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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애 - 35살 세일러문
황승원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5월
평점 :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 『사애』는 단편소설집이자 한국소설이다. 그러나 표제어 '사애(事愛)'는 일본식 한자 표기인 듯하다. 무슨 뜻인지 대한민국에서는 쓰이지 않는 단어인데...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다행히 표지에는 한글로 '사애'란 표제어 옆에 한자 '事愛'라고 표기돼 있어 일본에서 쓰는 말로 짐작했다. 당연히 국어사전에는 없는 표기이고 일본어를 모르는 독자로서는 일본어사전을 찾는 일도 한 번도 경험한 적 없어 어렵기만 했다. 할 수 없이 인터넷을 이용해 한자를 표기하고 일본어사전을 클릭했더니 '사(事)'와 ''애(愛)'의 뜻이 각각 표기돼 있었다. 다시 말해 일본에서도 흔히 쓰이지 않는 단어란 뜻으로 이해된다. 독자는 일본어를 모를 뿐 아니라 일본에 가본 적도 없어 알 수 없기 때문에 책의 내용이나 단편소설의 제목으로 쓰였나 살폈으나 없었다.
무슨 내용인지 일본어사전에서 찾은 사(事)와 애(愛)의 표기를 합쳐 독자만의 뜻풀이를 하고 읽기로 한다. 한자어에서는 '事'는 '일 사'로 음과 훈을 읽는다. 즉 '일(work)'을 뜻하는 事, 사랑을 뜻하는 '愛'를 합쳐 '사랑하는 일'로 해석한다면 어딘지 어색하다. '일을 사랑한다(좋아한다)'는 표현은 맞지만 '사랑하는 일'이란 우리말로 풀이하면 어색하기 그지없다. 잘 안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일 사(事)'가 일뿐만 아니라 '섬기다'는 뜻이 있다고 배운 기억이 있다. 이를 테면 조선시대 때 '사대(事大)'를 국시로 내세웠다. '事'가 '섬기다'는 뜻을 갖고 있다는 점을 역사에서 배운 것 같다. '사대주의'란 말 말이다. '큰 것' 즉, 중국을 섬긴다는 의미라고 배운 기억이 독자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조선이 사대주의를 내세운 것은 고려말 고구려 옛 땅을 수복한다는 명분으로 당시 여진족이 차지하고 있던 요동 정벌을 위해 군대를 일으켰지만,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해 고려를 무력으로 제압하고 결국 조선을 세웠다는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다. 새로 나라를 세운 조선으로서는 당시 중국에서 새로 일어난 명(明)의 위세가 대단해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 고려를 조선이 제압한 것으로 조선을 인정해 줄 것을 바라는 전략으로 삼았다.
아무튼 이 책 『사애』의 성격으로 보아 일을 좋아한다든지, 사랑한다든지, 아니면 하고 싶다든지로 읽으면 될 것 같다. 저자 황승원은 부제 「35살 세일러문」을 붙였다. 저자 자신의 나이를 뜻하는 것으로 봐도 무방할 제목이다. 다만 저자는 일본 유학을 다녀왔고, 한국에서 일을 하기 위해 취업을 하려 했으나 일본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아 많은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는 서술이 있는 것으로 보아 표제어 '사애'의 뜻을 추정하기엔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특히 부제에 쓰인 '세일러문'은 일본에서 오랫동안 시리즈로 방영된 애니메이션인 것으로 기억된다. 독자는 만화영화나 애니메이션 영화에 별 관심이 없지만 '세일러문'이란 제목은 들어본 기억이 있다. 별 수 없이 인터넷 사전을 찾아보니 비교적 자세히 설명이 나온다. 이에 따르면 다케우치 나오코(武內直子)의 원작 만화를 1992년부터 1996년까지 도에이 동화와 아사히 TV에서 200편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영화 시리즈로 제작했다. 1992년에는 46회의 〈미소녀전사 세일러문〉, 1993년에는 43회의 〈미소녀전사 세일러문 R〉, 1994년에는 38회의 〈미소녀전사 세일러문 S〉, 1995년에는 39회의 〈미소녀전사 세일러문 SS〉, 1996년에는 34회의 〈미소녀전사 세일러문 스타스(Stars)〉로 제작되는 등 1년 단위로 새로운 시리즈를 제작해 5년간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달의 요정 세일러문〉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으며, 200편 중 33편이 심의 등의 이유로 방영되지 못했다고 덧붙이고 있다.
내용도 간단히 언급되고 있는데, 평범해 보이는 소녀들이 세일러 요정들이 되면서 정체 불명의 조직으로부터 지구를 지킨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이 작품은 다양한 연령층이 좋아할 수 있도록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로 조화시켜서 일본은 물론 한국 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고 기술돼 있다.
이 책에는 『사애』라는 중편 길이의 소설과 어렸을 때의 기억, 성장 과정, 일본 유학, 귀국 후 취업 등의 생활을 적은 여행기와 취업 수기 등의 형식의 에세이가 여러 편 책 뒷 부분에 실려 있다. 대부분 일본 유학기의 단상(斷想)이어서 얼핏 일본 문화 여행기로 읽어도 될 정도로 일본에서의 생활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물론 이 내용은 소설이 아니고 에세이 형식으로 자신의 경험과 느낌을 적은 것이다. 앞 부분의 소설 『사애』는 자신의 성장 과정을 포함한 자신의 경험 등을 섞어 쓴 듯한 중편 분량의 소설이지만 소제목을 많이 둠으로써 장면 장면을 쪼개고 있다. 결국은 중학교 짝이자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 사이인 현명과 아인의 사랑(?)을 줄거리로 갖고 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성일중학교에는 2학기 수업이 시작되었다." 이 소설 작품의 첫 문장이다. 극히 평범하다. 「판치기와 마젤란」이란 연결이 안 되는 두 단어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뭔가를 암시하고 있을 뿐이다. 첫 문장은 무대가 중학교이고 가을로 접어든 때라는 것을 알리고 있다. 어느 학교든지 중학생들이 모이면 장난이 심해지고, 또 교칙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학생들의 움직임이 시작된다. 요즘 말로 하면 '일진'이나 '폭력 서클'이 되겠지만, 중학교이니만큼 그 정도의 조직적 불량아들은 아닌 듯하다. 흔히 그 나이에 교칙에 어긋난 것이라면 동전치기 등 일종의 가벼운 도박 같은 것을 하는 애들이 점심시간을 전후해 활동한다.
"교실에는 5명의 남학생이 책상 하나를 둘러싸고 있다. 합의를 마친 학생들은 500원 동전을 꺼내 '몸잨'이라고 쓰여진 이미 꼬질꼬질하고 누더기가 된 교과서에 올려놓는다. 표지만 그렇지 속지는 아주 깨끗한 교과서다. 동전 5개를 일렬로 맞추고는 가위바위보를 통해 순서를 정한다. 남학생들은 판치기 판을 벌렸다.
이른바 판치기 500원빵!
교과서 위에 동전을 일렬로 맞추고서 교과서를 손바닥으로 내리쳐 모든 동전을 반대 면으로 일치시키면 승리하여 돈을 따내는 게임을 시작했다. 가위바위보를 하여 순서가 정해진 순번대로 게임을 시작한다. 첫 번째 학생은 한 번으로 동전을 넘겨 이겨볼 심산으로 교과서를 내리쳤다. 5개의 동전 중 4개는 앞면인 학의 반대면으로 넘어갔지만, 1개의 동전이 숫자 500이 쓰여진 뒷면 그대로 있었다. 한 번에 다 넘어갔으면 하는 아쉬움만 남았다. 2번째 학생은 1개의 동전을 넘기기 위해 손가락을 이용해 보기로 한다. 오른쪽 3번째 손가락을 왼손으로 이용해 뒤로 가능할 만큼 당기고 그 힘을 이용해서 넘겨보려고 했다. 하지만 손가락 하나는 500원의 무게를 넘길 수가 없었다. 100원은 가능했지만 500원은 안 된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만다. (중략) 이 게임은 4번째 학생이 이겨 기뻐하며 돈을 회수할 찰나, 교과서를 건드리지도 못했던 5번째 학생은 억울했던지, 2,500원을 손에 쥐고 교실을 나와 복도를 질주하며 도망치기 시작한다."(p.9~10)

이 소설의 주인공인 이아인과 박현명이 뒤이어 등장한다. 여학생과 남학생이다. 같은 반이 두 학생은 가을학기가 시작한 3학년 5반 담임인 '은지'의 새로운 분위기로 시작하고픈 의지에 따라서다. 1학기에 남녀 합반 교실을 남자 짝, 여자 짝으로 만들었는데 2학기는 남녀 짝으로 바꾸려 하려는 것이다. 저자는 이아인이란 여학생에 대해 캐릭터 설명을 한다. 공부도 잘하고 다른 학생에게도 친절하며 모범이 되는 아이다. 이과 계열 성적이 월등했다. 꿈을 일찌감치 의사나 약사가 될 것이라고 정해놓은 아이였다. 그래서 고등학교의 진학도 특목고나 명문고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아인이 같은 아이의 진학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특목고, 명문고에 진학한 학생들의 숫자가 학교의 명예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은지는 이 남녀 합반의 교실에서 남녀 짝을 만들어 둔 것이 아인이에게 나쁜 영향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어느 반이나 문제가 되는 남학생들이 있어 선생인 자신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번 연도에 담당한 자신의 반의 남학생들은 대부분 온순한 남학생들이란 판단이다.
여학생들이 자신의 이름을 적어 상자에 넣고, 남학생들에게 자신이 될 짝을 선택하게 하는 방법의 '복불복' 제비뽑기로 결정했다. 아인이의 짝이 된 학생이 박현명이다. 그는 부모가 없이 할머니 손에서 자라고 있는 학생이었다. 6개월 전 신학기가 시작될 무렵 은지는 현명의 할머니를 만나게 되어 현명에 대해 들었다. 현명의 부친은 현명이가 국민학교에 입학할 무렵 일하던 중 산업재해로 인해 사망했고, 남편의 사망에 충격을 받는 모친은 실성해서 정신병원에 있다고 듣게 되었다. 은지는 참 난감했다. 부모가 없는 학생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기에. 윤정(은지의 동료 교사로서 문제아가 있는 학급의 담임) 선생이 시도 때도 없이 경찰서에 가고 있는 것은 그 남학생도 아빠가 없는 한부모가정 학생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평소 말도 없고, 시키는 것도 특별히 문제없이 해오기 때문에 문제아로 생각지는 않았다. 현명의 성적은 50명의 학생 중 20~30등. 한편으론 걱정 되지만 다른 한편으론 고등학교 진학이 가능한 정도의 아이라고 내심 배라고 있는 터라 믿고 결정했다. 현명에게 아인이 찾아왔다.
"현명아 안녕,"
아인은 현명에게 특유의 미소를 지어준다. 그리고 의자에 앉은 아인은 필통에서 매직을 꺼내 2인용 나무 책상의 절반 지점에 선을 긋는다.

둘은 짝이 되긴 했지만 실제로 현명과 아인은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 친한 사이가 되기에는 아인은 이래저래 바쁜 아이였다. 고교 진학으로 바쁜 아인은 현명이에게 살갑게 대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현명이가 그린 아인이에게 친하게 지내자고 하거나, 곰살궂게 대하는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그냥 데면데면한 사이로 지내왔다. 그러다 둘이 우연히 길에서 만나 둘은 인근 낚시터로 간다. 현명이 낚시하러 가는 날 학원에 가기 싫어 길을 산책하듯 돌아다니다 아인을 만나 함께 낚시터로 가게 된다. 그러다 미끼를 물지 않아 낚시에 집중하기 힘들어진 현명은 양팔을 뒤로하여 상체를 지탱하는 자세로 쉬고 있었다. 잠깐 이러고 있을 생각이었는데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른 아인이 잠결에 현명의 팔을 잡아당겨서 베고 자고 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라 둘 사이는 헤프닝으로 끝난다. 다만 아인이 겸연쩍어 "잘 때 세일러문 인형을 껴안고 자는데 잠결에 팔을 끌고 잤나 봐" 하며 둘러댄다. 이날의 우연은 후일 두 사람의 관계에 결정적인 에피소드로 소설이 이어진다.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헤어진 후 두 사람은 출판사에서 해후한다. 출판사 사장 영미의 지시로 두 사람은 독일 출장의 기회를 갖게 되고, 독일에서 두 사람은 육체 관계를 맺을 정도로 가까워진다. 이후 둘은 육체를 맞대고 모텔을 스스럼없이 다닐 정도로 친해진다.
이후 두 사람은 갈등도 겪고 둘이 결혼식 없이 함께 살기로 약속하며 관계를 지속한다. 이후 스토리는 여기에 계속 쓸 수는 없지만 대신 제목을 열거해 어떤 스토리가 지속될지 독자들로부터 가늠케 함을 양해 바란다. 「송골매는 어쩌다 마주친 그대를 불렀다지만」「니가 왜 거기서 나와?」「선은 네가 그어놓고?」「발랄하고 기운 찬 대단한 할머니」「정말 가야 하나요?」「바쿠스 님 좀 쉬세요, 네?」「장광철」「슈바빙의 고독했던 영혼」「이두근, 담두근, 전완근」「Funky Tonight」「풋풋, 성숙, 우아, 관록」「35살 세일러문의 마술 지팡이」
저자 : 황승원
한국의 세르반테스이자 샤를 보들레르.
24살에 일본으로 가출했고 일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그 시절에 시작된 일본유학생 30만 명 정책에 의해 장학생이 되어 지적노동을 강요당했다. 일본생활은 세르반테스가 해적에게 잡혀 5년간 알제리에서 한 노예생활과 다를 바 없었다. 대학 졸업 후 한국에 돌아왔으나 취업이라는 제도권으로 진입이 안 되어 홀로 수행했다. 방황학, 방랑학, 기행(奇行)학을 각각 4년씩 거쳐왔다. 하지만 지금도 방황이, 방랑이, 기행이 무엇인지 모른다…. 방황학에 12년 몰빵했으면 방황이 무언지 알게 되었을까? 호기심만 많아 시작만, 벌이는 것만 많지 무엇 하나 제대로 끝내는 것이 없다…. 다만, 인생은 주어진 기간 동안 살아가는 것인가, 인생과 투쟁하여 살아내는 것인가 증명해 내고 싶은 사람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