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본색 - 가려진 진실, 드러난 욕망
양상우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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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2025년 6월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이 선출되고 새 정부가 탄생했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넉넉한 차이로 새 대통령으로 당선돼 대한민국을 책임 지고 번영으로 이끌겠다고 장담하며 새롭게 출범했다. 위헌·불법 비상계엄령으로 탄핵된 윤석열 정부는 내란 혐의로 재판정에 서 있다. 새 정부는 비상계엄으로 인한 떨어진 국격과 어려운 민생 회복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는 모양새다. 인수위원회도 없이 바로 출범한 새 정부는 아직 정상적으로 모양을 갖추지 못했지만 국민의 지지도는 여전하다. 전 정부에서 넘겨준 것이라고는 무덤처럼 텅 빈 대통령실과 파탄 일보 직전의 민생뿐이다. 더욱이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국민들이 바라는 또 하나의 축은 특검에 맡기고 새 대통령은 조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늘까지 실시되고 있는 국무총리 인준 청문회도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오늘의 비상 시국은 '검찰 공화국'으로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른 윤석열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지만 거기에다 권력자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검찰 문화도 한몫을 했다고 많은 시사평론가들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갑자기 선포된 비상계엄, 대통령 탄핵, 대선 선거... 지난 6개월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초긴장 상태로 이어져 왔다. 한 집 건너 자영업이 폐업하는 현실에서 민생이 너무 어렵다는 한탄의 목소리가 아우성이다. 혼란한 시국에서 언론도 개혁 대상이라는 말은 오히려 쏙 들어간 형국이다. 내란 척결도, 검찰 개혁도 이뤄야 할 과업이지만 언론은 훨씬 전부터 개혁의 대상으로 떠올랐었다. 그동안 언론 개혁을 시도하는 권력자는 더러 있었지만 어떤 정부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만큼 언론의 성벽이 견고하다는 뜻일 것이다. 이 책 『언론본색』은 언론에 대한 신뢰가 크게 추락한 지금, 언론의 본질을 처음부터 다시 묻기 위해 출간됐다. 일선 기자와 언론사 CEO, 미디어 경제학자를 두루 경험한 저자 양상우가 경험과 학문적 통찰을 바탕으로, 언론의 민낯을 살피며 언론은 왜 나아지지 않는지 진지하게 성찰한다. 언론 개혁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선거를 앞두고 펴낸 것으로 보아 새 정부에게 언론 개혁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저자는 “언론인들은 ‘언론이 전하는 진실’에 관해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잘 모른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고 선언한다. 또한 “사람들이 말로는 언론을 향해 ‘진실’을 요구하지만, 실제로는 ‘내 생각과 같은 뉴스’를 기대하는 것이고 언론은 이를 의식하며 뉴스를 내놓는다”고 언론 소비자들에게도 일침을 가한다. 언론은 ‘진실의 등대’보다는 ‘인간 욕망의 거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고 저자는 언론 개혁의 이유와 함께할 대상으로 '양비론'을 꺼내든다.

저자는 한국의 언론이 뒷걸음만 쳐온 이유에 대해 “이상만을 앞세울 뿐 현실을 직시하지 않은 탓이 크다”고 「진실과 거짓, 언론의 빛과 그림자」란 제목의 〈서문〉을 통해 지적한다. 저자는 지금 필요한 것은 ‘언론의 이념’이 아니라 ‘언론의 본성과 현실’을 이해하는 일이란 말이다. 〈서문〉에 따르면 언론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진다. 언론의 부조리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수십 년 넘게 반복되고 있지만, 모두 부질없는 일이었다. 나아지기는커녕 되레 더 나빠지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 쉽게 꼽을 수 있는 이유는 언론 자신에 있다. 부조리한 행태에 대한 수많은 비판에도, 당사자인 언론이나 언론인들이 반성하고 있다는 낌새조차 느끼기 어렵다는 게 우선적 이유다. 다른 이유도 있다. 일반인이나 언론인 모두, 한국 언론의 '환부(患部)'를 열어 언론의 병증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덮어놓고 비판만 해왔다. 그러다 지쳐 체념해 왔다. 어제나 오늘이나 이같은 현상이 되풀이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언론의 본질은 고정돼 있지만, 기술-경제 환경은 끊임없이 변했고, 이로 인해 저널리즘은 형태와 내용이 변해왔다. 정파성과 관련해선, “언론의 정파성은 인간과 사회, 그리고 그 속에서 태어난 언론의 본성”이나, “언론의 품질은 언론이 지닌 정파성과는 별개”이며, “정파적이라도 고품질 언론이 있을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처럼, 분명한 정파성을 지니면서도 품질 높은 저널리즘으로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참고해야 할 길이라고 역설한다.



이 책의 중요한 통찰 중 하나는 언론의 문제를 언론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언론의 시작과 끝에는 언론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렇게 주문한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성찰하고, 언론의 본성을 깊이 이해하며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시민들이 늘어나는 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언론의 품질은 궁극적으로 언론 소비자가 얼마나 현명한지에 달려 있다.”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 편향을 감수하더라도 품질을 중시하는 태도, 이견에 귀 기울이는 자세만이 언론 환경을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언론의 자유가 미국에서 시작됐다는 의미에서 저자는 미국의 언론에서 지도자들의 언론에 대한 발언을 인용한다. 대표적 인물로 근대 언론의 싹을 띄운 제퍼슨과 알렉시 드 토크빌이다. 제퍼슨은 "우리의 자유는 언론의 자유 없이 지켜질 수 없다"는 금언을 남겼고, 토크빌은 "폭정을 막는 길은 (언론의) 무한한 자유"라고 외쳤다. 특히 제퍼슨의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한 말은 언론이 민주주의의 수호자임을 웅변한 명언으로 숱하게 인용되었다. 

그러나 언론 자유에 관한 주옥 같은 어록을 남긴 그들조차 언론의 부조리하고 잔인한 모습에 극도로 실망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저자는 언급한다. 제퍼슨은 언론에 대한 환멸과 개탄을 쏟아내면서 "늑대가 어린 양의 피 앞에서 그러듯, 신문들은 (보도로 인한) 희생자들의 고통에 굶주려 있다"고 비난했다. 또 토크빌은 언론의 자유를 털끝만큼도 제한하지 말라고 주장한 인물인데, 그조차도 '악한 언론'에 대한 비판은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지적했다. "(언론은) 대부분 증오와 시기심에 사로잡혀 있고, 이성적이기보다는 격정적으로 말하며, 거짓과 진실을 함께 퍼뜨린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토크빌은 결국 언론은 선과 악의 본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고 결론지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후에도 언론의 역기능과 한계에 대해 비판은 무수히 이어졌다고 밝히며, 저자는 20세기 최고의 미국 언론인으로 지목되는 월터 리프먼의 경우도 소개한다. "신문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중을 설득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는 사악한 것이며 악의에 가득 차 있는 것이다." 특히 리프먼은 "언론에 의한 민주주의는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에도 없으며, 미래에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이같은 언론관의 변화를 지금 우리 시점으로 돌아오면 어떤가? 저자는 의문을 품고 "우리가 날마다 경험하는 언론은 어떤가?"라는 질문을 한다. 저자의 답변은 "본질적인 면에서 언론은 변함이 없다. 언론 자유의 주창자와 열렬한 옹호자들도 절감했던 언론의 부조리와 역기능, 그리고 한계는 시대가 달라져도 겉모습만 바뀌길 거듭했을 뿐 여전하다고 저자는 거침없이 말한다. 저자는 이같은 언론의 본질에 대해 한마디 덧붙인다. 언론이 지닌 부조리하고 잔인한 면모는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인간과 언론이 지닌 뿌리 깊은 본성의 발로이기 때문이다."(P.12)

이 책은 모두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너 자신을 알라’, 언론에 관한 환상〉, 2장 〈언론이 전하는 ‘진실’의 특징〉, 3장 〈변함없는 뉴스, 진화하는 뉴스 시장〉, 4장 〈뉴스의 이상과 현실〉, 5장 〈언론 자유 사상의 ‘숨은 그림’〉, 6장 〈부끄러움을 모르는 언론, 묻히는 진실〉, 7장 〈자유를 만끽하는 언론의 배신〉, 8장 〈한국 언론의 현주소〉 등이다. 저자는 이미 〈서론〉을 통해 언론이 아무리 부조리해도, 우리는 언론을 외면할 수 없다고 전제한 뒤, 이는 언론이 제공하는 뉴스와 정보는, 좋든 싫든 우리 삶과 사회를 영위하는 데 불가결한 까닭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세상에 뉴스 미디어가 전혀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고 되묻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스스로 수집하고 판단해야만 한다. 그러나 '지구촌'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은 현대 사회에서는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다. 이른바 '정보 마찰'로 많은 문제를 야기시킬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삶 자체를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혼란이 온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정보 마찰'이란 뉴스 미디어가 없다면 인파가 발 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찬 초대형 쇼핑몰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부대끼며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 헤매는 것과 같다는 의미에서 경제학자들이 만든 말이라고 한다. 뉴스 미디어가 개개인을 대신해 정보를 수집하고 전달함으로써 사람들의 이런 정보 마찰을 극적으로 줄여준다는 점을 강조하는 말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도 정보 마찰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뉴스 미디어가 없을 경우 사람들이 겪어야 할 정보 마찰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언론을 향한 사람들의 요구와 기대는 변함이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에 따르면 이같은 현상은 언론의 본질도 마찬가지다. 언론의 전달 수단과 방식은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정보통신기술과 그에 따른 사람들의 의사소통 방식이 발전과 진화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즉 언론의 '본질'의 본질은 그대로지만, '형식과 내용'은 끊임없이 변화했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변함없는 언론의 본질과 변화하는 언론의 형식과 내용은 '변함없는 변화'란 표현이 잘 어울린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역사적으로도 형식과 변화의 일단을 설명한다. 형식의 경우 16세기 팸플릿 신문에서 17세기의 근대 신문, 20세기의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 그리고 디지털 미디어로 변모했다. 내용면에서 가장 대표적인 변화는 언론의 보도 규범과 이념을 뜻하는 '저널리즘'의 변모라고 저자는 주장하며 내용의 변화를 열거한다. 

객관주의 저널리즘은 탐사 저널리즘과 함께 지난 세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탐사 저널리즘은 사회적 비리와 부조리를 장기간에 걸친 깊이 있는 조사와 분석을 통해 폭로하며 각광을 받았다. 그러다가 지난 세기말부터는 객관주의 저널리즘도, 탐사 저널리즘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실시간 온라인 뉴스 시대가 열린 까닭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뉴스 공급자들의 경쟁이 유례없이 치열해지며, '받아쓰기 보도'나 '베끼기 보도'가 일상화되고, 정파성이나 선정성이 강한 자극적인 보도가 크게 늘었다. 반면, 탐사 보도나 심층 보도 같은 고비용 오리지널 콘텐츠는 갈수록 줄고 있다. 100년 전처럼 선정적 저널리즘과 정파적 저널리즘이 오히려 확산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할수록 또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뉴스 소비가 증가할수록 더욱 두드러진다. 

저널리즘은 미디어 기술과 언론을 둘러싼 경제적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 언론은 언제나 사회적 소명에 충실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지만, 언론의 우선 과제는 경제적 생존이 까닭이라고 저자는 풀이한다. 따라서 물질적 토대의 변화로 인한 언론의 변모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앞서 언급한 대로 우리의 언론이 뒷걸음만 쳐온 이유는 “‘이상’만을 앞세울 뿐 현실을 직시하지 않은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이상’은 우리가 향해야 할 곳을 알려줄 뿐, 무엇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는 알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금 필요한 것은 ‘언론의 이념’이 아니라 ‘언론의 본성과 현실’을 이해하는 일이라고 저자는 주장다. 언론의 본질은 고정돼 있지만, 기술-경제 환경은 끊임없이 변했고, 이로 인해 저널리즘은 형태와 내용이 변해왔다는 점은 앞서 지적한 대로다. 저자는 디지털 시대에 등장한 신흥 언론의 급부상과 전통 언론의 몰락을 분석하면서, 두 언론이 ‘적대적 공존’의 상태에 있다고 본다. 전통 언론은 수익성 악화로 품질이 저하되고, 신흥 언론은 정파성과 해석 중심의 콘텐츠로 급속히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경고한다. “전통 언론인들은 자신의 보도가 얼마나 공정하고 정확한지, 대중에게 얼마나 신뢰를 줄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잡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신흥 언론인들도, 당장은 겸손과 성찰의 필요성을 느낄 수 없겠지만, 질적 도약을 원한다면 스스로를 성찰하며 겸손해져야 한다.” 언론과 언론 환경, 뉴스 전달자와 뉴스 소비자들은 실패를 최소화하며 '이상'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부조리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언론에 관한 제도와 정책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회적 공감대를 충분히 이뤄내야 한다고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주장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반대자를 침묵시킬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는 생각과 태도는 더 나은 언론을 위한 첫걸음이다. '옳다'고 여기는 나의 생각만이 아니라,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다른 이들의 견해와 주장에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믿는, 시민과 언론인, 그리고 지식인들이 공론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p.257)


저자 : 양상우


6만여 국민주주들이 뜻을 모아 창간한 한겨레신문의 사원 직선 대표이사를 두 차례(15·17대) 지냈다. 언론인의 길을 걸을 때도, 줄곧 학업과 연구의 끈을 놓지 않은 경제학자다.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겸임교수로 미디어 정치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저널리스트와 언론사 경영인으로서 직접 몸으로 부딪혀온 언론의 현실을 경제학에 접목하는 데 천착해 왔다. 디지털 시대에 언론이 권력과 자본 앞에 취약해지는 현상, 포털 뉴스가 언론의 정파적 보도에 미치는 영향 등을 경제학 모델로 분석했다. Information Economics and Policy 등 저명한 국내외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한국 언론의 문제를 푸는 데도 언론에 관한 경제학적 통찰이 중요하다는 것이 지론이다.

한겨레신문 사장 시절에는 한겨레신문이 권력과 자본 앞에 당당하도록 물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 애썼다. 첫 임기 중 한겨레신문사는 창사 이래 20여 년 만에 자본결손에서 벗어났고, 두 번째 임기 때는 재임 기간의 누적 흑자를 바탕으로 32년 만에 첫 주주배당을 시행했다. 기자 시절에는 쌍용양회 사과상자 비자금 사건(1996년), ‘북파공작원 실종·사망 7726명’(1999년), 부산 성인 오락실 비리 사건(2006년)을 비롯해 북한 시베리아 벌목공 르포(1994년) 등을 썼다. 민주언론상 특별상(2007년) 한국가톨릭(주교회의)매스컴상(2006년) 삼성언론상(2004년)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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