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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아래, 동생에게 - 스스로 떠난 이를 애도하는 남겨진 마음
돈 길모어 지음, 문희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23년 5월
평점 :
이 책 『강물 아래, 동생에게』은 동생의 자살이 가져온 충격을 딛고 동생을 애도하기 위해 자살의 원인, 특히 중년의 자살을 다룬다. 저자인 돈 길모어는 가족(동생)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고민과 애도의 시간을 가지다가 이를 세대의 문제로 전환하여 관련 문제를 활발하게 연구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세대의 삶과 괴리를 담은 〈부머 세대의 자살: 조용한 시류〉를 발표해 2014년 캐나다 최고의 저널리즘 상인 뉴스페이퍼 어워즈를 수상한 길모어는 동생의 죽음을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닌 특정 세대의 불안증과 고립감으로 연결하여 해석한다. 동생은 예술을 동경하고 비정규직 직장을 전전하면서 자기 파괴 욕구를 내비치는 특이한 이력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누구나 고민할 법한 삶의 문제들을 맞닥뜨린다. 다른 중년과는 달리 믿음직한 친구와 가족에 의지할 수 없었던 동생은 고립된 상태에서 난관을 헤쳐나가지 못하고 끊임없이 죽음의 충동과 맞서 싸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한 개의 메시지로 수렴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죽음은 주변의 모든 것을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복잡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묻는 혼란스러움과 ‘내가 말릴 수 없었을까’ 하는 죄책감,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질문하는 애도와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자조하는 남은 자들의 내밀함까지. 이 모든 것을 담은 길모어의 말하기 방식은 어쩌면 파편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지러운 파편이 모여서 한 사람의 인생을 퍼즐 맞추듯 완성한다. 그렇게 그는 동생을 이해하게 된다.
"지인들을 통해 그려본 데이비드의 초상은 모순투성이였다. 십 년간 중독이 점점 심해졌다가 이 년간 약을 끊으며 지냈고, 결국 행복을 찾은 듯하더니 다시 절망적으로 불행해하며 덫에 걸린 느낌에 시달렸다, 관계에 충실했다가 바람을 피우고 빚까지 졌다."(p.55)
죽음에 관한 저널리즘적 통찰을 담은 이 책은 동생의 실종 열흘째, 강 근처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그의 트럭이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대형서점 관리자로 취직하며 인생 안정기로 들어선 동생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왜 그랬을까? 저자인 길모어는 동생이 차가운 강물에 몸을 던지기까지의 행로를 뒤좇는다. 동생 데이비스는 예술가의 꿈을 안고, 불안한 직장을 전전하며,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다가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다. 사실 그는 평생을 걸쳐 죽음이라는 충동과 싸우고 있었다. 저자는 가장 가깝지만 가장 멀기도 한 가족의 죽음을 되짚으며 ‘중년의 자살’이라는 화두와 마주한다. 비로소 애증 섞인 이가 왜 떠났는지, 그 이전과 이후의 내밀한 심리를 이해할 수 있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듯 저자는 동생의 전체 인생을 톺아본다. ‘그 강에는 절대로 가까이 가지 마’라는 30년 전의 경고부터 이른 결혼과 낭비벽, 습관적인 마약 복용까지. 음악에 대한 지독한 열정과 대비되는 동생의 재능과 기회 없음은 안타까움을 자아내면서 역설적으로 동생의 삶의 경로를 낱낱이 보여준다.
어린 시절부터 죽음은 충동적으로 동생을 찾아왔다. 동생은 자기 내면에 똬리를 튼 불안을 감추려 했지만, 가끔 가족에게 드러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가족은 그 신호를 눈치채지 못했고 본인마저도 이것이 어디서 기인하는 불안감인지 알 수 없었다. 죽음이라는 실존적 고민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지는 동생에게 길모어는 이미 늦었지만 꼭 해주고 싶은 말을 건넨다. 이겨내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극복하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네가 왜 그랬는지 알아야겠다. 천천히, 느리게, 그러나 끝까지 되짚어볼 것이다. 너의 삶에 누적된 사소하고 결정적인 문제들이 무엇이었는지.
청소년기와 2030 세대, 최근에는 노인의 자살 문제까지 사회와 정부의 관심이 크다. 그에 반해 중년의 자살은 주요 관심사가 아닐뿐더러 가시적인 문제로 떠오르지도 않을 때가 있다. 통계를 보더라도 중년의 자살은 청년과 노인에 비해 심각하지 않다. 그렇다고 가만히 이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다. 가족을 꾸리고 안정된 일자리를 유지하고 주변 관계가 완만하게 지속된다고 하더라도 양극단 사이의 위치한 이 세대의 불안과 고립은 분명 확연하게 존재한다. 저자 길모어는 일련의 사건을 겪고 완전히 뒤바뀐 관점을 체득한다. 주변에는 수많은 이들이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과 자살 사별자들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살아남은 이들은 밤낮으로 세상을 떠난 이의 마음을 헤아린다.
길모어는 다른 유가족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새롭게 생긴 가치관을 이렇게 묘사한다. “누군가 자살로 죽고 나면, 그의 죽음 뒤에 남는 것은 자살 그 자체뿐이다. 그것은 하나의 나라가 된다. 처음에 나는 방문자였지만, 결국 시민이 되고 말았다.”
일상은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다. 그러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넘어서고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어지러운 마음을 외면할 생각은 없다. 한 사람을 이해하면서 주목받지 못한 세대의 고통을 마주한다. 중년의 고립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건네는 길모어의 에세이는 자살의 근본적인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자살 문제도 가끔씩 생각나게 한다. 우리는 영예로운 세계 1위도 많지만 불명예스러운 세계 1위도 여럿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자살률'이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보도가 나온지 독자의 어림 기억으로만 20년은 넘은 듯하다. 이후 가끔 발표되는 자살률은 단 한 번도 등수를 내려앉은 걸 본 적이 없다. 10년 이상 자살률의 순위가 1위를 계속한다면 개인적인 이유에 앞서 사회 구조적인 문제, 사회 현상이나 사회의 분위기 등 일단 개인적인 일로 치부하기엔 곤란하다는 게 독자의 생각이다.
우리나라도 정부 차원에서 많은 '자살 예방' 정책을 실시하고는 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이나 개입은 한계가 보인다. 조사를 통해 자살의 원인 파악이나 대처 예방법 등이 없기 때문이다. 자살은 행위 자체가 극히 개인적이다. 즉 의학적 이유(정신질환, 약물 중독) 등의 이유가 아니라면 버려진 느낌이나 분노, 죄책감, 수치심 등 개인의 감정이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국 생명의 전화’ 최근 자료에서는 자살 유가족이 겪는 감정의 흐름을 세 단계로 나누고 있다. 1단계는 엄청난 충격으로, 부인(말도 안 돼), 무능력(왜 막지 못했나), 버려진 느낌(나를 버리고 가다니), 비난(OO 때문에 죽은 거야)의 감정이 주를 이룬다. 다음의 2단계는 분노(나도 싫고 세상도 싫다), 죄책감(나 때문에 죽었어), 수치심(자살자 집안이라고 남들이 욕하겠지)이다. 3단계에서는 대인관계가 단절되고 우울증이 생기며 자살충동이 일반인의 80~300배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게 자살이 주위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해서, 핵폭발 후 생겨나는 엄청난 양의 방사능 낙진으로 묘사되기까지 한다.
한 명이 자살할 경우 주위의 5~10명에게 자살 충동을 심어 준다는 세계보건기구의 연구 결과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하루 40여 명이 자살하므로 하루에 200~400명에게 자살 충동이 유도되는 셈이다. 이와 관련한 한 신문 기사는 몇 년 전 투신자살하여 세상을 떠난 딸을 그리워하던 58세의 어머니가 같은 장소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을 보도한 적이 있다. 이런 이유로 자살은 자신을 사랑해 준 많은 영혼들까지 함께 죽이는 살인 행위라고 하는 것이리라.
이렇듯 자살은 한 개인이나 한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함께 껴안고 해결해야 할 절박한 사회 문제이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이며 하루 40여 명이 자살하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도 독자의 입장으로는 납득이 안 된다. 정부에서도 높은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자살 고위험군의 선별, 항우울제 같은 약물 투여를 이용한 우울증 치료, 자살자 위기 개입 등의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책에 따르면 극단적 선택을 한 동생 데이비드는 마리화나와 피우고 밴드를 결성해서 음반을 내고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악기를 잘 다루고 음악을 좋아해서 악기 경연 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클럽이나 바에서 연주를 하고 끊임없이 여자를 만나고 알코올 중독에 걸리기도 한다. 마약을 하고 맑은 정신인 적이 별로 없었을 것으로 독자는 추정하며 읽지만 왜?에 대한 답변은 유년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어느 정도 단초를 찾아낼 수 있을 듯하다. 동생 데이비드의 삶은, 그 누가 보기에도 엉망진창일 수밖에 없다. 읽다 보면 독자의 삶에 대한 태도에 비추어볼 때 '자살이 예견된 듯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해야 할까. 불규칙적이고 한각작용을 일으키는 금지약물 복용, 여성관, 가족관 등의 인식 부재와 책임감마저 가질 사이 없이 삶이 진행되어 온 것 같다는 독자의 느낌이다. 데이비드는 사실 이전에 비해 비교적 삶이 나아졌을 때 자살을 택했다. 일반적 삶의 방식이나 태도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심각한 약물 중독의 부작용에 따른 것이 아니라면.
이 책은 데이비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 형 돈 길모어가 동생의 삶을 추적해 들어가는 과정이 나오고, 어렸을 적 회상도 군데군데 적잖게 나오지만 궁극적인 책의 내용은 '자살'에 관한 저자의 리포트다. 책에서 저자는 동생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에 자살을 택한 사람들에 관한 사연도 들은 대로 싣고, 자살학회에도 참석해서 강연을 들었던 이야기도 게재한다.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로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자살, 특히 중년의 자살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그래서 이 책이 2014년 캐나다 최고의 저널리즘 상인 뉴스페이퍼 어워즈를 수상했다는 데 눈길이 간다. 저자는 동생 데이비드의 삶을 정의하지도 않았고 그를 비난하거나 동정하지도 않았다. 남겨진 이들의 깊은 슬픔에 대해서 집요하게 파고들지도 않았다. 죽은 사람들에게 물을 수 없기 때문에 남겨진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자신과 동생 데이비스가 속한 집단에 집중해서 추적 분석한다. 그저 객관적 사실을 묵묵히 따라가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시작은 동생의 죽음을 애도하고 원인을 분석하려고 시도했더라도 결과는 같을 수도 있다. 이미 일어난 결과를 추적하는 것은 객관적으로만 추적해 간다면 원인에 이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살은 극히 개인적 시도이고 결과이기에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 추정도 배제해선 안 될 것 같다. 이 책은 캐나다의 한 중년의 남자가 자살함으로써 시작된 글이지만 읽는 독자로서는 우리 사회 상황과 비교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대한민국 사회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설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그냥 영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내용을 소개해본다. 이 영화는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 1947~ )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주인공은 좋은 직장에서 높은 연봉을 받는 남부럽지 않은 여건의 여성이지만, 아무 이유 없이 무기력한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되자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여 자살을 시도한다. 주인공은 응급실을 거쳐 정신병원으로 옮겨지는데 담당 의사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음독자살을 시도한 후 심폐소생술을 받는 과정에서 심장이 크게 손상돼 앞으로 몇 개월 밖에 살 수 없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신병원에 입원 중인 사람들과 만나 생활하게 되면서 주인공은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삶의 의욕이 되살아나게 된다. 어느 날 주인공은 담당 의사를 찾아가 자신이 정확히 얼마나 더 살 수 있는지 알려달라고 하면서 두 가지를 부탁한다. 하나는 삶의 한 순간도 놓치기 싫다면서, 맑은 정신으로 계속 깨어 있게 해주는 주사가 있다면 자신에게 놓아 달라고 한다. 또 하나는 얼마 남지 않은 생에서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으니 퇴원시켜 달라는 것이다. 바닷가도 걷고 싶고, 단골집에 가서 좋아하는 음식도 실컷 먹으며 기네스 맥주 주문도 한 번 해보고 싶고, 또 어머니를 만나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고도 싶다고 털어놓는다. 의사가 안 된다고 하자 주인공은 사실은 어젯밤에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노라고 고백한다. 그동안 자신을 너무 몰랐다고 하면서... 그러나 담당의사가 퇴원을 허락하지 않자 주인공은 입원해 있는 동안 알게 된 남자와 함께 병원을 탈출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담당의사는 병원을 떠나기 전 동료에게 업무를 인계하는 편지를 쓰면서, 주인공에 대한 시한부 선고가 사실은 거짓이었음을 밝힌다. 자살시도자는 계속해서 자살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를 막는 유일한 치료책은 본인에게 삶을 자각시키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앞으로 얼마 살지 못한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진 매일 매일을 기적으로 여기고 살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이 영화는 마무리된다.
"연구에 따르면, 자살하는 사람은 시간을 다르게 체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를 두려워하고 불행한 과거를 돌아보고 싶어 하지 않으며, 결국 끝없이 우울한 현재의 수렁에서 허우적댄다. 자살하는 사람은 권태에 빠진 사람처럼 시간을 본다. 시간을 천천히 흐르고, 숨 막힐 것만 같고, 심지어 사악하기까지 한 냉혹한 존재로 이해한다."(p.236)
저자 : 돈 길모어(Don Gillmor)
돈 길모어는 캐나다의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 어린이책 작가이다. 2005년 가족의 죽음을 겪고 이를 세대의 문제로 전환하여 관련 문제를 주요 쟁점으로서 활발하게 연구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세대의 삶과 괴리를 담은 <부머 세대의 자살: 조용한 시류>를 발표해 2014년 캐나다 최고의 저널리즘에 수여하는 내셔널 뉴스페이퍼 어워즈National Newspaper Awards를 수상했다. 현재 캐나다 토론토에 거주하며 중년의 고립과 불안, 자살의 사회적 문제 등에 관한 글을 쓴다. 지은책으로 『카나타Kanata』, 『길고 긴 변화Long Change』, 『마운트 플레젠트Mount Pleasant』, 『달을 선물하고 싶어』, 『크리스마스 오렌지』 등이 있다.
역자 : 문희경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며 문학은 물론 심리학과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유혹하는 심리학』, 『신뢰 이동』, 『우아한 관찰주의자』, 『인생의 발견』,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밀턴 에릭슨의 심리치유 수업』, 『타인의 영향력』, 『우리는 왜 빠져드는가?』, 『알고 있다는 착각』, 『이야기의 탄생』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