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스트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세뇌하는가 - 2021 세종도서 교양부문
스테판 오렐 지음, 이나래 옮김 / 돌배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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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 식품, 화학, 알코올, 농약 등 제품이 그동안 인류의 건강한 삶과 풍요를 위해 기여한 바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 중 일부는 당초 목적과는 달리 오히려 인간의 건강을 해치고 삶을 피폐화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도 알게 됐다. 기업의 선의에 기대어 우리를 위해 만들어낸 제품들이 악영향을 미치는 데도 계속 제조 판매하는 것은 당초 선의마저 의심케 하는 반기업적 반윤리적 행태임이 분명하다. 이들 기업들은 오로지 이윤만을 목적으로 인간에게 끼치는 악영향을 숨기거나 위장해 판매함으로써 이익만을 취하는 반사회적 기업으로 낙인 찍혀 마땅할 터다.

이들 기업이 아직 기세등등하게 제조 판매업을 계속하는 것은 이른바 '로비스트'들의 힘이 크다. 이 책 『로비스트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세뇌하는가』는 저자 스테판 오렐이 건강 정책 규제의 구조적 취약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로비스트들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하고 의혹을 생산하는지 주목한 결과 얻어낸 결정체로서 “어떤 도덕성도 없는 냉소적인 세계를 발굴해 밀도 높고 유익한”평가를 내린 언론계 등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오렐은 수년간 제약, 식품, 화학, 알코올, 농약 등 산업 전략을 모니터하며 로비와 이해 충돌이 정치적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해 왔다. 또 동료 스테판 푸카르와 함께 ‘몬산토 페이퍼’라고 불리는 몬산토 사의 천만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비공개 내부 문서를 토대로 집필한 ‘몬산토 페이퍼 탐사보도 시리즈’로 2018년 유럽 언론상 조사보도상을 수상한 바 있다. 스테판 오렐은 기업 로비, 이해 충돌, 과학 조작 관련 보도에 특화된 기자로 프랑스 저널 「르몽드」지에서 일하고 있다.

이 책은 그녀가 10년 이상 열정을 쏟아 조사한 각종 인터뷰와 보도자료를 포함한 수많은 참고자료들의 강력한 요약본이나 마찬가지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유 의지대로 주체적인 소비를 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우리의 욕망은 조작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경계심을 준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기업들 중에는 공공보건에 해를 입힐 수 있는 ‘진실’을 회피하거나 왜곡하기 위해 많은 ‘도구’를 사용하는 기업이 있다. 의약 제품과 화학물질을 비롯해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살충제와 담배, 소시지, 설탕, 탄산음료와 초콜릿… 이러한 일상적인 물건들에도 그들의 손길이 닿아 있다.

 


 

아침 식사에 반드시 베이컨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미국인들의 고정관념뿐만 아니라, 현재 과학 기술로 충분히 ‘계란을 따로 깨 넣을 필요 없게’ 만들 수 있는데도 여전히 계란 한 알을 넣어야 완성되는 인스턴트 스펀지 케이크 믹스에도 인간 심리를 이용하는 프로파간다와 로비가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힌 개인과 단체, 기업들이 유해성을 숨기고, 과학 실험 결과를 건드리고, 연구결과를 폄하하려는 시도를 하고, 보답이라는 덫을 펼치며 우리 주위에 은근한 마수를 뻗치고 있다.

로비스트들은 ‘돈’으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 인정욕구와 소속감에 대한 욕망을 은근히 건드리며 과학자와 ‘협업’을 펼치고,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유대 관계와 의리라는 굴레를 씌워 공론을 조종하면서 조작과 세뇌를 여러 방식으로 전개해 왔다. 공직자들이 산업이나 상업 복합체의 손아귀에 민주주의 사회를 넘겨주는 것도 로비 활동의 일종이다. 유령 작가를 고용하고, 명의를 대여하고, 과학 이미지를 세탁하고, 프로파간다를 퍼트려 집단 지성을 파괴하는 그들의 장악 방식은 우리의 건강을 침범하는 것은 물론, 정책 결정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렇게 사익이 공익의 영역을 침해하면 결국 시민들은 오직 소비자라는 단 하나의 역할로 한정된다.

 


 

기업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전문가, 산업에 연루된 과학자, 기업과 결탁하는 정부, 활동 규제 대상과 긴밀한 규제기관 등의 여러 요인들이 이리저리 얽혀 정글을 이루고 있다. 스테판 오렐은 로비스트와 기업들의 결탁과 이해관계 생태계를 날카롭게 파헤치며, 어지러이 엉켜 있는 매듭을 끈질기게 추적해 나간다. 그 여정의 기록이 지금 시작된다.

이 책의 원제인 'LOBBYTOMIE'(로비토미)는 '권력자들에게 이해 문제를 진정하거나 탄원하는 것'을 의미하는 Lobby와 '뇌엽절제술'을 의미하는 Lobotomie의 영어 합성어이다. 로비 단체들이 프로파간다와 로비로 '뇌 개조'를 하는 일에 '로비토미하다'는 표현을 쓴다. 뇌엽절제술은 60년 전 대유행했던 수술의 한 형태로 눈꺼풀을 들어 올려 얼음 송곳을 뇌까지 넣어 뇌의 전두엽을 휘젓는 수술이다. 이 믿기지 않은 수술은 당시 다스리기 힘든 사람에게 주로 시행되었고, 수만 명이 이 수술을 겪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로버트 케네디 대통령의 여동생인 로즈메리 케네디도 이 수술을 하고 평생 요양원에 머무르게 됐다고 한다. 저자는 로비 업체들이 사회 시스템을 현혹하는 일련의 과정을 이 수술에 비유하고 있다.

 


 

오렐은 ‘몬산토’ 전문가답게 이 책에서 몬산토를 가장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몬산토가 여론을 움직이는 법, 연구원의 연구를 방해하는 법, 권력에 관계된 사람에게 후원과 장학금을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인사로 만드는 법, 논란이 되는 의견을 흐리게 하는 법, 과학 조사를 조작하는 법, 권위자를 동원해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어 가는 법 등 몬산토의 로비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로비하는 대표적인 업종으로 담배, 화약 약품, 설탕 그리고 탄산음료 업계의 로비 실태를 보고하고, 정확한 기업 이름까지 특정한다. 자신의 조사 발굴 내용에 신뢰감을 더하는 방법이고, 확실한 증거나 증언 등이 모두 확보됐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말보로로 유명한 필립모리스, 엑슨모빌, 몬산토, 코카콜라를 특정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이들 업체가 가장 주효하게 사용하는 전략은 ‘이해충돌’이다. 이해충돌은 산업에 연루된 과학자, 기업 대표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전문가 집단, 정부와 대기업 간 결탁, 기업이 후원한 연구, 활동 규제 대상인 업계와 지나치게 가까운 규제기관 등을 모두 일컫는 말이다. 이해충돌은 결국 동시에 나타나는 여러 요소의 총합이다.

저자가 특히 몬산토를 주목하는 이유는 전 세계 GMO 관련 특허의 90% 이상을 보유하고 몬산토는 「몬산토 페이퍼」를 통해 소송을 방어하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몬산토 페이퍼란 수천 건에 달하는 몬산토의 비공개 문서들로, 농화학기업인 몬산토와 베스트셀러 제품 ‘라운드업’의 활성 성분인 글리포세이트를 대상으로 제기된 소송에 따라 미국 법원에서 공개된 문서다. 이 문서에서 드러낸 몬산토의 목표는 분명하다. 제품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기능성을 강조하고 당국에 연구와 제반서류를 제출해 제품을 승인받고, 무독성을 증명하며, 계속 판매하기 위함이다. 유해하다는 비난에 맞이하면 관련 기관, 때로는 법원에 자사의 제품을 옹호해 결국은 금전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들 로비스트들의 활동을 보면 최근에는 상업적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라는 두 세계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기업 영리 목적을 위해 민주주의를 희생시키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과정은 대중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NRA(전미 총기 협회)는 총기 사고 희생자는 교통사고 희생자 수보다 적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의사는 아침에 균형 잡힌 식단으로 베이컨을 곁들인 식사를 추천한다. 일부 껌 회사는 의사가 특정 성분의 껌을 추천했다고 강조한다. 담배업계에서는 여성 해방의 상징으로 ‘자유의 횃불’인 담배를 보란 듯이 피우며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운동하고 난 후 마시는 탄산음료는 피로를 해소하는 청량감을 보여준다. 이 모든 이미지는 조작된 메시지를 지속해서 보냈을 때 대중의 인식이 바뀌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벽에 부닥친 답답함을 느꼈지만 가슴을 울리는 르포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업들의 영악하고도 주도면밀한 '이윤' 활동을 보며 한 개인으로서, 또는 뜻을 같이하는 여럿 모인 단체라 할지라도 거대 기업에 대항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저자에 따르면 다행인 것은 하나 둘 진실을 아는 자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옛날 TV나 라디오에만 의존하며 '박사' '정부' 등의 이름을 단 자들의 말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던 시대는 지났다. 가짜 정보만큼 제대로 된 정보도 빠르게 유통되고 사람들을 깨우친다. 오늘의 아주 작은 깨달음은 내일의 행동을 만들 것이다. 그 행동이 거대 기업의 간교한 로비활동을 막고 시민과 기업이 공존할 수 있는 올바른 사회의 디딤돌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 : 스테판 오렐

 

「르몽드」 기자로 로비활동과 이해충돌이 정책 결정에 끼치는 영향을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2015년 화학제품 속 내분비계 교란물질이 미치는 영향, 그리고 관련 산업을 둘러싼 정치와 경제의 이해관계를 취재한 내용으로 『중독(INTOXICATION)』을 출간했고, 2017년 유럽 저널리즘 상인 루이즈 바이스상을 수상했다. 2018년에는 스테판 푸카르와 함께 「르몽드」에 연재한 ‘몬산토 페이퍼 탐사보도 시리즈’로 유럽 언론상을 받았다.

 

역자 : 이나래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한불 번역과를 졸업하고 전문 번역사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쓰레기 제로 라이프』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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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빛나는 강
리즈 무어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시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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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에 임신하여 자신을 낳은 엄마, 기반을 잡지 못해 외할머니 집에 살며 할머니와 불화를 겪던 아버지, 자신에 이어 태어난 동생,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 그런 집에서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간 아버지. 오늘날 미국의 밑바닥 가정에서 흔히 보여지는 빈민 가족 모습들이다. 더욱이 딸의 죽음과 사위의 부재로 인하여 떠맡게 된 손녀 둘, 원래부터 남편 없이 억척스럽게 살아가던 할머니는 사랑하는 딸의 죽음과 맞바꾼 손녀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없다. 그런 가정 속에서 키워진 미키와 케이시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자신과 달리 예쁘고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동생 케이시, 외모나 말주변은 없지만 지적 능력엔 자신 있는 미키. 마약과 성매매가 끊이지 않는 어두운 뒷골목 같은 곳에서 자란 두 자매는 서로 의지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동생 케이시가 불량 친구들과 사귀며 마약에 손대기 시작하자 믿고 의지했던 자매 사이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미키는 경찰이 되고, 마약과 성매매에 찌들어 사는 동생 케이시. 길거리를 순찰하는 도중 만나도 자매는 서로 아는 척하지 않는다. 마약에 절어 길거리에 죽어 나뒹굴어도 누구 하나 신고하지 않는 삭막한 도시의 환경. 그러던 어느 날 미키는 마약에 중독돼 죽음에 이른 것이 아닌 교살로 의심되어 살해된 여성들의 시체를 마주하며 한참 동안이나 보이지 않는 동생 케이시를 찾기 시작한다.

 


 

이 소설 『길고 빛나는 강』은 오늘날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빈민가 하층민들의 삶과, 직면한 마약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필라델피아의 거리를 순찰하는 한 경찰관이 성매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쇄살인 사건을 추적하면서, 도시에 만연한 마약중독으로 인해 자신의 가족이 겪은 고통의 내력을 탐색하는 과정을 그렸다. 출간 전부터 엄청난 주목을 받은 『길고 빛나는 강』은 발표 후 “마약과 도시 그리고 가족에 관한,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라는 호평을 받으며 각종 언론이 앞 다퉈 소개한 것은 물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강력히 추천하면서 근래 가장 뜨거운 화제작 중 하나가 되었다.

필라델피아 경찰관 미키 피츠패트릭은 24구역, 켄징턴애비뉴의 순찰을 담당하고 있다. 그녀는 그 마약중독자들과, 마약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의 민낯에 누구보다 익숙하다. 그녀의 여동생 케이시 또한 같은 거리에서 마약에 중독된 매춘부로 일하고 있다. 미키는 거리에서 시신이 발견될 때마다 그것이 동생이 아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케이시가 사라지고, 거리의 성 노동자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살인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미키는 실종된 여동생을 찾는 데 위험할 정도로 몰두하면서 자신의 삶까지 서서히 무너져 간다.

 


 

미키 피츠패트릭은 어린 아들과 단둘이 살고 있다. 케이시라는 여동생은 앞서 언급한 대로 마약중독 성매매자로 살아가고 그녀와 연을 끊고 산 지 오래다. 그러던 중 직장에서는 오랜 시간을 같이해온 동료 경관 트루먼이 부상으로 휴직하며 새로운 순찰 파트너를 맞는다. 하지만 미키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새 파트너가 영 마뜩찮다. 최근 거리 순찰 시에 케이시가 눈에 띄지 않는 것도 그녀는 못내 불안하다. 혹여나 여동생이 얼마 전부터 거리에서 연달아 일어나는 성 노동자 여성 살인 사건의 피해자인 것은 아닐까 싶어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실종된 케이시의 행적을 추적하던 미키는 마약에 얼룩진 자기 가족의 내력을 파헤치기 시작하고, 자신과 케이시의 출생에 얽힌 진실에 조금씩 다가간다. 그러던 중 평소 알고 지내던 매춘부로부터 결정적인 제보가 들어온다. 그것은 성매매 여성 연쇄 살인의 범인이, 그들에게 무료로 성관계를 요구하는 비위 경찰관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그가 거리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불법적으로 수익을 올리고 사람들을 해친다는 것이다. 미키는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만 철저히 무시당한다.

그리고 얼마 뒤, 미키에게 제보한 여성이 무참히 살해된다. 사건의 심각성을 절감하면서도 자신의 부주의한 행동으로 제보자를 위험에 빠뜨리고 말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녀는 휴직 중인 옛 순찰 파트너 트루먼을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의기투합한 그들은 마침내 다시 한번 파트너가 되어 거리의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은밀한 수사’에 나선다.

 


 

이 소설은 마치 일선 경찰관들과 동행해 취재한 다큐멘터리처럼 놀라운 현장감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여느 범죄소설처럼 거대한 사건과 그것에 휘말릴 주인공의 운명을 짐작하게 만들고는, 독자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비껴가며 신선한 궁금증을 유발한다. 주인공의 가족 이야기가 한순간 소설의 중심을 가져가버리는 듯한 전개 덕분이다. 이는 범죄 수사 이야기와 고르게 병치되어 흘러가며, 주인공의 어두운 과거와 가족 내력을 탐색하는 계기로 교묘히 작동한다.

공권력의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오로지 사적인 계기로 시작되었고 그렇기에 위험천만할 수밖에 없는 범죄 수사 과정을 그린 연쇄살인범 추적기, 그리고 마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한 가족의 어두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자매 출생의 비밀을 파헤치는 가족 미스터리 소설이다. 이 두 줄기의 서사는 어느 한쪽으로도 과하게 치우치지 않은 채 나란히, 때로는 교차해가고 때로는 자리를 바꿔가면서 자매간의 우애와 갈등, 직장 내 부조리, 복잡하게 얽힌 가족 관계, 익숙한 거리의 쇠락과 낯선 것들의 침투, 사회 비판, 출생과 죽음의 비밀, 살인 사건 등을 차례로 훑는다. 오늘날 겉으로는 무척 화려하고 풍요로운 미국 사회에 내부에 깔린 암울한 요소들이 함축돼 들어 있는 것 같다.

 


 

연쇄살인에 대한 추적으로 시작하여, 긴 강줄기처럼 도시를 가로지르는 거리를 따라 흐르는 것은 결국 험난한 폭로의 여정이자, 궁극적으로는 희망의 고해다. 이 소설의 주인공 미키 피츠패트릭은 마약으로 인해 처참하게 망가진 도시와, 그 거리의 ‘밝은 그림자’ 속에서 소외된 채 마약으로 죽어가는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연민과 애증의 모순된 시각을 시종일관 유지한다. 그것은 작가가 필라델피아라는 도시에 가진 사랑만큼이나 큰 현실에의 안타까움이 절절히 투영된 결과일 것이다. 소설의 집필 계기로 추정되는 그러한 애증은 곧 필라델피아에서 살아가는 인물들, 그리고 도시의 역사와 맥락을 같이하는 가족들의 서사로 확장돼 도시의 운명과 궤를 같이하는 하나의 거대 우화가 된다.

그리하여 소설은 다만 현실의 고발이나 폭로에 그치지 않고, 치유와 회복을 위한 힘겹지만 희망찬 한걸음의 가능성을 시사한다.『길고 빛나는 강』은 의문과 서스펜스로 가득한 범죄소설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필라델피아를 진정한 주인공으로 하여 그것에 속한 인간들이 망가뜨린 도시의 이야기를 도시 스스로 들려주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자기 고백처럼 보이기도 한다. 치부의 폭로는 곧 회복과 치료의 단초가 되는 법이다. 그렇기에 작중 성 노동자 여성의 용기 있는 고발과 미키의 폭로는, 그것이 비록 희생이라는 고통을 수반하기는 했으나 끝내는 죽어가는 도시의 회생에 대한 희망으로 이어지는 것일 터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미키는, 망가진 필라델피아를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의 마을에 비유한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데리고 간 아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아이들이 사라진 마을은 어떤 모습일까, 하고 말이다. 작가는 『길고 빛나는 강』을 통해 마약에 대한 경각심은 물론, 마약에 중독되어 사회적 약자로서 범죄의 피해자로 손쉽게 전락할 수 있는 중독자들에 대한 관심을 아울러 촉구하고 있다. 망가진 도시의 환부가 근본적으로 치유되지 않은 채 외부의 유행이 침투해 도시의 표면만을 봉합하는 현실을 비판하는 대목은, 오늘날의 미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지만 대한민국 사회 또한 생각해보고 곱씹어보아야 할 문제로 지적된다.

이 책은 두 번째 소설 『무게』로 로마 문학상을 받으며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이후 차기작 『보이지 않는 세계』로 각국에 열렬한 팬을 확보한 작가 리즈 무어가 4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일찍이 작품 내에 스릴러 등 장르적 요소를 꾸준히 도입하고 실험해온 그가 처음으로 시도하는 본격 범죄소설이기도 하다. 특유의 세밀한 인물 묘사와 시적인 문체, 그리고 리듬감 있는 구성과 형식이 강렬한 소재와 어우러져 격조 높은 작품이 탄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작품은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마약에 대한 무거운 경각심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과거의 고통과 슬픔을 이겨내는 감동의 가족 드라마로서 커다란 정서적 울림을 던져줄 것으로 기대된다.

 

나는 궁금했다. 그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마을을 떠난 후 그 아이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다치지는 않았을까? 추웠을까? 가족을 그리워했을까?

경찰 일을 하면서 매일매일 그 이야기를 생각했다. 내 상상 속에서 마약은 피리 부는 사나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약이 주는 황홀감을 그려본다. 그 황홀감을, 일하는 매일매일 또렷이 목격할 수 있다. 모두가 마법에 걸려 매혹된 채로 돌아다닌다. 이야기가 끝난 후의, 아이들과 음악과 피리 부는 사나이가 떠난 뒤의 하멜른 마을을 상상해본다. 그 소리가 내 귀에 들려온다. 그 마을의 끔찍한 고요가.(p. 485)

 


 

하나의 범죄 사건에 대한 의문과 추적이, 끝내는 도시의 과거와 현재에 깊숙이 뿌리 내린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종으로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러한 작가적 야심의 실현을 위해 리즈 무어는 경찰 소설, 스릴러소설, 추리소설, 르포, 가족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서술 방식을 동원한다. 그럼에도 이것이 절대 산만한 구성으로 서사를 흩뜨리지 않은 채 묵직한 강줄기처럼 이야기를 단단히 붙잡아둘 수 있는 것은 단연 오늘날의 필라델피아, 아니 미국의 현실에 대한 폭로라는 무게감 덕분일 터다.

두 줄기의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 마침내 결말에 이르러 절묘한 방식으로 합쳐지며 작품의 진정한 주제를 담보한다. 흡사 두 지류의 강물이 하나의 길고 거대한 강줄기로 합쳐지며, 수면에 무수히 반짝이는 진실의 빛을 띄우는 것처럼. 제목처럼 '길고 빛나는 강'.

 

저자 : 리즈 무어

 

작가이자 음악가이며 교수다. 대학을 다닐 무렵인 2007년, 뉴욕에 있는 가상의 음반 회사를 소재로 지은이가 음악가로서 경험한 일들을 부분적으로 담아 『모든 노래의 말들 The Words of Every Song』으로 소설가로 데뷔했다. 〈Backyards〉라는 앨범을 내기도 했다. 2012년에 출간한 두 번째 소설인 『무게 : 어느 은둔자의 고백』은 뉴욕 특유의 세련된 절제미를 보여주며 마치 한 편의 악보처럼 유려하게 써내려간 작품이다. 출간되자마자 여러 매체로부터 다양한 찬사와 호응을 얻어내며 많은 이들로 하여금 지은이의 차기작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무게』는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국제 더블린 IMPAC 문학상 후보에 올랐고, 이는 2014년 로마 문학상 수상의 쾌거로 이어졌다. 이후 인공지능을 소재로 한 화제작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발표하여 세계적인 작가라는 명성에 걸맞은 열렬한 반응을 각국 독자들로부터 이끌어냈다. 미국이 직면한 마약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길고 빛나는 강』을 출간했다. 현재 필라델피아에 살고 있으며, 그곳의 홀리패밀리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며 창조적인 글쓰기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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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토마시 예드로프스키 지음, 백지민 옮김 / 푸른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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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는 1980년대 초반 폴란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무렵 폴란드는 사회주의 국가체제를 이루고 있었으며 구 소련의 연방국으로 전락해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소련에 의해 강제 병합된 체제다. 미소의 극한 냉전 대립으로 소련의 경제력이 미국에 압도적으로 뒤지면서 소련의 경제공동체 붕괴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폴란드에서는 국가 배급제인 식료품 및 생필품 부족으로 시위가 일어나자 1981년 12월 13일 게엄령이 선포된다. 소설은 게임령이 선포되기 일년 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오늘 아침, 12월 13일부로 사회주의 공화국에 계엄령이 선포되어씃ㅂ니다. 이번 조치의 배경으로는 민주와 운동권에서 몇 주간 전개한 파업과 데모는 물론, 공산권 사상 최초의 독립 노조인 솔리다르노시치...... 의 혜성과 같은 세력 확장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폴란드 정부 측은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극단적인 조치를 연이어 공표했습니다. 이에 초중고교와 대학교가 폐쇄되고 국경이 봉쇄되었으며, 시민들에게는 야간통행금지령이 내려졌습니다."(p. 10)



사회주의 체제하의 폴란드는 늘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 못해 소련에 의한 공급과 지원에 의존할 정도로 국가 경제가 몰락해갈 무렵이어서 국민경제는 더할 나위 없이 어려운 때이기도 하다. 이를 배경으로 한 퀴어 로맨스를 다룬 소설이라니 상상하기 어려웠으나 작품 전반에 깔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기회라 생각에 독자의 관심을 끌었다.

청년 루드비크는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농촌활동에 참가했다가 눈을 뗄 수 없는 청년 야누시를 만난다. 그리고 누군가를 갈망해본 이라면 알고 있을 그 익숙한 감정에 휩싸인다. 우연히 강가에서 만나 친해진 루드비크와 야누시는 농촌활동이 끝나고 둘만의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꽉 막힌 사회와 그들을 옭아맨 굴레에서 벗어나 몇 주 동안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한껏 자유와 여유를 즐긴 두 사람이 돌아온 바르샤바는 떠나기 전과 같았다. 루드비크와 야누시는 억압 속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마음을 눈치챈다. 루드비크는 박사과정 진학이 좌절될 위기에 놓이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한다. 반면 야누시는 다른 이가 내민 손을 잡는다.



소설은 지금 미국 뉴욕에 있는 ‘나’인 루드비크가 지난 날의 연인이자 사랑이었던 ‘너’ 야누시에게 마음속으로 편지글을 읊조리듯 나아간다. 작품 전반에 아련하고도 우수 어린 분위기가 깔려 있으며, 두 주인공이 여행을 떠나 모든 굴레로부터 자유로운 자연 속에서 즐기는 모습은 여행 후에 두 사람을 맞이하는 처참한 사회주의 바르샤바의 일상과 대비를 이루어 더욱 애처롭고 안타깝다.

자연 속 빛나는 호숫가에서 두 사람은 오직 서로를 갈망하지만, 회색빛 도시로 돌아온 이후에 두 사람의 열망이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모습은 자연과 도시, 자유와 억압 사이의 색채를 극적으로 대비시킨다. 결국 ‘나’와 ‘너’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갈망을 좇아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은 저자의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완전에 가까운 구성과 간결하고도 시적인 문체로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역설을 효과적으로 강조하고 있고, 몰입도를 높이도록 문장 이음새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유려하다.



줄거리는 대략 주인공인 한 소년이 또 다른 한 소년을 사랑하는 내용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퀴어소설'로서만 이 소설이 의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폴란드의 2차 세계대전 전후 시대상과 사회주의 체제와 그 시절 사람들의 고민이 너무 잘 드러나 있다. 독자가 이 소설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공산주의 사회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는 관심이다.

때는 1981년 한 해 마지막달 추위에 휩싸인 폴란드에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소설이 시작된다. 사람들은 식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배급 줄을 선다. 독일령이었다가 폴란드가 된 마을도 있고, 폴란드였는데 러시아가 된 마을도 있다. 그에 따라 사람들은 이리 저리 흩어졌다. 주인공인 루드비크는 9살 때 유대인 소년을 좋아했지만, 그 친구가 이스라엘로 떠나버린 경험이 있다. 남자아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은 시기가 그때쯤이다. 이후 대학 마지막학기 때 강제로 노역해야 하는 노동봉사에서 야누시를 만난다. 좋아하게 되고, 같이 성을 즐기는 사이가 된다. 두 사람은 호숫가에서 수영을 하고 둘만의 밀회의 시간을 갖는다.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으로 내 목을 어루만지기 시작하자 급박한 숨결이 얼굴에 와 닿았다. 내 심장은 아예 가슴을 뚫고 나오기 직전이었다. 다급하면서도 능숙한 손놀림으로 그가 내 바지 혁대를 끄르고 꺼낸 내 OO은 낯선 손가락과 여름 공기의 감촉에 반응했다. 그는 무릎을 꿇어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따스한 동굴 같은 입으로 나를 감쌌다."(p. 49)

서로 사랑하게된 야누시와 루드비크는 여러 가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의견이 안맞기도 한다. 체제 안에서 성공하고 싶은 야누시, 남들에게 이성애자로 보이기로 결심한다. 그 안에 결혼도 포함 되어 있다. 루드비크는 할머니가 들려준 서방 세계의 라디오처럼 동성애자인 '나'를 폴란드에 두는 것보다는 떠나고 싶어하는 쪽이다.

주인공이 여권을 얻을 무렵 다방면으로 감시하는 사회주의 체제의 정보력에 놀랐다. 이후 많은 관계의 전환점이 되는 주말파티(양귀비 줄기로 끓인 마녀스프)에서 그 방탕함의 진면목에 크게 놀랐다. 억압된 자유의 분출일까. 차마 옮기지는 못하고 설명만 남긴다. 중반까지는 잔잔하면서 큰 사건 없이 흐르다가 마지막에 감정의 폭발들이 많이 그려져서 소설 후반부가 더 재미있는 느낌이다. 루드비크의 고민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결국은 여권을 얻기 위해 굴종하는 모습엔 처연한 삶을 생각하며 안타깝다.



소설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침울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한 사랑의 나날들엔 폴란드가 낳은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피아노 곡이 흐르는 듯 아름답고 유려하다. 마치 잔잔한 호수를 연상케하고 호수에 내리쬐는 햇빛이 반짝거리며 두 사람의 사랑을 축복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난날을 회상하는 주인공의 생생한 기억은 독자의 상상력이 더해져 사랑으로 충만한 호숫가의 연인의 속삭임처럼 신비스럽고 영롱하다. ​회색빛 도시로 돌아온 이후의 두 사람은 각각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되고 이런 모습들은 자연과 도시, 자유와 억압 등으로 대비를 이루면서 갈등은 높아진다. 저자의 글솜씨가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상징과 은유인데도 무척 자연스럽고 상징적인지, 은유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글 속에 녹아든다. 이런 상징과 은유는 제목에서부터 이미 강렬하게 표현되고 있다. '어둠속에서 헤엄친다'는 자체가 사회주의 마지막의 모습에서 보이는 경제난, 그에 따른 시민의 봉기를 뜻할 수 있고, 개인적으로는 극도로 제한되는 자유 의지에 반한 억압 때문에 살기 위한 발버둥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또 헤엄이라는 몸짓은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동작으로 본다면 국가 체제의 전복도 예견할 수도 있다.



저자 : 토마시 예드로프스키

폴란드계 부모님 아래 독일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폴란드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 거주한 경험 덕분에 다섯 개 언어에 능하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파리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폴란드의 바르샤바와 영국을 오가다가 지금은 프랑스에 살고 있다. 영어로 쓴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는 그의 첫 장편소설이다.

역자 : 백지민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학과 및 영어통번역학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번역과를 졸업하고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 《위대한 개츠비》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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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다시 보기를 권함
페터 볼레벤 지음, 박여명 옮김, 남효창 감수 / 더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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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숲, 다시 보기를 권함』은 독일의 생태작가 페터 볼레벤이 썼다. 이 책의 주제는 건강한 숲을 되살리자는 것이다. 그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내버려두라, 숲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숲에게 맡겨라!”이다. 간단하고 명료한 주제이다.

숲이 망가진 우리의 세상은 각종 기후 재앙의 원인이 되고 심지어는 감염병 창궐과도 무관치 않다. 뒤늦게 전문가들과 환경보호론자들이 환경보호 활동을 하며 인위적으로 많은 돈을 들여 단시간에 복원하거나 더 큰 숲으로 만들려고 빨리 자라는 수종으로 나무 심기를 서두르는 바람에 오히려 장기 안목에서 보면 숲의 보호를 해치고 있다는 점에서 지속 가능한 숲이 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안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자연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지금까지의 환경보호 정책이나 방법 등을 다시 되돌아보고 보다 좋은 방법을 선택하자는 취지로 이 책을 썼다.



책은 감염병학과 글로벌 환경·보건 연구의 권위자 조나 마제트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말문을 연다. “지난 1년간 각국이 치른 코로나 팬데믹 비용의 단 2%만 투자하면, 전 세계 숲 황폐화 방지사업을 10년간 벌일 수 있고, 이는 감염병X 발발을 40%까지 낮출 수 있습니다.” 인간의 운명은 결국 자연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 책 『숲, 다시 보기를 권함』은 환경이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 요즘, 우리가 ‘자연보호, 환경보호’라는 이름하에 행하고 있는 것들이 진정으로 자연을 위한 것인지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저자 페터 볼레벤은 인간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나무와 자연의 세계를 자신만의 독특하고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정작 자연의 습성을 존중하지 않는 환경보호라는 인간의 개입이 오히려 숲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자연은 자신에게 필요한 환경을 스스로 만들 줄 알고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으며 그 능력으로 언제나 최적의 상태를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숲이 자연의 질서로 회귀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숲, 유일무이한 자연이 되도록 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독자는 자연에게 맡겨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비틀즈의 노래 「Let It Be」, 노자 〈도덕경〉의 무위자연 사상이 생각난다. 독자의 지식이 짧아 더 많은 유관 사상이나 단체의 환경보호 등의 방법이 있겠지만 알지 못하고, 독자에게 우상처럼 존재했던 가수나 사상가가 생각난 것이다. '렛 잇 비(Let It Be)'는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가 작사, 작곡한 노래이다. 비틀즈는 1962년부터 70년까지 그룹 활동을 하며 모두 64곡의 싱글 히트를 냈는데, 이 곡은 그들이 마지막으로 만든 앨범 『Let It Be』의 타이틀곡으로서, 70년 3월 21일에 처음 차트에 진입한 뒤 1위까지 오른 넘버이다. 비틀즈는 모두 20곡의 넘버 원 곡이 있는데, 그 중 가장 마지막 넘버 원 곡이다.

내가 방황할 때나 암흑 속의 구렁텅이에 있을 때,

언제나 어머니가 내려와서 들려주는 자상한 이야기.

‘언제나 섭리에 역행치 마라.

모두에게 긍정만이 강요된 세상.

이 세상을 사는 상심한 사람들에게도 언젠가 해결책을 주리니.

혹시 헤어지더라도 다시 만날 기회는 필연코 다시 오리니.

순리를 벗어나 서둘지 마라.

칠흑같은 밤이라도 한 줄기 불빛만은 밝을 때까지 비추리니.

Let It Be.

바로 그 현명한 소리에 깨어나라’.




또 노자 〈도덕경〉 무위자연 사상 역시 페터 볼레벤 주장의 원전이라 할 수 있다. 노자가 설파했다는 무위자연설(無爲自然說)은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의 경지'에 대한 주장이다. 즉 사람이 힘을 들이지 않아도 그대로 두기만 한다면 스스로 회복 회귀할 힘이 있고, 그래서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함)이라는 노자의 주장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파괴를 멈출 것을 미리 내다본 예지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숲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숲을 발견하고 이해하도록 안내하며, 모든 생명 있는 존재에 대한 작가의 공감과 존중은 읽는 이의 마음에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그리고 잊고 있던 자연에 대한 책임감을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과학 지식을 감정으로 번역해 주는 자연 통역가, 나무 통역사, 숲 생태계의 신비로움을 전하는 숲 해설가, 베스트셀러 작가 등 수많은 수식어를 갖고 있는 페터 볼레벤은 또 한 번 독자들의 책장에 숲을 불러올 것이다.



책에 따르면 숲은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비밀 장소이다. 우리는 숲이 안식처이자 휴식처이며 자연 본연의 모습을 가진 공간이라고 믿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이미 수 세기 전부터 숲을 돌보아야 할 대상으로 치부하여 인간이 개입했고, 인간의 손길이 닿으면서 숲은 오히려 위기의 시대를 맞았다. 페터 볼레벤은 그 원인을 숲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찾는다. 자연의 생명체로서 나무와 숲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숲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측의 속내는 임업(독일에서는 수렵이 더해진다)을 위한 보호와 관리다.

나무는 경제성, 효율성에 부합해야 하는 자원, 즉 상품인 것이다. 이를테면 가꾸지 않거나 가꾸어야 할 시기를 놓치면 나무는 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낮아지고 숲은 아예 쓸모없게 되고 만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숲은 임업의 관점에서 볼 때 그저 베어질 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나무들의 집단일 뿐이다(독일처럼 수렵이 더해지면 수렵감이 있는 축사로서의 기능까지 더해진다). 결국 우리는 구미에 맞는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는 숲을 원하는 것이다. 페터 볼레벤에 따르면, 이러한 시각은 자연을 돌봄이 필요한 연약한 환자로 생각하고 어떤 나무가 어떤 곳에서 가장 잘 성장할지를 아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의 편협한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숲에 있는 수많은 토양미생물, 야생동물, 토양 등 생명체에 대한 배려와 존중, 깊은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이렇게 숲에 대한 배려 없이 유행에 따라 수종을 선택하고 문제가 생기면 개벌이나 간벌을 하고 그 자리에 또다시 식재를 하는 것이 오늘날의 자연보호다. 이로써 생물종의 다양성은 사라졌고 원시림은 사라졌다. 그러나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림보다 나은 숲은 이 세상에 없다. 숲은 자연이지 가꾸고 다듬어야 할 공원이 아니고, 진정한 자연보호는 원예 사업이 아니다.

페터 볼레벤은 이러한 무자비한 인간의 손길로부터 나무와 숲, 그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를 지키고자 자신이 관리하는 곳에서는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숲의 토양을 훼손하는 기계 대신 말을 이용한다. 또 고령의 너도밤나무 서식구역을 지켜 내고자 99년 동안 이용할 수 있는 수목장을 운영한다. 이는 임업이라는 경제 논리에 따른 산림경영이 아닌, 자연이 자연으로 회귀할 수 있도록 하는 진정한 보호인 것이다.

나무는 감정과 감각이 없는 생명체로 여겨지지만 빛을 볼 줄 알고 동료와 의사소통을 하여 정보를 공유할 줄도 안다. 이러한 나무들을 인간이 개입하지 않고 자연 속에 내버려두면, 아주 오래전에 그랬듯이 어미나무 아래에서 어린나무가 자라고 땅속 깊은 곳에 있는 미생물들과 공동생활을 이어 가며, 어느 날 어린나무가 어미나무보다 커지면 제 임무를 다한 어미나무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오랜 현장 경험을 가진 페터 볼레벤은 이 과정이 순리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지켜보고 기다리는 것이야말로 숲과 생태계를 위한 진정한 보호라고 말한다. 본디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자연이라는 페터 볼레벤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책에서 저자는 대기오염 방지에 크게 보탬이 되는 녹색 에너지로 알고 있는 풍력발전과 바이오매스의 드러나지 않은 민낯을 보여 준다. 실제로는 산에 풍력발전기를 세우고 목재 펠릿을 만들기 위해 많은 나무를 베어 내는 과정에서 흙에 저장되어 있던 이산화탄소가 대규모로 배출된다. 이때 야생동물들은 서식지를 잃기도 하며, 풍력발전기의 날개에 많은 새가 희생된다고 한다. 페터 볼레벤은 이렇게 많은 나무와 다양한 생명을 죽음으로 내몰며 녹색 에너지를 생산하기보다는 에너지 절약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진정한 자연보호임을 설득력 있게 지적한다.

나무에게는 토양 깊은 곳에서 가장 높은 수관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모든 것을 조절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인간이 개입하면서 숲은 자신의 질서, 생명, 공동체를 빼앗기고 훼손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자연의 권한을 자연에게 돌려주어야 하며, 인간중심적인 시각의 개입이 낳은 결과가 숲과 토양의 훼손뿐 아니라 기후변화 · 대기오염 · 수질오염이라고 이야기한다. 아울러 이는 우리와 후손이 치러야 하는 대가라는 뼈아픈 경고를 한다.

이 책에는 저자의 모든 생명 있는 존재에 대한 존경심과 배려가 충만하며, 그들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시니컬하면서도 유머러스하며 때로는 곱씹어 보게 하는 아름다운 표현들을 통해 우리는 또 한 권의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인문과학서를 만난 기쁨이 크다.




저자 : 페터 볼레벤(PETER WOHLLEBEN)

‘과학 지식을 감정으로 번역해 주는 자연 통역가’로 불리는 세계적 생태 작가. 300만 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한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숲 해설가, 나무 통역사이다. 1964년 독일의 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환경운동가를 꿈꾸었다. 어머니의 권유로 로텐부르트암네카르의 산림경경 전문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후 라인트팔츠주 아이펠의 지역 산림청 소속 공무원이 되었다. 현장에서 일하며 기계로 나무들을 베어 내 비싼 값에 팔아넘기는 일을 하던 그는 기존의 산림경영에 회의를 느끼던 중 마침 휨멜 지역의 숲이 자립을 선언하자, 안정된 공무원 자리를 박차고 휨멜 지역의 산림경영 전문가가 되어 숲을 자연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고자 노력했다.

현장에서의 경험과 사유를 글로 써서 발표하기 시작한 그는 2007년 첫 번째 책 《보호자 없는 숲》 이후 쉼 없이 저작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에 페터 볼레벤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린 책 《나무 수업》을 비롯하여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움을 향한 새로운 시선을 담은 《나무 다시 보기를 권함》, 인간 또한 생태계의 일부이며 자연 속에서 그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 《인간과 자연의 비밀 연대》 등을 내놓으며 ‘독일에서 가장 성공한 논픽션 작가’가 되었다.

현재 아이펠에서 숲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원시림의 복구, 자연보호의 중요성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자 집필 활동 외에 텔레비전 프로그램 출연, 강연과 세미나 개최 등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2019년 열정적이고 인습에서 벗어난 그만의 지식 전달 방식을 인정받아 ‘바이에른 자연보호상’을 수상했다.

역자 : 박여명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김나지움 과정을 수료했으며,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현재 C채널방송 아나운서로,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새로운 하늘의 발견》 《존엄하게 산다는 것》 《데미안》 《개 같은 시절》 《모나리자 바이러스》 《나를 일깨우는 글쓰기》 《파나마 페이퍼스》 《푸마 리턴》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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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 - 죽기로 결심한 의사가 간절히 살리고 싶었던 순간들
정상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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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굶는 것을 밥 먹듯 한 지 불과 반세기만에 너무 먹어 성인병을 걱정하는 단계로 경제적 성장을 거두었다.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후 경제적으로 세계 10~12권의 부자나라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우리 국민의 근면성과 자녀 교육에 대한 열의로 이룬 일이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 자긍심과 자부심을 가져도 이상할 게 없는 성공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이제 굶는 사람은 없으며 오히려 성인병에 대한 의사들의 경고와 경계심을 강조하는 프로그램들이 줄을 잇고 있다. 안타깝게도 북한은 아직도 굶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우리 마음대로 도움을 줄 수도 없을 정도로 문을 걸어 잠그고 있어 어떻게 해볼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

멀리 아프리카나 중동의 일부 국가, 아시아 남아메리카 일부 나라는 기아선상을 헤매고 있다. 하지만 직접 보고 듣진 못하고 가끔씩 뉴스나 TV를 통해 알게 되니 실감도 덜하다. UN 및 민간 구호단체 등의 꾸준한 활동으로 많은 사람이 기아 해방이나 치료 구호활동을 펴고 있지만 돈이나 인력의 한계로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가끔씩 전해 듣는다. 구호활동가들이 현지를 다녀와 전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기아나 치료불가 환자 등 믿기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지구촌 한식구'는 헛된 구호에 불과할 뿐이다.

 


 

민간구호단체 증 '국경없는 의사회'의 활동 일부를 최근 TV를 통해 본 기억이 난다. 현장에 참여한 의사 중 한 분이 TV에 나와 후원을 부탁하는 공익광고를 통해서다. 이 책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의 저자 정상훈은 대한민국 의사다. 그리고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으로 구호활동에 참여한 분이기도 하다. 세상의 어렵고 아픈 사람들에게 무한 봉사를 한 분이 한때 지독한 우울증을 앓았다니 믿기지 않았다. 의사가 세상의 밑바닥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살리고자 고군분투하며 구호활동을 펼치는 것은 여간 결정하기 어려운 일의 하나일 터다.

의사의 '사'자를 '스승 사(師)'를 쓰는 이유다. 의사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지위로나 존경 받는 삶이 보장된 직업이다. 국내에서 환자 치료만 해도 풍요로운 삶이 보장돼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역만리 떨어진 가난한 나라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직접 국내의 풍요로운 삶을 버리고 구호 현장 활동에 뛰어들었을까. 우울증을 치료하러 갔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려운 결정을 하고 실천한다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다. 의사 정상훈은 실천했고, 그 일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고 술회한다.

 


 

이 책은 돈 잘 버는 의사보다 세상을 고치는 의사가 되고자 치열하고 굳건하게 살아가던 의사 정상훈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담하게 그려낸 에세이다. 책에 따르면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우울증이라는 병이 찾아왔다. 2년에 걸친 치료로 우울증에서 점차 회복되었지만 그의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질문은 허공을 헤맸고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죽음에 이끌리던 그는 국경없는의사회 해외구호활동가가 되어 지구 반대편 죽음이 만연한 나라들로 향했다.

서아시아 빈곤국인 아르메니아, 내전이 한창이던 레바논, 치사율이 50~90%까지 치솟은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한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까지.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다 ‘한국인 최초의 에볼라 의사’가 되어 돌아온 그가 세상의 온갖 아픔을 문자 안에 꾹꾹 눌러 담았다. 이 에세이에는 밑바닥 삶의 황량함, 미화할 수 없는 죽음의 민낯을 절제된 문체로 일관되게 그리고 있다. 한 의사가 비로소 자기 내면의 아픔과 타인의 아픔을 껴안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담았다. 죽음 속에서 분투한 시간을 지나 저자는 스스로 떠올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이제 우리 각자가 삶의 의미를 물을 시간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렇게 썼다. 의사도 우울증에 걸릴까?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의사도 사람일까?’처럼 어리석은 질문인 줄 안다. 하지만 의사가 우울증에 걸릴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이 의사 정상훈에게 쏟아진 질문이었다. “서울대 나온 의사가 우울할 일이 뭐가 있니?”(p. 13) 날카로우면서도 강직한 눈매, 단호하면서도 분명한 발음과 중후한 목소리, 꼿꼿한 자세와 절제된 몸짓, 그는 우울증 환자의 이미지와 어느 하나 닮은 구석이 없다. 그런 그가 어느 순간부터 ‘죽음’을 떠올리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유도 모른 채 살고 싶지 않았던 그는 어느 날 문득 죽음의 부름에 응답하기로 했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죽음이 만연한 아르메니아, 레바논, 시에라리온의 세 나라로 이어지는 긴 여정이 시작된다.

책에 따르면 의사가 처음 도착한 나라는 에이즈보다도 무섭다는 다재내성 결핵이 들끓는 아르메니아였다. 환자를 구하러 간 그곳에서 그가 처음 맡은 임무는 아이러니하게도 환자에게 ‘치료 실패’를 통보하는 것이었다. 치료 실패란 암 같은 위중한 질병을 앓고 있어서 치료 효과가 없는 환자들의 치료를 중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의료 자원이 부족한 가난한 나라의 의료진 앞에 놓인 불가피한 현실이었다. 그는 이렇게 세상 밑바닥 죽음들을 마주한다. 생계 때문에 결핵을 치료하지 못한 채 이주노동을 떠나는 노동자, 가부장 사회의 시선이 두려워 치료를 포기한 아기 엄마, 돈 벌러 떠난 아들을 기다리다 끝내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 국가에 평생 헌신한 군인의 임종 전 고통조차 방치하는 나라…. 치료 중단, 치료 실패와 싸우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환자들을 살리고자 고군분투하는 동안 그가 마주한 것은 죽음이라는 가면을 쓴 불평등한 세계의 민낯이었다.

 


 

이어서 그는 시리아 난민이 흘러들고 내전의 화염에 휩싸인 전쟁터 한복판으로 향한다. 총알이 떨어질 때까지 총격전을 벌이는 이곳 레바논을 그는 '갈라진 세계'라고 표현한다. 지독한 위생 상태로 굶주리는 난민들, 고작 20킬로그램인 열두 살 아이, 총탄이 몸을 관통한 환자들…. 갈라진 틈새로 서로에게 비난과 침묵을 쏘아대는 세계에서, 저자는 때로 무력감을 느끼고 때로 분노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나. 나는 정말 살리고 있는가.’ 타인을 진정으로 돕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죽음 속을 뛰어다니는 저자의 고민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그가 향한 곳은 ‘죽음의 병’이라 불리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한 아프리카의 서쪽 끝 시에라리온이었다. 치사율이 90%까지 치솟았던 이 전염병은 백신도 치료약도 없었다. 식구 모두가 한방살이를 하고 천막을 세워 병원으로 쓰는 이곳에서는 ‘거리 두기’조차 요원했다. 환자 격리와 수액 처방이 의료 행위의 전부인 현실 속에서 저자는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 앞에 무거운 마음으로 선다. 자신을 ‘엉클’이라고 부르며 애타게 찾는 소년과 에볼라에 걸린 두 살배기 아이를 치료하는 동안, 그는 단 하나만 떠올렸다. 바로 ‘살리고 싶다’는 간절한 외침이었다. 한때 죽음으로 가득했던 그의 마음은 이제 끊임없이 환자가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외치고 있었다.

 


 

아르메니아와 레바논, 시에라리온에서 저자는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문제로 신음하는 세계의 반쪽과 마주한다. 살리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만으로는 살릴 수 없는 애타는 현실 앞에서 그는 각각의 환자들이 가진 아픔과 가난을 쉽게 연민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이 가진 아픔의 다양한 얼굴을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자세히 살피고, 그 아픔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예민하고 집요하게 살펴나간다. 저자의 깊은 고민과 성찰은 타인을 향한 피상적인 연민이 얼마나 위험한지, 과연 쉬이 연민하는 마음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우리에게 날카로운 물음을 던진다.

우울증을 앓던 때 저자는 ‘분노’와 ‘슬픔’의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리하여 사회구조적 문제로 치료를 포기하고 거부한 환자들, 의료 시스템과 자원의 부족으로 치료에 실패한 환자를 맞닥뜨리며 쉽게 분노하고 깊은 무력감을 느끼고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다양한 아픔의 얼굴들을 가슴에 묻고 난 후, 그는 비로소 쉬이 분노에 빠지거나 무기력해지지 않게 되었다. 태어난 지 고작 두 해 지나 숨을 거둔 아이의 명패 앞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운명보다 강해져야 한다”(p. 240)고. 의사 한 명이 환자를, 그리고 세상을 구하지 못한다는 자책감 때문에 죽음 앞에서 약해져서는 안 된다고. 지구 반대편에서 혈혈단신이라 여겼던 그 자신도 이미 혼자가 아니었다. 동료 의료진을 믿고 의지하는 뜨거운 동료애, 내면의 아픔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차가운 의연함, 애증의 대상이었던 엄마의 아픔조차 껴안을 수 있는 강인한 용기가 자신 안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멀고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불행이 과연 우리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저자가 비추는 세계의 아픔은 우리 곁에 공기처럼 떠도는 수많은 아픔을 그대로 비추고 있다.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이주노동자들, 코로나 바이러스에 제일 먼저 노출된 쪽방촌 주민들, 숫자로만 존재하는 전염병 사망자들은 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눈감고 있어서 보지 못하는 것일까. “아르메니아, 레바논, 시에라리온, 그리고 대한민국의 쪽방촌. 엄마의 몸과 내 마음. 그렇게 아픔은 어디에나 있었다.”(p. 257) 그는 그 아픔을 분노와 두려움 없이 마주하고 깊게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아픔이 길이 될 테니. 그의 말대로 아픔은 우울증을 앓으며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던 한 의사에게 길을 비춰주었다. 에볼라에 걸려 ‘엉클’을 찾던 소년 앞에서 그는 고백한다. “나는 살아야 했다. 살아서 이곳에 와야만 했다. 오마르가 엉클을 찾을 때, 그 앞에 있어야 했다. 기꺼이 그의 엉클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의 고통에, 살고 싶다는 열망에 응답해주어야 했다. 다행히 나는 여기에 있었다.”(p. 232)

 


 

그렇다. 죽음에 이끌린 줄 알았지만, 결국 그는 삶에 이끌린 것이다. 환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떠났지만, 아픔을 마주하는 길고긴 여정 속에서 구원받는 사람은 결국 그 자신이었다. 이 우연의 연쇄에 대한 빛나는 기록은 죽음에 이끌린 모험 속에서 수많은 역경을 극복하며 ‘진짜 자신’을 발견하고 정체성을 회복한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를 떠올리게 한다. 이제 이 책을 마주한 우리 스스로가 각자의 답을 찾아갈 시간이다.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이 책에는 아들인 한 인간과, 친밀한 적(敵)으로서의 어머니 이야기가 저자의 긴급구호활동 경험과 평행우주처럼 장면을 교차하며 그려진다.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이 추천사에서 “한 인간이 자신의 아픈 속살을 여과 없이 드러낸 고백록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저자는 누구도 쉽게 꺼내지 못할 법한 내밀한 가족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부모의 갈등으로 인해 상처받았던 어린 시절, 엄마의 기대로부터 도망치고 감정을 피했던 청년 시절, 그리고 성장을 거부하며 지내온 마음속 어린아이가 변화해나가는 ‘가족 로망스’가 빈곤과 내전과 바이러스와의 전투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저자는 자신의 아픔(우울증)에서 시작해 세계의 수많은 아픔을 만난 뒤, 마침내 엄마의 아픔을 껴안게 되는 내면의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리얼리티를 더한다. 이 에세이는 이런 분이 있는데 이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충분하지 않은가?라는 독자의 물음을 이끌어낸다.

 

저자 : 정상훈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의료관리학교실 전공의로 재직했다. 돈 잘 버는 의사보다 세상을 고치는 의사가 되고자 의료인 단체 ‘행동하는의사회’를 창립해 남다른 의사의 길을 걸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이 찾아왔다. ‘우울증’이라는 병이었다. 그는 운명 앞에 좌절했고 세상을 피해 자기 안으로 깊이 침잠했다. 2년에 걸쳐 우울증에서 회복한 후, 삶의 의미를 되찾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 해외구호활동가가 되어 지구 반대편 가난한 나라들로 향했다. 서아시아 빈곤국인 아르메니아에서 에이즈보다 무섭다는 ‘다재내성 결핵’ 환자들을 치료했고, 내전이 한창이던 레바논에서 시리아 난민을 위한 진료소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더 멀리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 ‘죽음의 병’이라 불리며 치사율이 50~90%까지 치솟은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하자 또다시 죽음이 만연한 그곳으로 가 긴급구호활동을 펼쳤다. 이 일로 ‘한국인 최초의 에볼라 의사’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그는 자주 부끄럽다고 말한다. 자신은 시에라리온에 파견된 700번째 의료인일 뿐이라고, 살린 사람보다 살리지 못한 환자가 더 많다고.

이 긴 여정을 마치고 세계의 가장 밑바닥 삶과 죽음을 껴안은 그가 집으로 돌아와 삶의 이유와 존재의 의미를 문자 안에 담았다. 지금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방방곡곡 의료 현장에서 ‘동네 의사’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동네의사의 기본소득』(2020)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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