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슨서클 살인사건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5
에드거 월리스 지음, 양희경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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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국 런던에 크림슨 서클이란 이름의 신출귀몰한 범죄집단이 나타나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한다. 특히 이들은 런던의 자산가들에게 큰돈을 내놓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공공연하게 살해협박 편지를 보내는 등 런던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런던경시청 파르 경감은 베일에 쌓인 크림슨 서클의 추적에 나서지만 번번이 실패하여 살인사건을 막지 못한다. 파르 경감은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지닌 유명 사립탐정 데릭 예일과 공조수사를 벌이지만, 데릭 예일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으로 파르 경감의 입지는 오히려 좁아져만 간다. 크림슨 서클은 과연 누구일까? 파르 경감과 데릭 예일 탐정은 크림슨 서클을 체포할 수 있을까? 데릭 예일 탐정이 크림슨 서클의 배후로 지목한 탈리아 드러먼드의 실체는 누구인가? 이 소설이 전개돼 나가면서 궁금증은 더해만 간다.

* 사이코메트리(psychometry)

시계나 사진 등 특정인의 소유물에 손을 대어, 소유자에 관한 정보를 읽어내는 심령적(心靈的)인 행위. 미국의 과학자 J.R.버캐넌이 제창한 용어이다. 한 실험 결과에 의하면 남성은 10명 중 1명, 여성은 4명 중 1명이 이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이 능력은 투시(透視)의 일종인데, 이전에 존재했던 인간의 기억이 냄새처럼 주위의 사물에 남는다는 초심리학적 가설(假說)에 의거한다. 이에스피(ESP) 카드에 의한 투시능력실험 등은 이것을 응용한 것이다. 근년에 영국 · 미국에서는 사이코메트리를 채택하여 범죄현장의 유류품(遺留品)에서 범인이나 피해자의 행방을 추적하는 실험을 한다. 네덜란드의 투시능력자 G.크로아젯은 이 분야의 경찰협력자로서 유명하다.(두산백과)



크림슨 서클로 인해 공포감에 휩싸인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값을 치르고 위험한 상황을 피하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가혹하고 잔인한 일들이 벌어진다. 어느 날 런던의 자산가 제임스 비어드모어에게 날아든 크림슨 서클의 협박편지에는 10만 파운드의 돈을 요구한다. 이를 보고 놀란 아들 잭의 모습을 보고 제임스는 사립 탐정 예일을 초대한다. 예일은 제임스가 매우 심각한 위험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는데 결국 숲 쪽에서 들리는 총성과 사망한 채로 발견된 제임스, 그리고 나무 뒤에서 의문의 행동을 하는 여자는 몸을 숨기며 도망친다. 탐정 예일과 파르 경감은 벌어진 살인사건을 추적한다.

그 소리를 오인할 수는 없었다. 가까이에서 뚜렷하게 들린 총성으로 분명 숲 쪽에서 소리가 났다. 잭은 순식간에 테라스 난간을 뛰어넘어 평원을 가로질러 내달렸다. 그리고 그 뒤를 예일이 따랐다. 숲으로 난 길을 따라 스무 걸음 정도 들어갔을까, 비어드모어가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잭은 소름 끼치는 눈으로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한편 저 멀리 나무 뒤에 한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손에서 붉은 무언가를 한 줌 풀로 닦아내자마자 프로이언트 저택 울타리의 그림자를 따라 몸을 숨기며 도망쳤다.(p.42)



아들 잭 비어드모어는 하비 프로이언트의 비서로 있는 탈리아 드러먼드란 여자에게 호감을 갖지만 무심하게만 대하는 탈리아가 하비의 부처상 장식품을 훔치게 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전혀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고 그녀를 사랑한다는 순정파 잭은 그녀를 보호하고 감싸려 한다. 탈리아는 이 일로 인해 묵고 있는 곳에서도 나가야 하는 상황인데 탈리아 앞에 하나의 봉투가 전해진다. 그들이 자신을 소환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빨랐다. 펠릭스와 데이트를 즐기게 된 탈리아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냉정하게 일처리하는 모습에서 더욱 더 그녀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탈리아는 봉투를 램프 가까이 가져가며 미소 지었다. 봉투의 한 면에는 인쇄 활자로 주소가, 다른 한 면에는 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었다. 탈리아는 봉투를 열어 하얀색의 두꺼운 카드를 꺼냈다. 카드에 적힌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탈리아의 표정이 변했다. 네모난 카드 한가운데 커다랗게 크림슨 서클을 뜻하는 진홍색 원이 그려져 있었고, 원 안에는 다음의 내용이 활자로 인쇄되어 있었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오. 내일 밤 10시, 스테인 광장 모퉁이에 대기하고 있을 차를 타시오.」

탈리아는 카드를 탁자에 내려놓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크림슨 서클이 그녀를 찾고 있다! 그들이 자신을 소환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빨랐다.(p.74)



경찰이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크림슨 서클의 정체는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연이어 이어지는 죽음과 사건들은 크림슨 서클이란 단체를 찾지 말라는 경고와도 같은 것인가. 범죄조직과 맞닥뜨린 수사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과연 모든 인력들이 동원되어 쫒고 쫒기는 레이스를 즐기는 듯한 이들의 대결은 언제쯤 끝날까.

이 소설은 경찰과 사립탐정이 공조하며 거대 범죄조직을 조사하면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 나간다. 그리고 독자들은 예상하지 못한 반전과 마주하게 된다.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백미는 역시 반전이다. 극적 긴장감과 제한적인 등장인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사건, 수사진의 예리한 사건 분석과 놀라운 육감, 등장인물의 신비스러움...

이 모든 것을 갖춘 추리소설을 올 여름에 원한다면 우선 이 소설부터 찾아 읽기를 권한다.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잘 짜여진 작품이다. 이 소설의 저자 애드거 윌리스는 「킹콩」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프롤로그 : 단두대의 못」에 나와 있는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이야기가 흡사해 모두 저자의 치밀한 구성력으로 유기적인 구성 관계에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팔리온이 단두대의 손잡이를 당기자 칼은 아까 못을 박은 자리에까지 떨어졌다. 세 번 시도했으나 세 번 다 실패했다. 화가 난 구경꾼들은 군인들이 쳐놓은 경계를 넘어 앞으로 돌진했고, 난장판 속에서 죄수는 다시 교도소 안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그로부터 11년 후, 그 못은 많은 사람을 죽였다.(p.12)

"팔리온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그도 당신과 같은 일을 하지요."

사형집행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예법에 따라 죄수의 범죄행위에 대한 용서 외에는 죄수와 대화 나누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께서는 팔리온에 대해 아셔야 합니다." 예일이 행렬을 지으며 말했다. "그를 거울로 삼아 얻을 이익에 관해서도 말입니다. 절대로 술을 마시지 마세요. 술이 나를 파멸로 이끌었으니까요! 그놈의 망할 술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곳에 있지도 않았을 겁니다!" (중략) "이번에는 밧줄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예일이 말했다.

그것이 크림슨 서클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다.(PP. 359~360)



저자 : 에드거 월리스(Edgar Wallace)

에드거 월리스(1875-1932)는 영국의 소설가 겸 극작가이다. 런던에서 넉넉지 못한 집안의 양아들로 자라나 어려서부터 신문 배달 일을 하고 인쇄공장에 다니는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다. 제대 후 로이터통신과 〈데일리 메일〉지에서 기자로 근무했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특파원으로 활동하다가 귀국 후 스릴러 작가로 데뷔, 1916년 「트위스티드 캔들The Clue of the Twisted Candle」, 1925년 「겁쟁이 신사 J. G. 리더씨(가제, J. G. Reeder)」 등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1931년 총선에 출마했으나 패배 후 미국으로 건너가 할리우드 영화의 각본을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작품은 5,0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월리스는 다작하는 작가였다. 저널리즘뿐만 아니라 영화 시나리오, 시, 역사소설 등 아주 폭넓게 집필했다. 17편의 희곡과 957편의 단편, 그리고 170여 편의 소설을 남겼을 뿐 아니라, 160여 편은 영화로 제작되어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극장(TV 시리즈 1960~1965)〉이 방영되기도 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킹콩의 원작자로도 유명한 에드거 월리스를 20세기 스릴러물 작가 중 가장 다작한 작가 중 한 명이라고 평한다.

역자 : 양희경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식품 전문 취재 기자로 활동했다. 방송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바른번역 글밥 아카데미를 수료 후 소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 〈누구나 쉽게 30분 만에 읽는 인스타리드〉 시리즈(공역), 〈셀프헬프: 자조의 기술〉, 〈미라클 핏〉, 〈기적의 리미널 씽킹〉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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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인 더 다크 - 어느 날 갑자기 빛을 못 보게 된 여자의 회고록
애나 린지 지음, 허진 옮김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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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공무원이던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뒤엎은 것은 갑자기 발병한 빛 알레르기였다. 빛이 닿으면 살이 타는 듯하고 영혼까지 찢어지는 고통을 겪게 된 그녀는 직장도 그만두고 동굴처럼 어둡게 만든 방 안에서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는 삶을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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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걸 인 더 다크 - 어느 날 갑자기 빛을 못 보게 된 여자의 회고록
애나 린지 지음, 허진 옮김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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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빛을 완전히 몰아내기란 정말 어렵다. 우선 내 방의 커튼 안쪽에 암막 소재를, 묵직하고 플라스틱 같은 느낌에 고깃덩이 같은 이상한 목련색의 직물을 덧댄다. 그래도 빛은 위쪽 커튼레일과 벽 사이의 틈으로, 또 아래쪽 주름 때문에 둥글게 굽이치는 천 밑으로 쉽게 미끄러져 들어온다."

이 소설 『걸 인 더 다크』의 도입부다. 이 책은 소설로 분류돼 있지만 저자 자신의 생활과 일상을 기록한 회고록이다. 저자가 조금 더 문학적 표현을 가필해 소설로 분류됐나 보다. 소설이든 회고록이든 답답하다는 느낌부터 든다. 일부러 빛을 가리다니... 희귀병이겠거니 해도 빛을 가리는 병이란 말에 독자는 놀럈다.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안타까움이 먼저 고개들 든다. 저자의 일상의 일부만 표현했는데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란 의문도 든다.

“누가 내 얼굴에 용접기를 대고 있는 느낌이에요.” 이 희귀병의 이름은 '광선과민성 지루성 피부염'이라 한다. 햇빛에 조금이라도 노출되면 안 되는 희귀질환이라고 한다. 생활에 제약을 받는다는 단순 질병 설명보다 과연 살 수 있을까란 걱정이 앞선다.



평범한 공무원이던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뒤엎은 것은 갑자기 발병한 빛 알레르기였다. 빛이 닿으면 살이 타는 듯하고 영혼까지 찢어지는 고통을 겪게 된 그녀는 직장도 그만두고 동굴처럼 어둡게 만든 방 안에서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는 삶을 살게 된다. 이 책은 이처럼 희귀한 만성 질환에 걸린 저자가 어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고, 그 안에서도 진실한 사랑을 찾아낸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회고록이다. 출간 즉시 영국 아마존 베스트셀러(전기 및 회고록 부문)에 올랐고, 전 세계 유수 언론의 찬사를 받았으며, 영화화가 결정되었다고 한다.

연인이었던 피트와 사랑을 속삭이는 그 순간에도 빛은 절대 허용되지 않는 곳,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는 곳에서 사랑을 할 수 밖에 없는 빛에 예민한 상태다. 그 고통이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겼다. 여성에게 최고의 순간이었던 결혼조차 철저하게 준비되어야 했고, 철저한 계획하에 이루어져야 했을 정도로 어렵지만 사랑의 힘으로 극복해 낸다.



다시 책 속의 한 부분.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이 괴상한 현상은 도대체 뭘까? 단순하다. 컴퓨터 화면 앞에 앉으면 얼굴 피부가 화끈거린다. 화끈거린다고? 햇볕에 심한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불타오른다. 누가 내 얼굴에 화염방사기를 갖다 대고 있는 것처럼 불타오른다. 컴퓨터 왼쪽에 필사적인 임시 해결책이 놓여 있다. 선풍기를 인명록으로 받쳐서 내 얼굴에 끊임없이 바람을 불게 해둔 것이다. 하지만 바람에서 얼굴을 돌리는 순간 통증이 다시 강타한다.(p.29)

이때까지 병원의 공식 진단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컴퓨터 화면 앞에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후 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기다리는 동안 "내가 없으면 연금과 관련된 중요한 서류를 아무도 제대로 작성하지 못할 테고, 내 명쾌하고도 전문적인 생각을 놓친 상사들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것이다." 사무실 걱정을 하는 평범한 직장인인 저자에게 의사의 선고는 지옥의 문에 다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다. 놀라고 비통해했을 저자를 생각하면 안타까움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저자의 치료과정에서의 나름대로 삶의 방법이 눈물겹다. 저자는 원래 문학을 좋아했던 것 같다. "나와 비슷한 삶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주위 사람들이 나 대신 인터넷을 뒤져 봐도 흔적들만 나올 뿐이었다. 영양학 전문잡지에 나온 기사, 스웨덴에서 발행된 책의 한 페이지, 하루 종일 오디오북만 듣는 포르피린증을 가진 여자에 대한 짧은 언급......"

그리고 저자는 추리 소설, 스릴러, 역사서, 연애 소설, 회고록 등의 뒤죽박죽된 퍼레이드에서 자신과 유사한 것을 추출해 모았다. "나는 커다란 고난을 겪은 인간의 이야기를 갈망했다. 그들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무엇을 했는디, 그 고낭르 어떻게 견뎠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감금, 박탈, 쇠퇴가 오래 지속되는 이야기를 수집했다. 매일매일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는 것, 다른 사람이 보면 오로지 공포만을 느끼며 포기해서 자살하거나 절망하기만을 기대하는 상황에서 삶이 계속 깜빡거리는 것을 묘사한 글을 간절히 원했다."

저자는 책 곳곳에 자신의 실제 상황과 일반적 상황에서의 인간의 태도나 감정, 행동 등을 혼재해 씀으로써 사실적 표현에 가깝도록 하는 글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런 상황이 되면 삶은 단순해지고 감정은 사치가 되어 버린다. 육체적 생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므로 그것을 위해 무엇이든 희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존엄성, 위생, 자존감, 활동, 손님, 이따금 울음을 터뜨리는 사치, 그 무엇이라도.(p.123)



치료 경과가 좋아 상황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면 삶에의 의지를 불태운 저자는 잠시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잔디밭을 걸어가자 너무나 오랫동안 집 안에서만 기어 다녀서 이렇게 오래 걷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다리가 약간 떨렸다. 나는 정원을 계속 돌아다니며 익숙하지 않게 흔들리는 내 다리를, 구르는 내 발을, 얼굴에 닿는 공기의 움직임을 음미했다.(p.155) 저녁에 운동을 위해 컴컴한 정원에서 걷는 것도 시간을 아껴서 수시로 될 수 있는 한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시간이 소중했다는 점은 독자에게도 쓸모없이 날려버린 시간의 소중함을 깨우쳐준다. "때로는 마음이 과거를 먹다가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른 기억의 조각에서 즐거움을 찾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주로 두려움을 느낀다. 비축된 것이 다 떨어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몸처럼 마음도 자신을 지탱하는 조직을 소모하고 의식의 힘줄을 먹어 들어갈까? 멀쩡하던 정신이 혼란으로 얼룩지고, 빠른 속도로 이리저리 튀던 생각이 느릿느릿해지다가 결국 걸쭉하게 녹아내릴까? 채워지지 않는 마음은 어떻게 될까?(p.202)



저자가 책을 마치면서 쓴 몇 개의 문장은 독자의 삶에 있어서의 소중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의 삶은 예술의 서사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소설에 오염된 나는 변화가 생기고 이야기가 전개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나는 현상 그대로 머물고자 하는 사물의 놀라운 힘을 간과하고 있었다. 나는 새 약을 먹으면서 또다시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직 출구를 찾지 못했다. 합리적인 가능성이 아무리 위협해도 감당하기 힘든 삶이 이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략) 영원히 곁에 머물 줄 알았던 친구들이 곤혹스럽고 거북해하면서 떠나갔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기운을 북돋워 주려고 애쓰면서 감사하게도 몇 년 동안이나 곁에 머물러 주었다. 기쁨은 모든 일상의 뒤에 가만히 숨어서 우리가 찾아 주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사랑은 이유가 없다."(pp 254~255)

저자 : 애나 린지(ANNA LYNDSEY)

영국 런던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광선과민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렸다. 현재 햄프셔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애나는 필명이다. 이 책은 어둠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저자의 처절하고 아름다운 분투가 담긴 회고록이다.

역자 : 허진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번역학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는 엘리너 와크텔의 인터뷰집 《작가라는 사람》, 《오리지널 마인드》, 지넷 윈터슨의 《시간의 틈》, 도나 타트의 《황금방울새》, 할레드 알하미시의 《택시》, 나기브 마푸즈의 《미라마르》, 아모스 오즈의 《지하실의 검은표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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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켰을까? 혁명 시리즈
칼렙 에버레트 지음, 김수진 옮김 / 동아엠앤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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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적인 수량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숫자는 인간이 창조하기 전에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이 주장은 영아들과 숫자가 없는 문화에 속한 사람들, 그리고 우리와 유전적으로 가까운 종의 동물들을 대상으로 한 최근 실험 결과로 뒷받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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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켰을까? 혁명 시리즈
칼렙 에버레트 지음, 김수진 옮김 / 동아엠앤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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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인류 문명의 눈부신 발전은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쓰는 숫자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은 무리가 없어 보인다. 숫자가 인류에 미친 영향은 오늘날 고등수학에 이르기까지 지대하다고 볼 수 있다. 우주로 우주선을 쏘아 올린 후 되돌아오는 것도 숫자를 이용한 물리학 공식으로 가능한 것이라고 보면 이 주장은 전혀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 책 『숫자는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켰을까?』는 저자 카렙 에버레트는 우리 인류의 문자와 언어, 산술과 수학, 기하학, 물리학은 물론 인간의 정신 체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로 인류 문명의 엄청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낸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숫자는 인류의 이야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간의 정신을 담고 있다.

숫자는 수량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변화시켰다. 그러나 숫자는 단지 우리의 인지능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경험을 형성해왔다. 정확한 수량에 대한 언어 및 비언어적 표현은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면에 변화를 가져와다. 단어들을 읽을 때, 내적인 사유에서 외부환경에 이르기까지, 독자의 세상은 어느 것도 이러한 표현, 즉 숫자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 이 지면을 단정한 선과 글자들은 숫자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국, 숫자는 측정을 가능하게 하고, 문자의 전조가 되었다.

이 책에서는 또한 다양한 숫자의 발명을 이끈 원동력은 언어와 문화적 배경뿐만 아니라, 우리가 늘 관심을 가져왔고, 사용을 위해 특별한 기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 두 손의 생물학적인 대칭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통해 손에 더 많이 집중할 수 있었고, 정교한 조작도 가능하게 되었다. 고고학적, 언어학적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정확한 수량은 수천 년 동안 꾸준히 숫자를 통해 전달되어 왔다. 그런 의미에서 숫자 혁명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언어와 문화의 기원은 여전히 큰 논쟁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많은 인류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인류가 언어와 문화를 통해 혁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협력에 더 크게 의존한 결과였다. 언어 출현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고, 그와 관련한 고고학적 기록 또한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언어의 중요성만큼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단어를 비롯한 다양한 상징적 표현은 인간이 획득한 가장 위대하고 예리한 도구로서 분명히 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 언어적 도구에 포함된 중요한 하위 도구가 바로 숫자이다. 숫자는 특히 우리의 선조가 아프리카를 떠난 이후, 아마도 그 전부터도 인간의 특징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숫자를 통해 우리 인류는 수량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고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숫자 도구는 농업과 글쓰기의 출현으로 이어졌고, 이와 관련한 다양한 기술의 등장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숫자는 우리의 개념과 행동경험의 향방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도구였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조용한 숫자 혁명이 진행된 것이다. 저자는 숫자와 문자, 언어는 물론 숫자와 수량, 숫자와 인간, 숫자와 동물 등 다양한 비교 연구 결과를 이 책에 모아 묶었다. 실로 오랜 노력의 결과이며 유의미한 연구 결과다.



책에 따르면 수량의 상징적 통합인 숫자는 인간의 발명품이다. 사실 수량은 자연에 존재하며, 매미의 재생산 주기, 거미의 다리수, 음력주기처럼 규칙적으로 관찰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규칙적인 수량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숫자는 인간이 창조하기 전에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이 주장은 영아들과 숫자가 없는 문화에 속한 사람들, 그리고 우리와 유전적으로 가까운 종의 동물들을 대상으로 한 최근 실험 결과로 뒷받침된다. 우리는 대부분의 수량을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것은 아니지만, 수량을 어림짐작할 수 있고, 작은 수량은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사람들이 모든 수량을 정밀한 방법으로 일관되게 평가할 수 있게 된 것은 숫자, 즉 특정 수량을 표현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호의 발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다양한 숫자의 발명을 이끈 원동력은 과연 무었일까? 진정한 의미에서 숫자 혁명이 힘을 얻은 시기는 과연 언제부터일까? 인류의 생활방식과 경험을 변화시킨 숫자의 조용한 혁명이 언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시작되었는 지, 여러분은 이 책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숫자와 수에 약한 독자가 저자의 방대한 연구와 세밀한 분석, 결과에 따른 가설 등이 모두 완벽하게 잘 갖추어진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간이 숫자란 개념을 갖기 시작한 이유, 가질 수 있었던 원인 등을 인간 자체에서 우선 찾았다. 직립보행에 따라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손은 세밀한 작업이 가능하도록 진화되고 세밀한 작업이 수와 수량에 대한 필요성을 가져온 것이라고 본다. 즉 숫자를 인식한 것이 나이를 세기 위한 것이라는 가설은 옳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 같다.

어떤 문화에서는 우리가 이처럼 중요하게 여기는 이 첫 번째 질문이 무의미하다. 그런 문화에서는 나이를 정확히 세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에 사는 사람들이 나이를 세지 않는 배경을 이들이 지구의 태양 공전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보다 공전주기를 정확히 셀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즉, 이들에게는 숫자가 없다. 예를 들어, 아마존의 문두루쿠족(Munduruku)은 2보다 큰 수를 셀 수 있는 정확한 단어를 갖고 있지 않다. 아마존의 또 다른 원주민인 피라항족(Piraha)의 언어에는 숫자를 지칭하는 어떠한 단어도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1에 해당하는 단어도 없다. 그렇다면, 이들의 언어로는 ‘나이’를 어떻게 물을 수 있을까? 다른 문화에 사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숫자와 관련한 많은 질문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p.16)



저자는 또 언어와 문화의 기원은 여전히 큰 논쟁의 대상이라고 밝힌다. 많은 인류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인류가 언어와 문화를 통해 혁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협력에 더 크게 의존한 결과였다. 인류가 서로 의존해야 했던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인간 개개인의 힘으로는 다른 종을 능가할 수 없고 둘째, 인간 집단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도 더 진보적인 형태의 협력을 이뤄야 했다. 인간이 특별히 언어와 관련하여 유전적으로 타고났다고 장담할 수는 없으나, 이러한 설명은 종의 다른 구성원들과 협력하고자 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는 사실로 뒷받침된다. 인간의 갓난아기는 다른 유인원에 비해 인지적 능력이 부족하지만, 다른 구성원과의 협력 가능성을 예민하게 인식한다. 인간의 이러한 협력적 성향은 기본적인 몸짓에 기초한 유인원의 소통 방식과 달리 더 견고한 언어에 기반을 둔 방법적 전환을 예고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언어적 특징을 보이는 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관련하여 특별한 기술을 타고난 것이라기보다, 인지적 능력을 모아 협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언어는 우리의 사고를 형성한다. 심지어 비언어적인 사고를 촉진하기도 한다. 더 실용적인 차원에서 언어를 통해 인간은 새로운 형태로 협력하며, 생태계에서 생존을 위한 해결책을 다음 세대로 전수할 수 있었다. 생각을 담아내는 단어는 인간이 새로운 환경에서 직면하는 문제의 해결책을 기록하고 전달할 수 있게 해주는 인지적 도구이다. 언어적 혁신을 통해 인간은 이제 같은 문제의 해결책을 반복해서 새롭게 생각해 낼 필요 없이 다른 구성원의 관련 지식을 공유하고, 이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이 책을 3부 10장으로 구성했다. 마치 시간과 공간을 씨줄 날줄 엮듯이 빈틈 없는 구성으로 '숫자와 인간'을 탐구한 책이다. 앞에 열거한 내용 이외의 것을 모두 여기에 쓸 수 없는 점을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의문점이 더 알고 싶은 점은 책을 읽으면 반드시 해결점을 제시해 주리라고 독자는 믿는다.

1부 인간의 경험 어디에나 존재하는 숫자

① 우리의 현재에 엮여 있는 숫자

② 우리의 과거에 새겨진 숫자

③ 오늘날 전 세계의 숫자

④ 숫자단어를 넘어 : 수 언어의 종류

2부 숫자가 없는 세계

⑤ 숫자가 없는 세계에 사는 사람들

⑥ 아이들이 생각하는 수량

⑦ 동물이 생각하는 수량

3부 숫자와 우리 삶의 형성

⑧ 숫자와 연산의 발명

⑨ 숫자와 문화 : 생계와 기호

⑩ 변형 가능한 도구



저자는 이 책의 각 장마다 결론을 게재했다. 나중에 씨줄과 날줄이 얽혀 혼돈을 가져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배려로 보인다. 이 책은 본질적으로 이전에 인간이 구별할 수 없던 수량의 바다로 우리의 손을 뻗어 이 수량들을 숫자로 만들었다. 우리는 비유적으로나 문자 그대로 우리 주위에 있는 많은 대상물을 이제 손안에 두게 된 것이다. 우리는 추상적인 수량을 아주 현실적이지만 자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숫자로 만들었다. 인류의 이야기에 가져온 변형의 결과를 생각한다면, 숫자 또한 우리를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이 공정할 것이다.

저자 : 칼렙 에버레트

앤드류 카네기 펠로우(ANDREW CARNEGIE FELLOW)이자 마이애미 대학교(UNIVERSITY OF MAIAMI) 인류학과 교수이다. 저서로는 『LINGUISTIC RELATIVITY, 언어 상대성』, 『THE MOSTON DIARIES, 모스턴 다이어리』 등이 있다.

역자 : 김수진

전북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를 졸업하고, 국제영어대학원대학교에서 영어교재개발학 석사, 하와이주립대학교에서 인류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주립대학교 인류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는 번역가와 영어교재발자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 〈감염과 불평등〉(신아출판사, 공역), 〈공포의 식탁〉(일조각), 〈성공하는 여자는 시계를 보지 않는다〉(국일미디어) 외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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