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을 두드리는 그림 - 수도원에서 띄우는 빛과 영성의 그림 이야기
장요세파 지음 / 파람북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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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요세파 수녀의 전작 『그림이 기도가 될 때』를 읽은 적 있다. 『그림이~ 』는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독자가 그림을 잘 알거나 장요세파 수녀의 뛰어난 감상평 때문이 아니다. 그림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가 매우 평온해서다. 그림을 대하는 마음 자체가 감정이 실려 있다면 제대로 감상을 하거나 감상의 느낌을 글로 옮기기에도 어려울 것이다. 독자는 그림을 좋아할 뿐, 그림을 그린 적도 없고, 따로 배운 적도 없다. 그래도 그림을 보고 있을 때 올라오는 감정이 부정적인 것보다 긍정적이고 평온하게 해주어서 자주 그림을 들여다보게 된다. 저자 장요세파 수녀에게 그림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라고 한다. 진실된 마음으로 그림을 바라보니 세상이 보인다는 말은 참이다. 독자가 그림에 대해 설명하는 책을 좋아하는 이유다.

모든 뛰어난 작품에는 한 시대의 모습뿐만 아니라, 시대를 관통해도 변함없는 우리 삶의 진실이 들어 있다고 한다. 화가도, 비평가도, 또 그림을 잘 아는 많은 사람이 같은 이야기를 한다. 인류의 문화적 정보가 한 장으로 압축된 것이 곧 그림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이 책 『나의 창을 두드리는 그림』에서 그림의 의미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먼저 그림이라는 압축파일을 제대로 풀어내 봐야 한다고 말한. 미술관의 그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하지만, 똑같은 그림이라도 안내자가 곁에 있을 때 감상이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은 그래서일 테다. 『그림이 기도가 될 때』, 『모자라고도 넘치는 고요』 등, 최근 몇 년 사이에만 벌써 여러 권의 그림 묵상 책을 펴낸 요세파 수녀는 이 책 『나의 창을 두드리는 그림』에서도 회색빛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의 마음의 창을 지치지 않고 두드리는 중이다.

 


 

'창을 두드린다'는 저자의 설명에도 공감한다. 저자는 「나의 창을 두드리는 그림」이라는 〈머리말〉을 통해 "창을 두드리는 소리는 무언가 비밀스럽고 두 사람만의 오고 감이 있을 것 같고, 따뜻함과 마음 깊은 곳에서 어떤 움직임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창을 두드린다는 말을 들을 때 다가오는 첫 장면은 연인들 사이의 그 애틋함, 로미오와 줄리엣의 그 절박함, 가족들의 반대에도 결코 꺾이지 않는 사랑의 간절함 앞에 마주서게 해준다고 설명한다. 저자 자신이 그림을 볼 때, 반대로 그림이 저자의 마음의 창을 두드린다는 연결되는 순간이다. 만일 벗이 일부러 문을 통하지 않고 창을 두드린다면 무슨 재밌는 일이 있을지 살짝 가슴이 두근거릴 것이다. 벗과 걸어온 그 여정과 이제 막 일어날 조금은 흥미진진한 일 앞에서 삶의 일상성이 살짝 한 단계 올라가는 긴장의 에스컬레이터가 펼쳐지는 순간임을 고백한다. 벗이나 연인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만, 혹시 귀여운 옆집 아이가 놀러 온다면, 그리고 나무통을 밟고 올라서 방을 두드린다면 또 다른 느낌일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한다.

어쨌든 창을 두드린다는 것은 그렇게 저자 장요세파 수녀에게는 서로에게 특별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임을 설명하고 있다. 수도자인 수녀로서는 하느님 혹은 예수님이 늘 창을 두드리는 분이기도 하겠다. 하느님이나 예수님이 두드리는 일은 수녀로서 당연하겠지만, 또 하나의 창을 두드리는 행위를 하는 이는 누굴까? 저자는 단연 '그림'을 꼽고 있다. 지치거나 나태해지거나 삶에서 열정이 식어버릴 위험에 처할 때 그림은 늘 저자의 창을 두드린다고 털어놓는다. 하느님이나 예수님에게 기도 드리지 않고 마음의 평온을 얻으려 할 때는 그림을 본다는 말일 것이다. 이렇게 뜨거움이 부글거리거나 냉기가 싸아 하니 드라이아이스 연기를 피울 때에도 그림은 저자의 마음에 평화의 강물이 초원 위 풀잎 사이를 흐르듯, 숲속 안개처럼 고요함이 찾아오듯 평온함을 되찾을 수 있다는 말로 이해된다.

 

 

전작 『그림이 기도가 될 때』에서 저자는 그림과 자신의 마음에 대해 그림과 기도를 동일시했다. '동일시'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기에 '공감'으로 바꾸어야 할 듯하다. “그림 앞에 서면 눈이 환해집니다. 침침했던 눈에서 무엇인가 걷히면서 보이지 않던 것이 보입니다. 그림은 제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고, 제 몸이 무거워 들어가지 못했던 신비의 세계를 열어줍니다. 생명, 자유, 용서, 사랑, 초월적인 것,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 종교적인 것들을 표현하는 그림들은 가만히 있는 저를 잡아당겨 세웁니다. 우선 화가의 삶이 그 안에 녹아 있고, 더 들어가면 화가 자신마저 넘어 저 먼 어떤 것, 인간의 눈에 희미한 어떤 것 혹은 실재가 우리 앞에 턱 놓이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어설픈 종교체험보다 훨씬 강렬하게 인간을 초월적 실재 앞에 놓아줍니다. 더욱이 형식적인 예배, 틀에 박힌 기복적 기도로는 가까이 가보지도 못할 세계를 열어줍니다."

저자의 그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이 책을 통해 한층 엄그레이드 됨을 느낄 수 있다. 우선 저자는 화가의 작품에 담긴 내면 세계를 그려내고자 한다. 한 작품은 실로 화가에게 하나의 세계와 같다. 작품이라는 세계 안에서 화가가 그려내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며, 화가의 어떠한 고뇌가 그러한 세계를 창조해냈는지를 저자 요세파 수녀는 추적해간다. 독자는 요세파 수녀의 글을 따라가며 좀 더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그림에 담긴 작가의 내면을 이해하고, 마침내 작가가 꿈꾸던 하나의 세계와 조우하게 된다.

수도자인 저자에게 그림 읽기는 기도행위와 일치한다고 독자가 이미 간파했다. 세상의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숨결을 찾아가고자 하는 노력은 성과 속, 소박함과 화려함 등 인간이 그어 놓은 모든 경계를 넘어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만물이 조화롭게 아우러진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장요세파 수녀의 그림 읽기는 구도자(求道者)의 길이기도 하다. 이 책이 환경파괴와 인간성 파괴를 동반하는, 위기의 문명에 대한 비판을 놓치지 않는 까닭도 된다. 요세파 수녀가 그림 읽기를 통해 궁극적으로 건네고자 하는 메시지는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문화적 지식의 축적 이상으로 삶을 바라보는 신선하고도 예민한 지혜와 통찰이 담긴 책이다. 저자의 그림 읽기는 우리 스스로의 내면을 더욱더 깊게 들여다보게 해준다. 그에게 그림은 더 많은 것을 품고 마음을 더 깊게 두드려주는 매개 역할을 해준다. 그림이라는 수단은 눈을 통해 마음의 창을 두드려준다. 요세파 수녀는 그림 이야기를 통해 평면적으로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를 더욱더 깊은 내면의 세계로 초대한다. 또한 우리가 미처 못 보았던 것들을 들여다보게 하고, 우리가 넋 놓고 당연하게 바라보았던 사물과 풍경을 달리 보게 한다. 어찌 저자의 글을 안 읽을 수 있을 것이며, 어찌 공감과 감동이 빠질 수 있겠는가?

독자로서는 그림을 통해 어떻게 이처럼 풍성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지 저자의 능력에 놀랍기만 하다. 거기에는 요세파 수녀의 글이 관통하는 하나의 중요한 맥이 있다고 이해된다. 그림을 지식의 관점이 아닌 지혜의 관점에서 풀어낸다는 점이다. 그림이 저자에게 말을 걸어오고, 그 그림과 저자의 대화를 엿듣다가 깊게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하찮게 여기던 것들과 자신을 온전히 마주하게 되며,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존재의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해준다. 존재 이유를 확인하는 것만큼 위로와 치유를 안겨주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주는 현대문명의 비판으로까지 나아간다, 카스피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보기에 따라 호연지기를 연상할 수도 있겠으나, 저자는 모든 것의 중심에 선 인간의 모습을 통해 자연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오만한 의지를 엿본다. 저자는 개인 내면의 성찰과 문명 비판은 궁극적으로 하나로 이어진다고 얘기하며,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서야 할 인간상을 그려내길 갈망한다.

저자는 그림이 화가 자신의 마음을 두드리는 손가락과도 같다고 한다, 그림이라는 창 안에서 화가 자신의 고통과 기쁨, 삶의 질곡과 환희, 승리와 패배의 모든 역동성은 어우러지고 상징으로 버무려져 관찰자에게 참으로 다른 세상을 열어준다. 저자는 자신의 창을 두드리는 그 손가락들을 함께 나눌 기쁨과 설렘, 긴장이 삶을 새로운 차원으로 인도한다고 고백한다. 그림뿐만 아니라 화가의 생애나 삶 또한 마음의 창을 두드리는 손가락들이다. 수많은 화가의 삶이 평탄하지 못했을 터이다. 그 삶의 깊은 계곡에서 그들이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건져 올리며, 요세파 수녀는 그들이 품었던 그 깊은 울림을 번뜩이는 통찰과 함께 전해준다. 그림으로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었던 아름다움, 두려움, 평화, 혼돈마저 우리 마음의 창을 두드린다.

누구보다 밑바닥 인생으로 보였던 탄광촌 광부들에게 애정을 가졌던, 열정의 사나이 고흐는 광부들과 함께하다가 깊은 좌절을 맛본다. 하지만 그 좌절이 그를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이끈다. 살아생전 그림 한 점 제대로 팔아보지 못한 채 동생 테오에게 의지하며 생계를 이었던 이 가난한 화가는 시대를 초월해 감동을 주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방탕한 삶을 이어가다가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른 카라바조는 인간적인 약점으로 점철된 인물이다.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그의 약함이 하느님의 도구로서 회심의 명작을 탄생시켰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화가와 그림이 혼연일체된 경지를 그려냄으로써, 그림 하나 안에서 화가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는 것이다. 「한 사람 여기, '자기 잊음'과 '자기 비움' 사이」란 제목의 글에서 작가 에른스트 바를라흐(1870~1930)의 마음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그득해짐을 느낀다고 말한다. 금방이라도 몸을 일렁거리며 낮은 노랫가락이 흘러 나올 것 같다고 한다. 실제 이 자세를 취해보면 마음이 한껏 가라앉으면서 눈이 감긴다고도 한다. 이 조각상의 모습은 어떤 해석이나 분석에 앞서 마치 허락받을 필요도 없다는 양 그냥 사람 안으로 슥 들어와버린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면 삶 안의 다른 것은 뒤로 사라지고 그곳에 있는 자신마저도 잊어버리고 함께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고 덧붙인다. 자신마저 잊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자신을 잊어도 될까? 잊을 수나 있는 것일까? 여러 개의 질문을 독자들과 스스로에게게 던진다. 그리고 "한마디로 표혅하자면 자신을 잊어야 참 자신이 될 수 있다"고 단언한다. 늘 자신을 의식하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는 하나의 표지라고 말한다. 저자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아기를 바라볼 때, 악기나 성악을 하는 사람들이 절정에 달할 때를 생각해 볼 것을 독자들에게 주문한다. 이 조각처럼 자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도, 가장 자신다운 모습으로 자신이 아닌 상대에 집중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아니 오히려 자신을 잊었기에 생겨난 집중은 그 자체로 사람의 가장 깊은 내면을 열어준다고 나지막하게 전해준다.

저자에 따르면 자기 잊음과 자기 비움은 결코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자신을 비우고 타인에게 내어놓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자신을 잊을 수 있겠는가? 채우고 또 채워도 모자라 더 긁어모으기를 온 인생 바쳐 찾는 사람이 어찌 자신을 잊을 수 있겠는가? 비열한 방법으로 타인을 누르고라도 자신이 1등을 해야 하는 사람의 자아는 얼마나 굳어 있겠느냐며 저자는 반문한다.

 


 

봉쇄수도원의 수도자인 저자에게 ‘그림 읽기’는 또한 지극히 간절한 신앙행위이자 구도의 과정이다. 세속의 사람이 일상의 삶에서 하느님을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성화는 글을 읽지 못하던 신자들에게 ‘성스러움’을 전하기 위해 발전되어, 그리스도교가 번성하던 시기에 수많은 작품이 탄생했다. 성화는 직접적으로 성경 속 이야기를 전하지만, 요세파 수녀는 굳이 성화가 아니더라도 모든 그림 안에서 하느님의 임재를 확인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평소에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우리 머리카락 수까지 다 헤아릴 만큼 늘 함께하는 하느님을 믿는다.

고된 노동 후에 국밥을 나누는 소박한 이웃의 모습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찾고, 밑바닥 인생의 거친 삶에서도 하느님의 모습을 찾는다. 요세파 수녀가 그리는 하느님의 사랑은 너무도 원대해 모든 것을 온전히 꼭 안아준다. 기도이자 묵상이기도 한 그림 읽기는 꼭 신자가 아니더라도 인간의 영적 가치를 돌아보게 해준다. 이 책은 저자 요세파 수녀와 그림의 깊은 대화다. 독자는 처음에 엿듣는 심정으로 귀 기울이는 청자에서, 이내 직접 그림과 대화하는 화자로 변해갈 것이다. 그림과 함께 온갖 하소연을 나누며 치유와 위로를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 : 장요세파 수녀

 

일본 홋카이도의 트라피스트 여자수도원에 입회. 현 창원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봉쇄수녀원에서 수도 중이다. 지은 책으로 시집 『바람 따라 눕고 바람 따라 일어서며』와 그림 에세이 『수녀님, 서툰 그림읽기』, 『수녀님, 화백의 안경을 빌려 쓰다』, 『그림이 기도가 될 때』, 『모자라고도 넘치는 고요』가 있다. 엄격한 수도회의 규율에 따라 새벽 3시 30분에 기상해 밤 8시 불이 꺼질 때까지 기도와 독서, 노동으로 수도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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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레아 타임스 - 외국인이 본 신기한 100년 전 우리나라
이돈수.배은영 지음, 토리아트 그림 / 제제의숲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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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년 전 조선과 대한 제국의 모습은 우리가 강국을 만들어야 후손들이 비참한 상황을 처하지 않을 것이란 경계심을 들게 해준다. 또 올바른 역사 인식 키우기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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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레아 타임스 - 외국인이 본 신기한 100년 전 우리나라
이돈수.배은영 지음, 토리아트 그림 / 제제의숲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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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간지 〈하퍼스 위클리〉 1898년 1월 15일자에 말을 타고 꼬레아를 유람한 사진 작가 W. H. 잭슨의 글이 실렸다. 제물포항으로 '꼬레아'에 들어간 잭슨은 항구의 이색적인 풍경을 감상하고 나서 조랑말을 타고 서울로 향했다. 초가지붕을 올린 흙집이 줄지어 선 꼬레아의 마을과 거리를 지나가면서 마주친 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보며 꼬레아 사람들의 삶을 엿보기도 했지요. 잭슨은 처음 본 꼬레아의 경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관은 다양하고 낭만적이었다. 산맥은 선이 굵어 아름답고 섬세한 푸른색과 보라색을 띤다. 만듦새도 조악하고 사용된 자재도 지저분하지만 인적이 드문 곳의 작은 집들조차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19세기 말 세계에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 알려졌던 작은 나라 꼬레아. 외국인들이 부르다 지금도 코리아로 정착된 우리나라의 이름이다. 꼬레아는 발음상 아무래도 불어나 스페인어 계통이 아니었을까? 신문과 잡지가 만들어져 머나먼 나라의 소식까지 다루었던 세계의 언론. 그 언론에서 다룬 조선 후기와 개화기, 일제 강점기의 우리나라를 세계 언론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그들에게 비친 우리나라 꼬레아의 모습은 어땠을까? 많지는 않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에 대한 기사를 남긴 언론이 있었다. 주로 우리에게 개항을 요구했던 미국, 프랑스, 영국 등이다. 이 책 『꼬레아 타임스』는 우리가 몰랐던 세계에서 회자된 우리나라의 모습과 역사를 보여 준다. 그 내용을 보면 우리 역사에 관심이 없던 아이뿐만 아니라 제대로 몰랐던 성인들도 이 책에서 얻을 것이 많다.

 


 

이 책은 이돈수, 배은영이 공동으로 썼다. 우리나라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면 무조건 구하고 봤던, 외국 자료에 실린 우리나라 자료 수집가인 저자의 고해상도 이미지들을 만날 수 있다. 사료로서 가치도 높다. 또 책장만 넘기며 사진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마냥 고리타분하기만 했던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에 아이들에게 색다른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책에서만 최초 공개되는 미공개 이미지는 물론, 희귀하거나 구하기 힘든 역사 자료도 적잖게 실려 있다. 독자가 꽤 오래 전에 『꼬레아, 꼬레아』란 체목의 책을 읽은 기억이 있다. 그 책도 개화기, 대한제국의 시기, 일제 강점기를 관통하는 100년의 역사를 중심으로 쓰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사진 자료나 신문 기사 등을 제대로 찾지 못해서인지 사진이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에서 보는 사진 상당 부분이 독자로서는 처음 보는 사진이다. 독자가 그 시기의 우리나라 실상에 관심이 컸던 것이 아니기에 한 번 읽고 잊어버렸는데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아쉽다. 훌륭한 생각 자료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특히 이 책은 사진뿐 아니라 사진과 기사를 바탕으로 한 그림도 많이 들어 있어 어린이들이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더욱의 책의 맨 뒤에는 잘라 쓸 수 있게 만든 이미지 자료 부록까지 들어 있어 활용도 높은 소장용 책이라는 게 출판사 측의 주장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온 사람이나, 우리가 처음 본 서양 사람이 서로 서먹서먹하거나 경계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더욱이 우리의 개화기는 대원군의 쇄국정치와 일제의 침략 의도가 노골화되는 시점이어서 외부인이나 외국인은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 그들에게는 더욱 냉담했을 가능성이 크다.

 


 

앞의 신문에 실린 글을 토대로 이 책에 실은 잭슨의 감상기는 적대적이지 않지만 매우 경계심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로 들어선 잭슨은 북새통을 이루는 사람들과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 서울을 에워싸고 있는 언덕과 구릉, 유서 깊은 궁궐 앞을 지키고 있는 몇몇 군인을 보았다. 그리고 곧 내부대신(조선 후기 내무행정을 맡아보던 관아의 으뜸벼슬) 남정철을 만나 꼬레아 왕실에 들어가 따뜻한 샴페인과 달콤한 케이크를 대접받았다"고 공동 저자는 기술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왕을 기다리는 동안 알현실과 경복궁의 흥미로운 사진 몇 장을 찍었고, 얼마 후 잭슨은 꼬레아의 왕과 세자를 만났다. 잭슨은 이렇게 신문에서 기술하고 있다.

"왕은 밝은색 천으로 덮인 탁자를 앞에 두고 앉아 있었는데, 탁자에 있는 두 개의 등유 램프가 방 전체를 비추고 있었다. 왕은 키가 큰 내시들 옆이라 오히려 왜소해 보였으나, 대화를 시작하자 왕의 얼굴은 흥미와 지적 호기심으로 밝아졌다." (중략) 왕은 통역관을 통해서 많은 질문을 했는데, 특히 내가 꼬레아에 좋은 인상을 받았는지를 궁금해 하는 듯했다. (중략) 함께 자리한 세자는 얼굴이 둥글고 졸려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세자에게 소개되었다. 그는 오가는 이야기에도 흥미가 없어 보였으며, 단답형의 대답 말고는 어떤 말도 하지 않거나 짧게 대답하였다. 특별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 우리는 최대한 공손하게 왕을 알현한 후 절을 세 번 한 뒤에 뒷걸음으로 나왔다."(p.4~5)

잭슨은 남은 여정 동안 도와줄 안내자를 알렌 박사한데 소개받았는데, 박내원이라는 꼬레아인이었다. 이튿날 아침, 잭슨은 왕이 하사한 호랑이 가죽, 은 상자 등 다양하느 선물을 가지고 박내원과 함께 다시 길을 떠났다.

 

 

책은 또 잭슨의 이후 일정을 쫓아가면서 몇 가지 사실을 더 기록한다. 서울과 원산(함경남도 남쪽)의 중간 지점에서는 쾌활한 성격의 어느 지방관의 대접을 받았다. 그 지방관은 잭슨에게 가진 것 중에서 최고의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대접해 주었고, 잭슨은 라이 위스키(미국과 캐나다에서 생산되는 위스키의 한 종류)로 답례했다. 여행의 후반부에 잭슨은 기사에서 꼬레아가 더욱 다양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는 소감을 밝혔다고 기록한다. 꼬레아 유람을 마친 잭슨의 마음은 원산의 잘 익은 논밭처럼 꼬레아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알알이 꽉 차 있었다고 기사를 소개하고 있다.

책은 영국 런던 주간지 〈더 그래픽〉 기사를 발굴, 소개한다. 기사의 제목이 「이채로운 조선인의 모습」이었던 듯하다. 이에 따르면 조선은 특이한 모자를 쓰는 나라다. 조선인 누구나 입는 길게 늘어뜨린 하얀 가운은 수의를 연상시켜 오싹함이 느껴진다. 책은 이 기사가 실린 날짜를 1909년 12월 4일자라고 밝힌다. 나라의 운명의 풍전등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그리고 1909년이면 우리나라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고 숨졌다. 12월의 시사라면 안중근 의사도 사형을 언도 받고 이미 숨졌을 때다. 〈더 그래픽〉은 사진 기자 톰 브라운이 작성한 기사를 사진과 실었던 듯하다. 지게를 메고 지팡이를 든 짐꾼, 아기를 업고 있는 낮은 신분의 여자, 수도인 한양의 시장에서 물건을 사려고 하는 외국인을 둘러싼 조선 사람들, 열네 살의 어린 신랑, 가마꾼, 인력거꾼, 장옷을 쓴 여성, 등에 짐으 가득 실은 수소와 앞에 앉은 남자 등 조선을 여행하며 만난 다체로운 조선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고 공동 저자는 기술하고 있다. 특히 톰 브라운의 기사 일부 내용을 직접 인용해 여기에 적었다.

"말총으로 촘촘히 엮어 만든 뻣뻣하고 투명한 모자(갓)는 결혼한 남성이 쓴다. 우산처럼 쓰는 모자(삿갓)는 효과적으로 몸을 보호해 준다. 조선 사람 누구나 입는 길게 늘어뜨린 하얀 가운(두루마기)은 수의를 연상시켜 오싹함이 느껴진다."(p.11)

 


 

이 책은 파트나 장(章)의 구별 없이 각 사안에 대해 한 건씩 기술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아마 여러 나라, 여러 신문에서 발굴, 발췌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빵과 잼을 처음 맛본 조선인」(p.14), 「조선의 민속놀이, 석전」(p.18), 「수도 나들이에 나선 상류 계층 여성」(p.22) 등으로 한 제목 당 한 건씩의 기사를 처리했다. 이를 테면 「빵과 잼을 처음 맛본 조선인」이라는 제목 밑에 '- 영국 런던 주간지 〈더 그래픽〉'이라고 적어 출처를 밝힌다. 다음 부제목처럼 '자, 이거 한 번 먹어 보세요.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푹신한 빵, 고소한 버터, 달콤한 잼, 처음 먹어 보는 신비로운 맛에 홀딱 반할 거예요'라고 적고 있다. 기사 본문은 다음 이렇게 쓰여 있다.

"1888년 12월 22일자 영국 런던 주간지 〈더 그래픽〉에는 난생처음 빵과 버터와 잼을 맛본 조선 사람들의 모습과 외국인이 건네는 담배를 집는 조선인의 모습이 실렸다.(어린이들이 읽을 것을 대비해 존칭을 사용하고 있으나 이 서평에서는 존칭 생략) 이 기사에 실린 그림은 영국인 여행자가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에요. 노란 머리에 파란 눈, 하얀 피부색의 서양인을 처음 본 사람들은 낯선 이들을 반기지 않았다. 게다가 서양인이 어린아이를 잡아먹는다는 소문을 듣고 이들을 멀리했다. 이때 한 영국인 여행자가 우리나라 사람에게 빵과 버터와 잼, 담배와 성냥 등을 나눠 주며 호감을 샀다. 서양 음식과 물건을 처음 본 사람들은 경계심을 풀고 영국인 여행자가 안전하게 여행을 마칠 수 있게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림 속 우리나라 사람들의 표정을 잘 보라. 처음 빵과 잼을 맛본 우리나라 사람들의 오묘한 표정과 몸짓이 그 맛을 궁금하게 한다. 그리고 곰방대를 입에 문 조선인과 궐련(얇은 종이로 말아 놓은 담배)을 피우는 영국인의 대조적인 자세와 외국인이 신은 구두를 신기하다는 듯 만지작거리는 어린아이의 몸짓이 웃음을 준다."(p.15)

 


 

이 책에는 특히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저격한 사건을 보도한 기사가 눈에 띈다. 이탈리아 주간지 〈라 트리부나 일루루스트라타〉 표지 기사로 소개되어 있다. 이 기사 역시 앞서 언급한 영국 주간지 〈더 그래픽〉 보도와 같은 방식으로 번역해 다시 두 저자가 쓴 형식으로 소개되고 있다. 번역한 후 동일하게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소개하는 형식을 취했단 말이다. 사진도 없이 그림으로 대신했다. 아마 저격 당시 모습을 사진으로 남은 것은 없을 것 같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우리나라 식민지화에 앞장섰던 이토 히로부미를 만주 하얼빈역에서 총으로 쏘아 죽이고 현장에서 체포된 사건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을사늑약 체결을 강요하고, 을사오적을 중심으로 한 친일 내각을 구성한 중심 인물이며, 조선 통감부 초대 통감 자리에 앉아 고종 황제를 퇴위시키는 등 우리나라를 일본의 식민지로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독립운동가였던 안중근은 중국과 우리나라를 오가며 의병 활동을 하고 구국 투쟁을 벌였다. 그러던 중 러시아 재무상 코코프체프와 만나기 위해 만주를 방문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하얼빈 총영사와 궁내대신 비서관 등 일본 주요 인물에게 중상을 입히고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됐다.(p.131)

 

글 : 이돈수

대학과 대학원에서 영문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뒤, 스페인에서 미술사를 공부했어요. 명지대학교 연구 교수로 활동했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고지도, 옛 사진, 신문과 책 등 우리나라 관련 자료를 40년 가까이 모으고 있는 수집가이기도 하지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역사 문화 관련 이미지 아카이브인 “이미지로 떠나는 역사 문화 기행” 사이트 ‘코리아니티닷컴’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국내 다양한 국·공립 박물관과 미술관 전시, TV 다큐멘터리 및 출판 등에 지금껏 수집해 온 이미지를 제공해 주고 있어요. 현재는 현대 미술을 기획 전시하는 갤러리 ‘북과바디’의 대표입니다.

 

글 : 배은영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했으며, 아동·청소년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국어 천재가 된 철수와 영희의 배틀』 시리즈 네 권과 『기시니 스릴러툰』 등을 썼고, 철수와 영희가 나오는 책을 계속 쓰고 있습니다.

 

그림 : 토리아트

상상하는 모든 것을 그리고 디자인하는 푸른 꿈이 있는 곳, 무한한 상상력을 갖고 색다른 기획과 그림, 디자인으로 수준 높은 창작물을 만들려는 회사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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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건넨 말들 - 영광과 몰락이 교차하는 유럽 도시 산책
권용진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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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도시가 축적한 풍경과 기억 사이를 걸으며 중동부 유럽 5개국을 돌며 그들이 걸어온 영광과 몰락의 시대를 경험한다. 유럽의 도시들이 저자에게 어떤 대답을 했을까. 책을 통해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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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건넨 말들 - 영광과 몰락이 교차하는 유럽 도시 산책
권용진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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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지형 변동의 결과로 새로운 길을 걷게 됐다. 러시아 중심의 구 소련 공산주의 체제로 변화했다. 2차 세계대전의 최대 피해국이었던 소련이 연합군 측으로 참전해 승전함으로써 독일 인근의 나라들이 소련의 체제 속으로 편입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은 대부분 유럽 문화권으로서 종교, 사회, 경제 및 정치 체제가 서부 유럽과 별 차이가 없는 같은 문화권이어서 얼마나 유지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더욱이 유럽의 변방으로 유럽으로부터 한 수 아래 국가이었다는 데 큰 이의가 없는 형편이었다. 모두 신흥 지식인 중심의 민주주의로 체제를 변화해 가는 마당에 러시아는 민주주의 체제도 어울릴 수 없는 자국 내 사정으로 이질적인 문화를 유지한 채 공산주의(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시작지가 된 것이다. 러시아가 공산주의 체제를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은 러시아 혁명 때까지 유지된 '농노 제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족과 귀족 중심의 지배 계급이 농노제를 유지한 채 세상의 흐름과 단절될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국민의 대부분이 농민과 농노로 이루어지고 극심한 경제난이 계속됐기에 말 그대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온상지가 된 탓이다.

이 책 『유럽이 건넨 말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비에트 연방으로 흡수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됐다. 소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스탈린의 강경한 주장으로 승전국 중에서도 최고의 전리품을 챙겼다고 봐야 한다. 동유럽과 중부유럽까지 모두 소련 체제로 흡수되는 것을 미·영·프 3국의 승전국이 최대 인명 피해를 본 소련에 양보한 성격이 크다. 나름대로 경계는 했지만 서부 유럽을 지켜야 하는 부담도 작용했으리라 생각된다. 이 결과로써 동부와 중부 대부분의 국가들은 공산주의 체제를 받아들였고, 우리나라와의 수교도 이루어질 수 없었다. 우리나라가 경제적 발전을 토대로 해외 여행 자유화가 실시된 이후에도 실제 동유럽으로 여행을 가는 것은 왠지 꺼림칙하고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이들 나라와 수교하고 여행 자유화 조치에 따른 동유럽 여행은 이제 겨우 30년밖에 되지 않았다.

 


 

이 책의 저자 권용진도 동유럽을 여행하며 직접 보고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유럽 유학 중이어서 더 강렬한 여행의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서부 유럽과 별로 다를 것 없는 건물과 도시 형태, 그리고 사람들이 모두 유럽인 그대로이기 때문에 동유럽(독일 포함) 5개국 도시 여행을 단행하기가 쉬웠던 것이다. 다만 유학 중이어서 짧은 기간만 허용되는 상태에서 많은 것을 보려는 저자의 목적이 이루어졌으리란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래도 동유럽 나라들에 대한 기존의 지식과 서부 유럽에서 이해되는 동유럽에 대한 인식으로 어느 정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저자는 자평했다.

저자가 이들 국가의 도시들을 방문하기에 앞서 적잖은 자료를 통해 공부도 했을 터, 알고 여행하는 데 따른 유리함은 저자에게 많은 것을 보게 해주었 것이다. 저자는 책의 〈서문〉인 「독자에게 건네는 글」에서 이들 5개국 여행에 대한 의미와 수확에 대해 소감을 밝힌다. "미디어에서 본 멋진 유럽을 기대하며 떠난 여행, 마주하는 건물, 거리, 사람, 음식마다 모두가 새롭고 흥미롭다. 하지만 설렘도 며칠뿐 같은 가톨릭 문화권에 통치해온 왕조가 겹치는 유럽 도시의 풍경은 어느새 다 고만고만해진다. 머릿속에 여러 궁금증이 떠오르지만, 권태로움에 눌려 발길만 머무르다 여행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온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하는데 같은 줄기의 역사를 지닌 각 유럽 도시들을 권태롭지 않게 여행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 책 『유럽이 건넨 말들』은 저자의 목적과 결과를 짐작할 수 있는 ‘그랜드 투어’를 제시한다. '그랜드 투어'란 유럽 대륙으로 떠나 견문을 넓혔던 17세기 영국의 젊은이들이 유행처럼 유럽의 문물을 배우고 느끼는 데 큰 영향을 미쳤던 여행 프로그램이었다. 이로써 이 책은 연륜이 부족해도 경험이 많지 않아도 얼마든지 지적인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행을 꼭 공부와 연관시키지 않아도 유럽은 역사가 스며든 예술 작품과 건축물과 온갖 문물이 도시를 이루고 있어 공부할수록 즐거워지고, 볼수록 공부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기왕 하는 여행이라면 밀도를 높여 이를 지적 자산으로 삼으면 어떨까. 게다가 통념상의 유럽과는 달리 이 책에 소개하는 폴란드-체코-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 중동부 유럽 5개국은 서로 경쟁하며 영광과 몰락을 거듭하고 경계하며 상처와 흔적을 남겼다. 각국의 주요 도시에 얽힌 역사와 시사에 대해 깊게 사유하며 설레는 걸음을 걸었던 저자의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도 지적 탐구심이 생길 것이다. 유럽 여행을 꿈꾸며 계획을 세우거나 유럽을 추억하며 사유를 확장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 『유럽이 건넨 말들』을 건넨다. 이 책을 갖는다는 것은 새로운 여행법도 함께 터득하리라는 선한 영향력도 영감으로 받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유럽 여행객처럼 독자도 90년대 초 유럽 여행을 갔다. 9개국을 정신 없이 다니는 이른바 여행사 투어 프로그램인 관광이었다. 주마간산식이었지만 맛을 보기에는 충분했다. 돌아올 때는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결심을 다지다 보니 목록에 이름들이 쌓여만 갔다. 그러나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시간이나 경제적 여유가 생겨 리스트에 있는 도시를 찾으려면 자유 여행을 해야 하는데 언어가 짧아 불안하기만 했다. 어쩔 수 없이 여행사 프로그램을 되풀이하면서 꼭 다시 가겠다는 인상 깊었던 도시들도 머릿속에서 점점 퇴색해 갔다. 저자가 이 책에서 쓴 첫 인상소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유럽 여행에서의 처음 며칠은 보이는 건물, 거리, 사람, 풍경, 예술 작품마다 눈을 뗄 수 없이 신기해서 감탄이 나온다. 허나 이름만 바꿔 펼쳐진 듯한 광장, 언어만 바꿔서 건네준 듯한 식당의 메뉴판, 다른 박물관에서 본 듯한 그림 등 새로움도 며칠뿐, 이내 관심을 잃고 만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여행 책자를 뒤적이고 공부를 해봤지만 막상 여행 중 만나는 유럽 도시의 풍경은 비슷비슷하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걸까?"

 


 

기왕 다시 가겠다는 결심을 하고 리스트를 작성해 놓은 만큼 이 책을 통해 저자의 여행법이라도 충실하게 배워 보고자 한다. 저자는 홈볼트 대학교 교환학생으로 베를린에 머물면서 서로 국경을 접하는 중동부 유럽 5개국(폴란드-체코-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 주요 도시가 품고 있는 역사와 시사 지식에 자신의 관심사인 정치?외교적 관점에서 바라본 이야기까지 이 책에 담았다. 여행 중에 떠오르는 무수한 물음표에 그냥 발걸음을 돌리지 않고, 꾸준한 지적 탐구심으로 도시가 품고 있는 맥락을 읽고 감정을 해석했다. 관심 갖고 머물지 않으면 잘 볼 수 없는 오래된 도시가 건네는 말들을 들어보면 여행할 때 많은 도움이 되리란 확신이 든다.

이 책은 5개국 주요 도시에 얽힌 역사와 시사를 이해하기 쉽게 유럽사의 주요 인물과 사건, 구조적 배경 등과 연관 지어 흥미롭게 풀어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폴란드 오시비엥침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선 ‘악의 평범성’을,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에선 민주주의에서 광장의 역할을, 무너진 베를린 장벽에선 자유를 향한 몸짓을, 뮌헨에선 반성으로 꽃피운 민주주의를, 빈에서는 황제와 제국주의 역사를, 부다페스트에서는 유럽의 미래를 떠올리며 사유를 확장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폴란드-체코-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의 주요 도시는 중세 시대부터 냉전 시기, 오늘에 이르기까지 종교, 민족, 전쟁, 이념에 피 흘리고 경쟁하여 살아남았다. 그로 인해 새겨진 영광과 몰락, 상처와 흔적은 도시 곳곳의 풍경이 되었고 전혀 다른 언어, 문화, 제도, 공간, 인물은 도시의 기억이 되었다. 인문 수업을 듣는 학생의 눈높이로 쓴 이 여행기는 오래된 유럽 도시의 새로운 발견이면서 한국 사회에 관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유럽 여행을 꿈꾸며 계획을 세우거나 유럽을 추억할 때 이 책은 꽤나 유익한 길잡이가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은 모두 5부로 이뤄져 있다. 각 부마다 나라와 대표되는 도시, 스토리가 풍부한 도시, 역사나 현대사에 변동이 심했던 도시 등 영광과 멸망, 침략과 저항 등을 담은 도시를 중심으로 각 장을 별도 구성해 마치 투어하듯이 움직인다. 유럽의 도시들은 겉 모습은 비슷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모두 특색 있는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1부 〈폴란드 - 동유럽의 오뚝이〉, 2부 〈체코 - 자유롭고 희망차게〉, 3부 〈독일 - 반성에서 공존으로〉, 4부 〈오스트리아 - 영광의 뒤안길에서〉, 5부 〈헝가리 - 굳세게 미래를 향하여〉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1부, 2부, 5부는 두 차례 세계대전과 냉전 시기, 굴곡진 역사를 가슴에 묻은 다시 일어서려는 폴란드, 체코, 헝가리의 이야기를 담았다. 3부에서는 눈부신 발전에도 죄악과 죄의식, 파괴와 폐허를 함께 안고 있는 독일이 공존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4부에서는 도시 전체에서 묻어난 옛 제국의 영광과 상처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오스트리아를 이야기한다.

폴란드는 역사와 문화 어느 쪽을 봐도 유럽의 강자다. 서부 유럽에 비해서도 별반 꿇리지 않는 나라다. 지금은 공산주의 체제에서 탈피, 옛 모습을 되찾고 있지만 아직은 2차 세계대전의 악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이 나라에는 마리 퀴리라는 천재 과학자와 음악에서는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쇼팽도 배출했다. 유명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을 만큼 역사도 깊고, 대체로 안정된 정치 제제로 잘 살아온 나라였다. 이 모든 과업이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나치 독일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면서 가장 먼저 침공한 나라가 됐다. 그만큼 약한 군사력이었고 경제력도 약했다. 독일 입장에서는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나라이니 '재3제국의 꿈'을 이루기 위한 첫걸음으로 적절한 먹잇감이었으리라. 저자는 이런 과정을 전부 알고 있는 차에 바르샤바로부터 여행을 시작했다. 특히 문화과학궁전을 봤을 때는 놀라움도 있었나보다. 이 문화과학궁전은 스탈린이 폴란드를 점령하고 소련 체제 선전을 위해 '소련 인민의 선물'이라고 지어줬다고 한다. 저자는 "일단 높이 쌓고 보자는 고딕 주의에 사회주의 체제 특유의 억지스러운 검소함이 더해져 기괴하다"고 표현했다. 이른바 '스탈린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단다. 높이가 237m에 이른다고 하니 현대식 건물 높이에 해당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도시들은 대부분 역사가 오래됐고, 풍경이 아름답다. 역사가 풍경이 되고, 풍경이 역사가 되는 도시들이. 여행 안내만 쓰더라도 한 도시 당 수십 권은 써야 할 듯하다. 저자가 1·2차 세계대전의 중심국, 피해국, 심지어 멸망한 가문 등을 중심으로 살펴본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독자도 상당 부분은 아는 도시들이다. 물론 가보질 못해 안다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또 역사적으로 유명한 도시들의 전쟁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기에도 얼마나 많은 분량의 책이 필요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개인적으로 가장 잘 몰랐던 헝가리에 대한 언급을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소개해 본다. 책에 따르면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하면 야경을 빼놓을 수 없다. 야경을 보러 가기 전에 저녁 식사로 글라쉬를 먹으러 갔다. 큼직하게 깍둑썰기한 채소와 소고기가 내는 담백함, 파프리카로 맛을 낸 약간의 얼큰함이 우리나라 갈비찜과 유사했다. 익숙한 방식으로 만든 음식이라 그런지 입에 무난히 잘 맞았다.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가이드북에 소개된 식당은 손님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었다. (하략)

부다페스트는 학교에서 세계사 시간에 배울 때 소련 체제하에서 민주화 운동(1956)을 한 최초의 도시로 기억되고 있다. 저자가 야경을 찾아간 후 느낌은 '비현실적으로 낭만적'이라고 썼다. 그 중심에 네오고딕 양식의 장대한 헝가리 국회의사당이 있었다. 건국 1,000주년을 맞아 민족정신을 선양하는 의미에서 1884년부터 20년 동안 자국 기술과 인력만으로 지은 국회의사당은 중앙의 돔을 중심으로 뾰족한 첨탑들이 기세 좋게 뻗어 있다. 국회의사당은 도나우강에서 수직으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거리에 딱 붙어 서 있다. 오후에 어부의 요새에서 국회의사당을 보았을 땐 외벽이 새하얗게 칠해져 있어 그 자체가 하나의 유람선으로 보였는데 건물 불이 대부분 꺼진 밤이 되자 도나우강변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가까이 가면 강물은 흐느적거리며 우릴 빨아들일 것처럼 느껴졌다. 빛이라곤 가로등 조명이 유일한 도나우강변에서 국회의사당은 홀로 빛났다. 조명이 빈틈없이 비추어 황금 궁전처럼 보였다.(p.339)

 


 

헝가리는 유럽 중남부와 북동부 길목에 터를 잡은 내륙국이라다. 국토는 남한보다 약간 작고 인구는 975만 명(2020년 기준), 화페 단위는 포린트이다. 주요 민족은 '마자르족'이다. 헝가리는 국토 주변이 평원이다.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도나우(다뉴브)강이 국토를 관통한다. 수도 부다페스트의 이력이 흥미롭다. 책에 따르면 부다페스트는 오래전부터 헝가리의 수도였다. 본래 '부다'와 '페스트'는 도나우강 좌우에서 따로 발전하다가 1873년 '부다페스트'로 합쳐졌다. 마자르족이 900년경 이 지역을 점령한 이래 이슈트반 1세가 1000년 가톨릭을 받아들이고 페스트를 수도로 삼아 헝가리 왕국을 창건했다.

이후 헝가리 왕국은 가톨릭 유럽의 동부 최전선에서 숱한 고난을 겪었다. 1200년대 중반 헝가리 왕국은 몽골에 점령당해 파괴되었다가 몽골이 쇠퇴하자 인근에서 가장 높은 지대인 부다를 수도로 삼고 부흥을 도모했다. 그러다 부다는 1541년 오스칸 제국에 점령당했고 페스트는 그때부터 오랫동안 서민 거주지로 버려져 있었다. 합스부르크가의 히호 아래 부다페스트는 헝가리 왕국의 중심지로 되살아났다. 1686년 오스트리아가 헝가리를 도와 오스만을 몰아내고 부다와 페스트를 함께 점령하면서 왕위 계승권을 가져갔다. 부다 지구는 1723년부터 제국의 행정 기관을 유치하며 발전을 거듭했고 19세기에는 페스트 지구도 행정 구역 통합이 되면서 함께 발전했다. 1873년 부다와 페스트 두 구역을 잇는 세체니 다리가 놓이고 마침내 부다와 페스트가 '부다페스트'로 통합되었다.

 

저자 : 권용진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졸업. 안동에서 더 넓은 세상을 꿈꾸며 자랐다. 2019년 베를린 홈볼트 대학교 교환학생으로 생활하며 부지런히 유럽을 여행했다. 역사, 정치사상, 철학에 관심을 두고 사람 사는 모습과 세상을 관찰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굴하려 한다. 현재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공부하며 변호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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