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솔직하다
신세연 지음 / 우주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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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피는 솔직하다』는 소설 작품으로 "돈과 범죄는 서로의 그림자처럼 늘 가까이에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 한 편의 느와르 영화 같다. 돈이 최고의 가치를 갖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돈 때문에 일어나는 각종 범죄가 날이 갈수록 다양화하고 수법도 끊임없이 진화한다. 범죄 관련 돈의 액수도 놀랄 만큼 단위가 커지고 있다. 아무리 현대 과학을 이용한 첨단 과학 수사를 해도 미제 사건이 남을 정도로 범죄도 치밀하다. 뿐만 아니라 돈을 위해서라면 생명까지 하찮게 다룬다. 뿐만 아니라 사회를 이끄는 계층도 돈의 권력은 정치 권력 못지 않은 힘을 가진 존재이다. 정치·사회의 부정부패도 모두 돈과 관계가 있다. 이렇게 사회에 미쳐 돌아가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 간혹은 권력기관마저 돈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도 있으니 범죄가 뿌리뽑힐 수 없다는 사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범죄에 사용되는 돈은 물론, 돈 때문에 벌어지는 범죄는 잔혹하다. 검다는 의미에서 느와르가 떠오르고 잔혹하다는 뜻으로 늘 검붉은 피가 연상된다. 암흑가란 단어의 표현도 어둡고 검은 거리란 한자어다. 프랑스어 느와르(Noir)란 말도 영어의 Black이다. 어둡고 긴장감 있는 서스펜스 영화를 느와르 영화로 지칭하는 이유다. 전형적인 느와르영화는 카르네(M. Carne) 감독, 장 가방 주연의 〈시작되는 하루(Le Jour se Leve)〉다. 할리우드에서는 2차 세계대전 후 널리 퍼져 갱스터 영화, 폭력물 등에 차용되었다고 한다. 할리우드 대표작은 존 휴스턴 감독의 〈말타의 매(Maltese Falcon)〉(1941)다. 느와르라는 말이 우리에게 널리 사용되게 된 계기는 1980년대 중반 오우삼 감독, 주윤발 주연의 영화들 〈영웅본색〉, 〈첩혈쌍웅〉등 홍콩느와르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부터다. 그 당시 우리나라 평론가들이 홍콩영화들의 어둡고 암울한 정서, 반영웅적 주인공, 범죄가 배경이 되는 점 때문에 홍콩 느와르라는 이름을 붙여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책의 주제가 느와르라는 의미보다는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전개가 느와르의 세계인 어두운 곳에서 돈을 위해 불법과 폭력, 급기야 살인까지 주저하지 않는 볌죄의 세계를 다루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일상이 매우 평범하고 견고할 것 같지만 마음 먹기에 따라 '특별한' 일상으로 바뀐다. 욕망,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대한 욕망은 일상을 '지옥'보다 처절한 세상으로 만든다. 욕망이 범죄를 낳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욕망을 자제하지 못하고 돈을 쫓는다는 것은 자신의 일상과 평범한 삶을 완전히, 헤어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는 '진리'를 이 소설 작품은 확인해준다. 이 작품에서 저자 신세연은 평범한 일상이 완전하게 뒤틀리는 것은, 아주 미세한 균열 하나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아주 보통의 회사원, 누군가의 남편, 그리고 한 아이의 아빠였던 '최선'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공부를 잘해 대기업에도 단숨에 합격하고 안정된 직장으로 결혼하고 딸도 낳아 키우는 지극히 보통의 사람이다. 단지 돈 욕심이 조금 과했는지 모른다.

친구의 유혹에 빠져 불법 토토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일궈놓은 모든 것을 잃는다. 예고되고 조작된 파국에 직면했지만, 여전히 도박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최선은 우연히 만난 남자 진수혁과 기이한 인연을 맺고 이전과 다른 세상을 조우한다. 불법 토토, 조직 폭력배, 대한민국의 재벌과 검찰·경찰까지 복잡하게 얽힌 관계의 틈에서 분주한 최선과 진수혁은 각각 감당할 수 없는 진실에 서서히 다가서고 있음을 느낀다.

거듭해 예측을 뒤엎고, 반전의 반전을 선사하는 돈과 피냄새로 점철된 두 남자의 느와르가 시작된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이 소설은 교차 편집된 영상처럼 평범한 회사원 '최선'의 일상과 어두운 범죄의 단상이 불규칙하게 포개진다. 그리고 그 면이 맞닿은 순간, 예측 불허의 스토리가 더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맞춰지는 퍼즐. 과연 진수혁은 최선의 삶을 치료할 구원자인가, 아니면 또 다른 파괴자인가. 지극히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다채로운 캐릭터의 향연은, 신세연 작가의 필력으로 짙은 생명력을 부여받았다.

 


 

표제어뿐만 아니라 16부 구성된 각 부의 제목도 심상찮다. 1부 「거짓된 빛은 쉽게 꺼진다」에서 16부 「피는 솔직하다」까지 소설의 사건은 거칠 것 없이 펼쳐진다. 마치 독서의 마감 시간이 정해져 있는 책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는 마치 시간을 늦추거나 생각할 틈을 주면 실패하기 십상인 범죄처럼 모양새를 갖춘다. 속도감 있게 읽어내기 위해서는 범죄 현장에서 사용되는 이른바 '전문 용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몰라도 사건 전체를 이해하는 데는 큰 문제는 없다.

"(서울) 도산대로에 있는 김청아 부티크는 도박장이라는 소문이 있다. 목 좋은 자리여서 비싼 월세임이 틀림없을 텐데 20년째 그 자리 그대로 영업 중이기 때문이다. 장사도 잘되지 않는 것 같다. 심지어 주인이 있는 모습을 본 적도 없다. 가끔 마네킹에 입혀진 옷이 바뀌는 것을 보면 영업은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다."(P.9)

첫 문장부터 강남의 간선도로 이름과 도박장이란 단어가 나온다. 돈과 관련된 사건이 벌어진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강남이란 지역은 대한민국 부의 상징이라고 할 만큼 부자들이 살고, 일하고 놀고, 먹는 지역의 대표적 명소(?)다. 그들 부자들에게 말이다. 이곳의 아파트는 평당 1억 원이 넘은 지 수십 년이 되었다. 상업지역의 번화가나 큰길가는 말할 것도 없이 수억 원씩이다. 돈 많은 부자들이 그곳에서 어떻게 돈을 불리는지, 어떻게 노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이 책은 수시로 독자들에게 부자들의 삶의 행태를 각인시켜 준다. 돈을 쉽게 벌고, 그만큼 쉽게 쓰기도 하는 사람들 중에 으뜸은 어쩌면 범죄자들일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이 소설 작품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범죄 조직과 범죄 행위가 돈에 몰입될수록 독자들의 호흡은 빨라진다. '이렇게 쉽게 돈을 벌 수도 있는 거구나'라는 신세계를 처음 접한다면 호흡은 점점 더 가쁘게 쉴 것이다.

 

 

토토란 스포츠 게임에 돈을 걸고 하는 일종의 도박이다. 경마에서 돈을 걸듯이 각종 프로 스포츠 게임에 승부 맞히기, 스코어 맞히기 등 여러 가지 게임이 있고, 게임의 종류도 여러 가지다. 10여년 전 프로 스포츠의 '승부 조작' 파동이 일어났다. 이는 토토 게임에 돈을 건 도박꾼들이 돈을 따기 위해 조직적으로 실제 경기의 승부를 선수들이나 감독 등과 짜고 조작한 사건이다. 당연히 경찰이 수사에 나서 해당 선수들과 조직 관련자들이 구속되고, 해당 스포츠에서 영구 제명 당한 사건이다. 이에 가담한 선수들은 일부러 경기에 나가 져준다는 식으로 가담해 아마 수수료로 얼마간의 돈을 챙긴 혐의로 구속 처벌 받았던 것으로 독자는 기억한다. 야구, 축구 등 몇몇 인기 스포츠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소설에는 '환치기'도 등장한다.

독자는 잘 모르지만 외환거래를 이르는 말로 이해하고 있다. 불법 외환거래를 환치가라고 한다는 것. 시사상식사전에 따르면 통화가 다른 두 나라에 각각 계좌를 만든 후에 한 국가의 계좌에 입금한 후 다른 국가에서 해당 국가의 환율에 따라 입금한 금액을 현지화폐로 인출하는 불법 외환거래 수법을 일컫는다. 국가 간 오가는 외환거래를, 환전업자가 국내에 마련한 계좌를 통해 마치 국내에서만 거래가 이뤄진 것처럼 위장하는 것을 말하는 불법 외환거래의 속칭이다. 다시 말해, 한국 내 거주자와 외국내 거주자 사이에 발생하는 현금을 포함하는 자본거래에 있어 적법한 외환취급허가를 받은 금융기관을 통해 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 간에 사적으로 거래하거나 유사금융기관을 통해 거래하는 것이다. 이러한 환치기는 세금탈루나 외국에서 사용할 유흥자금 또는 해외도박·마약밀수 등의 불법자금을 조달하는 데 이용된다.

 


 

저자가 강남 지역에서의 돈에 대한 그곳 사람들의 인식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처음 시작 부분이다. 앞서 언급한 문장 다음에 썼다. "김청아 부티크가 있는 건물과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건물 1층의 월세는 삼천이다. 평수가 두 배 정도이긴 하나 같은 라인에 있는 매장 월세가 삼천이다. 평수가 두 배 정도이긴 하나 같은 라인에 있는 매장 월세가 삼천이라는 말은 1층에 위치한 김청아 부티크의 웰세는 못 해도 천은 된다는 소리다. 정확하게 월세가 얼마인지 알 수는 없지만, 월 천 정도는 무난하게 넘을 것이란 건 강남에서 학교를 다니는 초등학생도 알 것이다." 보통의 독자들은 저자가 쓴 이 문장을 보면 너무 품위 없이 쓰인 것 아니냐는 비난을 할지 모른다. 그러나 저자의 의도는 돈에 대한 인식을 강남 사는 사람들이 어떤한지를 알리기엔 무리 없는 문장으로 독자는 본다. 거친 문장이 이어진다. "강남 바닥이라는 곳은 초등학생 때부터 돈에 대한 개념이 천 원, 만 원이 아닌 월 오백, 월 천 이런 식으로 이해를 하는 곳이다. 이처럼 돈에 의해 움직이고 돈 때문에 무엇이든 벌어지는 곳이 강남 바닥이다."고 쓰고 있다.

이 소설의 성격상 소설의 시작으로는 꽤 성공적인 문장들이라는 게 독자의 생각이다. 아직 전문 용어도 나오지 않았다. 시작이니만큼 이 세상 사람들이 돈에 대해 인식하는 부분을 설명하고 있는 문장들이다. 부동산 가격이 돈의 가치를 결정 짓는 곳이라는 느낌도 든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풍자적 표현도 실감나게 하는 지역이 강남지역이다. 건물 하나 갖고 있다면 월세 수입만으로도 1억~2억원은 보통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건물의 크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10층 미만의 상업용 건물은 대부분 월 임대료가 수천 만원씩 하는 곳이 신문이나 방송 뉴스에도 자주 나온다. 이들의 수입을 연봉으로 계산하면 수십억 원이라는 계산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어쩌다 이런 곳에 발을 들여놓는 보통 사람도 돈 욕심이 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이 소설은 돈에 대한 이런 의식이 범죄에 쉽게 빠져들고, 한 번 빠지게 되면 인생은 완전히 한없이 추락한 채 막을 내린다는 교훈을 이 풍자적 느와르 소설로부터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에 나오는 범죄와 관련된 각종 범죄 행위나 가담자들의 심리를 비교적 잘 묘사하고 사건의 전개를 빨리 함으로써 저자는 독자의 생각을 한곳에 모으기를 바라는 것 같다. 돈에 대한 욕심은 범죄와 일상의 경계에서 갈 곳을 몰라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명확히 갈 곳을 지정해주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인류 역사상 사람의 욕심은 늘 범죄를 낳았고, 범죄에 빠져드는 순간 일상적인 보통의 삶과는 작별해야 한다. 그들만이 사는 곳이지만, 그곳으로 들어오기를 바라는 사람은 늘 있기 마련이다. 사람의 욕심은 그렇게 인간의 삶을 비틀리고 왜곡시킨다. 자본주의가 더 깊어지면서 돈에 대한 인간의 욕심은 수그러들기는커녕 점점 더 크고 발전되는 양상을 띤다.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은 법을 피해 요리조리 잘 만들어내고 실제 정치계, 심지어 검찰·경찰까지도 일부 있다고 하니 자본주의의 끝은 어디인가? 가늠하기도 쉽지 않고, 이젠 가늠하고 싶지도 않다. 관심을 가지는 순간 유혹의 대상이 된다니까. 돈이란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인가, 창조주의 시험용인가? 소설의 마지막 파트인 16부 「피는 솔직하다」는 부제가 표제어가 된 이유를 책을 다 읽는 순간 알게 된다. 돈에 대해 욕심이 없는 사람과 돈에 대해 욕심이 많은 사람들은 이 소설을 한 번쯤 읽고 깊게 생각해보기를 먼저 읽은 독자로서 권유한다. 출판사 측의 책 소개글이 머릿속을 맴돈다. "읽을수록 축적된 몰입감과 긴장감은, 비로소 마지막 장에 도달해 폭발한다. 활자의 모양새를 차용했지만, 도서가 아닌 느와르 영화 한 편을 관람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내일 당장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은, 그런 소설." 영화화는 확정되었다고 한다.

 

저자 : 신세연

 

사회에 숨겨진 어두운 이야기를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가 허구인지 알 수 없도록 풀어내는 이야기꾼. 2018년 장편소설 『처절한 계획』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대표작인 장편소설 『피는 솔직하다』는 2023년 2월 새롭게 출간되었으며, 영화화가 확정되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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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표현하면 모든 슬픔이 사라질 거야 - 나도 몰랐던 내면의 상처까지 치유하는 언어의 심리학
가바사와 시온 지음, 이주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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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을 종족으로 분류할 때 '한민족'이란 말을 쓴다. 여기서 한민족은 중국의 한족과 다르다. 한자로도 우리 한민족 '韓'(나라이름 한)이라 쓴다. 중국은 '漢'(한수 한)을 쓴다. 옛날 중국의 두 번째 통일을 이룬 유방의 한나라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한민족의 한은 고대 삼국시대 이전의 삼한(三韓)에서 비롯됐다. 아직은 정식의 국가 기틀을 갖추지 못한 상태여서 흔히 '부족 국가'라고 불리우던 때다. 주로 한강 이남의 지역을 가리키기도 했다. 이렇게 유구한 역사의 한민족은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도 굴하지 않고, 때로는 무너지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것을 두고 '은근과 끈기'를 민족의 정서로 말하는 학자도 있었다.

그래서인가? 은근과 끈기의 민족에게는 참아내는 데서 오는 한(恨)의 정서가 들어섰을까? '한이 서려 있다'는 표현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우리 민족은 수많은 민족적 수모에도 결국에는 굴하지 않고 딛고 일어서는 저력을 보여 주었다. 이런 민족적 자긍심 속에는 '한이 서린다'는 표현처럼 할 말 못하고, 할 일 못해서 생기는 원한의 의미를 품고 있기도 하다. 말이라도 시원스럽게 하면 한이 서리지는 않을 텐데... 우리 민족을 핍박하는 놈들에게 폭력이라도 분풀이를 할 수 있다면 '한(恨)의 나라'라는 듣기 거북한 말은 안 들었을 텐데... 이렇게 답답한 마음을 풀어 헤쳐 공중으로 날려 보내는 한풀이는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좋은 일이다. 행동 역시 마찬가지다. 무자비한 폭력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정당성이 있고, 오히려 최소한의 저항이라는 차원의 폭력을 의미하고 우리 민족의 한을 풀어주는 행동 말이다. 일제강점기 직전 안중근 의사를 일본 제국은 '테러리스트'로 규정했다. 이를 테러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재판 과정에서도 이미 밝혀졌고 그들마저도 대부분 '의거'로 인정하기도 했다. 이는 세계에 대한 식민지 저항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행위인 것이다. 우리 민족의 기개를 세계에 떨치고 영향을 주는 의거이다.

 


 

이 책 『말로 표현하면 모든 슬픔이 사라질 거야』는 이런 한풀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저자 가바사와 시온이 일본의 정신과 의사로서 심리학에서 말하는 '언어화'의 마음 치유 효과를 이 책에서 말하고 있기에 독자의 생각을 서평 맨 앞에 써본 것이다. 저자는 답답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속 시원하게 털어놓은 후 마음이 후련해지거나 혹은 자신의 경험담을 솔직하게 기록하는 과정에서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이래서 힘든 거였구나’라고 느낀 적이 있는가?라고 독자들에게 질문하며 '언어화'의 힘을 이야기하고 있다. 당연히 살다 보면 답답한 마음을 누구에겐가 풀어낼 경우 '후련한 마음'을 느꼈을 것이다. 이상하게 막연했던 고통도 일단 말로 설명할 수 있게 되면 마음이 훨씬 편안해지고 왜 힘든지 그 이유도 알게 된다는 것이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언어화’의 놀라운 힘이라고 저자는 제시한다.

30년이 넘는 임상 경험의 정신과 의사, 가바사와 시온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고 한다. 그는 이 책 『말로 표현하면 모든 슬픔이 사라질 거야』에서 고통을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만 터득해도 상처의 90%가 치유된다고 말한다. 모든 심리 상담의 1차 목표가 바로 ‘언어화’라는 것이다. 만약 언어화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이미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과 글과 행동으로 표출하는 능력은 심리적 안정감뿐 아니라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 저자는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우선 문제 해결에 집중하지 말고 느끼는 바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일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비록 문제가 생겨도 그것을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심리적 내공이 있다면 이미 90%는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물론 여기에도 원칙이 있다. 예를 들어 험담이나 부정적인 경험을 표출할 때는 딱 한 번만 제대로 ‘가스 빼기’한 이후, 흘려보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부정적 경험을 반복 재생하면 뇌에 각인되어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하다. 또한 경험과 지식과 정보가 많을수록 내가 겪은 일을 객관화하고 구조화해서 바라보는 힘이 생기기 때문에 그것을 키우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게 되면 훨씬 덜 힘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첫 사례로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잘 못 자는 30대 후반 여성 N 씨에 대한 상담 경험을 말한다. 그녀는 병원에서 처방받은 수면제뿐 아니라 여러 약국에서 조금씩 조금씩 수면제를 사서 과다 복용했고 점점 약물 중독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10년 이상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중독 치료를 시도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한 정신과 의사에게 심리 상담을 받은 후 어느 날부터인가 ‘일기 쓰기’를 처방받는다. 처음에 그녀는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 줄 , 두 줄, 세 줄 쓰기 시작하더니 점점 오늘 있었던 일뿐 아니라 과거의 일들에 대해서도 한 페이지 이상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일기를 쓰는 과정에서 점점 약물 중독에서 벗어나더니 건강을 되찾았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가족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물에 의존했던 것인데, 그녀 자신도 일기를 쓰는 과정에서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저자는 누구나 한 번쯤은 N 씨와 비슷한 경험을 해봤을 것이라며 답답한 마음을 누군가에게 속 시원하게 털어놓은 후 마음이 후련해지거나 혹은 자신의 경험담을 솔직하게 기록하는 과정에서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이래서 힘든 거였구나’라고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상하게 막연했던 고통도 일단 말로 설명할 수 있게 되면 마음이 훨씬 편안해지고 왜 힘든지 그 이유도 알게 된다. 저자 스스로가 자신의 임상 경험 30여 년, 그리고 유튜브를 운영하는 약 9년 동안 고민 상담에 답한 4,000개의 영상 내용을 집대성한 작품이라고 밝힌 이 책은 2022년 11월 출간 이후 아마존 종합 10위에 올랐고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고 한다. 또한 그 인기를 입증하듯 일본 글로비스(Globis)에서 주관하는 ‘독자가 뽑은 비즈니스서 그랑프리 2023 자기계발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책은 모두 9장(章)으로 이루어졌다. 1장 「어차피 고민은 사라지지 않는다」, 2장 「고민을 분석하는 3가지 축」, 3장 「고민을 해소하는 3가지 방법」, 4장 「관점을 살짝 바꾸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관점 전환 #1)」, 5장 「혼자 고민하지 않기(관점 전환 #2)」, 6장 「말로 표현하는 순간 고민이 사라진다(언어화 #1)」, 7장 「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라(언어화 #2)」, 8장 「행동하면 고민은 사라진다(행동화)」, 9장 「고민이 사라지는 궁극의 방법」 등이다. 저자는 「고민은 자기 성장의 다른 말이다」는 제목의 〈들어가는 말〉을 통해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고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를 알아보기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투표수 1066표)고 말한다. 이 결과에 따르면 '고민이 있다'가 75.9%, '(심각한) 고민은 없다'가 24.1%였다고 밝힌다. 저자는 오히려 4명 중 1명이 '고민이 없다'고 답한 사실에 더 놀랐다고 한다. 이에 다시 '당신은 고민을 해결할 수 있습니까?'란 설문 조사를 다시 실시했다.(투표수 633표) '해결하기 어렵다'가 77.4%, '(비교적 간단하게) 해결한다'가 22.6%였다고 전한다. 이 결과로 '고민이 없는 사람'과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의 비율이 거의 비슷하다. 이는 '고민이 없다'고 대답한 사람은 애초에 고민이 전혀 없는 마음 편한 사람이기보다는 고민이 생겨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냈다고 밝힌다.

 


 

저자에 따르면 만약 고민이 있는데 그것을 극복하면 반드시 '자기 성장'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자기 성장을 하게 되면 문제 해결력이 생기기 때문에 그 이후에 생긴 고민은 더 쉽게 극복할 수 있다. 고민이 있는데 해결하지 못하는 75%의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정체돼 있다. 그와 반대로 나머지 20%의 사람은 고민이 생겨도 얼른 해결하고 자기 성장의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간다. 만약 이들처럼 고민을 해결하는 힘을 갖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인생이 훨씬 더 가벼워진다. 만약 내 안에 이런 힘을 장착할 수만 있다면 자신감과 긍정적인 생각이 우러나오고 이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고민이란 무엇인가? '걱정되는 일. 마음의 고통'이라고 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저자는 약간의 해석을 덧붙여 '곤란하고 괴로운 문제에 부딪혀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된,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한다. 제자리걸음 상태가 바로 고민의 본질이라는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그동안 증상이 나아지지 않는 내담자를 많이 만나면서 이렇게 생각했다고 제안한다. "사람이 아무리 힘들어도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힘이 있다면 상황은 조금이라도 나이지고 고민은 서서히 가벼워진다. 바로 이 점이 키포인트이다."(p.15)

저자는 〈들어가는 말〉을 통해 고민과 자기 성장을 등치시킴으로써 이 책을 읽기 전에 대전제에 독자들을 참여시키고 있다. 대전제로서는 "① 고민을 해소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② 모든 사람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③ 고민을 간단히 해소하자"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본론 1장에 들어서자마자 '고민의 3가지 특징'에 대해 귀띔한다. 고민이 있는 사람의 공통점이라고 보면 된다. 첫째,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있다. 둘째, 뭘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셋째, 생각이나 행동이 정지된다는 것. 이에 따라 고민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조금씩 해소하라고 조언한다. 어차피 고민의 원인을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단계적으로 조금씩 해소를 하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고민을 스트레스를 주는 '나쁜 것'이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자기 성장을 위한 조건이고 오히려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으로 생각하라고 말한다. 거의 모든 사람이 고민을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대단히 나쁜 것, 한시라도 빨리 떨쳐버리고 싶은 마음의 이물질 정도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고민하는 인간 즉, 자신을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는 '못난 인간' '최악의 인간'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존감도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고민은 인생의 양념으로 바라보고 마음 근육의 트레이닝으로 생각할 것을 주문한다. 마음 근육 트레이닝을 하지 않으면 '유리 멘탈'이 되고, 성장은 정체된다는 논리다. 저자는 성장이란 어제 하지 못했던 일을 오늘 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하며, 또는 새로운 일을 (전보다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고민을 분석하면 자기 자신이 보이고 성장을 위해, 차근차근 해소해 가는 전략적 접근을 강조한다. 이 책은 끝까지 독자들의 성장을 위한 고민 해소의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독자들의 요구에 철저히 부응할 것임을 설명하고 있다.

 

부정적인 관점을 긍정적인 관점으로 바꿔보라고 아무리 말해도 성공 경험이 많지 않아 자존감이 낮아진 사람에게는 쉽지 않다. 그런데 이들이 알아야 할 게 하나 있다. 만약 ‘나는 안 돼’, ‘나는 쓸모없어’라는 말을 하고 있다면 당장 그것부터 중단해야 한다. 이렇게 부정적인 말을 내뱉으면 노르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데 이는 강력한 기억력 강화 물질이기 때문이다.(p.304)

 

저자는 ‘나는 정말 무능해, 쓸모없는 인간이야’ 등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말들을 많이 한다는 건 무의식의 바다에 끊임없이 해양 쓰레기를 버리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인간은 무의식에 지배받는 동물이므로 만약 이런 언어들이 무의식의 바다를 떠돌고 있다면 그 사람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튀어나오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습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북돋고 자존감을 높이는 말을 들려주며 노르아드레날린 대신 도파민이 분비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파민 역시 ‘학습 물질’이라고 불릴 정도로 기억력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는 호르몬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마지막에 〈나가는 말〉을 통해 이 책의 키워드인 '언어화'를 다시 한번 강조 설명한다. "언어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고민이 사라진다. 기분이 상쾌해진다. 그리고 말은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스스로에게도 용기를 줄 수 있다. 말에는 굉장한 힘이 담겨 있다. 그것을 '언어화의 마력'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언어화'를 풀어서 말하자면 자신의 의견을 언어로 분명히 표현하고, 쓰고, 전달하는 행위다. 이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소통, 사적인 인간관게뿐만 아니라 사회적 인간 관계에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p.352)

 

저자 : 가바사와 시온(樺澤 紫苑)

정신과 의사이자 저자. 1965년 일본 삿포로에서 태어나 1991년 삿포로 의과 대학 의학부를 졸업했다. 2004년부터 미국 시카고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3년간 공부한 후 일본으로 돌아와 심리학 연구소를 세웠다. ‘정신 질환 및 자살 예방을 위한 정보 제공’을 일생의 사명으로 삼고 유튜브 채널 ‘가바사와 시온의 가바 채널’과 뉴스레터를 활용해 50만 명 이상에게 정신 의학, 심리학, 뇌 과학 관련 지식을 전달하고 있다. 일본에서 대중적인 활동을 가장 활발하게 하는 정신과 의사로 유명하다. 시리즈로 내놓아 일본에서 70만 부 판매를 기록한 베스트셀러 《아웃풋 트레이닝》, 《하루 5분, 뇌력 낭비 없애는 루틴》과 각각 16만 부, 10만 부 판매를 기록한 《외우지 않는 기억술》, 《신의 시간술》을 포함해 30권 이상의 저서를 출간했다.

《나는 이제 마음 편히 살기로 했다》는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전 세계를 휩쓴 후 저자가 각종 스트레스와 피로와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써 내려간 종합 처방전 같은 책이다. 일본에서는 ‘코로나 시대 필독서’로 불리며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18만 부 판매를 돌파했다.(2021년 1월 기준) 혼자서 힘겨운 일상을 버티고 있을 때, 인간관계가 어려워서 포기하고만 싶을 때, 이런저런 사정으로 생의 끈을 놓고 싶다는 충동이 들 때, 이 책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즉각 효과를 볼 수 있는 훌륭한 행동 지침서가 되어 줄 것이다.

 

역자 : 이주희

한국외대 일본어과를 졸업한 후 해외의 좋은 책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저작권 에이전트로 오랫동안 일했다. 옮긴 책으로는 『말로 표현하면 모든 슬픔이 사라질 거야』, 『자존감이 쌓이는 말, 100일의 기적』,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무조건 팔리는 카피 단어장』, 『이상하게 돈 걱정 없는 사람들의 비밀』, 『N1 마케팅』, 『아, 그때 이렇게 말할걸!』,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 기획력』, 『매력은 습관이다』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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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 11 : 오디세우스 - 정재승 추천, 뇌과학을 중심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12가지 키워드로 신화읽기 그리스·로마 신화 11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지음, 정재승 추천 / 파랑새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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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신화를 무심코 지나쳐온 사람들에게도 인문학적 품위를 재정비하는 행복한 경험을 열어줄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에게는 영원히 잊지 못할 지적 경험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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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 11 : 오디세우스 - 정재승 추천, 뇌과학을 중심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12가지 키워드로 신화읽기 그리스·로마 신화 11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지음, 정재승 추천 / 파랑새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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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그리스·로마 신화 11』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번역한 것으로 '파랑새 시리즈' 11번째이다. 1권부터 12권까지 시리즈로 펴내고 있는 어린이용 책이지만 이번 편에서는 트로이 전쟁 승리의 주역인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다루고 있다. 열쇳말은 〈우정〉이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뇌과학자 정재승은 "오디세우스의 모험에는 사랑과 우정, 모험과 시련, 시기와 질투, 경쟁과 협력 등 살면서 중요한 덕목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며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등장해 지난 20만 년 동안 탐험해 온 시간을 한눈에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정재승은 적도에서부터 남극과 북극까지, 지구상에서 온 대륙을 누벼 온 유일한 생명체가 바로 호모 사피엔스라며, 다양한 생태 환경에서도 적응해 살아온 인간의 문명은 그 자체로 호모 사피엔스의 위대함을 잘 보여준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호메로스의 〈일리아스〉(Ilias)·〈오디세이아〉(Odysseia)는 인류 문학의 원형으로 수천 년간 회자되어 온 대서사시다.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이 대서사의 배경이다. 이 가운데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의 귀향의 여정에서 겪는 모험을 다루고 있다. 오디세우스(Odysseus, 로마 신화에서는 울릭세스 Ulyxe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으로, 트로이 전쟁에서 목마를 고안해 그리스군을 승리로 이끄는 데 공헌한 인물이다. 이 영웅의 이야기는 호메로스(Honeros)의 서사시 『일리아스(I;ias)』와 『오디세이아(Odysseia)』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다. 특히 오디세우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을 마친 그가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사랑하는 아내 페넬로페(Penelope)와 아들 텔레마코스(Telemachos)가 기다리는 왕국 이타케로 귀향하기까지 10년간의 극적인 시련과 모험을 다루고 있다. 헤라클레스나 테세우스, 페르세우스와는 또 다른, 지극히 인간적인 매력의 소유자 오디세우스의 모험담이 열렬한 대중적 관심과 지지 속에 문학과 미술 작품으로, 영화로 재탄생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책에 들어가기 전 모두 24권으로 전하는 『오디세이아』 제1권은 벌써 몇 년째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오디세우스를 안타까워한 아테네 여신이 제우스에게 고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에 제우스는 오디세우스가 바다를 떠돌게 된 이유가 바로 "오디세우스가 모든 키클로페스 가운데서도 가장 힘이 센, 신과 같은 폴리페모스를 눈멀게 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폴리페모스(Polyphemos)는 양을 치며 사는 외눈박이 거인 키클로페스 종족으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이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를 떠나 귀향하던 중 폴리페모스의 동굴에 갇히게 되었는데, 폴리페모스가 매일 부하들을 잡아먹자 오디세우스는 그에게 술을 먹여 잠들게 한 뒤 달군 나무막대기로 눈을 찔렀던 것이다. 거인은 눈을 부여잡고 "아무도 나를 죽이려 하지 않는다!"라고 외쳐댔는데 이는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이름을 '아무도 아닌'이라는 뜻의 우티스(Outis)라고 알려줬기 때문이었다는 게 수많은 그리스·로마 신화 번역과 해석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정설로 다루고 있다는 의미다. 동굴에 갇힌 후 오디세우스는 눈먼 폴리페모스에게 들키지 않도록 양들의 발에 매달려 무사히 밖으로 빠져 나온 오디세우스는 배에 타고 나서야 제대로 된 이름을 대며 거인을 조롱했다. 이에 폴리페모스는 포세이돈에게 대신 복수해줄 것을 기원한다.

폴리페모스의 눈을 찌르고 그를 조롱한 사건은 오디세우스의 귀향 길을 지체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포세이돈이 오디세우스를 벌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때부터 오디세우스의 본격적인 모험담이 펼쳐지게 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일화를 꼽자면, 인육을 먹는 거인 라이스티리고네스 족의 공격을 받아 12척의 배 중 11척이 침몰하고 오디세우스의 배만 간신히 빠져 나와 도착한 아이아이에라는 섬에서 키르케(Kirke)를 만나 겪은 일을 들 수 있다. 태양신 헬리오스의 딸인 키르케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과 마법약초로 만든 음료를 대접한 뒤 요술 지팡이로 쳐서 짐승으로 변신시켜버리는 마녀였다.

 


 

정찰대 가운데 유일하게 무사히 돌아온 에우릴로코스의 보고를 받고 오디세우스는 직접 부하들을 구하러 간다. 가는 도중 키르케의 궁전 앞에서 만난 헤르메스로부터 마법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약초와 키르케를 제압하는 방법을 전해 듣고 오디세우스는 돼지로 변한 부하들을 구해낸다. 아름다운 키르케 옆에서 어느덧 1년을 보낸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키르케는 기꺼이 그의 무사 귀향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우선 저승 세계에 들러 예언가 테이레시아스를 만날 것, 지나가는 선원을 노래로 유혹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세이렌(Seiren)과 무시무시한 기물 시킬라(Skylla), 그리고 카리브디스(Charibkis)를 피하는 비결 등을 듣고 항해를 떠난다. 세이렌 의 섬 근처를 지나며 오디세우스는 노랫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부하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된 귀마개로 틀어막게 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그 소리가 너무도 궁금한 나머지 돛대에 몸을 묶고 어떤 일이 있어도 풀어주지 말라 신신당부했다. 영국의 신고전주의 화가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Herert Jsmes Draper)의 작품을 보면 오디세우스를 향해 모여든, 얼핏 인어처럼 보이는 인면조신(人面鳥身) 세이렌들과 그 노랫소리에 넋이 나간 영웅의 풀어진 눈동자가 실감나게 묘사돼 있다.

바다 절벽 괴물 스킬라와 거대한 소용돌이 괴물 카리브디스에게 여섯 명의 부하를 잃고, 가까스로 태양신 헬리오스의 섬 트리나키아에 도착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오디세우스 일행은 저승에서 만난 예언가 테이레시아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태양신의 소들을 잡아먹음으로써 신의 노여움을 사게 되고, 섬을 떠난 지 6일 만에 바다에서 태풍을 만나 모두 죽고 오디세우스만 간신히 살아 남는다. 부서진 배의 조각에 의지해 도착한 곳은 아틀라스의 딸 칼립소(Kalypso)가 사는 오기기에 섬이었다.

 


 

'바다의 배꼽'이라 불리는 이 곳에서 오디세우스는 무려 7년 동안이나 지내게 된다. 오디세우스에게 반한 요정 칼립소가 그와 영원히 함께 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불사의 몸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아름다운 여신과의 삶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의 미덕은 고향에서 오매불망 그를 기다리는 아내와 자식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는 점에 있는지라, 그를 어여삐 여긴 아테나를 비롯한 신들의 결정에 따라(제우스가 헤르메스를 보내 칼립소를 설득시킨다) 영웅은 꿈 같은 7년을 정리하고 다시 귀향 길에 오르게 된다.

칼립소가 마련해준 뗏목을 타고 항해하기를 2주, 오디세우스는 아직 화가 덜 풀린 포세이돈이 일으킨 풍랑에 난파되어 맨몸으로 헤엄쳐 육지에 닿았다. 그곳은 알키노오스가 다스리를 풍요로운 파아케스인들의 나라였다. 이곳에서 만난 공주 나우시가(Nausika)는 하녀들과 함께 강가에 빨래하러 나왔다가 나뭇잎으로 대충 가린 오디세우스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놀라 도망치는 하녀들과 달리 나우시카는 오디세우스에게 옷을 비려주고 왕궁으로 인도하는데, 이는 여신 아테나가 손을 쓴 덕분이었다. 오디세우스는 손님을 대접하는 만찬에서 악사 데모도코스가 부르는 트로이 전쟁 노래에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의아해하는 알키오노스 왕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트로이 전쟁 이후 이제까지 겪은 모험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이렇게 『오디세이아』는 파이아케스인들의 나라에 도착한 오디세우스의 회고담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디세우스의 모험담을 듣고난 알키노오스는 갖은 귀한 보물들과 함께 그를 곧장 고향 이타케로 데려다 주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의 모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타케의 왕궁에는 오디세우스가 이미 죽은 줄 알고 왕비 페넬로페를 차지하기 위해 모여든 구혼자들이 연일 만찬을 벌이며 그의 재산을 축내고 있었다. 아테나 여신은 젊은 양치기의 모습으로 나타나 이러한 사실들을 오디세우스에게 알려주고 그를 거치로 변신시켜 복수할 수 있게 도와준다. 아테나, 오디세우스, 그리고 아들 텔레마코스의 기획으로 구혼자들의 활 시합이 열리게 되고, 남루한 거지는 누구도 당기지 못한 활시위를 당겨 쏜 화살로 7개의 도끼 구명을 통과시킨다. 그 활은 바로 오디세우스의 활이었다. 바로 이어진 피의 복수로 구혼자들을 모두 처치한 오디세우스는 페넬로페와 감격적으로 상봉하고, 이후 일어나는 문제들(구혼자 가족들의 반격)도 아테나 여신의 조정으로 일사천리 해결된다.

트로이 전쟁 10년 귀향 길의 모험 10년, 그야말로 집 떠난 뒤 온갖 고생으로 점철되 20년 세월이었다. 그러나 호메로스의 영웅들이 대체로 그렇듯, 오디세우스 역시 스스로 모험을 자초한다. 그는 포세이돈의 아들 폴리페모스를 조롱함으로써 신의 분노를 샀고, 피해갔어야 할 일들을 실수든 의도든 굳이 마다하지 않는다. 이러한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치명적인 유혹과 시련이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역시 신화 속 영웅답게 이 모든 것들을 뿌리치고 견뎌낸다. 비록 상당히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며 오랜 시간 걸려, 가까스로 이루어내지만 말이다. 키르케와 1년, 칼립소와 함께 보낸 7년의 세월이 이를 증명한다.

 


 

반면 지고지순한 페넬로페는 단 한번도 곁눈지도 없이 남편만을 기다린다. 따라서 오디세우스 이야기는 당시 가부장제 확립을 위한 장치로서 기능했다는 평가를 받는 한편, 여성학자들로부터는 비판적 관점에서 다시 읽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오랜 세월 오디세우스가 가장 인기 있는 영웅의 자리를 놓치지 않는 것은 이러한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매력이 있다는 뜻일까?

사람들은 오디세우스의 이름을 들으면 왜 ‘모험’이라는 단어부터 떠올릴까? 이 책을 읽으면 가물가물하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이 책의 깔끔한 문장과 아름다운 편집이 어렸을 때 부분 부분 읽었던 세계문학전집의 ①, ②번을 차지하고 있던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한 해묵은 독서 기억을 돌이켜볼 수 있도록 해준다. 이는 저자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의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한 완벽한 이해로부터 출발된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쉽고 군더더기 없이 일목요연하게 압축해 놓은 걸작이다. 아들 텔레마코스를 낳고 아내 페넬로페와 행복하게 살고 있을 때 오디세우스를 찾아온 트로이 전쟁 소식은 삶을 송두리째 뽑아 놓고, 오랜 세월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수 없는 오디세우스의 고통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완역본이 아닌데도 완역본을 읽은 것만큼의 해석이 가능할 정도다. 비록 짧게 축약된 내용이지만 오디세우스가 모험을 헤치고 귀환하는 과정은 인간의 무한한 창조력과 인내심의 경지를 가늠하기에 충분하게 해준다. 오디세우스의 무사 귀환 과정은 아들 텔레마코스의 성장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여리고 어린 상태에서 깨어나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성숙한 사고를 시작하는 텔레마코스의 지적 변화는 오디세우스의 삶의 깊은 원동력이요 사랑과 우정이기도 하다. 정재승의 추천사가 의미하는 또 다른 의의다. 아내 페넬로페와의 재회 장면에서 역시 단순한 사랑을 넘어선 재치와 우정의 해학을 느끼게 되는데, 오디세우스 이야기는 신화가 인간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은 바로 지극한 인간미에 있음을 통찰하게 해준다.

 


 

정재승 교수가 추천사에 쓴 문장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오디세우스의 능력도 무척 출중했지만, 위험의 순간 도와주는 조력자가 없었다면 혼자서는 불가능한 모험이었을 것이다. 세 살 무렵 인간의 지적 능력은 침팬지나 오랑우탄, 고릴라에 비해 그리 높지 않다. 숫자를 세는 능력, 단어를 암기하는 능력 같은 지적 능력을 측정해 보면 오히려 인간보다 대형 영장류가 더 뛰어나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들과는 달리 이토록 훌륭한 문명을 이룰 수 있었을까?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사회적 학습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친구가 하는 것을 보고 배우고 서로 가르쳐 주는 ‘협력하는 능력’이야말로 오늘날 인간 문명의 기원이다. 11권에서는 ‘우정’을 열쇳말로 주목하길 바란다. 우리가 학교에 다니면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있다면, 그것은 우정이다. 나와 함께 공부하고 성장하는 친구들과 서로 돕고 협력하면서 관계를 맺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정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이 학교의 역할이어야만 한다."(p.8~9)

 

글 :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Menelaos Stephanides)

 

1923년 아테네에서 태어난 작가는 경제학을 공부하였다. 이 후 신화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어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설화를 발견하고 연구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그리스 신화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와 지식으로, 『동화로 읽는 그리스』를 위해서 25년간 준비를 했다. 1989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어린이 문학상인 피에르 파올로 베르제리오상을 수상했다. 현재 수많은 그리스 설화를 통해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따뜻한 꿈을 전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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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연애실록 2
로즈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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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의 마지막 장 「내 아들이다」의 실록 기록은 같은해(해종 17년) 6월 2일의 기사로부터 시작한다.

헌부가 아뢰기를.

"중궁전에서 본가(本家)에 행행하시니 어버이에게 효도를 하는 것은 지당한 일이오나 외청의 주악은 중지하여 주시옵소서."

하자 상이 이르기를.

"부모는 동일한데 무엇을 나누어 금할 수 있겠는가. 쾌히 따르지 못한다."

하였다.(1권, p.511)

 

소설 시작할 때(해종 17년 3월)에서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태진사에서 중전과 용희가 마주친다. 독자들의 바람은 용희가 완이 세자임을 알게 되는 것으로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헛된 바람이다. 저자는 그렇게 쉽게 문제를 놓지 않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미래의 가족이 될 사이에 큰 장애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독자들은 저자가 이끄는 대로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간다. 용희만 모르고 있는 사실이 답답했던 1권에 이어 2권에서는 세자 완이는 무척 괘활하고 긍정적 성격의 매력적인 남자라는 점이 부각된다. 또 용희는 사랑스러운 모습을 자주 보이며 신분 확인의 날이 멀지 않았음을 기대하게 한다. 2권에서는 1권보다 로맨스 비중이 좀 더 높아진다. 저자는 용희와 완 두 사람의 감정이 진행되는 모습을 자주 드러내 보여준다. 너무 두 사람의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지 저자는 중전과 용희의 만남이 이루어진 이틀 후 해종실록 기사를 끄집어 낸다.

정부와 육조가 청하면서 말하기를.

"세자궁을 오래 비울 수 없으니 간절히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작은 것을 살피시고 먼 일을 염려하시어, 세자인 즉 환궁할 수 있도록 하소서."

하자 상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아도 동궁의 병세가 차도를 보이고 있다니 종사의 다행일까 한다."

하였다.(2권, p.7)

 


 

둘의 애정관계가 조금씩 진척될 때마다 빨리 얽히고설킨 일이 끝나기를 바라면서 독자들은 열심히 읽어나간다. 닿을 듯 말 듯한 모습을 연출하고, 또 다른 갈등이 생기고... 저자와 독자들과의 밀당이 계속되면서 긴장감은 고조된다. 덕분에 독자들은 지루함을 느낄 수 없이 책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평화롭게 끝나서 두 사람이 제대로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동시에, 사건이 터지고 인물들에게서 다양한 내적*외적 갈등을 발견할 때마다 '너무 흥미진진한데...!' 하고 푹 빠져서 읽기 바빴다. 2권에서는 용희가 사실 자신의 어설픈 남장을 남자 셋이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그간 모른 척 해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세자저하 취향 해명 완료). 사실 초반부부터 언제쯤...용희가 눈치챌까 궁금했는데, 속이 시원했다. 2권의 초반부 세자 완과 용희의 아슬아슬한 장면이 연출된다.

 

용희는 귓가에 되울리는 자신의 박동 소리를 들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정체도 알지 못하는 사내에게 조금씩 흘러가는 마음을 힘껏 막아 보지만, 새어 나가는 마음을 모두 막기엔 불가항력이었다. 내가 여인이란 걸 알게 되면 선생은 무슨 표정을 지을까. 속았다며 분노할까? 어쩐지 수상했다며 빠르게 진정할까? 내게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오랜 생각 끝에 그녀는 망연자실했다. 이런 상상들이 무슨 소용이겠나. 집을 잃고 헤매는 주제에 감정놀음도 사치인 것을.

“……후.”

잠에 취한 듯 조금 벌어진 선생의 입술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 한구석이 통증을 호소했다.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걸 알기에 그녀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렸다.

“잘 자오, 선생."(2권, p.24) - 「27화 우연과 인연 사이」중에서

 


 

사건에 휘말리는 와중에도 두 사람은 서로의 신분에 확신을 갖지 못하면서도 연애 감정은 진행된다. 설렘 반 두려움 반... 참다못한 용희가 여자라는 사실을 밝히려 하는 사자 완은 오히려 가로막고 자신은 사내가 취향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서로에게 서로를 숨겨야만 하는 용희와 완의 관계가 독자들을 더욱 안타깝게 한다.

'홍시'가 여인인 것을 알지만 모른 척 통역관으로 함께하던 중 세자 완이는 점차 그녀가 자신의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깨닫는다. 신기형은 왕에게 영의정의 부패를 다시 고하며 이미 죽은 자이더라도 다시 죄를 물으라고 재촉한다. 장안 곳곳에 영의정의 죄를 알리는 방이 붙자 홍시는 더 이상 대궐에 들어가 왕을 만나겠다는 청을 접게 된다. 그러는 사이 명의 사신인 륜명과 완은 은자 거래를 계속하고 륜명은 흑단의 수장인 신기형에게 명의 은자를 사줄 인물이 있다고 귀띔한다.

그렇게 흑단의 수장으로서 신기형과 완은 마주하게 된다. 세자 완은 이젠 신기형이 흑단의 수장임을 확신한다. 하지만 신기형은 위급한 순간에도 명의 은자를 거래하는 인물이 있다는 첩보를 듣고 추포하러 왔다고 둘러대고 위기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완은 신기형의 진짜 정체에 대해 이미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궁으로 급히 들어가 왕에게 이를 고하지만 왕은 증좌도 없이 죄인으로 취급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오히려 호통을 친다.

완은 왕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은자거래를 위해 태진사로 향하던 중 흑단의 사내들에게 공격을 받게 되고 그 와중에 홍시는 독화살을 맞고 쓰러지지만 사라지고 만다. 홍시를 구한 것은 바로 륜명. 조선인의 피가 흐르는 비밀의 인물 륜명은 어느새 홍시에게 마음이 닿은 것을 느끼고 홍시를 구하지만 홍시의 마음이 이미 다른 남자에게 향한 것을 알게 된다.

 


 

신기형은 세자 완이 이미 다른 여인에게 마음이 가 있는 것을 눈치채고 자신의 여식을 세자빈으로 만들기 위해 서두른다. 그리고 서서히 홍시의 정체가 밝혀지기 시작한다. 완은 진즉 홍시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그녀를 자신의 곁에 두기 위해 애를 쓰는데.... 남녀의 인연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 맺어주는 것이라고 했던가.

이미 풍비박산인 고관대작의 딸 홍시, 용희와 세자 완의 사랑은 간신인 신기형의 방해로 자꾸만 벽에 부딪히지만 두 사람의 운명은 서서히 서로를 향해 다가간다. 홍시의 정체가 밝혀지지만 두 사람의 운명 또한 순탄하지 않을 것만 같은 복선이 깔린다. 신기형의 비밀을 밝혀줄 단서를 우연히 손에 넣게 된 륜명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다음편이 기다려진다. 세자 완과 용희의 로맨스에 가장 걸림돌은 사실 왕이다. 해종 이야기다. 왕이 무능하고 불민하여 참된 관리와 간신을 구별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51화 「만나고 싶어」에서 해종 17년 6월 20일자 기사에서 왕은 좌의정 신기형의 영상 임명에 거짓으로 고사하는 데도 강행한다. 세자 완이 흑단 사건의 전모를 살피러 출궁한 지 3개월 5일 지났을 뿐이다.

"만일 동궁이 진실로 죄를 뉘우치지 않으면 종사가 의지할 곳을 잃고, 나라의 운이 기울 것이며, 백성의 노여움을 살 것이다. 내 생각은 이러하건대 좌의정은 다른 사람을 물리치고 읍소하며 동궁을 극진히 대하니, 좌의정이 아니면 누가 나라의 재상을 맡을 수 있겠는가. 날이 밝는 대로 영의정에 임명할 만한 자를 가려야 하겠다."

하자. 좌의정을 비롯한 여러 재상들이 모두 대궐에 나와서 왕을 칭송하였다.

 


 

"용희는 마음에 담기지 않았던 대꾸를 끝으로 걸음을 옮겼다. 서두르는 법이 없어 더욱 애가 탈 만한 자태로, 그녀는 다음 한 발을 디디며 간격을 좁혔다. 한 발엔 나무에서 떨어져 선생을 처음 만났던 날이 스쳤고, 두 발엔 거래를 시작하며 주고받았던 계약서가 스쳐싿. 세 발엔 도적떼를 만나 자결할 뻔했던 날이 떠올랐고, 마지막엔 선생과 입을 맞췄던 푸르고 맑은 날이 떠올랐다.

이윽고 결 좋은 치맛자락이 선생의 침구 가까이에 멈췄다. 용희가 몸을 수그리며 제 몸을 안겨 주기도 전에 선생의 다급한 팔이 그녀를 끌어당겼다. 빨려들 듯 순순히 따라오니 제 품에 그녀를 꼭 안고 완은 두 눈을 세차게 감았다. 할 수 있다면 제 가슴속으로 그녀를 밀어넣고 싶을 만큼, 숨통도 트지 못할 정도로 억세게 품어 보고 싶을 만큼 간절했다."(2권, p.533)

 

저자 : 로즈빈

 

바람 따뜻한 봄, 입 안 가득 머금은 슈크림, 달달하고 따뜻한 카페모카, 가슴을 적시는 노래, 적당히 떨어지는 빗방울, 된장찌개와 고등어구이, 방 안 가득 퍼지는 아로마 향기, 마주 보기 어색하지 않은 만남을, 좋아하는 글쟁이. 작품으로는 2014년 네이버 공모전 우수상에 당선된 『그 남자의 정원』, 2015년 『연꽃을 닮은 노래』, 2015년 『뉴욕 전쟁』, 2016년 『그대를 사랑하나 봄』, 네이버 웹소설에 연재한 2015년 『네 입술에 닿으면』, 2016년 『조선연애실록』, 2017년 『날 가져요』, 2018년 『완벽한 쇼윈도』, 2019년 『퇴근 후에 만나요』, 2020년 『찐한 고백』, 연재작으로 2017년 『우리 두 사람』, 2018년 『가져도 좋아』, 2019년 『이혼 뒤 연애』, 2021년 『됐고, 안겨』, 네이버 오늘의웹툰에 연재한 2019년 『날 가져요』 등이 있다. 네이버 웹소설에 연재한 작품들 중 『날 가져요』, 『완벽한 쇼윈도』, 『퇴근 후에 만나요』 는 출간도 진행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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