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이진의 삶은 이지하지 않다』에는 세 편의 단편 소설이 담겨 있다. 「드림래더」, 「도마 위의 생」, 「이진의 삶은 이지하지 않다」 등이다. 각 단편마다 주인공의 나이와 인물이 다르지만 책을 손에서 놓을 때면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태어나 산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그렇다고 페미니즘의 소설은 아니다. 여자이기에, 인간으로서 겪는 어려움이 진하게 배어 있다. 대략 ① 태어나 결혼하기 전까지, ① 결혼 생활, ③ 중년 이후의 삶 등이 실제 저자 채도운의 경험담인 듯 생생하게 담겨 여성으로서의 삶의 애환이 진하게 배어 있다. 이 작품들은 도움과 돌봄, 살림과 살생, 공동체와 개인이 한 덩어리로 뒤엉키는 이야기를 저자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시선의 온기를 담아 담담하게 풀어간다.
첫 작품 「드림래더」는 주인공 시은의 초등학교 시절 때의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바보'라고 소문난 남자아이 옆자리 짝꿍으로 시은을 앉히며 담임 선생님은 평소 시은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책임감 있고 착한 어린이라는 치사까지 곁들여 남자아이의 친구 겸 보호자 역할을 해줄 것을 맡긴다. 초등학생 시은은 다른 친구들이 '바보의 짝꿍' '코흘리개의 신부', '코닦개'라고 놀리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시은은 울먹이며 바꿔 달라고 선생님께 말한다. 그러자 선생님은 시은의 어깨를 붙잡고 한마디를 할 뿐이다. "우리 시은이,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실망이다." 이 말은 시은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콤플렉스가 된다.
시은은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실망'이라는 말이 얼마나 큰 파괴력을 가진 말인지. 선생님이 자신에게 나눠준 애정과 신뢰를 한순간에 거둬 버린다는 사실이 얼마나 무서운지 말이다. 시은은 순식간에 자신이 도덕적으로 타락한, 엉망진창의, 되바라진 아이가 된 것만 같았다. 며칠이 지나고 시은은 몇 번의 각오 끝에, 남자아이의 누런 코를 자신의 소매로 닦아 주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시은은 변하지 않았다. 남이 싫어하는 뒷치다꺼리를 온통 도맡아 했다. 극단의 평가가 뒤따랐다. 위선과 성심, 그 사이에서 위태롭게 서 있으면서도 시은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다녔다.

이런 시은을 눈여겨본 건 대학교 대외정책실의 교직원이었다. 몇 번이고 마주칠 때마다 무겁고 더러운 일을 마치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라는 듯 당연하게 했다. "요즘 세상에 이런 학생이 있다니···" 대외정책실은 매년 지역 활동가, 사업가, 정치가를 초청해 콘퍼런스를 개최하곤 했는데, 행사 뒤풀이 겸 진행된 식사 자리에서 시은을 지켜본 일화를 이야기했다. 당시 지방대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는 학생보다도 신성을 갖춘 인재를 자랑하고 싶어서였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때 그의 앞에 앉아 있던 병원장은 자신의 명함을 그에게 내밀며,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지역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그 학생을 초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은이 찾아간 병원의 프로그램 이름이 이 단편의 제목인 '드림래더', 즉 '꿈(의) 사다리'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드림래더 첫 공식 모임 날이에 열 명 남짓의 학생들이 앉아 있다. 키 170cm 남짓의 50대 초반의 남성과 뒤따라 들어온 남자는 정수리가 벗겨진, 회색 재킷에 검은 등산바지 차림이다. 그는 마이크를 켜더니 "안녕하세요, 저는 드림래더를 이끌어 갈 지역기념사업회 사무처장 김인호라고 합니다." 이후 김인호와 시은, 시은의 대학 친구 희주 등 3인의 인물들이 스토리를 끌어 간다.
"식당에 들어오자마자 굳은 표정을 숨기지 못했던 희주였건만, 그녀는 언제부터 웃고 있었을까. 시은은 그런 희주를 바라보며 자신의 오른쪽 입꼬리를 올리고, 그다음 왼쪽 입꼬리를 바짝 끌어올렸다. 친구인 승재의 말이 옳았다. 결국 자신을 붙잡는 건 현실이 아니라, 스스로가 걸어 둔 기대일지도 모른다."(p.20)
"기대는 마음의 빚이야. 마음에 달아 두지마." 식당으로 위장된 정치 행사에서 청년들의 손ㅡ그중에서도 여성의 손ㅡ이 밥을 차리고, 침을 닦고, 사진을 찍고, 피켓을 든다. 돌봄과 봉사, 무급 감정노동이 '착함'이라는 미덕으로 호출될 때, 여성은 더 빨리 앞줄에 서게 된다. 약속했던 취업 연계는 돌아오지 않고, 되돌아온 건 첫 장면의 말이 반복될 뿐이다. "시은아··· 실망이다."
이 작품은 길들이는 말로 시작해, 기대-실망-재기대의 고리에 청년을 묶어 두는 한국식 돌봄·정치의 장치를 파헤친다. 박수와 사진 뒤에 숨은 ‘공짜 노동’의 역설을 드러내며, “누굴 위해, 누가 무엇을 닦고 있나”라는 질문을 남긴다.

「도마 위의 생」은 일상의 부엌에서 시작한다. 물고기·생선, 치킨·헨, 쉽·램·고트···. 아이의 질문이 분류를 흔든다. 모든 것이 '식재료' 하나로 정의된다면, 사람을 부르는 방식도 그 꼴을 닮는다. '여자'는 주부·엄마·아내를 거쳐 결국 '살림하는 손'으로 축소된다. 이름을 줄이면 역할이 줄고, 역할이 줄면 권리도 줄어든다. 이 작품은 이 위험한 등식을 조용히 조명한다. 곧 드러나는 건, 그 분류마저도 결국 먹기 위해 생명을 가르는 인간의 이름 짓기라는 사실이다.
이 작품에는 고교 시절 폭력을 회고하는 일인칭 독백이 나온다. 가해의 흔적이 오래 남는다. 저자는 '손의 기억'을 불러내, 타인의 온기를 빼앗는 폭력의 촉각과 주부가 처음 부엌에서 생물을 죽여 상에 올릴 때의 촉각이 어떻게 닮아 있는지 보여준다. 즉, 식(食)을 위해 생(生)을 가르는 이름 붙이기의 폭력이 어떻게 일상으로 스며드는지, 그리고 타인의 온기를 빼앗던 폭력의 촉각이 ‘살림하는 손’의 첫 살생과 닮아 있음을 저자는 포착해 낸다. “살림은 어디까지가 살생과 분리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독자들의 손을 멈추게 한다. 다른 두 편의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길이가 매우 짧지만 전하는 메시지를 담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이 소설은 살림과 육아, 끝없는 노동과 희생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점점 지워져가는 중년 여성의 삶을 추적한다. 그녀의 일상은 마치 도마 위의 생선 같다. 자르고 다듬고 버려지는 삶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비유다. 저자는 도마 위에서도 여전히 꿈틀거리는 ‘생’을 보여준다. 완전히 죽지 않은 존재의 온기, 그 미세한 움직임이야말로 인간이 끝까지 놓지 않는 삶의 본능이다.
표제어로 쓰인 「이진의 삶은 이지하지 않다」는 쉰일곱 살 '이진'의 작은 반지에서 출발한다. 이진은 시장-죽가게-집을 오가며 흥정으로 버텨 온 사람이다. "이게 내가 사는 방식인데 누가 뭐라고 해!"라는 말은 생활 습관이 아니라 존엄을 지키는 방식이다. 어느 날, 서점 행사에서 본 한 줄기 은빛이 그녀의 세계로 들어온다. 반지는 겉으로는 사치처럼 보이지만, 실은 “나도 값어치가 있다”는 자기 인정 욕구의 발로이다. 그러나 정년 없는 가게, 집으로 되돌아온 노동, 장갑 한 켤레가 덧씌우는 의무 속에서 중장년 여성의 욕망은 쉽게 ‘소모품’으로 사용될 뿐이다.

은퇴 날, 남편 고환은 반지를 선물한다. 하지만 그 반지를 주고받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장면을 들여다보면 이진의 삶이 이지(easy)하지 않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정년 없는 죽가게는 다음 날도 문을 열고, 퇴직한 남편의 쇠진한 노동은 집안으로 되돌아오며, 아들의 선물인 고무장갑은 결국 이진이 사용하게 될 것이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진이 자신을 소진해 얻은 그 반지는, 누군가에게는 취향 따라 쉽게 갈아 끼우는 소모품일 뿐이다. 다음 날도 그녀의 손은 새벽시장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있을 것이다. 값(price)은 지불하지만, 값어치(value)를 지키는 일은 여전히 그녀 몫이다. 간극, 그리고 “노년의 욕망은 죄인가”라는 사회의 물음에 맞서는 한 사람의 체온을 섬세하게 지켜낸다.
반면 이진은 어느 날 비슷한 연배의 자신과는 너무 다른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은, 작가 하이안의 삶을 목격하고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녀의 손에서 반짝이는 은반지에 집착한다. 그녀는 그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보 같은 짓이라고 속으로 뇌이면서도, 이진에게 공감이 간다. 비록 외견상 고상해 보이지는 않지만, 이진의 삶도 충분히 반짝이는데, 아무도 그걸 알려고 하지 않고 이진 자신조차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 시들어 간다.
“나는 나라고 생각했어. 오롯하고도 개별적인 존재로서 ‘미아’ 말이야. 하지만 이제 알겠더라고. 나는 과거로부터 건너온 무수히 많은 존재의 집합체에 불과하다고 말이야. 아무리 세대가 달라져도, 부여된 여성의 의무에서는 독립할 수 없는 거야. 아무리 교육받고 지식을 쌓아도 닮기 싫었던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나를 봐. 엄마도 이런 나를 바라지 않았겠지. 자신의 미래를 희생해서 투자한 결과물인데. 그런데 나를 봐, 나도 그저 과거에 있던 그런 여자 중 한 명이었을 뿐이야.”(p.109)
여기에 수록된 단편소설은 잔잔하게 읽히며 내용 또한 요란스럽지 않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언뜻 행복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깊은 절망에 빠져들기도 한다. 짧지만 강렬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저자는 책의 뒷 부분에서 에세이 「진상(眞相)」으로 〈작가의 말〉을 대신한다. 이 에세이에는 '엄마의 진상을 이해하는 순간은 내가 진상이 될 때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누구나 어렸을 적에는 자라서 엄마가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너무 먼 이야기이고, 설령 엄마가 된다 해도 '우리 엄마'와는 다른 모습을 상상할 뿐이다. 가격을 흥정하는 엄마, 갓길에 아무렇게나 차를 세워두는 엄마, 카페에서 큰 목소리로 대화하는 엄마, 식당에서 남은 음식을 주섬주섬 싸오는 엄마. 그 모든 모습을 닮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의 엄마 모습을 닮기 싫었다고 에세이에서 털어놓는다. "복숭아를 깎으며 씨앗에 붙은 과육을 먹으려, 손에 과즙을 줄줄 흘리며 먹는 엄마의 습관이 싫었다"고 말한다. 또 "락스물로 얼룩진 티셔츠를 버리지 않고 계속 입는 것도, 불편하다며 브래지어를 벗고 티셔츠만 걸치는 그 적나라함도, 어느 날 시장에서 짝퉁 지갑을 사오던 일도 정말이지 싫었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흔히 매우 부적절한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사람을 자주 본다. 지하철이든, 버스든, 극장이든 이른바 '진상'을 자주 목격한다. 저자는 "진상(眞相)의 본래 뜻은 사물의 참된 모습을 말하는 단어였다"며, "그러다가 억지를 부리거나 무례한 사람들 두고 '그 사람의 본모습이 드러났다'라는 의미에서 '진상이 드러났다'라고 쓰이기 시작해, 이젠 진상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람을 지칭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겨울이 되면 조금이라도 일찍 보일러를 끄려고 애썼고, 여름에는 특별한 날에만 에어컨을 켜려고 리모컨을 숨겨 두곤 했다. 마트에서 환불을 요구하던 엄마의 목소리는 진상의 소동이 아니라, 오만 원과 오백 원이 뒤엉킨 생의 산수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미워하던 수많은 장면 속에도 엄마의 맥락이 담겨 있었다."(p.137)고 저자는 사유한다.
저자 : 애매한 인간(채도운)
1992년생. 자격증, 이력, 경력, 전문성, 돈, 재능 등 모든 게 애매한 인간. 무난하게라도 살고 싶어 열심히 공부하다 마침내 공공기관 입사에 성공했다. 하지만 힘겹게 4년을 버티고 퇴사, 나고 자란 진주에서 무작정 카페를 열었다. 그게 온통 애매하기만 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다. 주인을 닮아서일까? 카페도 애매하다. 카페인가, 서점인가, 마을회관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매함이 주는 힘을 믿기에, 이 공간을 방문해주는 손님, 친구들, 가족과 함께 하루하루를 충실히 잘 살아내고 있다. 애매한 인간의 카페 창업기를 브런치에 연재하다가 밀리의 서재에서 『엄마가 카페에서 때수건을 팔라고 하셨어』 전자책을 출간했다. 오늘도 진주에서 카페&서점 ‘보틀북스’를 애매하게 운영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