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없는 사진가
이용순 지음 / 파람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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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제한되고 폐쇄된 공간에서 사진 예술가가 선택한 것은 글의 예술이었다. 극한 상황에서 스스로 경험한 아픈 고통을 사진 찍듯 써 내려간 글로 사진을 대신했다. 카메라와 양각대 대신 종이와 펜을 들고 사진을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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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없는 사진가
이용순 지음 / 파람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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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카메라 없는 사진가』는 표제어 자체로만 보아도 '슬픔'과 '고통'을 내포하고 있다. 마치 '붓 없는 화가', '펜 없는 문필가'를 연상케 한다. 이 글의 저자 이용순은 사진가다. 저자는 미국 시카고의 콜롬비아 칼리지와 뉴욕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한 정통 포토그래퍼이며, 미국과 서울에서 8회의 개인전을 가진 바 있는 중견 작가이다. 또 최근의 아홉 번째 개인전에선 특유의 예민한 감수성으로 내면의 풍경과 문학적 서정의 순간들을 포착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왜 '카메라 없는 사진가'가 되었을까.

고통스러운 기억이지만 이 책이 출간된 과정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어느 날 카메라가 들려있어야 마땅할 사진가의 손에 수갑이 채워졌다. 알고 지내던 어떤 이의 부탁을 받고 심부름을 해준 것이 빌미가 되었다. 범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파놓은 함정에 빠지고 만 것이다. 이 일로 세상 물정에 어두운 이 어리숙한 예술가는 2년여의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이 책은 그 낯선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록이며, 영상에 대한 감각을 문자의 형식으로 풀어낸 또 다른 창작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나는 그곳(교도소)에서 에세이 형식으로, 때로는 시의 형식으로 카메라를 대신해 내 생각을 표현해왔다. 그 노트가 무려 17권에 달했다. 다행이었다. 글과 사진은 정말 많은 것에서 비슷했다. 서툰 내 생각이 온전하게 글로 들어와 박혔는지는 내가 판단하기에는 많이 부끄럽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의 이 행위를 두고, 어느 사진가가 카메라가 없을 때 이런 방식으로 사진을 찍었노라고 이야기해준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p.9)

 


 

사진가 이용순이 사진이 아닌 글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표현해냈다. 극한의 환경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극복하는 방법이긴 하지만 스스로 훌륭하게 이겨낸 자신을 오히려 사진 예술의 진정한 의미를 글로 표현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깊은 울림을 준다. 사실 사진과 문학은 엄격히 다른 분야의 예술이다. 그러나 저자의 글로 쓴 사진은 예술이 무엇을 표현하든 공감 가는 부분이 있다는 깨달음을 준다. 작가 정신, 공감은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에 흐르는 것들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요소임을 확인시켜 준다. 사진가가 글로써 자신의 예술을 어찌 다 표현해낼 수 있으랴. 사진 예술의 독창성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터, 저자는 두 가지 예술의 공통점을 뽑아내 서로 다른 분야에 스며 있는 예술 감각은 같다는 점을 인식시켜준다.

이 책에 수록된 시와 산문도 예사롭지는 않다. 탄탄한 문장력과 문학적 안목이 눈길을 잡아끌 정도로 문학적 감성이 풍부해 보인다. 시 작품의 수준 또한 저자가 사진가가 맞나 싶을 정도다. 책에는 짙은 서정성을 바탕으로 내면의 심층에 다가가는 깊은 시선이 돋보이는 저자의 아름다운 사진 작품 20여 점을 수록되었다. 책의 전반에 흐르는 일상과 주변, 인간의 내면에 대한 섬세한 관찰, 따뜻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예리한 감수성이 빛을 발하는 매우 독특하고도 매혹적인 책이 됐다. 사진에서 흐르는 분위기는 고독하지만 평온함을 준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교도소 안의 생활을 표현한 부분을 읽을 때면 얼마나 답답하고 억울했을까. 모든 것을 감수하고 교도소에서의 생활에도 적응하면서 저자의 마음속에서 숨어 있던 예술 감각과 예술혼이 일어나는 것 같다. 그것이라도 있어야 살아낼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면 안타까움에 독자가 오히려 미안할 정도다.

 


 

독자의 심정도 답답하고 안타깝다는 뜻이다. "왜 그렇게 바보처럼?" 저자를 만난 일도 없을 일반 독자들은 교도소 생활을 견딘 것만으로도 위로 격려가 된다. 그러나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풀리겠는가? 저자는 자신의 사진 20장을 곳곳에 배치해 답답한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듯이 평온함을 보여준다. 또 어쩌면 분노할 독자들을 위해 평온하고 일상적인 풍경도 보여준다. 물론 여러 장의 「비 오는 날」 중에는 비는 보이지 않는데 우산을 받쳐든 사람들이 바닷가를 배회하는 듯한 모습에서 '모순된 행동'을 표현하는 듯하다. 또 「하얀 아침」에서는 자욱한 안개로 흐릿한 시야로 자신의 교도소 생활을 떠올리게도 한다. 「자화상」은 그야말로 고독한 모습의 한 사람만 텅빈 바닷가에 서 있다. 철저하게 고립된 자아의 표출인 것 같다. 몇 장의 같은 제목 「사막에서」에는 사람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덩그러니 사막의 모습만 드러내고 있다. 이 또한 철저한 고독과 함께 막막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숨어 있다.

예술가에게 획일적 질서의 강요는 치명적일 것이다. 더욱이 통제와 감시 속의 예술가는 뭍에 오른 물고기나 다를 바 없을 터다. 우리가 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예술가들이 일제에 항거했는지를 되돌아보면 예술가와 통제, 감시, 획일적 질서는 전혀 맞지 않는 단어들이다. 그가 교도소에서 보냈을 인고의 시간은 수백 배 더 길게 느껴졌으르리라. 또 사진 예술가인 저자에게 더 견디기 힘든 건 창작 도구(카메라)의 상실이었을 것이란 추측은 쉽게 이해된다. 자, 이제 어찌할 것인가. 머릿속에 들끓은 이미지들의 아우성을 어떻게 끄집어내 형상화할 것인가. 저자가 주저 없이 펜을 든 이유다.

 

 

그가 교도소에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종일 떠들어대는 TV 소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힘들었던 초기의 몇 개월이 지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그 일을 〈책 머리에〉 적었다. 이에 따르면 첫째는 독서였다. 사람은 정말로 적응하는 존재 같았다. 그 소음 속에서 마침내 책의 글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주로 소설을 읽기 시작했고 오래전 글을 쓰던 기억을 더듬어 주섬주섬 자신의 생각을 노트에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설보다는 그동안 읽지 못했던 철학서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원해서 교도소 안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진가다. 표현의 욕구가 강한, 카메라가 없는 사진가다. 이 상황을 어찌할 것이낙. 어떻게 사진을 찍을 것이가. 어떻게 이 눈에 보이는 생소한 그러나 충만하게 내 가슴을 적셔오는 이 오브제를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혼란스러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나는 이내 사진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게 될 것이다. 첫째, 사진이 카메라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진의 개념을 좀 더 현대에 맞게 풀어낸다면 아무래도 그 의미의 폭이 넓어져야만 한다. 둘째, 종이에 프린트된 것만이 사진이라고 하지 말자. 지금은 영상의 시대다. 영상의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고 있으며 사진도 그 영상의 중심 언어로서 역할을 하고 있으니, 이 역시 문제는 없다. (중략) 사진은 분명 기억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가슴으로부터 토해지는 것이어야 한다. 그로 인해서 사진은 거짓이 아닌 참으로써 내적 경험을 토대로 한다. 내적 경험은 감정으로서의 경험이며 이는 생각 혹은 사고에 의존하다. 또 이는 외적 경험에 대한 주관적 판단일 수도 있다. (중략) 요즘의 나는 종종 시를 쓴다. 나는 결단코 나의 시가 언젠가는, 누구에게는 사진으로 환원되어 보이기를 바란다. 나는 사진가이기 때문이다.”(p.28~30) - 「시는 사진이다」 중에서

 


 

저자는 그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힌다. 조리개로 들어오는 광원을 계산하며 셔터를 누르는 대신, 용수철 없는 재소자용 플라스틱 펜에 마음의 빛을 비추며 써 내려간 것들이었다. 계절이 열 번쯤 바뀌고 그가 일상에 복귀할 때, 그의 손에는 이 책의 초고가 될 열일곱 권의 노트가 들려있었다. 이곳에 담긴 글에는 역시나 ‘사진가다움’이 선명히 드러난다. 사진이란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한 지점을 포착하여 물성을 부여하는 것. 그래서 사진을 흔히 기록의 동의어처럼 취급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사진은 그곳에 콘텍스트가 부여된 기억(memory)에 가깝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진은 역사를 담고, 어떤 사진은 인물의 개성을 담고, 어떤 사진은 정치를, 어떤 사진은 철학이나 과학을 담고, 어떤 사진은 거짓말도 하는 것이라고 말한. 저자는 그렇게 포착한 사물, 인물, 사건을 감방이라는 암실에서 종이와 펜으로 인화한다. 교도소 운동장의 맨드라미, 창살 바깥 산과 구름들, 동료 재소자들의 얼굴, 죄수들끼리 몰래 만든 요리의 메뉴들, 사동 안에서 소문으로 떠도는 사건들까지. 특히 저자가 즐겨 다루는 방식은 시(poem)다. 마치 오브제를 놓고 장면을 구성하듯, 때로는 연작사진을 이어 사건을 구성하듯 기억을 사로잡는다.

저자에 따르면 출소 후, 교도소의 노트에 등장하는 테마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이 책은 사진이 출품되는 전시회에 맞추어 출간된 것인데, 해당 작품들은 책에도 대부분 수록되었다. 동일한 모티브가 글과 사진으로 어떻게 텍스트화되고 이미지화되는지를 비교하는 것도 독자의 흥미 요소 중 하나다. 하지만 저자가 교도소에서 기억을 글로 남기기로 결심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삶’이다. 자신이 끌어안아야 할 삶이며 타인의 삶이기도 하다.

 


 

책에 따르면 너무 익숙하고 당당하게 수감생활을 시작하는 살인범, 억울하다고 푸념만 늘어놓고 ‘고문관’ 노릇만 하는 목사님, 은박지와 건전지로 불을 붙이고, 수건과 옷에서 실을 뽑아서 십자가 기념품을 만드는 예술가들, 누가 벌금의 대납 대신 초코파이 15박스를 넣어준 노역수, 아무도 보지 않는 TV 화면 옆에서 각자의 일거리에 몰두하는 재소자들 모두에게 존재하는 것, 바로 삶이다. 진부함과 반전이 늘 공존하는,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삶. 그곳에는 당연히 온갖 비열함과 야비함 곁의 명예로움과 인간다움이 존재한다. 재소자들은 미국의 주가 몇 개인가 하는 따위의, 언뜻 사소한 사실을 놓고 수십만 원 내기를 건다. 심판은 교도관들이다. 미국 유학파인 저자는 내기에 자주 이겨 (교도소 기준으로) 엄청난 돈을 딴 적도 있다. 하지만 사실 누구도 돈을 건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곳의 시간이 다 허비는 아닙니다. 여기에도 분명 유익함이 머무는 곳이라 저는 믿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을 얘기한다면 저는 생각하는 시간이 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거창하게 철학이 아니어도 부디 사고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밥 먹고 잠자며 달력에는 엑스표 해가며 자신을 죽여 가는 시간이 아니라 꿈을 꾸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왜냐면 그 꿈은 곧 여러분의 미래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p.71) - 「세상에서 가장 큰 죄」 중에서

 

저자 : 이용순

 

경기 광주 출생. 콜롬비아 칼리지 시카고,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2023년 5월 개인전 〈비 오는 날〉을 포함해 서울과 미국에서 9번의 개인전을 가졌고 1995년 사진예술사가 주최한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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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숲 차 - 나의 몸을 존중하고 계절의 감각을 찾고 산뜻하게 회복한다
신미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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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수명은 다른 생명체에 비해 긴 편이지만 인간은 만족하지 못한다. 누구나 오래 살기를 희망하지만 누구나 죽는다. 인간의 희망을 담아 노력 끝에 의과학의 발전으로 인간 수명을 크게 늘렸다. 그 유명한 '100세 시대'가 된 것이다. 그 유명한 〈백세 인생〉이란 노래가 미디어나 휴대폰 벨소리 등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들려왔다.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아직 좋아할 때가 아니란 듯 코로나 팬데믹은 일시에 '100세 찬가'를 잠재워 버렸다. 오만한 인간에게 경고를 준 것인가? 아니면 성찰의 기회를 준 것인가? 팬데믹을 가까스로 넘겨온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장수'라는 단어가 나오는 일이 드물어졌다. 그 자리에 이젠 '건강'이 다시 화두에 오른다. 역시 장수보다는 건강이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침대에 누워 지낸다면 그 기간이 길어진다면 장수보다는 오히려 단명이 더 고통을 줄이는 방법이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건강이 담보되지 않은 장수는 복이 아니라 화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 『요가 숲 차』는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까지 모든 것의 건강을 이야기한다. 사실 "건강은 스스로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병 들어 후회 말고 평소에 건강 관리해야 오래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등 의사뿐만 아니라 장수하는 분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이 책에서 저자 신미경은 "지금 나는 건강을 탐내는 삶을 산다. 부와 명예에 대한 탐심은 삐걱거리는 몸 앞에서는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건강해야 욕심도 생긴다. 그러고 보면 체력이야말로 행복의 척도 같다."고 말한다. 스스로 건강치 못한 몸을 방치해 심하게 병원 생활도 해봤고, 이후 건강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큰 병원에 다닐 만큼 아프기도 하며 건강하지 않은 채 나이를 먹어간다고 토로한다.

 


 

저자는 자신을 되돌아본다. 체력을 저금하기 가장 좋았던 젊은 시절을 흘려보냈지만, 지금이라도 살기 위해 운동을 한다고 말한다. 가장 만만해 보이는 요가를 시작했지만, 입문자의 '만만하다'는 엄청난 착각임이 첫 번째 수업이 끝나자마자 밝혀졌다는 후회도 남긴다. 그럼에도 그만두지 않고 2년 같은 5년 동안 요가를 꾸준히 해왔단다. 처음으로 매일 운동하는 뿌듯함을 느껴봤다고 털어놓는다. 한 달에 적어도 두 번은 낯선 산으로 하이킹을 다녀온다. 산을 10여 분만 올라도 숨을 헐떡였던 10년 전과 지금은 천지차이라고 밝힌다. 나이와 체력이 항상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말을 비로소 이해한다고도 소회를 털어놓기도 한다. 저자는 "무엇이든 단련한 만큼 강해지고 반복한 만큼 는다"는 귀중한 교훈을 뼛속 깊이 새겼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말한 몸이 지극히 실무적 시스템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젠 깨달았다고 설명한다. 시간을 들여 단속적, 구체적으로 고통을 주면 몸이 메시지를 이해하고 주어진 운동량을 자진해서 수용한다고 했던 것을 일컫는 것을 말이다.

저자는 지금 우리 시대를 웰니스의 시대라고 주장한다. 웰빙(Well-being)과 행복(Happiness), 건강(Fitness)을 합한 개념으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심신의 안녕을 바라며 집중하는 활동으로 웰니스란 매우 사적인 영역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아침 식사를 하지 않으면 기운이 없고, 술을 한 모금이라도 마시면 괴롭고, 개인 스포츠를 선호하며, 혼자 있기 좋아하는 기질이고, 명상을 하며 차분함을 배우고 화가 날 때는 호흡으로 다스리는 방법이 자신에게 가장 알맞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해온 경험을 토대로 밝히는 것이다. 독자들 중에는 성격이나 체질적으로 이와 반대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건강에 관해서는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고, 절대적인 건강법을 찾기보다 스스로를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을 모아 자신만의 복지 생활을 꾸려 나갈 것. 저자는 그게 바로 개인이 지향해야 할 웰니스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 책은 제호처럼 요가, 숲, 차를 매개로 하는 자신의 소소한 웰니스 라이프에 대한 기록이라고 저자는 「나의 골디락스를 찾아서」란 '프롤로그'를 통해 밝히고 있다. 이에 따르면 체력 단련에 한정하기보다 몸과 마음 모두를 잘 보듬는 시간을 갖고, 집이나 사무실처럼 나를 둘러싼 환경을 관리하고 좋아하는 차를 마시는 휴식 시간으로 나를 되돌아보며 반성과 나아감이 있는 나날이다. 타고난 건강 체질이 아니고, 출퇴근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를 받고, 이렇게밖에 못 사는 건가, 다른 삶의 방식은 없나? 등으로 종종 고민하기도 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그래도 조금은 더 나은 컨디션을 가져보겠노라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다. 10년 후에 '인생을 다시 한 번 산다면'으로 시작하는 자신의 메모가 지금과 같지 않기를 바라면서 지금까지 해온 대로 더 열심히 할 작정이라고 넌지시 알려준다. 완벽하게 만족하는 인생이 뭔지 모르지만, 같은 후회를 반복하는 정체된 삶이 아님은 안다는 저자의 경험을 이어 받아 실천함으로써 독자 역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수준을 뜻하는 '골디락스를 찾고 싶다.

이 책은 모두 4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요가 : 내 몸에 대한 존중」, 2장 「숲 : 치유의 공간」, 3장 「차 : 일상의 위안」, 4장 「느슨하게 산다 : 나는 내게 좋은 사람」 등이다. 저자는 맥시멀리스트에서 미니멀리스트로 극단적인 두 가지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했다고 한다. 산다는 건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임을 깨닫게 된 저자의 일상을 지켜주는 지금의 세 가지 ‘복지’는 바로 요가, 숲, 차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인생을 다시 산다면’ 혹은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새로운 공부, 더 많은 곳으로 여행 가기, 불필요한 인간관계에 매달리지 않기, 좋아하는 운동 갖기 등 사람마다 각자의 리스트는 다르겠지만 이 모든 바람의 공통점은 바로 ‘나에게 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를 시작으로 미니멀한 자신의 삶을 균형 있게 가꿔온 신미경 저자는 이번 책에서 유해한 것들을 더 최소화한 일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중심에는 바로 ‘요가, 숲, 차’가 있다.

 

 

책에 따르면 수시로 번아웃되기 좋은 도시에서 일을 한다는 건 출퇴근 교통체증, 대충 때우는 밥, 노트북 모니터만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기, 예측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 역시 그런 생활을 하며 20대와 30대를 보냈고 그 결과 얻은 건 훅 망가진 몸뚱아리였다.

잠을 줄이고 체력을 저금하기 가장 좋았던 젊은 시절을 흘려보냈지만, 지금이라도 살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고 5년 동안 요가를 꾸준히 하며 처음으로 매일 운동하는 뿌듯함을 느껴보기 시작했다. 고요한 차의 시간을 가지며 손에 쥐는 따스한 찻잔의 온기로 알게 모르게 지친 마음을 위로한다. 저자는 이를 자기만의 ‘복지 생활’이라고 표현한다. 일상에서 도망치지 않았고, 업을 손에서 놓지 않은 보통의 삶에 녹아 있는 편안함 말이다.

저자는 책 출간 후 가진 예스24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건강이 정말 좋지 않았고, 운동마저 싫어해 체력도 완전 밑바닥이었다고 말했다. "저는 그다지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70대 후반에 가까워진 아버지보다 체력이 약해요. 그런데 운동이 너무 싫었어요. 그러다 젊은 나이에 남은 수명을 걱정할 만큼 많이 아프기도 했고요. 컨디션이 나쁘니까 매사 예민해져서 못된 사람이 되어가는 것도 끔찍했습니다. 그래서 건강 관리에 집착하기보다는 컨디션 관리를 최우선으로 두기 시작했어요. 건강책이나 친구나 사회 선배들이 좋다고 하는 여러 건강법을 삶에 시도해본 시기가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를 쓸 무렵이었고, 세월이 흘러 『요가 숲 차』는 그 시도 끝에 내게 좋은 것, 잘 맞는 것을 남긴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결과적으로 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만 골라내 일상에서 누리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저자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터득한 건강의 지식를 꾸준히 실천함으로써 다른 일이 그러듯 '노력한 만큼 되돌려 받는다'란 말을 뼛속에 새겼다. 마치 농부가 곡식을 재배할 때 자주 쓰는 '땅은 농부가 흘린 땀만큼 돌려준다'는 지혜다. 지금의 상태로 꾸준히 해나간다면 한 가지를 제외하면 건강이나 체력 등도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도 남겼다. 어쩌면 '매일 꾸준히 노력하면 결실은 반드시 맺는다'는 자신감도 붙은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 질문에 답하는 저자의 말에서도 자신감과 겸허함이 함께 묻어나온다. "10년 후에는 지금 제가 고민하는 것들을 아마도 이루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것들을 분명하게 마음에 그리고 있고, 표로 정리도 해두고 계획대로 못하는 날도 있지만, 중단할 땐 하더라도 어쨌든 조금씩 해 나가고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제가 바라는 대로 풀릴지는 알 수 없죠. 산에 오르면 보이는 풍경, 그건 오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던 거잖아요. 그와 마찬가지로 살면서 아직 가보지 않은 길에 어떤 것을 만나고 무엇이 보일지는 모릅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자연스레 하고 살면 그뿐이고요. 거기에 저는 나중에라도 제 자신을 혹독하게 평가하지 않으려 합니다."

다만 한 가지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일은 이 책의 마지막 장 「느슨하게 살기」인 것 같다. 요가, 숲, 차를 가까이 하는 생활로 만족하고 있지만 '느슨하게 살기'는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요가 2년을 하다 보니 체력이 좋아져서인지 '할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한다'는 버릇을 아직 완전히 깨부수지는 못한 듯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료하게 시간만 보내고 있으면 흘러가는 삶이 아깝다고 하니 '느슨하게 살기'가 가장 지키기 어려운 일이었던 듯하다. 번아웃과 인생 권태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온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잠깐 쉴 때 회복된 줄 알고 다시 일하다 보니 쉽게 고쳐지지 않은 습관 중의 하나인 듯하다. 고착화됐다고 할까. 그러나 요가 숲 차로 이미 훌륭한 효과를 얻었고 충분한 성과로까지 이어졌다고 말할 수 있지만 10년 후 생각하면 「느슨하게 살기」가 가장 어려웠다고 말하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저자의 말대로 이루어진다면. "지금 내 감정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불필요한 긴장을 내려놓는다. 느슨한 마음이 나를 구한다."(p.165)

 


 

오랫동안 여러 라이프스타일을 실험해보았다. 어떻게 살면 좋을까를 고민하며 되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기보다 근사한 삶을 살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던 나는 정작 먹고살기 바쁘면 삶의 기본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함을 알게 되었지만. 내게 기분 좋은 생활 방식이란 상황에 따라 달라졌다. 지금 나에게는 좋은 컨디션을 만드는 방법이 삶에서 가장 앞서 있다.(p.31)

 

가끔 패잔병 같은 청춘의 시기를 떠올린다. 다시 오지 않을 그때의 고민과 걱정은 지났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의 모든 헛발질을 포용하겠노라고. 늘 실패만 하지도 않았고, 손에 꼽는 잔잔한 성공은 칭찬받을 만하다고. 앞서 나가는 사람이란 없는지도 모른다. 다들 자기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음도 잘 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경쟁자는 때때로 나와 가장 닮은 동료이기도 하다.(p.169~170)

 

저자 : 신미경

 

수필가. 주로 더 나은 일상을 위한 실천과 철학이 담긴 글을 쓴다. 맥시멀리스트에서 미니멀리스트로 극단적인 두 가지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한 후 산다는 건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 마흔, 생활·건강·일과 같은 삶의 주요 영역에서 균형 감각을 유지하며 취미에 가까운 지적 생활로 더 나 다운 내가 되는 오늘을 보내고 있다. 저서로는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 , 《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 , 《나를 바꾼 기록 생활》 등이 있다.

블로그: blog.naver.com/mikyangel

인스타그램: @shin_mikyong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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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 : 야 1
묘니 지음, 이기용 옮김 / 메타노블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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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이 순환하는 호천의 세계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쓴 한 가문이 몰살당한다. 소년 녕걸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복수를 꿈꾸며 기회를 엿본다. 과연 녕걸의 복수는 성공할까? 신비의 능력은 무엇일까? 궁금증이 계속되는 한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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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 : 야 1
묘니 지음, 이기용 옮김 / 메타노블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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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장야』는 넷플릭스·왓챠·티빙의 인기 드라마 〈장야〉의 원작 소설이다. 2015 제1회 중국 인터넷 문학 비엔날레상 금상을 수상했고, 중국 현지 드라마 방영 6일 만에 5억 뷰를 달성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제호 '장야'는 영원한 밤을 의미한다. 이 소설을 읽기 위해 새워야 할 밤은 몇 밤이나 될까. 분위기도 매우 어둡고,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시대적 배경은 당(唐)나라 때다. 당나라 때 실제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인물이 등장한다면 역사 소설에 해당될 터, 무협지의 특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장르소설이자 SF 소설로 읽힌다. 방영은 '100부작'이라 하니 우선 숫자에 압도당한다. 100부작이라면 몇 권의 책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쉽게 가늠이 안 되기 때문이다. 저자 묘니는 중국의 대표적 장르소설 작가로 꼽히고 있다. 그는 전작 『경여년 : 오래된 신세계』를 6권으로 발간했다. 소설의 스케일뿐만 아니라 책 권수에서도 대하소설처럼 독자를 압도한다. 마음 먹고 쓴다면 『삼국지』 전편도 하룻밤 새에 떠낼 작가로 보인다.

이 소설은 빛과 어둠이 순환하는 호천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이곳에서는 천 년마다 명왕(冥王)에 의해 온 세상에 어둠이 깔리고 혹독한 추위가 닥치며 만물이 생명을 잃는, 영원한 밤(永夜)이 찾아온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한 가문이 몰살당하는 '선위장군부 사건'이 발생한다. 이때 이곳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아이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녕결이다. 주인공이다. 녕결은 평생에 걸쳐 복수하기로 다짐하며 도성을 벗어난다. 그는 길가의 시체 더미에서 울고 있던 여자아이를 구해준다. 녕결은 그녀에게 상상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그녀를 시녀로 삼아 함께 살아간다.

 


 

상상과 함께 힘겹게 살아남으며 위성의 군졸이 된 녕결은 수많은 마적을 죽이는 매우 뛰어난 전투 실력을 발휘하며 주목을 받는다. 선위장군부 사건으로부터 십여 년 뒤, 우연한 기회로 귀인을 도성으로 안내하게 된 녕결은 도성에 도착하면 서원에 들어가 수행하며 힘을 기르기로 결심한다. 도성으로 향하는 길에서 귀인을 노리는 자객의 습격을 받은 녕결 일행, 그런데 이들을 습격한 동현 경지의 대검사는 녕결이 평생 복수를 다짐해온 하후 장군의 부하였다. 자객이 노린 귀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과연 녕결은 무사히 도성에 도착할 수 있을까? 마침내 복수의 칼날이 그 한기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위성의 3백여 명 부하 중 적을 가장 많이 죽인 사람이 꼭 녕결 그놈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장담컨대, 어떤 참혹한 전투에서도 살아남을 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 소년입니다.”(1권, p.33)

영원한 밤의 세계여서 고요한 분위기지만 어둠 속에서는 치열한 암투가 벌어진다. 이 소설에는 무협지가 그렇듯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챙겨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지만 앞으로 계속 읽어나갈 생각이면 인물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 결국 인물들이 소설을 끌어갈 테니 말이다. 독자는 무협지 열혈 팬은 아니지만 이야기로나 TV를 통해 자주 접하는 편이다. 무협지의 재미를 옛날에는 책을 통해 읽어야, 그것도 밤을 새우며 읽어야 제 맛을 알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이 많았는데 이젠 영상으로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볼 수 있도록 돼 있으니 심심풀이로 보기에는 더한 것이 없다. 역시 무협소설의 재미는 '복수'에 있다.

 


 

저자의 전작 『경여년』을 몇 권 읽었다. 비록 전 권(6권)을 다 꼼꼼이 읽지는 못했지만, 시작부터 강렬했다.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가.

어느 날 뜻하지 않게 미지의 세계에 초대받은 손님.

알 수 없는 이유로 해하려 하고 또 알 수 없는 이유로 도우려는 자들로부터, 그는 자라난다.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품고 있는 현재라는 시간속에서 신비의 존재들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가고,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시간 속, 숙명같은 소용돌이에 휘말려 진정한 나의 동지와 나의 적을 묻는다.

선과 악을 넘어 도달해야 하는 당신의 신묘.

당신은 그곳으로 안내할 상자의 열쇠를 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신비롭기도 하고,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기도 한 주인공의 활약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이 작품 『장야』도 도입 부분이 만만찮다.

"아주 오래 전, 수없이 많은 불가지지(不可知地, 알 수 없는 곳)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또한 수없이 많은 불가지인(不可知人, 알 수 없는 사람)이 존재했다.

황혼의 황야.

먼 곳에 걸려 있는 화염에 휩싸인 구(球) 하나. 붉은 빛이 불처럼 서서히, 하지만 분명하게 번져 나간다. 들판에 눈이 녹으며 자라난 이끼기 화상의 흉터에 새 살이 돋아나듯 번져간다.

고요(1권, p.8)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형편없음을 발견하고 꿈을 이루지 못할 때 고통스러워하거나 열등감과 자괴감에 빠진다. 고통이나 성공에 대한 환상에 빠져 스스로를 마음의 감옥에 가두고 끊임없이 발버둥 치며 과거로 돌아가길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녕결은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1권, p.153)

죽을 때까지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의지와 결심만 확고하다면, 새로운 길을 택하는 사람이 더 존경받을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이 좋은 녀석에게는 하나의 길을 가게 하는 것보다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게 하는 데에 더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1권, p.153)

 

이 책이 장르소설이란 것은 분명 지난 시대 있었던 나라이고, 눈에 익은 모습들의 사회인데 막상 읽어보면 시간이 혼재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타임슬립'이나 '시간 여행'의 모습이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일이다. SF 판타지 소설은 독자로서는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편인데 이 책에서도 갑자기 등장한 어색한 단어들로 혼란스럽다. 시간을 뛰어넘는 신묘한 능력의 인물이란 점을 간과한 탓이리라. 당나라 때가 배경인데도 한밤중의 녕걸의 헛소리에는 이상한 단어들이 등장한다. 열이 심하게 나면 창백한 두 뺨에 건강하지 못한 홍조가 가득한 채 더 이상한 단어들이 더 많아진다.

"넋을 잃고 천장과 상상을 번갈아 보는 모습이 눈동자 초점도 제대로 맞추지 모하는 듯했다. 그리고 마르고 튼 입술을 벌려 쉰 목소리로 이상한 말을 지껄였다. 상상은 녕걸이 하는 말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자전거 뒷자석, 등록금, 장작칼, 초콜릿, 피, 민산, 피, 위성, 피, 초원, 피, 장군 저택 안에 온통 빌어먹을 피······ 무엇 때문에?

무엇 때문에? 도대체······ 무엇 때문에!"(2권, p.185)

 


 

이래서 무협지의 고수인 지인으로부터 들은 말이 생각난다. "무협지는 인물에 대한 탐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수많은 인물 속에 독자는 빠져든 채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따라만 가다가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말, 생각 등을 암시하는 장치들을 놓치기 십상이다." 이 조언에 따라 주인공 녕걸의 정체를 다시 한 번 살핀다. 어린 소년이다. 가족의 몰살을 경험한 복수심 가득하지만 소년에 불과하다. 그럼 어떻게 복수를... 혹시 입산수도 후 장안에 내려와서 고수들을 차례로 꺾는다?

궁금증하고 소설을 제대로 끌고 갈지 걱정도 된다. 혹시 입산수도해 내공을 쌓은 뒤 복수? 그러나 이런 일은 현대의 무협지에선 통하지 않을 터, 쓸데없는 걱정에 오히려 소설의 줄거리를 놓칠까 후다닥 정신을 수습한다.

소설의 주인공이니만큼 뭔가 비장의 무기를 꺼내서 저자가 주인공에게 쥐어주지 않을까 기대되기도 한다. 저자가 마련한 비장의 무기는 뭘까? 그러나 저자 묘니는 이러한 독자들의 상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계에 부딪치는 모습을 여과 없이 내보낸다. 이쯤 되면 저자에게 제발! 하면서 부탁하기에 이른다. 속도가 점점 빨라질 수밖에 없다. 녕걸의 행동과 그의 마음을 표현하는 저자의 눈치를 살피며 책장을 넘긴다. 저자는 요령 있게 한계가 나올 때마다 주인공의 무력함을 가까스로 넘어가는 안간힘만 보여주고 장면을 바꿔버린다. 이젠 정말 귀인을 만나는 수밖에... 그래도 독자들이 주인공을 믿을 만하다고 생각할 빌미를 아예 없애버리지는 않는다. 주인공 녕걸은 처음부터 공주를 호위하는 역할을 맡아 잘 수행하여 공주의 마음에 들게 된다. 저자가 무언가 복선을 깔지 않았나 예의주시한다. 어리지만 주인공 녕걸의 성격이 아주 까칠해서 어지간해서 고개를 숙이려 하지 않는다는 점도 녕걸의 비장의 무기가 무언가 있을 듯한 기대감이 커진다. 나이는 어리지만 복수를 위해 녕걸이 갖고 있는 무기는 과연...

 


 

“희망이 허망일 수도 있지만 희망이 없는 것보다는 나아. 그래서 노력해야 해.”

“도련님, 만약 호천께서 도련님을 끝내 수행의 길에 오르지 못하게 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호천께서 그렇게 나쁘다면…… 난 하늘을 거스를 거야.”(p.185) 하늘을 거스를 수 있다는 호기의 정체는?

 

저자 : 묘니(猫?)

 

1977년생. 중국 1위 장르소설 작가. 중국의 대표 장편소설 작가 김용 이 후 가장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가 집필한 작품들은 저자만의 독특한 세계관속에 갖가지 사건들을 알차게 구성하였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만들어 내는 복잡한 갈등속에서 한줄기 목표로 끊임없이 달려가는 맛이 그의 소설속에 잘 녹아 있다. 대표 작품으로는 『주작기』, 『경여년』, 『장야』, 『택천기』, 『간객』. 그의 작품 대부분은 드라마로 제작되어 중국에서 80억뷰가 넘는 조회수를 달성하며 큰 화제가 되었다. 최근 자신의 마지막 장편 소설 『대도조천』을 마감했다.

2007년 『주작기』로 제4회 시나 오리지널 창작대회, 무협판타지상 1등상, 2013년 『간객』으로 제1회 서호 장르문학상 은상, 2015년 『장야』로 제1회 인터넷문학상 금상, 2015년 텐센트 서원문학상, 올해의 작가상, 2017년 『간객』으로 인터넷 문학 20년, 20대 작품 1위, 2020년 『택천기』로 제1회 천마문학상을 받았다.

 

역자 : 이기용

 

경복고, 서울법대를 나왔다. 중국에 관심이 많아 중국의 부상에 한국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중이다. '문화'를 화두로 떠돌다 '묘니'와 친구가 되었다. 영화와 출판에 관심있어 『경여년』 외에 『장야』 등 묘니 작품을 우선 번역할 생각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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