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라틴어 원전 완역본) - 시간과 운명, 인생의 본질에 관한 세네카의 가르침 현대지성 클래식 68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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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는 로마 제국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세네카가 쓴 에세이집이다. 흔히 생전에 많은 위대한 일을 한 인물들은 "인생은 너무 짧다"고 말한다. '의학의 아버지'라고 추앙받는 히포크라테스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명언을 남겼다는 말로도 유명하다. 의학자인데 왜 '학문'이란 말 대신 '예술'이란 표현을 했을까? 이는 당시 로마의 문자인 라틴어의 번역 과정에서 나온 말이라고 책의 역자 박문재는 밝힌다. "vitam brevem essc, longam artem." 이 문장에서 라틴어 원문에는 '아르트(art) 한 단어로 되어 있다. 여기서 아르트는 기술, 기예, 학문, 지식 등을 의미한다고 주석을 달아 해석하고 있다. 인간이 배워야 할 기술과 학문은 끝이 없으나 인생은 너무 짧다는 한탄을 담고 있다는 것. 

공교롭게도 라틴어 수업이 되어 버린 듯하나, 이 책은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한 가장 날카로운 철학적 자기계발서다. 부와 성공, 바쁜 일정, 남의 기대를 좇느라 정작 자신을 위해 살았던 시간이 단 한 시간도 없었던 사람들에게 세네카는 묻는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가?”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소진하며 타인의 일에만 매달릴 뿐, 정작 자신을 돌아보고 판단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말이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에 사로잡혀 현재를 희생하며, 이는 인생의 가장 큰 손실이라고 세네카는 이 책에서 지적한다. 세네카는 사람들이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영원히 살 것처럼 시간을 허비한다고 말한다. 결국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않는다면, 긴 세월을 살았더라도 어린아이처럼 요절한 것과 다름없다. 세네카에 따르면 현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시간을 철저히 지켜 자신을 위해 온전히 사용하며, 매 순간을 의미 있게 채운다. 현자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지금으로 존재하며, 시간 전체를 아우르는 넓고 깊은 삶을 살아간다. 세네카는 독자들에게 지금 현재를 살고, 모든 방해물을 버리고 오직 지혜를 탐구하며 진정한 자유를 누릴 것을 권한다.


세네카는 또 욕망에 휘둘리고, 성취에 중독되고, 명예에 집착하는 한 인간은 ‘죽기 전까지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사람’으로 끝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진짜 시간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 시작된다고. 지혜를 탐구하고, 현재에 몰입하며, 나만의 시간을 지킬 때 우리는 더 이상 ‘시간에 쫓기는 인간’이 아니라 ‘시간을 주도하는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역설한다.

이 책은 바쁘게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묻고, 시간과 하나뿐인 인생을 올바르게 활용하는 지혜를 일깨운다. 세네카의 통찰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삶과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 출판사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는 세네카의 에세이 14편 전체를 67~68번(책 시리즈 넘버)으로 소개한다. 특히 단어나 표현의 오류를 벗어나기 위해 중역을 피하고, 라틴어 원전을 완역했다. 앞서 언급한 박문재 번역가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독일 보쿰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또한, 고전어 연구 기관인 비블리카 아카데미아Biblica Academia에서 오랫동안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익히고,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원전들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에는 역사와 철학을 두루 공부했으며, 전문 번역가로 30년 이상 인문학과 신학 도서를 번역해왔다. 철학적 깊이와 현대적 맥락이 조화된 정중한 번역으로, 누구나 고전의 핵심을 맛볼 수 있도록 돕는다. 고전은 오래된 책이 아니라, 지금도 작동하는 통찰이다. 세네카의 문장은 내면이 무너질 듯한 순간마다 꺼내 읽는 마음의 연고가 되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는 앞서 언급한 대로 세네카 에세이 14편 가운데 7편을 완역해 실었다. 나머지 7편은 이미 시리즈 67번으로 완역 출간됐다. 이 책은 각 편에 에세이 하나씩 7편을 실었다. 독자들이 읽을 때 원전의 맛을 살리기 위해 행과 장을 책 본문 옆에 그대로 표기했다. 또 라틴어 원전을 번역했기에 역자의 주석이 많이 실려 있어 독자들의 즉시 해석에 도움을 주고 있다.


제1편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제2편 〈행복한 삶에 대하여〉, 제3편 〈은둔에 대하여〉, 제4편 〈섭리에 대하여〉, 제5편 〈마르키아에게 보내는 위로〉, 제6편 〈어머니 헬비아에게 보내는 위로〉, 제7편 〈폴리비우스에게 보내는 위로〉 등 모두 7편이다. 세네카는 후기 스토아 철학을 대표하는 로마 제정시대 정치가다. 네로(Nero) 황제의 스승으로, 그리고 황제를 암살하려는 음모가 발각되어 네로에게 자살을 명령받은 일로 그의 이름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세네카가 군주 아래에서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는 논지를 전개함으로써, 제정체제의 이념적 좌표를 마련했다는 사실은 별반 주목받지 못한다. 그 이유는 어쩌면 네로 황제의 폭정이 세네카의 사상보다 더 극적이었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일부 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세네카는 지금의 스페인 코르도바(Córdoba)의 유력한 가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수사와 웅변에 뛰어났던 노(老)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이고, 그의 형은 신약성서의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갈리오(Lucius Iunius Gallio) 총독이며, 그의 동생인 멜라(Annaeus Mela)는 로마의 대표적인 시인 중 한 사람인 루카누스(Marcus Annaeus Lucanus)의 아버지다. 불행하게도 이 세 형제와 조카까지 모두 네로 황제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집안의 가풍이었던 학자적 자세와 도덕적 지조가 폭군과의 타협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스페인 태생이지만, 세네카는 로마에서 자라고 컸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제국의 심장부로 들어갔다. 일찍이 아버지에게 수사학을 공부했고, 이후 스토아 철학의 대가였던 섹스투스(Quinti Sextius Patris)의 제자가 된다.

칼리굴라(Caligula) 황제의 시기를 받아 시련을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서기 31년 세네카를 코르시카로 귀양을 보낸 황제는 전임 클라우디우스(Claudius)다. 이 시기에 쓴 『분노에 대하여』(De Ira)에서 보듯 그는 감정을 다스리며 로마로 돌아오는 날만 기다렸다. 그리고 서기 49년 마침내 로마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를 로마로 부른 사람은 이후 황제가 될 네로의 어머니인 아그리피나(Julia Agrippina Minor)였다. 그녀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네 번째 부인으로, 다른 부인의 소생을 제치고 자기 아들을 황제로 만들려는 생각에 세네카를 아들의 스승으로 삼았다.


이 책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는 첫 문장부터 독자들을 압도한다. “인생은 짧지 않다. 우리가 짧게 만들 뿐이다.” 이 문장은 단지 경고나 권유의 의미로 쓰인 게 아니다. 바쁘게 살지만 정작 삶을 소유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던지는 경종이다. 세네카는 이 에세이를 통해 시간을 ‘보내는’ 삶에서, 시간을 ‘사는’ 삶으로 전환하라고 촉구한다. 단순히 속도를 줄이라는 말이 아니다. 세네카는 일과 쉼, 세속과 철학, 바쁨과 몰입의 균형에 대해 근본적으로 묻는다. 그가 파울리누스에게 보낸 이 책들의 글은, 고위 공직을 내려놓고 ‘철학적 은둔’으로 들어가라는 편지에 쓰인 글들의 모음집이다. 세네카는 은둔을 소극적 회피가 아니라, 자신과 마주하는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본다.(별도의 책이 있다.) 오늘날의 ‘워라밸’이나 ‘리추얼 루틴’이라는 단어가 지향하는 바와도 닮아 있다. 휴식은 단순한 쉼이 아니라 삶의 본질로 복귀하는 시간이며, 나를 중심에 세우는 내면 훈련이기도 하다.

이 책은 ‘부유한 철학자는 위선자’라는 비판에 대한 세네카의 직접적인 대답이기도 하다. 그는 철학자도 부를 가질 수 있으며, 물질이 정신을 얽매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유를 해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돈을 벌 것인가, 덜 벌고 만족할 것인가’라는 양자택일의 프레임 속에서 고민하는 현대인에게, 세네카는 스토아의 엄격함과 현실의 유연함 사이에서 ‘철학적 균형감각’을 유지하라고 조언한다. 절제와 자유, 안락과 자율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그의 통찰은 미니멀리즘과 욜로 사이에서 흔들리는 우리에게 여전히 강력하다. 『은둔에 대하여』는 네로 치하의 폭정 속에서 정계를 떠난 세네카가 ‘물러남’의 철학적 의미를 재해석한 글이다. 그는 은둔을 패배가 아닌 성숙한 선택으로 바라보며, 침묵과 거리두기를 통해 삶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또 『섭리에 대하여』와 세 편의 위로서들은 운명과 상실을 대하는 자세를 제시한다. 그는 고난과 슬픔조차 우주적 질서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스토아 철학의 중심 원리를 전하며, 인간적 고통에 무감각하거나 냉소적인 대신, 그 고통을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힘을 강조한다. 세네카의 글은 삶의 ‘어떻게’를 묻는 사람보다, 삶의 ‘왜’를 붙잡으려는 이들에게 더욱 빛난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7편의 에세이는 그 질문에 응답하는 철학적 여정의 안내서다. 그의 문장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한다. “시간은 당신의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누구에게 넘기고 있느냐는 것이다.”


〈현대지성 클래식〉은 세네카의 에세이 14편 전체를 두 권에 나누어 완역해 소개했다고 앞서 독자가 언급했다. 특히 라틴어 원전의 정교한 뉘앙스를 살려내되, 독자들이 그 진수를 맛볼 수 있도록 세심히 다듬었다는 말도 이미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책을 모두 읽고 나면 세네카는 철학을 ‘인생의 기술’이라 보았고, 그 기술은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쓰는가에 달려 있다고 판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단지 ‘시간을 절약하라’는 조언을 넘어서, 시간을 ‘진짜 나의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고대 로마 제국에서나 현대 우리들의 삶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삶의 원칙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이 시점에 2,000년 전의 한 철학자가 쓴 철학적 사유가 서공을 초월해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라고 독자는 판단한다. 특히 다음은 이 책이 던지는 철학적 전환의 지점들이다.

① 시간을 흘려보내는 삶에서 시간을 ‘사는’ 삶으로

이 책은 단순한 시간 관리가 아니라, 인생 자체의 통제권을 회복하게 돕는다. 불필요한 일정을 줄이고,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며, 내 시간을 ‘나를 위해’ 쓰는 삶으로 전환하게 하는 것이다. ‘바쁘게 살지만 공허한 삶’에서 벗어나, 진짜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기술을 배운다.

② 불안에 휘둘리지 않는 힘: ‘내면의 안전지대’ 구축

세네카는 외부 조건이 아닌, 내면의 태도가 행복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돈, 명예, 성공에 끌려다니는 삶에서, 적당히 소유하고도 만족할 수 있는 삶으로! 삶의 리듬을 되찾고 싶은 사람에게, 절제와 몰입의 균형 감각을 제시한다. 더 많이 가지는 대신, 덜 불안해지는 삶을 설계할 수 있다.

③ 상처를 견디는 힘: ‘회복 탄력성’ 강화

누구도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고통과의 관계를 바꿔야 한다. 세네카는 말한다. “고통은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실망, 상실, 부당함에 무너지지 않고, 철학적 거리두기를 통해 감정을 정돈하며, 자신을 지키는 기술을 익힌다. 이 책으로 감정적 회복력을 키울 수 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자신의 재산에는 유별나게 민감하지만, 시간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관심하다. 아무 대가도 없이 타인의 요구에 시간을 쏟아붓고, 쓸데없는 걱정과 쾌락, 야망, 헛된 기대에 하루를 몽땅 넘긴다. 그러면서도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부족은 현실의 조건이 아니라, 잘못된 시간 사용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네카는 진짜 문제는 ‘삶이 짧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살고 있다’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타인의 욕망과 시선에 휘둘리고, 거절하지 못한 요구에 응하며, 자신을 위한 시간은 끝내 마련하지 못한 채, 결국 삶은 허무하게 흘러간다.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조차 꺼내지 못하고, 어느 날 갑자기 시간의 끝에 도달한다. 세네카는 이 책에서 ‘현자만이 시간을 소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과거의 위대한 지성들과 교류하며, 시간의 소유권을 되찾는 일이다. 그는 삶의 모든 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 지혜로 재구성한다.


오직 지혜를 탐구하는 데 시간을 쓰는 사람들만이 진정 한가롭고, 오직 그들만이 제대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헛되이 쓰지 않고 잘 지킬 뿐 아니라, 모든 지나간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덧붙이기 때문입니다. 신성한 가르침의 창시자들은 우리를 위해 태어났고 우리의 길을 닦아준 빛나는 스승들입니다. 어떤 시대도 우리에게 닫혀 있지 않고, 우리는 모든 시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큰마음으로 인간의 나약함이 만든 좁은 한계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우리가 누빌 수 있는 광활한 시간이 열립니다.(p.40~41)


저자 :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후기 스토아철학 대표 사상가. 고대 로마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정치인이며, 시인이자 비극작가이다. 기원전 4년 에스파냐에서 태어났으며 로마에서 자라면서 수사학과 변론술, 철학을 공부했는데 특히 스토아 철학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젊어서는 천식과 결핵을 앓았고, 우울증으로 자살 시도도 여러 차례 했다. 늦깎이로 정계에 입문하지만 8년간 코르시카 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다시 로마로 복귀할 때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에게 맡겨진 직책은 어린 네로의 가정교사라는 숙명적인 자리였다. 결국 세네카는 5년 동안 네로의 가정교사로 일하고, 네로가 황제가 된 후에는 10년 동안 보좌역을 맡게 된다. 황제가 된 네로는 처음에는 선정을 베풀었으나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후로 폭정이 극에 달한다. 이에 절망을 느낀 세네카는 관직에서 물러나 학문과 집필 활동에 몰두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황제 암살 계획에 연루되었다는 의심을 받게 되면서 네로로부터 즉각 자결하라는 명을 받는다. 결국 세네카는 자신의 제자였던 황제의 명을 받들어 스스로 정맥을 끊고 독약을 마시며 생을 마감한다.

공포와 광기가 가득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부침이 많은 삶을 살아온 경험이 세네카의 철학적 근간을 만들었다. 그는 후기 스토아철학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12편의 에세이와 9편의 비극작품을 남겼다. 그가 남긴 저서들은 널리 애독되었는데, ‘제 2의 세네카’로 불리는 몽테뉴와 단테, 루소, 흄,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 알랭 드보통 등 세계의 지성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저서들은 이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에게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고 있다.


역자 : 박문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독일 보쿰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또한, 고전어 연구 기관인 비블리카 아카데미아Biblica Academia에서 오랫동안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익히고,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원전들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에는 역사와 철학을 두루 공부했으며, 전문 번역가로 30년 이상 인문학과 신학 도서를 번역해왔다.

역서로는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막스 베버), 『실낙원』(존 밀턴) 등이 있고, 라틴어 원전을 번역한 책으로 『고백록』(아우구스티누스), 『철학의 위안』(보에티우스), 『유토피아』(토머스 모어) 등이 있다. 그리스어 원전에서 옮긴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이솝우화 전집』 등은 매끄러운 번역으로 독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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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있는 여행자를 위한 내 손안의 독일사 - 단숨에 읽는 독일 역사 100장면 교양 있는 여행자를 위한 내 손안의 역사
세키 신코 지음, 류지현 옮김 / 현익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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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유럽 여러 곳을 여행했는데 정작 가장 가보고 싶었던 독일은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지금은 해외 여행이 쉬운 일이 됐지만 막상 유럽을 여행하려면 큰맘 먹고 경비도 신경 써야 하는 등 꽤 까다롭다. 독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묘하게도 고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다. 제2 외국어를 선택해야 하는데 독일어를 선택했다. 독일어가 어렵다고 다들 꺼린다고 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독일어에 끌렸다. 그리고 2년을 배웠다. 물론 제2 외국어는 대입 때 선택이었기에 영어로 치렀다. 독일어보다 사실은 독일어 선생님에 대한 강렬하고도 멋진 분이라는 인상 때문에 독일어가 좋았다. 성적도 최고 수준이었다. 그런데 나중 해외 여행 갈 때는 독일은 쏘옥 빠졌다. 일부러도 아니고, 또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결국은 빠졌다. 그러나 아직도 못 가본 탓에 개인적으로 '죽기 전에 꼭 갈 나라'로 남겨져 있다.

사회에 나와서 독일에 대한 인상이 좋았던 이유는 그들의 정신이 정말 강인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동체 의식은 물론 저항 의식도 강한 정말 우리보다 끈끈한 공동체 의식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의식을 심어준 것은 묘하게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였다. 로마 제국의 형성과 부흥에 관한 대하 소설이었다. 무려 15권짜리 세트로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훈장도 받았다는 그 소설이다. 이 대하 소설 작품은 역사적 사실은 거의 정사에 근거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로마 제국 전성기 때에도 당시 독일(게르마니아)은 마지막까지 항복하지 않고 저항한 민족으로 남아 있다. 독일 동부와 북부의 숲을 중심으로 라인강까지 방어선을 굳게 지켰다고 한다. 로마의 유명한 장군과 황제까지도 원정할 때마다 여기까지 정복하고 더 이상의 정복은 실익보다 손해가 훨씬 크다고 생각해 국경을 의미하는 경비 수준의 군대만 남기고 원정군을 되돌렸다고 한다. 그렇게 게르마니아인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결국 동쪽으로부터의 훈족의 거센 돌풍에 서쪽으로 밀려나면서 쇠퇴한 로마 제국으로 서서히 동화되기 시작했다.(게르만의 대이동)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마 제국은 멸망한다.


유럽 여행 때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문명국답게 옛 유적을 유지하는 데 큰 힘을 기울인 듯하다. 로마 제국도 강력한 군사력과 지도자 덕분에 제국을 이뤘지만 오늘날 앞다퉈 로마 제국을 배우는 이유 중의 대부분 그들의 문명 의식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인 못지 않게 학문을 숭상했고, 예술을 즐겼으며 인구 100만 명이 사는 대도시도 형성할 수 있었다. 건축과 함께 수로의 문명도 발달했고, 길을 합리적으로 뚫어 상품 이동이 빠르고 안전하게 했다. 법전도 정비했고 그 법에 의해 정치도 사회도 유지됐다. 뿐만 아니라 철학이나 예술에도 대단히 즐겼다. 이를 위해서는 그리스의 피정복국의 학자들을 데려다 하인으로 고용했다. 물론 노예이지만 대우는 다른 노동 노예와는 대우가 달랐다고 한다. 이를 테면 돈 주고 고용한 가정교사라고 볼 수 있다. 

이 책 『교양 있는 여행자를 위한 내 손안의 독일사』는 아직 못 가본 나라 독일 여행을 갈 때 독자 개인의 입장에서 꼭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다. 작은 책자(핸드북) 형식이지만 독일 역사부터 문화, 학문, 건축, 인종, 종교, 예술, 과학, 정치, 사회 등 전 분야에 대해 요점만 다루고 있다. 저자는 독일을 설명할 '독일 역사 100장면'을 임의로 선정해 짧게 선정해 해설해준다. 누구든지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 낯선 길 위를 걷다 보면 문득 “이곳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이 사람들은 왜 이런 방식으로 살아갈까?” 같은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그들의 생활 방식이나 건물이나 유적을 볼 때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금세 그 궁금증을 뒤로한 채 다음 관광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결국 우리의 여행은 지도 위 동선을 따라 움직이다가 끝나버리고, 그 나라를 ‘진짜로’ 이해하지 못한 채 돌아오곤 한다.

이 책은 ‘교양 있는 여행자를 위한 내 손안의 세계사’ 시리즈의 하나로 이번엔 '독일편'이다. 저자는 여행자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건넨다. 떠나기 전에, 혹은 여행 중에 잠시 이 나라가 걸어온 길을 들여다보면 어떻겠느냐고. 역사를 알고 떠나는 여행은 단순한 관광지 투어를 넘어 하나의 문명과 사회를 깊이 있게 만나는 기회를 열어 준다는 것이 저자의 여행관이다. 낯선 도시의 풍경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지금의 국가를 만든 역사적 순간들이 어땠는지를 안다면 여행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경험으로 다가온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책은 한마디로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친절하게 풀어서 전하는 역사 교양서이다. 공항에서, 기내에서, 기차 안에서 펼치기에 부담 없는 분량과 구성으로 각 국가(이번은 독일) 역사의 주요 흐름을 100가지 장면으로 나누어 소개한다. 또한, 그림과 지도를 함께 수록하여 당시의 상황과 변화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지도록 도왔다. 마지막에 수록된 연표는 이 책에서 소개한 100가지 장면들과 세계적으로 유의미한 사건들을 병치하여 시대의 흐름을 넓게 조망할 수 있게 해 준다. 짧지만 깊이 있는 역사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몸소 느끼게 될 것이라고 출판사 측은 소개한다.

이 책은 이에 따라 지금의 독일을 만든 사건들, 시대를 바꾼 선택의 순간들, 유럽사 속 독일의 역할 등을 짚어가며 독자가 오늘날의 독일과 유럽, 그리고 세계를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돕는다. 수많은 소국이 서로 얽히고 갈라져 온 역사,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분단과 통일, 산업화를 통한 국가 성장으로 유럽의 강대국이 되기까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 ‘교양 있는 여행자’가 된 당신의 시선은 더 깊고 풍부해져 있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이 책은 100장면을 6개의 장(章)으로 나눴다. 1장 〈시작은 프랑크 왕국〉, 2장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3장 〈어지러운 독일 연방〉, 4장 〈근대 독일 제국〉, 5장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나치 독일로〉, 6장 〈연방 공화국과 민주 공화국〉 등이다. 저자는 '독일사 조망'이라는 〈서문〉을 통해 "독일은 단순히 유럽의 강대국이 아니라 전쟁과 분단, 통일이라는 긴 역사를 겪으며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고 전제한 뒤 "한국과 독일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여 있지만, 놀랍도록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났고, 분단을 경험했으며, 산업화를 통해 세계 속에서 눈에 띄는 성장을 이뤄냈다."고 설명한다. 오늘날의 통일 독일은 사실 오래 전 수많은 작은 나라들이 서로 얽히고 갈라지며 천천히 모습을 갖춘 결과라고 말한다.


이 책은 독일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해 왔는지를 조망한다. 방대한 독일사의 여정을 조그마한 핸디북 한 권에 담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일지 모르지만 여행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필수 상식만 담았다고 하면 결코 가볍게 볼 책은 아니다. 쉽고 재미있게 보여주기 위해 수천 년의 역사에서 독일을 가장 독일답게 만들어온 역사 속 장면 100개를 선정했다. 프랑크 왕국에서부터 중세 유럽을 이끌었던 신성 로마 제국을 거쳐,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대립, 두 차례의 세계대전, 나치의 비극, 냉전 시대의 분단과 통일, 유럽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근대 독일,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진 유럽 통합의 역사까지.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독일의 인물, 장소, 국기, 스포츠에 숨겨진 비하인드까지, 밀도 있게 담겨 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만나는 독일의 풍경은 이전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오래된 건물, 회화 속 장면, 먹고 마시는 음식들과 사람들의 삶까지 모두 그 땅에 쌓여 온 역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교양 있는 여행자를 위한 내 손안의 독일사』는 지금의 독일을 만든 사건들, 시대를 바꾼 선택의 순간들, 유럽사 속 독일의 역할 등을 짚어가며 독자가 오늘날의 독일과 유럽, 그리고 세계를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돕는다. 

책의 맨 앞에 「알수록 놀라운! 독일의 4가지 비밀」에는 독일사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의외의 사실로 느낄 수도 있는 것들을 소개한다. ①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는 원래 한 나랴였다? ② 독일어의 뿌리는 루터가 번역에 사용한 언어다? ③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서민에게는 상냥했다? ④ 축구 월드컵에서 서독 대표와 동독 대표가 맞붙었다?는 4개의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물론 이 책 안에 궁금증을 해소할 설명을 간략하되 정곡을 찌르는 정확한 사실을 알려준다. ①에 대한 설명은 책에 가장 첫 부분에 기술돼 있다. 이에 따르면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게르만인은 북아프리카에 반달 왕국을, 지금의 스페인 근처에 서고트 왕국을 건설한다. 예전 로마 제국의영역인 서유럽의 중앙부에는 프랑크 왕국이 건설되었다. 프랑크 왕국은 8세기말 지금의 프랑스, 이탈리아 중부, 독일에 이르는 지역을 통일한다. 하지만 9세기가 되자 프랑크 왕국은 내분 등으로 3개로 분열된다. 이 중 하나인 동프랑크 왕국이 독일이 되는 것이다. 특히 5세기부터 15세기 무렵의 유럽은 교회를 중심으로 움직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p.20)


② 독일어의 뿌리는 루터가 번역에 사용한 언어다?란 질문에 대한 답변은 9장(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 담겼다. 책에 따르면 14세기에는 신성 롸 제국에도 십자군과 북이탈리아 상인들의 활동으로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헬레니즘 문화가 도입됐다. 헬레니즘은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동방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생긴 문화를 말한다. 이후에 헬레니즘이 유럽에서 재조명된 것을 '르네상스'라고 한다. 르네상스 대표적 건축물은 지금도 바티칸 시국에 있는 성베드로 사원이다. 당시 고대 로마 시대의 건물이 이미 많이 노후화됐기에 교황의 요청으로 재건됐다. 이 성베드로 사원의 건설 자금이 시대를 움직이는 대소동이 된다. 자금을 모으기 위해 면죄부를 교황이 판매했다. 증서를 사면 저지른 죄를 면해 주겠다는 것. 이에 분노한 것이 작센 지방에서 태어난 신학자 마르틴 루터였다. 1517년 루터는 '95개조의 논제'를 발표한다. 루터는 면죄부는 무의미하며 신의 구제는 돈을 기부하는 등의 행위가 아니라 신을 믿음으로써 얻는 것이라며, 성경을 근거로 주장했다. 그 결과, 루터는 신성 로마 황제인 카를 5세로부터 철회하라는 명령을 받고, 교황으로부터는 파문을 당한다. 

하지만 루터는 압력에 굴하지 않고 황제와 대립하던 작센 선제후에게 보호를 받는다. 그리고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해서 일반 백성들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게다가 이 무렵에 할판 인쇄기의 개발로 독일어 성서와 루터의 가르침을 정리한 서적이 널리 확산됐다. 또한 루터는 번역할 당시 독일어의 방언 대신 작센의 관청에서 사용된 말을 사용했다. 이것이 독일어의 기초가 됐다고 한다. 이처럼 루터의 주장이 독일 전역에서 지지를 모으는 한편, 로마 교황을 지지하는 제후들도 있었다. 쟝자의 대립이 격렬해지면서 '종교개혁'으로 발전해 나간다.(p.35) ③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서민에게는 상냥했다?는 질문에는 47장 「가톨릭교회와 사회주의자」에서 답하고 있다. 능숙한 외교를 펼친 비스마르크는 내정에서도 뛰어난 수완을 보여준 근대 독일의 명재상으로 이름난 인물이다. 당시 의회에는 비스마르크에 반발하는 두 세력이 있었으며, 하나는 가톨릭교회가 중심이 된 중앙당,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자였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당초 비스마르크는 성직자를 제포하며 힘으로 억제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가톨릭교회 중앙당은강하게 반발하며 단결했다. 또하 본래 아군인 프로테스탄트로부터도 비판의 소서리가 나왔다. 결국 방침을 전환하며 가톨릭 세력과 타협하여 대립을 수습한다. 가톨릭과의 대립이 일단락되자 비스마르크의 화살은 사회주의자를 향했다. 1875년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여러 정당이 합동하여 사회주의노동당이 등장한다. 이에 비스마르크는 3년에 걸쳐 사회주의자 진압법을 제정한다. 그리고 이 법으로 노동운동을 단속했다. 비록 보수적이었던 비스마르크는 사회주의를 싫어했지만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 자체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노동자들이 국가로부터 보호받고 있음을 실감케 하여 사회주의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국가를 향한 충성심을 높이려 했다. 1880년대 비스마르크는 의료보험법, 재해보험법, 폐질·노령 보험법을 연달아 제정했다. 모두 노동자가 빈곤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로, 지금의 사회보장제도의 선구라고 일컬어진다. 이처럼 억압과 보호를 병행한 비스마르크의 정책은 '당근과 채찍'에 비유된다.(p.108~109)


나치는 어떻게 독일 정치의 장에 나타났을까요? 나치의 전신인 ‘독일 노동당’이 결성된 것은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한 1919년입니다. 1920년에 정식 정당으로서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당’이 됩니다. 그리고 다음 해 히틀러가 당의 실질적인 지도자로 올라서죠. 나치는 모든 것의 위에 국가를 두는 국가주의를 주장하는 우익 정당입니다. 그러나 당명에 사회주의가 들어가 있죠. 사회주의를 원하는 노동자를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정치의 실제 형태가 반사회주의임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p.150) - 69장 「당명에 사회주의가 들어간 이유」 중에서


저자 : 세키 신코


역사연구가. 도쿄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해 슨다이 입시학원에서 세계사를 가르치다가 2001년부터는 학습만화 《세계의 역사》 시리즈와 《중국의 역사》의 구성에 참여하는 등, 역사 교양서를 쓰고 감수를 맡아왔다.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 《돈의 세계사》가 있고, 주요 저서로 《읽기만 하는 세계사 고대~근세》, 《읽기만 하는 세계사 근현대》, 《읽기만 하는 이슬람사》, 《총도해 한 눈에 알아보는 세계의 분쟁과 내란》, 《기독교로 이해하는 세계사》, 《30번의 전투로 읽는 세계사》, 《지형과 지리를 알면 세계사가 재미있어진다》, 《세계사를 움직인 영불독 삼국지》 등이 있다.


역자 : 류지현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일과 석사학위 취득 후, 현재 한일국제회의 통번역사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 기획자,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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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 절망의 이야기에서 희망의 이야기로 나아가는 길
로냐 폰 부름프자이벨 지음, 유영미 옮김 / 지베르니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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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선택하고 소비하며, 또 어떤 이야기를 재생산할 것인가는 개인의 삶뿐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이젠 부정과 절망의 이야기를 넘어, 새로운 방향 설정을 위한 대안을 이야기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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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제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할 때 디지털 문화, 특히 AI와 빅데이터를 빼놓을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은 디지털 혁명의 시대란 말도 있다. 디지털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대량 정보를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을 토대로 새로운 이야기로 미래를 그린다. 디지털 문화는 지금으로부터 불과 몇 십년 전 시작되었다. 발전 속도는 주체인 인간마저 놀랍고,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새로운 소식들은 가치를 판별하지도 못한 채, 선악을 구별하지 못한 채 쌓이고 있다. 21세기는 미래로 가는 가상공간의 세계인 듯한 느낌이다. 세상이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만큼 지구 반대편의 소식도 실시간으로 접하고 영상으로 확인 가능하다. 

현대인들은 대체로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 전까지 뉴스를 확인한다. 책에 따르면 홍수, 산불, 지진, 교통사고, 테러, 전쟁, 팬데믹 등 미디어에는 나쁜 소식들이 넘친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 어디에서나 그런 소식들을 접할 수 있다. 아침 출근길에 자동차나 전철에서 그런 소식을 접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동료나 가족과 이를 화두 삼아 대화를 나눈다. 하루 종일 가판대에 놓인 신문의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오고, 스마트폰에서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온갖 소식들이 날아든다.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일상을 보내든, 어떤 삶을 살아가든 상관없이, 우리 곁에는 늘 뉴스가 함께한다. 대부분 부정적인 뉴스들이다.

이 책 『우리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의 저자 로냐 폰 부름프자이벨은 저널리스트이고, 이야기를 사랑하며, 신문을 좋아하는 평범한 기자 출신이다. 독일의 유력지 〈차이트(Die Zeit)〉 편집국 정치부에서 근무하던 시기에 아프가니스탄 카불로 건너가 2년간 통신원으로 활동했다. "어쩌다 뉴스 읽기를 그만두었는지, 어쩌다 그리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결정이었지만, 분명 의식적인 결정이었고, 그 순간부터 나를 둘러싼 세상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만은 똑똑히 기억난다."고 이 책의 첫 문장에 썼다. 『우리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바로 카불에서의 경험과 고민에서부터 비롯된 책이라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하루 24시간을 뉴스 속에서 산 저자가 이젠 신문·방송의 뉴스를 읽지도, 보지도 않는다. 왜? 저자는 자신의 주변 변화를 이 책에 쓰고자 하는 게 아니다. 뉴스가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과 관련해 최근 몇 년 동안 알게 된 내용을 다루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저자에 따르면 뉴스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소식을 이야기로 만들어 전한다. 독자나 시청자들은 뉴스를 읽고, 본 다음 이야기로 기억한다. 저자는 이야기 속을 돌아다니며 마음껏 다른 세계를 구경하고, 다른 시각으로 세계를 발견하는 게 좋았다고 말한다. 기자라는 직업을 오랫동안 자부심을 갖고 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 순간 다시 땅에 발을 딛고 현실로 돌아오고 싶어질 때까지 실컷 이야기 속에 몰입하는 시간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고 회상하기도 한다. 저자는 그것을 "마법 같은 일", "마법 같은 시간"이라고 되돌아본다.

저자는 "우리가 읽고, 보고, 듣는 이야기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주변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접하는 이야기들, 우리가 전달하는 이야기들은 생각보다 더 많이 우리 삶을 좌우한다는 말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경험을 기억으로 저장하기 위해서도 이야기가 필요하다. 타인의 눈으로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공감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야기는 의미를 만들어내고, 공동체를 형성한다. (중략) 표면적이고 사소한 일에서부터 삶을 송두리째 뒤바꿀 수 있는 중대한 일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내리는 거의 모든 결정은 우리가 평소 어떤 뉴스를 접하고 사는지, 어떤 이야기를 소비하고 사는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p.13~14)

지금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 전쟁과 갈등, 재난과 위기의 소식들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어 우리의 일상을 채우고 있지는 않은가. ‘세상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희망은 없다’는 무력감과 냉소주의가 우리의 세계관을 잠식하고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독자는 믿는다.


책에 따르면 모든 이야기는 세상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변화시킨다. 개별적인 이야기 하나하나가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들이 모여 신념을 형성한다. 신념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결정한다. 우리의 의사결정에도,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신념은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것도 신념이며, ‘모든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만 생각한다’거나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라면 이룰 수 있다’는 것도 신념이다. 신념은 종종 자기충족적 예언이 된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믿으면, 일상에서 그 믿음에 부합하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고, 이에 따라 그 믿음이 세계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고 확신하게 된다. 하지만 신념은 변화될 수 있다. 우리가 서로 나누는 이야기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신념도 변화시킬 수 있다.

세계의 석학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상에서 지배적인 종이 된 가장 큰 이유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꼽았다. 인간은 역사 이전 시대부터 이미 이야기를 만들고, 전파하고, 공유함으로써 연대하고 결속했다. 이야기는 인간 개개인의 자기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집단의 규율이 되고, 역사가 되고, 신화가 되었다. 이야기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위해 굳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차원, 종의 역사의 차원까지 확장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갓 태어나 인간으로서 삶을 시작한 이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스스로 이야기가 되고, 그런 숱한 이야기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개인으로서, 집단으로서 삶의 서사를 형성해 나간다. 인간의 삶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 『우리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바로 ‘이야기하는 존재’로서 우리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이야기를 수집하고 전파하는 일을 하는 저널리스트다. 그는 이야기를 쓰고 전달하는 일을 하면서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는다. 그건 바로 우리가 ‘부정적이기만 한 이야기’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이렇듯 부정적인 이야기들만 넘쳐날 때, 우리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기대나 믿음을 접은 채,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든다고 지적한다. 부정 일변도의 이야기가 개개인의 삶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커다란 해악을 끼치는지를 깨달은 저자는 이야기하는 존재로서 우리에게 묻는다.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당신은 우리의 미래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길 원하는가?’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선택하고 소비하며, 또 어떤 이야기를 재생산할 것인가는 개인의 삶뿐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행위가 된다. 이는 미셸 푸코가 권력과 지식의 관계를 논했듯, ‘이야기’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매개를 넘어 권력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기제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이야기 주체’로서의 자각을 촉구한다. 수동적인 정보 수용자가 아닌, 자신의 삶과 세상의 서사를 능동적으로 재구성하라고 강조한다. 심리학자 조디 잭슨이 말한 것처럼 ‘당신이 읽는 것이 바로 당신’이며, SNS와 유튜브 시대에 적용한다면 ‘당신이 보는 것이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고, 신념을 형성하고, 이에 기초한 행동에도 영향을 끼친다면,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을, 우리의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이야기는 무엇인가. 저널리스트로서 저자가 이 화두를 틀어쥐게 된 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 수십 년째 전쟁의 참화 속에 놓여 있던 아프가니스탄 현지 취재에 나서면서부터다. 아프가니스탄의 사정은 분명 좋지 않았다. 예기치 못한 테러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고, 전쟁 이후 가난에 허덕이던 어느 가족은 온 식구들이 마약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인가. 저자가 본 것은 참혹한 현실만은 아니었다. 거기서도 삶은 계속되고 있었고, 바깥세상에서 고개를 외로 꼬고 보듯 오로지 절망만이 가득한 것은 아니었다. 일상을 살아가며 더 나은 내일을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을 소재로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절망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소위 ‘이야깃거리’가 되고 ‘기사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대체로 ‘나쁜’ 뉴스, ‘부정적인’ 소식에 귀 기울일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부정적인 뉴스의 전파자가 되기를 자처한다. 이런 경향은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에서도 드러난다. 우리는 불안해지면, 두려움을 더 불러일으키는 정보를 수집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가벼운 감기나 바이러스성 위장염을 겪으면서도, 혹시 암은 아닐까, 심근경색 전조 증상은 아닐까, 다른 치명적인 질병에 걸린 건 아닐까 의심한다. 저자는 자신도 카불에서 그런 순간들을 뼈저리게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테러가 벌어진 뒤, 관련 뉴스들을 계속해서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온 도시가 테러에 휩싸여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부정 일변도의 이야기가 가져다주는 가장 문제는, 사람들로 하여금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무력감’에 빠지도록 만든다는 데 있다. 그것이 전쟁에 대한 이야기이든, 범죄에 대한 이야기이든, 혹은 사회적 부정의에 대한 이야기이든 간에, 세상이 얼마나 나쁘고 절망적인 상황인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상황을 개선시킬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변화와 진보에 대한 의지를 다져야 할 자리에 냉담함과 무관심이 자리 잡게 된다. 어차피 모든 것이 나빠지고 있는데, 굳이 변화를 위해 싸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튀르키예의 소설가 엘리프 샤팍은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번개처럼 빠르고 광범위하게 야만적인 폭력이 발생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꼭 더 많은 사람들이 부도덕해지거나 악해질 필요는 없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무감각해지기만 하면 된다. 무관심하고, 고립되고, 파편화된 채 자기 삶에만 너무 골몰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라는 상태가 될 때,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는 관심도 없고 전혀 관여하지 않는 상태가 될 때가 위험한 순간이다. 감정의 결여는 모든 감정 중 가장 위험한 감정이다.” 나쁜 소식, 부정적인 이야기에 길들여진 개인들의 집단적 무관심과 냉담함이 가장 위험하다는 얘기다.


저자는 세상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비관주의’를 넘어, 실은 점점 나아져 왔으며 앞으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낙관주의’로의 전환을 주문한다. 이와 함께 낙관주의는 비현실적 몽상이 아니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현실 부정을 하는 것도 아니라면서, 작금의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우리가 상황을 개선시키는 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비관주의는 미래가 과거보다 더 나을 수 있음을 믿지 않는 것이다. 낙관주의는 아무 생각 없이 양지의 아늑한 벤치에 팔짱을 끼고 앉아, 어차피 모든 것이 잘될 거라는 안이한 믿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낙관주의는 모든 일에 우리의 행동이 중요하며, 우리가 함께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또한 문제에 봉착했을 때 곧장 포기하느냐,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느냐에 따라 커다란 차이가 생긴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우리 인간 사회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우리가 속한 사회를 어떤 이야기로 채워 나가느냐는 바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우리의 지금을, 우리의 미래를, 절망과 비관의 이야기로 단정 짓지 말고, 희망의 이야기로 만들어 나가자고 말하고 있다.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저자 : 로냐 폰 부름프자이벨(Ronja von Wurmb-Seibel)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이며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이기도 한 저자는 〈차이트Die Zeit〉 편집국 정치부에서 근무하던 시기에 아프가니스탄 카불로 건너가 2년간 통신원으로 활동했다. 《우리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바로 카불에서의 경험과 고민에서부터 비롯된 책으로, 출간 직후 독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우리는 매일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갖가지 소식들과 이야기들에 둘러싸여 산다. 저널리스트로서 저자가 다룬 ‘뉴스’ 역시 그런 ‘이야기들’과 다르지 않다. 저자는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이 어우러진 인간 존재의 삶 그 자체가 이야기이며, 우리가 읽고, 듣고, 보며 전파하는 뉴스들 역시 삶의 이야기들이라고 믿는다. 문제는 최근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함께 급속도로 확산되는 이야기들이 온통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색채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많은 매체들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대안과 희망’을 제시하지 않은 채 ‘부정적이기만 한’ 메시지를 전하는 데 열을 올린다. 저자는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나쁜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없다는 무력감에 빠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제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이야기,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는 이야기 말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다.


역자 : 유영미


연세대학교 독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아동 도서에서부터 인문, 교양과학, 사회과학, 에세이, 기독교 도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더 클럽』, 『삶이라는 동물원』, 『안녕히 주무셨어요?』, 『부분과 전체』, 『소행성 적인가 친구인가』, 『지금 지구에 소행성이 돌진해 온다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감정 사용 설명서』, 『인간은 유전자를 어떻게 조종할 수 있을까』, 『내 몸에 이로운 식사를 하고 있습니까?』,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 『여자와 책』, 『평정심, 나를 지켜내는 힘』, 『나는 왜 나를 사랑하지 못할까』 등이 있다. 2001년 『스파게티에서 발견한 수학의 세계』 로 과학기술부 인증 우수과학도서 번역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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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의 항해
앤 그리핀 지음, 허진 옮김 / 복복서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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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감동적이며 가슴 아픈 미스터리." 가족의 상실과 다시 이어진 유대를 그린 우아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절묘한 구성으로 긴장감을 이끌어 차분하지만 끈질긴 유대의 끈을 잡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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