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자비의 시간 1~2 세트 - 전2권
존 그리샴 지음, 남명성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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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자비의 시간』의 저자 존 그리샴은 미국에서 활약한 변호사로서의 경험과 법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법정 미스터리 작가로 전업한 이후 수많은 작품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렸다. 그의 첫 작품인 『타임 투 킬』이 국내에서 선보인(2005) 뒤 국내 독자들의 두터운 호응을 얻었다. 독자는 우연히 친구가 사다 준 『소환장』(2002)이 그와의 첫 인연이 됐다. 독자는 이번에 처음 들은 이야기지만 그의 작품 중 『펠리컨 브리프』, 『의뢰인』, 『레인 메이커』 등은 영화화돼 흥행에 성공을 거뒀다고 한다. 작품마다 거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것은 실제 변호사로서 활동하기도 했던 경험과 사회의식을 작품 속에 녹여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독자가 처음 접했던 『소환장』은 300만 달러라는 거금을 사이에 놓고, 보이지 않는 적과 벌이는 두뇌싸움이 박진감있게 펼쳐진다. 버지니아 법대 교수인 레이 애틀리는, 어느 날 전직 판사인 아버지로부터 미시시피의 집으로 오라는 소환장을 받게 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자식보다는 자신이 더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에만 매달려 온 아버지의 소환장은 레이에게 반가울 리 없다. 더구나 최근 아내마저 일방적으로 이혼을 요구하고 늙은 갑부의 아이를 낳은 상태다. 레이의 동생 포레스트는 멀쩡한 정신으로 있는 날보다 마약과 술에 취해 있는 날이 더 많은 집안의 골칫거리다. 같은 날 아버지의 소환장을 받은 이 두 형제는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애틀리 가문의 저택인 메이플 런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동생보다 먼저 집에 도착한 레이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는 아버지의 주검을 발견한다. 잦은 심장 발작과 암을 앓고 있던 아버지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모르핀, 죽음을 예견한 듯 이미 작성되어 있는 유언장,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책장 속에 숨겨진 300만 달러라는 거액의 돈이다. 미시시피 주 판사의 평생 월급을 다 합한다 해도 300만 달러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아버지의 유산이라고는 낡은 저택 메이플 런밖에 없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뒷거래를 통해 착복한 검은 돈을 남긴 것인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이 거액의 출처를 알아내기 위해 레이는, 동생 포레스트는 물론,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숨기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그 돈의 비밀에 대해 알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놀라운 반전은 새로운 독자들을 위해 여기에 적시하지는 않을 터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추리소설의 가장 큰 매력인 '반전'이 탁월한 작가라는 사실이 이 소설 『소환장』을 한층 더 각인된다. 독자 역시 미스터리 추리 소설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법정스릴러의 대가답게 『소환장』 역시 법률적인 상황과 지식이 배경으로 삼는다.

『소환장』에서 주인공의 직업이 법대 교수이고, 그의 아버지는 전직 판사란 점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작품의 중심 줄거리는 법정 내에서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벌어진다. '돈에 대한 인간의 탐욕과 집착'이라는 주제의식은 존 그리샴 특유의 스타일이라고 한다. 존 그리샴은 법정 소설을 연거푸 발표하면서 독자들의 열띤 호응과 함께 그가 창조한 캐릭터 ‘제이크 브리건스’도 주목 받고 있다. ‘제이크 브리건스’는 존 그리샴을 소설가로 데뷔시킨 문제의 데뷔작인 『타임 투 킬』에서 비롯되었다. 미국 남부 미시시피 주의 한 소도시에서 열 살배기 흑인 소녀가 술과 마약에 취한 두 명의 백인들에게 참혹하게 강간당한다. 소녀의 아버지 칼 리는 만신창이가 된 딸 앞에서 오열을 터뜨리고 범인들은 곧 체포되지만, 백인 우월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미시시피에서 오히려 보석으로 풀려날 상황에 이른다.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칼 리는 법정에서 이송중이던 범인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함으로써 법의 정의가 아닌 아버지의 정의로서 딸을 대신하여 복수한다. 이 희대의 살인사건은 급기야 흑백 간의 처참한 유혈사태를 불러일으키며 전국적인 이슈로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칼 리의 백인 변호사 제이크는 KKK단의 협박 전화와 방화, 테러에 시달리던 중 미모의 법학도 엘렌에게 도움의 손길을 구하게 되고, 정치적 야심에 불타오르는 노련한 검사를 상대로 벅찬 힘겨루기를 해나간다.



이처럼 그리샴의 캐릭터이자 페르소나인 ‘제이크 브리건스’는 불합리한 세상에 맞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온 정의로운 변호사이다. 이번 『자비의 시간』에서는 의붓아버지의 폭력과 학대 속에서 힘겹게 살아온 한 소년을 돕기 위해 나선다. 열여섯 살 소년인 ‘드루’는 자신과 여동생을 지키기 위해 의붓아버지를 총으로 쏘고, 체포된다. 드루의 전후 사정을 알게 된 제이크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년의 변호를 맡아 힘겨운 법정 싸움을 시작한다. ‘제이크 브리건스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 『자비의 시간』은 가정 폭력 문제를 바라보는 존 그리샴의 뚜렷한 주제의식이 드러난다.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긴박한 서사 속에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진다. 이 소설을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한 가정 폭력의 폐해를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세계적인 스테디셀러 작가이자 법정 스릴러물의 대표 작가로 손꼽히는 존 그리샴은 앞서 언급한 대로 약자의 편에 서서 불의한 세상에 맞서는 정의로운 변호사인 ‘제이크 브리건스’를 탄생시켰다. 그는 이 소설에서 딸을 무참히 강간하고도 반성하지 않는 두 범인을 살해한 ‘칼 리 헤일리’의 무죄 판결을 이끌어낸다. 존 그리샴은 소설 속에서 흑인과 백인 간의 인종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보여주면서 제이크 브리건스를 통해 차별 없는 정의가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후 그를 주인공으로 한 『속죄 나무』가 출간되면서 존 그리샴의 유일무이한 페르소나로 자리매김한다.

『타임 투 킬』과 『속죄 나무』를 잇는 『자비의 시간』은 ‘제이크 브리건스 시리즈’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앞선 두 작품에서 미국 사회의 팽배한 인종차별과 사회적 갈등 문제를 다룬 존 그리샴은 『자비의 시간』에서 사회문제로 대두된 가정 폭력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의붓아버지인 ‘스튜어트 코퍼’의 끔찍한 폭력과 학대 속에서 고통받던 열여섯 살 소년인 '드루'는 자신과 여동생을 지키기 위해 총으로 그를 살해한다.



스튜어트의 가족과 주변 사람은 물론 지역 사회마저 격앙된 목소리로 드루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제이크 브리건스는 드루의 살해 동기와 가정사를 알게 되면서 그를 변호하기로 했다. 그를 통해 존 그리샴은 제이크과 드루는 우리 사회의 문제이기도 한 가정 폭력의 폐해를 명징하게 짚어낸다. 특히 드루가 처한 현실을 날것으로 드러냄으로써 가족 구성원 간의 비정상적인 관계와 위계에 의한 폭력이 한 가정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자비의 시간』 1권에서는 드루가 스튜어트 코퍼를 총으로 쏘게 된 이유와 안타까운 가정사, 제이크가 드루의 변호를 맡게 되는 과정, 드루의 범행에 대한 주변 사람들과 지역 사회의 인식 등이 소개된다. 드루와 어머니 조시, 여동생 키이라는 코퍼와 함께 지내는 동안 끔직한 폭력과 학대에 시달린다. 경제적 자립이 어려웠던 그들은 도움을 받을 만한 가까운 친척이나 다른 연고가 없던 까닭에 코퍼의 지속적인 폭력을 그저 묵묵히 감내해왔다. 반면 코퍼는 지역 보안관으로서 동료나 지역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고, 세 사람과 달리 유일하게 경제적으로 자립할 여건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드루를 포함한 세 사람은 마치 ‘주종 관계’처럼 코퍼에 종속된 비정상적인 관계 속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두 시쯤 됐어."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침실로 가자고."

"뭐 하러 그런 걸 걸치고 있는 거야? 걸레가 따로 없군. 오늘 밤 누가 놀다 가기라도 한 거야?"

요즘엔 툭하면 이런 의심을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냥 자려고 입은 거야."

"창녀 같은 년."

"그러지 마, 자기. 나 졸려. 자러 가자고."

"어떤 놈이야? 그는 뒤로 비틀거리다 문에 등을 부딪치며 으르렁댔다."(1권, p.8)



술에 취해 온 남편과 집에서 기다리다 남편을 맞은 아내의 대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남편 스튜어트는 게다가 경찰관 신분이다. 드루에게 일어난 비극은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인 가정 폭력의 심각성을 시사한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 코퍼의 폭력 행위로 이미 여러 차례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지만 별 조치 없이 끝났고, 동료 경찰관들도 그의 도박 전력과 잦은 폭력 행사를 알고 있었지만 묵인해왔다. 또한 범행 이후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드루는 불안과 정신적외상 증세를 보였으나 누구 하나 관심을 두지 않는다. 게다가 제이크가 변호를 준비하고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드루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과 비난은 드루와 조시, 키이라를 더욱더 고립시킨다. 심지어 제이크는 재판 진행을 못마땅하게 여긴 괴한들로부터 심각한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포샤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모르겠어요. 늘 생각하지만, 정말이지 뭐가 정답인지 알 수가 없어요. 그 아이는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했어요. 자기 엄마가 죽은 줄 알았고 결국—”

“그리고 자신과 여동생이 여전히 위험한 상태라고 생각했어. 코퍼가 깨어나서 계속 날뛸 거라고 알았다고. 젠장, 그자는 전에도 아이들을 때리고 죽이겠다고 위협했어. 드루는 그가 술에 취한 걸 알았지만 코퍼가 너무 독한 술을 마셔서 정신을 못 차린다는 건 몰랐어. 그 순간 드루는 스스로 여동생과 자신을 지킨다고 생각했다고.”

“그럼 괜찮다는 거예요?”

제이크는 웃으려고 애썼다. 그는 포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그거야. 심신미약은 잊어. 이건 정당화할 수 있는 살인이야.”(2권,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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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것은 이미 내 안에 있다 - 자기 신뢰의 창시자 에머슨의 성공 철학 148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김슬기 옮김, 사토 켄이치 편역 / 유노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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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내가 원하는 것은 이미 내 안에 있다』는 랄프 왈도 에머슨의 금언집(아포리즘)으로 생각하면 알맞을 것이다. 부제 「자기 신뢰의 창시자 에머슨의 성공 철학 148」에서 드러나듯 '성공 철학'으로 일컬어지는 자기계발서이다. 에머슨(Emerson, Ralph Waldo, 1803~1882)은 미국의 철학자이며 시인이다. 처음에 성직에 있었지만, 교회와 충돌하고 1835년 이래 뉴햄프셔 주의 콩코드에 거주하였으므로 '콩코드의 철학자'로 불리운다. 플라톤, 칼라일, 그리고 영국의 시인 워즈워드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졌다. 이에 비해 에머슨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유명 인사는 너무나 많다.

「왜 지금 에머슨인가?」란 제목의 책의 〈서문〉을 통해 역사와 학문에서 업적을 남긴 많은 위인들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서문〉에 따르면 에머슨의 '자기 신뢰' 사상은 니체의 철학을 탄생시키고, 칼 융의 이론을 완성시켰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톨스토이는 에머슨을 평생 애독하며 작품에 자기 신뢰 철학을 녹여냈다. 또한 에머슨의 사상은 간디의 비폭력주의에도 영향을 끼쳤으며 마이클 잭슨, 스티브 잡스 등 현대에 이르러서까지도 그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에머슨과 니체의 조합은 조금 의외라고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삶의 방식으로서의 철학'을 추구했던 미국인 에머슨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한 니체에게는 길잡이 별이자 모델이었다. 삶을 긍정하고 낙관주의를 노래한 니체는 에머슨 없이는 논할 수 없다.(p.7)

이 책은 에머슨의 명문장 148개를 편역자 사토 켄이치가 선별, 번역하고 김슬기가 다시 번역해 한글로 출간됐다. 이들의 프로필은 뒤로 미루고 에머슨에 대해서는 짧지 않은 〈서문〉에 서술된 내용을 중심으로 간추려 여기에 기술한다. 우선 에머슨과 니체의 연결성부터 짚어낸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에머슨도 비슷한 환경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여성들의 손에 자란 니체는 평생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에머슨을 '영혼의 형제'라고 여겼다고 한다. 니체는 17세에 에머슨의 독일어 번역본을 처음 접한 이후 광기의 늪에 빠지기까지 26여 년간 반복해서 탐독했다. 여행을 할 때도 언제나 에머슨의 책을 들고 다녔을 정도로 에머슨에게 위안을 받았던 것이다.



우리나라 독자들은 에머슨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의 조국 미국에서는 에머슨과 니체의 유대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에머슨의 철학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정신’으로 높게 평가되고 있으며, 링컨은 그를 ‘미국의 아들’이라고 칭송하기도 했다고 알려진다. ‘에머슨이 없었다면 진정한 의미의 미국 문학은 탄생할 수 없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국 문학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미국 사상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인물로 그가 제시한 자기 신뢰, 민권 개념 등은 지금도 미국인들의 의식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한다. 19세기 초월주의 운동의 중심인물로 미국 최초의 철학자이자 시인이라는 평가는 그냥 나온 말이 아님을 웅변하는 대목이다.

책에 따르면 에머슨이 1838년 하버드 신학 대학에서 진행한 논란의 강연 내용 중에는 "마치 신이 죽은 것처럼"이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마치 ~처럼'이라는 표현만 빼면 니체의 "신은 죽었다"가 된다. 니체가 애독했던 『처세론』에는 「힘」이라는 에세이가 실려 있다. 거기에서도 마찬가지로 그가 사랑했던 『에세이 제1집』과 『에세이 제2집』에서도 에머슨은 '힘'이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사용하고 있다. 니체가 에머슨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또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에머슨을 애독했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동서고름의 작가들의 명언을 모은 선집인 『인생독본』은 톨스토이가 '이 책만은 계속 읽히기를 바란다"고 염원하며 말년에 수차례 손을 본 저작으로, 톨스토이 인생의 가장 말기인 1908년에 출판했다. 1년 366일에 걸쳐 명언을 모아 배열해 놓은 이 책의 「1월 1일」은 톨스토이 자신이 쓴 문장으로 시작된다. "부차적인 것, 불필요한 것을 많이 아는 것보다 진정으로 선하고 필요한 것을 조금 아는 편이 낫다"라는 문장에 이어서 곧바로 에머슨의 인용문이 시작된다. 에머슨의 인용은 『인생독본』의 모든 편에 걸쳐 다수 등장한다.

서양뿐만 아니라 인도와 중국의 사상가, 페르시아의 시인들과 같은 동양 고전에 대한 시선에서도 에머슨과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에머슨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자기계발서의 고전 『자기 신뢰』의 저자이기도 하다. 에머슨 하면 『자기 신뢰』, 반대로 『자기 신뢰』 하면 에머슨이 떠오를 정도로 에머슨은 이 한 권의 책과 깊이 연결돼 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자기 신뢰』를 애독서라고 공언하고 2009년 취임 연설에서도 언급한 이후,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에머슨 부활'이 시작됐다고 편역자 사토 켄이치는 강조하고 있다. 에머슨의 말들은 지금 읽어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들이 많다. 특히 현대인에게는 지금이야말로 읽어야 할 내용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이 어떻게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를 믿고, 이 격동의 시대를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지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사토 켄이치는 에머슨의 조언은 개인적인 수준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국민으로서 국가 수준까지 확대해야 할 과제를 남겨준다고 말한다.

에머슨은 조국인 미국에서 정치적인 당파를 초월해 큰 영향을 미쳐 왔다. 그런 미국에서도 『자기 신뢰』 이외의 저작들은 거의 읽히지 않은 듯하다고 사토 켄이치는 지적한다. 그 이유는 '에머슨의 말'이 단편적으로 인용돼 문구 형태로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론』으로 유명한 카네기가 인용한 에머슨의 말 역시 안타깝게도 출처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 지금은 새롭게 만들어진 '에머슨의 말'이 퍼져 있다. 편역자에 따르면 에머슨이 생애 동안 출간한 저작은 『자연』(1836), 『에세이 제1집』(1841), 『에세이 제2집』(1844), 『대표적 인물들』(1850), 『영국인의 국민성』(1856), 『처세론』(1860), 『사회와 고독』(1870)이며, 그 외에도 만년에 협력자들이 편집한 『문학과 사회적 목적』(1875)과 몇 권의 시집이 있다. 에머슨은 본인 스스로를 시인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지만, 시인으로서 평가는 반드시 높다고만 할 수 없다고 사토 켄이치는 밝힌다.

에머슨의 저작은 『자연』과 시집을 제외하면 대부분 강연 원고를 손본 것들이다. 『에세이 제1집』에 수록된 〈자기 신뢰〉도 그 중 하나다. 에머슨의 문장은 에세이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전후 연결이 불분명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본래 구두로 낭독하는 강연 원고로 준비한 글에 수정을 가해 출간했기 때문이라고 편역자 사토 켄이치는 판단하고 있다. 애초에 청중에게 강연이란 왠지 이해한 듯한기분만 들면 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일 것이다. 아무리 열성팬이라고 해도 강연 전체에서 한두 가지 단어나 표현이 마음에 꽂히면 그 나름대로 만족하는 법이다. 에머슨 본인도 마음에 드는 문구를 앞뒤 맥락과 상관없이 삽입하기도 했다는 게 사토 켄이치의 설명이다.


사토 켄이치는 '에머슨의 문장을 감상하는 법'이란 제목의 글을 〈서문〉 마지막 부분에 싣고 있다. 이에 따르면 에머슨의 대표 저서인 『자기 신뢰』를 중심에 두면서 지금은 거의 읽히지 않는 저작도 포함해 에머슨의 다양한 문장을 폭넓게 소개하기로 했다. 기본적으로 자기 계발형 문장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여러 페이지에 걸친 글을 압축해 한 페이지로 요약한 것도 있다. 에머슨의 문장은 앞뒤가 모순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머슨 자신이 『자기 신뢰』에서 "어리석은 수미일관이라는 것은 작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유령이다"라고 주장한 것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모순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에머슨의 문장은 '삶의 철학'으로서, 자기 계발의 말로서 혹은 일반적인 인생론으로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읻. 관심 있는 부분부터 자유롭게 읽기를 사토 켄이치는 독자들에게 권유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에머슨의 문장 148개를 이 책에 실었다. 편역자 사토 켄이치는 6개 테마별로 이들 문장을 묶었다. 각 테마마다 1개의 장(章)으로 구분했다. 장의 제목은 '나의 ~에 대하여'로 돼 있다. 독자는 '나의 ~에 대하여'를 뺀 나머지 명사만을 여기에 따로 게재한다. 1장 〈자신감〉, 2장 〈성장〉, 3장 〈인간관계〉, 4장 〈부와 성공〉, 5장 〈인생〉, 6장 〈운명〉 등이다. 그리고 각 장의 몇몇 문장을 함께 나열해본다. 독자들이 제목만 보고도 쉽게 뜻을 이해할 수 있거나 특히 인상적인 것들이다. 책을 읽으려는 독자들이 참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장 「자기 신뢰는 성공의 첫 번째 비결이다」「내면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빛을 마주하라」「질투와 모방은 자살 행위다」「본성 외에 따라야 할 신성한 법칙은 없다」, 2장 「성장이란 매일 과거를 벗어던지는 일이다」「위대하다는 것은 갈릴레오와 뉴턴처럼 오해받는 것이다」「후회와 불만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라」「신은 묵묵히 혼자 걷는 이에게 찾아온다」, 3장 「기분 좋은 관계의 핵심은 예의범절이다」「말과 행동이 모순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진정한 대화는 일대일일 때만 성립된다」「말해야 할 것을 제대로 말하되 긍정적으로 전하라」「남에게 무작정 고개 숙이지 마라」 등이다. 또 4장에서는 「모든 이의 능력을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진짜 부자다」「평범한 사람이 돈을 버는 비결은 머리를 쓰는 것이다」「인간은 부자가 되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목표로 가는 최단 루트는 일단 시작하는 것이다」「성공에 필요한 것은 재능과 지식보다 건강한 정신이다」「자신의 삶은 스스로 책임지고 향상시켜야 한다」 등이 눈에 띈다.



5장은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엿보는 순간 행복은 사라진다」「어른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식물과 우리는 연결돼 있다」「문명의 진보와 인간의 퇴화는 서로 맞물려 있다」「그럭저럭 괜찮으면 행복한 것이다」「여행은 현실로부터 도피일 뿐이다」 등 다소 아리송한 부분도 있다. 인생의 다양한 측면을 이야기하다 보면 일어나는 현상일까? 마지막 6장에서는 '운명'에 대한 글들이다. 「인간에게는 의지를 초월한 힘이 있다」「유일한 죄가 있다면 자기 스스로 한계를 정하는 것이다」「내가 하는 일의 가치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지식이 있으면 두려움은 극복할 수 있다」「용기란 문제를 직면하는 힘이다」「나폴레옹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던 비결」「마음으로 쓰지 않는다면 안 쓰는 것이 낫다」 등이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6장에서 보이는 '용기'를 다루는 글을 여기에 적어본다.

6장의 한 항목 「용기란 문제를 직면하는 힘이다」에는 출처가 되는 저작물로 두 권의 책이 소개돼 있다. 『용기』, 『사회와 고독』이다. 그리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이 달린다. "용기란, 눈앞에 놓인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다. 학생이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해서 선생님 앞에서 두려움에 떨로 있다. 옆에 있는 소년은 이미 그 문제를 자신 있게 풀고 있는데, 자신은 아직 해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를 푸는 방법을 깨달으면 아르키메데스처럼 냉정해지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용기란 사건이든 과학이든 무역이든 회의든 행동이든 문제를 대등하게 마주하는 것이다. 나와 마주한 상대가 내가 가진 자원이나 정신력 면에서 나보다 우위에 있지 않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장군은 자기 군대는 인간이고, 이제 적은 없다는 감각을 병사들에게도 일깨워야 한다. 그렇다. 지식은 필요하다. 왜냐하면 두려움은 환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눈은 쉽게 속는다. 드럼 소리, 군대의 깃발, 번쩍이는 투구, 적군의 수염이나 콧수염은 총검이 닿기도 전에 당신을 제압해 버리는 법이다.(p.260~261)

1장에는 에머슨의 사상이라고 불리워지는 '자기 신뢰'에 대한 글이 가장 먼저 나온다. 「자기 신뢰는 성공의 첫 번째 비결이다」에는 『성공』, 『인생훈』(1860) 등 두 저작물이 보인다. 출처다. 설명 글은 간단하다. "자기 신뢰는 성공의 첫 번째 비결읻. 그리고 그 신념은 다음과 같다. 당신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우주의 권위가 당신을 이곳에뒀기 때문읻.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 당신의 성질에 꼭 맞도록 부여된 직무가 정해져 있고, 그 직무에 성실히 임하는 한 당신은 올바르게 가고 있고, 성공하고 있다.(p.31)



세상에 굴러들어 오는 행운은 없다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일은 운이 아니라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믿었다. 인과관계의 법칙, 사소해 보이는 일 하나하나와 존재의 원리 사이에는 엄밀한 관계가 있으며 모든 것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법칙이다. 세상에 ‘쉽게 얻는 성공’이나 ‘우연히 굴러들어 온 행운’은 있을 수 없다."(p.166)

저자 :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9세기 초월주의 운동의 중심인물로 미국 최초의 철학자이자 시인이다. ‘에머슨이 없었다면 진정한 의미의 미국 문학은 탄생할 수 없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국 문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미국 사상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인물로 그가 제시한 자기 신뢰, 민권 개념 등은 지금도 미국인들의 의식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의 철학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정신’으로 높게 평가되고 있으며, 링컨은 그를 ‘미국의 아들’이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1803년 보스턴의 목사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엄격한 도덕률과 신앙심이 충만한 분위기에서 자랐다. 하버드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1829년 유니테리언파 보스턴 제2 교회 부목사가 되었다. 정통 교리에 집착하지 않고 다양성과 자유를 찬미하던 그는 교회와의 충돌이 잦아졌고, 결국 목사를 그만두고 유럽 여행을 떠나 밀, 콜리지, 칼라일, 워즈워드 등 당대의 지식인과 친분을 맺었다. 1834년 미국으로 돌아와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 정착해 저술활동에 전념하면서 초월주의자 클럽을 발족해 미국 초월주의 철학사조를 발전시켰다. 탁월한 대변자로서 ‘콩코드의 철학자’로 불리는 에머슨은 40여 년간 1,500회 이상의 강연으로 개인주의 철학을 전파했으며 남녀평등과 노예제 폐지를 주창했다. 미국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하버드대학교에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882년 콩코드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 저서로는 《중세 시대의 종교》 《자연》 《에세이, 제1 시리즈》 《에세이, 제2 시리즈》 《대표적 인간들》 《영국적 기질》 《삶의 태도》 《5월제 외》 《사회와 고독》 《시집》 《시선집》 《신생》 등이 있다.

최근작 : <내가 원하는 것은 이미 내 안에 있다>,<[큰글자책] 내가 나를 믿는다는 것>,<자기 신뢰>

역자 : 김슬기

다년간 출판사 편집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심리학자가 들려주는 우아하게 나이 드는 법》, 《현실적 낙천주의자》, 《횡설수설하지 않고 핵심만 말하는 법》, 《비자르 플랜츠》 등이 있다.

편역자 : 사토 켄이치

경영 컨설턴트. 1962년 교토부 출생. 히토츠바시 대학 사회학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미국 렌슬리어 공과대학(RPI)에서 MBA를 취득(전공은 기술경영). 은행과 광고 대행사 계열 컨설팅 회사 등을 거쳐 중소기업 제조업체에서 이사 겸 경영기획실장을 역임했다. 태국에서는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대표를 맡았다. 주요 저서로는 『간디 자서전 : 강하게 살라는 말』, 『초역 베이컨 : 지혜를 여는 말』 등이 있다. 최근작으로는 『초역 명상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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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 조금 더 깊이 걸었습니다 - 숲의 말을 듣는 법
김용규 지음 / 디플롯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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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어제보다 조금 더 깊이 걸었습니다』은 부제 「숲의 말을 듣는 법」에 나타나듯 '숲의 인문학' 책이다. 20년 넘게 숲에 들어가 더 나은 삶의 비결을 탐구한 저자 김용규는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숲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사람들이 대개 숲의 외면만을 중심으로 파악하고 또 대한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숲의 물리적, 자원적, 심미적 특성만을 주로 접촉하게 되고, 숲과 깊이 연결되는 내적 체험은 좀처럼 경험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숲은 인류의 오래된 고향으로, 에리히 프롬(Erich Fromm)과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 중시한 개념을 인용한다. 이들 두 학자는 생명과 자연을 그리워하는 인간 본능, 즉 '바이오필리아(bio-phillia)'를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규정한다. 인간은 본래 자연에 대한 향수를 품은 존재라고 설명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숲을 ‘하늘이 쓴 글자 없는 책’이라는 의미의 ‘무자천서(無字天書)’로서 대우했다고 한다. 독자로서는 처음 듣고보는 문자이지만, 저자는 "하늘이 지은 글자 없는 책"의 뜻으로 '너무도 정확하고 놀라운 표현'이라고 강조한다. 이에 대한 보다 정확한 설명은 책의 1장(章) 「삶을 사랑하게 하는 숲으로의 초대」에서 풀어준다. "눈 밝은 사람에게 숲은 깊이 있는 경전이다. 숲을 이루는 모든 존재는 사시사철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숲은 원형이정(元亨利貞), 생장수장(生長收藏), 춘하추동의 리듬을 따라 하늘과 땅이 함께 빚어내는 아름다움을 날마다 보여준다. 우주는 리듬이요, 삶 역시 그 리듬 위에 있어야 하는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곳이 숲이다."(p.29)

이와 함께 숲은 바르고 윤택한 삶에 관한 지혜가 새겨져 있고, 세상을 움직이는 질서가 흐르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만 늘 곁에 있어서, 너무 익숙해서 대수롭지 않게 숲을 인식했기에 우리는 숲의 가르침을 얻지 못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새로운 시선과 긴 호흡으로 숲을 마주하면 잃어버린 나를 되찾고 나와 타자를 사랑할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덧붙인다. 이 밖에 숲을 깊이 만나면 세계의 진실에 가닿을 수도 있다. 삶을 흔드는 크고 작은 질문들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면 가장 먼저 이 책을 펼쳐볼 것을 출판사 측은 소개글에서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이미 ‘숲 사람’, 숲의 철학자로 불린다. 광활하고 신비로운 우주의 축약인 숲을 배움으로써 한 사람의 삶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로써 공동체성이 회복되고, 살아 숨 쉬는 모든 존재가 생기 넘치게 되는 세상으로 변하는 것을 꿈꾼다. 숲을 스승으로 섬기며 글쓰기, 교육과 강연을 주로 하고 있다. 저자는 ‘모든 존재에게 부여된 삶의 숙제를 미루지도 말고 피하지도 말자’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포기하지 말자’는 금언을 숲에서 만난 풀과 나무, 씨앗 등의 사연을 통해 독자와 대중들에게 가르친다. 그가 길러낸 많은 숲해설가, 유아숲지도사들은 전국 각지에서 숲의 지혜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이 책은 서두에서 “자기 삶과 화해하고, 삶을 사랑하게 하는 숲을 만나기 위해” 시선의 교정을 요청한다. 저자는 우리에게 “어떤 근본적인 무의식이 흐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대개 사람들은 산국을 차나 술을 담그는 재료, 화병에 꽂아놓을 관상용품 등으로만 본다고 지적한다. 어떤 존재의 효능이나 심미적 쾌감이 중요할 뿐 다른 의미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그 꽃을 그저 대상으로 여길 뿐 아니라, 자신을 그 꽃보다 더 큰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관점에 매몰되어 무엇이든 돈으로 살 수 있다는 믿음이 팽배한 시대, 나 아닌 모든 것을 그저 ‘물건’으로 취급하는 세태는 꽤 오래된 우리의 민낯이기도 하다. 저자는 ‘타자의 대상화’로 압축할 수 있는 삭막한 시선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책 전반에 걸쳐 한결같이 강조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타자를 동등한 존재로 인식하고 그 존재의 처지를 살필 수 있는 마음이 열릴 때, 순수한 기쁨과 위로에 닿을 수 있다. 저자는 산국이 서리가 내릴 즈음 꽃을 피우는 모습에 주목했다. ‘산국은 왜 서리를 맞으면서도 피어나는 것일까?’ ‘그래야만 하는 사연은 무엇일까?’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산국이 그런 삶의 꼴을 갖게 된 사연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요컨대 새로운 시선은 타자의 사연을 헤아리는 마음이다. 이 마음으로 익숙하기만 했던 숲을 거닐기 시작하면 이전에는 보지 못한 것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환희와 감탄, 위로와 같이 우리가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바람이다.


저자는 “인간을 포함해 생명 각각이 극복해내야 할 그 무엇”을 ‘삶의 숙제’로 정의한다. 그런 이유로 “산다는 건 자신에게 부여된 그 숙제를 차곡차곡 풀어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이 삶의 숙제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 세계가 완전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서식지의 로고스’를 토대로 이를 설명한다. 즉,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그 자리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풀어내야 할 문제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양분이 풍부한 곳에는 햇빛이 모자라거나 바람을 맞기 어렵고, 반대로 햇빛을 넉넉히 받을 수 있는 곳에서는 양분이 부족하거나 물을 얻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모든 요소가 갖춰진 곳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저자는 숲을 구성하는 풀과 나무의 사연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우리에게 익숙한 풀 하나의 이야기를 꺼낸다. 책에 따르면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풀인 냉이는 쏟아지는 눈보라, 혹독한 추위를 모두 견뎌낸 후에 꽃을 피운다. 냉이와 서식지를 두고 다투는 키 큰 풀들은 성인의 키를 능가할 만큼의 높이까지 냉이에 닿아야 하는 햇빛을 가린다. 그러니 냉이는 그들보다 먼저 줄기를 키우고 꽃을 피워 신속하게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이런 절박함이 냉이가 가을에 발아하여 동토의 시절을 견디는 생활사를 가지게 된 이유라고 저자는 귀띔한다. 햇살을 움켜쥐고 바람의 결을 따라 살아내는 대나무(11장), 우거진 숲의 녹음 속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필살기’를 선보이는 여름꽃들(16~17장), 태풍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찾아낸 오동나무(18장) 등의 사연을 읽다 보면 숲에서 태동하는 불굴의 생을 느낄 수 있다. 굴복과 극복 사이에서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기보다는 어떻게든 생의 길을 가기 위해 분투하며 포기하지 않는 식물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저자는 성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를 풀어나가는 풀과 나무의 모습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망을 멈출 때 비로소 새로운 길이 보일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책은 끝자락에서 “대한민국은 지금 황무지를 향해가는 것일까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생명력을 잃고 피폐해진 인간 삶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고, 실제로도 숲을 비롯한 자연이 파괴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2025년 3월 경북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로 우리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숲을 잃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그 규모는 48,150헥타르(축구장 약 67,400개, 여의도 면적의 166배)나 된다. 숲이 송두리째 불타버린 것뿐 아니라 60여 명의 사상자 또한 발생했다. 이 모든 사태가 한 사람의 경솔한 행동 때문이었다는 사실에 많은 이가 분노하고 슬퍼했다. 무참한 인간의 ‘흑역사’는 자연의 황폐화와 분리해서 이야기할 수가 없다. 결국, 둘은 같은 문제인 것이다. 불타버린 숲의 자리를 바라보며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저자는 “황무지가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지 자연의 이치를 뒤적이게 된다”고 말한다. 숲을 보면 사람이 보이고, 세계가 보인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보편적인 질서, 먹고사는 일을 넘어서는 숭고하고 초월적인 삶의 모범, 더불어 사는 비결 등이 모두 그곳에 전사되어 있다. 조금씩 천천히 숲의 심부를 향해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변화할 수 있다. 의미가 소실되어가는 시대에 숲 생명들의 이야기에 주목하여 삶을 돌아보자는 권면에서 절박함이 느껴진다. 바로 그 성찰로 하여금 생기를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 즉 사람 살리는 일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숲은 고요하고 잠잠하게 말을 걸어온다. 잃어버린 숲의 말을 들을 때, 우리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맞이하는 만유의 영장으로 말이다.

이 책은 5부 27장(각 부 3~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숲에게 길을 묻다〉, 2부 〈잊어버린 모든 생명의 초상〉, 3부 〈여기,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 4부 〈생과 극의 향연, 사계절〉, 5부 〈우리는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가〉 등이다.



1부 「삶을 사랑하게 하는 숲으로의 초대」「숲의 언어」「생명성, 그리고 삶에 필요한 두 가지」「모든 생명은 사연을 품고」「새로운 시선에 움튼 온기와 생기」「숲의 지혜를 마주하기 위해」 2부 「삶의 근원을 만나기에 앞서」「발아하는 우주, 그 가능성에 대하여」「저마다의 자리와 시간이 있으니」 3부 「굴복과 극복 사이에서」「햇살을 움켜쥐고 바람의 결을 따라 살아내는 법」「오로지 관계, 오롯이 관계」「나아가라 하면 나아가고 물러서라 하면 물러나고」 4부 「차라리 눈을 맞으면서도, 비록 낮은 자리에 있더라도」「여름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는 법」「짙은 녹음 속에서 피워내는 정열의 색, 순백의 향」「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망을 멈출 때」「꽃길에서 풍파를 맞이하는 자세」「포월, 바람을 와락 껴안으며」 5부 「삶의 목적」「죽은 자가 답해야 할 두 개의 질문」「충분히 산다는 것」「먹고사는 일이 전부라고 믿고 있다면」「공허로부터의 자유: 충만한 삶」「다른 생을 일으켜 세우는 꽃처럼: 숭고한 삶」「완벽해지려 애쓰지 말아요: 온전한 삶」「가장자리를 허물다: 초월의 삶」 등이다.

독자는 이 책의 구성과 나눔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하고, 모든 내용이 자세하고 꾸준한 관찰과 깊은 사색의 결과를 담았기에 독자들의 감동을 받을 것으로 믿는다. 숲을 보고 함께 사는 삶을 꿈꾸는 계기를 숲에 사는 모든 생명이 저마다의 무늬를 그려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등산을 하던 어느 날, 수락산 정상 부근에서 소나무 한 그루가 바위를 뚫고 살아가는 모습을 우연히 발견했다. 이 발견은 늘 있었던 풍경이 갑자기 말을 건, 한없이 단순하지만 하나의 거대한 사건이 되었다. 가난한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욕망하는 것을 다 추구해볼 수 없었던 터라 은근히 억울해 하던 차였다. 그날 소나무가 나를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흙도 없고 물도 제대로 없는 여기서 이렇게 살아. 바위를 뚫고 산다고. 해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면서 마음껏 햇살을 누리면서.'"(p.38)

저자에 따르면 이 느닷없는 계기가 시작이었다. 불가능할 것 같은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숲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홀로 숲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몇 해 뒤에는 스승을 찾아 나섰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생명에게 직접 묻기 시작했다. 높은 집중과 맑은 침묵 속에서 생명에 대한 깊은 연민을 품고 묻고 또 물었다. 다른 이들보다 숲의 말을 더 깊고 넓게 들을 수 있게 된 비결은 바로 이 공부 방법에 있다. 나는 저마다 각자 다른 꼴로 사는 생명들의 사연에 대해 끝없이 묻고 다녔다.



책의 모든 글들은 숲에 관해 한 번도 깊은 생각을 해보지 못한 독자로선 신비롭게만 느껴지고, 다른 책들에서 숲에 대해 가졌던 깊은 사유를 연결해주는 '영감'을 준다. 저자의 전작 『숲에게 길을 묻다』 출간 후 예스24와 가진 인터뷰에서 깊은 사유의 일단이 보인다. 숲은 도시 생활자나 농촌 생활자나 가리지 않고 스스로 찾아와 묻는 사람들에게는 늘 침묵으로 생각의 길을 알려준다. 시대나 장소를 불문하고 숲이 인간이 있는 어느 곳이든 자연으로 존재하며 자연의 깊은 의미를 원하는 만큼 알려준다는 의미의 말을 한 적이 있다. " 대하는 농사, 농업, 농부. 세상에서 이미 저 멀리 한편으로 밀려난 이름들.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지금 이 엄혹한 시대에 다시 그 이름을 불러야 할 이유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자립할 수 있으며 비굴해지지 않아도 되고, 착취당하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 바로 농부다. 귀농운동본부에서 알았다. 나로 살면서 더불어 살려면 자립, 생태가 필요하고 발자국을 덜 남기는 것이 이로운 것임을. 도시가 아닌 자연에서 이루는 것이 맞다는 것을 확인했다. 조직과 도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 스스로 설 용기와 스스로 설 수 없다는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비어 있는 농촌이지만 개인들이 많이 들어와야 한다. 기업이 들어오는 것은, 반대다. 농촌이라는 영역은 빠른 것보다는 느린 것, 자주 변하는 것보다 자주 변하지 않는 것이 어울리는 법이다."

우리 모두가 위인전 속 인물들처럼 거대한 자기 초월을 감행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안의 사랑과 진심을 따라 행동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그렇게만 하면 됩니다. 영웅들의 그것처럼 꼭 거대하지 않아도 됩니다. 단지 나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말자, 자기 배반을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앞서 말했던 맹자의 ‘자포자기’야말로 자기 삶에 대해 최고로 무례하고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자신 안에서 터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 환한 빛을 세상에 꺼내놓으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안타깝지만 그는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p.270)

저자 : 김용규

사람들에게 숲의 철학자로 불린다. 숲을 스승으로 섬기며 글쓰기, 교육과 강연을 주로 한다. 하면서도 스스로는 농부라는 직업에 충실할 날을 그리워하고 있다. 충북 괴산에 ‘여우숲’ 공간을 연 설립자이자 그곳에 세운 ‘숲학교 오래된미래’의 교장이고 ‘자연스러운삶연구소’의 대표다. 30대의 마지막 7년을 벤처기업 CEO로 일하다가 더 깊고 충만한 삶을 열망하여 홀연 숲으로 떠났다. 그 숲에 백오산방白烏山房이라 이름 지은 오두막을 짓고 다락방에서 이 책을 썼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와의 연결을 회복해가는 기쁨을 오롯이 책에 담았다. 숲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을 사랑하고 마침내 진정 타자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마침내 잃어버린 생명성을 되찾고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삶으로 돌아오는 길을 함께 걷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이후 《숲에서 온 편지》, 《당신이 숲으로 와준다면》 등의 책을 펴냈다.

KBS, EBS, MBC, SBS 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강의를 하고 대담을 나눴으며, 매년 150회 이상 다양한 조직과 기관, 대중을 만나는 강연자로 살고 있다. ‘숲 해설가’, ‘유아숲지도자’ 양성과정 등에서는 전문가를 대상으로 숲의 인문학과 생태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숲으로 떠나온 지 10년 되던 해부터는 자신이 마주한 세계를 더 깊게 나누기 위해 ‘자연스러운삶연구소’를 설립, 연구원들을 양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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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라는 착각 -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이정표
안호기 지음 / 들녘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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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가 당면한 기후변화 등 수많은 위기의 근원을 찾는다. 인류가 문명 사회로 접어든 이후 단 한 번도 계획한 적 없는 ‘탈성장‘ 정책이 현안으로 떠올랐다. 풍요와 부의 대가로 우리 삶의 가치가 무너졌고, 삶터인 지구마저 망가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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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기 지음 / 들녘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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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대한민국은 지난 50년 간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를 발전시킨 나라였다. 2021년, 유엔은 한국을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했다. 한국은 천연자원이 없어도 대대적인 인적 자원 투자로 성공을 거뒀다. (중략) 세계 각국은 한국을 경제 모범생이라고 평가했다." 위 글은 이 책 『성장이라는 착각』의 〈서문〉의 첫 문장이다. "2014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 시대를 연 한국 경제의 4만 달러 돌파 시점이 시야에서 더 멀어진 데는 미국발 관세전쟁의 영향이 크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경제 충격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 것이다. 여기에 국내 정치 불확실성에 따른 내수 부진과 고환율도 겹쳤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에서 한국의 경제 성장률을 기존 2.0%에서 1.0%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이는 선진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 일본(0.6%)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다. 25일(현지 시간) 크리슈나 스리니바산 IMF 아시아태평양국장은 브리핑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관세 충격에 크게 노출됐으며, 다른 지역보다 그 충격이 크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 내용은 동아일보 2025년 4월 25일자 보도이다.

1인당 GDP 4만 달러를 눈앞에 두고 열심히 일한 국민들에게 대한민국은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부끄러운 성적표를 내밀지도 모른다. 이 같은 경제 지표가 우리 국민이나 국가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앞서 동아일보 보도가 지적했듯 미국발 관세 전쟁,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전 세계 시장의 불황 등 많은 요인이 겹쳐져 산출된 것이다. 한국은행은 저성장 기준인 3.0% 수준까지 목표치를 내려잡았다가 이마저도 날이 갈수록 내려가고 있다. 이젠 아예 마이너스 0.1%라는 암울한 예측을 내고 있는 상태다. 동아일보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경제 충격이 더 클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여기에 국내 정치 불확실성에 따른 내수 부진과 고환율도 겹쳤다고 우리나라의 저성장 요인으로 덧붙이고 있다. 왜 내수가 부진했는지, 그리고 고환율이 되는 동안 국가가 방어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적시하지 않았다. 지난 정부의 경제 정책과 비상계엄 때문일 것이라는 사실을 독자들이 알기 때문이라고 독자는 판단한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인 한국. 하지만 2024년 기준 세계 행복도 순위는 52위,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은 20년 넘게 바뀌지 않았다. 청소년 사망 원인 1위 또한 자살이다. 이 모순된 수치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단지 ‘성장이 부족해서’일까? 이 책 『성장이라는 착각』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성장 담론을 뿌리부터 재검토한다. GDP, 수출 실적, 기술 혁신 등으로 포장된 성장주의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자본의 논리가 어떻게 공동체와 인간의 삶을 파괴해왔는지 살핀다.

저자 안호기는 언론인으로서 30년 넘게 한국 사회를 적극적으로 취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성장률이 아닌 ‘사람의 삶’을 중심으로 한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성장의 끝에서 우리가 마주한 것은, 번영이 아니라 파편화된 삶이다. 이 책은 불평등, 기후 위기, 돌봄의 붕괴, 금융 과잉 등 성장주의가 낳은 현실을 사례 중심으로 고발한다. 성장이 인류를 구원할 거라는 믿음을 거두고, 이제는 삶의 질과 분배, 공동체의 회복이 진짜 해법임을 강조한다. GDP 상승이 곧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계와 현실을 통해 정밀하게 짚는다.

이 책 『성장이라는 착각』은 GDP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해도 성장 부진을 탓하지 않듯이 단순히 성장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탈성장’이라는 구체적 전환의 방향을 제시하며 당면한 여러 위기의 근원을 ‘고장 난 성장 시스템’에서 찾는다. “더 많이 가졌지만 더 공허하다”는 한국 사회의 집단적 불행은 성장만을 추구한 결과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즉 고령화, 저출산, 기후 위기, 돌봄의 위기 등 우리가 안고 있는 거의 모든 사회문제가 이 왜곡된 신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본 것이다. 나아가 기술 혁신, ESG, 그린 뉴딜마저도 자본의 탐욕을 감추는 포장일 뿐이라고 비판하면서 공존과 분배, 공동체의 회복이 진짜 해답임을 강조한다. 그러고는 몇몇 예로써 암스테르담, 바르셀로나 등 유럽 도시들의 정책 실험, 커먼 포레스트 운동, 공유경제 모델 등을 제시한다. “성장 위주의 삶에 대 전환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통해 저자는 “더 늦기 전에 ‘그만 자랄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상대적 개념인 공산주의 사회보다 훨씬 이전부터 정착돼 온 국가 경제 개념이다. 공산주의 사회의 논리보다 수천 년 전부터 공동체 사회에서 자리 잡은 개념이다. 왕조 시대든 제국 시대든 경제적 측면에선 모두 자본주의 개념에 충실하게 유지돼 왔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단점은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소득, 재산 불평등이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다는 모순을 안고 있다. 이로 인해 자유 경쟁이라는 시장 경제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돈 많은 사람이고, 실제 생산자들인 노동자는 연명하는 수준의 분배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산업 혁명은 이 같은 경제 논리를 더욱 확대시켰다. 기계 문명이라는 제1차 산업혁명은 수많은 노동자들을 현장에서 퇴출시켰고, 참다 못한 노동자들은 기계파괴운동(Luddite Movement, 1811~1817)을 벌였다. 결국 노동자들의 임금은 더욱 낮아졌고, 자본가들에게 돌아간 몫은 많아졌다.

이런 논리를 앞세우면 우리 사회나 문명 발전을 반대하자는 말로 들리기 쉽다. 그러나 이 책 『성장이라는 착각』은 성장을 멈추자는 책이 아니다. 그동안 왜, 어떻게, 누구를 위해 성장해왔는지를 냉정하게 돌아보고 방향을 제시한다. 저자는 모든 성장 중심 담론이 결국 자본의 이익 구조에 귀속되었다고 비판한다. 대신, 유럽 도시들의 탈성장 실천 사례, 공유경제와 자급적 공동체 실험 등을 통해 ‘성장 없이도 살 수 있는 사회’는 상상 이상으로 구체적이며 실현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책은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미래를 합리적으로 설계한다. “GDP가 아니라, 우리가 돌보고 싶은 삶의 총량을 키우자”는 이 책의 메시지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성장 이후의 시대, 한국 사회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 책은 마치 선언처럼 말한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아도 괜찮다.” 탈성장은 유토피아도, 극단주의도 아니다. 이미 시작된 현실이며, 우리가 감당해야 할 미래다. 저자는 성장 중심 사고가 만든 것은 계층 간 분열, 환경 파괴, 삶의 불안정화라고 강조한다. 지금 필요한 건 성장률이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 지역화, 공유경제 확대, 생태와 문화적 전환 등을 통해 덜 쓰고도 행복해질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성장이라는 착각』은 공동체, 공공재, 기본소득 등 그동안 주변부에 머물렀던 논의를 전면에 끌어올린다.



이 책은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란 제목의 〈서문〉에서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아비지트 배너지(Abhijit V. Baerjee)·에스테르 뒤플로(Esther Dufllo) MIT 교수 부부의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2019)을 인용한다. 이들 수상자는 경제학자들이 유용한 답을 제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해 "어떻게 이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의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책에 따르면 과잉 생산이 불가피한 성장 추구는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를 부추겨 지구를 병들게 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성장하지 못하면 곧 망할 것처럼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성장에서 벗어나 시민이 행복해질 방안을 찾아야 한다 최근의 저성장 국면은 성장 패럴다임의 변화를 꾀할 기회다. 분배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공공재를 확충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힘써야 한다. 성장이라는 괴물의 노예로 살아갈 수는 없다.

또 전 세계는 성장에만 매달린 결과, 지구 환경과 경제 현장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난무하고 있다. 서구 학자들은 현재 지배적 경제 시스템인 자본주의가 한계에 이르러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본을 확대 재생산해 이익을 늘려가며 성장하는 자본주의는 무분별한 채굴로 지구 천연자원 고갈을 초래한다. 화석연료를 비롯한 자원의 채굴과 사용을 줄이지 못하면 인류는 조만간 생사의 기로에 놓일 수밖에 없다.(p.13)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우리나라 현실은 어떤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사실 앞서 언급한 대로 우리는 가장 빠른 시간에 선진국에 들어선 모범적 경제국가이다. 우리의 산업화 시간 동안 전쟁의 폐허를 딛고, 잘사는 나라를 따라가려면 부지런히 일해서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자원도 없고 국가의 부는 더 없는 나라가 잘사는 길은 '사람' 자원밖에 없었다. 이때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새벽별 보고 출근해 새벽별 보며 퇴근한다는, 끝없는 일을 해야 했다. 이때 생긴 유행어는 '빨리 빨리' 문화였다. 노동자들은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 자식 공부도 시키고, 그나마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우리 민족성은 부지런했다. 자신이 병들고 더이상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일하더라도 자녀들에겐 더 나은 삶을 열어주는 길이라는 굳은 믿음으로 치열하게 일했다. 지금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빨리 빨리'를 한국인들의 특성이라고 말할 정도다.



지금 우리는 나라 성장이 멈출 정도로 위기라고 진단되고 있다. 그동안 쌓아온 경제 부국의 위치마저 흔들리고 있다고 많은 이들이 말한다. 새로 들어선 정부도 경제 회복과 민생 안전을 제1의 과제로 꼽고 있다. 그런데 '4.5일 근무제'라는 상반된 개념의 노동을 말하고 있다. 경제 회복이나 민생 안정은 일을 더 많이 하고, 더 치열하게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전제로 이만큼 쌓아올린 결과다. 그러나 근무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모순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에 휩싸인다. 당연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제 구조 변화와 성장 동력을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춘다면 노동이 담당할 몫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기업의 의식 변화가 없다면 양립하기 어려운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은 노동시간이 짧아진 만큼 임금은 줄여야 한다는 논리로 맞선다. 얼핏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오히려 노동자들이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제4차 산업혁명 시대 기업은 예전에 비해 노동력 투입이 적어도 산출 효과는 예전과 같거나 그 이상이 가능하다. 기업의 생산, 인력, 품질 등은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생산이나 경영의 모든 분야에서 AI의 도움을 안 받을 수 없다. 이 논리에 반대할 기업들은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노동자를 위한 저성장을 말하지 않는다. 노동자만을 위한 탈성장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경제 구조와 정책 변화로 조금씩 덜 성장해도 괜찮다는 의식의 개선을 먼저 요구한다. 이 책에 나온 논리는 급속한 성장이 인간의 욕망,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한없는 돈에 대한 욕심 등을 지적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자본주의는 한계를 미리 예고하고 발전되어온 경제 구조다. 돈을 많이 번 기업들은 돈을 더 벌기 위해 노동자는 물론, 지구 환경, 인간성의 파괴 등은 전혀 고려치 않는다. 오늘날 기후변화도 결국은 산업 발전 속에 자라난 지구 최악의 환경 오염에서 기인한 것이다. 대책은 100% 완벽하게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은 모두 인정할 것이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현안인 고령화, 저출산, 기후 위기, 돌봄의 위기 등 우리가 안고 있는 거의 모든 사회문제가 이 왜곡된 성장 신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기술 혁신, ESG, 그린 뉴딜마저도 자본의 탐욕을 감추는 포장일 뿐이라고 비판하면서 공존과 분배, 공동체의 회복이 진짜 해답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저자는 몇몇 예로써 암스테르담, 바르셀로나 등 유럽 도시들의 정책 실험, 커먼 포레스트 운동, 공유경제 모델 등을 제시한다. “성장 위주의 삶에 대 전환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통해 저자는 “더 늦기 전에 ‘그만 자랄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경향신문 경제부장, 경제 에디터, 논설위원, 사회경제연구원장을 지냈다. 현재 경향신문 논설위원이자 경제 에디터로서 탈성장을 주제로 한 포럼을 준비하면서 세계 석학들을 만나 견해를 듣고, 책과 각종 자료를 통해 다양한 논의를 접했다고 밝힌다. 이들에게서 도출된 공통된 의견은 현재 지구와 인류가 위기에 처했으며, 현행 자본주의 시스템을 개혁하지 않고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사를 통해 일부 내용을 전했지만, 빙산의 일부였다. 매체를 통해 알리지 못한 부분과 추가로 취재한 내용을 담아 현상과 위기, 대안으로 나눠 이 책 『성장이라는 착각』에 담았다.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도 행복하지 않을까?”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고장 난 시스템’ 속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신념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저자는 이 책이 삶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청년 세대, 성공보다 공존과 분배에 관심 있는 정책 입안자 및 연구자, 경제․생태․돌봄 문제에 관여하는 활동가,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상상하는 모든 사람에게 매력적인 통찰과 울림을 줄 것으로 믿고 있다.

디카프리오가 시상식에서 기후변화의 위협에 대해 언급한 지 10년 가까이 됐지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오히려 기후변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재활용품을 사용하고,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인다.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대신 금속 빨대를 사용하고, 분리수거를 철저히 해 재활용을 늘리면 기후변화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것이라는 허황된 믿음이 횡행한다. 전통적인 미디어는 ‘걱정하지 마. 재활용만 열심히 하면 돼’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양적 성장을 지향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발생한 문제를 개인적으로 대응해 해결하려는 사례다. 이래서는 근본적인 기후 위기 극복이 불가능하다. 파텔 교수는 “사회적 문제에 지극히 개인적인 해결 방안만을 반복하며 걱정 말라는 분위기는 매우 우려스럽다. 기후변화에 대한 체계적인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만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은 사람이다. 인간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및 기타 온실가스가 지구 온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아워월드인데이터’의 연도별 지구 평균 기온 및 이산화탄소 배출량 그래픽을 보면 상관관계가 뚜렷하다.(p.96)

저자 : 안호기

인천에서 나고 자랐다. 경향신문 기자다. 경제와 환경 분야에 관한 기사와 칼럼을 많이 썼다. 경제부장, 경제 에디터, 논설위원, 사회경제연구원장, 편집국장 등을 거쳤다. ‘경향신문 SPC 사태’ 수습 과정과 코로나19 팬데믹 때 편집국장 직책을 수행했다. 네 차례 경향포럼을 기획하면서 힐러리 클린턴, 반다나 시바, 리처드 하스, 누리엘 루비니 등의 인터뷰를 추진했다. 산에서 텐트 치고 잠자기와 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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