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신뢰 - 인생의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 현대지성 클래식 36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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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 에머슨의 첫 만남은 책을 통해서이지만 어색하게도 그의 저서를 통한 것은 아니다. 그가 남긴 책이나 말 중에 수많은 명언이 있어서 세계명언집을 통해 독자와는 일찌감치 '한줄의 명언'으로 만났다. 명언의 수로 보자면 아마 가장 많은 명언을 올린 인물이 아닌가 싶다. 왜 에머슨의 말과 글이 명언집에 많이 올라 있는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우선 그가 남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뜻이 깊다. 다음, 화려한 문장은 아니지만 어휘 사용에 자유로울 정도로

적절한 단어를 적절한 위치에 놓는다. 또 한 문장 한 문장을 떼어놓고 보아도 그 자체의 문장에 모순이 없고, 전체 맥락에도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휘력이 풍부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번역된 책이라 번역자가 한몫 거들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에머슨은 이 책 저 책에 등재된 워낙 많은 명언과 명문장을 남겼기 때문에 어떤 명언으로 처음 만났는지 기억에 없지만, 명언 때문에 맺어진 인연임은 틀림없다. 그의 명언은 독자의 인생에도 한몫을 한 셈이 되었다고 독자는 생각하고 있다.

최근 인구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철학자 니체도 에머슨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에머슨의 초월주의가 니체의 '초인(超人)'의 사상적 뿌리이다. 니체는 여행길에 항상 에머슨의 책을 가지고 다녔고, 「자기 신뢰」를 읽으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구상했다고 한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에머슨의 애독자이며, 마이클 잭슨은 에머슨의 사상을 노래에 녹여내 표현했고,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에머슨의 제자이자 사상적 동지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옮긴이 이종인은 책 뒷부분에 쓴 「해제」를 통해 소로에 주목하는 이유를 『월든』에서 에머슨의 자연관을 읽을 수 있기 때문으로 밝힌다.

"에머슨의 「자연」이라는 에세이는 추상적인 이야기로 그 뜻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지만, 소로는 구체적 사물과 사건으로 자연이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소로는 『월든』에서 자연의 대상을 우화(寓話)에 연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대상이 동물이라면 '돼지=탐욕', '여우=교활', '황소=우직' 등으로 인간성의 어떤 부분을 우의적으로 말할 수 있는데 이처럼 자연의 사물은 인간성과 조응한다는 뜻이다."

또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했던 강의의 핵심도 일맥상통한다.

“다른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가는 데 인생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이 생각한 대로 따라 사는 오류를 범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견해 속에 자기 내면의 목소리가 파묻히지 않도록 하세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직관과 열정을 따라갈 수 있는 용기입니다.”

최근에는 BTS의 멤버 김남준이 이 사람의 도서를 소개하면서 전 세계 아티스트들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음을 증명하기도 했다. 그렇다. “너 자신을 알라”라고 소크라테스가 말했다면, “너 자신을 믿으라”라고 에머슨은 말한 것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미국 독립 이후 가장 활발한 사상가이자 철학자이다. 특히 그의 에세이 「자기 신뢰」는 수많은 집필 에세이 중 하나이지만 가장 널리 읽히고 미국 독립 이후 개척 사회의 원동력이 될 만큼 미국 사회는 물론 세계 지성사에도 큰 영향력을 끼쳤다. 「자기 신뢰」는 제목 자체가 지금은 보통 명사로 쓰이고 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명저로 평가받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즐겨 읽는다고 알려져 근래 200년간 가장 널리 읽히는 책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에머슨 사상은 '초월주의'로 널리 알려졌는데, 이 사상이 가장 잘 담겨 있는 에세이가 「자기 신뢰」이다. 그리고 그 자기 신뢰를 바탕으로 인생과 자연 그리고 신성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 에세이 「운명」은 에머슨의 저서 『인생의 처세』에 첫 번째로 실려 있을 정도로 대표적인 문장이다.

그리고 마지막 에세이 「개혁하는 인간」은 유출 혹은 진화의 개념에 따라 인간은 한없이 향상하는 쪽으로 자신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로, 번역 소개되었다. 이번에 현대지성이 발간한 『자기 신뢰』는 앞서 언급한 「자기 신뢰」와 「운명」, 「개혁하는 인간」을 한 권에 묶었다. 특히 「개혁하는 인간」은 꼼꼼한 해제와 가독성 높은 완역을 거쳐, 국내에 첫 선을 보였다.

 

 

책에 따르면 에머슨은 대중 강연을 많이 했지만, 평소 수줍음을 많이 탔고 동물적 야성은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콩코드의 현자'로 불렸으며 19세기 후반 미국 사상계에서 가장 우뚝한 존재였고, ‘공공 지식인’(public intellectual)으로 통했다. 시인 프로스트는 가장 위대한 미국인으로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과 함께 에머슨을 꼽았다. 미국의 저명한 비평가 로렌스 뷰얼은 “에머슨의 정신은 미국의 정신이자 미국 그 자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에머슨이 살았던 19세기, 미국은 정치적으로는 독립했지만, 문화와 사상적으로는 영국이나 유럽에 아직도 종속되어 있었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는 자기만의 국가 정신이 필요했다. 에머슨은 30대 중반부터 시작한 40년간의 강의로 미국이 강대국으로 도약하려면 유럽으로부터 사상적으로 독립할 것과 미국인만의 길을 가야 한다고 줄곧 주장했다.

 


 

에머슨의 저서는 당대 미국과 영국에서도 널리 읽혔고 또 유럽 대륙에까지 잘 알려져 있었다. 가령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에머슨의 저서 『인생의 처세』를 읽고 에머슨에게서는 세네카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깊은 명상으로 이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에머슨의 글은 처음 읽으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치 시처럼 느껴질 정도로 축약된 표현을 많이 사용하며, 당시 독자들이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다 생략해버리는 불친절함 때문이다. 그의 에세이는 대중 강연을 마친 후 에머슨이 직접 원고를 수정해서 낸 것이라,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횡설수설하는 말로 들릴 수 있다. 특히, 지금껏 대부분 번역본이 시적 표현이나 난해한 사상이 나오면 생략하거나 지나치게 의역함으로써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문장이 많았다. 그렇다. 에머슨은 친절하지 않다. 그러므로 압축된 시어와 사상을 현대 독자, 특히 문화와 시간대가 다른 한국인 독자들이 읽어내기 위해서는 더더욱 가이드가 필요하다.

이 글을 읽고 인용하는 독자의 머릿속에는 한 사람의 철학자가 떠오른다. 니체, 그렇다. 프리드리히 니체와 말과 글이, 그리고 행동까지도 닮은 점이 많다. 우연인가, 필연인가. 독자의 지식으로는 밝혀낼 재간이 없지만 두 인물에 대해 비교 연구한다면 분명 좋은 논문 하나는 탄생할 것 같다는 느낌이다.

 


 

에머슨의 「자기 신뢰」 한 부분을 인용해본다. 옮긴이가 한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장미에게는 시간이 없다. 단지 장미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존재하는 매 순간 완벽하다. 잎눈이 트기 전에 그 온 생명이 약동한다. 꽃이 활짝 피었다고 해서 그 활동이 더 많아지는 것도 아니고, 잎 없는 뿌리 상태라고 해서 활동이 더 적어지는 것도 아니다. 장미의 자연(본성)은 충족되어 있고, 동시에 모든 순간마다 자연을 충족시킨다.

이에 비해 인간은 뒤로 미루거나 기억한다. 그는 현재에 살지 않는다. 뒤로 눈을 돌려 과거를 한탄하거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풍요로움을 의식하지 못한 채 발끝으로 서서 미래를 내다보려 한다. 장미처럼 시간을 초월하여 자연(본성)과 함께 현재에 살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행복하거나 강인해질 수 없다."

- p.38~39, 「자기 신뢰」 중에서

 


 

에머슨이 내세우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오버 소울이다. 독자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부분이다. 각 개인의 영혼은 오버 소울에서 유출된 것으로, 그 안에 잠재적으로 오버 소울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자기 신뢰는 영혼의 지시에 따라 자연과 합일하면서 사는 것이므로 자연관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오버 소울이며 자신의 영혼을 믿고 오버 소울을 통해 일자(一者)와 합일하는 것이 자기 신뢰다.

영혼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통하여 운명의 이치를 깨닫고 물질주의에 갇혀 있는 정신을 회복시키는 것이 그가 주장하는 핵심 주제이자 이 글을 통해 교훈 삼아야할 덕목이다. 철학적이라 어려운 듯 느껴지지지만 한편으론 깊은 사유의 재료를 던져주는 것으로 독자에게는 오히려 반갑다. 이 책은 결국 인생을 살아가며 행해야할 기본적인 마음가짐과 삶의 즐거움을 찾기 위한 실천사항들을 직관적으로 알려주는 삶의 지침서가 될 만하다. 특히 후미에 실려 있는 이종인 역자의 「해제」가 에머슨과 그의 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자기 신뢰의 네 가지 실천 방법

1. 진정한 기도를 올려라

2. 어디를 가든 너 자신이 되라

3. 독창적인 사람이 되라

4. 문명의 본 모습을 파악하라

 


 

저자 :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

 

1803년 5월에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겨우 8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에머슨 가족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어머니는 막심한 고생 속에서도 네 아들을 모두 대학에 보낼 정도로 의지가 강했다. 1817년(14세)에 하버드대학교를 입학하고, 그 후 하버드 신학대학원에 진학했으나 건강 문제로 학업을 중단한다. 1829년(26세) 3월, 보스턴 제2교회 목사로 일하기 시작했지만, 형식적인 종교의식에 실망하여 1832년 목사직을 사임하고 유럽 지역을 두루 여행하면서 견문을 넓힌다. 1834년(31세) 콩코드로 이사하여 월든 호수 근처의 땅과 집을 사고,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47년 동안 왕성한 지적 노정을 시작한다. 에머슨의 제자 소로는 이 호수를 배경으로 『월든』을 펴냈고, 에머슨 자신도 이 숲과 호수를 산책하면서 많은 영감을 얻고 안식을 누렸다.

1838년(35세) 하버드 신학대학원 졸업반에서, 형식적이고 영감 없는 설교에 대해 맹렬하게 비판하자 목사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사서 즉각 이단 취급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에머슨은 미 전역을 돌아다니며 40년간 총 1,500회 이상의 강연을 하면서 수많은 미국인에게 오롯이 자기 힘으로 우뚝 서는 삶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그는 미국이 강대국으로 도약하려면 유럽으로부터 사상적으로 독립할 것과 미국인만의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머슨은 대중 강연을 많이 했지만, 평소 수줍음을 많이 탔고 동물적 야성은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콩코드의 현자”로 불렸으며 19세기 후반 미국 사상계에서 가장 우뚝한 존재였고, ‘공공 지식인’(PUBLIC INTELLECTUAL)으로 통했다. 시인 프로스트는 가장 위대한 미국인으로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과 함께 에머슨을 꼽았다. 대표 저서로는 『자연』, 『제1 에세이』, 『제2 에세이』, 『인생의 처세』, 『대표적 인간』, 『사회와 고독』 등이 있다.

 

역자 : 이종인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과 성균관대학교 전문 번역가 양성 과정 겸임 교수를 역임했다. 지금까지 250여 권의 책을 옮겼으며, 최근에는 인문 및 경제 분야의 고전을 깊이 있게 연구하며 번역에 힘쓰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진보와 빈곤』, 『리비우스 로마사 세트(전4권)』, 『유한계급론』, 『공리주의』, 『걸리버여행기』, 『로마제국 쇠망사』, 『고대 로마사』, 『숨결이 바람 될 때』, 『변신 이야기』, 『작가는 왜 쓰는가』, 『호모 루덴스』,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중세의 가을』, 『마인드 헌터』 등이 있다. 집필한 책으로는 번역 입문 강의서 『번역은 글쓰기다』, 고전 읽기의 참맛을 소개하는 『살면서 마주한 고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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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생존 수업 - 인공지능 시대가 불안한 사람들에게
조중혁 지음 / 슬로디미디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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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는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다. 많은 경제학자와 미래학자들이 예견한 대로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1년 넘게 맹위를 떨친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안책도 뚜렷하게 마련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형국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가장 실감나게 하는 인공지능(AI)은 우리 실생활에 파고들면서 우리 일을 도와 삶이 편리해질 것으로 믿었던 예상은 빗나가는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일자리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실감하기도 전에 두려움을 갖게 하는 AI는 단순 일자리뿐만 아니라 판사의 재판, 의사의 수술 등을 파고들고 있고, 심지어는 창조 상상력의 최고 능력까지 갖출 가능성을 내보이고 있다.

이처럼 각계 분야에서 우리의 일을 편리하고 신속하게 도와줄 줄 알았던 AI는 우리 일자리를 빼앗는 수준까지 치고 올라오고 있다. 이 때문에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예견하고, 대비하고 있던 산업계 각 분야에서 패닉 상태에 이르는 등 심각한 실정이다. 인공지능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발전되어 있고 그 속도와 파급력은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아직까지 인간의 존속성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점점 일자리는 사라지고 있고, 언론에서도 어떤 일자리가 매해 얼마나 사라지고 있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사라질 것인지 구체적인 데이터를 들며 이야기한다.

 


 

생각하는 기계는 사람에게 위협이 된다. 최근 들어 사람이 발전하는 속도보다 기계가 발전하는 속도가 더 빠르게 되었고, 이대로라면 몇십 년 내로 사람을 능가하는 기계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인공지능과 사람이 공존하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책 『인공지능 생존 수업』은 엄밀히 말하면 AI를 인간이 다루기에는 이미 수위를 넘어서 있어 '공존'의 법을 말하고 있다. 저자 조중혁은 AI가 인간의 존엄성마저 파괴하는 위험한 상태에 이르기 전에 공존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 이 책을 집필한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을 4개의 장으로 구분해 '생존 수업'을 진행한다.

 

PART 1 인공지능은 어떻게 인류를 바꾸고 있는가?

PART 2 기회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PART 3 인공지능,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PART 4 인공지능 시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책에 따르면 세계 최초로 상업화된 컴퓨터를 생산한 IBM은 1958년 자신들의 컴퓨터를 홍보하면서 “이미 전기를 이용해 계산할 수 있는 기계가 발명되었다. 컴퓨터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지만 서서히 진화할 것이다. 컴퓨터는 사람의 창의력과 상상력, 수학을 위해 태어났고 이것을 발전시킬 것이다”고 말했다.

또 에릭 드렉슬러(Eric Drexler)가 쓴 『창조의 엔진』은 시대를 앞서간 예언서로 불과 28년이 지났을 뿐인데 그는 IBM의 주장과 다르게 “분자 조립 기계와 생각하는 기계는 사람과 생명에 근 본적인 위협이 된다. 사람이 발전하는 속도보다 기계가 발전하는 속도가 더 빠른 현실에 비추어볼 때 아마도 몇십 년 내로 사람을 능가하는 기계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이러한 기계와 사람이 서로 공존하며 사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인류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고 단언했다.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인간의 존속성에 대한 우려를 꺼내는 사람이 드물다. 하지만 사회적 존속에 대해서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점점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고, 실제로 언론에서도 어떤 일자리가 매해 얼마나 사라지고 있으며 앞으로 더 얼마나 사라질 것인지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공한다. 물론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하는 쪽에서는 그 숫자를 제시한다. 그러나 국가의 정책과 복지 등을 결정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의미 부여를 할 수 있겠지만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 개인에게는 별 이득이나 의미가 없다. 사라지는 일자리가 많을지 새롭게 생기는 일자리가 많을지는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누군가의 일자리는 반드시 사라진다는 것이며 그것이 내 일자리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직업이 사라진다고 하면 그냥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왜 사라지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며 "이유를 알아야 현재를 예측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어 "이 책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거품을 뺀 후 그 특징을 살펴보고 앞으로 어떻게 인공지능을 이해하고 준비해야 할지"를 모색하고 있다. 또 일자리 감소에 대해 은행 창구 업무자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며 두려워하거나 공포에 빠질 필요는 더욱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유는 "은행 창구 업무가 불필요하게 될 때 창구 업무 외에 다양한 업무가 생긴 것처럼, 앞으로 모든 분야에서 인공지능을 교육하거나 훈련시키는 일자리가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생긴다"는 희망적 미래를 내놓는다. 이와 더불어 이런 업무를 통해 연쇄적으로 생기는 일자리도 많아질 것이며, 중요한 것은 자신이 창구 직원이라면 어떤 서비스로 자신을 특화시킬 수 있느냐로 귀결된다고 강조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해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어느 정도 발전했는지에 대한 의문에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미국에 비해 2년, 중국에 비해 1년 정도 발전이 늦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특히, 우리나라와 경쟁하는 중국의 속도가 놀라울 정도"라며 경계한다. 저자는 인공지능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데이터의 양이며, 중국은 14억이 넘는 인구에서 만들어내는 엄청난 데이터와 함께 체제의 특성상 개인정보 보호 등의 개념이 부족하기 때문에 데이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음에 우려를 표시한다. 이 점이 발전 속도가 미국을 위협할 정도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안면인식 분야에서는 이미 중국이 미국을 넘어섰으며 미국 국가기술표준연 경진대회에서 2018년부터 1위부터 5위까지가 모두 중국 업체였음을 주지시킨다.

 


 

그렇다면 이토록 위험한 AI가 차후 인간의 존엄성마저 위협한다는 의견이 많은데 왜AI 개발을 서두르는가에 대해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서이고, 소비자는 편리함을 누리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인간의 존엄성까지도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기술이라고 못박는다. 때문에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이유에 대해서 조금 더 근원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조금 길게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세계 3대 인공지능 전문가 중 한 명인 앤드류 옹(Andrew Ng) 박사처럼 직접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이 사람을 위협한다는 주장에 대해 "벌써부터 화성의 인구 과잉 상태를 우려하는 것과 같다"는 반응을 소개하며 인공지능을 만들 때 물리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는 점을 들어 인공지능이 하기 가장 어려운 일은 회사에서 하는 일과 일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일을 만드는 일'과 '일을 해결하는 일'이라는 주장을 내세운다.

 


 

저자에 따르면 인공지능은 약한 인공지능과 강한 인공지능으로 구분되는데 약한 인공지능은 지금 막 꽃 피우는 인공지능으로 알파고처럼 특정 영역에서만 작동한다. 강한 인공지능은 인간처럼 모든 영역에서 지능을 가지는 것인데 이것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인간처럼 고차원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아직 없을 뿐더러 기술적 가능성도 입증된 것이 없기에 가까운 미래에는 불가능하다고 밝힌다.

지금의 인공지능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발달했다. 그래서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다는 우려감이 과거에 비해 커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 이제 가능하게 된 것이 많아진 것이지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신중한 낙관론을 보인다.

 


 

이에 따라 저자는 인공지능에 대해서 막연한 환상은 무모하고, 반대로 무시하는 일은 위험하다고 확신한다. 인공지능에 대해서 장단점을 명확하게 알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인공지능에 대해 '열린 부분'과 '닫힌 부분'을 찾을 것을 주문한다. 저자의 마지막 말은 쉽지만 인상적이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두고 우리가 준비된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공지능에 의해 세상이 변하는 것은 위기입니다. 위기는 해로움이나 손실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위기와 기회를 줄여서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인공지능으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며 위험에 빠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인공지능으로 수없이 생겨나는 일자리에서 기회를 찾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인공지능을 막연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회를 누가 빠르게 잡느냐이기 때문에 준비하면서 기회를 엿보면 됩니다. 준비를 하고 도전을 하는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자 : 조중혁

 

국내 최초의 인터넷 전문 모임이었던 ‘나우누리 인터넷 스터디포럼’의 대표 운영자 출신이다. 1996년 인터넷 전문지였던〈월간 INTERNET〉에 칼럼을 기고하며 IT 칼럼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2001년 국내 최대 프로젝트였던 서울시청WWW.SEOUL.GO.KR 포털 사이트의 초기 메인 기획자로 일했다. 이 포털 사이트는 UN에서 선정한 전자정부 세계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이동통신사 본사에서 기획전략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 자문위원 및 평가위원, 한국콘텐츠진흥원 심사위원, 경기도지사직 인수위원회 4차산업혁명 특별위원회 정책자문위원, 경기도 4차산업혁명위원, 경기도 인공지능 분과 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인터넷 진화와 뇌의 종말》이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올해의 우수교양도서 2013’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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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 - 어느 수줍은 국어 교사의 특별한 시리아 친구 이야기
김혜진 지음 / 원더박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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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싶은 이유가 제목에 이름을 올린 압둘와합이란 인물이 '시리아' 사람이어서다. 독자에게 시리아는 고등학교 다닐 때 배운 세계사와 세계지리 시간에 중동에 있는 그다지 크지 않은 나라며, 이슬람 종교 국가라는 사실 정도였다. 이후 로마제국에 관심이 있어 로마에 관한 책들을 읽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매료됐고, 그가 쓴 『십자군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시리아라는 나라는 머릿속에 완전히 인지되었다.

그러나 세상 변화는 알 수 없는 일인가 싶다. 그들이 민주화 요구를 기화로 내전에 돌입했으며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난민으로 떠도는 '죽음의 땅'으로 변했다. 십자군전쟁 때도 극심한 피해를 입었지만 살라딘(살라흐 앗딘)이라는 유능한 지도자 덕에 무사히 극복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십자군 이야기』에도 지금의 지명 다마스쿠스와 알레포가 나온다. 그때의 지명을 8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도시들은 그 이전에 이미 들어서 있었다. 서유럽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 온 압둘와합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그들의 영화(榮華) 때문이 아니라 가장 비참한 상태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독자의 결례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독자는 지금 치르고 있는 '시리아 내전'에 대해 백과사전을 들여다봤다. 시리아 내전으로 집도, 가족도 잃고 떠도는 난민들에게 하루빨리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내면서 읽었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 3월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Bashar al-Assad) 대통령의 퇴출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에서 시작돼 수니파-시아파 간 종파 갈등, 주변 아랍국 및 서방 등 국제사회의 개입, 미국과 러시아의 국제 대리전 등으로 비화되며 10년째 계속되고 있는 내전이다.

책에 따르면 시리아 내전의 시작은 2011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낙서에서 비롯됐다. 2011년 3월 남부의 작은 도시 다라의 한 학교 담에 혁명 구호를 적은 10대들이 체포돼 고문을 당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는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발포하는 등 과잉 대응으로 일관했고, 이에 알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시리아의 민주화 시위는 알아사드 정권의 무자비한 진압이 가해지면서 점차 무장투쟁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3년 8월에는 시리아 정부군이 다마스쿠스 인근 구타의 교외 지역에 생화학무기인 사린가스 공격을 가해 1,000여 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시리아 사태는 다른 아랍 국가들과는 다르게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종파 갈등으로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시리아 인구 2,200만여 명 중 4분의 3이 수니파임에도, 시아파계 분파인 알라위파(Alawi)가 군과 정부 요직을 모두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시아파 맹주국인 이란과 레바논 헤즈볼라가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고, 이란과 적대 관계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등 인근 수니파 국가들이 반군에 무기와 물자를 지원하면서 사태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혼란상을 틈타 세력을 키운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 북부를 점령하면서 정부군·반정부군·IS 등이 3자가 복잡하게 대치하는 등 나라 전체가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됐다.

 


 

국제정세는 것이 급변하는 경우가 많아 국가와 국민이 스스로 강해지지 않으면 언제나 풍전등화 신세다. 민주화 요구가 내전으로 비화되면서 시리아의 비극은 시작된다. 주변국은 물론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지금은 다소 몰락했지만 아직은 강국으로서의 존재감을 잃지 않은 러시아가 각각 상대 진영을 도우면서 전쟁은 알 수 없는 형국으로 치닫는다.

2014년 9월 미국이 시리아를 공습하면서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으며, 2015년에는 러시아도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면서 사태는 반군을 지원하는 미국과 정부군을 지원하는 러시아의 대리전 양상으로까지 확대됐다. 특히 2017년 4월 4일 시리아 반군 거점 지역인 이들리브 주 칸셰이쿤에서 시리아 정부군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화학무기 공격이 일어나 주민 수십 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에 미국은 참사 이틀 후인 4월 6일 시리아의 샤이라트 공군 비행장을 향해 59발의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을 발사했다.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미국이 IS가 아닌 정부군을 공격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후 고조되던 미국과 러시아의 대립은 2017년 7월 양국 정상(트럼프 대통령-푸틴 대통령)의 휴전 합의로 가라앉기도 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SOHR) 등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내전이 일어난 2011년부터 2018년 9월까지 36만 4,792명이 사망했다. 여기에 간신히 생존한 사람들도 난민이 돼 전 세계를 떠돌고 있는데, 실제 내전 발발 전 시리아 인구는 2100만 명이었으나 현재 시리아 난민은 그 절반이 넘는 1,200만 명에 이른다. 특히 시리아 내전이 수년간 이어지면서 생존을 위해 탈출하는 시리아 난민 문제는 전 세계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다.

쏟아지는 시리아 난민들을 감당하지 못한 주변국들이 점차 국경을 봉쇄했고, 이에 시리아인들이 유럽으로 향하면서 유럽 난민 사태의 원인이 된 것이다. 그러던 중 2015년 9월 터키 보드룸의 한 해수욕장에서 시리아에서 탈출한 세 살배기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국제사회에 난민 위기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이 책의 주인공 압둘와합이 겨우겨우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일상을 찾아가고 있을 즈음, 그의 모국 시리아는 이렇듯 전쟁에 휩싸인다.

독재자 아사드를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시위가 전국에서 일어났고, 정부가 이를 폭력으로 탄압하면서 결국 반군(자유시리아군)이 생겨나고 내전이 시작된 것이다. 초반에는 자유와 민주를 염원하는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반군이 승기를 잡는 듯 보였으나, 시리아를 둘러싼 주변국과 미국, 러시아 등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와합의 고향 락까는 그 악명 높은 IS의 본거지가 되고 만다. 와합의 가족은 IS의 탄압을 피해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되는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한때 시리아 북부 지역의 유력 가문이기도 했던 와합의 가족은 그렇게 난민이 되어 지금 터키에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시리아의 전쟁과 이로 인한 난민 문제를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었던 와합은 시리아를 돕기 위한 모금 운동을 시작한다. 모금 운동을 제대로 하려면 믿을 만한 단체가 있어야 한다는 이 책 저자의 말에 와합은 바로 단체를 만든다. 그게 바로 현재 시리아 난민 구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헬프시리아’다.

저자는 자신의 말이 씨앗이 되어 진짜로 시민 단체가 만들어지자, 어쩔 수 없이(?) 이에 참여하게 된다. 그렇게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헬프시리아는 그동안 작은 규모의 단체임에도 의미 있는 성과들을 냈다. 큰 규모 국제기구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작은 규모의 난민 캠프를 찾아 구호 활동을 펼쳐 왔는데, 적은 예산으로 운영하다 보니 비행기표 값을 아끼기 위해, 와합이 국내 취재진이나 연구진의 현지 가이드 일을 하게 될 때 며칠씩 따로 시간을 내어 인근에서 적절한 물품을 사 필요한 난민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다 현지에서 물품보다 아이들의 교육에 도움이 되는 지원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학교 세우기’에 집중하여, 2019년에는 시리아 쿠부리 지역 난민 캠프 근처에 9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등학교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압둘와합은 시리아에서 최고 대학으로 인정받는 다마스쿠스 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했다.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프랑스로 유학 갈 예정이었지만, 어느 날부턴가 프랑스가 아닌 한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다마스쿠스 거리에서 길을 못 찾고 헤매던 한국인 유학생을 우연히 도운 것을 계기로 한국인 유학생 커뮤니티와 돈독한 관계가 되어, 어느샌가 ‘한국인들의 대부’와도 같이 되어 버린 압둘와합. 시간이 지나 그 친구들이 하나둘씩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자 와합은 그들이 무척 그리웠다. 그러다 그때까지 한국으로 유학 간 시리아인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내가 가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힌다.

가족, 지도 교수, 선배 변호사 들의 만류에도 기어코 선택한 한국행이었지만, 한국에서의 출발은 막막하기만 했다. 시리아와 한국은 수교국이 아니라 국가 장학금은 신청도 할 수 없었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원을 백방으로 찾아 나섰지만 이 역시 만만치 않았다. 면전에서 “솔직히, 나는 이슬람과 무슬림이 싫어. 다른 학교 다른 교수님을 찾아가 보게”라고 이야기하는 교수도 있었다고 압둘와합은 술회한다. 하지만 기적과도 같이 비자 만료를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 한 대학원의 입학 허가를 받았고, 그렇게 한국에서 법학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다. 와합은 지금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아랍 법과 한국 법의 비교 연구’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중학교 국어 교사인 저자는 압둘와합과의 인연이 우연이라고 말한다. 압둘와합이라는 이 청년은 시리아에서 명문 대학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던 엘리트였다. 시리아와 한국 사이의 다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한국에 왔지만, 한국에서의 일상은 전혀 만만치가 않았다. 심지어 그사이 압둘와합의 모국 시리아는 민주화 혁명에 이은 전쟁으로 큰 혼란에 빠진다. 그의 가족도 난민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음은 물론이다.

이 책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는 평범한 중학교 교사가 만난 한 시리아 청년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압둘와합이라는 친구를 두면서 비로소 무슬림과 난민, 이주민 등 우리 사회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의 시선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친구의 이웃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와합과 함께 ‘헬프시리아’라는 구호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기에 이른다. 압둘와합과의 만남에서부터 제주도 예멘 난민 이슈에 이르기까지 저자와 압둘와합이 겪은 여러 이야기를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풀어낸다. 시리아인의 시각으로 '시리아 이야기'는 시리아의 역사·문화·정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아주 소중한 글이다. 한국에는 늘 서구의 시선으로 소개되고 있는 시리아와 중동에 대한 이야기가 못내 불편했던 압둘와합은 이번 기회를 맞아 최선을 다해 자국의 이야기를 전한다.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의 교차로에 정확히 위치한 시리아의 입지 조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로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살고 있는 도시 다마스쿠스, 로마 제국에 기독교 전파의 싹을 틔운 시리아 출신 황제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시리아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독자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시리아가 이슬람 국가로 기독교나 불교 등 타 종교에 배타적인 나라라고 알았다. 독자가 전혀 모르는 시리아 이야기는 이렇게 세상에 나와 시리아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국제사회에서 많은 도움이 필요한 나라라는 사실을 인식시키는 데 큰몫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압둘와합의 이야기에 근거해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압둘와합이 들려주는 시리아 이야기’를 실었다. 시리아의 역사와 문화, 복잡한 현대사와 가슴 아픈 현실을 차근차근 정리한 이 글을 통해, 낯설지만 우리와 묘하게 닮아 있는 세계를 향해 문을 열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자 : 김혜진

 

시와 댄스를 사랑하는 중학교 국어 교사. 떠밀리듯(?) 시리아 구호 인권 단체 헬프시리아의 창립 멤버가 된 이후, 8년 가까이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행동이 느리고 에너지도 부족한 편이나, 일단 뭔가 시작하면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기는 한다. 우연히 시리아에서 온 와합과 만나 친구가 되는 바람에 난민·차별·인권 문제, 그리고 세계 시민 교육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부끄러움이 많아서 교단에서는 본인이 경험하고 생각한 이야기를 직접 나누기가 쑥스러웠다. 글을 통해서라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책을 썼다.

압둘와합 알무함마드 아가(Abdulwahab Almohammad Agha). 대학원 박사 과정 학생이자 헬프시리아 사무국장. 시리아에서는 다마스쿠스 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했다. 전액 장학금이 보장된 프랑스 대신 국교도 수립되지 않은 한국을 선택해, 한국에 온 시리아인 유학생 1호가 되었다. 한국과 시리아를 잇는 다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상법을 공부하며 ‘아랍 법(이슬람법 포함)과 한국 법 비교 연구’를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그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평화로운 시리아로 돌아가 집 앞 맑은 유프라테스강에 발을 담그고 꿀같이 단 수박을 먹으며 한국에서 시리아를 사랑해 주는 이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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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셰어하우스
케이트 헬름 지음, 고유경 옮김 / 마시멜로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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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스릴러나 추리소설은 심리묘사가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것 같다. 예전 범죄소설은 대부분 심리묘사보다는 사건 묘사, 배경 묘사, 범죄 행위 묘사에 주력했지만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사람들의 심리가 범죄 행위에 크게 작용한다는 사실이 덧붙여지면서 현대 추리소설은 SF스릴러라고 불리우는 과학적 스릴러 소설에도 심리묘사는 크게 주목 받는다. 심리학이란 학문도 실제에 옛날 고대부터 있었다고는 하지만 현대 심리학은 프로이트, 칼 융, 아들러 등의 심리학 거장들로부터 비롯된 것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이후 '양들의 침묵'이란 심리스릴러의 원조격인 소설과 영화가 등장하면서 심리 묘사는 소설에서도 성공 여부를 판가름지을 정도로 중요도가 높아졌다. 사이코패스의 등장이다. 이로써 현대 추리소설은 대부분 '심리스릴러'란 표현이 붙는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물론 심리에 치중하지 않은 단순 범죄수사 등의 소설은 논외로 친다. 이 소설 『웰컴 투 셰어하우스』는 범죄 수사소설에 가깝지만 심리묘사 또한 매우 날카롭고 치밀하다. 더욱이 이 소설의 무대는 '셰어하우스'라는 건물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발단-전개-파국-반전-결말의 대부분이 이 셰어하우스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정된 공간에서의 범죄 소설은 당연히 심리묘사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셰어하우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임미는 런던, 그것도 중심부에 위치한 완벽한 조건의 새 집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화려한 숙박 시설에 옥상 테라스, 무료로 제공되는 유기농 음식, 요가와 명상 시간, 거기에 놀랄 만큼 저렴한 임대료까지. 이른바 ‘염색 공장’이라 불리는 셰어하우스는 대도시 생활의 외로움에 맞서기 위해 고안된 고급 공동체다.

하지만 임미는 새로운 안식처에 들어가자마자 그곳이 겉보기만큼 아늑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명상 시간에 돌연 스피커에서 동물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고, 자신의 방에 누군가 들어온 흔적이 있는 등 이상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지만, 갈 곳 없는 임미는 셰어하우스를 떠날 수 없다. 그러던 중 셰어하우스에서 끔찍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점점 불안에 떨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친절한 가면 뒤에 저마다 위험한 비밀을 하나씩 숨기고 있는 듯 보이는 룸메이트들. 이들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이곳에 온 걸까? 그리고 이들 중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굴까?

 


 

이 소설은 연극으로 상연해도 될 만큼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심리묘사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의 심리를 쭈욱 따라가기도 한다. 소설이기에 가능하다. 연극으로서의 요소는 한정된 공간이라는 의미에서다. 소설을 희곡 대본으로 잘 각색한다면 연극 무대에 올려도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은 7명이다. 7명 모두 이 셰어하우스의 룸메이트이다. 런던에 있는 한 셰어하우스 안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이곳에 거주하는 룸메이트들은 서로를 의심하며 불안에 떨게 된다. 셰어하우스 안의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긴장감을 더해간다. 공포와 계속되는 긴장감은 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읽을수록 진실과 결말이 궁금해지는 책이다. 이는 이 책 저자의 탁월한 심리묘사 덕분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한 인물의 심리묘사를 위해 그 인물의 과거부터 현재의 심리 등이 엇갈려 교차하면서 범인 가능성을 오가기 때문에 독자들은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이다.

또 범죄소설이든 심리스릴러물이든 늘 반전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 책 『웰컴 투 셰어하우스』는 결코 시시한 반전을 미리 남발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 책은 당연히 후반부가 훨씬 재미있다. 초반에 임미와 덱스가 염색공장(셰어하우스)의 정식 룸메이트가 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고, 염색업자(이미 셰어하우스의 정식 룸메이트)들에게 면접을 보는 부분은 조금 어색하다.이는 아마 우리와의 문화나 정서의 차이가 빚어내는 이질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참지 못할 정도의 어색함은 아니어서 이 부분에서 조금만 인내심을 갖는다면 매우 긴장감 높고 흥미 만점의 심리스릴러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면접관으로 참석한 셰어하우스의 룸메이트 루카스, 버니스, 카밀은 임미에게 살아 있거나 사망한 사람들 가운데 누구와 함께 저녁을 먹고 싶은지, 특별한 장기가 있는지, 룸메이트로서 최악의 단점은 무엇인지 등 예상치 못한 질문을 건네고, 만만치 않은 질문에 면접을 망쳤다고 생각한 임미는 셰어하우스 입성을 체념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4주 동안 함께 생활한 뒤 최종 합격 여부를 정하겠다는 버니스의 '임시 합격' 통보 전화를 받게 되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셰어하우스로 향한다.

이 작품은 염색공장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 거주하는 7명의 룸메이트들은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집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안전한 장소가 아니다. 이곳 염색공장 안의 누군가가 범인이라는 사실은 집을 두려움의 공간으로 바꾸어 놓는다.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는 셰어하우스. 본인의 스튜디오(방)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휴대폰이 필요할 정도로 보안이 일상인 곳이다. 밀실이라는 배경 설정은 범인이 우리들 중 누군가라는 확신을 심어주며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을 의심하게 만든다. 소설은 뒤로 갈수록 굉장히 소설의 전개 속도가 빨라지면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저자의 의도라면 소설 구성에서도 저자는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것이다.

 


 

 

임미는 함께 생활하게 될 구성원들과 낯을 익히며 자율적이지만 엄격한 공동체 규칙에 따라 정식 구성원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자신의 방에서 우연히 ‘증거품 봉투’라는 낯선 비닐봉지를 발견하게 되면서 이곳에 어떠한 사건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영리하고 독창적이며 긴장감 넘치는 전개, 비밀스런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로 작가 케이트 헬름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웰컴 투 셰어하우스』의 또 하나의 돋보이는 점은 예상할 수 없는 반전에 있다.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비밀의 퍼즐이 맞춰지기까지 사건의 진상은 독자의 추측을 계속해서 빗나간다. 그들의 위험한 진실은 곳곳에 복선으로 숨겨져 있다. 이로써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독자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에 짜릿한 쾌감을 동반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이처럼 탁월한 심리묘사, 돋보이는 구성능력, 독자와 타협하지 않는 독특한 반전 등으로 기존 팬들에게도, 그리고 이 작가를 처음 만나는 독자들에게도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저자 : 케이트 헬름

 

영국 랭커셔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브라이턴에 살고 있다. 법원 및 범죄 사건 취재 기자로 일하다가 BBC에서 뉴스와 시사 문제를 다루는 기자와 프로듀서가 되었다. BBC1 프로그램 〈죽음의 천사: 비벌리 앨리트의 이야기〉를 비롯해 다수의 다큐멘터리와 드라마 대본을 쓰기도 했다. 본명은 케이트 해리슨으로, 케이트 헬름이라는 필명으로 출간한 첫 번째 작품은 《당신이 숨기는 비밀들THE SECRETS YOU HIDE》이며, 두 번째 작품이 《웰컴 투 셰어하우스》다. 그녀가 쓴 논픽션과 소설은 20개 지역에서 무려 8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역자 : 고유경

 

영국 카디프대학교 저널리즘 스쿨에서 언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입시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며 글밥 아카데미 출판번역 과정을 수료해 바른 번역 소속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나는 수학으로 세상을 읽는다》, 《수학님은 어디에나 계셔》, 《내 생애 한번은 수학이랑 친해지기》, 《밤의 살인자》, 《너는 여기에 없었다》, 《나, 책》, 청소년 과학 교양잡지 〈OYLA〉(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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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크린 감정 - 민망함과 어색함을 느낀다는 것은 삶에 어떤 의미인가
멜리사 달 지음, 강아름 옮김, 박진영 감수 / 생각이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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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의 감정은 몇 가지나 될까" 독자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봤다. 한 번은 그냥 한 번 헤아려보기도 하고, 사전을 찾아가며 세어보기도 했다.너무 많아서, 독자의 언어 능력으로는 정확하게 구분되지 않은 것들도 있어, 더욱이 외국어로 된 것들도 많아 중도에 포기했다. '사람사전' '마음사전' 등의 사전은 나와 있지만 '감정사전'은 없다. 유아용 동화책, 그림책에 '행복한 감정사전' '어린이감정사전'은 있지만 우리 인간의 '감정사전'은 찾지 못했다. (있는데 독자가 몰라서 못 찾는지는 모르지만) 감정을 모아놓은 사전을 만들기는 매우 어려워 못 만드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독자의 판단에 가깝다.

참고 문헌을 찾아보니 의학이든, 심리학이든 우리의 감정을 구별할 때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으로 크게 나누는 것은 동일하다. 다만 더 깊이 들어가면 같은 단어도 사용 시기나 상황 등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인문학적 해석으로 보인다.

 


 

이 책의 주제인 '웅크린 감정' 역시 큰 개념에서 소극적 감정이고 부정적 감정에 해당된다. 예컨대 ‘너무 어색해’라는 말은 일상생활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의미하는 말일 수 있다. 또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대개는 움츠러들고 어디론가 숨고 싶은 생각이 든다. 민망함이, 또 어색함이 나와 타인 사이에서, 특히 내 안에 있는 편견과 마주할 때 느끼는 불편하고 되도록 피하고 싶은 자기 인식이자 감정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 감정들로 내 삶의 방식이 바뀐다면? 여기 사례가 있다.

각자의 삶을 돌아보면, 분명 나 자신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뉴욕 매거진 〈더 컷〉에서 건강 및 심리 보도를 이끄는 저자가 때로는 자신에게 고통을 주기까지 하는 이 감정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탐색을 시작했다. 어색한 대화를 시작하고, 가장 어색한 순간과 민망한 현장들을 직접 찾아다닌다. 그리고 예상 밖의 진실을 깨닫는다.

이 책에는 에피소드가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재밌고, 에세이 형식으로, 쉽게 읽힌다.(그러나 평소 이 방면의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매우 어려울 수도 있다) 용어나 상황, 시기에 따라 변화하는 뉘앙스 때문이다. 이론적인 말을 해석하기 위해선 다수의 심리학 이론이 주장의 근거로 제시된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경험과 함께 보다 넓은 사회적 맥락에서 거의 모든 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민망함과 어색함에 관한 이야기지만, 결국 내 삶과 행동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저자가 이 책 『웅크린 감정』을 쓴 이유다.

 


 

이 책은 건강과 심리 보도를 이끄는 현직 기자가 자신의 어색하고 민망한 경험뿐만 아니라 이런 상황에 직접 뛰어들어 당사자들을 만나고 이 감정들을 심층적으로 파고들면서 위트있는 글로 풀어낸다. 또 문학, 드라마, 시트콤, 공연, 웹사이트 등에 널리 퍼져 있는 다양한 사례를 수집하고 수많은 심리학 논문과 이론으로 무장해 논리적 근거까지 더해준다.

독자는 심리학도, 의학도 공부한 적이 없다. 코로나 이후 쏟아져 나온 우울감이나 공포감 등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다고 해 이를 위로하고 격려할 목적으로 쏟아져 나온 심리학 관련 서적, 의학적 분석을 한 칼 융과 알프레드 아들러의 심리학 분석 관련 책을 몇 권 읽었을 뿐이다. 이 때문에 빈약한 지식으로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자칫 잘못 해석되면 저자의 책에 낙서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저자의 주장이나 논리에 반론을 펴지 않을 것이다. 그것만이 저자에 대한 예우이고, 빈약한 지식을 높이기 방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민망함'과 '어색함'에 천착한다. 사전적 의미로 '민망하다(憫?-)'는 '(겁이 나서) 움츠리다'와 거의 같은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민망'이란 아주 대하기 싫은 '어색함'이 있는 상태의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영어도 거의 비슷한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 책 제목인 '웅크린 감정' 그 자체로 읽힌다.

'어색하다(語塞-)' 역시 '서먹서먹한 상태', '서투르고 부자연스러운 상태의 마음' 등으로 해석하고 있다. 종합포털 사이트에서 연관 검색어로 오글거리다, 부끄럽다, 낯간지럽다, 쪽팔리다, 오그라들다, 쑥스럽다, 닭살, cheesy, 오글오글, lovey-dovey, 부끄러운, 민망, corny, ashamed, 수줍다, embarrassed ashame, 창피, 어색하다, cringe, 등 우리말과 한자어, 영어 등 많은 단어가 떠오르지만 한 단어로 정확하게 표현한 말은 없는 듯하다.

저자 멜리사 달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어색하다'를 풀어나간다. "내게 있어서 어색함은 어떤 상황에서든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커질 때 내 행동이나 모습을 의식하는 행위다. 중세 영어에서 '어색하다'는 '잘못된 쪽(wrong-ward)'이나 '잘못된 방향으로 휜(turned in the direction)' 등의 의미로 사용했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는 자주 '어색한 거북이'로 표현했다. 여러분의 한 손을 다른 손 위에 포갠 뒤 양 엄지를 돌려보라. 그러면 이 모양 전체가 마치 거꾸로 뒤집혀 버둥대다 점점 더 불편해져 헤어 나올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드는 거북이처럼 보인다. 살짝 불편한 상황은 무엇이든 어색하게 여겨지고, 바로 이때가 어색한 거북이가 등장하는 순간이다.(p. 16)

 


 

- 민망함과 어색함은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색하거나 창피하거나 민망해지면 숨고 싶거나 도망치고 싶다. 이런 감정들은 모두가 공유한다. 사회적 상황이나 문화와 맞물려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민망함과 어색함은 지금까지 관련 문헌이나 연구가 거의 없이 방치되거나 무시되어 ‘웅크린’감정에 가깝다.

 

- 어색한 대화는 때로 우리를 성장시킨다. 회피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에미상을 수상한 CNN 방송프로그램 〈유나이티드 셰이즈 오브 아메리카〉진행자로 활약하고 있는 월터 카마우 벨은 이제 어색함이 자신이 하는 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제 인생의 상당 부분을 어색한 대화의 힘에 관한 얘기를 하면서 보냈죠. 내 직업적인 활동의 상당 부분을요. 생각해 보면 내가 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대화를 고무시키는 거예요.”

 


 

- 어색함이나 민망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보다는 인지하는 사람이 오히려 낫다.

『이성과 감성』에 등장하는 어색하고도 로맨틱한 주인공 에드워드 페러스가 대시우드가의 자매들에게 말한다.

“마음 상하게 하려는 게 결코 아니에요. 다만 저는 바보 같다고 할 정도로 수줍음이 많아요. 종종 무심해 보일 때도 있는데, 그건 어색해하는 타고난 성격 때문에 그래요.”

에드워드는 어색한 사람이지만, 자신도 그걸 알고 있다. 또 자신의 의도와 타인이 그 의도를 해석하는 방식 사이의 괴리에 대해서도 통렬히 인지하고 있다

 

- 우리가 어색하다고 부르는 많은 상황이 때로는 기회로 채워지기도 한다.

어떤 관계에서나 초기에 스트레스가 많은 것은 모든 게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확실함이 관계를 몹시 황홀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새로운 누군가와 주고받는 문자 메시지가 그토록 흥분되는 건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할지 모른다거나 둘이서 어디로 갈지 함께 가는 방향의 여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 타인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의 어색함을 보지 않는다.

설사 보더라도 내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경우가 대다수다. 감정은 우리 얼굴에 전부 나타날까? 아니다. 감정을 읽는 최신 인공지능도 아직 인간의 감정을 전부 파악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타인의 마음을 다 알기란 불가능하다. 자신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또 그래서 감정을 오해하는 일이 생긴다.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어색함이라는 감정이 대표적이다.

 

- 민망함은 상대방에 대한 일종의 공감이다.

우리는 타인의 어색한 말이나 행동에도 민망함을 느낀다. 타인의 민망한 행동이 내 감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민망한 감정은 매우 특이한 감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공감은 연민에서 나오기도 하고 경멸에서 나오기도 한다.

 

- 일상의 어색함은 약자를 배려하지 않거나 과도하게 의식하는 경우에도 발생한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에게 불쾌감을 줄까 두려워하다가 결국 공황상태나 어색한 상황에 빠져들기도 하죠. 비장애인들 다수가 이게 문제라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 해요. 자신들이 느끼는 사회적인 어색함 때문에 장애인들이 사회적으로 고립감을 느낀다는 말이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거든요.”

 


 

이 어색한 감정을 저자는 어떻게 해소하는 것이 좋다고 결론 내릴까. 수많은 사례와 자신의 경험과 참고문헌 등 길게 써 내려온 글들을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자주하는 어색함과 민망함을 대처하는 방법은 이 같은 감정과 마주하기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매사에 열정적인 게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또 착한 척도 여전히 이따금할 때가 있다. 어쨌든 이제 내가 아는 것은 심리학 문헌에서 그 특성을 양심((conscientiousness)이라 부를 것이라는 점이다. 어딘가로 밀어뒀던 내 마음의 조각을 다시 들여다보는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장담하건대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것이다"라며 전제를 깔고 간단한 문장 몇 개를 나열해 명쾌하게 단언한다.

"일단 나 자신을 보고 웃는 게 가능하다면 성공이 확실하다. 내가 처음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연구를 마칠 때쯤 날 민망하게 만드는 모든 것과 나 사이에 견고한 장벽을 세우는 법을 알게 되기를 고대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이상하고 소소한 감정이, 그것도 인류 공통의 우스꽝스러움을 매개로 우리(나, 여러분, 과거의 나, 과거의 여러분)를 연결해 주는 힘이 무척 고맙게 느껴진다. 어색함이야 늘 있을 것이다. 어색함으로 우리가 고립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우리가 함께 민망해지는 일이다."(p. 342)

 


 

저자 : 멜리사 달(MELISSA DAHL)

 

멜리사 달은 뉴욕 매거진의 더 컷THE CUT 수석 편집자로 건강과 심리학 보도를 이끌고 있다. 2014년 NYMAG.COM의 인기 있는 사회과학 웹사이트 SCIENCE OF US를 공동으로 설립했다. 글쓰기 분야와 관심사는 성격, 감정, 정신 건강이다. 그녀의 글은 뉴욕 매거진 이외에도 ELLE, PARENTS, TODAY.COM, 뉴욕타임스 등에 게재되었다.

 

역자 : 강아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사회학을 전공하고 동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번역학과를 졸업한 후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마스 룸〉, 〈널 만나러 왔어〉 등의 번역서가 있다.

 

감수 : 박진영

 

《나는 나를 돌봅니다》,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 등을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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