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문미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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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어머니를 간병하는 50대 여성과, 뇌졸중 아버지를 돌보는 20대 청년의 이야기다. 저자는 장편소설은 재밌어야 한다는 단순하고도 어려운 원칙을 중심에 두고 썼으며, 생존은 가능하다는 희망의 방향으로 이어나갔다. 도덕은 끈질기게 괴롭혔지만 생존의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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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문미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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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이 울리고 있었다. 엄마가 또 머리맡의 벨을 누르는 모양이었다. 명주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모로 누워 귀를 틀어막았다. 그런데도 엄마가 계속 머리카락 몇 올을 틀어쥐고 잡아당기는 기분이 들었다."(p.8)

"준성은 햇볕이 잘 드는 공원 벤치에 아버지를 태운 휠체어를 세웠다. 햇볕이 있긴 해도 바람이 차가워져 산보객이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운동을 나오기 전 아버지는 온갖 구실을 대며 꾀를 부렸다."(p.19)

“연금 100만원에서 한 달 생활비를 제하면 28만원이 남았다. 명주는 몇 번이고 다시 계산한 뒤 28만원에 동그라미를 쳤다. 28만원은 엄마의 진료비를 내고, 병원 약, 기저귀와 패드, 영양 캔과 속옷 들을 사던 금액이었다. (중략)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명주는 엄마가 남겨준 풍요와 여유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p.52)

 

이 소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치매 어머니를 간병하는 50대 여성 명주와 뇌졸중 아버지를 돌보는 20대 청년 준성의 이야기다. 소설은 명주가 연금을 받기 위해 어머니 사망을 숨기면서 시작된다. 임대아파트 이웃인 명주와 준성은 빈곤 가정의 부양자이며 친족의 간병인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한다. 이 소설로 “신선하면서도 노련하다는 점에서, 그 밖에 여러 면에서, 군계일학”이라는 심사평과 함께 제19회 세계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은 빈곤과 간병 문제를 다루는 사회 소설의 모습을 보이지만, 어둡지만은 않다. 정체불명의 남성이 명주에게 전화해 “당신이 저지른 죄를 알고 있다”며 전화를 뚝 끊고, 준성의 부친에게 발생한 사고를 명주가 처리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서사는 급물살을 타며 긴장감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주제에 걸맞게 가난과 도덕이라는 소재를 짓누를 정도로 묵직한 분위기지만, 무엇보다 뒷얘기가 궁금해지는 게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다. 저자 문미순은 소설, 그중에서도 장편소설은 재밌어야 한다는 단순하고도 어려운 원칙을 중심에 두고 잊지 않았다. 그는 “이들이 자신에게 닥친 비극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절박함과 긴박함이 스릴러 같은 분위기를 낸 것 같다”며 “의도한 것은 아니고 다만 장편은 지루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47세이던 201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소설가가 된 늦깎이다. 등단 이후에도 2021년 심훈문학상을 받기 전까지 8년간 마트 아르바이트와 베이비시터 등 여러 파트타임과 풀타임 직업을 오갔다. 그는 “일과 습작을 병행하느라 첫 장편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사회를 보는 눈을 키운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끓는 물에 장화가 녹아 발에 화상을 입는 급식 노동자 명주, 매달 착실히 납부한 보험료를 회사에 착복 당하는 대리운전 기사 준성 등 살아있는 캐릭터가 그 '소중한 시간'에서 나왔다는 말로 읽힌다.

저자는 “코로나19 시기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간병하며 개인에게 맡겨진 돌봄의 무게를 소설로 다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가장 애착 가는 인물로 “살아갈 날이 많은 청년 준성”을 꼽았다. “술 취한 아버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상상으로 아버지를 때려죽이고, 그 죄책감에 아버지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장면을 쓸 때는 준성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져 상상임에도 마음이 아팠다”고 수상 인터뷰를 통해 말한 바 있다. 자신의 경험과 그 경험에서 얻은 문학적 상상력이 느껴지는 말이다.

 

 

엄마의 친구라는 할아버지, 이혼 후 떨어져 살던 딸 은진이 명주에게 접근해오자, 엄마의 매장이 시급해진다. 화상 후유증을 진통제로 달래면서 매장할 장소를 고민하던 명주는 피를 묻힌 채 복도로 뛰쳐나온 옆집 청년 준성과 마주친다. 명주의 옆집에 사는 준성은 고등학교 때부터 뇌졸중과 알코올성 치매가 있는 아버지를 돌보며 사는 스물여섯 살의 청년이다. 물리치료사가 되어 병원에 근무하는 것이 꿈이지만, 매일 아버지를 운동시키고 살림에 대리운전까지 하는 그의 나날은 녹록지 않다. 아버지를 회복시키려는 그의 노력에도 몰래 술을 사 마시는 아버지에게 절망하던 차, 집에 불이 나 아버지가 화상을 입게 되고, 준성마저 손님의 외제차에 손상을 입혀 거액의 수리비가 나온다. 준성은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 오고 수리비를 재촉하는 차주의 압박전화에 시달리며 점점 피폐해져간다. 그러다 아버지를 목욕시키던 중, 실수로 아버지를 놓치고 마는데, 어찌 손 쓸 틈도 없이 아버지는 머리를 부딪치고 사망한다.

손에 피를 묻힌 채 뛰쳐나온 준성을 급히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 명주. 욕실 바닥에 피를 쏟고 누워 있는 노인을 보고 119를 부르려는 순간, 난 이제 감옥에 가느냐며, 이제껏 내 인생은 뭐였는지 모르겠다고 울부짖는 준성을 본다. 평소 준성을 안쓰럽게 여기던 명주는 준성이 경찰 조사와 재판을 받고 죄책감에 폐인처럼 살아갈 모습을 떠올리며 그를 위한 최선이 무엇일지 고민한다. 긴 간병의 터널 끝에서 두 사람은 마침내 결단을 내린다. 분명한 것은 누구도 그들의 결정에 돌을 던질 수 없으리라는 사실이다.

 

"품위 있는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생존은 가능해야 하지 않겠어? 나라가 못 해주니 우리라도 하는 거지. 살아서, 끝까지 살아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그때까진 법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야.(p.218)

 


 

엄마의 부재에 대해 거짓에 거짓을 보태고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명주의 일상은 스릴러 소설을 보는 듯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명주는 나무관에 누운 엄마의 상태를 매일 관리하며 주변의 시선을 예의 주시한다. 어머니 잘 계시냐는 이웃의 가벼운 인사에도 의심의 촉수를 세우고, 제각각의 이유로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철저히 경계한다.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엄마의 친구라며 계속해서 안부를 물어오는 진천할아버지와 돈을 뜯어내기 위해 막무가내로 접근해오는 딸 은진의 존재다. 엄마와 제주 여행을 가기로 했다는 진천할아버지는 엄마의 쾌유를 빌며 계속해서 문자와 선물을 보내고, 눈치 빠른 은진은 작은방의 나무관을 본 후 “저건 뭐야? 꼭 관처럼 생겼네? 그 안에 혹시 할머니 있는 거 아냐?”(p.193)라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내뱉는다. 생각지도 않은 복병들의 눈을 피하려면 하루속히 엄마를 흙으로 보내드려야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명주는 골칫덩이 은진과 티격태격하다 그 방법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엄마가 사놓은 땅은 대지 80평에 건물이 17평 정도 되는 작은 시골집이었다. 엄마는 폐가로 나온 집을 늙어서 살 요량으로 사놓은 것 같았다. (…) 명주는 이제야말로 작은 동아줄이라도 잡은 기분이 들었다.(p.196)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가족을 간병하는 일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 그로 인해 일상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무서우리만치 생생하게 묘사한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엄마의 치매에 명주는 처음엔 “밖에서 겪는 모멸감에 비하면 내 엄마를 간병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지만,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결국 하루하루는 지옥이 되고 인간의 존엄이란 바닥으로 떨어진다. 준성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현실은 벗어나려 할수록 발이 빠지는 진창이고, 미래는 꿈꿀 여지가 없다.

“개인의 차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불운과 절망”으로 시작된 소설은 두 주인공을 극한 상황으로 내몰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잔혹한 현실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적인 연대와 온기를 발견해가는 과정으로 전환된다.”(소설가 은희경) 임대아파트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인 명주와 준성은 서서히 서로의 처지에 공감하며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명주가 준성에게 연민을 느끼고, 준성이 명주에게 동조하면서 둘은 서로를 의지해 앞으로 나아간다. 공포와 죄책감을 떨쳐내고 큰일을 함께 치른 두 사람은 어느덧 새로 형성된 가족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두 사람을 태운 트럭이 두 구의 미라를 싣고 눈이 펑펑 쏟아지는 고속도로를 헤쳐 나가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이제 그들이 혹한의 겨울을 지나 온기 가득한 계절로 진입하고 있음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가슴속에서는 오라고, 어떤 운명도 상대해줄 테니 오라고 나지막이 속삭이고 있었다. 준성은 지금 바닥으로 떨어진 제 인생을 가까스로 일으켜 세우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아버지의 인생을 아버지의 방식대로 살아냈듯이, 준성은 제 나름의 방식으로 싸워가고 있다고.(p.243)

 


 

저자는 “다음번엔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을 써보고 싶다”고 했다. 그의 상상력은 다분히 현실을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을 향할 것 같다. 세대 갈등, 지방 소멸, 디지털 약자 등이 그의 관심 주제다. “이 소설이 어떤 독자들에게는 조금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더욱 이 소설은 제 기능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자와 빈자,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내가 속하지 않은 세계를 한 번쯤 들여다보는 것,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저자의 작품이 적어도 사회적 약자로 표현되는 빈곤층, AI 시대의 필수 노동층 등과 가까이 하리란 추측이 가능한 이유다. 전작 『고양이 버스』를 출간한 후에 예스24와의 인터뷰에서도 "우리는 이제 팬데믹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팬데믹의 시대에 필수노동자들의 중요성이 대두되었지만, 그 가치나 처우는 아직도 제자리에 있다는 것도요. 앞으로 저는 이런 변화된 사회속에서 여전히 분투하며 살아가는 주변부의 인물들을,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자기식의 저항을 하는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인물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의 작품들보다는 좀 더 긍정적인 메세지를 담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어긋나지만은 않는 작품들을 써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인물들을 깊이 탐구하고 소설 속에서 녹여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밝힌 바 있어 그의 시선과 소설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 지 가늠해볼 수 있다.

 

저자 : 문미순

 

201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1년 심훈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첫 소설집 『고양이 버스』를 펴냈다. 2023년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으로 제19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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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학 필독서 50 - 애덤 스미스부터 토마 피케티까지 경제학 명저 50권을 한 권에 필독서 시리즈 7
톰 버틀러 보던 지음, 서정아 옮김 / 센시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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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학은 애덤 스미스 이후 250년 동안 수많은 이론이 책에 담겨 소개되고 국가 정책에 차용되며 오늘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가장 옳은 이론을 택할 수 없듯이 가장 나쁜 이론도 없다. 하나의 공통점은 인류가 잘살기 위한 목표에 접근하기 위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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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학 필독서 50 - 애덤 스미스부터 토마 피케티까지 경제학 명저 50권을 한 권에 필독서 시리즈 7
톰 버틀러 보던 지음, 서정아 옮김 / 센시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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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 책 시리즈 중 『세계 철학 필독서 50』을 읽었다. 전공이 아니라 교양 차원에서 읽은 책 중에는 가장 잘 빚어진 항아리를 보는 듯 즐거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 책 『세계 경제학 필독서 50』은 더 큰 감동을 주었다. 마치 수험생 시절로 되돌아간 듯 탐독할 수 있었다. 단기간에 경제학 책과 이론을 집대성한 발췌본을 해석과 함께 읽은 듯한 느낌이었다. 독자들도 많이 알고 계시겠지만 경제학의 역사는 대략 300년도 안 되었다고 한다. 그전에도 화폐, 시장, 노동 등 경제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 학문의 틀을 갖추고 본격적인 '경제학' 이름을 달 만한 체계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 시원을 학계는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애덤 스미스부터로 본다. 그의 저서 『국부론』(1776) 발간 때부터니 대략 250년 정도의 시기가 경제학의 시기라고 보면 맞을 것 같다.

경제학은 우리 삶에 깊은 영향을 주는 학문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경제주체로서 날마다 경제적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고, 기업과 나라의 정책에서도 근간이 되는 학문이 경제학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막상 읽어보려 하면 딱딱한 이론과 수식이 많아 쉽지 않다. 수많은 경제학책 중에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판단하기도 어렵고 수십 권씩 읽을 시간도 없다. 이 책 『세계 경제학 필독서 50』은 이러한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한다. 250년 경제학 역사에서 수많은 저자의 책 중에서 분명한 기준으로 엄선해 한 권으로 정리했기 때문이라고 출판사 측은 밝힌다. 이 책은 애덤 스미스부터 『21세기 자본론』의 토마 피케티까지 경제학 역사에서 놓쳐서는 안 될 인물과 그들의 핵심 사상을 담은 대표작을 한 권당 10분이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한 책이다. 이 책 한 권이면 고전부터 최신까지 경제학의 전체 흐름을 한눈에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전문가의 검증을 거친 경제학 그루의 정수가 담긴 책을 한 권당 10분에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경제 철학은 끊임없는 격변과 유동성에 휩싸인 세계 경제 안에서 시시각각 검증받고 있다. 조지프 슘페터는 1940년대에 '창조적 파괴'가 '자본주의의 핵심 사항'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 역시 기술이 이 정도로 산업의 판도, 생산과 거래 형태, 화폐 체계를 바꾸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 같다. 저자 톰 버틀러 보던이 이번 개정판을 내면서 밝힌 말이다. 이번 개정판은 이러한 경제상의 변화를 담아내려 했으며, 따라서 5종의 저서가 추가되었다. 이에 따르면 먼저 사이페딘 아모스의 『달러는 왜 비트코인을 싫어하는가』다. 『세계 경제학 필독서 50』 초판 발간 이후 구글이나 애플 같은 기술 대기업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이 한층 더 확대되었다. 반대로 명목 화폐는 암호 화폐의 출현으로 서서히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 정부는 명목 화폐 발행으로 경제 활동을 효율적으로 구축하고 통제해 왔지만, 이제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삼아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한 전자 화예가 탄생했다. 비트코인 발명가는 화폐와 국가가 분리되는 세계를 구상했는데, 아모스는 『달러는 왜 비트코인을 싫어하는가』에서 국가와 화폐가 정말 분리된다면 중세의 정교분리만큼 큰 여파가 나타나리라고 주장했다.

다음으로 스테파니 켈튼의 『적자의 본질』이다. 책에 따르면 최근 우리는 팬데믹을 맞아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업무와 소비 패턴, 재화와 서비스 공급 패턴이 변했다. 개인과 정부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강제 휴직 제도, 국민과 기업을 대상으로 한 특별 지원금, 백신 접종 의무화 등으로 '국민의 삶에 국가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수백 년 된 논쟁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적자의 본질』은 바로 이 시기에 출간되었다. 정부가 국가 채무에 개의치 않아도 되며, 그저 국민과 기업에게 필요한 것만 제공하면 된다는 근거를 제시한다. 이 책에서 켈튼은 미국, 영국, 일본처럼 통화를 직접 발행하는 나라는 사회적 목표와 경제 안정성 달성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자금을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대통화 이론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이와 반대되는 의견을 내세우는 책도 있다. 바로 헨리 해즐릿의 『보이는 경제학 안 보이는 경제학』과 머레이 N. 라스바등의 『국가의 해부』다. 해즐릿은 민주주의 국가의 선거 주기가 3~5년이기에 정치인들이 경제와 사회의 장기적인 건실성보다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한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유권자의 반발이나 작은 경제 조정마저 피하기 위해 과도한 재정 지출을 감행한다. 그리고 이러한과정을 통해 저축과 투자 의욕을 꺾는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먼 미래에 나타날지도 모르는 부수적 결과에 대한 집착을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라는 말로 비꼬았다. 라스바드는 이와 반대로 국가의 정당성을 자유지상주의적 시각으로 풀어낸다. 우리는 정부가 우리 삶 구석구석에 손대는 것에 익숙해져 있으며, 실제로 생계나 경력을 국가에 의지하는 국민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기에 이제 와서 대안 체제를 생각하기란 어렵다는 것이다. 라스바드는 오랜 세월에 걸쳐 법률과 인식을 토대로 자기 위치를 굳건히 하려는 것은 국가의 본능이며, 그 결과 아주 별난 지식인들만 국가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던질 정도라고 지적한다.

정부가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는 아닌지 탐색하는 책도 한 권 추가됐다. 토마스 소웰의 『차별과 격차』다. 소웰에 따르면 사람들은 좌파나 우파나 사회적 장벽이 제거되면 과거의 부당한 행위를 바로잡고, 성공의 불공평한 속성이 사라지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착각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소웰은 미국 흑인의 가난이 인종주의 탓만은 아니며, 가난이 사회적 부패를 불러오지도 않는다고 주장한다. 소웰은 평등과 차별에만 치중하다 보면, 집중적으로 성공을 연구하고 이념을 초월하여 효과적인 조치를 과감하게 시행해야 할 시간에 서로 원망하는 분위기만 널리 퍼진다고 지적한다. 현대 미국의 경제학자로 소웰은 시카고학파에 속하며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보수주의자 중 한 명이다.

저자 톰 버틀러 보던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드러났듯이, 자유주의적 관점으로 보든 보수주의적 관점으로 보든 우리 사회와 경제는 취약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저자에 따르면 마키아벨리는 국가의 힘을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스스로 방어할 수 있을 정도라고 보았다. 반면 애덤 스미스는 국가의 진정ㅎ란 건실성과 경제력은 국민의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역량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권력과 중앙 통제에 집착하는 통치자의 눈에는 개방적인 사회가 혼란의 도가니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회야말로 번영을 이루고, 부가 증가하며, 제도의 점진적 발전을 촉진한다. 저자의 경제관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 소개된 책들은 경제학 역사의 중요한 장면마다 많은 영향을 끼친 책들이다. 경제학이란 단어를 처음 세상에 알린 책에서부터, 출간 이후 세계 각국의 경제정책으로 채택된 책, 인간은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합리적 존재라는 가설을 뒤흔든 책, 자본주의의 방향, 달러와 비트코인의 미래를 전망하는 책 등 지금의 제도를 만들고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 저서들이다. 연대순이 아니기에 책은 어디서부터 읽어도 상관없으며, 좀 더 깊이 알고 싶으면 각 저자의 원저를 찾아서 읽으면 된다. 각 책과 이론의 해설 말미에는 「함께 읽으면 좋으면 책」도 정리해 두었다. 미처 소개하지 못한 50권의 리스트도 별도로 넣었다. 이 책 한 권이면 고전부터 최신까지 경제학의 핵심 지도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경제학 읽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방향을 설정하는 데 분명한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딱딱하고 추상적인 학문으로만 느껴지던 경제학을 우리 곁에 한층 가깝게 펼쳐 보이는 책이다. 지난 250여 년간의 대표적 경제학 명저 50권을 선별하여, 중요한 경제학 이론과 개념들을 알기 쉽게 소개하고 그 이론들이 우리 개개인의 삶과 기업, 국가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짚어줌으로써 경제학의 의미와 쓸모를 실감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경제학을 알아야 할까?란 원천으로 질문을 되돌려 본다. 바로 인간의 삶에 가장 깊숙이 관여하며,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예민하게 제시하는 학문이 경제학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현대의 우리는 삶을 살아가고 성공하기 위해 저마다 하나의 경제주체로서 가치 있는 경제적 활동을 해야 한다. 이처럼 ‘잘살고 싶다’는 인간의 타고난 욕망에 기반한 것이 바로 경제학이다. 일터에서 일하고, 물건을 구매하고, 투자를 통해 내일에 대비하는 우리들의 평범한 하루하루 속에서도 경제적 판단은 쉼 없이 일어나고 있다.

 


 

경제학은 우리 삶 속에서 밀접하고 영향력 있게 움직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 국가의 정책, 나아가 전 인류 차원의 행동에서도 근간을 이룬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개입을 어느 정도로 허용해야 하는가?’, ‘인류가 멸망하지 않으려면 인구 제한 정책을 반드시 실시해야 하는가?’, ‘천연자원의 남용은 정말로 위험할까?’, ‘원조는 무조건 좋은 것일까?’ 현대인이라면 한 번쯤 의문을 가져 봤을 만한 이 질문들은 모두 경제학과 관련되어 있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모두 이 책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경제학의 체계를 세운 『국부론』 같은 고전부터, 비트코인이 불러올 새로운 디지털 시대를 전망하는『달러는 왜 비트코인을 싫어하는가』까지 지난 250년간의 경제학의 전체 역사를 망라한다. 성서 이래 가장 위대한 책으로 불리는 『국부론』, 찰스 다윈에게 영향을 미친 토머스 맬서스의 명저 『인구론』,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경제학 고전 『밀턴 프리드먼 자본주의와 자유』, 출간 이후 세계 각국의 경제정책으로 채택된 마이클 포터의 『국가 경쟁우위』, ‘진짜 자본주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 경제학의 기틀을 다진 50권의 필독서를 통해서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어떻게 우리 사회의 작동 원리가 되며, 또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경제학은 실증적인 학문으로 여겨지지만, 이념의 분열 또는 일시적인 유행이나 경향성에 휘둘려왔다. 영국의 경제학자 로널드 코스의 주장대로, 경제학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 이론과 모형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굳이 그 밑바탕이 되는 가설을 검증하고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코스는 '칠판 경제학'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칠판에 적힌 이론으로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설명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경제학의 가장 큰 과오는 이론이라는 마차를 말 앞에 가져다 놓는 관행에서 비롯되었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 경제학자는 '큼직한 것 하나'만 신봉하느라 새로 나타난 사실에 따라 모형을 수정하거나 보완하려 하지 않으며, 소소하지만 현실을 좀 더 정확히 파악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대량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특히 저자는 경제학자로 2008년 금융 위기만 보아도 우리는 경제의 역사와 금융의 역사가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경제의 근본적인 변화 덕분에 투기 열풍, 공황, 시장 폭락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세계 금융 위기 직후 런던정치경제대학교에서 열린 행사에 모인 경제학자들에게 영국 여왕 엘리자베트 2세는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을까요?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호주의 경제학자 스티브 킨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10여 명의 경제학자만이 금융 위기를 예측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경제학은 객관적이고 신뢰성 있는 에측을 내놓는 학문과는 거리가 멀다. 저자는 이유를 오늘날 경제가 생산의 역학 및 수요 충족뿐만 아니라 심리나 기대 같은 정서적 요소까지 감안해야 할 만큼 매우 복잡해진 탓이라고 설명한다. 이념적 편향 때문에 잘못된 가설을 토대로 모형을 구축한 탓도 덧붙인다.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측면은 오랫동안 덜 중요한 취급을 받아왔지만, 지난 30년간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늘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합리적 존재라는 가설에 이의를 제기해왔다. '자기 극대화'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시장 경제가 효율적이며, 인간이 자원을 최적으로 분배한다는 착각을 낳았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무엇이 최선책인지 알지 못할 때가 많으며, 비합리적으로 행동하여 행복을 놓치기도 한다. 인지 편향에 휘둘려 잘못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경제학은 효율과 평등 사이의 상충관계를 다루는 학문이라고도 강조한다. 지난 50년 간 수많은 사람이 비용을 수반하는 복지제도, 갖가지 규제, 최저 임금법, 국립공원 도입 등의 정책에 찬성표를 던져왔다. 폴 A. 새뮤얼슨은 2009년 세상을 떠나기 전 경제 교과서로 유명한 『새뮤얼슨의 경제학』 제19판에 '종도주의자 선언'이라는 제목의 서문을 달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새뮤얼슨에 따르면 중도주의는 '엄격한 시장 규율과 정부의 공정한 감독이 결합된 경제'를 지향하는 접근법'이라고 하낟. 중도주의는 증거만을 중요시한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와 같은 대형 사건을 통해 우리는 규제 없는 자본주의 역시 중양계획경제와 마찬가지로 합리적인 성공 노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똑똑히 깨달았다는 글을 소개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A. 새뮤얼슨은 “우리는 요람에 누워서부터 무덤에 들어가기까지 일생 내내 경제학의 무자비한 진실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현대의 사회 제도와 체제, 정책을 포함해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맞닿아 있는 경제학을 ‘어려운 학문’이 아닌 ‘실용적인 지식’으로서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책이 경제학의 맛보기가 되어, 독자들이 더 넓고 깊은 경제학의 세계로 입문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저자 : 톰 버틀러 보던(Tom Butler-Bowdon)

‘50권의 고전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이자 큐레이션. 1967년 호주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영국 옥스퍼드에서 거주하고 있다. 시드니대학교와 런던정치경제대학교를 졸업했다. 현대인의 삶에 가치와 깊이를 더하는 지식의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는 톰 버틀러 보던은 철학, 경제학, 영성을 망라한 다양한 분야에서 명저들을 가려 뽑은 ‘50권의 고전 시리즈’로 유명하다. 《USA 투데이》는 이런 그를 두고 “이런 종류의 문헌에 대한 진정한 학자”라고 평했다. 현재 이 시리즈는 전 세계 23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50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다.

이 책 《세계 경제학 필독서 50》은 2018년 북미 최고의 출판 시상식인 엑시엄 비즈니스 북어워드에서 비즈니스 레퍼런스 부문 은상을 수상했다. 또한 이 책의 첫 번째 시리즈인 《내 인생의 탐나는 자기계발 50》은 2004년 미국 벤저민 프랭클린상을 수상하며 미국 주간지 《포워드》 선정 ‘올해의 책’이 되었다.

 

역자 : 서정아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냇웨스트, 크레딧 스위스 등의 외국계 금융기관에서 근무했고, 이화여대통역번역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엘리트 세습』, 『인구의 힘』, 『부의 선택』, 『너를 놓아줄게』, 『리스크의 과학』, 『증거의 오류』, 『에지전략』, 『은행이 멈추는 날』, 『치킨쉬트 클럽』, 『정면돌파』,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 『스트레스, 과학으로 풀다』, 『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 『화성: 마션 지오그래피, 붉은 행성의 모든 것』, 『그림으로 보는 세계의 음악』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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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아래, 동생에게 - 스스로 떠난 이를 애도하는 남겨진 마음
돈 길모어 지음, 문희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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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강물 아래, 동생에게』은 동생의 자살이 가져온 충격을 딛고 동생을 애도하기 위해 자살의 원인, 특히 중년의 자살을 다룬다. 저자인 돈 길모어는 가족(동생)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고민과 애도의 시간을 가지다가 이를 세대의 문제로 전환하여 관련 문제를 활발하게 연구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세대의 삶과 괴리를 담은 〈부머 세대의 자살: 조용한 시류〉를 발표해 2014년 캐나다 최고의 저널리즘 상인 뉴스페이퍼 어워즈를 수상한 길모어는 동생의 죽음을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닌 특정 세대의 불안증과 고립감으로 연결하여 해석한다. 동생은 예술을 동경하고 비정규직 직장을 전전하면서 자기 파괴 욕구를 내비치는 특이한 이력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누구나 고민할 법한 삶의 문제들을 맞닥뜨린다. 다른 중년과는 달리 믿음직한 친구와 가족에 의지할 수 없었던 동생은 고립된 상태에서 난관을 헤쳐나가지 못하고 끊임없이 죽음의 충동과 맞서 싸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한 개의 메시지로 수렴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죽음은 주변의 모든 것을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복잡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묻는 혼란스러움과 ‘내가 말릴 수 없었을까’ 하는 죄책감,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질문하는 애도와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자조하는 남은 자들의 내밀함까지. 이 모든 것을 담은 길모어의 말하기 방식은 어쩌면 파편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지러운 파편이 모여서 한 사람의 인생을 퍼즐 맞추듯 완성한다. 그렇게 그는 동생을 이해하게 된다.

 

"지인들을 통해 그려본 데이비드의 초상은 모순투성이였다. 십 년간 중독이 점점 심해졌다가 이 년간 약을 끊으며 지냈고, 결국 행복을 찾은 듯하더니 다시 절망적으로 불행해하며 덫에 걸린 느낌에 시달렸다, 관계에 충실했다가 바람을 피우고 빚까지 졌다."(p.55)

 


 

죽음에 관한 저널리즘적 통찰을 담은 이 책은 동생의 실종 열흘째, 강 근처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그의 트럭이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대형서점 관리자로 취직하며 인생 안정기로 들어선 동생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왜 그랬을까? 저자인 길모어는 동생이 차가운 강물에 몸을 던지기까지의 행로를 뒤좇는다. 동생 데이비스는 예술가의 꿈을 안고, 불안한 직장을 전전하며,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다가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다. 사실 그는 평생을 걸쳐 죽음이라는 충동과 싸우고 있었다. 저자는 가장 가깝지만 가장 멀기도 한 가족의 죽음을 되짚으며 ‘중년의 자살’이라는 화두와 마주한다. 비로소 애증 섞인 이가 왜 떠났는지, 그 이전과 이후의 내밀한 심리를 이해할 수 있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듯 저자는 동생의 전체 인생을 톺아본다. ‘그 강에는 절대로 가까이 가지 마’라는 30년 전의 경고부터 이른 결혼과 낭비벽, 습관적인 마약 복용까지. 음악에 대한 지독한 열정과 대비되는 동생의 재능과 기회 없음은 안타까움을 자아내면서 역설적으로 동생의 삶의 경로를 낱낱이 보여준다.

어린 시절부터 죽음은 충동적으로 동생을 찾아왔다. 동생은 자기 내면에 똬리를 튼 불안을 감추려 했지만, 가끔 가족에게 드러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가족은 그 신호를 눈치채지 못했고 본인마저도 이것이 어디서 기인하는 불안감인지 알 수 없었다. 죽음이라는 실존적 고민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지는 동생에게 길모어는 이미 늦었지만 꼭 해주고 싶은 말을 건넨다. 이겨내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극복하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네가 왜 그랬는지 알아야겠다. 천천히, 느리게, 그러나 끝까지 되짚어볼 것이다. 너의 삶에 누적된 사소하고 결정적인 문제들이 무엇이었는지.

 

 

청소년기와 2030 세대, 최근에는 노인의 자살 문제까지 사회와 정부의 관심이 크다. 그에 반해 중년의 자살은 주요 관심사가 아닐뿐더러 가시적인 문제로 떠오르지도 않을 때가 있다. 통계를 보더라도 중년의 자살은 청년과 노인에 비해 심각하지 않다. 그렇다고 가만히 이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다. 가족을 꾸리고 안정된 일자리를 유지하고 주변 관계가 완만하게 지속된다고 하더라도 양극단 사이의 위치한 이 세대의 불안과 고립은 분명 확연하게 존재한다. 저자 길모어는 일련의 사건을 겪고 완전히 뒤바뀐 관점을 체득한다. 주변에는 수많은 이들이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과 자살 사별자들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살아남은 이들은 밤낮으로 세상을 떠난 이의 마음을 헤아린다.

길모어는 다른 유가족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새롭게 생긴 가치관을 이렇게 묘사한다. “누군가 자살로 죽고 나면, 그의 죽음 뒤에 남는 것은 자살 그 자체뿐이다. 그것은 하나의 나라가 된다. 처음에 나는 방문자였지만, 결국 시민이 되고 말았다.”

일상은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다. 그러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넘어서고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어지러운 마음을 외면할 생각은 없다. 한 사람을 이해하면서 주목받지 못한 세대의 고통을 마주한다. 중년의 고립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건네는 길모어의 에세이는 자살의 근본적인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자살 문제도 가끔씩 생각나게 한다. 우리는 영예로운 세계 1위도 많지만 불명예스러운 세계 1위도 여럿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자살률'이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보도가 나온지 독자의 어림 기억으로만 20년은 넘은 듯하다. 이후 가끔 발표되는 자살률은 단 한 번도 등수를 내려앉은 걸 본 적이 없다. 10년 이상 자살률의 순위가 1위를 계속한다면 개인적인 이유에 앞서 사회 구조적인 문제, 사회 현상이나 사회의 분위기 등 일단 개인적인 일로 치부하기엔 곤란하다는 게 독자의 생각이다.

 


 

우리나라도 정부 차원에서 많은 '자살 예방' 정책을 실시하고는 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이나 개입은 한계가 보인다. 조사를 통해 자살의 원인 파악이나 대처 예방법 등이 없기 때문이다. 자살은 행위 자체가 극히 개인적이다. 즉 의학적 이유(정신질환, 약물 중독) 등의 이유가 아니라면 버려진 느낌이나 분노, 죄책감, 수치심 등 개인의 감정이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국 생명의 전화’ 최근 자료에서는 자살 유가족이 겪는 감정의 흐름을 세 단계로 나누고 있다. 1단계는 엄청난 충격으로, 부인(말도 안 돼), 무능력(왜 막지 못했나), 버려진 느낌(나를 버리고 가다니), 비난(OO 때문에 죽은 거야)의 감정이 주를 이룬다. 다음의 2단계는 분노(나도 싫고 세상도 싫다), 죄책감(나 때문에 죽었어), 수치심(자살자 집안이라고 남들이 욕하겠지)이다. 3단계에서는 대인관계가 단절되고 우울증이 생기며 자살충동이 일반인의 80~300배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게 자살이 주위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해서, 핵폭발 후 생겨나는 엄청난 양의 방사능 낙진으로 묘사되기까지 한다.

한 명이 자살할 경우 주위의 5~10명에게 자살 충동을 심어 준다는 세계보건기구의 연구 결과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하루 40여 명이 자살하므로 하루에 200~400명에게 자살 충동이 유도되는 셈이다. 이와 관련한 한 신문 기사는 몇 년 전 투신자살하여 세상을 떠난 딸을 그리워하던 58세의 어머니가 같은 장소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을 보도한 적이 있다. 이런 이유로 자살은 자신을 사랑해 준 많은 영혼들까지 함께 죽이는 살인 행위라고 하는 것이리라.

이렇듯 자살은 한 개인이나 한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함께 껴안고 해결해야 할 절박한 사회 문제이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이며 하루 40여 명이 자살하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도 독자의 입장으로는 납득이 안 된다. 정부에서도 높은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자살 고위험군의 선별, 항우울제 같은 약물 투여를 이용한 우울증 치료, 자살자 위기 개입 등의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책에 따르면 극단적 선택을 한 동생 데이비드는 마리화나와 피우고 밴드를 결성해서 음반을 내고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악기를 잘 다루고 음악을 좋아해서 악기 경연 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클럽이나 바에서 연주를 하고 끊임없이 여자를 만나고 알코올 중독에 걸리기도 한다. 마약을 하고 맑은 정신인 적이 별로 없었을 것으로 독자는 추정하며 읽지만 왜?에 대한 답변은 유년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어느 정도 단초를 찾아낼 수 있을 듯하다. 동생 데이비드의 삶은, 그 누가 보기에도 엉망진창일 수밖에 없다. 읽다 보면 독자의 삶에 대한 태도에 비추어볼 때 '자살이 예견된 듯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해야 할까. 불규칙적이고 한각작용을 일으키는 금지약물 복용, 여성관, 가족관 등의 인식 부재와 책임감마저 가질 사이 없이 삶이 진행되어 온 것 같다는 독자의 느낌이다. 데이비드는 사실 이전에 비해 비교적 삶이 나아졌을 때 자살을 택했다. 일반적 삶의 방식이나 태도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심각한 약물 중독의 부작용에 따른 것이 아니라면.

이 책은 데이비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 형 돈 길모어가 동생의 삶을 추적해 들어가는 과정이 나오고, 어렸을 적 회상도 군데군데 적잖게 나오지만 궁극적인 책의 내용은 '자살'에 관한 저자의 리포트다. 책에서 저자는 동생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에 자살을 택한 사람들에 관한 사연도 들은 대로 싣고, 자살학회에도 참석해서 강연을 들었던 이야기도 게재한다.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로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자살, 특히 중년의 자살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그래서 이 책이 2014년 캐나다 최고의 저널리즘 상인 뉴스페이퍼 어워즈를 수상했다는 데 눈길이 간다. 저자는 동생 데이비드의 삶을 정의하지도 않았고 그를 비난하거나 동정하지도 않았다. 남겨진 이들의 깊은 슬픔에 대해서 집요하게 파고들지도 않았다. 죽은 사람들에게 물을 수 없기 때문에 남겨진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자신과 동생 데이비스가 속한 집단에 집중해서 추적 분석한다. 그저 객관적 사실을 묵묵히 따라가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시작은 동생의 죽음을 애도하고 원인을 분석하려고 시도했더라도 결과는 같을 수도 있다. 이미 일어난 결과를 추적하는 것은 객관적으로만 추적해 간다면 원인에 이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살은 극히 개인적 시도이고 결과이기에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 추정도 배제해선 안 될 것 같다. 이 책은 캐나다의 한 중년의 남자가 자살함으로써 시작된 글이지만 읽는 독자로서는 우리 사회 상황과 비교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대한민국 사회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설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그냥 영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내용을 소개해본다. 이 영화는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 1947~ )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주인공은 좋은 직장에서 높은 연봉을 받는 남부럽지 않은 여건의 여성이지만, 아무 이유 없이 무기력한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되자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여 자살을 시도한다. 주인공은 응급실을 거쳐 정신병원으로 옮겨지는데 담당 의사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음독자살을 시도한 후 심폐소생술을 받는 과정에서 심장이 크게 손상돼 앞으로 몇 개월 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신병원에 입원 중인 사람들과 만나 생활하게 되면서 주인공은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삶의 의욕이 되살아나게 된다. 어느 날 주인공은 담당 의사를 찾아가 자신이 정확히 얼마나 더 살 수 있는지 알려달라고 하면서 두 가지를 부탁한다. 하나는 삶의 한 순간도 놓치기 싫다면서, 맑은 정신으로 계속 깨어 있게 해주는 주사가 있다면 자신에게 놓아 달라고 한다. 또 하나는 얼마 남지 않은 생에서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으니 퇴원시켜 달라는 것이다. 바닷가도 걷고 싶고, 단골집에 가서 좋아하는 음식도 실컷 먹으며 기네스 맥주 주문도 한 번 해보고 싶고, 또 어머니를 만나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고도 싶다고 털어놓는다. 의사가 안 된다고 하자 주인공은 사실은 어젯밤에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노라고 고백한다. 그동안 자신을 너무 몰랐다고 하면서... 그러나 담당의사가 퇴원을 허락하지 않자 주인공은 입원해 있는 동안 알게 된 남자와 함께 병원을 탈출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담당의사는 병원을 떠나기 전 동료에게 업무를 인계하는 편지를 쓰면서, 주인공에 대한 시한부 선고가 사실은 거짓이었음을 밝힌다. 자살시도자는 계속해서 자살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를 막는 유일한 치료책은 본인에게 삶을 자각시키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앞으로 얼마 살지 못한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진 매일 매일을 기적으로 여기고 살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이 영화는 마무리된다.

 

"연구에 따르면, 자살하는 사람은 시간을 다르게 체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를 두려워하고 불행한 과거를 돌아보고 싶어 하지 않으며, 결국 끝없이 우울한 현재의 수렁에서 허우적댄다. 자살하는 사람은 권태에 빠진 사람처럼 시간을 본다. 시간을 천천히 흐르고, 숨 막힐 것만 같고, 심지어 사악하기까지 한 냉혹한 존재로 이해한다."(p.236)

 

저자 : 돈 길모어(Don Gillmor)

돈 길모어는 캐나다의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 어린이책 작가이다. 2005년 가족의 죽음을 겪고 이를 세대의 문제로 전환하여 관련 문제를 주요 쟁점으로서 활발하게 연구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세대의 삶과 괴리를 담은 <부머 세대의 자살: 조용한 시류>를 발표해 2014년 캐나다 최고의 저널리즘에 수여하는 내셔널 뉴스페이퍼 어워즈National Newspaper Awards를 수상했다. 현재 캐나다 토론토에 거주하며 중년의 고립과 불안, 자살의 사회적 문제 등에 관한 글을 쓴다. 지은책으로 『카나타Kanata』, 『길고 긴 변화Long Change』, 『마운트 플레젠트Mount Pleasant』, 『달을 선물하고 싶어』, 『크리스마스 오렌지』 등이 있다.

 

역자 : 문희경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며 문학은 물론 심리학과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유혹하는 심리학』, 『신뢰 이동』, 『우아한 관찰주의자』, 『인생의 발견』,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밀턴 에릭슨의 심리치유 수업』, 『타인의 영향력』, 『우리는 왜 빠져드는가?』, 『알고 있다는 착각』, 『이야기의 탄생』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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