 소설의 장치로 '라이프 랜드스케이프'라는 가상의 기계를 고안했다. (중략)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간직한 이들을 위해 그러니까- 우리들을 위해서, 나는 이 이야기를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p.303~306)

 


 

이 소설이 단편에서 장편으로의 전환, 기억과 망각이라는 개념, 수정과 출간까지 많은 작업을 도왔다는 출판사 이지향 PD의 말은 소설의 내용과 저자 민지형의 주제 의식, 심지어 줄거리도 꿰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 작품은 서로를 싫어하면서도 끌리는 정반대의 두 사람이 서로를 속고 속이며 끝까지 달려가는 속도감 넘치는 스릴러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서로를 잡거나 피하려고 계획을 짜고, 그 계획이 성공하거나 실패할 때 두 사람 사이에 피어오르는 증오와 애정에 대해 작가님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아무리 심각한 상황에서라도, 심지어 상대가 미울지라도 끌릴 수 있는 게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감정이 절망적인 상황을 견디고 돌파하는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말도 못하게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솔직하게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여자들을 그리고 싶은 저자의 마음에 동의했다.

실제로 작품 속의 두 여자 재이와 리사는 살아온 환경도 생각도 생활도 정반대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평상이라는 결코 마주칠 일 없는 두 사람이 리사가 개발한 기억을 재생하는 기기인 '라이프 랜드스케이프'로 얽히게 된다. 매우 지독하게.

'기억'은 이 작품에서 중요한 화두이다. '기억'과 '상상'을 관장하는 부분이 뇌의 같은 영역이라는 사실을 이 작품을 프로듀싱하면서 알게 됐다. 바로 해마라는 뇌속 일부 기관인데 기억을 다루는 기능과 미래를 상상하는 둘 다 해마가 담당한다. 그래서 해마가 손상된 사람은 어제 뭘 먹었는지, 어린 시절 어떤 추억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다음 주에 뭘 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고 한다. 즉, "기억하지 않는 자에겐 미래가 없다"는 구호는 상징적ㅇ니 차원에 그치는 말이 아니라 과학적 진실에 가깝다."

 


 

다음 순간, 리사는 미친 듯이 직원 전용 통로를 뛰어서 드넓은 활주로로 나갔다. 아무런 근거는 없지만, 직감이 그를 이끌었다. 상대적으로 날렵한 경비행기가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이 저 멀리서 보였다. 작은 리사의 몸으로는, 아무리 달리고 또 달려도 도저히 거리가 줄어들지 않았다. 활주로라는 것이 이렇게 길고 넓었 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리사가 뛰어오는 것을 알 리가 없는 비행기가 드디어 이륙을 준비하는 듯 천천히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리사는 이를 악물고 비행기를 향해 달렸다. 그러나 속도를 내기 시작한 비행기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가속이 붙었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올라, 한계에 다다른 것을 깨달은 리사는 쏟아지는 눈물을 멈추지도 못하고 화풀이라도 하듯 충동적으로 주머니에 들어 있던 권총을 꺼내 들었다.(p.158) - 「리사는 갖고 싶다」 중에서

 

저자 : 민지형

 

1986년생. 서강대학교에서 국문학과 신문방송학, 일본학을 공부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대학원에서 극영화 시나리오를 공부했다. 2015년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에서 「조선공무원: 오희길 전」으로 우수상을 수상했고, 2019년 TV드라마 [레버리지: 사기조작단]의 극본을 썼다. 영화와 드라마 현장에서 작가로 일하며 한국영화성평등센터 소속 성폭력예방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첫사랑은 중학교 3학년, 첫 연애는 대학교 2학년. 이후 연애에 나름 소질(?)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선 열심히 연애하고 이별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에 큰 충격을 받고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것이 우리들의 연애와 사랑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경험하며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소설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는 그 경험들에 관한 이야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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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능 이름 사전 - 누구나 쉽게 이름 짓는 법
소담 지음 / 콜라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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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제든 필요할 때마다 개명, 작명, 예명, 캐릭터명 쉽게 만들기를 안내하는 작명의 모든 것을 수록했다. 사전이라 이름 붙일 만큼 세세하고 정밀하게 해설도 붙였다. 또 작명 원리 중 발음오행, 자원오행, 수리사격 등 이름 짓기 원하는 기준만 적용 가능하도록 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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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능 이름 사전 - 누구나 쉽게 이름 짓는 법
소담 지음 / 콜라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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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사전'이라는 표제어 때문에 유명 인사들의 이름을 모아놓은 '인명 사전‘과 헷갈릴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작명 사전'이다. 이름을 지을 때 필요한 것을 찾아보는 사전이다. 우리 이름은 대개 한자를 사용해 왔다. 누구나 남녀 구별 없이 한자 이름을 갖고 있을 것이다. 태어나면 갖게 되는 이름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 사용하지만 작명 원리에 따라 짓는다고 한다. 특히 우리는 성과 이름을 모두 한자를 사용했다. 최근엔 이름의 경우 순우리말이나 한글 발음으로 듣기 좋은 이름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지만 아직 우리 나라 대부분은 한자 성을 그대로 갖고 있고, 이름도 한자로 지어 사용하고 있다. 한자 자체가 뜻글자이니만큼 한 자, 한 자에 각각의 뜻이 있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인간이 평생 사용할 것을 고려해 의미가 좋은 한자를 사용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는 무척 어려운 작명 원리가 있다고 한다. 사회적 인식이 아직은 한자 이름이 더 일반적이어서 한글 이름을 일부러 생각해놓지 않은 경우 대부분 한자 이름을 관례대로 짓고 사용한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이 잘 알지만 한자는 무척 어려운 글자다. 일반 사람이나 특히 한자 교육을 받지 않은 한글 세대인, 지금의 중년까지는 한자 이름을 짓기에는 무척 어렵다. 이 때문에 유명 작명인이나 작명소를 찾아가 이름을 의뢰해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엔 한글로만 된 이름이 이젠 낯설지 않을 정도로 시대가 변했다. 특히 법원에서도 출생 신고 시 이름 옆에 한자를 옆에 병기토록 해 이전 세대는 한자 이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한자로 성과 이름을 짓는 사람들은 대부분 조선시대에 양반이나 일반 백성 중에서도 사회적 인식이 허용된 범위 내에서 가능했기에 한글 이름은 사람의 축에 들지 못하는 천민 계급에 사용하던 불행한 시대의 산물이지만 사회적 의식이 아직은 관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한 현실은 안타깝다.

 


 

조선 후기에 양반과 중인, 일반 백성, 천민 등의 신분 제도가 붕괴되면서 한자 이름을 모두가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신분 제도가 붕괴된 것은 시대적 흐름도 있겠지만 정치의 잘못으로 양반 신분을 돈으로 사고팔고 하는 바람에 신분 제도의 붕괴가 있었다. 신분을 돈으로 산 일부 사람들은 아예 성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누구나 양반 신분으로 한자 이름을 사용했을 것이다. 일반 백성은 그래도 양반들이 갖고 있는 성씨를 쉽게 살 수 있지만 천민들은 돈도 없는 데다 마땅한 아는 양반도 없을 터이니 잘 쓰지 않는 한자를 몇 개 골라 주었다는 말도 있다. 이른바 '천성(賤性)'이란 말도 생겼다. 여기에 그 성씨를 쓸 수는 없지만 들어본 독자들은 상당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모두 조선 시대 정치력 부재, 타락한 양반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성씨와 이름을 팔았다는 일이 더 수치스럽다.

과거야 어쨌든 지금은 한글 전용 시대이고 가능한 한 한글을 쓰도록 사회 인식이 바뀌고 있어 이름도 곱고 발음이 좋은 한글을 사용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법원에서도 한글이름을 인정하고 출생신고에도 한자 병기 의무 사항을 삭제한 것으로 들은 적이 있다.

개명이 필요한 경우 한자로 사용하는 것보다 아예 한글 이름이나 발음상 한글처럼 들리는 이름을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이들의 이름을 보면 우리말에 아름답고 듣기 좋은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 한자만 사용하던 조선시대가 나라말도 잃어버린 셈이라는 생각에 아쉽다. 또 예명이나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 속 인물의 이름이 필요할 때 쓰는 캐릭터명도 한글로 바뀌어가는 추세여서 반가운 일이다. 작명 사전인 이 책 『만능 이름 사전』은 작명 원리를 알아두는 것도 유사시 필요할 것이란 생각에 예비 지식으로 구입을 하는 독자들도 많을 것이란 예상을 해본다.

 

 

특히 삶이 잘 안 풀리거나, 발음상 듣기 거북한 이름, 뜻이 이름으로 쓰기에 맞지 않은 한자 이름도 아직 많이 있다고 해 저으기 놀랍다. 개명도 예전보다 쉬워졌고, 한글 이름도 가능한 시대 작명 사전이 웬말?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우리 이름은 너무도 소중하기에 꼭 이런 사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온전히 한글로 성과 이름을 쓰는 날로 바뀌기 전까지는 말이다. 독자들도 한 번쯤 '내 이름, 괜찮은 걸까?’라는 의문을 떠올려 봤을 것이다.

독자는 경험이 있다. 내 스스로 이름이 안 좋은 건가? 하는 의문을 떠올린 것은 아니다. 학교 다닐 때 부모 말씀을 제대로 안 듣고 빗나간 행동만 한다는 질책과 함께 어느 날 이름을 바꿔 부르기로 했단다. 한자를 쓰는 것은 그대로지만 서울의 유명한 작명가에게 적잖은 돈을 주고 받아왔단다. 호적상 이름을 바꾸는 것은 어렵고 귀찮은 일이니, 호적상은 그대로 두고 살면서 불리는 이름을, 말하자면 사온 것이다. 그래서 대학 다닐 때는 상당수 클라스 메이트들이 바뀐 이름을 불렀다. 심지어 졸업 당시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주는 상패에도 바뀐 이름으로 적혀 집에 아직 그대로 있다.

이 책 『만능 이름 사전』은 이름에 관한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동시에, 누구나 쉽게 이름을 짓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개명, 작명, 예명, 캐릭터명까지 가이드만 따라가면 원하는 이름을 완성하도록 구성했다. 무제한 사용 가능한 이 책을 언제든지 꺼내서 ‘내 이름이 나와 잘 맞는지’ 분석하며 개명할 이름 후보도 꼽아 보고, SNS에서 사용할 예명도 지어본다면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도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또 언젠가 태어날 아기 이름도 좋고, 작가라면 내 작품 속 캐릭터 이름을 지으며 그들의 운명을 결정해도 좋을 것 같다. 한자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사주를 해석할 줄 몰라도 작명이 가능하도록 구성된 이 책의 안내와 우선순위 추천 글자, 필요한 팁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 이 책을 구성했다. 따라 하기만 하면 이름이 완성되는 샘플까지 충실히 담겨 있어 전문가의 코칭을 받는 느낌으로 즐겁고 편하게 이름 짓기에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더불어 ‘개명으로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 ‘작명소에서 당하지 않으려면?’ ‘예명만 사용해도 운이 달라지는 효과가 있을까?’ 등 궁금했던 질문에 관한 대답까지 함께 들을 수 있어, 이 책 한 권으로 이름 짓기라는 세계가 내 일상으로 들어오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이 책에 ‘만능 이름 사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작명, 개명, 예명, 그리고 창작자를 위한 캐릭터명까지 원하는 모든 이름을 짓는 방법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또 내 이름이 정말 괜찮은지, 혹시 나와 잘 맞지 않은 이름은 아닌지 분석도 가능하고, 다양한 개명 후보들과 SNS에서 사용할 예명도 무제한으로 지어볼 것을 권유한다. 언젠가 태어날 아기 이름을 여러 가지로 지어보면서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떠올려 보기도 하고, 귀요미 조카 이름을 지어서 추천하거나 예비부부 선물용으로도 좋다고 덧붙인다. 앞서 언급한 대로 글을 쓰는 작가라면 작품 속 캐릭터 이름을 만들어 보며 그들의 운명을 결정해줄 수도 있다.

이 책 『만능 이름 사전』은 한마디로 ‘누구나 쉽게 이름을 지을 수 있도록 만든 책’이다. 이 책이 목표하는 바는 적어도 100점 만점에 90점 정도의 이름을 누구나 지을 수 있도록 쉽게 이름 짓기를 소개하는 것이라고 출판사 측은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기존 주류 성명학 기준을 토대로 하되, 여러 갈래가 있을 경우 그 기원을 꼼꼼하게 따져서 더 타당하다고 보는 쪽을 기준으로 삼았고 이때 기준으로 삼은 근거와 함께 다른 의견은 참고로 실어주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을 따라가기만 하면 보통 이상의 작명소에 가서 이름 짓는 정도는 충분히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출판사 측의 주장이다.

 


 

이 책 『만능 이름 사전』 한 권에는 이름이라는 거대한 세계를 내 손 안에 잡히게 해줄 내용이 알차게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름 짓기의 방대한 과정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가이드로 만들어서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쉬운 방식을 제시하였고, 작명 과정의 핵심을 이해하여 나에게 필요한 경우에만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 필요한 경우 언제 어디서나 이용 가능한 책으로 기능하도록 사전식 배열이나 구성을 따른 독창적 이름 사전임을 강조한다. 이 밖에 다양한 예시로 작명 과정을 자세하게 보여줌으로써 실제로 이름 짓기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성명학에 지식 없이도 누구나 자유자재로 손쉽게 원하는 이름을 지을 수 있게 되리라 출판사와 저자는 확신하고 있다.

이 책은 모두 7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만능 사전 사용법」-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기본 스텝과 가이드, 2부 「개념 한 스푼」-한눈에 알기 쉬운 개념 원리, 3부 「만능 글자 사전」-이름 짓기의 하이라이트, 좋은 글자 고르기, 4부 「주의할 글자」-주의하여 사용해야 할 글자와 그 이유, 5부 「실전 사례」-작명, 개명, 예명, 캐릭터명 실전 엿보기, 6부 「Q&A 상담소」-이름 짓기에 관한 궁금한 질문들, 7부 「수리사격 해설집」-수리사격81의 자세한 해설집 등이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이 책은 독창적 특징으로 독자들이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실제 작명해볼 수 있도록 관련된 모든 것을 실었다. 출판사가 내세운 여덟 가지 독창적 특징을 독자가 임의로 번호를 붙여 여기에 명기한다. 독자들이 이 책의 성격을 알고 읽는다면 더 빠른 이해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① 국내 최초 다양한 목적에 딱 맞춘 이름 짓기 툴 : 그동안 좋은 이름 찾으려고 얼마나 헤매나? 가이드를 따라 하기만 하면 누구나 쉽게 이름을 지을 수 있는 『만능 이름 사전』 하나로 작명, 개명, 예명, 캐릭터명까지 명쾌하게 해결된다. ② 사주에서 이름 관련된 핵심 내용만 알기 쉽게 총정리 : 이름을 지으려면 사주를 알아야 한다고? 이름 짓기 전 사주와 관련해 체크할 포인트는 바로 오행의 분포다. 사주의 부족한 기운을 이름으로 채워 보완하는 방법을 모두 공개한다. ③ 글자에 담긴 뜻과 자원오행, 획수 정보가 한눈에 : 이름의 재료가 되는 한문 글자, 그 글자에 담긴 의미와 자원오행, 획수 정보까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주를 확인한 다음, 나에게 부족한 기운의 마음에 드는 글자를 찾아보는 재미에 푹 빠질 수 있다.

 


 

④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은 내가 직접 판단해 걸러내도록 : 여자 이름에 사용하지 않은 글자, 너무 뜻이 강해서 인생의 굴곡이 생길 수 있는 글자 등. 이러한 글자는 따로 분리해 주의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나서, 필요에 따라 유의해 사용하도록 하였다. ⑤ 발음오행? 자원오행? 내가 원하는 기준이면 적용 : 모든 조건에 딱 맞는 이름을 찾기 어려울 때를 대비해 성명학 주류 개념인 발음오행, 자원오행, 수리사격을 스스로 이해한 다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쪽으로 우선순위를 두어 적용하도록 하였다. ⑥ 찾았다! 나와 비슷한 사례 : 우선순위가 헷갈리거나 뭐가 더 좋을지 고민될 때는 이름 짓기 사례를 통해 남들은 어떻게 판단해서 이름을 짓는지, 어떤 기준이 중요한지 참고하며 내가 진짜 원하는 이름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⑦ 친절한 팁으로 옆에서 코칭받는 느낌 가득 : 궁금해할 만한 부분에 친절한 팁을 달아 옆에서 함께 있어 주는 느낌으로 이름이라는 세계를 탐험할 수 있다. ⑧ 이름이 나쁘다고? 작명가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 가능 : 이제 내 이름이 안 좋을까 괜히 불안해하거나 찜찜할 필요 없다. 오히려 작명소를 가더라도 전반적인 체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내가 원하는 이름을 지어올 수 있다.

 

저자 : 소담

 

“본 바탕이 희고 그 맛이 슴슴하다는 것은 항상 변함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제가 닮고 싶은 성질을 호로 지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름 짓기를 대중적으로 쉽게 풀어낸 책이 없어서 주변 분들이 늘 막막해하는 것을 보고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료를 모으며 실용적이고 대중적인 관점에서 체계화하여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이름 짓기 책을 정성껏 만들었습니다. 따라 하기만 하면 이름을 지을 수 있는 실용성과 더불어 성명학의 핵심 개념과 쟁점까지 다루어 이름 짓기를 내 손에 잡히는 일상의 영역으로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만능 이름 사전》과 함께면 어려운 용어나 개념에 발목 잡히지 않고 자신에게 가장 맞고 필요로 하는 이름을 지을 수 있습니다. 이 책과 함께 이름이라는 세계를 탐험하는 과정에서 이름 짓기에 대한 두려움이 기대와 즐거움으로 바뀌길 바랍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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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마지막 황실
이해경 지음 / 유아이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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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를 전쟁의 역사라고 정의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인류는 유사 이래 헤아릴 수 없는 크고 작은 전쟁을 끊임없이 해왔다. 따라서 권력층이나 왕조의 흥망성쇠는 병가지상사라고 할 만큼 흔하고 잦은 일이기도 하다. 강력한 왕조라 할지라도 500년을 이어온 왕조는 가장 강력한 왕조라 했던 중국이나 로마 등 세계 역사를 통틀어도 그리 많지 않다고 들은 바 있다. 그렇지만 500년을 넘긴 왕조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은 518년을 이어온 한반도 작은 나라지만 영욕의 세월을 모두 헤쳐 나오며 518년 간 이어졌다.

물론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루고 막강한 군을 보유한 일본의 야욕에 결국 무릎을 꿇고 국권을 상실했지만 이어온 세월이 500년이 넘는 나라가 무너졌다. 그러나 그 나라에 살던 사람들마저 정복하지는 못했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다시 자주독립국으로 우뚝 섰다. 비록 이념 차이로 반쪽으로 나뉘었지만 세계 10대 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시 일어섰다. 이는 한민족의 자존심이자 대한민국의 자긍심으로 체화되었다.

이 책 『대한제국 마지막 황실』은 고종 황제의 손녀이며 의친왕의 딸인 이해경 왕녀가 자신을 비롯한 황실 가족의 삶을 되돌아본 회고록이다. 저자는 세 살 때부터 궁에 살면서, 예절과 법도를 중시하는 궁궐 생활과 개화된 바깥세상 사이를 오가며 자랐다. 왕녀로 지낸 시간과 일제 강점기,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학창 시절, 해방을 거쳐 6·25 전쟁까지의 혼란 등을 고스란히 직접 겪었다. 국권은 회복했으나 왕조가 들어선 게 아니라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국가 수립으로 왕조의 식구들로 함께 궁에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젠 거의 유명을 달리하고 얼마 남지 않았을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 실제 궁 안에 살았던 왕족들은 이제 없다고 해야 맞을 듯하다.

 


 

저자 이혜경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대한제국 황실과 구한말의 숨겨진 역사를 황실 가족의 일생을 통해 자신이 직접 겪은 바대로 자신의 생애 범위 내에서 회고했다. 이미 113년 전에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황실의 일가는 저마다의 삶을 이어 가야만 했다. 또한 영친왕, 의친왕, 덕혜옹주, 이우 공 등 많은 황실의 가족이 망국의 설움과 더불어 비운의 삶을 살다 갔다. 한국 근현대사 속 격랑의 시대를 모두 거쳐낸 이해경 왕녀의 생생한 회고담을 통해 황실 사람들이 겪었던 시대의 아픔에 귀 기울여 보는 것도 우리 나라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역사에는 늘 즐거운 일만 아니기 때문이다. 또 즐거운 일보다 힘든 일에서 배우는 바가 더 크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본이 근대화 산업화를 이루고 막강한 군의 힘으로 한반도 및 대륙(중국) 침략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할 무렵 조선 왕조는 혼란을 거듭하고 있었다. 권력층은 나라의 운명을 외면한 채 사욕을 채우고, 권력 싸움만을 계속했다. 근대화된 일본군에게 총 한 번 제대로 쏘아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나라를 빼앗겼다. 서양 특히 영국의 대영제국을 모델로 삼은 일본 제국주의와 군대는 영국의 식민 정책을 그대로 배워와 '동양 평화'를 앞세우며 식민지를 확대해가기 시작했다. 변변한 군대도 없고, 무기를 들여올 돈도 없는 조선 왕실은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꿔가며 최후의 방어에 진력했지만 일본군의 막강한 힘을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1910년 518년을 이어온 조선왕조가 막을 내렸다. 일본은 회유책으로 왕실과 왕조에 대한 보호한다는 얄팍한 술수를 앞세워 왕실 일가를 일본으로 데려가 일본 내에서만 거주하도록 강제했다. 감시 대상인 것이다. 일본으로 끌려간 왕실 일가는 대부분 "나라 빼앗기더니 이젠 민족마저 배반한다"는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궁지로 몰렸다. 굳이 문서로 확인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뻔한 일이다.

 

 

35년간 일제 식민지 생활을 해온 국민들에게 호의를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최종 책임은 황실에 있고, 빼앗기고 나서도 독립운동에 나설 입장도 못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사람들의 독립운동 참여가 커지자 독립투사들은 중국 등으로 몸을 피해 독립운동을 계속하고 새로운 체제의 임시 정부도 수립했다. 이젠 나라의 주인이 왕실이나 왕이 아니라 국민인 나라가 된 것이다. 저자 이혜경은 고종 황제의 아들 의친왕의 다섯째딸이다. 대한제국은 일제의 국권 침탈로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대한제국은 근현대사 역사책에나 나오는 시절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그동안 대한제국 황실에 대한 인식은 무능하여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고, 항일에 대한 의지 없이 유약하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독자도 역사 시간에 그렇게 배웠다. 그것은 모두 일본이 만들어낸 국권 침탈의 명분이라는 것이 저자 이혜경의 주장이다. 황실 일가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았다는 것. 저자는 이러한 왜곡된 세간의 평가를 바로잡고자 자신이 경험하고 목격한 궁궐 안에서의 삶을 이 책을 통해 밝히고 있다. 여러 가지 왜곡된 사실이 있었을 것이지만 저자의 부친인 의친왕에 대한 매국노·친일파 비난은 잘못된 것이라 바로잡고 싶다는 게 책 발간의 가장 큰 이유다.

저자는 1997년 『나의 아버지 의친왕』이란 책을 낸 바 있다. 그 책의 주인공은 의친왕이었다. 이에 따르면 그동안 그 책의 내용은 대한제국과 아버지에 대해 언급한 여러 책에 인용되기도 했다. 의친왕의 딸인 나의 개인적인 기록이 인용될 정도라면 그만큼 대한제국 황실 가족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이 많지 않다는 얘기이다. 이 책의 일부 내용은 전에 펴냈던 『나의 아버지 의친왕』의 내용과 겹치는 부분도 있다. 어차피 두 책 모두 저자와 가족이 살아온 이야기를 적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렇게 나의 이야기를 다시 쓰는 이유를 「대한제국을 회상하며」란 책 '머리글'에서 적고 있다. 첫째, 왕녀로 태어나 민간인이 되어, 또 재미 동포가 되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나의 삶의 여정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둘째, 대한제국의 황자였던 내 아버지 의친왕에 대한 왜곡된 평가를 바로잡고 싶은 마음에서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 사람 어느 누구도 행복한 생활을 한 사람은 없을 터, 조선 마지막 왕실 일가들도 처참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이 추측은 조선 사람들 모두가 직접 겪었기에,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이나 기록은 행복이란 단어가 아예 없었을 것이란 점에 동의할 것이다. 어쩌면 당시 조선어 사전을 봐도 행복이란 단어는 빠져 있었지 않나 싶다. 저자 이혜경은 궁 안에서의 생활을 썩 내키지 않아 했던 것 같다. 저자는 어린 시절 생모와 헤어져 사동궁에 살면서 의친왕비의 보살핌을 받았다고 한다. 유모, 나인, 상궁같이 시중드는 사람이 늘 옆에 있었고, 소학교에 입학해서는 가까운 학교까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황실의 호사(?)를 누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친구들과 마음껏 놀 수도 없고, 이것도 하지 말고 저것도 하지 말라는 엄격한 예법의 굴레에 매인 궁중 생활을 답답해하며 자랐다. 여고 시절에는 일제의 전쟁 준비에 동원되는 근로 봉사를 하느라 공부할 시간도 없었으며, 해방 이후 음대를 졸업하고 음악 교사로 일한 지 얼마 안 되어 6·25 전쟁을 맞았다. 전쟁 중 미군 부대에서 일한 것을 계기로 미군 부대의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다, 1956년 단돈 80달러만 가지고 유학을 떠났다. 성악가가 되리라는 꿈은 못 이뤘지만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동양학도서관에서 일하며 구한말 조선 왕조 역사에 남다른 애착과 흥미를 갖게 되었다.

책에 따르면 의친왕비에게 친자식은 없었지만, 의친왕은 여러 후실에게 많은 자녀를 얻었다. 하지만 의친왕비는 불평하는 법이 없었고, 후실에게 얻은 자녀 중 생모가 일찍 죽거나 사정이 있어서 생모가 기르지 못하는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거두어 주었다. 이혜경 왕녀 또한 세 살 때부터 궁으로 데려와 따뜻하게 길러졌고 그녀에게 의친왕비는 생모 이상으로 감사하고 소중한 사람으로 저자에게 가장 많은 가르침을 준 사람이고, 어머니라고 부르는 단 한 분이다. 저자가 의친왕비에게 직접 들은 고종 황제의 외동딸인 덕혜옹주 이야기며, 고종 황제의 후궁들에 대한 평가는 실제의 황실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새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이 책은 모두 5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궁에서 보낸 어린 날과 학창 시절」, 2부 「내 삶을 휘저어 놓은 6·25전쟁」, 3부 「80달러 들고 떠난 미국 유학」, 4부 「나의 아버지 의친왕」, 5부 「나의 어머니 의친왕비」 등이다. 저자가 앞서 말하는 의친왕의 행적에 대한 기록 중 독자가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은 4부 「나의 아버지 의친왕」으로 의친왕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기록이다. 독자 개인으로서는 배우지도 어떤 책에서도 읽은 적이 없기에 그렇다. 4부에서 저자는 〈빛바랜 역사책에서 찾아낸 아버지의 참된 모습〉, 〈기구한 출생과 양녕대군 같은 운명〉, 〈모함과 스캔들에 시달렸던 미국 유학 시절〉, 〈일본 권력자 앞에서도 당당했던 의친왕〉, 〈삼엄했던 일제의 감시〉, 〈실패로 끝난 상하이 탈출 시도〉, 〈탈출 실패 후 갇혀버린 의친왕〉, 〈일본의 귀족이 아닌 조국의 평민으로 살겠다〉, 〈해방 후에도 그치지 않은 고난의 삶〉 등으로 구성됐다. 저자는 의친왕이 상하이로 탈출하려다 실패한 상황은 『대동단실기』(신복룡 저)에 자세히 실려 있어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독립운동에 관한 부분이어서 내용을 간추려 이 책에 실었다.

이에 따르면 이강 공이 해외로 나가기 위해서는 신분을 숨기는 공작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힘으로써는 불가능한 일이요, 탈출을 도와줄 동지가 필요했다. 이처럼 자금 면에서나 탈출의 방법에서 자신의 힘으로써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김춘기와 그의 동료이자 상하이 임시정부의 내무 차장인 강태동의 루트를 통하여 상하이에 있는 김가진에게 전달되었다. (중략) 김춘기는 이강 공이 상하이로 탈출하기 위해서는 20만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만원이 불가능하다면 우선 10만원만 있어도 출국이 가능하다고 의친왕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이종욱으로서는 그만한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막중하고도 엄청난 일을 중도에서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마지막 카드가 아직 남아 있었다. 그것은 대동단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단원들은 정운복을 이끌고 이강 공이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정운복은 이강 공을 향하여 "전하! 결심하소서"라고만 말할 뿐 두려움에 질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두려움에 떠는 것은 이강 공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전협의 무리도 두려웠고 경찰이 자기를 미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도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중략) 전협은 '우리 독립 정부에서 전하를 기다린 지 이미 오래입니다. 오늘 그 시기가 도래하여 모시러 왔습니다. 전하가 결심하시는 대로 곧 출발하겠습니다'라고 설득했다. (중략)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마음이 진정된 이강 공은 전협을 향하여 강태동이란 인물을 잘 아느냐고 물었다. 전협은 자신과 김가진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강태동은 김가진이 보낸 밀사로서 이미 자기들과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제야 이강 공은 상하이로 망명할 뜻을 밝혔다."(p.229~231) 그러나 이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거사가 진행된 첫날 이강 공이 자취를 감추자 서울부터 안동으로 가는 열차는 물론 전국의 경무국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안동역에서 요네야마 경부는 종로경찰서 근무 시절 창덕궁을 드나든 적이 있어 이강 공의 얼굴을 너무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강 공을 확인하자마자 즉시 경찰을 불러 이강 공을 둘러싸 체포했다고 『대동단실기』(p.128~152)를 인용해 이 책에 옮겼다.

 

저자 : 이해경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녀이자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손녀다. 고종 황제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의 다섯째 딸로 태어나 근현대사의 풍파를 겪으며 드라마와 같은 삶을 살았다. 구한말의 어수선한 분위기에 암약했던 대한제국 황실의 일원이자 목격자로서 평범하지 않은 세월을 보냈다. 열다섯 살에도 전담 유모를 두고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목욕 시중을 드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보살핌을 받았지만, 세계대전과 6?25전쟁을 겪으며 남들이 공감하기 힘든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특별한 가정 환경이었기에 시련의 아픔은 더욱 컸다. 경기여고와 이화여대 음악과를 졸업한 후 음악 교사로 일한 바 있으며, 자유를 찾아 1950년대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동안 컬럼비아대 동양학도서관 한국학과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데 공헌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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