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걸 인 더 다크 - 어느 날 갑자기 빛을 못 보게 된 여자의 회고록
애나 린지 지음, 허진 옮김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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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빛을 완전히 몰아내기란 정말 어렵다. 우선 내 방의 커튼 안쪽에 암막 소재를, 묵직하고 플라스틱 같은 느낌에 고깃덩이 같은 이상한 목련색의 직물을 덧댄다. 그래도 빛은 위쪽 커튼레일과 벽 사이의 틈으로, 또 아래쪽 주름 때문에 둥글게 굽이치는 천 밑으로 쉽게 미끄러져 들어온다."

이 소설 『걸 인 더 다크』의 도입부다. 이 책은 소설로 분류돼 있지만 저자 자신의 생활과 일상을 기록한 회고록이다. 저자가 조금 더 문학적 표현을 가필해 소설로 분류됐나 보다. 소설이든 회고록이든 답답하다는 느낌부터 든다. 일부러 빛을 가리다니... 희귀병이겠거니 해도 빛을 가리는 병이란 말에 독자는 놀럈다.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안타까움이 먼저 고개들 든다. 저자의 일상의 일부만 표현했는데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란 의문도 든다.

“누가 내 얼굴에 용접기를 대고 있는 느낌이에요.” 이 희귀병의 이름은 '광선과민성 지루성 피부염'이라 한다. 햇빛에 조금이라도 노출되면 안 되는 희귀질환이라고 한다. 생활에 제약을 받는다는 단순 질병 설명보다 과연 살 수 있을까란 걱정이 앞선다.



평범한 공무원이던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뒤엎은 것은 갑자기 발병한 빛 알레르기였다. 빛이 닿으면 살이 타는 듯하고 영혼까지 찢어지는 고통을 겪게 된 그녀는 직장도 그만두고 동굴처럼 어둡게 만든 방 안에서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는 삶을 살게 된다. 이 책은 이처럼 희귀한 만성 질환에 걸린 저자가 어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고, 그 안에서도 진실한 사랑을 찾아낸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회고록이다. 출간 즉시 영국 아마존 베스트셀러(전기 및 회고록 부문)에 올랐고, 전 세계 유수 언론의 찬사를 받았으며, 영화화가 결정되었다고 한다.

연인이었던 피트와 사랑을 속삭이는 그 순간에도 빛은 절대 허용되지 않는 곳,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는 곳에서 사랑을 할 수 밖에 없는 빛에 예민한 상태다. 그 고통이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겼다. 여성에게 최고의 순간이었던 결혼조차 철저하게 준비되어야 했고, 철저한 계획하에 이루어져야 했을 정도로 어렵지만 사랑의 힘으로 극복해 낸다.



다시 책 속의 한 부분.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이 괴상한 현상은 도대체 뭘까? 단순하다. 컴퓨터 화면 앞에 앉으면 얼굴 피부가 화끈거린다. 화끈거린다고? 햇볕에 심한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불타오른다. 누가 내 얼굴에 화염방사기를 갖다 대고 있는 것처럼 불타오른다. 컴퓨터 왼쪽에 필사적인 임시 해결책이 놓여 있다. 선풍기를 인명록으로 받쳐서 내 얼굴에 끊임없이 바람을 불게 해둔 것이다. 하지만 바람에서 얼굴을 돌리는 순간 통증이 다시 강타한다.(p.29)

이때까지 병원의 공식 진단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컴퓨터 화면 앞에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후 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기다리는 동안 "내가 없으면 연금과 관련된 중요한 서류를 아무도 제대로 작성하지 못할 테고, 내 명쾌하고도 전문적인 생각을 놓친 상사들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할 것이다." 사무실 걱정을 하는 평범한 직장인인 저자에게 의사의 선고는 지옥의 문에 다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다. 놀라고 비통해했을 저자를 생각하면 안타까움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저자의 치료과정에서의 나름대로 삶의 방법이 눈물겹다. 저자는 원래 문학을 좋아했던 것 같다. "나와 비슷한 삶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주위 사람들이 나 대신 인터넷을 뒤져 봐도 흔적들만 나올 뿐이었다. 영양학 전문잡지에 나온 기사, 스웨덴에서 발행된 책의 한 페이지, 하루 종일 오디오북만 듣는 포르피린증을 가진 여자에 대한 짧은 언급......"

그리고 저자는 추리 소설, 스릴러, 역사서, 연애 소설, 회고록 등의 뒤죽박죽된 퍼레이드에서 자신과 유사한 것을 추출해 모았다. "나는 커다란 고난을 겪은 인간의 이야기를 갈망했다. 그들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무엇을 했는디, 그 고낭르 어떻게 견뎠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감금, 박탈, 쇠퇴가 오래 지속되는 이야기를 수집했다. 매일매일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는 것, 다른 사람이 보면 오로지 공포만을 느끼며 포기해서 자살하거나 절망하기만을 기대하는 상황에서 삶이 계속 깜빡거리는 것을 묘사한 글을 간절히 원했다."

저자는 책 곳곳에 자신의 실제 상황과 일반적 상황에서의 인간의 태도나 감정, 행동 등을 혼재해 씀으로써 사실적 표현에 가깝도록 하는 글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런 상황이 되면 삶은 단순해지고 감정은 사치가 되어 버린다. 육체적 생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므로 그것을 위해 무엇이든 희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존엄성, 위생, 자존감, 활동, 손님, 이따금 울음을 터뜨리는 사치, 그 무엇이라도.(p.123)



치료 경과가 좋아 상황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면 삶에의 의지를 불태운 저자는 잠시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잔디밭을 걸어가자 너무나 오랫동안 집 안에서만 기어 다녀서 이렇게 오래 걷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다리가 약간 떨렸다. 나는 정원을 계속 돌아다니며 익숙하지 않게 흔들리는 내 다리를, 구르는 내 발을, 얼굴에 닿는 공기의 움직임을 음미했다.(p.155) 저녁에 운동을 위해 컴컴한 정원에서 걷는 것도 시간을 아껴서 수시로 될 수 있는 한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시간이 소중했다는 점은 독자에게도 쓸모없이 날려버린 시간의 소중함을 깨우쳐준다. "때로는 마음이 과거를 먹다가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른 기억의 조각에서 즐거움을 찾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주로 두려움을 느낀다. 비축된 것이 다 떨어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몸처럼 마음도 자신을 지탱하는 조직을 소모하고 의식의 힘줄을 먹어 들어갈까? 멀쩡하던 정신이 혼란으로 얼룩지고, 빠른 속도로 이리저리 튀던 생각이 느릿느릿해지다가 결국 걸쭉하게 녹아내릴까? 채워지지 않는 마음은 어떻게 될까?(p.202)



저자가 책을 마치면서 쓴 몇 개의 문장은 독자의 삶에 있어서의 소중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의 삶은 예술의 서사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소설에 오염된 나는 변화가 생기고 이야기가 전개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나는 현상 그대로 머물고자 하는 사물의 놀라운 힘을 간과하고 있었다. 나는 새 약을 먹으면서 또다시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직 출구를 찾지 못했다. 합리적인 가능성이 아무리 위협해도 감당하기 힘든 삶이 이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략) 영원히 곁에 머물 줄 알았던 친구들이 곤혹스럽고 거북해하면서 떠나갔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기운을 북돋워 주려고 애쓰면서 감사하게도 몇 년 동안이나 곁에 머물러 주었다. 기쁨은 모든 일상의 뒤에 가만히 숨어서 우리가 찾아 주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사랑은 이유가 없다."(pp 254~255)

저자 : 애나 린지(ANNA LYNDSEY)

영국 런던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광선과민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렸다. 현재 햄프셔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애나는 필명이다. 이 책은 어둠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저자의 처절하고 아름다운 분투가 담긴 회고록이다.

역자 : 허진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번역학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는 엘리너 와크텔의 인터뷰집 《작가라는 사람》, 《오리지널 마인드》, 지넷 윈터슨의 《시간의 틈》, 도나 타트의 《황금방울새》, 할레드 알하미시의 《택시》, 나기브 마푸즈의 《미라마르》, 아모스 오즈의 《지하실의 검은표범》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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