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 -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종정
성파.김한수 지음 / 샘터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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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공부고 공부가 일입니다. 그리 살아야 행복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불교 조계종 제15대 종정 성파 스님은 다른 스님들과 조금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의 말처럼 일과 공부는 같은 것이며, 모두 수행이라는 관점에서 스스로를 닦아온 것이다. 그는 일반 사람이 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방대한 일을 지난 40년 동안 꾸준히, 그리고 남다른 '욕심'으로 해왔다. 종단에선 그를 '일꾼'(?)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수행 역시 게을리하지 않은 수도승으로도 살아왔다. 특히 도자기, 천연 염색, 야생화, 된장, 옻칠 민화에서 도서 무한대 모으기 등 엄청난 일을 해왔다고 한다. 이 책 『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의 표제어도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으로서 후배 수행자들에게 강조해온 그대로 정했다. 성파 스님과의 인터뷰를 계기로 그의 수행 과정과 해온 일 등에 대해 훤히 꿰고 있는 김한수 종교 전문 기자(샘터출판사 대표, 공동 저자)가 성파 스님과의 대담을 글로 정리 작성했다.

종정(宗正)은 종단의 제일 높은 어른을 일컫는다. 종단의 신성을 상징하며 종통을 승계하는 최고의 권위와 지위를 갖는다. 불·법·승의 세 가지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라는 삼보사찰, 이른바 한국의 3대 사찰 중 하나인 통도사에서 방장(사찰의 제일 큰 어른)으로 있던 성파 스님은 2021년 12월 종정추대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제15대 종정에 추대되어 2022년 3월부터 종정으로서 조계종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그는 만장일치 종정으로 추대됐지만 종정이 된 이후에도 자신이 해온 일을 한시도 놓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 오히려 일을 더 키우고 새로운 일을 계속 찾아 확대하고 있다. 일이 공부고 공부가 일이다라는 것을 직접 행하고 있는 것이다.

 


 

공동 저자 김한수는 "어찌 보면 기인처럼 느껴지는 스님에 대해 궁금함이 컸지만, 스님은 자신의 일과 수행에 관해서는 말씀을 아끼셨다. '나는 남에게 해줄 말이 없다. 다들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겠나. 내 할 일이나 잘하겠다. 나부터 잘하겠다'는 말씀만 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깨달음이나 가르침이 아니라 스님이 지난 40년 동안 해온 일 이야기를 물었다. 이 책은 2022년 1월부터 2023년 3월까지 김한수 종교 전문 기자가 성파 스님을 만나 대담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스님은 깨달음이나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스님이 들려준 일 이야기 속에는 왜 공부하고 일해야 하는지, 왜 일이 곧 공부이고 공부가 곧 일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의 지혜가 담겨 있다고 강조한다.

일반 대중들 중에는 공부하는 것도, 일하는 것도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런데 제목에는 일과 공부가 함께, 그것도 반복하여 제시된다. 숨이 헉하고 막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파 스님은 “나는 출가 이후로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다. 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 늘 행복하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일이 곧 공부이고 공부가 곧 일인 삶을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는 말로 이해된다. 스스로 ‘평생 학인, 평생 일꾼’이라 일컫는 성파 스님이 지금껏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우리도 행복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성파 스님은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에 가지 못하고 서당에서 배움을 이어갔다. 보통 10년은 걸린다는 사서삼경을 3년도 안 되는 동안에 다 배우고 한시도 190여 수나 지었다. 그렇게 한학을 익히고 출가한 스님은 경전 공부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아 탄허 스님이 화엄경을 번역할 때 교정 요원으로 참여했으며, 통도사 극락암에서 경봉 스님을 모시고 안거를 난 것을 비롯해 범어사, 봉암사 선원 등에서 27안거를 했다.

 


 

옻칠 민화, 천연 염색, 한지 공예 등 전통 미술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최고의 예술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스님은 본분인 경전 공부와 참선 수행도 게을리하지 않은 것이다. 책에 따르면 성파 스님은 22살에 통도사에 들어가 종손 의식, 즉 주인 의식을 갖고 통도사에만 머물렀다. 1980년대에 통도사 일대를 도립공원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자 스님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통도사 주지를 맡았다. “사찰은 우리 민족 정신문화의 구심점이 돼야 하고, 전통문화를 지키고 보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통도사를 지키려 한 것이다. 스님의 이러한 생각은 도자기, 천연 염색, 한지, 옻칠 민화 등 한국의 전통문화를 되살리고 보존하는 일을 하는 데에도 원동력이 되었다. 성파 스님은 통도사 주지를 마치고 ‘출출가’했다고 말한다. 성파 스님에게 출출가는 백지화를 의미한다. 속세 20년, 출가 20년을 지낸 스님은 모든 것을 백지화하고 맨바닥에서 재출발하기로 한 것이다. 새로운 출가는 전통문화의 보고 서운암을 만드는 출발점이었다. 독자도 '출출가'란 말은 처음 듣지만 설명을 듣고보니 꼭 알아두어야 할 말인 것 같다.

통도사 주지를 마치고 서운암으로 온 성파 스님은 주지 시절 익힌 도자기 기술을 활용해 3,000점의 불상인 ‘도자 삼천불’과 팔만대장경을 도자기로 구운 ‘16만 도자대장경’을 조성했다. 16만 도자대장경을 굽고 장경각을 지어 이를 봉안하는 데 20년이 걸렸다. 이것만으로도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단한 업적이지만 스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감지금니 사경을 하는 데 필요한 감지를 직접 만들려고 쪽 염색과 전통 한지를 되살렸으며, 버려지는 항아리가 안타까워 50년 이상 된 큰 항아리 5,000개를 수집하고 그 항아리를 이용해 전통 된장과 간장을 만들었다. 중국에 건너가 산수화를 배우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베이징에 있는 중국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귀국 후에는 옻칠로 전통 민화를 재현하며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또한 통도사에 차밭을 재건하고 선농일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감나무밭을 일궜으며, 종교에 관계없이 국민들 누구나 들러 마음의 평화를 얻도록 서운암 4만 평에 야생화를 심고 축제를 벌였다. 순수 한국문학인 시조를 지원하기 위해 40년 가까이 성파시조문학상을 시상하고 백일장을 개최하고 있으며, 버려지는 종이책을 정해진 목표 없이 모으는 ‘종이책 무한대 모으기’를 진행 중이다. 그런가 하면 전통문화가 아닌 신기술도 젊은이들 못지않게 적극 받아들인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찍기 위해 드론 자격증을, 세계 3대 미항보다 아름다운 남해안을 다니기 위해 요트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포클레인을 직접 운전하며 일하기도 한다.

성파 스님은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에 걸쳐 한 가지 이루기도 어려운 일들을 연달아 개척해 왔다. 스님은 스스로 “나는 500살 인생을 산다”라고 말한다. 수행에서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즉 단번에 경지로 뛰어넘는 것처럼 다른 일도 그렇게 하기 때문에 시간을 줄여서 해낼 수 있다고 웃음짓는다. 다양한 장르에 무모하리만치 용감하게 뛰어들 수 있었던 비결로는 ‘콩깍지론’을 이야기한다. 꽃이 떨어지면 바로 작은 열매가 달리는 다른 과일과 달리, 콩은 꽃이 떨어지고 달리는 콩깍지 속에 콩알이 없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콩알이 생기고 커진다는 것이다. 새로운 일을 할 때 주춤하거나 겁을 먹지 말고 우선 계획을 짜놓고 안을 채우라는 말이다.

 

“무소유를 해야 훌륭한 스님이 된다, 그런 말은 내가 일찍부터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나는 정반대라. 나는 욕심이 대적이다. 무소유와는 정반대라, 욕심이 대적이라. 큰 대(大) 자, 도적 적(賊) 자. 큰 도둑놈이라. (…) 나는 이루고자 하는 거라. 소유하고자 하는 거라. 무소유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소유하고자 하는 거라. 내 이 생이 있는 한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체가 소유라. 안 그러면 눈 감아버리지, 왜 밥을 먹고 약을 먹나. 그래서 나는 소유가 엄청 나. 남의 것도 내 거라.”(p.315) - 〈무소유? 나는 욕심이 천하의 대적〉 중에서

 


 

스님은 ‘욕심이 대적’, ‘무소유가 아니라 삼라만상이 내 소유’라고 역설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스님의 욕심은 정신적인 것이다. 전통문화를 되살리려는 욕심, 국민들이 사찰에서 전통문화와 자연을 마음껏 즐기며 안식을 얻기 바라는 욕심이다. 스님이 해온 일은 과거 전통 시대에는 사찰을 중심으로 이어져 왔으나 근대화 이후로는 사찰에서도, 민간에서도 사라진 전통을 되살리는 것이었다. 출가자로서 도자기, 천연 염색, 옻칠 민화, 된장 등을 하는 것에 대해 외도한다는 수군거림이 있었지만 스님은 그 일들을 행복하게 수행해 왔다. 후대를 위해 지금까지 해온 작업을 사진과 도표로 정리하면서 말이다.

성파 스님은 지금껏 해오신 일 이야기를 들려주며 당부의 말도 했다. “종교인들이 보면, 내려다보면서 가르치듯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나는 그런 거 없어요.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따라오라는 것도 아니라. ‘나는 이렇게 일한다’, 그뿐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스님의 말씀은 ‘내가 이렇게 해봤으니 누구나 할 수 있다’라는 권유로 들린다. 모두가 스님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일과 공부를 하나로 여기는 자세로 산다면 행복이 바로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는 스님이 이 시대에 건네는 화두이자 권유이며 응원이고 격려다.

 

우리는 부처님을 만나지 않고도 가르침을 배울 수 있어요. 서산대사, 사명대사 직접 안 만나도 배울 수 있지요. 공자, 맹자, 노자 같은 선인(先人)들도 만날 수 있어요. 무엇으로? 책을 통해서 만날 수 있습니다. ‘나옹(懶翁, 1320~1376) 선사 만나러 가자’ 하면 그냥 《나옹집》을 보면 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누구 만나고 싶으면 그 사람이 쓴 책을 읽으면 됩니다. 그렇게 나는 책을 읽으며 지금 여기에 없는 사람을 친구로 삼을 수 있는 거라.(p.297)

 


 

이제 우리 사회가 전문성이 많잖아요. 전문 분야가 많고 그 분야마다 전문가들이 많아. 그런데도 혼란스러움이 더 많아. 그건 관찰력은 있는데 통찰력이 없기 때문인 거라. 관찰력에는 능하고 자신의 전문 분야만 자꾸 파고들어 가잖아요. 그런데 통찰력은 좀 부족한 거라. 이걸 위입서궁(蝟入鼠宮)이라 해요. 고슴도치가 쥐구멍으로 들어간다 하지요. 고슴도치가 작은 구멍으로 깊이 들어는 가는데, 등의 가시 때문에 못 빠져나오거든.(pp.346~347)

 

저자 : 성파 스님

1939년 경남 합천 해인사 인근에서 4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조봉주(曺鳳周). 성파(性坡)는 법명이고, 법호는 중봉(中峰)이다. 통도사 월하 스님을 은사로 1960년 사미계를, 1970년 구족계를 받았다. 1980년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부장, 교무부장, 규정부장을 역임했고, 1981년 3월 통도사 제20대 주지로 취임해 교구본사 및 지역 불교 발전에 진력했다. 통도사 주지를 마친 후 통도사 서운암 감원으로 주석해 수행에 매진했다.

2000년 4월 통도사 서운암에 무위선원을 개원한 이후 선농일치 정신을 선양하고 통도사에 차밭을 재건했으며 감나무밭을 일구고 야생화를 심었다. 2002년 2월 노천당 월하 대종사로부터 중봉(中峰)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특히 28년간 도자기를 구워 도자 삼천불과 16만 도자대장경을 조성하고 이를 모시기 위해 장경각을 건립했다.

전통 불교문화 계승 차원에서 천연 염색 및 새로운 옻칠 기법을 개발해 단청과 건축, 발우, 탱화, 건칠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역으로 확대시켰다. 2013년 4월 대한불교조계종 원로의원이 됐고, 2014년 1월 조계종 최고 품계인 대종사 법계를 품수했다. 2018년 3월 산중총회에서 영축총림 제4대 방장에 추대됐고, 2021년 12월 종정추대위원회를 통해 15대 종정으로 만장일치 추대됐다. 2022년 3월 26일 종정 임기를 시작해 종단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저자 : 김한수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1991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1993년부터 문화부에 근무하고 있다. 2003년부터 종교를 담당했으며 2014년부터 종교 전문 기자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우리 곁의 성자들》, 《종교, 아 그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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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뼈, 드러난 뼈 - 뼈의 5억 년 역사에서 최첨단 뼈 수술까지 아름답고 효율적이며 무한한 뼈 이야기
로이 밀스 지음, 양병찬 옮김 / 해나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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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는 인간이 인간일 수 있도록 해준 인체구조물이며 살아 있는 뼈는 기능과 역할에 주목하지만 사후에는 산업으로서의 가치가 더욱 커진다. 특히 사업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학문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주요 소재이기도 하다. 뼈에 관한 모든 것이 이 책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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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뼈, 드러난 뼈 - 뼈의 5억 년 역사에서 최첨단 뼈 수술까지 아름답고 효율적이며 무한한 뼈 이야기
로이 밀스 지음, 양병찬 옮김 / 해나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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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얼마 전 『인체 해부학 대백과』란 책을 본 적이 있다. 우리 인체에 대한 각 계통 및 각 부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담은 책이었다. 인체에 대한 백과사전이란 의미의 이 책은 크게 두 개 파트(부)로 나뉘어 있다. 1부가 〈인체의 계통〉 2부는 〈인체의 각 부위〉에 대한 해부학적 설명으로 의학적 참고자료로 사용될 수 있는 자세한 역할과 구조를 매우 정밀한 그림과 함께 설명하는 대형 판형의 사전이다. 1부 인체의 계통은 15개의 계통으로 나뉘어 설명하고 있었다. 첫 장(章)이 뼈대계통이다. 대백과는 우리 인체의 뼈대는 〈몸통뼈대〉(축골격), 〈팔다리뼈대〉(사지골격)로 크게 나뉘고, 뼈대의 〈구조〉, 〈성장〉, 〈관절〉 등이 상세한 설명과 큰 그림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머리뼈, 척주, 가슴우리(흉곽), 복장뼈가 우리 몸의 축을 구성한다. 머리뼈의 위쪽은 뇌와 감각기관을 보호하는 부분이고, 아래쪽은 얼굴 형태를 이룬다. 머리뼈의 바닥 부분은 척주의 첫째 뼈인 고리뼈와 맞닿아, 고개를 끄덕이도록 운동하는 관절을 이룬다. 머리뼈에 난 구멍은 얼굴의 눈, 코, 귀, 입 부분이 된다. 머리뼈를 구성하는 날개머리뼈는 '봉합'이라는 독특한 관절을 이룬다. 서로 맞물린 구불구불한 봉합선은 섬유조직으로 단단히 연결돼 있다.

척주는 척추뼈로 이뤄진 기둥이다. 각각의 척추뼈 사이에는 섬유연골로 된 척추사이원반이 충격을 흡수한다. 각각의 척추뼈는 매우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지만, 척주의 전체적인 움직임은 매우 유연하고 다양하다. 등 근육에 단단히 고정된 척주는 필요할 때 기둥처럼작용해 물건을 들어 올리는 운동을 수행한다. 흉곽을 구성하는 갈비뼈와 척추뼈는 등 쪽에서 서로 연결돼 심장과 허파를 에워싼다. 첫 갈비뼈인 참갈비뼈 7개는 몸의 앞쪽에서 복장뼈와 부착한다. 그 아래로 이어지는 갈비뼈 3개는 거짓갈비뼈라고 한다. 서로 연결돼 마지막 참갈비뼈로 이어진다. 갈비뼈 12쌍 중 나머지 2쌍은 뜬갈비뼈다. 나머지 갈비뼈와 다르게 앞으로 뻗어 복장뼈와 연결되지 않는다.

 


 

이 책 『숨겨진 뼈, 드러난 뼈』는 뼈를 사랑하는 정형외과 의사 로이 밀스의 열정적이고 유머러스한 뼈 교양서이다. 저자 밀스는 "뼈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건축 자재"라고 비유한다. 저자에 따르면 뼈는 스스로 자라고 가벼우며 내구성이 좋다. 부러졌을 때 스스로 회복되기까지 한다. 그리고 생명체가 살아 있을 때 숨겨져 있던 뼈는, 주인이 죽은 후에 밖으로 나와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층 속에 묻힌 뼈는 수백만 년 전의 지구에 대해서 말해주고, 동굴 속에서 발견된 뼈는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 말해준다. 또한 뼈는 생활용품, 농사도구, 사냥도구, 무기, 장식품, 악기, 놀이도구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저자는 앞서 독자가 언급한 인체의 뼈와 동물의 뼈를 함께 모든 뼈를 대상으로 연구하고 검토한 결과를 이 책에 담았다.

따라서 이 책은 인간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인 ‘뼈’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2부로 이뤄져 있다. 1부 〈숨겨진 뼈〉와 2부 〈드러난 뼈〉이다. 1부에서 저자는 뼈의 생물학적 구성, 뼈가 어떻게 성장하고 부러지고 치유되는지 등의 기본적인 과학 지식부터 의학적 혁명과 최신 정형외과 혁신들까지, 살아 있는 신체 내부의 ‘숨겨진 뼈’에 대해 소개한다. 2부에서는 화석, 납골당, 도구, 악기 등 신체 외부에 ‘드러난 뼈’의 역사를 통해 뼈가 지닌 역사적, 종교적, 관용적 의미를 탐구한다. 뼈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측면을 다루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살아서 만큼이나 죽어서도 흥미로운 비밀을 간직한 뼈의 신비로움을 파헤치고, 그 중요함을 간과했던 뼈를 다시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 오늘을 사는 현대인은 일상생활에서 뼈를 보거나 뼈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가 거의 없다. 기껏해야 음식에서 뼈를 바를 때 귀찮게 여기는 정도가 대부분이고, 병원에서 엑스레이 사진에 찍힌 하얀 자국을 통해 뼈를 보는 것이 조금 특별한 경우다. 앞서 대백과사전에서도 언급했지만 인체의 뼈는 우리 몸을 지탱하고, 기능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뼈는 생명에 필수 불가결한 원소인 칼슘을 저장하는 은행 역할을 하고, 경이로울 정도로 효율적인 구조로 몸을 지탱하며, 심지어 환경에 적응하고 스스로 복구하기까지 한다는 말은 앞서 언급한 대로다. 그런 동시에 뼈는 인류 문명의 발전과정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재료다. 뼈는 구하기 쉽고 가공이 용이한 재료로서 문명의 시작부터 인류의 삶과 함께했다. 전 세계의 여러 문화에서 사람들은 뼈를 섬기고, 보호하고, 도구와 재료로 활용하고, 그로부터 즐거움과 영감을 얻었다.

이처럼 다재다능한 뼈에는 불가사의한 측면들이 있다. 뼈는 살아 있을 때는 몸속에 숨겨져 있으며, 죽어서 몸 밖으로 나온다. 뼈는 우리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보관된다. 일상에서 뼈를 볼 일이 없는 현대인들에게 뼈의 진정한 모습은 베일에 싸여 있다. 이 책 『숨겨진 뼈, 드러난 뼈』는 이렇듯 인간의 삶과 문명에 필수적이면서도 눈에 띄지 않는 배경에 머물러 있던 뼈를 주인공으로 하는 책이다. 흥미로운 뼈를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닌 못 말리는 ‘뼈덕후’ 정형외과 의사 로이 밀스는 이 책에서 뼈에 대해 궁금했던, 또는 미처 궁금한지도 몰랐던 모든 것들을 다루면서 독자들을 때로는 오싹하고 때로는 매혹적인 뼈의 세계로 이끈다.

뼈는 척추동물이 수행하는 다양한 기능들, 예컨대 무게 지탱, 수영, 땅파기, 날기, 뜀박질 등의 근본이 되는 구조다. 저자는 뼈가 어떤 물질로 구성되어 있는지, 척추동물의 뼈가 조개껍데기나 곤충의 키틴질, 손톱, 상아와 어떻게 다른지, 뼈가 어떻게 영양분을 공급받고 성장하는지 등을 전문 용어를 최대한 배제하고 유머와 입담을 곁들여서 경쾌하게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뼈는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주인을 보호하는 역할도 수행하지만, 칼슘을 비롯한 수많은 영양분의 저장소 역할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칼슘은 신경과 근육 조직, 틀기 심장 근육이 제대로 동작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성분이다. 인체는 체내의 칼슘 농도를 좁은 범위 내에서 유지하기 위해 뼈를 ‘칼슘 은행’으로 활용한다. 혈액 내에 칼슘이 부족하면 뼈에서 칼슘을 인출하고, 칼슘이 너무 많으면 뼈에 칼슘을 저장하는 것이다.

뼈의 이러한 성질은 의외로 우주여행에 큰 난관이 되기도 한다. 지상에 있을 때, 우리의 뼈는 걷기, 뛰기 등의 압력 자극에 의해 칼슘이 저장되는 작용과 심장 근육 등 인체 내 필요에 의해 칼슘이 인출되는 작용이 평형을 이룬다. 하지만 무중력 상태에서 뼈에 가해지는 자극이 없어지면 뼈에서 칼슘이 급속도로 빠져나가기 시작하고, 이는 심각한 골다공증을 초래한다. 때문에 우주 비행사들은 매일 수 시간 운동하면서 칼슘 배출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우주정거장에 6개월을 머무는 동안 약 10퍼센트의 뼈를 상실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론 머스크의 제안처럼 사람이 3~4년이 걸리는 우주여행을 통해 화성으로 이주할 수 있을까? 저자는 겨울잠을 자는 곰이 뼈 손실을 피하는 방법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미국 수부외과(Hand Surgery)학회 회장을 역임한 저명한 정형외과 의사로서의 전문성을 십분 발휘한다. 뼈에 생길 수 있는 다양한 질환과 그 치료법, 뼈가 부러졌을 때 스스로 치유되는 과정, 뼈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는 기상천외한 수술법들, 정형외과학에 혁신을 가져온 선배 정형외과 의사들의 이야기 등을 풀어내면서, 저자는 환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형외과 의사로서의 자긍심을 숨기지 않는다.

 


 

1부에서 '숨겨진 뼈'(1장~9장)에서는 살아 있는 생물체 내부에서 기능하는 뼈의 역할과 뼈의 구조와 성분 등 의학적 측면에서 설명했다면, 2부 ‘드러난 뼈’에서는 뼈의 주인이 죽은 후 몸 밖으로 나온 뼈의 두 번째 생애를 이야기하면서 뼈가 지닌 역사적, 종교적, 관용적 의미를 탐구한다. 바깥으로 나온 뼈는 척추동물의 든든한 버팀목이 아니라, 지구의 역사와 인류 문화의 탁월한 기록자가 된다. 지층 속에 묻힌 뼈는 수백만 년 전의 지구에 대해서 말해주고, 동굴 속에 매장된 뼈는 인간이 언제 처음으로 추상적 사고를 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 말해준다. 선사시대의 사냥꾼들은 뼈를 이용해서 몽둥이, 화살촉, 작살, 낚싯바늘을 만들었고, 사냥한 동물의 가죽을 뼈바늘을 이용해서 옷으로 만들었으며, 동물의 뼈를 이용해 주사위를 만들어 미래를 점쳤다.

뿐만 아니라 근대에 와서도 뼈를 이용한 다양한 비즈니스가 성행했다. 뼈 단추 산업은 패션의 역사를 바꾸어놓았고, 미국 대평원에서 수집된 들소의 뼈는 거대한 비료 산업을 촉발시켰다. 또한 카타콤에서 발굴된 ‘성인’들의 뼈로 교회는 떼돈을 벌었으며 이는 종교개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뼈의 생화학, 해부학, 생리학, 고고학, 고생물학, 예술, 역사, 문화까지… 피부 아래에 숨겨져 있을 때나 죽어서 몸 밖으로 드러나 있을 때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뼈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뼈가 세계 최고의 건축자재이며 문화유산이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2부에서는 이해와 특징적 설명을 위해 7개 장(章)으로 나눠 기술한다. 10장 「홀로 남은 뼈」, 11장 「존경받는 뼈」, 12장 「가르치는 뼈」, 13장 「뼈의 비지니스」, 14장 「가정용 뼈」, 15장 「아름답고 즐거운 뼈」, 16장 「드러난 뼈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톡톡 튀는 제목들이 암시한 것을 내용을 읽지 않고도 유추할 수 있다면 사실 뼈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뼈를 다루는 과학자이자 인체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 조금은 경박한 표현 같지만 저자가 의사이기 때문에, 그리고 과학자이기에 알 수 있는 내용이자, 풍부한 경험과 깊은 사유가 담긴 책이라서 오히려 흥미롭게 쓸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하게 한다.

 


 

독자가 가장 흥미 있게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은 13장 「뼈의 비지니스」를 다룬 장이다. 저자는 "지난 수 세기 동안 뼈는 다양한 비즈니스(건축술과 제도, 목수일, 돛 만들기, 밧줄 꼬기, 책 제본하기, 바늘 만들기)에 도구를 제공해왔다"고 전제하고 "복잡한 구성과 내구성 높은 구조 덕분에 뼈는 우수한 재료로 수많은 제조업(몇 가지만 예로 들면 페인트, 비누, 설탕)도 계속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뼈의 기여도를 설명하기 위해 끝없는 백과사전식 목록을 제시하는 대신, 저자는 진취적인 사람들이 뼈를 상업화한 여덟가지 방법들을 얼추 연대기적 순서에 따라 소개한다고 밝혔다.

선사시대부터 뼈가 사냥의 도구로 이용되는 등 꾸준히 쓰임새를 넓혀오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뼈를 이용한 다양한 비즈니스가 성행했다. 뼈 단추 산업은 패션의 역사를 바꾸어놓았고, 미국 대평원에서 수집된 들소의 뼈는 거대한 비료 산업을 촉발시켰다. 또한 카타콤에서 발굴된 ‘성인’들의 뼈로 교회는 떼돈을 벌었으며 이는 종교개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뼈의 생화학, 해부학, 생리학, 고고학, 고생물학, 예술, 역사, 문화까지… 피부 아래에 숨겨져 있을 때나 죽어서 몸 밖으로 드러나 있을 때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뼈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뼈가 세계 최고의 건축자재이며 문화유산이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1797년 영국의 조사이아 스포드 2세는 무거운 돼지 구이 때문에 접시가 깨지는 식기의 결함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실험 삼아 시도했던 자기 제조 공정을 완성했다. 조사이아 2세가 사용한 주요 재료는 '골회'였다. 골회란 뼈를 '산소가 부족한 고온의 오븐'에서 구운 후 남은 칼슘과 인의 화합물을 말한다. 그는 골회와 콘월석(화감암형 광물), 카올린(알루미늄과 규소를 함유한 광물)을 12:8:7의 비율로 배합하여 본차이나를 만들었는데, 이 비율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8개 가운데 한 가지 사례만 여기에 적었다.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내용들이 많아 이 책을 권유해 드린다.

 


 

"스포드가 뼈를 굽는 동안 나폴레옹은 전쟁 중이었다. 그가 1815년 워털루에서 패배할 때까지, 무려 10만 명의 프랑스 전쟁 포로들이 영국의 개방형 교도소에서 빈둥거리며 지냈다(10년 동안 그러고 지낸 사람도 있었다). 나폴레옹이 일으킨 전쟁으로 징집되기 전, 많은 프랑스 병사들은 가구 제조공, 대장장이, 방직공이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중 간수들의 격려에 힘입어, 그 기술자들은 교도소 주방에서 요리하고 남은 양 뼈를 구해 깨끗이 닦고 표백한 다음 정교한 모형을 만들어 가까운 마을의 시장에서 돈을 받고 판매하거나 신선한 농작물과 교환하기 시작했다. 그중 선박 모형도 있었는데, 정교하게 깎은 양 뼈에 (마울에서 구한) 금박과 은박, 실크, 거북 겁데기를 가미한 공예품이었고 동시대 영국 해군의 군함을 이상화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아무런 도면도 없이 오로지 기억과 상상력에 의존해 모형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선박 모형에는 때때로 가동부(이를테면 들락날락하는 대포)도 있었다.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운 그 모형들은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으며, 경매에서 종종 수만 달러에 거래된다."(p.283)

 

저자 : 로이 밀스(Roy A. Meals)

 

미국 라이스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밴더빌트 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인간 조직, 특히 뼈에 대해 연구했다.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정형외과 수술을 집도한 바 있고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수부외과(Hand Surgery) 펠로우십을 마쳤으며, 현재 UCLA 정형외과 임상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 수부외과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뼈의 역사적?문화적 측면에 관심을 가져 중동, 유럽, 아프리카 등 49개국을 여행하며 연구했다. 환자를 진료하거나 연구를 하지 않을 때는 가드닝, 자전거, 조깅을 하면서 자신의 뼈를 튼튼하게 만들고 있다.

 

역자 : 양병찬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에서 약학을 공부했다. 약사로 활동하며 틈틈이 의약학과 생명과학 분야의 글을 번역했다. 최근에는 생명과학 분야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며 포항공과대학교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바이오통신원으로, [네이처]와 [사이언스] 등 해외 과학저널에 실린 의학 및 생명과학기사를 번역해 최신 동향을 소개했다. 최근에 옮긴 책으로 《이토록 굉장한 세계》, 《완전히 새로운 공룡의 역사》, 《텐 드럭스》, 《마지막 고래잡이》, 《과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여행 라군》, 《센스 앤 넌센스》, 《자연의 발명》 등이 있다. 2019년에는 《아름다움의 진화》로 한국출판문화상 번역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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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예술 - 붓으로 금기를 깨는 예술가가 전하는 삶의 카타르시스
윤영미 지음 / 나비클럽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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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윤영미의 글씨에는 반항과 자유가 있다. 그의 글씨에는 또 여유와 쉼이 있다. 그의 삶도 자유와 여유다. 그는 삶과 예술을 하나로 묶는다. 그는 그렇게 살고 그렇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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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예술 - 붓으로 금기를 깨는 예술가가 전하는 삶의 카타르시스
윤영미 지음 / 나비클럽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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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잘 안 쓰지만 어렸을 때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등용하는 시험에서 인물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던 몸(身)·말씨(言)·글씨(書)·판단(判)의 네 가지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서(書)는 글씨(필적)를 가리키는 말이다. 예로부터 글씨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 주는 것이라 하여 매우 중요시하였다. 그래서 인물을 평가하는데, 글씨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글씨에 능하지 못한 사람은 그만큼 평가도 받지 못한 데서 서에서는 준미(遵美)가 요구되었다고 한다.

이 책 『인격예술』은 어릴 때부터 붓을 갖고 놀며 ‘글씨가 곧 그 사람이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한글 서예가 윤영미가 쓴 에세이다. 서예를 단순히 글씨를 잘 쓰는 기술이나 기교의 행위가 아니라 인격을 담는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저자의 삶과 작품을 담았다. 표제어도 그런 의미인 것으로 보인다. 제도권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해 견딘 30년의 시간이 만든 독특한 ‘순원체’로 쓴 작품 47점과 고독한 예술가로 살아낸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그가 쓰는 글씨는 어떤 금기도 없어 자유로운 느낌을 준다. 붓이 주는 강렬한 힘과 서예가의 감정선이 합쳐진 글씨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우리 모두 인생이라는 예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책이다. 서예가로서 자신의 본성이나 하는 일의 본질을 깨닫고 정의 내리는 사람들만이 이르는 경지에 이르렀음을 평가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저자의 첫 번째 에세이다. 그는 타인의 생각과 간섭을 대놓고 신경 쓰지 않으며, 말 그대로 인생의 주체가 된 예술가의 태도와 생각을 서예 작품과 함께 읽을 수 있다. 이 책에서 한글 서예의 아름다움을 엿볼 순 있지만, 한글 서예의 아름다움을 대놓고 찬미하는 글을 읽을 순 없다. 서예 예술가의 이야기가 손글씨를 쓰지 않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영감을 줄지 궁금하다.

 


 

책에 따르면 그의 삶은 글씨와 닮았다. ‘글씨가 곧 그 사람이다’라는 뜻의 ‘서여기인'(書如其人)’이 그의 좌우명이란다. 글씨를 천직으로 여겨 쓰고 있으니 일생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말이다. 저자는 서여기인을 마주하면 심장이 쫄깃해지고 몸은 경건해진다고 「서여기인」이라는 제목의 '여는 글'에서 말한다. 글씨에는 오롯이 저자 자신의 생각과 의식이 담길 터, 무언가를 쓴다는 행위는 저자가 가장 좋아하거나 원하는 것을 쓰는 것이란 말도 한다. "먹물을 붓에 듬뿍 실어 붓끝으로 써 내려가는 희열은 그 어떤 감정보다 상위 감정이다.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는 것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보다 글씨를 쓸 때 나는 더 뜨겁다. 머리, 가슴, 손끝으로 내려오는 집중력으로 점을 내리찌고 획을 긋고 글자를 써 내려가니 여운이 꽤 오래가는 감정선이다. 오롯이 그때의 감정을 붓끝에 싣는다."고 설명한다. 예술에 인문까지 담아내고 있는 것이 저자가 사랑하는 글씨 예술이다.

“간섭받는 것은 질색하니 간섭하기를 싫어하고,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니 타인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다. 사람을 사랑하기에 부지런하지 않으니 나 또한 다른 사람의 무관심에 서운하지 않다. 간혹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지만 적절한 거리 두기로 피곤하지 않고 삶이 부드럽다.”고 말하는 진정 자유인임을 알 수 있다. 황금률을 읽는 듯하다.

저자는 글씨의 힘을 오래 전 깨달았다. 자신의 글씨가 기존의 세상에 대한 매력적인 저항이라는 것을. 20년 서예 선생의 삶을 접고 붓 한 자루를 든 채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서예의 아름다움을 강요하고자 함이 아니다. 사람들과 더불어 글씨와 놀기 위해서다. 우울한 친구들을 위한 ‘욕’전을 기획하기도 했다. 억눌린 감정의 응어리를 표출한 글씨는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된다. 붓 끝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적인 힘과 서예가의 감정선이 합쳐진 글씨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저자는 이야기와 퍼포먼스를 더해 ‘글씨 콘서트’라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었다. 글씨콘서트가 계속되는 동안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일어서 카메라에 담아내기 바빴고, 대공연장을 진동하는 묵향은 순간 모두를 행복에 취하도록 만들었다.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것도 한자였고 첫 개인전도 한자 서예였지만, 공기처럼 호흡하는 한글로 심장을 파고드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사람들이 어떻게 한글을 쓰는 서예가가 되었냐고 물어 오면 나는 대답한다. 쪽팔려서 그렇다고. 한 번에 읽어 내지 못하는 한자를 쓴다는 것이 쪽팔리고, 읽으면서도 바로 이해하지 못해서 쪽팔리다고. 내 얘기를 붓으로 쓰고 싶은데 한자로 하자니 나도 어렵고 보는 대중도 어려울까 그렇다고. 무엇보다 한글을 쓰지 않는 서예가가 쪽팔려서 그렇다고.”

대단한 독설가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정도는 그의 '욕설'의 의미를 알면 약과다. 그의 욕설이 시작된 연원도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스님의 암자로 보내질 현판 글씨를 하나 부탁받았던 일을 있었다. 저자는 암자의 이름을 받아 보고는 욕심 없이 써도 될 법한 무위(無爲)적인 이름이라 여겼다. 직접 보는 앞에서 써야겠다는 생각에서 "글씨 받으로 오시지요. 저는 그쪽 스님의 취향을 잘 모르니 글씨를 선물할 분이라도 쓰는 걸 직접 보시고 어울리는 느낌을 같이 찾아봅시다."라고 제안했다. 이 자리에서 저자는 준비된 화선지에 획을 긋고 문자를 만들어냈다. 거침없이 자유롭게 흐느적거리는 붓을 감당할 수 없어 붓을 받으러 온 젊은 학자에게 갖고 싶은 글귀 하나 던져 보라고 주문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 학자는 "씨팔··· 아! 씨팔이 좋아요."라고 말하며 자기 평생 가장 많이 내뱉는 말이라고 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점잖은 학자가 어찌 그런 욕지거리를 쓰십니까?"라고 응수하면서도 기다렸다는 듯 붓을 멈추지 않았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진주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저자는 대학 서예과에 입학한 후에 고가의 큰 붓 대신 밀대 걸레 두 개를 자루에 묶어 붓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때 흐느적거리는 붓맛과 뜻밖의 획이 만들어지는 희열을 만끽했다고 회상한다. 그는 공부를 위해 서예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새벽까지 입시과외를 하며 두꺼운 전공책을 사 모았다. 첫 공모전에서 수상도 했다. 그 뒤로는 상들을 거절하고 유명한 서예가가 자기 문하로 들어오라는 제안도 사양한 채 고향으로 내려갔다.

저자에 따르면 삼천포 시장 번화가에 서예원을 열었다. 10대 왕따 청소년, 가난한 예술가 지망생 청년들, 우리 옷을 곱게 차려입은 중년 부인들,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모여들었다. 서예원은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서예원에는 사람들의 온갖 대소사와 희노애락이 모였다. 작가는 그들이 본성을 마음껏 펼치도록 도왔다.

마흔여덟 살 때, 서예원을 닫고 세상으로 나왔다. 서예에서는 보기 드문 그의 작품은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삐뚤빼뚤하지만 아름답다. "자유롭지만 묘한 질서가 있다. 힘이 있지만 부드럽다." 호평이 잇따랐다. 그의 글씨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씨였다. 사람들은 여태껏 본 적 없는 그의 글씨를 가리켜 ‘순원체’라고 했다. 그동안 서예 선생으로 살며 눌려있던 에너지가 화산처럼 폭발했다. 개인전 완판작가라는 명성과 함께 국내 최초로 기획한 글씨콘서트는 대공연장 전좌석을 매진시키기도 했다. 그의 서예는 전시가 아닌 공연이며 온몸을 쓰는 퍼포먼스다. 커다란 붓으로 춤을 추듯 온몸을 사용한다. 에너지를 한껏 모아 붓과 한몸이 되어 10m짜리 거대한 천을 누빈다. 응집된 인생의 내력을 순간적으로 폭발시킨다. 윤영미의 첫 책 『인격예술』은 가두려 하지 않고, 얽매이지 않고, 같아지려 하지 않는 그의 삶과 글씨가 응축된 책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나는 먹 가는 행위를 주술처럼 즐긴다. 내가 가장 착해지는 시간이다. 먹을 갈면서 우주의 중심을 내 축에 맞추어 이동시킨다. 자신이 가장 자기다울 수 있는 시간,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재편되고 확장되는 몰입. 이 몰입의 경지가 주는 충만함보다 더 큰 보상을 나는 아직 모른다.”

저자는 먹 가는 시간을 서예가로서 '가장 욕심스러운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벼루에 넘치도록 물을 가득 붓고 먹을 돌렸을 때 옆으로 넘치지 않을 만큼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계산한다. 반복을 좋아하지 않는 기질이지만, 유일하게 즐기는 반복이 먹을 가는 일이라고 말한다. 적당한 속도로 둥글게 팔을 돌린다. 감정의 리듬을 맞춰가며 돌리고 있는지 모른다. 멈추려 하지 않는 관성이 붙으면 팔은 무의식적으로 돌고, 머릿속은 깨끗하게 비워진다. 무아(無我)지경이 찾아온다. 무당이 신내림을 받고 뛰고 있는 모습이 겹쳐진다. 반들반들하게 먹으로 벼루를 연마하듯이 생각의 응어리를 갈고 있었다. 누군가가 부드러운 손으로 나를 만져주고 조금씩 순한 어린아이처럼 온순해진다. 벼루 바닥이 훤히 보였던 맑은 물이 점점 검어지더니 제법 먹물로서의 이름값을 하려 한다."고 먹 가는 시간을 이 에세이에 담았다.

자유로운 나를 위하여 견딘 고독에 대해 말한다. 어떤 제도권에도 속하지 않고 지름길을 포기한 채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삶을 견디며 벼린 이야기들. 수많은 반복이 원하는 경지에 이르게 했고, 스스로의 금기를 깨는 순간 편안해졌다는 것을, 고독할수록 자유로웠고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이 내 것임을 알게 된 이야기들이다. 예술가의 내밀한 독백을 읽다 보면 깨닫게 된다. 가장 자신다울 수 있는 시간을 위해 견디고 벼리는 것, 그것이 예술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인생이라는 예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무엇을 위하여 삶을 견디는가」, 2장 「금기를 깨면 편안해진다」, 3장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이 내 것이다」, 4장 「고독하기에 자유로울 수 있다」 등이다. 제목만 읽어도 예술가로서, 인간으로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쌓아간다. '예술이 삶이고, 삶이 곧 예술이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에 담긴 글에는 예술과 인간이 함께한다는 생각이 짙다. 특히 2장 '인생의 진로를 변경하는 것보다 황홀한 자유는 없다'는 글은 제목부터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 글은 앞서 언급한 서예원을 그만두고 혼자만의 길을 갈 때의 심경 등을 담아 냈다.

"인생에 진로를 변경해 버리는 것만큼 황홀한 자유는 없었다.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잘한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첫째는 서예가가 된 것이고, 둘째는 40대 후반에 서예원을 폐원한 것이다. 아무것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해야만 하는 것들이 일정표에서 지워지는 자유와 계획되지 않은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강박처럼 다가오는 완벽주의 같은 어설픈 놀음을 멈추고 싶었다. 숨이 멈춰 버릴 것만 같았다. 몸이 가는 대로 살고 싶었고 마음 가는 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사람 속에 살지만 사람 밖에 살고 싶었던 몸,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었다. 매일 여행을 꿈꾸고 계획했다. 매일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풍경들을 상상했다."(p.73)

 

저저 : 윤영미

 

대학과 대학원에서 서화예술을 전공했다.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것도 한자였고, 세상에 먼저 발표한 전시도 한자 서예였지만 공기처럼 숨 쉴 수 있는 한글로 심장을 파고드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20년 동안 서예 선생으로 살다가 오십을 앞두고 한글 서예가로 세상에 나왔다. 개인전 완판작가라는 명성과 함께 국내 최초로 기획한 글씨콘서트는 대공연장 전좌석을 매진시켰다. 튀르키예에서 개인초대전을 열었고 중국을 돌며 글씨 버스킹을 했다. 그의 서예는 전시가 아닌 공연이며 온몸을 쓰는 퍼포먼스다. 경상국립대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에서 강의하고 경남교육연수원에서 교사들에게 한글 서예의 아름다움을 선보이고 있다. ‘글씨가 곧 그 사람이다’라는 뜻의 ‘서여기인書如其人’이 좌우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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