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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밤에 쓴 일기 난중야록 2 - 이순신 탄생 480주년 만에 공개되는 7년 전쟁의 비록
조강태 지음 / 스타북스 / 2025년 6월
평점 :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난중일기』를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없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을 통해 23승 전승의 세계 해전사 유일무이한 업적을 남겼다. 또 『난중일기』는 그가 임진왜란 7년 간 쓴 기록으로 군중에서 직접 쓴 친필 일기이다. 이 일기 기록은 전쟁 중 해군 최고 지휘관이 매일 전투 상황과 개인적 소회를 기록한 유일한 사례로, 군사 전략과 자연 환경, 서민 생활상까지 상세히 담겨 있다. 『난중일기』는 특히 1962년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었으며,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기록으로 남긴 날씨와 전투 상황은 변화하는 자연 환경과 조류 등에 어떤 전략이 승리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리기에는 더 없이 좋은 방법이다. 특히 일기와 조류가 수시로 바뀌는 해전에서는 승전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사적 일기가 아닌 전쟁 기록으로 남겨지면서 심지어 일본 해군에서도 가르쳤다고 알려졌다.
충무공의 일기 기록은 그동안 번역본, 번역해제본, 발췌 번역본 등을 조금씩 읽어본 독자들도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애국애족을 실천함으로써 나라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냈으며, 그가 해상에서 편 전술은 지금까지도 많은 해군 제독*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전투마다 다른 전술을 썼다고도 알려지고 있다. 이에 당시 왜군 입장에서는 철천지 원수로 생각했지만, 돌아가서는 일본 수군의 병법서에도 많이 인용됐다고 한다.
이 책 『난중야록 2』는 이순신이 '밤에 쓴 일기'라는 수식어가 달린 소설 작품(1, 2권)의 두 번째 권이다. 『난중야록』은 난중일기에서 쓸 수 없었던 숨겨진 이야기를 이순신이 초안을 작성하고 이걸영(임단)이 옮겨 적은 ‘7년 전쟁 일기’의 번외기록인 셈이다. 『난중야록』을 함께 쓴 소설 속 인물 임단은 "출정이 두렵다면 전쟁도 놀이처럼 생각하라"고 조언하고, 확신을 위해 마늘 점으로 승리의 주문을 걸게 해 마음속 불안을 용기로 바꿔주는 등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한 여인의 지혜는 놀라울 정도로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제독 : 육군, 공군, 해병대의 ‘장군(General)’ 에 준하는 장관급 지휘관인 ‘제독(Admiral)’ 은 아랍어로 ‘바다의 지휘자’ 를 뜻하는 ‘아미르-알-바흐르(Amir-al-Bahr)’에서 유래됐다. 11 세기경 십자군 전쟁 때 아랍권에서 유럽으로 전래된 명칭이다.

『난중야록』에는 지금까지 어느 문건에도 나와 있지 않은 거북선 제조과정, 사랑, 전쟁 준비, 백성들의 삶 등 임진년부터 정유년까지 7년 전쟁의 숨은 이야기가 낱낱이 수록되어 있다. 『난중야록』1권은 이 야록을 남겼다는 이걸영(임단)과 이순신의 이야기가 주로 나온다. 임단은 당시 15살이라고 하지만 생각, 하는 말이나 행동은 성인이 틀림없을 정도로 영악하다. 어쩌면 모델을 이순신의 수하 장교에서 찾았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 속에서는 임단과 그의 어미, 증조모를 보면 관비다. 관비로서 어떻게 전쟁의 전술을 깨우쳤는지는 모르지만 비범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이를 테면 임진왜란 때 자주 나온 '학익진'이란 전술은 학이 양날개를 펴서 앙끝의 빠른 전함이 가운데로 질주하는 왜선을 포위하는 형상에서 비롯된 포진법을 말하는데 주변 지형과 날씨, 또 적의 규모나 배의 속도, 그리고 적군의 숫자 등을 모두 감안해 펴는 진법이라서 관비가 이를 깨우칠 일은 없을 듯하다. 다만 소설이니까 가능한 것 아닐까. 임단이 힌트를 줘서 충무공이 이를 응용해 학익진을 펼쳤다는 사실은 소설 속의 이야기로서는 가능하니까. 뿐만 아니라 2권에서는 이순신이 임단의 도움을 기꺼이 수용하고 실전에 적용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하는 대목도 나온다. 이는 충무공이 병법에 능통하다는 사실과 『난중일기』의 기록을 강조하고, 임단의 제안도 승리를 위해 필요하다면 받아들이는 충무공의 유연한 리더십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해 볼 수도 있다.
『난중야록 2』에는 거북선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충무공이 임단의 조언을 받아들여 수정보완하고 또 보완함으로써 거북선을 완성해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포함돼 있다. 또한 세자로서 분조(分朝, 임진왜란 때, 선조가 광해군에게 명하여 임시로 두었던 조정)를 이끈 광해군도 임단의 조언으로 면천을 선포하는 등 훌륭한 '전쟁의 여신'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실제 광해군은 천민이나 죄인들을 끌어내 훈련을 독려함으로써 육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음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면천을 해주는 정책을 실시한 것 아닌가 싶다. 이처럼 승리의 중심에는 항상 임단이 있다는 점은 『난중야록』의 주인공이 임단임을 독자들이 인식하게 한다.

2권 맨 앞에 작품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 〈이바지글〉**에서 편저자 조강태는 『난중일기』와 『난중야록』의 차이를 분명히 한다. "난중야록이 난중일기와 차별되는 것은 기록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걸영(임단)이 주인공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 글의 주인공이 이순신이면, 내용이 난중일기와 겹칠 수밖에 없으므로 이 글은 또 하나의 난중일기가 되는 것이다. 이순신에 대해 궁금한 점은 이순신이 주인공인 난중일기에서 찾아야 한다."(2권, p.5)
〈이바지글〉에 따르면 임단은 '실존 인물'이다. 그러나 『난중야록』이 아닌 어느 문헌이나 기록에 그 이름은 없다. 조선시대 기록에 남아있는 여성의 이름은 장옥정, 정난정 등 패악질하고 자살하거나 죽임을 당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은 자나 호며 이름이 아니다. 임단은 이순신을 도왔다. 거의 모두가 옳고 바르다. 그러나 그녀의 신분은 관비이다. 조선은 관비의 기록을 남길 만큼 너그러운 나라가 아니다. 그러기에 『난중야록』에 새긴 그녀의 활약이 더욱 빛나는 것이다. 삼국지의 주인공은 유비다. 그러나 주인공처럼 보이는 것은 제갈공명이다. 제갈공명이 활약하며 유비에게는 패배가 없다.
저자의 임단이란 인물을 부각시키는 글은 계속된다. "『난중야록』의 주인공은 이순신이다. 그러나 주인공처럼 보이는 것은 임단이다. 임단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난중야록』도 별 재미가 없다. 임단이 활약하며 이순신에게도 패배가 없다. 제갈공명은 백성에게 추앙을 받았고 공정했으며 천기까지도 다스렸다. 그가 지휘한 모든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그것은 촉한의 측면에서 볼 때의 얘기다. 제갈공명이 촉한의 세를 넓히기 위해 싸웠던 측면에서 볼 때 제갈공명은 자신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살인귀였을 뿐이다."(2권, p.5~6)
** 이바지글 : '이바지'의 사전적 풀이는 ① 도움이 되게 함 ② 물건들을 갖추어 바라지함 등이다. 저자는 작품의 이해를 위해 미리 '조언'하거나 '도움말'의 의미로 쓴 것으로 읽힌다. '서문'이나 '프롤로그' '머리글' 등으로 이해해야 할 듯하다.(독자 주)

이처럼 저자는 이 작품에서 임단은 뛰어난 인물이고, 이순신을 도와 왜군과의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를 일궈낸 숨은 공신으로 묘사하고 있다. 즉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죄 없는 조선 백성들을 죽이고 귀와 코를 잘라간 전쟁 초기 왜국에게는 제갈공명 같은 명장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왜국 측에서나 제갈공명 같은 명장이지 당시 조선 백성들에게 그들은 살인귀였을 뿐이다. 임단은 다르다. 왜적의 침략에서 나라를 살리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나라를 살리기 위해 왜적과 싸웠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작품 속 임단이란 인물을 설정했다고 털어놓는다.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를 『난중야록』의 등장인물을 비유적으로 쓴 것이긴 하지만 독자 측에서는 다소 이해하기 어렵게 실제 정사와 소설 속 등장인물을 등치시키며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저자의 충심을 이해하는 입장에서 독자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답변을 하고자 한다. "이순신의 '장군' 지칭은 옳지 않다. 이순신은 지금으로 말하면 별 넷 '대장'인데, 별 하나 '준장'도 같은 장군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정승반열(삼부요인)에 오른다. 충무공 또는 이순신으로 지칭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순신을 '충무공'으로 부르는 것은 후대의 사람들에 의해 추존된 시호다. 1643년(인조 21)에 ‘충무(忠武)’의 시호를 받았고, 1659년(효종 10)에는 남해의 전적지에 그의 비석이 세워졌다. 1707년(숙종 33)에는 충청도 아산(牙山)에 세워진 그의 사당에 ‘현충(顯忠)’이란 호가 내려졌으며, 1793년(정조 17)에는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두산백과)
정사에는 통신사로 다녀온 두 사신의 말이 엇갈리지만 조선을 침략할 것으로 짐작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이때 율곡 이이의 '10만 양성설'도 나온 것이다. 일본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조선 조정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비변사***에 장수감이 될 만한 인재를 추천하라고 명하자, 유성룡이 정읍 현감으로 있던 이순신을 천거하여 전라좌수사에 임명됐다. 특히 이순신은 2년 전에 이산해와 정언신의 추천으로 특별채용된 이력이 있었기에, 정읍 현감(종6품)에서 진도 군수(정5품)와 가리포 참사(종3품)을 거쳐 죄수사(정3품)에 승진할 수 있었다고 조선왕조실록 정사의 번역본에 나와 있다. 당시 조정에서는 순변사 신립의 건의에 따라 수군을 없애고 육지에서만 전쟁하라고 명하였다. 그러자 이순신이 '바다의 도적을 차단하는 데는 수군만한 것이 없으니, 해전과 육전을 어느 한 쪽도 폐할 수 없습니다."라고 보고하니, 조정에서 이를 따랐다고 한다. 이순신은 좌수영에 속한 진영들을 정비하고 쇠사슬을 바다 어귀에 가로질러 치고, 큰 군함을 개조하여 거북선을 만들어 위에 화살촉과 칼날을 꽂고, 창과 대포는 안에 배치하여 적을 대비하였다.
*** 비변사 : 조선 시대 국방을 맡아 보던 관청. 명종 때부터 상설 기구화되어 임진왜란 후에는 국무 전반을 담당한 최고 관부가 되었으며, 대원군 때 폐지되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당시 이순신은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이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수사 원균의 요청을 받아 경상도 해역으로 출정해 왜군과의 해전에서 잇따라 승리를 거두었다. 6월 16일(음력 5월 7일, 이하 양력) 옥포와 합포에서 왜선 30여척을 격파하는 큰 승리를 거두었고(옥포해전), 다음날에도 적진포에서 10여척의 왜선을 격파하였다(적진포해전). 이 전투들에서의 승리로 조선 수군은 왜군과의 해전에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러한 공으로 이순신은 종2품(지금으로는 차관) 가선대부로 승진했다. 7월 8일에는 경상우수사 원균과 합류해 사천에서 서해로 북상하려던 왜선 13척을 모두 격침시켰다(사천해전). 이 전투에서는 거북선이 처음으로 실전에 배치됐다. 7월 10일에는 당포에서 왜선 21척을 불태웠으며(당포해전), 7월 13일에는 왜군이 도주해 진을 치고 있는 당항포를 공격해서 왜선 26척을 격침시켰다(제1차 당항포해전). 이러한 잇따른 승리로 이순신은 정2품(장관급) 자헌대부가 되었다.
대장급이란 저자의 지적은 정확하지만, 당시 조선 수군은 별의 갯수로 장군의 직위를 표시하지 않았다. 육군도 지금 참모총장급을 '도원수'로 칭했고, 실제 무신이 '부원수'로 선봉을 지휘했다. 도원수는 외적 방어, 국외 원정, 내란 진압 등을 위해 '임시'로 임명된 군사 지휘관을 말한다. 도원수에는 보통 2품 이상의 문신이 임명되었으며, 해당 지역의 군대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다. 임진왜란 때 육군을 통솔하는 분으로 권율 장군을 들 수 있다. 도원수 제도는 병자호란(1636년) 때까지 운영되다가 점차 폐지되었다.
이 책 『난중야록 2』는 〈이바지글〉과 책 맨 뒷 부분에 있는 〈두 번째 감수의 글〉(안철주)을 제외하면 모두 9개 장(章)으로 나뉘어 있다. 「무명초」「조릅나물」「화조풍월」「도토리나무」「솥뚜껑」「오목」「물개비」「은자」「고슴도치」 등이다. 1장부터 9장까지가 임진왜란 발발 당시 7월 21일부터 그해 12월 13일까지의 『난중일기』을 기반으로 소설로 형상화하고 극적 구성을 위해 등장인물을 다변화시킨 것으로 독자는 이해된다.

이 소설 작품 『난중야록』은 영웅 이순신의 일기를 토대로 저자가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구전으로 전해 들어왔던 이야기들을 참고하며 엮었다고 출판사 소개글에 나와 있다. 이 책을 혼란하다고 말한 독자들은 대부분 출판사 소개글을 읽지 않아서일 것 같다. 저자 조경태는 이순신의 15대 외손으로 밝히고 있어 혼란을 더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야록(野錄)을 밤(夜)에 쓰는 일기 형식의 소설로 이순신을 그려내고 있다. 동서고금의 영웅들에게는 뒤에 위대한 여인들이 있었듯 영웅 이순신에게도 어머니 외에 어떤 여인의 조력이 있었을 거라는 상상력을 품을 수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단이’가 바로 그림자 같은 존재이다.
이순신을 내조하며 영웅으로 조각해 가는 이야기가 경이로울 정도로 재미와 함께 조선 시대를 움직여 온 그 어떤 위대한 여인들도 견줄 수 없는 불세출의 여인이다. 저자는 이 소설 집필을 위해 오랫동안 『난중일기』와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전적지, 장소들을 답사하며 자료를 수집하고 상상력을 가미하였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안철주의 〈두 번째 감수의 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 작품의 초기 진행과정부터 함께 의견을 나누며 감수를 해 온 입장에서 볼 때 기존에 출간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여러 저작물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야록으로서 삶속에 드러나는 인간적인 면의 영웅 이순신과 감탄해 마지않을 매력을 뿜어내는 위대한 여인 단이의 존재를 발견 하게 될 것이다."
새롭게 공개되는 『난중야록』에는 이순신을 내조하며 영웅으로 조각해 가는 이야기가 경이로울 정도로 재미와 함께 조선 시대를 움직여 온 그 어떤 위대한 여인들도 견줄 수 없는 불세출의 여인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우리 군의 본격적인 꼬챙이 훈련이 시작됐습니다. 왜적 모양의 허수아비를 짚으로 만들어놓고 꼬챙이 작대기로 정확하게 허수아비의 왼쪽 심장을 먹물로 표시하고 찌르는 연습입니다. 다른 훈련은 일절 하지 않고 이 연습만 합니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포상(褒賞)도 합니다. 처음에는 두 손으로 허수아바 심장을 겨냥하지만, 숙달되면 오른손으로만 심장을 찌릅니다. 마지막으로 왼손으로 솥뚜껑 방패를 잡고 뛰어가 쇠꼬챙이로 허수아비의 심장을 찌릅니다. 밥 먹고 이 훈련만 시키면 눈감고도 심장을 찌를 수 있는 경지, 목무전우(目無全牛)(신기에 가까운 솜씨)가 됩니다.(p.240) 「스무아흐레째 날(10월 14일)」 중에서
편저자 : 조강태
이순신의 15대 외손으로 소설 황후의 칼, 만화 경매 삼국지와 너구리 형님, 도시의 파파라기, 코믹관상, 황금포승, 야수, 호스피스 등 그 외 다수의 작품이 있으며 지금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