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스트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세뇌하는가 - 2021 세종도서 교양부문
스테판 오렐 지음, 이나래 옮김 / 돌배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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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 식품, 화학, 알코올, 농약 등 제품이 그동안 인류의 건강한 삶과 풍요를 위해 기여한 바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 중 일부는 당초 목적과는 달리 오히려 인간의 건강을 해치고 삶을 피폐화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도 알게 됐다. 기업의 선의에 기대어 우리를 위해 만들어낸 제품들이 악영향을 미치는 데도 계속 제조 판매하는 것은 당초 선의마저 의심케 하는 반기업적 반윤리적 행태임이 분명하다. 이들 기업들은 오로지 이윤만을 목적으로 인간에게 끼치는 악영향을 숨기거나 위장해 판매함으로써 이익만을 취하는 반사회적 기업으로 낙인 찍혀 마땅할 터다.

이들 기업이 아직 기세등등하게 제조 판매업을 계속하는 것은 이른바 '로비스트'들의 힘이 크다. 이 책 『로비스트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세뇌하는가』는 저자 스테판 오렐이 건강 정책 규제의 구조적 취약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로비스트들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하고 의혹을 생산하는지 주목한 결과 얻어낸 결정체로서 “어떤 도덕성도 없는 냉소적인 세계를 발굴해 밀도 높고 유익한”평가를 내린 언론계 등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오렐은 수년간 제약, 식품, 화학, 알코올, 농약 등 산업 전략을 모니터하며 로비와 이해 충돌이 정치적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해 왔다. 또 동료 스테판 푸카르와 함께 ‘몬산토 페이퍼’라고 불리는 몬산토 사의 천만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비공개 내부 문서를 토대로 집필한 ‘몬산토 페이퍼 탐사보도 시리즈’로 2018년 유럽 언론상 조사보도상을 수상한 바 있다. 스테판 오렐은 기업 로비, 이해 충돌, 과학 조작 관련 보도에 특화된 기자로 프랑스 저널 「르몽드」지에서 일하고 있다.

이 책은 그녀가 10년 이상 열정을 쏟아 조사한 각종 인터뷰와 보도자료를 포함한 수많은 참고자료들의 강력한 요약본이나 마찬가지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유 의지대로 주체적인 소비를 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우리의 욕망은 조작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경계심을 준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기업들 중에는 공공보건에 해를 입힐 수 있는 ‘진실’을 회피하거나 왜곡하기 위해 많은 ‘도구’를 사용하는 기업이 있다. 의약 제품과 화학물질을 비롯해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살충제와 담배, 소시지, 설탕, 탄산음료와 초콜릿… 이러한 일상적인 물건들에도 그들의 손길이 닿아 있다.

 


 

아침 식사에 반드시 베이컨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미국인들의 고정관념뿐만 아니라, 현재 과학 기술로 충분히 ‘계란을 따로 깨 넣을 필요 없게’ 만들 수 있는데도 여전히 계란 한 알을 넣어야 완성되는 인스턴트 스펀지 케이크 믹스에도 인간 심리를 이용하는 프로파간다와 로비가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힌 개인과 단체, 기업들이 유해성을 숨기고, 과학 실험 결과를 건드리고, 연구결과를 폄하하려는 시도를 하고, 보답이라는 덫을 펼치며 우리 주위에 은근한 마수를 뻗치고 있다.

로비스트들은 ‘돈’으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 인정욕구와 소속감에 대한 욕망을 은근히 건드리며 과학자와 ‘협업’을 펼치고,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유대 관계와 의리라는 굴레를 씌워 공론을 조종하면서 조작과 세뇌를 여러 방식으로 전개해 왔다. 공직자들이 산업이나 상업 복합체의 손아귀에 민주주의 사회를 넘겨주는 것도 로비 활동의 일종이다. 유령 작가를 고용하고, 명의를 대여하고, 과학 이미지를 세탁하고, 프로파간다를 퍼트려 집단 지성을 파괴하는 그들의 장악 방식은 우리의 건강을 침범하는 것은 물론, 정책 결정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렇게 사익이 공익의 영역을 침해하면 결국 시민들은 오직 소비자라는 단 하나의 역할로 한정된다.

 


 

기업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전문가, 산업에 연루된 과학자, 기업과 결탁하는 정부, 활동 규제 대상과 긴밀한 규제기관 등의 여러 요인들이 이리저리 얽혀 정글을 이루고 있다. 스테판 오렐은 로비스트와 기업들의 결탁과 이해관계 생태계를 날카롭게 파헤치며, 어지러이 엉켜 있는 매듭을 끈질기게 추적해 나간다. 그 여정의 기록이 지금 시작된다.

이 책의 원제인 'LOBBYTOMIE'(로비토미)는 '권력자들에게 이해 문제를 진정하거나 탄원하는 것'을 의미하는 Lobby와 '뇌엽절제술'을 의미하는 Lobotomie의 영어 합성어이다. 로비 단체들이 프로파간다와 로비로 '뇌 개조'를 하는 일에 '로비토미하다'는 표현을 쓴다. 뇌엽절제술은 60년 전 대유행했던 수술의 한 형태로 눈꺼풀을 들어 올려 얼음 송곳을 뇌까지 넣어 뇌의 전두엽을 휘젓는 수술이다. 이 믿기지 않은 수술은 당시 다스리기 힘든 사람에게 주로 시행되었고, 수만 명이 이 수술을 겪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로버트 케네디 대통령의 여동생인 로즈메리 케네디도 이 수술을 하고 평생 요양원에 머무르게 됐다고 한다. 저자는 로비 업체들이 사회 시스템을 현혹하는 일련의 과정을 이 수술에 비유하고 있다.

 


 

오렐은 ‘몬산토’ 전문가답게 이 책에서 몬산토를 가장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몬산토가 여론을 움직이는 법, 연구원의 연구를 방해하는 법, 권력에 관계된 사람에게 후원과 장학금을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인사로 만드는 법, 논란이 되는 의견을 흐리게 하는 법, 과학 조사를 조작하는 법, 권위자를 동원해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어 가는 법 등 몬산토의 로비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로비하는 대표적인 업종으로 담배, 화약 약품, 설탕 그리고 탄산음료 업계의 로비 실태를 보고하고, 정확한 기업 이름까지 특정한다. 자신의 조사 발굴 내용에 신뢰감을 더하는 방법이고, 확실한 증거나 증언 등이 모두 확보됐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말보로로 유명한 필립모리스, 엑슨모빌, 몬산토, 코카콜라를 특정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이들 업체가 가장 주효하게 사용하는 전략은 ‘이해충돌’이다. 이해충돌은 산업에 연루된 과학자, 기업 대표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전문가 집단, 정부와 대기업 간 결탁, 기업이 후원한 연구, 활동 규제 대상인 업계와 지나치게 가까운 규제기관 등을 모두 일컫는 말이다. 이해충돌은 결국 동시에 나타나는 여러 요소의 총합이다.

저자가 특히 몬산토를 주목하는 이유는 전 세계 GMO 관련 특허의 90% 이상을 보유하고 몬산토는 「몬산토 페이퍼」를 통해 소송을 방어하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몬산토 페이퍼란 수천 건에 달하는 몬산토의 비공개 문서들로, 농화학기업인 몬산토와 베스트셀러 제품 ‘라운드업’의 활성 성분인 글리포세이트를 대상으로 제기된 소송에 따라 미국 법원에서 공개된 문서다. 이 문서에서 드러낸 몬산토의 목표는 분명하다. 제품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기능성을 강조하고 당국에 연구와 제반서류를 제출해 제품을 승인받고, 무독성을 증명하며, 계속 판매하기 위함이다. 유해하다는 비난에 맞이하면 관련 기관, 때로는 법원에 자사의 제품을 옹호해 결국은 금전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들 로비스트들의 활동을 보면 최근에는 상업적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라는 두 세계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기업 영리 목적을 위해 민주주의를 희생시키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과정은 대중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NRA(전미 총기 협회)는 총기 사고 희생자는 교통사고 희생자 수보다 적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의사는 아침에 균형 잡힌 식단으로 베이컨을 곁들인 식사를 추천한다. 일부 껌 회사는 의사가 특정 성분의 껌을 추천했다고 강조한다. 담배업계에서는 여성 해방의 상징으로 ‘자유의 횃불’인 담배를 보란 듯이 피우며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운동하고 난 후 마시는 탄산음료는 피로를 해소하는 청량감을 보여준다. 이 모든 이미지는 조작된 메시지를 지속해서 보냈을 때 대중의 인식이 바뀌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벽에 부닥친 답답함을 느꼈지만 가슴을 울리는 르포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업들의 영악하고도 주도면밀한 '이윤' 활동을 보며 한 개인으로서, 또는 뜻을 같이하는 여럿 모인 단체라 할지라도 거대 기업에 대항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저자에 따르면 다행인 것은 하나 둘 진실을 아는 자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옛날 TV나 라디오에만 의존하며 '박사' '정부' 등의 이름을 단 자들의 말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던 시대는 지났다. 가짜 정보만큼 제대로 된 정보도 빠르게 유통되고 사람들을 깨우친다. 오늘의 아주 작은 깨달음은 내일의 행동을 만들 것이다. 그 행동이 거대 기업의 간교한 로비활동을 막고 시민과 기업이 공존할 수 있는 올바른 사회의 디딤돌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저자 : 스테판 오렐

 

「르몽드」 기자로 로비활동과 이해충돌이 정책 결정에 끼치는 영향을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2015년 화학제품 속 내분비계 교란물질이 미치는 영향, 그리고 관련 산업을 둘러싼 정치와 경제의 이해관계를 취재한 내용으로 『중독(INTOXICATION)』을 출간했고, 2017년 유럽 저널리즘 상인 루이즈 바이스상을 수상했다. 2018년에는 스테판 푸카르와 함께 「르몽드」에 연재한 ‘몬산토 페이퍼 탐사보도 시리즈’로 유럽 언론상을 받았다.

 

역자 : 이나래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한불 번역과를 졸업하고 전문 번역사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쓰레기 제로 라이프』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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