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리스·로마 신화 11 : 오디세우스 - 정재승 추천, 뇌과학을 중심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12가지 키워드로 신화읽기 ㅣ 그리스·로마 신화 11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지음, 정재승 추천 / 파랑새 / 2023년 7월
평점 :
이 책 『그리스·로마 신화 11』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번역한 것으로 '파랑새 시리즈' 11번째이다. 1권부터 12권까지 시리즈로 펴내고 있는 어린이용 책이지만 이번 편에서는 트로이 전쟁 승리의 주역인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다루고 있다. 열쇳말은 〈우정〉이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뇌과학자 정재승은 "오디세우스의 모험에는 사랑과 우정, 모험과 시련, 시기와 질투, 경쟁과 협력 등 살면서 중요한 덕목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며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에 등장해 지난 20만 년 동안 탐험해 온 시간을 한눈에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정재승은 적도에서부터 남극과 북극까지, 지구상에서 온 대륙을 누벼 온 유일한 생명체가 바로 호모 사피엔스라며, 다양한 생태 환경에서도 적응해 살아온 인간의 문명은 그 자체로 호모 사피엔스의 위대함을 잘 보여준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호메로스의 〈일리아스〉(Ilias)·〈오디세이아〉(Odysseia)는 인류 문학의 원형으로 수천 년간 회자되어 온 대서사시다.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이 대서사의 배경이다. 이 가운데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의 귀향의 여정에서 겪는 모험을 다루고 있다. 오디세우스(Odysseus, 로마 신화에서는 울릭세스 Ulyxe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으로, 트로이 전쟁에서 목마를 고안해 그리스군을 승리로 이끄는 데 공헌한 인물이다. 이 영웅의 이야기는 호메로스(Honeros)의 서사시 『일리아스(I;ias)』와 『오디세이아(Odysseia)』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다. 특히 오디세우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을 마친 그가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사랑하는 아내 페넬로페(Penelope)와 아들 텔레마코스(Telemachos)가 기다리는 왕국 이타케로 귀향하기까지 10년간의 극적인 시련과 모험을 다루고 있다. 헤라클레스나 테세우스, 페르세우스와는 또 다른, 지극히 인간적인 매력의 소유자 오디세우스의 모험담이 열렬한 대중적 관심과 지지 속에 문학과 미술 작품으로, 영화로 재탄생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책에 들어가기 전 모두 24권으로 전하는 『오디세이아』 제1권은 벌써 몇 년째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오디세우스를 안타까워한 아테네 여신이 제우스에게 고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에 제우스는 오디세우스가 바다를 떠돌게 된 이유가 바로 "오디세우스가 모든 키클로페스 가운데서도 가장 힘이 센, 신과 같은 폴리페모스를 눈멀게 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폴리페모스(Polyphemos)는 양을 치며 사는 외눈박이 거인 키클로페스 종족으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이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를 떠나 귀향하던 중 폴리페모스의 동굴에 갇히게 되었는데, 폴리페모스가 매일 부하들을 잡아먹자 오디세우스는 그에게 술을 먹여 잠들게 한 뒤 달군 나무막대기로 눈을 찔렀던 것이다. 거인은 눈을 부여잡고 "아무도 나를 죽이려 하지 않는다!"라고 외쳐댔는데 이는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이름을 '아무도 아닌'이라는 뜻의 우티스(Outis)라고 알려줬기 때문이었다는 게 수많은 그리스·로마 신화 번역과 해석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정설로 다루고 있다는 의미다. 동굴에 갇힌 후 오디세우스는 눈먼 폴리페모스에게 들키지 않도록 양들의 발에 매달려 무사히 밖으로 빠져 나온 오디세우스는 배에 타고 나서야 제대로 된 이름을 대며 거인을 조롱했다. 이에 폴리페모스는 포세이돈에게 대신 복수해줄 것을 기원한다.
폴리페모스의 눈을 찌르고 그를 조롱한 사건은 오디세우스의 귀향 길을 지체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포세이돈이 오디세우스를 벌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때부터 오디세우스의 본격적인 모험담이 펼쳐지게 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일화를 꼽자면, 인육을 먹는 거인 라이스티리고네스 족의 공격을 받아 12척의 배 중 11척이 침몰하고 오디세우스의 배만 간신히 빠져 나와 도착한 아이아이에라는 섬에서 키르케(Kirke)를 만나 겪은 일을 들 수 있다. 태양신 헬리오스의 딸인 키르케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과 마법약초로 만든 음료를 대접한 뒤 요술 지팡이로 쳐서 짐승으로 변신시켜버리는 마녀였다.
정찰대 가운데 유일하게 무사히 돌아온 에우릴로코스의 보고를 받고 오디세우스는 직접 부하들을 구하러 간다. 가는 도중 키르케의 궁전 앞에서 만난 헤르메스로부터 마법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약초와 키르케를 제압하는 방법을 전해 듣고 오디세우스는 돼지로 변한 부하들을 구해낸다. 아름다운 키르케 옆에서 어느덧 1년을 보낸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키르케는 기꺼이 그의 무사 귀향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우선 저승 세계에 들러 예언가 테이레시아스를 만날 것, 지나가는 선원을 노래로 유혹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세이렌(Seiren)과 무시무시한 기물 시킬라(Skylla), 그리고 카리브디스(Charibkis)를 피하는 비결 등을 듣고 항해를 떠난다. 세이렌 의 섬 근처를 지나며 오디세우스는 노랫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부하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된 귀마개로 틀어막게 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그 소리가 너무도 궁금한 나머지 돛대에 몸을 묶고 어떤 일이 있어도 풀어주지 말라 신신당부했다. 영국의 신고전주의 화가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Herert Jsmes Draper)의 작품을 보면 오디세우스를 향해 모여든, 얼핏 인어처럼 보이는 인면조신(人面鳥身) 세이렌들과 그 노랫소리에 넋이 나간 영웅의 풀어진 눈동자가 실감나게 묘사돼 있다.
바다 절벽 괴물 스킬라와 거대한 소용돌이 괴물 카리브디스에게 여섯 명의 부하를 잃고, 가까스로 태양신 헬리오스의 섬 트리나키아에 도착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오디세우스 일행은 저승에서 만난 예언가 테이레시아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태양신의 소들을 잡아먹음으로써 신의 노여움을 사게 되고, 섬을 떠난 지 6일 만에 바다에서 태풍을 만나 모두 죽고 오디세우스만 간신히 살아 남는다. 부서진 배의 조각에 의지해 도착한 곳은 아틀라스의 딸 칼립소(Kalypso)가 사는 오기기에 섬이었다.
'바다의 배꼽'이라 불리는 이 곳에서 오디세우스는 무려 7년 동안이나 지내게 된다. 오디세우스에게 반한 요정 칼립소가 그와 영원히 함께 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불사의 몸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아름다운 여신과의 삶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의 미덕은 고향에서 오매불망 그를 기다리는 아내와 자식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는 점에 있는지라, 그를 어여삐 여긴 아테나를 비롯한 신들의 결정에 따라(제우스가 헤르메스를 보내 칼립소를 설득시킨다) 영웅은 꿈 같은 7년을 정리하고 다시 귀향 길에 오르게 된다.
칼립소가 마련해준 뗏목을 타고 항해하기를 2주, 오디세우스는 아직 화가 덜 풀린 포세이돈이 일으킨 풍랑에 난파되어 맨몸으로 헤엄쳐 육지에 닿았다. 그곳은 알키노오스가 다스리를 풍요로운 파아케스인들의 나라였다. 이곳에서 만난 공주 나우시가(Nausika)는 하녀들과 함께 강가에 빨래하러 나왔다가 나뭇잎으로 대충 가린 오디세우스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놀라 도망치는 하녀들과 달리 나우시카는 오디세우스에게 옷을 비려주고 왕궁으로 인도하는데, 이는 여신 아테나가 손을 쓴 덕분이었다. 오디세우스는 손님을 대접하는 만찬에서 악사 데모도코스가 부르는 트로이 전쟁 노래에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의아해하는 알키오노스 왕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트로이 전쟁 이후 이제까지 겪은 모험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이렇게 『오디세이아』는 파이아케스인들의 나라에 도착한 오디세우스의 회고담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디세우스의 모험담을 듣고난 알키노오스는 갖은 귀한 보물들과 함께 그를 곧장 고향 이타케로 데려다 주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의 모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타케의 왕궁에는 오디세우스가 이미 죽은 줄 알고 왕비 페넬로페를 차지하기 위해 모여든 구혼자들이 연일 만찬을 벌이며 그의 재산을 축내고 있었다. 아테나 여신은 젊은 양치기의 모습으로 나타나 이러한 사실들을 오디세우스에게 알려주고 그를 거치로 변신시켜 복수할 수 있게 도와준다. 아테나, 오디세우스, 그리고 아들 텔레마코스의 기획으로 구혼자들의 활 시합이 열리게 되고, 남루한 거지는 누구도 당기지 못한 활시위를 당겨 쏜 화살로 7개의 도끼 구명을 통과시킨다. 그 활은 바로 오디세우스의 활이었다. 바로 이어진 피의 복수로 구혼자들을 모두 처치한 오디세우스는 페넬로페와 감격적으로 상봉하고, 이후 일어나는 문제들(구혼자 가족들의 반격)도 아테나 여신의 조정으로 일사천리 해결된다.
트로이 전쟁 10년 귀향 길의 모험 10년, 그야말로 집 떠난 뒤 온갖 고생으로 점철되 20년 세월이었다. 그러나 호메로스의 영웅들이 대체로 그렇듯, 오디세우스 역시 스스로 모험을 자초한다. 그는 포세이돈의 아들 폴리페모스를 조롱함으로써 신의 분노를 샀고, 피해갔어야 할 일들을 실수든 의도든 굳이 마다하지 않는다. 이러한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치명적인 유혹과 시련이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역시 신화 속 영웅답게 이 모든 것들을 뿌리치고 견뎌낸다. 비록 상당히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며 오랜 시간 걸려, 가까스로 이루어내지만 말이다. 키르케와 1년, 칼립소와 함께 보낸 7년의 세월이 이를 증명한다.
반면 지고지순한 페넬로페는 단 한번도 곁눈지도 없이 남편만을 기다린다. 따라서 오디세우스 이야기는 당시 가부장제 확립을 위한 장치로서 기능했다는 평가를 받는 한편, 여성학자들로부터는 비판적 관점에서 다시 읽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오랜 세월 오디세우스가 가장 인기 있는 영웅의 자리를 놓치지 않는 것은 이러한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매력이 있다는 뜻일까?
사람들은 오디세우스의 이름을 들으면 왜 ‘모험’이라는 단어부터 떠올릴까? 이 책을 읽으면 가물가물하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이 책의 깔끔한 문장과 아름다운 편집이 어렸을 때 부분 부분 읽었던 세계문학전집의 ①, ②번을 차지하고 있던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한 해묵은 독서 기억을 돌이켜볼 수 있도록 해준다. 이는 저자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의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한 완벽한 이해로부터 출발된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쉽고 군더더기 없이 일목요연하게 압축해 놓은 걸작이다. 아들 텔레마코스를 낳고 아내 페넬로페와 행복하게 살고 있을 때 오디세우스를 찾아온 트로이 전쟁 소식은 삶을 송두리째 뽑아 놓고, 오랜 세월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수 없는 오디세우스의 고통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완역본이 아닌데도 완역본을 읽은 것만큼의 해석이 가능할 정도다. 비록 짧게 축약된 내용이지만 오디세우스가 모험을 헤치고 귀환하는 과정은 인간의 무한한 창조력과 인내심의 경지를 가늠하기에 충분하게 해준다. 오디세우스의 무사 귀환 과정은 아들 텔레마코스의 성장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여리고 어린 상태에서 깨어나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성숙한 사고를 시작하는 텔레마코스의 지적 변화는 오디세우스의 삶의 깊은 원동력이요 사랑과 우정이기도 하다. 정재승의 추천사가 의미하는 또 다른 의의다. 아내 페넬로페와의 재회 장면에서 역시 단순한 사랑을 넘어선 재치와 우정의 해학을 느끼게 되는데, 오디세우스 이야기는 신화가 인간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은 바로 지극한 인간미에 있음을 통찰하게 해준다.
정재승 교수가 추천사에 쓴 문장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오디세우스의 능력도 무척 출중했지만, 위험의 순간 도와주는 조력자가 없었다면 혼자서는 불가능한 모험이었을 것이다. 세 살 무렵 인간의 지적 능력은 침팬지나 오랑우탄, 고릴라에 비해 그리 높지 않다. 숫자를 세는 능력, 단어를 암기하는 능력 같은 지적 능력을 측정해 보면 오히려 인간보다 대형 영장류가 더 뛰어나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들과는 달리 이토록 훌륭한 문명을 이룰 수 있었을까?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사회적 학습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친구가 하는 것을 보고 배우고 서로 가르쳐 주는 ‘협력하는 능력’이야말로 오늘날 인간 문명의 기원이다. 11권에서는 ‘우정’을 열쇳말로 주목하길 바란다. 우리가 학교에 다니면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있다면, 그것은 우정이다. 나와 함께 공부하고 성장하는 친구들과 서로 돕고 협력하면서 관계를 맺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정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이 학교의 역할이어야만 한다."(p.8~9)
글 :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Menelaos Stephanides)
1923년 아테네에서 태어난 작가는 경제학을 공부하였다. 이 후 신화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어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설화를 발견하고 연구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그리스 신화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와 지식으로, 『동화로 읽는 그리스』를 위해서 25년간 준비를 했다. 1989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어린이 문학상인 피에르 파올로 베르제리오상을 수상했다. 현재 수많은 그리스 설화를 통해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따뜻한 꿈을 전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