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 - 자기 한계를 넘어선 열정과 호기심
이종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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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하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다. 그의 이름은 수많은 학문 분야에서 거론되고, 〈모나리자〉를 그린 화가로 널리 이름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 인류가 분류해온 학문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재능을 보였으며, 심지어는 근대 과학의 기틀을 제공한 학자로서도 이름이 올라 있다. 그를 '다재다능' 혹은 '천재'라고 표현하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인 인물이다. 이 책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저자 이종호는 〈서문〉을 통해 그가 남긴 발자취는 다양하다 못해 화려하다고 평가한다. "다빈치에 따라다니는 경력은 화려하다. 해부학자, 건축가, 식물학자, 도시계획가, 의상디자이너, 무대디자이너, 요리사, 엔지니어, 발명가, 물리학자, 지리학자, 지질학자, 수학자, 군사 과학자, 음악가, 화가는 물론 사상가, 철학자 등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뛰어났던 만능인으로 불린다."(p.8)

이 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다면적인 재능과 인간적인 면모를 풍부한 사례와 함께 조명하고 있다. 예술가이자 과학자, 발명가이자 철학자였던 그는 단순한 천재를 넘어, 인간의 한계를 끊임없이 탐색한 탐구자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빈치의 과학과 공학, 예술과 철학, 그리고 대표작인 작품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 등을 통해 그의 천재성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그렇다고 해도 이 책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돋보이는 이유는 다빈치의 내면을 다뤘기 때문인 듯하다. 저자에 따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여러 사회적 제약 속에서도 자신을 끊임없이 갈고닦았고, 끝없는 호기심과 집요한 관찰력, 치밀한 장인 정신으로 오늘날의 명성을 이뤄냈다. 자신을 “성공하지 못했다”고 표현했던 그의 고백은 오히려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특히 이 책은 다빈치의 재능은 하늘이 내려준 것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과 열정으로 이루어진 결과임을 밝힌다. 이는 다빈치를 신격화하는 대신, 우리 모두가 배울 수 있는 실천적 모델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자기 한계를 넘어선 열정과 호기심」이라는 부제가 잘 표현한다. 이에 따라 이 책은 한 천재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가능성과 도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는 책이다. 저자는 다빈치의 창의성, 끈기, 호기심이 어떻게 위대한 업적을 이끌어냈는지를 탐구해 독자들에게 전한다.


이 책은 〈서문〉과 〈맺음말〉을 제외하고 모두 7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만능 슈퍼 천재〉, 2장 〈예술가 다빈치〉, 3장 〈불멸의 작품들〉, 4장 〈모나리자〉, 5장 〈천재들의 경쟁〉, 6장 〈다빈치 = 세계 기록〉, 7장 〈후계자가 없다〉 등이다. 책에 따르면 다빈치는 자신의 자기소개서에 "그림도 그릴 줄 압니다:라고 적었다. 당대에는 물론 현대에까지 세계 최고의 예술가 중의 한 사람으로 불리는 다빈치가 자신에 대해 이렇게 겸손하게 적은 것은 자신을 화가나 조각가로 불러주지 말고 군사 전문가(과학자)로 불러주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그의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당대에는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 중 한 명에 지나지 않는 다빈치가 자신을 과학자라고 불러달라는 자체가 머리가 약간 간 이상한 사람의 넋두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빈치는 주위의 이같은 시선에 좌절하지 않았다. 만일 자신을 과학자로 불러주지 않는다고 체념했다면 다빈치에 대한 현재와 같은 평가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계속할 것이다." 이 말은 다빈치가 말년에 중얼거렸다는 이 말이 그의 노트에 남아 있다고 저자는 증거한다. 무엇을 계속하려고 한 것인지, 중요한 말은 생략되어 있지만 그 말이 무엇이든 다빈치는 어떤 일을 꾸준히 지속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기록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다빈치가 당대에 평생 계속했던 것은 자신을 표현하는 아웃풋 작업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이라고 전한다. 그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모든 것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처럼 실패를 많이 한 사람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당대에 일단 실패하면 재기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것이 당대의 시대상이라고 한다. 저자는 다빈치의 행동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두 가지 사실을 들어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두 가지 사실을 죽을 때까지 견지했다고 설명한다. 

① 조사를 기반으로 노트에 끊임없이 기록한다.

② 그림을 계속 그린다.

다빈치는 사망할 때까지 이 두 가지를 단순하게 반복하며 이어갔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의 전 생애를 통해 모든 위업이 창출된 이유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생애를 이야기할 때 어린 다빈치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어릴 적 행동을 심리학자들은 전형적인 ADHD로 진단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ADHD는 주로 아동기에 시작되어 학령기를 전후해 흔히 관찰되는 신경 발달 장애다. 대부분 주의 산만, 과잉 행동, 충동 조절 어려움 등을 나타낸다고 한다. 다빈치는 주위의 어른들을 붙잡고 납득할 만한 답을 얻을 때까지 계속 질문했다고 책은 언급한다. 다만 다빈치가 다른 ADHD 어린아이와 달랐던 것은 어른들에게 질문하는 것으로만 끝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빈치는 의문점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자연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실험을 계속했다는 것. 다빈치가 얼마나 많은 의문을 갖고 있었는지 그의 노트에 적혀 있는 글을 인용한다.

"인간이라는 한 종류가 형성하는 행위만 해도 얼마나 많으며 다양한가.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종류의 동물이 있으며 또 나무와 꽃이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다양한 언덕과 평지가 있으며, 샘과 강, 도시, 공공건물과 개인 건물이 있는가. 또 인간이 쓰기에 적절한 도구는 얼마나 다양한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해답을 찾으면서 시골길을 거닐었다. 어째서 흔히 바다에서 발견되는 산호초와 식물과 해초의 흔적 그리고 조개껍데기가 산꼭대기에서도 발견될까? 왜 천둥은 그것을 일으키는 시간보다 여운이 더 오래 지속될까? 그리고 번개가 치면 어째서 천둥이 그 뒤를 따라 이어지는 걸까? 돌이 떨어진 수면 위로 생기는 원은 얼마나 다양하며 새는 어떻게 공중에서 버틸 수 있을까? 이런 이상한 현상들에 대한 질문이 평생토록 내 생각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p.21~22)

저자는 이런 생각을 하는 다빈치가 살던 시대는 15세기에서 16세기 무렵(1452~1519)이다. 다빈치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진 영국의 케네스 클라크는 다빈치를 '지금까지 살았던 사람 가운데 가장 호기심이 많은 사람'으로 평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당시는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태동하기 직전이다. 과학은 아직 학문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천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태어나기도 전이다. 다만 탐험가들은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인도제국과의 무역을 위한 항로 개척에 나선 때다.

또 ADHD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갖고 있다고 현대 의학은 밝혀 냈고, ADHD가 삶을 영위하지 못할 정도의 병은 아닌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다빈치가 그림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사람은 부친 세르 피에로였다. 아들의 재주를 인정한 부친은 친구인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제자가 되도록 주선했다고 알려져 있다. 베로키오는 당시 회화, 조각, 금속공예, 주조 외에도 건축공학, 산수, 음악에까지 조예가 깊은 만능천재였다고 많은 백과사전은 서술하고 있다. 덕분에 다빈치에게는 베로키오가 더없이 이상적인 스승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자연스러운 짐작이다. 실제 다빈치는 베로키오 밑에서 회화에서의 원근법을 배웠고, 빛의 전파나 음영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저자는 기술한다. 베로키오 집 옆에 롤라이우올로 형제의 스튜디오가 있었는데, 다빈치는 이곳에서 해부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화석을 공부한 것도 이 무렵이다. 당시 피렌체 상공업조합에서는 14세부터 도제 수업을 시작해 6년 만에 졸업하므로, 이 규칙에 따라 20세가 되던 1472년 다빈치는 피렌체의 산 루카 화가조합에 등록되었다.

물론 많은 독자들이 잘 알다시피 다빈치가 화가가 된 것은 그의 천부적인 재주도 있지만, 사생아이기 때문에 존경받을 만한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때문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당시 미술은 창조적 예술이 아니라 농노나 직공의 아들에게나 적합한 하루 계층의 직업이었다는 것. 우리나라 조선 시대에 신분 제도와 비슷한 모양새다. 1471년 '일 모로(il Moro, 무어인)'라는 별명이더 유명한 밀라노 공국의 섭정 루도비코 마리아 스포르차가 피렌체를 방문했는데, 마침 베로키오가 그의 접대를 맡았다. 다빈치는 일 모로의 환영회에서 하프를 연주했다고 한다. 이때 피렌체의 실력자 로렌초 데 메디치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메디치가의 미술고문으로 임명했다. 다빈치에게는 인생의 새 전기를 맞는 셈이다. 르네상스를 연 가문으로 잘 알려진 메디치가는 예술과 학문을 중요하게 여겨 그리스나 로마 시대의 회화와 조각을 많이 수집했다. 당시 인간 유럽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기독교의 영향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는 그리스나 로마 시대의 나체 조각이 기독교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발견하는 대로 파괴당하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부를 갖고 있던 메디치가는 귀한 미술품을 거리낌 없이 사들였다. 이때 메디치가의 미술고문으로 그 작품들을 감상한 것이 다빈치에게는 커다란 행운이었다.


독자가 이 책에서 주목한 것은 그의 과학적 사고력이나 관찰력, 과학을 하는 방법에 대한 신념은 근대 과학의 시초라고 한 점에서 비롯됐다. 그는 의학에서의 해부학뿐만 아니라, 생물의 관찰력, 과학을 이용한 군사 무기 등에 광범위하게 그의 관심이 갔다. 특히 실험을 통한 입증이나 상상력을 증거해 내는 방법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근대 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운 이유이기도 하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그는 화가로서 서양 미술사에 많이 등장하지만 실제 그의 그림은 유명한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 등 20편에 불과하다. 

저자 이종호는 〈모나리자〉에 대해 〈서문〉과 4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 작품은 모델이 누구인가?부터 가격은 얼마나 될까? 등 많은 추측이 많고, 또 많은 부분이 밝혀지긴 했지만 아직도 이설(異說)이 있을 정도로 해묵은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서문〉에 따르면 '모나'는 유부녀 이름 앞에 붙이는 이탈리아 경칭이며, '리자'는 초상화의 모델이 된 여인의 이름이다. 〈모나리자〉를 팔면 루브르 박물관도 살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독자는 파리 여행 중에 루브르 박물관에 간 적이 있는데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줄을 30분 정도 서 있다 그냥 쭈욱 떠밀리며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크기도 예상보다 작았으며 그마저 멀리서 형태만 보고 온 셈이다. 워낙 유명한 그림이라서 제대로 보지 못한 점에 못내 아쉽다. 언젠가는 다시 가서 좀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볼 것이란 계획을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임에는 틀림없지만 〈모나리자〉가 파격적인 명화로 부상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저자는 언급한다. "과학이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다. 그가 평생을 두고 작성한 8,000장에 달하는 '다빈치 노트'도 함께 빛을 보기 시작했다. 노트로 인해 다빈치가 위대한 예술가이자 과학자로 자리매김하자 〈모나리자〉가 자연스럽게 세계에서 최고의 명화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1994년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다빈치가 남긴 수많은 기록, 즉 '다빈치 노트' 중 단 72페이지 분량의 「코덱스 레스터」를 3,080만 2,500달러(약 425억 원)에 낙찰받았다. 앞서 2017년 11월 15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 나온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살바토르 문디(구세주)〉는 무려 4억 5,030만 달러(약 6,200억 원)에 낙찰돼 세계 예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저자는 「〈모나리자〉는 누구인가」에서 별도의 글을 통해 이탈리아 화가이자 도시계획가인 주세페 팔란티가 '리자'는 1479년 피렌체에서 태어나 16세에 부유한 비단 상인인 조콘도의 두 번째 아내가 된 리자 게라르디니라고 주장했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미술사학자 실바노 빈체티는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은 15세기 보비오 지역의 실력자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딸 비앙카 조반나 스포르차일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빈체티는 모나리자가 리자 델 조콘도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발표를 듣고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 여하튼 '모나리자'라는 이름도 의미심장하다. 다빈치는 1519년 프랑스에서 숨질 때까지 이를 간직했으면서도 기록을 남겨놓지 않았다.(p.193) 

〈모나리자〉에 앞서 〈최후의 만찬〉은 더욱 많은 의문점을 낳고 있다. 이 그림은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식당에 벽화로 소장되어 있다. 크기도 엄청나 가로 880cm, 세로460cm나 되며 총 열세 명이 그려져 있다. 예수와 열두 제자가 주인공이다. 책에 따르면 〈최후의 만찬〉이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은 그의 몇 안 되는 완성작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의 작품 중 가장 손상이 심한 그림으로도 알려져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최후의 만찬〉의 주제는 성경의 일부분이라 할 정도로 기독교에서 중요한 사건이다. 복음서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예수가 체포되기 전날 밤 열두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을 담았다. 옛는 제자들 가운데 배신자가 있다고 말하고, 떡과 포도주를 들어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을 담았다. 이 최후의 만찬에 쓰인 잔이 성배라는 전설은 잘 알려져 있다. 〈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너희 가운데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다"라고 말하자, 제자들이 깜짝 놀라는 순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최후의 만찬〉이 가장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일은 2003년 작가 댄 브라운이 소설 『다빈치 코드』를 발표한 뒤였다.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아직까지 후손이 이어지고 있다는 설정 때문이다. 그의 또 다른 소설 『천사와 악마』와 함께 두 소설이 영화화돼 상영을 앞두고 기독교계에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신성모독'으로 법정에 고소당한 후 법원에서 '표현의 자유'에 의해 기각되자 오히려 영화에 대한 인기만 높여주었다는 것이 한국 영화계의 귀띔이다. 


저자 : 이종호(李鍾鎬)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페르피냥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와 과학국가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문부성이 주최하는 우수 논문상을 수상했으며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KIER) 등에서 연구했다. 과학기술처장관상, 태양에너지학회상, 한국발명교육학회 논문상, 고려대학교 이정덕 건축상, 국민훈장 석류장 등을 받았다. 프랑스 유학 시절부터 세계의 여러 유적지를 탐사하며 연구해 기초 없이 빌딩을 50층 이상 올릴 수 있는 ‘역피라미드 공법’을 비롯해 특허 10여개를 20여 개국에 출원하는 등, 이론과 실제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과학저술인협회장(과학저술가)으로 신문, 잡지 및 인터넷에도 활발히 기고하는 등 과학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인의 뿌리』, 『로봇, 사람이 되다』, 『피라미드』, 『미래과학, 꿈이 이루어지다』, 『21세기 교양키워드』, 『미래과학, 세상을 바꾼다』, 『시크릿 방사능』, 『2030년 미래 한국에서는 어떤 일이?』, 『영화 속 오류』, 『유네스코 선정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세계 7대 불가사의』, 『유적으로 보는 우리 역사』 ,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한국 7대 불가사의』, 『과학으로 찾은 고조선』, 『황금보검의 비밀』, 『과학으로 증명된 한국인의 뿌리』, 『천재를 이긴 천재들』, 『로봇, 인간을 꿈꾸다』, 『4차 산업혁명과 미래 신성장동력』, 『유네스코 선정 한국의 세예문화유산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장편소설 『피라미드(전 12권)』, 『레전드클레오파트라(4권)』 등 총 130여권의 과학기술분야 저작을 출간하여 ‘출판 센츄리 클럽(100권 이상 저자)’ 일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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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메이트북스 클래식 23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정영훈 엮음, 최기원 옮김 / 메이트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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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독자는 그 유명한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의 『자유론』을 제대로 한 권 모두 독파한 적이 없다. 다만, 독자는 그와 그의 저서 『자유론』이 매우 많이 인용되고, 고전 해설 책에 언급된 내용을 통해 조금 알 뿐이다. 더욱이 그의 명언은 이곳저곳에서 굉장히 많이 인용되기 때문에 무지한 독자로서도 몇 문장 알고 있다. 그 중 하나인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우리는 자유롭다."는 말은 '자유'를 이야기할 때 어디서나 언급된다. 이 문장은 너무나 유명해서 오늘날까지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곳곳에서 인용, 재확산되고 있다. 이 문장은 자유를 방종으로부터 격리하고 인간이 누리는 최대한의 자유에 대해 정확한 규정이라고 믿고 수용되는 '자유'에 대한 문구다. 하지만 대한민국 오늘날의 정치계에서 보수 진영이 '자유'를 독점한 듯한 모습에서 상대적으로 진보는 '비민주'라는 의미로 비난하고 있는 것 때문에 '자유'에 대한 왜곡된 주장이 많이 있는 게 사실이다. 밀(Mill)이 정의한 '자유'라는 의미를 왜곡 사용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고 독자는 믿는다.

    이 책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편역자(이하 역자) 정영훈과 최기원이 책의 맨 앞 부분의 〈엮은이의 말〉 가운데 「지금, 『자유론』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란 제목의 글을 통해 이 책의 재출간 취지를 밝힌다. 역자가 다시 한 번 우리가 『자유론』을 되새겨야 할 때라고 주장하는 점을 독자는 이해할 수 있다. 역자의 말은 최근의 우리 대한민국은 정치 실종 상태로부터 겨우 회복해 가는 과정에서 여전히 '자유'란 정의가 무분별하고 왜곡되게 사용된다는 점을 인식한 데 따른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좀 더 면밀한 『자유론』 해석을 통해 '자유'의 정의를 다시 새기고, 나아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책을 펴낸 것이다.

    "『자유론』은 19세기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탄생했다. 물질적 풍요와 기술 발전이라는 눈부신 진보의 그늘에서, 밀은 '개인의 고유함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감지했다. 그는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진짜 '힘'이 단지 정부나 벌률 같은 외형적 권력만은 아니라고 보았다. 오히려 사람들의 무의식적 동조와 여론의 압력, 도덕 감정의 획일화야말로 개인의 삶을 침묵시키려는 본질적 원인이라고 보았다. 『자유론』은 단순히 '자우는 중요하다'는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인식하지 못했던 통념과 가지 판단 속에서 자유가 어떻게 침해되고 내부에서부터 무너지는지를 분석한 보고서다."(p.6~7)


    앞서 언급한 밀의 명제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우리는 자유롭다."는 간명한 원칙은 단순한 규범을 넘어 수많은 사유의 출발점이라고 역자는 밝힌다. 책에 따르면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각자는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이 명제 속에는 도덕, 정치, 사회학, 심리학을 아우르는 통합적 시각이 담겨 있다. 밀은 '다수의 폭정'이라는 개념을 통해 민주주의조차 쉽게 여론이라는 이름 아래 폭력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우리가 무심코 믿는 '사회적 상식'이 다른 삶의 방식을 얼마나 쉽게 억압할 수 있는지를 통찰했다. 그리고 밀의 이러한 사유는 오늘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다수의 여론과 사회의 도덕 감정이 개인의 자유를 어떻게 억압하는지를 예리하게 추적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자유론』을 읽어야 한다. 지금 시대에 더욱 절실한 『자유론』은 혐오, 여론 재단, 사회적 낙인 등 오늘의 문제들과 직결된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는 겉으로 보기에 표현의 자유가 더 넓어진 것처럼 보인다. 누구나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침묵의 압박과 혐오의 낙인,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새로운 경계선들이 존재하며, 우리는 그 안에서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다. 우리는 여론이라는 이름이 무형 권력 속에서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침묵이 살아남는 길이 되고, 다르게 사는 것은 곧 '이상한 것'이 되며, 소수자의 표현은 허용되되 '대중에게 불편한 건 금지된다'는 아이러니한 풍경 속에서, 『자유론』은 우리에게 되묻는다. "지금 당신이 누리는 자유는, 진짜 당신의 것인가?"

    역자는 밀이 『자유론』을 통해 ‘정부보다 무서운 것’, 바로 여론이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폭력을 경고했다고 풀이하고 있다. 그는 ‘다수의 의견’이 언제든 소수의 표현을 억압할 수 있으며, 그 억압은 법적 제재가 아니라 도덕적 강요와 일상의 침묵 강요라는 훨씬 은밀하고 강력한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밀은 누구나 자기 삶의 방식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이는 단순한 자유주의의 선언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책임을 지키기 위한 삶의 윤리라고 보았다고 역자는 해석한다. 밀은 끝없는 논쟁과 반론, 반대자의 목소리 속에서만 진리가 살아 숨 쉰다고 강조했다. 진리는 끊임없는 검증과 교차되는 관점 속에서만 살아남는다고 역설한 전제 조건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임을 명백하게 밝히는 대목이다.


    역자에 따르면 밀의 통찰은 정보가 넘쳐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로 이 점에서 『자유론』은 시대를 초월해, 불온한 목소리와 소수의 견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우는 고전으로 남는다. 『자유론』이 다루는 ‘혐오, 검열, 낙인, 여론 재단’ 같은 주제는 150년이 지난 지금도 놀라울 만큼 생생하게 현실과 맞닿아 있다. 오히려 오늘날은 법이 아니라 SNS 속 대중 여론이 검열의 주체가 되는 시대다. 그렇기에 『자유론』은 단지 과거의 고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 쉬는 철학적 무기가 된다는 것을 역자는 역설하고 있다. 

    역자는 『자유론』은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유는 원문임을 밝힌다. 원문은, 논리는 깊지만 표현은 장황하고, 문단은 길게 이어지며, 장(章) 제목만 있을 뿐 중간제목은 전혀 없어 독자들이 미로를 헤매듯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 책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그런 진입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기획된 ‘편역본’이라고 밝힌다. 밀의 사유를 단순화하거나 축소하지 않으면서도, 그 사유의 흐름을 독자들이 놓치지 않도록 현대의 언어와 편집으로 친절하게 시각화하고 재설계했다는 의미다. 또 논지에 맞춰 중간제목을 일일이 달고, 장문의 문단을 적절히 나누어 사유의 맥을 잡기 쉬운 구조로 정비했다고 단언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이다. 19세기는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세계 패권국으로 우뚝 선 때이다. 부강한 나라를 바탕으로 학문·예술에 치중할 뿐만 아니라 획기적인 발명이 산업 기술로 이어지면서 제1차 산업혁명을 태동시켰다. 산업혁명은 인류 사회를 새로운 세상으로의 대변혁을 일으키는 움직임이다. 기존 농업이나 의식주에 쓰이는 대부분의 필수품이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던 것을 '기계'가 대신하도록 바꾼 기계 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흐름은 인간 삶의 기초적인 부분을 기계에 맡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계는 24시간 가동해 돌아가면서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노동력이 획기적으로 절감시키는 역할울 할 수 있다. 대량 생산 체제는 대량 소비로 이어지고 인류는 새 기술로 만들어내는 상품들에 열광했다. 이 대목에서 일반 국민과 지배 계층의 명암이 더욱 뚜렷하게 갈린다. 자본주의 심화 현상이다.


    밀의 『자유론』은 1859년 출간되었다. 『자유론』은 원래 5장(章)으로 나뉘어져 있다. 〈서론〉에서 밀은 자유의 문제는 의지의 자유가 아니라 시민적 혹은 사회적 자유임을 밝히고, 자본주의 사회의 진전과 함께 지금은 권위에 도전하는 정치적 자유에서 다수자와 개인의 대립, 결국 다수자의 전제가 문제가 된다고 했다. 개인의 행복과 다수자의 행복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밀의 과제였다. 밀은 인간의 자유에 고유한 영역을 설정하고, 인간의 생활과 행위 가운데 개개인에게만 관계되는 부분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① 사상과 양심의 자유 ② 취미 및 탐구의 자유, ③ 단결의 자유 등이다. 그리고 이것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는 어떤 정치 형태라 할지라도 자유가 없다고 본다. 

    제2장에서 '사상과 토론의 자유'가 인류의 정신적 행복에 있어서 필요함을 4가지 근거를 들어 주장하고, 제3장에서는 개인의 자발성은 내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 자체가 존중되어야 하고 습관이나 전통에 의해서 억압되면 개인이나 사회의 진보가 정체되고 만다고 기술한다.

    제4장에서는 인간의 생활 가운데 개인에 속하는 영역과 사회에 속하는 영역간의 관계를 논하고, 타인의 행복을 해치는 행위에 대해서 사회의 권력이 행사되는 것은 좋으나, 그때 권력의 원천인 다수자의 의지가 소수자의 이익 혹은 행복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특히 여론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다수자의 전제는 배제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제5장에서는 이상의 원리를 실제 문제와 결부시켜 예증한다.

    이에 비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모두 6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왜 우리는 ‘자유’를 논해야 하는가?〉, 2장 〈우리가 틀렸을 가능성은 정말 없는가?〉, 3장 〈틀린 의견이라도 왜 여전히 필요한가?〉, 4장 〈인간의 개성이야말로 왜 자유의 본질이 되는가?〉, 5장 〈사회는 개인의 자유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나?〉, 6장 〈자유의 원칙은 현실에서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등이다. 내용의 전개는 밀의 『자유론』과 무척 비슷하다. 다만 밀의 『자유론』과 이 편역본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 다른 점은 역자가 〈엮은이의 말〉을 통해 독자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을 미리 밝힌 대로다. 밀의 위대한 사유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현대의 독자가 끝까지 읽어낼 수 있도록 하는 '출간 취지', 즉 『자유론』 2장을 편역본에서는 〈우리가 틀렸을 가능성은 정말 없는가?〉와 〈틀린 의견이라도 왜 여전히 필요한가?〉로 2장과 3장으로 분리해 번역하고 편집했다. 


    독자가 앞서 털어놓은 대로 밀의 『자유론』은 그 철학적 깊이에 비해 실제 완독률은 그리 높지 않다. 이유는 분명하다. 기존의 완역본들은 학문적 엄밀성과 번역의 충실함에는 탁월하지만, 독자가 주제를 따라가며 사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구조적 안내나 독서 가이드로서의 배려는 거의 없다. 독자들은 밀의 사유를 따라가기에 앞서 먼저 문장의 구조를 해석하고, 논리의 흐름을 정리하며, 필요한 경우 스스로 중간제목을 마음속에 설정해야만 한다. 문장이 길고 논리 전개가 복잡한 밀의 문체 특성상, 이는 철학 전공자에게는 익숙한 독서 방식일지 모르지만, 일반 독자나 철학 입문자에게는 상당한 진입장벽이자 피로감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역자와 편집진은 확언하고 있다.

    이 책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바로 그런 한계를 넘어서고자 기획된 편역본이다. 각 장의 제목을 새로 정비하고, 원문에는 전혀 없던 중간제목을 추가해 논리를 따라가는 길을 명확히 제시했다. 예를 들어, ‘혐오 발언과 자유’ ‘여론 독재의 실체’ ‘개인의 삶과 국가의 간섭’처럼 독자들의 인식 구조에 자연스럽게 걸리는 개념어들을 선별해 제목화함으로써, 추상적인 고전을 지금의 언어로 재배열했다. 문단도 적절한 길이로 나누고, 중요한 개념은 문맥에 따라 시각적으로 강조해 사유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세심하게 설계했다. 이에 따라 이 책은 기존 완역본과는 확실히 차별화된다. 철학 고전의 완독을 위한 안내자로, 입문자에게 진입로를 터주는 길라잡이로 이 책은 기능한다는 것이 역자와 출판사 측의 확신이다. 깊이는 그대로 두되, 독자의 길은 새롭게 열어주는 이 책은 『자유론』이라는 고전을 단순히 ‘읽는’ 텍스트가 아닌, ‘사유하고 내면화하는’ 경험으로 전환시켜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지금 이 시대에, 고전을 읽고 싶지만 늘 문턱에서 돌아서는 독자들에게 이 편역본은 매우 유용한 징검다리이자 철학적 디딤돌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정치에서 흔히 말하듯, ‘안정과 질서’를 중시하는 세력과 ‘개혁과 변화’를 추구하는 세력은 모두 건강한 정치에 꼭 필요한 구성 요소다. 특히 어느 한쪽이 ‘지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을 분별해 질서와 개혁을 함께 껴안을 수 있을 만큼 시야를 넓히기 전까지는 더욱 그렇다. 이 두 관점은 서로의 결핍을 보완하며 존재 의미를 얻는다. 그리고 둘 사이의 긴장이야말로 각 세력이 이성과 균형을 잃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힘이다. 민주주의와 귀족주의, 재산권과 평등, 협력과 경쟁, 사치와 절제, 공동체성과 개별성, 자유와 규율 등 삶을 이루는 이런 상반된 가치들이 동등한 자유 속에서 표현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 각각의 가치가 동일한 수준의 재능과 열의를 지닌 사람들에 의해 똑같은 힘으로 주장되고 지지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양쪽이 정당한 제 몫을 인정받을 길은 없다.(p.111) - 「3장 틀린 의견이라도 왜 여전히 필요한가?」 중에서


    개인의 자유는 오직 한 가지 조건 아래에서만 제한될 수 있다. 그것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방식으로 자신의 자유를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오로지 자신과 관련된 일에 대해 자신의 판단과 의지에 따라 스스로 행동한다면, 그 결과가 자신에게만 돌아가는 한 그 자유는 온전히 보장되어야 한다. ‘의견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주장은, 그 의견을 행동으로 옮길 자유 또한 보호받아야 함을 의미한다. 인간은 결코 오류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으며, 사람들이 진리라고 믿는 것들 역시 대부분은 진실의 단편에 불과하다.(p.127) - 「4장 인간의 개성이야말로 왜 자유의 본질이 되는가?」 중에서


    저자 :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영국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밀은 1806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며 경제학자였던 제임스 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에게 극도로 엄격한 영재교육을 시켰다. 그 결과 밀은 3살 때부터 그리스어를 배워서 8살에 헤로도토스와 플라톤의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고, 8살부터는 라틴어를 배워서 오비디우스 등이 쓴 라틴어 고전도 읽었다. 12살부터는 스콜라 철학의 논리학을 공부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저작들을 원어로 읽었다. 13살 때는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저작을 통해 정치경제학을 공부했다. 14살 때는 프랑스에서 1년을 지내면서 몽펠리에 대학에서 화학, 논리학, 고등수학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17세 때인 1823년에는 영국 동인도 회사에 입사하여 아버지의 조수로 일했으며, 그 후 1858년까지 재직하며 연구와 저술 활동을 병행했다. 20살 무렵 밀은 심각한 정신적 위기에 부딪힌다. 신경쇠약으로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작품을 읽고 다시 재기했다. 이때부터 밀의 사상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엄격한 공리주의적 이성 제일주의의 문제점을 깨달았고, 사색과 분석뿐만 아니라 수동적인 감수성이 능동적 능력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비판하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제한적인 정부 개입을 옹호하는 경제학 사상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 사상과,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밀은 행동하는 사상가였다. 그는 사상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1865년부터 1868년까지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의 학장으로 재임했고, 같은 기간 동안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1866년, 그는 하원의원으로서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주장했고, 보통 선거권의 도입 같은 선거제도의 개혁을 촉구했다. 또한 노동조합과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한 사회개혁과 아일랜드의 부담 경감 등도 주장했다.

    주요 저서로 『논리학 체계』(1843), 『정치경제학 원리』(1848), 『자유론』(1859), 『대의정부론』(1861), 『공리주의』(1863), 『자서전』(1873) 등이 있다.


    편자 : 정영훈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으며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가톨릭대학교 상담심리대학원에서 상담과 심리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에 줄곧 출판기획자의 길을 걸어왔다.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기획하고 있으며,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엮은 책으로는 『위대한 심리학자 아들러의 열등감, 어떻게 할 것인가』 『위대한 심리학자 아들러의 가족이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의 크리톤』 『키케로의 노년에 대하여』 『살고, 사랑하고, 웃으라』 『하루에 5번 감사하면 인생이 달라진다』 『세네카의 행복론』 『생텍쥐페리, 인생을 쓰다』 등이 있다.


    역자 : 최기원


    연세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연세대 국제대학원 국제관계학,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통역학으로 석사학위 취득. 현재 각종 국제회의에서 동시통역사로 활약하고 있으며,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전문번역가로도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월세보다 쏠쏠한 에어비앤비』 『페이스북 마케팅』 『고객카드로 이룬 테스코의 기적』 『슈퍼잼 스토리』 『나는 스무 살에 백만장자가 되었다』 『디자이닝 브랜드 아이덴티티』등이 있고 『그래서 쉬운 영어』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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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스토페라 - 마에스트로가 들려주는 오페라 속 세계사
    양진모 지음 / 책과함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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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오페라를 감상하기 위해서도, 세계 역사의 흐름을 알기에도 모두 도움이 된다. 역사적 사건과 인간의 내면을 반영한 창작 예술이자 종합 예술인 오페라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감정까지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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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영화가 대중화되기 전까지 오페라는 최고의 종합예술이었다. 이 책 『히스토페라』의 표제어 '히스토페라'는 역사(history)와 오페라(opera)를 조합해 만든 신조어이다. 저자 양진모는 오페라의 본질적 가치를 역사라는 새로운 시선을 통해 살펴보는 여정으로서 이 책의 집필 취지를 밝힌다. 저자는 한양대학교에서 작곡과 지휘를 전공한 뒤 이탈리아로 가서 시에나 키지아나 아카데미와 밀라노 베르디 국립 음악원을 졸업했다. 귀국한 뒤 1,200회 이상의 오페라 공연을 지휘하며 한국에서 유일한 오페라 전문 지휘자로서 독보적 위치를 굳혀 왔다고 한다. 

    이 책 『히스토페라』 집필 배경에는 역사와 예술이 공존하는 특별한 환경에서 성장한 저자의 삶이 자리하고 있다. 사학자이자 미학자였던 조부의 서재는 역사와 예술 관련 서적으로 가득했으며, 조부와 나눈 대화는 언제나 역사와 예술이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고 저자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또한 부친은 열정적인 클래식 음악 애호가여서 집 안은 항상 음악으로 가득했으며,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곡이 탄생한 배경과 작곡가의 삶, 시대적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고 털어놓는다. 

    이러한 저자의 성장 과정의 경험은 오페라와 역사를 바라보는 독창적이고도 깊이 있는 시각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을 것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더불어 저자는 오페라야말로 인간의 감정, 욕망, 희생, 사랑이 총체적으로 담긴 예술로, 역사를 가장 감각적으로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장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고 밝힌다. 이 믿음은 책 전반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으며, 『히스토페라』의 해석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 책에서 "오페라는 역사적 사건과 인간 내면을 동시에 탐구하는 데 탁월한 도구"라면서 오페라가 시대상을 담은 한편 개인의 삶과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탐구한다고 선언한다.


    오페라는 역사적 사건과 인간의 내면을 결합하는 데 탁월하다는 저자의 믿음은 〈서문〉을 통해 자세히 전달된다. 이에 따르면 음악은 감정을 고조시키고, 문학은 이야기를 전달하며, 연극과 무대미술은 극적인 상상을 눈앞에 펼친다. 이를 통해 오페라는 감각적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시대적 맥락과 인간 본성에 대한 철학적 통찰을 동시에 전달한다. 베르디의 〈돈 카를로〉는 스페인의 종교 갈등과 권력 구조를 탐구하며, 푸치니의 〈나비부인〉은 제국주의 시대의 문화 충돌과 비극을 그려낸다. 이러한 작품들은 단순히 특정 시대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적 사건이 인간의 삶과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심도 깊게 탐구한다. 오페라 무대 위에서 과거는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울림을 주는 생생한 이야기로 부활한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이 책 『히스토페라』가 오페라의 본질적 가치를 찾기 위한 여정으로서 시도된 것이며, 오페라를 통해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독특한 시도라고 귀띔한다. 이 책에는 모두 10편의 오페라를 담고 있으며, 각 오페라는 각각 한 장(章)으로 구성됐다. 이를 통해 저자는 오페라는 단순히 과거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정신과 인간의 보편적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예술이 어떻게 역사를 이해하는 도구가 되는지도 독자들에게 전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오페라의 내용뿐만 아니라 오페라 안에 담긴 당시의 시대적 특성, 역사적 사건 등을 이해함으로써 더욱 풍요롭게 오페라를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페라의 등장 인물들의 갈등과 심리, 나아가 인간의 보편적 심리를 들여다볼 수 있다. 르네상스의 황혼기와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1장), 바다의 공화국 베네치아와 베르디의 〈두 사람의 포스카리〉(2장), 보르자 가문의 검은 야욕과 도니제티의 〈루크레치아 보르자〉(3장), 피로 물든 영국 튜더 왕조와 도니제티의 〈안나 볼레나〉(4장), 대서양을 뒤흔든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베르디의 〈돈 카를로〉(5장), 러시아의 차르 시대와 무소륵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6장), 국민 주권의 태동 프랑스 대혁명과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셰니에〉(7장), 권력의 정점에 선 나폴레옹과 푸치니의 〈토스카〉(8장), 서양 열강의 식민지 침탈과 푸치니의 〈나비부인〉(9장), 치열했던 냉전 시대와 아담스의 〈닉슨 인 차이나〉(10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저자는 10편의 오페라 가운데 직접 무대에서 지휘한 작품은 다섯 편임을 밝히고 있다. 『히스토페라』를 출간한 출판사 측에서는 '소개글'을 통해 이 책의 가장 특별한 점은 '저자의 시선'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지휘자로서 실제 무대에 섰던 경험은 각 작품에 대한 분석에 생생한 감각과 깊이를 더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오르페오〉를 지휘하며 직접 체감한 르네상스의 창조 정신과 음악 혁신, 〈안드레아 셰니에〉에서 마주한 프랑스 혁명의 격렬한 감정, 〈토스카〉에서 되살아난 나폴레옹 치하의 격동과 진실한 사랑의 서사를 생생하게 풀어낸다고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오페라의 구조, 음악 형식, 무대 연출, 대본의 언어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들여다보며, 역사적 배경이 예술 속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는 것. 이는 단순한 해설을 넘어 예술가의 직관과 인문학적 통찰이 조화를 이루는 해석이라 할 수 있다고 츨판사 측은 강조한다. 이 밖에 각 장 말미에는 저자가 직접 추천하는 음반과 영상 콘텐츠가 소개되어 있어 독자들은 오페라의 감동을 더 깊이 있게 체험할 수 있다. 더불어 QR코드를 통해 유튜브 영상으로 바로 연결되도록 구성해, 독서와 감상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배려도 놓치지 않았다고 덧붙인다.

    이 책에 담겨 있는 오페라는 한국에서 주로 소개된 오페라부터,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역사 속 중요한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 등을 엄선했다. 먼저 1장 ‘르네상스의 황혼기와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에서는 르네상스 말기의 인문주의 정신과 예술 혁신을 배경으로 탄생한 최초의 본격 오페라로 평가받는 〈오르페오〉를 통해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르네상스 미술과 음악의 발전과 함께 〈오르페오〉의 탄생과 음악적 양식을 설명한다. 2장 ‘바다의 공화국 베네치아와 베르디의 〈두 사람의 포스카리〉’에서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정치 체계와 귀족들의 권력 투쟁을 바탕으로 한 부자간의 비극적 운명을 다룬다. 베르디는 이 작품에서 권력에 희생되는 인간의 고뇌를 음악적으로 묘사하며, 베네치아라는 도시의 역사성과 개인 서사의 접점을 제시한다.


    3장 ‘보르자 가문의 검은 야욕과 도니제티의 〈루크레치아 보르자〉’에서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악명 높은 귀족 가문 보르자의 권력과 음모, 그리고 루크레치아의 내면적 고통을 조명한다. 잔혹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적인 정을 보여주는 오페라 속 루크레치아는 단순한 악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복합적인 인물로 재해석된다. 그리고 4장 ‘피로 물든 영국 튜더 왕조와 도니제티의 〈안나 볼레나〉’에서는 왕권과 사랑, 종교개혁의 갈등 속에서 희생된 안나의 운명을 통해 튜더 왕조의 권력 투쟁을 그린다. 작곡가 도니제티는 이 작품에서 극단의 상황 속에서도 존엄을 잃지 않는 여성의 비극을 절절하게 묘사한다.

    5장 ‘대서양을 뒤흔든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베르디의 〈돈 카를로〉’는 16세기 스페인의 정치적 긴장과 종교적 갈등을 배경으로 펠리페 2세, 왕세자 카를로, 왕비 엘리자베타 사이의 삼각관계를 이야기한다. 이 작품은 종교 재판, 독재 권력, 인간 내면의 고뇌를 복합적으로 풀어냈으며, 저자는 당시 시대적 배경인 스페인 무적함대와 레판토 해전에 대해서도 함께 조명한다. 

    6장 ‘러시아의 차르 시대와 무소륵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에서는 러시아 차르 보리스 고두노프의 정치적 고립과 민중의 불안, 권력의 불안정함을 다룬다. 무소륵스키는 서구 오페라와 달리 러시아 민중의 집단 심리와 역사적 현실을 사실주의적 음악으로 표현하며, 독특한 민족적 색채를 보여주었다.

    다음으로 7장 ‘국민 주권의 태동 프랑스 대혁명과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셰니에〉’는 프랑스 혁명의 열기 속 시인 셰니에의 삶과 죽음을 통해 자유와 평등, 사랑과 희생을 노래한 작품이다. 공포정치와 이상주의의 충돌, 민중의 열망과 개인의 비극이 교차하는 극적 긴장감을 잘 표현했다. 작품의 배경이 된 프랑스 혁명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도 함께 살펴본다.


    8장 ‘권력의 정점에 선 나폴레옹과 푸치니의 〈토스카〉’에서는 나폴레옹 전쟁 시기 로마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음모와 예술가, 연인의 비극적 운명을 소개한다. 푸치니는 이 작품에서 권력에 맞선 예술가와 희생적 사랑을 사실주의적 음악으로 그려냈으며, 극도의 긴장감과 감정의 폭발이 특징이다.

    9장 ‘서양 열강의 식민지 침탈과 푸치니의 〈나비부인〉’은 19세기 말 제국주의 시대 미국 해군과 일본 여성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이 작품은 식민지적 시선과 문화 충돌을 예술적으로 녹여낸 오페라로, 나비부인의 운명은 동양 여성에 대한 서구의 환상과 현실을 대조시킨다. 마지막으로 10장 ‘치열했던 냉전 시대와 아담스의 〈닉슨 인 차이나〉’는 1972년 미국 대통령 닉슨의 중국 방문을 소재로 한 현대 오페라다.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정치의 연극성, 문화적 오해, 세계 질서의 재편을 주제로 삼으며, 미니멀리즘 음악과 역사적 상상력이 결합된 독특한 시도를 보여준다.


    프랑스는 나폴레옹의 승리에 열광했다. 마렝고 승전 이후 나폴레옹은 개선 행진을 생략하고 7월 2일 새벽에 파리로 몰래 돌아왔음에도, 그가 튈르리 궁전에 도착하자 엄청난 인파가 그를 환영했다. 흥분한 군중에 의해 나폴레옹은 그날 밤 여러 차례 모습을 나타내야 했다. 이 승전 축제는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인 7월 14일까지 계속되었다. 마렝고 전투의 승리로 나폴레옹은 프랑스를 명실 공히 유럽의 지도국 위치에 올려놓았다. 그 후 실각하기까지 자신의 권력을 바탕으로 유럽 국가들을 서로 분열시켰으며, 가까운 지인들을 점령한 나라의 총령으로 임명했다.(p.281) 

    - 「Chapter 8│권력의 정점에 선 나폴레옹과 푸치니의 〈토스카〉」 중에서


    이 책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은 단순한 오페라가 아니다. 그것은 각각의 시대가 품었던 열망과 두려움, 사랑과 투쟁의 기록이자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품은 시대의 초상이다. 저자는 오페라와 역사, 그리고 삶과 예술적 여정이 만나는 교차점을 따라가며 선율에 스며든 인류의 감정과 사건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오페라는 단지 귀로 듣는 예술이 아니라 인간이 겪어온 갈등과 선택, 상실과 구원의 기억이라는 것을 책을 통해 저자는 풀어내고 있다. 각 작품의 선율과 대사는 당시의 정서를 생생히 되살리고, 우리는 무대 위 인물들의 희비 속에서 오늘의 우리 자신을 비추어보게 된다. 이에 따라 이 책 『히스토페라』는 그 감정의 잔향과 역사적 맥락을 촘촘히 연결하며, 예술이 어떻게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 말을 거는지를 깊이 있게 보여준다.

    저자는 이 책이 독자들에게 오페라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기회를 제공하고,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를 반추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한다. 그 바람처럼 『히스토페라』는 오페라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흥미롭고 친절한 길잡이가, 친숙한 이들에게는 익숙한 무대 뒤편에 감춰진 의미를 새롭게 비추는 통찰의 렌즈가 될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저자 : 양진모


    한양대학교에서 작곡과 지휘를 전공한 뒤 이탈리아로 건너가 시에나 키지아나 아카데미와 밀라노 베르디 국립 음악원을 졸업했다. 귀국 후에는 국립 오페라단, 서울시 오페라단 등 다양한 프로덕션에서 약 80여 편, 1200회 이상의 오페라 공연을 지휘하며 한국에서 유일한 오페라 전문 지휘자로서 독보적인 발자취를 새겨왔다. 특히 한국 창작 오페라에도 깊은 애정을 가지고 우리 오페라의 지평을 넓히는 데 헌신해 왔으며, 현재는 코레아나 클라시카 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으로서 오페라 전문 오케스트라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실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오페라를 만나러 가자』가 있으며 『CD 가이드』, 『객석』, 『코다』 등 여러 매체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고대 비극부터 혁명의 아리아까지 시간의 켜를 따라 역사의 심층을 탐색하는 『히스토페라』는 오페라를 ‘노래하는 역사’이자 ‘소리로 쓰는 기록’으로 바라본다. 이 책은 과거와 현재가 아름답게 교차하는 또 하나의 오페라 무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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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 밤에 쓴 일기 난중야록 2 - 이순신 탄생 480주년 만에 공개되는 7년 전쟁의 비록
    조강태 지음 / 스타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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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난중일기』를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없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을 통해 23승 전승의 세계 해전사 유일무이한 업적을 남겼다. 또 『난중일기』는 그가 임진왜란 7년 간 쓴 기록으로 군중에서 직접 쓴 친필 일기이다. 이 일기 기록은 전쟁 중 해군 최고 지휘관이 매일 전투 상황과 개인적 소회를 기록한 유일한 사례로, 군사 전략과 자연 환경, 서민 생활상까지 상세히 담겨 있다. 『난중일기』는 특히 1962년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었으며,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기록으로 남긴 날씨와 전투 상황은 변화하는 자연 환경과 조류 등에 어떤 전략이 승리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리기에는 더 없이 좋은 방법이다. 특히 일기와 조류가 수시로 바뀌는 해전에서는 승전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사적 일기가 아닌 전쟁 기록으로 남겨지면서 심지어 일본 해군에서도 가르쳤다고 알려졌다. 

    충무공의 일기 기록은 그동안 번역본, 번역해제본, 발췌 번역본 등을 조금씩 읽어본 독자들도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애국애족을 실천함으로써 나라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냈으며, 그가 해상에서 편 전술은 지금까지도 많은 해군 제독*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전투마다 다른 전술을 썼다고도 알려지고 있다. 이에 당시 왜군 입장에서는 철천지 원수로 생각했지만, 돌아가서는 일본 수군의 병법서에도 많이 인용됐다고 한다.

    이 책 『난중야록 2』는 이순신이 '밤에 쓴 일기'라는 수식어가 달린 소설 작품(1, 2권)의 두 번째 권이다. 『난중야록』은 난중일기에서 쓸 수 없었던 숨겨진 이야기를 이순신이 초안을 작성하고 이걸영(임단)이 옮겨 적은 ‘7년 전쟁 일기’의 번외기록인 셈이다. 『난중야록』을 함께 쓴 소설 속 인물 임단은 "출정이 두렵다면 전쟁도 놀이처럼 생각하라"고 조언하고, 확신을 위해 마늘 점으로 승리의 주문을 걸게 해 마음속 불안을 용기로 바꿔주는 등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한 여인의 지혜는 놀라울 정도로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제독 : 육군, 공군, 해병대의 ‘장군(General)’ 에 준하는 장관급 지휘관인 ‘제독(Admiral)’ 은 아랍어로 ‘바다의 지휘자’ 를 뜻하는 ‘아미르-알-바흐르(Amir-al-Bahr)’에서 유래됐다. 11 세기경 십자군 전쟁 때 아랍권에서 유럽으로 전래된 명칭이다.


    『난중야록』에는 지금까지 어느 문건에도 나와 있지 않은 거북선 제조과정, 사랑, 전쟁 준비, 백성들의 삶 등 임진년부터 정유년까지 7년 전쟁의 숨은 이야기가 낱낱이 수록되어 있다. 『난중야록』1권은 이 야록을 남겼다는 이걸영(임단)과 이순신의 이야기가 주로 나온다. 임단은 당시 15살이라고 하지만 생각, 하는 말이나 행동은 성인이 틀림없을 정도로 영악하다. 어쩌면 모델을 이순신의 수하 장교에서 찾았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 속에서는 임단과 그의 어미, 증조모를 보면 관비다. 관비로서 어떻게 전쟁의 전술을 깨우쳤는지는 모르지만 비범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이를 테면 임진왜란 때 자주 나온 '학익진'이란 전술은 학이 양날개를 펴서 앙끝의 빠른 전함이 가운데로 질주하는 왜선을 포위하는 형상에서 비롯된 포진법을 말하는데 주변 지형과 날씨, 또 적의 규모나 배의 속도, 그리고 적군의 숫자 등을 모두 감안해 펴는 진법이라서 관비가 이를 깨우칠 일은 없을 듯하다. 다만 소설이니까 가능한 것 아닐까. 임단이 힌트를 줘서 충무공이 이를 응용해 학익진을 펼쳤다는 사실은 소설 속의 이야기로서는 가능하니까. 뿐만 아니라 2권에서는 이순신이 임단의 도움을 기꺼이 수용하고 실전에 적용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하는 대목도 나온다. 이는 충무공이 병법에 능통하다는 사실과 『난중일기』의 기록을 강조하고, 임단의 제안도 승리를 위해 필요하다면 받아들이는 충무공의 유연한 리더십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해 볼 수도 있다. 

    『난중야록 2』에는 거북선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충무공이 임단의 조언을 받아들여 수정보완하고 또 보완함으로써 거북선을 완성해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포함돼 있다. 또한 세자로서 분조(分朝, 임진왜란 때, 선조가 광해군에게 명하여 임시로 두었던 조정)를 이끈 광해군도 임단의 조언으로 면천을 선포하는 등 훌륭한 '전쟁의 여신'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실제 광해군은 천민이나 죄인들을 끌어내 훈련을 독려함으로써 육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음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면천을 해주는 정책을 실시한 것 아닌가 싶다. 이처럼 승리의 중심에는 항상 임단이 있다는 점은 『난중야록』의 주인공이 임단임을 독자들이 인식하게 한다.


    2권 맨 앞에 작품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 〈이바지글〉**에서 편저자 조강태는 『난중일기』와 『난중야록』의 차이를 분명히 한다. "난중야록이 난중일기와 차별되는 것은 기록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걸영(임단)이 주인공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 글의 주인공이 이순신이면, 내용이 난중일기와 겹칠 수밖에 없으므로 이 글은 또 하나의 난중일기가 되는 것이다. 이순신에 대해 궁금한 점은 이순신이 주인공인 난중일기에서 찾아야 한다."(2권, p.5)

    〈이바지글〉에 따르면 임단은 '실존 인물'이다. 그러나 『난중야록』이 아닌 어느 문헌이나 기록에 그 이름은 없다. 조선시대 기록에 남아있는 여성의 이름은 장옥정, 정난정 등 패악질하고 자살하거나 죽임을 당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은 자나 호며 이름이 아니다. 임단은 이순신을 도왔다. 거의 모두가 옳고 바르다. 그러나 그녀의 신분은 관비이다. 조선은 관비의 기록을 남길 만큼 너그러운 나라가 아니다. 그러기에 『난중야록』에 새긴 그녀의 활약이 더욱 빛나는 것이다. 삼국지의 주인공은 유비다. 그러나 주인공처럼 보이는 것은 제갈공명이다. 제갈공명이 활약하며 유비에게는 패배가 없다. 

    저자의 임단이란 인물을 부각시키는 글은 계속된다. "『난중야록』의 주인공은 이순신이다. 그러나 주인공처럼 보이는 것은 임단이다. 임단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난중야록』도 별 재미가 없다. 임단이 활약하며 이순신에게도 패배가 없다. 제갈공명은 백성에게 추앙을 받았고 공정했으며 천기까지도 다스렸다. 그가 지휘한 모든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그것은 촉한의 측면에서 볼 때의 얘기다. 제갈공명이 촉한의 세를 넓히기 위해 싸웠던 측면에서 볼 때 제갈공명은 자신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살인귀였을 뿐이다."(2권, p.5~6)

    ** 이바지글 : '이바지'의 사전적 풀이는 ① 도움이 되게 함 ② 물건들을 갖추어 바라지함 등이다. 저자는 작품의 이해를 위해 미리 '조언'하거나 '도움말'의 의미로 쓴 것으로 읽힌다. '서문'이나 '프롤로그' '머리글' 등으로 이해해야 할 듯하다.(독자 주) 


    이처럼 저자는 이 작품에서 임단은 뛰어난 인물이고, 이순신을 도와 왜군과의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를 일궈낸 숨은 공신으로 묘사하고 있다. 즉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죄 없는 조선 백성들을 죽이고 귀와 코를 잘라간 전쟁 초기 왜국에게는 제갈공명 같은 명장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왜국 측에서나 제갈공명 같은 명장이지 당시 조선 백성들에게 그들은 살인귀였을 뿐이다. 임단은 다르다. 왜적의 침략에서 나라를 살리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나라를 살리기 위해 왜적과 싸웠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작품 속 임단이란 인물을 설정했다고 털어놓는다.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를 『난중야록』의 등장인물을 비유적으로 쓴 것이긴 하지만 독자 측에서는 다소 이해하기 어렵게 실제 정사와 소설 속 등장인물을 등치시키며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저자의 충심을 이해하는 입장에서 독자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답변을 하고자 한다. "이순신의 '장군' 지칭은 옳지 않다. 이순신은 지금으로 말하면 별 넷 '대장'인데, 별 하나 '준장'도 같은 장군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정승반열(삼부요인)에 오른다. 충무공 또는 이순신으로 지칭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순신을 '충무공'으로 부르는 것은 후대의 사람들에 의해 추존된 시호다. 1643년(인조 21)에 ‘충무(忠武)’의 시호를 받았고, 1659년(효종 10)에는 남해의 전적지에 그의 비석이 세워졌다. 1707년(숙종 33)에는 충청도 아산(牙山)에 세워진 그의 사당에 ‘현충(顯忠)’이란 호가 내려졌으며, 1793년(정조 17)에는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두산백과)

    정사에는 통신사로 다녀온 두 사신의 말이 엇갈리지만 조선을 침략할 것으로 짐작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이때 율곡 이이의 '10만 양성설'도 나온 것이다. 일본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조선 조정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비변사***에 장수감이 될 만한 인재를 추천하라고 명하자, 유성룡이 정읍 현감으로 있던 이순신을 천거하여 전라좌수사에 임명됐다. 특히 이순신은 2년 전에 이산해와 정언신의 추천으로 특별채용된 이력이 있었기에, 정읍 현감(종6품)에서 진도 군수(정5품)와 가리포 참사(종3품)을 거쳐 죄수사(정3품)에 승진할 수 있었다고 조선왕조실록 정사의 번역본에 나와 있다. 당시 조정에서는 순변사 신립의 건의에 따라 수군을 없애고 육지에서만 전쟁하라고 명하였다. 그러자 이순신이 '바다의 도적을 차단하는 데는 수군만한 것이 없으니, 해전과 육전을 어느 한 쪽도 폐할 수 없습니다."라고 보고하니, 조정에서 이를 따랐다고 한다. 이순신은 좌수영에 속한 진영들을 정비하고 쇠사슬을 바다 어귀에 가로질러 치고, 큰 군함을 개조하여 거북선을 만들어 위에 화살촉과 칼날을 꽂고, 창과 대포는 안에 배치하여 적을 대비하였다.

    *** 비변사 : 조선 시대 국방을 맡아 보던 관청. 명종 때부터 상설 기구화되어 임진왜란 후에는 국무 전반을 담당한 최고 관부가 되었으며, 대원군 때 폐지되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당시 이순신은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이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수사 원균의 요청을 받아 경상도 해역으로 출정해 왜군과의 해전에서 잇따라 승리를 거두었다. 6월 16일(음력 5월 7일, 이하 양력) 옥포와 합포에서 왜선 30여척을 격파하는 큰 승리를 거두었고(옥포해전), 다음날에도 적진포에서 10여척의 왜선을 격파하였다(적진포해전). 이 전투들에서의 승리로 조선 수군은 왜군과의 해전에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러한 공으로 이순신은 종2품(지금으로는 차관) 가선대부로 승진했다. 7월 8일에는 경상우수사 원균과 합류해 사천에서 서해로 북상하려던 왜선 13척을 모두 격침시켰다(사천해전). 이 전투에서는 거북선이 처음으로 실전에 배치됐다. 7월 10일에는 당포에서 왜선 21척을 불태웠으며(당포해전), 7월 13일에는 왜군이 도주해 진을 치고 있는 당항포를 공격해서 왜선 26척을 격침시켰다(제1차 당항포해전). 이러한 잇따른 승리로 이순신은 정2품(장관급) 자헌대부가 되었다.

    대장급이란 저자의 지적은 정확하지만, 당시 조선 수군은 별의 갯수로 장군의 직위를 표시하지 않았다. 육군도 지금 참모총장급을 '도원수'로 칭했고, 실제 무신이 '부원수'로 선봉을 지휘했다. 도원수는 외적 방어, 국외 원정, 내란 진압 등을 위해 '임시'로 임명된 군사 지휘관을 말한다. 도원수에는 보통 2품 이상의 문신이 임명되었으며, 해당 지역의 군대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임진왜란 때 육군을 통솔하는 분으로 권율 장군을 들 수 있다. 도원수 제도는 병자호란(1636년) 때까지 운영되다가 점차 폐지되었다. 

    이 책 『난중야록 2』는 〈이바지글〉과 책 맨 뒷 부분에 있는 〈두 번째 감수의 글〉(안철주)을 제외하면 모두 9개 장(章)으로 나뉘어 있다. 「무명초」「조릅나물」「화조풍월」「도토리나무」「솥뚜껑」「오목」「물개비」「은자」「고슴도치」 등이다. 1장부터 9장까지가 임진왜란 발발 당시 7월 21일부터 그해 12월 13일까지의 『난중일기』을 기반으로 소설로 형상화하고 극적 구성을 위해 등장인물을 다변화시킨 것으로 독자는 이해된다.


    이 소설 작품 『난중야록』은 영웅 이순신의 일기를 토대로 저자가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구전으로 전해 들어왔던 이야기들을 참고하며 엮었다고 출판사 소개글에 나와 있다. 이 책을 혼란하다고 말한 독자들은 대부분 출판사 소개글을 읽지 않아서일 것 같다. 저자 조경태는 이순신의 15대 외손으로 밝히고 있어 혼란을 더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야록(野錄)을 밤(夜)에 쓰는 일기 형식의 소설로 이순신을 그려내고 있다. 동서고금의 영웅들에게는 뒤에 위대한 여인들이 있었듯 영웅 이순신에게도 어머니 외에 어떤 여인의 조력이 있었을 거라는 상상력을 품을 수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단이’가 바로 그림자 같은 존재이다. 

    이순신을 내조하며 영웅으로 조각해 가는 이야기가 경이로울 정도로 재미와 함께 조선 시대를 움직여 온 그 어떤 위대한 여인들도 견줄 수 없는 불세출의 여인이다. 저자는 이 소설 집필을 위해 오랫동안 『난중일기』와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전적지, 장소들을 답사하며 자료를 수집하고 상상력을 가미하였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안철주의 〈두 번째 감수의 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 작품의 초기 진행과정부터 함께 의견을 나누며 감수를 해 온 입장에서 볼 때 기존에 출간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여러 저작물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야록으로서 삶속에 드러나는 인간적인 면의 영웅 이순신과 감탄해 마지않을 매력을 뿜어내는 위대한 여인 단이의 존재를 발견 하게 될 것이다."

    새롭게 공개되는 『난중야록』에는 이순신을 내조하며 영웅으로 조각해 가는 이야기가 경이로울 정도로 재미와 함께 조선 시대를 움직여 온 그 어떤 위대한 여인들도 견줄 수 없는 불세출의 여인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우리 군의 본격적인 꼬챙이 훈련이 시작됐습니다. 왜적 모양의 허수아비를 짚으로 만들어놓고 꼬챙이 작대기로 정확하게 허수아비의 왼쪽 심장을 먹물로 표시하고 찌르는 연습입니다. 다른 훈련은 일절 하지 않고 이 연습만 합니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포상(褒賞)도 합니다. 처음에는 두 손으로 허수아바 심장을 겨냥하지만, 숙달되면 오른손으로만 심장을 찌릅니다. 마지막으로 왼손으로 솥뚜껑 방패를 잡고 뛰어가 쇠꼬챙이로 허수아비의 심장을 찌릅니다. 밥 먹고 이 훈련만 시키면 눈감고도 심장을 찌를 수 있는 경지, 목무전우(目無全牛)(신기에 가까운 솜씨)가 됩니다.(p.240) 「스무아흐레째 날(10월 14일)」 중에서


    편저자 : 조강태


    이순신의 15대 외손으로 소설 황후의 칼, 만화 경매 삼국지와 너구리 형님, 도시의 파파라기, 코믹관상, 황금포승, 야수, 호스피스 등 그 외 다수의 작품이 있으며 지금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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