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바이러스 - 우리는 왜 적대적 인간이 되는가, 카를 융이 묻고 43명의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 저널리스트가 답하다
코니 츠웨이그.제러마이아 에이브럼스 지음, 김현철 옮김 / 용감한까치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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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그림자 바이러스』에서 공동 저자(이하 저자)코니 츠웨이그와 제러마이아 에이브럼은 카를 융 〈그림자 이론〉의 실질적 근원을 이야기한다. 독자가 이 책을 읽고자 선택한 이유는 얼마 전 카를 융과 헤르만 헤세가 편지를 주고받은 내용을 중심으로 쓴 칠레 출신의 작가 미구엘 세라노의 『헤세와 융, 영혼의 편지』를 읽었기 때문이다. 『헤세와 융~』에서 세라노는 은 두 거장은 문학과 심리학이라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지만, 두 사람의 시선이 향한 곳은 언제나 같았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내면, 그리고 영혼의 심연이었다는 것. 두 거장이 삶의 말년에 나눈 마지막 대화이자 인간 존재의 근원과 삶의 의미를 향한 궁극의 사유를 담은 책이라고 출판사 측은 소개하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헤르만 헤세는 1916년에 처음 융을 만났으며, 그의 대표작인 소설 『황야의 이리』(1927)는 융의 분석심리학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평가된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볼프강 파울리는 기계 옆에만 가도 고장을 일으키는 ‘파울리 효과’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파울리는 융보다 25세 연하였지만 오랫동안 절친한 사이로 지냈으며, 특히 융의 ‘동시성 이론’에 관심을 갖고 공동 연구를 하기도 했다.

카를 융은 1912년 '정신의 그림자 부분'이라는 말로 '아직 인식하지 못한 욕망'과 '인격의 억압된 부분'이 지닌 특성을 설명하며 그림자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고 저자는 밝힌다. 그림자를 '억압된 것'으로만 봤던 프로이트와 달리, 융은 더 발전시켜 그림자를 '열등한 인격'으로 보았고, 의식 속 우월한 인격과 마찬가지로 자율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물론, 사상, 이미지, 가치판단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인격으로 보았다. 융에 따르면 그림자는 의식의 관점에서 볼 때만 부정적이다. 융은 1917년 자신의 에세이 「무의식의 심리학에 관해」에서 그림자는 우리 안의 타자, 즉 자신을 당황하게 하고 부끄럽게 만드는 타인으로, 스스로가 숨기고 싶어하는 불쾌한 특징과 개인의 의식 속에서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기능 및 내용의 총체라고 설명했다. 프로이트의 관점과 달리, 언제나 인격과 호환되지 않고 부도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최고의 도덕적 가치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무의식의 인격으로 보았다.



이 책 『그림자 바이러스』에서 저자는 융의 그림자 이론은 물론, 그의 제자와 분석심리학 분석가가 연구를 계속하며 깊이 탐구한 인간 무의식 너머의 어둠을 가감 없이 밝힌다. 그 중 괄목할 만한 이론과 현대인이 꼭 생각해야 하는 사상, 고찰만을 추려 '카를 융의 그림자 이론'을 완성하는 한 권의 빅데이터를 만들었다. 융의 사상에 깊이 영향을 받은 두 저자는 그림자 이론을 통해 적대적으로 변하는 개인, 사회, 문화, 정치의 관계성을 설명한다. 피상적인 이론에서만 멈추지 않고, 다양한 예시와 이야기를 통해 그림자를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저자에 따르면 그림자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재생의 근원이며, 개인에서 비롯하는 모든 창조적인 것들의 시발점이다. 카를 융과 43명의 분석심리학파 분석가,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 저널 리스트, 작가들의 그림자에 대한 담대하고 깊이 있는 사유와 고찰을 통해 우리는 그림자로의 의미 있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만일 현재가 어쩔 수 없는 불모지로 느껴진다면, 지금 당장 그림자를 만나러 가야 한다. 그림자는 불만족스럽고 고통스러웠던 불모지가 낙원으로 바뀌는 공간이다.

'그림자'는 사전적 풀이로 ① 물체가 빛을 가려서 그 물체의 뒷면에 드리워지는 검은 그늘. ② 물에 비쳐 나타나는 물체의 모습. ③ 사람의 자취 등으로 언급된다. 그러나『정신분석용어사전』에는 그림자를 사람 성격의 부정적인 부분—개인이 숨기고 싶은 모든 불유쾌한 요소들의 총합이라고 말한다. 인간 특성 중 열등하고, 가치 없고, 원시적인 부분, 개인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이르는 말이다. 카를 융은 모든 사람에게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실재하는 모든 것은 그림자를 드리우는데, 자아와 그림자의 관계는 빛과 그늘의 관계와 같으며, 바로 이 그림자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고 융은 주장했다. 융은 현대 인류가 이러한 측면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프로이트의 공헌이 크다고 인정했다.

그림자는 완전히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이것은 시도해서도 안 된다), 최선의 방법은 그림자와 화해하는 것이다. 융 학파에서 주장하는 분석의 목적은 환자가 자신의 본능적인 부분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가치 있는 것들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분석을 통해서 자신의 그림자 측면을 자극하는 사람들과 상황들에 대한 인식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카를 융의 그림자 이론이고 후대 학자들이 더 심층 연구하고 있다.



이 책 『그림자 바이러스』에서 저자는 융의 그림자 이론은 물론, 그의 제자와 분석심리학 분석가가 연구를 계속하며 깊이 탐구한 인간 무의식 너머의 어둠을 가감 없이 밝힌다. 그 중 괄목할 만한 이론과 현대인이 꼭 생각해야 하는 사상, 고찰만을 추려 '카를 융의 그림자 이론'을 완성하는 한 권의 빅데이터를 만들었다. 융의 사상에 깊이 영향을 받은 두 저자는 그림자 이론을 통해 적대적으로 변하는 개인, 사회, 문화, 정치의 관계성을 설명한다. 피상적인 이론에서만 멈추지 않고, 다양한 예시와 이야기를 통해 그림자를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저자에 따르면 그림자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재생의 근원이며, 개인에서 비롯하는 모든 창조적인 것들의 시발점이다. 카를 융과 43명의 분석심리학파 분석가,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 저널 리스트, 작가들의 그림자에 대한 담대하고 깊이 있는 사유와 고찰을 통해 우리는 그림자로의 의미 있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만일 현재가 어쩔 수 없는 불모지로 느껴진다면, 지금 당장 그림자를 만나러 가야 한다. 그림자는 불만족스럽고 고통스러웠던 불모지가 낙원으로 바뀌는 공간이다.

'그림자'는 사전적 풀이로 ① 물체가 빛을 가려서 그 물체의 뒷면에 드리워지는 검은 그늘. ② 물에 비쳐 나타나는 물체의 모습. ③ 사람의 자취 등으로 언급된다. 그러나『정신분석용어사전』에는 그림자를 사람 성격의 부정적인 부분—개인이 숨기고 싶은 모든 불유쾌한 요소들의 총합이라고 말한다. 인간 특성 중 열등하고, 가치 없고, 원시적인 부분, 개인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이르는 말이다. 카를 융은 모든 사람에게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실재하는 모든 것은 그림자를 드리우는데, 자아와 그림자의 관계는 빛과 그늘의 관계와 같으며, 바로 이 그림자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고 융은 주장했다. 융은 현대 인류가 이러한 측면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프로이트의 공헌이 크다고 인정했다.

그림자는 완전히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이것은 시도해서도 안 된다), 최선의 방법은 그림자와 화해하는 것이다. 융 학파에서 주장하는 분석의 목적은 환자가 자신의 본능적인 부분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가치 있는 것들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분석을 통해서 자신의 그림자 측면을 자극하는 사람들과 상황들에 대한 인식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카를 융의 그림자 이론이고 후대 학자들이 더 심층 연구하고 있다.



이 책 『그림자 바이러스』는 책의 첫 페이지에서 그림자에 관한 명사(名士)들의 유명한 말을 인용한다. "우리 시대의 악은 악에 대한 인식을 상실하는 것이다."(크리슈나무르티), "우리가 억누르고 있던 것이 우리를 약하게 만든다. 그것이 우리 자신이란 걸 알게 될 때까지."(로버트 프로스트), "우리가 의식하지 않은 것들이 우리 삶에 운명으로 나타난다."(카를 융) 등이다. 저자 코니 츠웨이그는 〈머리말〉에서 "중년에 나는 내 안의 악마를 만났다. 그동안 내가 축복이라 여겼던 것들의 대부분이 저주로 변했다. 넓었던 길은 좁아지고, 밝았던 빛은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 어둠 안에서 내 안의 잘 키워지고 근사하게 치장된 성인(聖人)이 죄인을 만났다."고 말한다. 이어 나의 빛에 대한 매혹, 결과에 대한 열렬한 낙관, 타인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명상과 깨달음에 대한 헌신, 이 모든 것들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었고, 교묘한 저주였다."고 덧붙이고 있다. 

츠웨이그는 자신의 꿈의 스토리를 밝히면서 꿈에 대해 분석하면서 한 번도 그림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츠웨이그는 정신적 자만심을 지닌 채 깊고 헌신적인 정신 생활이 인간이 고통에서 자신을 지켜줄 거라고, 형이상학적 실천과 믿음관을 결정할 수 있는 것처럼 훈련해서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츠웨이그는 "어둠은 여러 모습으로 변장한 채 나타난다."며, 중년의 나이에 그림자와 대처하는 것은 매우 충격적이었고, 내 인생이 뿌리채 뽑히는 것이었으며, 끔찍하게 환멸을 느끼게 만드는 일이었다고 회상한다. 

두 저자는 「일상에서의 그림자」란 제목의 꽤 긴 〈서문〉에서 1886년 스티븐슨의 괴기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 "이제 그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해져서 누군가 '내가 완전히 내가 아니었어'라거나 '그는 악마에 홀린 사람 같았어', 또는 '그 여자 성질 더러워졌군'이라고 얘기하는 것을 들으면 저절로 떠오르는 이야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융 분석심리학파로서 존 A. 샌퍼드는 이런 유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이 마치 진짜인 것처럼 여겨 우리 인간성의 조화를 깨게 된다면 그것은 반드시 우리 안의 보편적인 것에 말을 걸어야 한다고 두 저자는 지적했다.



저자는 이제 우리는 각각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매일 하고 있는 상냥한 모습과 밤이 되면 찾아오는 숨겨놓은 자기가 있다는 것. 분노, 질투, 수치, 거짓말, 분개, 성욕, 탐욕, 자살 욕구, 살인 욕망 등의 부정적인 정서와 행동은 우리가 적절하다고 여긴 자기들이 씌워놓은 마스크 아래에 숨겨 있다고 지적한다. 심리학에서 '개인의 그림자'라고도 알려진 이것은 우리 대부분에게 길들지 않고 탐험되지 않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그림자'라는 사자에게 먹힌 채로 평생을 살고 있다. 그림자는 너무 어둡고 까만 나머지, 우리의 눈으로 쉽게 볼 수 없다. 의식 속에 갇힌 우리가 깊은 심연에 자리잡은 무의식 속 그림자를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이유다. 카를 융은 "당신을 집어삼킨 사자를, 당신은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림자를 만든다. 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갓난 아기 때부터 양육자에게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받기 위해 그가 싫어하는 기색을 보인 '본능'을 가방에 넣어버린다. 그 가방이 바로 그림자다. 이런 현상은 성장함에 따라 더욱 두드러지며, 양육자의 보살핌이 가장 필요하고 그것에 민감해지는 시기인 유아기 때 매우 심하게 나타난다. 이때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태어났던 것들의 거의 대부분을 가방에 넣게 된다. 성인이 된 후에도 마찬가지다. 그때그때 상대를 바꿔가며 우리는 상대에게 받아들여지고 인정받는 것들만 남기고, 그 외 조금이라도 미묘한 평가를 받을 만한 것들은 모두 그림자 가방에 넣기 바쁘다. 이미 모두 넣어 아주 작은 조각밖에 없음에도, 우리는 그 조각마저 자르고 잘라 가방에 넣는다. 이것은 때로는 미덕이라 불리고, 때로는 선이라고 칭송 받는다.

하지만 진짜 '나'는 그 가방, 즉 길고 무거워 이제는 끌고 다니기조차 버거운 그림자에 있다. 그리고 문제는 거의 대부분 삶의 위기를 맞고 나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림자는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애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적 동요, 우울감, 번아웃, 히스테리 등으로 우리에게 신호를 준다. 하지만 우리는 인정은커녕 그림자를 인식할 수조차 없다. 그동안 자신이 제일 '싫다고' 여겼던 모든 성격, 특징들을 이제야 자신의 본성이라고 받아들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우리는, 타인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날린다. 바로 '투사'다. 자신의 그림자를 상대에게 투사시켜 그를 바라본다. 상대는 내 그림자의 완벽한 거울이 된다. 만약 누군가의 단점이 당신을 감정적으로 미치게 만든다면, 그건 백퍼센트의 확률로 상대에게 투사된 당신의 그림자를 보고 매우 불쾌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모두 9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그림자란 무엇인가?〉, 2부 〈그림자의 형성 - 가족 안의 버림받은 자기〉, 3부 〈섀도복싱 - 질투, 분노, 그리고 기만의 춤〉, 4부 〈부정당한 신체 - 질병과 건강, 그리고 성생활〉, 5부 〈성취의 그림자 - 일과 발전의 어두운 이면〉, 6부 〈악마, 악령, 그리고 희생양 - 악의 심리학〉, 7부 〈적의 탄생 - 정치적 통일체에서 말하는 ‘우리’와 ‘그들’〉, 8부 〈그림자 작업 - 심리 치료, 이야기, 그리고 꿈으로 어둠에 빛을 밝힌다〉, 9부 〈통찰과 예술, 그리고 연습을 통해 내 어두운 면을 받아들여라〉 등이다. 

그림자와 투사는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개인의 그림자는 바이러스처럼 번져 집단의 그림자가 되고, 나아가 한 나라의 정치적 프로파간다나 정책을 결정하고 전쟁 여부를 정하는 국가적 그림자로 번진다. 집단적 페르소나와 집단적 그림자의 형성이다. 개인에게는 자살 충동, 살인 충동, 이기심, 성욕, 권력욕 등 비도덕적이라 여겨지는 '악마적 충동'이, 집단에게는 인종 차별 같은 온갖 차별주의,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 같은 '사악한 집단 정신'으로 변모해 나타난다. 모두 개인적, 집단적 그림자를 인식하지 못하고 상대(상대 집단)에게 계속적으로 투사한 결과 벌어지는 일이다. 우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대신할 상대를 찾아 그를 희생양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집단으로 뭉쳐 '적'을 탄생시킨다.

카를 융과 심리학자들은 그림자의 이러한 전염성을 경고하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개인의 그림자와 집단적 그림자를 인식하며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융에 따르면, 그림자는 '비도덕적', '악마적'이라는 불명예의 수식어를 달고 다니지만, 사실은 겁을 내고 도망가야 할 것이 아니다. 우리의 성격 구조를 이루는 필수 요소 중 하나로, 태어날 때 가지고 태어났지만 정상적으로 발달되지 못한 모든 잠재력의 총체다. 발달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퇴화되고 변질된 것일 뿐 모든 창의적인 것들에 필요한 생산적인 충동 에너지가 모인 무한한 재생의 근원이다. 분석심리학파는 이 근원을 되찾는 것만이 온전한 자신과 창조성을 되찾고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물론,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을 열고 이 비옥한 재생의 근원을 마주하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분석심리학파 분석가들은 이 근원을 마주하기만 해도 긍정적인 삶의 변화가 시작된다고 이야기 한다. 이 책에서 그들은 악의 성질로 오인 받아 온 그림자를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그린다. 모든 선의 열쇠는 그림자에 있다.



카를 융부터 시작한 그들의 연구 속에서 악의 심리학은 비로소 최고의 선을 위한 심리학으로 재탄생한다고 두 저자는 의견을 같이한다. 그림자를 마주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삶이 힘들수록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한 충격을 받으면 무의식은 보상 기능을 발동해 상황을 건설적으로 바라보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스스로 빛을 등지고 어둠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 속에서 열등한 자기를 되찾아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고 두 저자는 역설한다. 무의식 속 그림자는 지금도 어린 아이의 모습 그대로 당신이 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민주주의 시민이 사이코패스를 가려내는 능력이 없다면 권력에 굶주린 선동가에 의해 무너질 것이다. 스위스인은 ‘위대한 인물’에 저항하며 그저 그런 정치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사이코패스가 권력을 잡지 못하게 막으려는 본능적 욕구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분명 ‘위대한 인물’은 존재하지만, 이런 이들은 사실 대부분 대중에게 간파당하지 않은 사이코패스였을 뿐일지도 모른다."(p.323)


저자 : 코니 츠웨이그(Connie Zweig)

캘리포니아 토팡가의 산꼭대기에 살고 있는 프리랜스 작가이자 북 에디터. ‘브레인/마인드 불레틴(Brain/Mind Bulletin)’ 주필과 〈에스콰이어(Esquire)〉의 칼럼니스트를 역임했으며, ‘제러미 P. 타처(Jeremy P. Tarcher, Inc.)’의 선임 편집자로 근무했다. 그녀는 명상을 공부하는 학생이자 선생님으로서 오랜 기간 심리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정신적 여행에 큰 공헌을 해왔다. 저서로 《To Be A Woman: The Birth of the Conscious Feminine》 등이 있다.


저자 : 제러마이아 에이브럼스(Jeremiah Abrams)

지난 20년간 융 치료사, 꿈 분석가, 작가, 상담가로 일해왔으며, 캘리포니아 소살리토에 위치한 개인을 위한 센터 ‘마운트 비전(Mount Vision Institute)’을 책임져왔다.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으며, 저서로는 《Reclaiming the Inner Child》 등이 있다.


역자 : 김현철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자동차회사를 거쳐 영자신문 『코리아타임스』에서 기자로 재직했다. 다른 삶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이유로 안정적이던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혈혈단신 유럽으로 건너가 지금은 독일 뮌헨에서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마음챙김 학습혁명』 『사는 데 정답이 어딨어』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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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우스이 류이치로 지음, 김수경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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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독자는 커피가 아랍산이란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세계사를 바꾸는 엄청난 힘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구체적으로 듣지 못했다. 중동 '예맨'에 커피 주산지이고 거대 무역항이로 발전한 '모카'라는 도시가 있어서 쉽게 알 수 있는 일이고, 우리 커피 제조판매사인 '○○'의 '아라비카'란 명칭이 중동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래서 커피의 원산지는 아랍이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커피 주산지가 세계 무역항으로 발달하고, 특히 유럽 쪽에서 커피를 처음 접하고 확산시킨 사람들은 유럽인이었다. 

키 150센티미터의 커피나무 한 그루가 프랑스에 들어온 것은 ‘루이 14세' 때였다고 한다. 당시 세계 무역의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1714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장이 루이 14세에게 바친 선물이었다. 책에 따르면 ‘루이 14세의 커피나무’에서 가능성을 발견한 이는 프랑스령 마르티니크섬 근무 경험이 있는 해군대위 출신 가브리엘 드 클리외였다. 어렵게 커피나무 한 그루를 구한 그는 온갖 고난을 겪으며 그 나무를 마르티니크로 가져가 심게 했고, 놀라운 생산량을 기록하며 몇십 년 후 전 세계 커피산업과 커피무역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또 나폴레옹은 커피를 군대에 맨 처음 보급한 인물이다. 그는 왜 자신의 군대에 커피를 보급하려 애썼을까? 영양분이 거의 없는데도 왠지 힘이 나게 하는 ‘검은 음료’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나폴레옹은 군대에 커피를 보급하기 위해 여러 분야의 발명에 상금을 걸고 산업혁명을 독려했다고 역사에는 서술되었다. 직물기계 개량, 인디고 대체용 색소 개발, 새로운 종류의 설탕 제조 등의 혁신은 그 열매인 셈이었다. ‘영양분이 거의 없는데도 왠지 힘이 나게 하는 음료’ 커피는 나폴레옹의 야망과 뒤얽히며 프랑스 산업 전반을 비약적으로 성장시켰으며, 18세기 이후 유럽과 전 세계 경제를 송두리째 뒤바꿔놓는 ‘산업혁명’의 근간이 되었다.



그렇다면 커피는 어떻게 세계사를 바꿨을까? 이 책 『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의 저자 우스이 류이치로는 "커피와 커피하우스가 없었다면 프랑스대혁명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인류의 역사를 바꾼 커피의 영향력을 강조한다. 저자는 「커피와 권력이 서로를 갈망하고 이용하며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다」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프랑스에서의 커피 선호와 영국으로 확산 등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프랑스령 서인도제도에서 산출되는 막대한 양의 커피는 이슬람 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전 세계 커피산업과 커피무역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프랑스는 커피문화와 커피산업의 판도를 바꿔놓았다고 저자는 밝힌다. 프랑스에서 처음 시작했지만, 이에 앞서 아랍에선 커피가 상당히 유행하는 중이었다고 한다. 즉 대항해 시대에 확보한 프랑스령의 많은 지역에서 막대한 양의 커피가 들어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운송하는 무역업에는 당시 무역 상권을 장악한 네덜란드라에도 엄청난 부를 가져다 준 셈이다. 물론 영국에도 커피 문화가 확산되었다. 영국은 특히 런던에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연 지 30여 년 만인 1683년에 3,000여곳, 1714년에는 8.000여곳으로 늘었다고 하니 확산 속도도 엄청났던 모양이다. 

영국에서 커피하우스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커피 산업이 급성장하던 17세기 후반이다. 이후 커피하우스의 열기는 홍차와 티하우스로 옮겨 붙었다. 영국의 커피하우스가 사회적 기능을 다했다는 말이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애초에 영국 커피하우스가 여성을 철저히 배제하며 탄생하고 성장했기에 결국 '여성 청원' 등 거센 반발에 부닥치며 직격탄을 맞아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홍차는 나중에 중국과의 아편전쟁으로까지 비화하며 세계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꿔놓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커피는 원래 이슬람 수피교도가 ‘욕망을 억제하고 수행에 정진하기 위해’ 즐겨 마시던 음료였다. 아마 각성 효과 때문인 것 같다. 그 독특한 ‘검은 음료’는 역설적이게도 17세기 유럽 상업자본가와 정치권력자의 들끓는 욕망을 자극하며 유럽과 전 세계 문화를 송두리째 바꿔놓기 시작했다.



이 책은 모두 8장(章)으로 나뉘어져 있다. 1장 〈이슬람 세계를 지배한 ‘검은 음료’ 커피〉, 2장 〈커피의 상업적 가치를 간파하고 이익을 극대화한 이슬람과 유럽 상인〉, 3장 〈영광의 자리를 홍차에게 빼앗긴 영국 커피〉, 4장 〈프랑스혁명의 인큐베이터가 된 커피와 카페〉, 5장 〈커피를 원하는 권력, 권력을 원하는 커피〉, 6장 〈19세기 후반, 식민지정책을 통한 동아프리카 커피 플랜테이션에 광적으로 몰입한 독일〉, 7장 〈바이마르공화국의 숨통을 끊어놓은 브라질의 ‘커피 대량 폐기 사건’〉, 8장 〈자국의 식민지이자 커피 생산지인 나라에 ‘극단적 모노컬처’를 강요하는 유럽 강대국〉 등이다.

각 장의 제목만 보더라도 커피는 엄청난 힘으로 유럽 사회를 뒤흔들고, 판도를 바꾸는 데 기여했다. 당시 기울어가는 청나라의 운명에 일침을 가한 전쟁이 아편전쟁이었다면, 커피 때문이 아니라 '차(茶)'의 대금을 은(銀)으로만 받던 청나라에, 유럽의 은이 고갈될 상태에 이르자 영국은 대금을 청나라에 아편을 팔아 챙긴 자금으로 치렀다. 그러다 1840년 들어 청 조정에서 이를 억제하는 정책을 펴면서 영국이 몰래 판 아편을 바다에 모두 수장시킨 사건이 벌어진다. 아편 수출이 막히자 영국이 택한 방법은 이른바 '아편전쟁'이다. 

아랍 커피 주 수입국이던 영국에서 커피가 홍차에게 밀려난 원인이 여성을 배제했기 때문이라고 앞선 설명에서 지적한 바 있다. 아라비아의 커피는 바다 건너 영국에 ‘커피하우스’를 통해 전파되었다. 영국 런던에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연 때는 1652년이었다. 그 역사적인 커피하우스의 문을 활짝 연 이는 영국인이 아닌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출신의 파스카 로제였다. 그는 레반트를 무대로 활약하던 상인 대니얼 에드워즈의 시종이었는데, 매일 아침 주인을 위해 커피를 끓이던 습관이 커피하우스 창업으로 이어진 셈이었다. 그렇게 출발한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한동안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어느 시점에 이르러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커피하우스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커피산업이 급성장하던 17세기 후반의 상황이다.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하기에 적합한 커피하우스는 영국이 맞닥뜨린 당대의 시대 상황·니즈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고, 커피산업과 커피문화의 급성장으로 이어지며 시민의 일상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이 책의 6장 〈19세기 후반, 식민지정책을 통한 동아프리카 커피 플랜테이션에 광적으로 몰입한 독일〉에서 저자는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독일혁명의 트리거를 당긴 것이 커피였다"고 전제한 뒤, 「프리드리히 대왕이 의사들에게 명령해 ‘커피에 독성분이 있다’는 거짓 소문을 내게 한 까닭」, 「프로이센 시대 독일인이 반나폴레옹 해방전쟁에 나선 이유는 ‘진짜 커피’에 대한 강렬한 욕망 때문」이었다고 지적한다.

책에 따르면 프리드리히 대왕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은 모순된 면이 많으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묘한 남자였다. 우선 그는 계몽된 전제군주의 정체성과 위상을 몸소 구현하며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냈다. 또 그는 플루트 곡집을 후세에 남기기도 했고, 여자와의 ‘전쟁’에 질린 남자의 슬픔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포츠담에 지은 상수시 궁전에서 잘 때는 늘 애견하고만 동침했다. 이런 타입의 남자가 커피를 마시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고 보면 그가 마시는 커피도 얼마나 모순으로 가득한가. 그는 커피에 샴페인을 넣어 같이 끓인 뒤 마지막에 후춧가루를 뿌려 마셨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계몽적 이성으로는 왜 위대한 프로이센의 국민이 이런 음료를 마시는지, 그리고 결국 매년 70만 탈러의 막대한 자금이 네덜란드로 빠져나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에 그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의사들에게 명해 커피에 독성분이 있다고 소문을 내게 한 것이다. 효과가 있었을까? 아니, 효과는 제로에 가까웠다. 이유가 뭘까? 일반 서민들이 ‘커피가 무서워서 감자를 먹으랴’ 하는 심정으로 그 조치에 강력히 반발했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감자가 독성식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감자가 지닌 몇 가지 탁월한 장점(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재배하기 쉽고 소출량이 많은 데다 쌀·밀 등의 주식 대체용으로도 손색없다는 점 등)도 간파하고 있었기에 장차 독일의 고질적 식량난을 해결해줄 미래형 주식으로 만들기 위해 감자 재배를 장려했다. 그렇다고 해서 프리드리히 대왕이 감자를 무척 좋아해서 그런 정책을 추진한 것은 아니었다.



커피를 광적으로 좋아한 독일은 드디어 커피를 수입을 위해 본격적으로 식민지 개발에 나서서 성공했다. 아프리카와 브라질 유럽 나라들을 통해 수입하던 커피를 직접 식민지 등을 통해 재배하고 사들여 왔으니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을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거센 파도에 맞닥뜨려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성과는 산산이 흩어졌다. 특히 원자재를 다른 나라에 의존하는 현대산업국가는 장기화된 전쟁을 수행하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독일이 일으킨 20세기 최초의 세계대전은 독일 입장에서 최악의 전쟁이 되었다. 영국·프랑스·러시아의 삼국협상 측은 미국을 비롯한 여러 동맹국의 도움으로 각종 원자재를 조달할 수 있었으나 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의 삼국동맹 측은 원자재 공급이 거의 끊긴 상태에서 전쟁을 치러야 했다. 

전쟁을 일으켰을 당시 전력적인 면에서 월등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전쟁이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저자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전쟁 발발하던 해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전쟁은 의외로 길게 연장되었으며 독일이 광적으로 쌓아올린 식민지 등의 커피 수입이 불가능해졌다. 커피의 경우 브라질 마저 미국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브라질에서 독일로 가던 커피 폐기가 전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엄청난 양의 커피가 소각되거나 배의 갑판 위에서 바다로 버려졌다. 커피대국 브라질의 파탄은 결코 한 국가의 파탄으로 끝나지 않았다. 식민지로 출발한 브라질은 노예무역과 이민 등을 통해 집요하게 커피 공급기지로의 변신을 강요당해왔다. 그리고 1929년 이후 대공황 시기에는 유럽 근대 시민사회에 ‘검은 혈액’을 흐르게 한 순환구조에 치명타를 입은 것이었다. 브라질의 커피 폐기 뉴스는 그 처참한 광경을 찍은 수많은 사진과 함께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독일의 각 신문도 브라질의 커피 폐기 뉴스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중 한 장의 사진이 있다. 1932년 3월에 발행된 한 잡지에 게재된 것으로, 브라질의 커피 폐기를 전하는 보도사진이다.

사진에는 연기를 내뿜으며 질주하는 증기기관차 위에 네 명의 남자가 서 있다. 두 명은 어이없다는 듯 엷은 웃음을 띠고 있고, 나머지 두 명은 얼굴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다. 한 사람이 석탄을 갑으로 퍼서 기관실로 보낸다.



아니, 자세히 보니 석탄으로 보였던 그 물질은 ‘커피콩’이었다. 커피콩을 에너지원으로, 구수한 아로마를 퍼뜨리며 브라질 전역을 누비고 다니는 증기기관차······. 이 한 장의 사진 앞에서 잠시 생각에 잠긴 이유는 옛날(‘옛날’이라고 말은 했지만, 불과 400여 년 전의 일이다)에 이슬람 세계에 홀연히 나타난 카와가 『꾸란』이 먹을 수 없다고 금지한 석탄인가 아닌가 하는 혐의를 받은 역사적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커피콩이 석탄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논쟁은 왜 필요했을까? 카와라는 새롭고 독특한 음료가 이슬람 세계에서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해,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커피가 세계교역의 대표 상품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불가피한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400년 지난 시점에 전 세계가 커피를 일상적으로 마시는 시대가 된 상황에서 커피의 ‘순환’을 책임지는 운전자이자 심장격인 브라질에서 ‘커피는 석탄이다’ 하고 선명한 사진과 함께 선언해버린 셈이었다.


저자 : 우스이 류이치로(うすい りゅういちろう, 臼井 隆一郞)


도쿄대학 명예교수. 1946년 일본 시즈오카 현에서 태어났다. 1972년 도쿄교육대학 독일문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 동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니가타대학 교양부 조교수를 지냈으며, 지금은 도쿄대학 교양학부(종합문화연구과 언어정보과학 전공) 교수, 테이쿄대학 외국어학부 교수를 지낸 후 2014년에 퇴임했다. 지은 책에 『네티 라드바니에서 안나 제거스로』『바하오펜론집성』『빵과 와인이 돌고 신화가 돌고』『말라버린 나무의 언어』『기억과 기록』『고해정토론』『카를 슈미트와 현대』『아유슈비츠의 커피』등이 있다.


역자 : 김수경


중앙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전문 에이전트로 근무하다 지금은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공저로『잘나가는 회사는 왜 나를 선택했나』가 있고, 옮긴 책에 『커피가 돌고 세계사가 돌고』『기획서는 한 줄』『청춘이란』『마두금 이야기』『조금 다를 뿐이야』『여자 나이 50』『듣기: 직원의 능력을 배가시키는 소통의 기술』『준비된 습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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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보다 잘 사는 사람
법상 지음 / 마음의숲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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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단편소설집을 낸 적이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란 제목이다. 톨스토이는 본래 자기완성을 목표로 삼아 '교양 소설'의 주인공처럼 계속 성장하기를 꿈꾸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십 대 후반, 그는 자신의 육신이 성장이 아닌 '쇠락과 고통과 피할 길 없는 소멸'로 향하고 있음을 문득 자각한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전투에서의 수많은 죽음을 목도했던 그에게 '죽음'은 막연한 관찰 대상이 아니라, 자신을 삼키려 다가오는 실존적 공포가 되었다. 1875년, 마흔일곱의 톨스토이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죽음 외에는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라고 고백한다. 성공한 대문호이자 행복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그가 마주한 것은 인생이란 무의미하다는 ‘심연’ 그 자체였고 급기야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기에 이른다.

톨스토이는 이 무렵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 재산 제도에 비판을 가하고 술과 담배를 끊은 뒤 손수 밭일을 하며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했다고 한다. 토지 대금을 내지 못해 몰락하는 농민들을 돕고 대흉년에 무료 급식소를 세웠다. 뿐만 아니라 황제 암살범의 처형을 막기 위한 탄원 활동을 벌이는 등 귀족적인 삶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에 헌신한다. 민중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민담 22편을 썼는데 그중에서도 이 책에 수록된 「인간에게 많은 땅이 필요한가」는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가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이야기”로 꼽기도 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담긴 '작은 이야기'들은 톨스토이가 그 지독한 절망의 끝에서 스스로 찾아낸, 길 잃은 이들을 위한 '삶의 안내서'다.

톨스토이(1828~1910)가 살던 무렵 러시아 제국은 유럽에서 가장 낙후한 나라 중의 한 나라였다. 유럽의 수많은 국가들이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고 이른바 '민주주의' 제도를 착실히 쌓아갈 때 러시아 제국은 봉건 시대의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농민보다 더 많은 숫자가 농노의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러시아 제국은 공산사회주의에 의해 무너진다.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에 의한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선 것이다.(1917)



오늘을 사는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독자의 주변인들을 보면 무척 바쁘다. 일주일 내내 돈 버느라 거의 자유시간을 누리지 못한다. 더 많이 벌고, 더 높이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달리고 있는 것이다. 열심히 일해서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삶의 행복일까? 하지만 현인들은 물질적 성공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읽어보면 실제로 많은 재벌들은 실로 초인적인 힘으로 돈 버는 데 집중했다. 돈을 많이 버는 일은 행복한 삶과 직결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성공하기 위해서 앞뒤 주변은 돌아보지 않은 채 앞으로 내달리기에 숨쉴 틈조차 없을 정도다. 물론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 그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어쩌면 행복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살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도 않다. 독자도 마찬가지다. 

허무와 불안을 안고 바쁘게 달려오면서도 우리는 정작 ‘잘 사는 법’을 잊고 살아간다. 이 책 『부자보다 잘 사는 사람』은 법상 스님이 우리 삶을 돌아보고, 마음을 비우며 충만하게 사는 길을 다정하지만 단호하게 안내하고 있다.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는 작은 실천, 삶 속에서 진정한 풍요를 발견하는 방법을 전하며, 독자에게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잘 사는 길’을 제시한다. 여담이지만 '잘 사는'이라고 적혀 있는데 '잘사는'이라고 붙여써야 맞을 것 같다. 이유는 '잘살다'가 이미 사회에서 '잘생기다'처럼 관용어로 붙여써서 한 단어로 된 지 오래기 때문이다. 그러나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저자의 뜻을 100% 파악했다고 독자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경제대국이라 할 만큼 상당히 소득이 높은 사회가 됐다. 불과 30~40년 전만 하더라도 개발도상국(구 후진국)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선진국이라고 했다. OECD 가입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이를 위해 해외 관광 자유화도 실시됐다. 예전 1인 5,000달러 소지만 가능했지만 이를 1만 달러로 올린다 했다. 너도 나도 생전에 못 가볼 것 같았던 해외 여행 붐이 일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서 뭔가 달라지나보다 했다. 그러나 너무 많이 써버렸는지 외환보유고가 없어 외국에서 돈을 빌려다 국가부도 상태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 실제 많은 돈을 빌리고 다시 금세 갚아나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기업이 도산하면서 실업자도 엄청나게 늘었다. 신문에는 연인 비관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풍조가 늘었다고 보도한다. 그러나 정부가 바뀌고 국민들이 힘을 모아 어찌어찌 빌린 돈을 갚고 드디어 다시 시작하는 듯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우리 잘못이 아닌 외국 때문에 금융위기가 또 찾아왔다. 선진국이란 말은 들어간 지 오래다. 한 번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젠 국민들의 의식이 조금씩 바뀐 것 같다. 더욱이 IMF 때보다 일자리마저 없는 상태는 아니었다. 또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많은 기업들이 도산한 것은 마찬가지다. 

일자리를 잃지 않은 사람은 더 돈을 벌려고 더 달렸다.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자식 교육에는 다시 열풍이 불었다. 예전처럼 많은 자녀가 없어서일까? 사교육은 더욱 극심해져 갔다. 실제로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학교 입학생을 보면 대부분이 넉넉히 잘사는 집안이었다. 사교육에 부채질하는 격이었다. 

밀레니엄 세대는 과거 어려웠던 시절 이야기를 하면 믿지 않았다. 설령 믿는다 해도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흙수저론'이 등장했다. '3포', '5포'가 나오더니 곧바로 출산율 세계 최저 수준이라는 말이 나왔다. 왜 사회가 이렇게 흘러가지? 불만을 말하지만 정작 어디다 대고 말할 것인가. 부의 대물림이나 가난의 대물림 같은 말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극심해졌다는 말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양극화가 점점 심해진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직장에 다니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본캐' '부캐' 등에 이어 'N개의 일'을 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한 번 들어간 직장이 정년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직업을 여러 개 가져서 대비한다는 의미에다 당장의 수입도 많아서다. 그러나 얼마나 힘들지를 생각하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월급만으로는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는커녕, 사대문 안의 소형 아파트조차 쉽지 않다. 대신 주식과 비트코인,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며 고위험·고수익 전략으로 일확천금을 노린다. 하지만 ‘한탕의 꿈’은 점점 더 많은 청년들에게 빚이라는 그림자를 남기고 있다. 투자 실패로 빚을 갚지 못해 채무조정을 신청한 이들 중 2030 세대가 전체 신청자의 51%를 차지한다는 보도도 나온다. ‘일확천금’을 노린 선택의 결과가 오히려 끝없는 빚더미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물질적 성공이 곧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부와 명예를 좇으며 앞만 보고 달려온 끝에 남는 것은 허무와 불안뿐이다.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 많이 벌기 위해, 더 높이 오르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인다. 그러나 그렇게 바쁘게 달려온 끝에 문득 뒤돌아보면, 정작 ‘잘 사는 법’을 잊은 채 살아온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시대에 법상 스님은 정반대의 질문을 던진다.

“지금, 우리는 정말 잘 살고 있는가.” ‘잘사는’ 사람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어라!

부자가 되기 위해 애쓰는 이들에게 법상 스님은 말한다. “부자가 되는 길보다, 잘 사는 길을 배우라.” 돈과 물건이 아무리 많아도 마음이 가난할 수 있다. 외적인 성공을 거두었는데도 불안과 허무가 따라온다면, 우리는 어쩌면 잘못된 방향으로 달려온 것인지 모른다. 이제는 ‘잘 버는 법’보다 ‘잘 비우는 법’을 배워야 할 때다. 욕망을 내려놓을수록 삶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한층 더 부유해진다. 삶에는 누구에게나 가난한 때도 있고, 풍요로운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때마다 외부의 조건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중심을 지켜내는 일이다. 부자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 사는’ 것이다. 언제나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있는 것’이다. ‘무엇이 되고 싶은가’보다, ‘무엇으로 살고 있는가’가 더 의미 있는 질문이 아닐까?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잘 사는 특정한 '상태'가 아니다. 부자로 사는 것과 가난하게 사는 것 중에 무엇이 잘 사는 것일까? 그것은 겉모습일 뿐이다. 진정 잘 사는 것은 부자와 가난 같은 모양에 있지 않다. 그 겉모습이나 상황, 조건과는 상관없이 언제나 늘 잘 살 수 있다.(p.27)



이 책 『부자보다 잘 사는 사람』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가난한 부자〉, 2장 〈이 순간을 즐기는 부자〉, 3장 〈마음의 부자〉, 4장 〈자연을 가진 부자〉 등이다. 저자 법상은 말한다. "진정한 ‘대박’은 외적인 성공이 아니다. 진짜 부는, 바로 눈앞의 순간 속에서 깨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삶의 풍요를 느끼는 데 있다." 절에서 수행하는 스님이니까 '당연히 그런 말을 하겠지'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다음의 항목을 보고 해당하는 것이 있는지 체크해 볼 것을 권유한다.


①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더라도 ‘우주가 나를 돕고 있다’라고 외치고 있는가?

② 3번 이상 해봐도 안 될 때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가?

③ 월급 일부를 나눔을 위한 몫으로 정해두고 있는가?

④ 새로운 분야의 책을 읽거나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가?

⑤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공감하고 있는가?

⑥ 하루 중 아무 생각 없이 홀로 보내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가?


위 항목들은 저자가 제시하는 ‘잘 사는 사람’이 되기 위한 생활 수행 방법의 일부다. 이외에도 삶의 괴로움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보편적 지혜가 담겨 있어, 마음이 흔들리거나 고민이 깊을 때 일상 속에서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 법상 스님은 취업, 승진, 사랑과 이별, 시험 합격 등 현실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을 수행의 언어로 풀어낸다. 진정한 풍요는 성취의 크기에 있지 않다. 매 순간 현재를 얼마나 온전히 살아냈는가, 거기에 달려 있다. 가족과 함께 나누는 밥 한 끼, 차 한 잔 앞에서 서로의 눈을 마주하며 나누는 대화 속에서 삶의 깊이와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삶은 바로 눈앞의 현재 속에서 살아 있다. 이러한 순간들이야말로 비움과 수용, 깨어있음을 실천하는 길임을 보여준다.



이 책 『부자보다 잘 사는 사람』은 무소유 정신을 현대적 삶으로 확장한 안내서다. 물질적 부와 소유가 지배하는 시대에도, 매 순간 현재에 깨어있으면서 비움과 수용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따뜻하게 전한다. 저자는 이 책을 “첫 발심의 시절 심은 씨앗이 세월을 거쳐 서원의 꽃으로 피어난 결실”이라 표현한다. 20년 전의 글이 오늘, 우리 곁에 다시 돌아와 여전히 가장 절실한 메시지를 전한다. 누적 조회수 8,600만 회, 17만 명의 구독자가 선택한 유튜브 채널 〈법상스님의 목탁소리〉의 초석이 됐다. 이 책은 진정한 ‘부’가 무엇인지 성찰하게 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스스로 마음의 부를 돌아보고, 삶 속에서 진정한 풍요를 발견하게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누군가는 ‘아는 만큼 본다’라고 말했는데, 내 생각에는 아는 만큼 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만큼 그저 느끼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분별의 이 현실 세계에서는 아는 만큼 보는 것이 옳겠지만, ‘모르고 보는’ 지혜의 가능성도 있음을 때로는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아는 만큼 본다는 것은 지식대로 본다는 뜻이며 지식에 의지해서 알음알이대로 본다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p.237)


문제는 얼마를 버느냐가 아니고 얼마나 만족하고 사느냐에 있다. 내 행복의 지수는 그대로 내 만족의 지수이지 소유의 지수가 아니다. 소유를 줄이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더없는 행복의 비결이다.(p.290)


저자 : 법상(法相)


동국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불교를 공부하였으며, 조계종 원로의원 불심도문 큰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인연 닿는 도량에 여행하듯 머물며 수행과 전법에 매진하는 동시에, 군법사로서 이 땅 젊은 청년들의 상담자이자, 현재는 사단법인 대원회 상주 대원정사와 해운대 목탁소리 주지로 있으며, 유튜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를 통해 17만여 구독자들의 마음공부를 이끌고 있다. 그는 마음공부를 통해 행복해지고자 하는 이들에게 보다 쉽고 실천적인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하였으며, 그가 쓴 진지한 깨침의 글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0년, 그의 글을 읽고 뜻을 모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목탁소리’를 만들었다. 이후 ‘목탁소리’는 종교와 계층을 초월하여 마음을 맑게 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고향과 같은 귀의처로서 불교와 명상 분야의 대표적인 웹사이트가 되었다. 특히 매주 실시간으로 열리는 해운대 목탁소리 토요법회와 상주 대원정사 일요법회는 매회 1,000명이 넘는 도반들이 온오프라인 법회에 동참하고 있다.

저서로는 《눈부신 오늘》 《육조단경과 마음공부》 《반야심경과 선공부》 《금강경과 마음공부》 《수심결과 마음공부》 《365일 눈부신 하루를 시작하는 한마디》 《히말라야, 내가 작아지는 즐거움》 《날마다 해피엔딩》 《부자수업》 《청춘을 위한 부자수업 필사노트─나는 그저 내 길을 가면 된다》 등이 있다. 2005년에는 ‘한국문인’에서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유튜브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네이버 밴드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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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와 융, 영혼의 편지 -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두 거장의 마지막 가르침
미구엘 세라노 지음, 박광자.이미선 옮김 / 생각지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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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미구엘 세라노는 문학의 거장 헤세, 심리학의 거인 융 등 두 영혼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면서 두 거장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와 깨달음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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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와 융, 영혼의 편지 -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두 거장의 마지막 가르침
미구엘 세라노 지음, 박광자.이미선 옮김 / 생각지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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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헤르만 헤세는 문학의 거장으로, 칼 융은 심리학의 거인으로 우리에게 이미 각인된 분들이다. 그들의 삶은 모르더라도 그들의 책과 메시지만으로도 우리와 인류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 책 『헤세와 융, 영혼의 편지』는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두 거장의 마지막 가르침」이란 부제가 달려 있다. 이로써 저자 미구엘 세라노가 두 거장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했던 것으로 알 수 있다. 미구엘 세라노는 〈서문〉에서 "두 신비스러운 존재들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엄청난 축복이었다"고 전제한 뒤 "가르침도 받고, 친교도 이어오면서 몬타뇰라의 헤세의 거처에서 10년 동안 지내는 행운도 누렸다."고 말한다.(p.5) 저자는 또 칼 융과의 첫 만남에 대해 "융과 나의 관계에서 인도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졌는지는 말로 다 할 수 없다"며 "그곳에서 얻은 체험이 아니었다면 나는 결코 이 위대한 인물의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라고 언급한다.(p.105)

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20세기 인류 정신의 지형을 바꾼 두 사람, 헤르만 헤세와 칼 구스타프 융. 문학과 심리학이라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지만, 두 사람의 시선이 향한 곳은 언제나 같았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내면, 그리고 영혼의 심연이었다. 『헤세와 융, 영혼의 편지』는 이 두 거장이 삶의 말년에 나눈 마지막 대화이자 인간 존재의 근원과 삶의 의미를 향한 궁극의 사유를 담은 책이다.

칠레 출신 작가이자 외교관인 미구엘 세라노는 젊은 시절 헤세의 『데미안』과 융의 저서들에 깊은 감명을 받아 두 거장을 ‘내면의 스승’으로 삼았다. 이후 인도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던 그는 오랜 사색 끝에 두 스승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마침내 스위스의 외딴 산자락에서 외부와의 접촉을 철저히 단절한 채 내면의 완성을 추구하던 노년의 헤세와 융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세 사람은 이런 만남을 ‘동시성의 작용’이라 부르며 깊은 대화를 나눴다. 특히 헤세와 융은 세라노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으며 인간과 세계에 대한 자신들의 깨달음을 담담히 풀어냈다. 세라노가 이 모든 대화를 꼼꼼히 기록한 이 책은 그들의 정신적 교류의 정수를 담고 있다.



『데미안 프로젝트』의 저자 정여울은 이렇게 말한다."헤세와 융은 '영혼의 쌍둥이'처럼 닮은 운명을 가졌다. 수많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이끄는 삶, 인류의 지혜를 한 차원 높이 끌어올리는 삶, 글쓰기의 힘으로 인류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다주는 지적 모험, 그들은 그렇게 닮은 운명으로써 서로의 친구가 되었다. 이 책(『헤세와 융, 영혼의 편지』)은 헤세와 융을 읽고 사랑하고 마침내 두 사람을 만남으로써 자신의 삶을 바꾼 작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 두 사람과 나란히 아름다운 산책길을 걸으며 인간의 마음이 해낼 수 있는 그 모든 기적 같은 치유와 창조의 힘을 발견하게 된다.”(뒷 표지 중에서) 

이 책 『헤세와 융, 영혼의 편지』는 사실 1965년 처음 세상에 선였다. 이후 영어 개정판과 독일어판을 비롯해 프랑스, 이탈리아, 튀르키예, 포르투칼 등 다양한 국가에서 번역되며 오늘날까지 꾸준히 읽히는 인문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헤세와 융은 BTS의 음악, 앤디 워홀의 그림, 파울로 코엘료의 문학,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두 거장의 작품과 이론에 대한 생각을 그들의 목소리로 직접 듣는 것 또한 이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다.

저자 세라노는 스페인에서 한 두 번째 강연(「미국에서의 헤세의 변형」) 중 헤세에 대한 세상의 온갖 비난에 대해 단호하게 반박하는 메시지를 내었고, 이는 헤세의 책과 삶을 사랑하고 존경했을 뿐만 아니라 깊은 친교-헤세는 1877년 출생이고 세라노는 1917년 생으로 무려 40살의 차이가 있지만-에서 우러나오는 영혼의 깊은 만남을 이루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독자는 추측한다. 그가 두 번째 강연에서 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헤세의 심오한 사상이 왜곡되어 그가 일종의 보헤미안, 히피로 알려지고 약물 문화, 원칙과 방법을 무시하는 평화주의 방랑자(헤세가 평화주의자라는 말은 맞는다), 더 나아가 양성애자로 왜곡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내가 강연에서 무엇보다도 강조한 것은 헤세가 독일 낭만주의 문학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과 노발리스, 휠덜린,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그리고 헤세가 경탄애 마지않은 니체와의 연결 고리를 무시하고는 헤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p.9)



헤세와 융, 두 사람은 1870년대에 태어나 1960년대에 세상을 떠났다. 둘은 1917년, 단 한 번 짧은 만남을 가졌는데 이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고 한다. 당시 30대였던 헤세는 심각한 정신적 방황을 겪고 있었고, 융의 제자이자 주치의였던 요제프 베른하르트 랑 박사의 주선으로 극비리에 융을 만나게 된다. 이 짧은 만남은 헤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헤세는 융의 정신분석 이론에 깊이 공감하며 치료에 전념했고, 마침내 그의 정신적 방황은 끝이 난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그의 대표작 『데미안』과 『싯다르타』였다. 헤세는 소설 속에서 분열된 자아와 고독을 응시하며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길’을 탐구했고, 융은 인간의 무의식과 그림자를 분석하며 ‘내적 화해’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문학과 심리학이라는 서로 다른 언어로 인간과 세계를 해석했지만, 결국 그들이 도달한 결론은 같았다. 인간은 누구나 상처를 입는다는 것. 그러나 그 상처 속에서 다시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

두 거장의 통찰은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삶의 고통을 통과하며 얻은 체험의 산물이었다. 헤세는 말한다. “각성한 인간에게는 단 하나의 의무만이 있다.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아가는 것이다.” 융 또한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본성에 따라 살아야만 한다. 그리고 자기 인식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고, 그런 뒤에는 이미 얻은 자신에 대한 진리를 따르며 살아야 한다.” 이렇듯 두 사람은 자기다움으로 깊어지는 삶을 궁극의 목적지로 여겼다. 『헤세와 융, 영혼의 편지』는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독자에게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법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저자는 오늘날 서양의 기독교인이 직면한 문제는 어떻게 개성을 잃지 않고 빛과 그림자, 신과 악마의 공존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저자는 '아브락사스'라는 이름을 『데미안』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신(神)인 동시에 악마인 존재를 아브락사스라고 한다. 헤세가 어떤 표현을 했는지 저자는 인용하고 있다.



"불을 들여다보고 구름을 바라보게. 예감이 떠오르고 자네 영혼 속에서 목소리들이 말하기 시작하면 곧바로 자신을 그 목소리에 맡기고 물어보지는 말게. 그것이 선생님이나 아버지 혹은 그 어떤 하나님의 마음에 들까 하고 묻지 말게. 그런 질문이 자신을 망치는 거야. 그러다가 길 위에 올라서고 화석이 되는 거야. 이봐, 싱클레어, 우리의 신은 아브락사스야. 그는 신이면서 사탄이지."

저자는 데미안의 말에 기대어 오늘날 기독교인과 일반적인 서구 세계는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데, 주어진 선택지는 별로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에서 보았던 어떤 묵시록적 재앙도, 인간을 경시하여 우리 삶의 수준을 끝없이 하락시킨 동양의 비인간화의 길도 원치 않는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가능성은 아마도 아브락사스, 즉 우리가 외면과 내면, 우리 안의 빛과 깊은 그림자를 우리의 영혼에 투사하는 것, 두 세계의 결합이 순수한 원형(archetype)과 만나게 되리라는 희망에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1965년 처음 스페인어로 출간된 이 책은 이듬해 영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97년 영어 개정판과 독일어판을 비롯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튀르키예어, 포르투갈어, 한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며 꾸준히 사랑받았다. 단순히 한 시대의 사상적 산물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까지 읽히는 인문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이 책이 다루는 주제가 시대와 국경, 문화를 초월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나를 완성시키는가.” 이 질문은 어느 시대, 어느 세대의 인간에게나 변하지 않는 인생의 화두이자 영혼의 과제다. 그래서 BTS를 비롯해 앤디 워홀, 파울로 코엘료, 헨리 밀러, 잭슨 폴록, 데이비드 핀처 등 수많은 작가와 아티스트들이 헤세와 융의 사유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확장해왔다.



세라노가 두 거장과 나눈 대화에는 세계와 사랑, 죽음, 집단무의식, 그리고 자기 완성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그들의 대화는 그 깊이만큼이나 쉽게 다가가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과 세계를 관조하는 두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독자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되고, 마치 영혼이 정화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이 책에는 지금까지 공개된 적 없는 희귀 자료들이 풍성하게 수록되어 있다. 헤세와 융의 친필 편지는 물론, 헤세가 1922년 아내를 위해 쓴 동화 『픽토르의 변신』과 그가 직접 그린 수채화 삽화도 함께 실려 있다. 무엇보다 헤세와 융이 쓴 작품을 통해서만 그들을 만나왔던 우리에게, 두 거장이 직접 자신의 작품과 이론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 그리고 두 거장의 말년의 모습을 생생히 엿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특별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현대인은 눈부신 기술 발전과 물질문명의 풍요 속에서 살아가지만, 역설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불안과 신경증, 고독과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다. 기계를 통해 끊임없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과는 단절된 채 살아가는 시대. 효율과 편의, 속도와 생산성이 인간의 가치를 대신하는 오늘, 우리는 점점 ‘영혼의 언어’를 잃어가고 있다. 그렇기에 헤세와 융, 세라노가 나눈 대화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주는지도 모른다. 이나미 한국융연구원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에는 신중하게 읽고 배울 수 있는 미덕들이 가득하다. 특히 기계와 물질지상주의, 효율성과 편의를 강조하고 보이지 않는 영혼의 가치를 외면하는 21세기의 성정을 치유해줄 수 있는 좋은 참고서다.” 마찰 없이 세상에 편입되고 물질적 풍요와 편리만을 좇는 것이 시대의 과제가 되어버린 지금, 『헤세와 융, 영혼의 편지』는 우리 내면의 가치를 일깨우는 값진 사유의 등불이 되어줄 것이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본성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기대하지 않은 것의 중요성도 인정하면서 혼자 가야 합니다. 그렇지만 사랑 없이는, 심지어 연금술적 과정 없이는 그 어떤 것도 가능하지 않습니다."(p.126) - 칼 융과 「두 번째 만남」 중에서



극도의 이기주의에 빠진 누군가가 에베레스트산의 고독 속으로 물러난다면, 그런 사람은 자신의 고귀한 거주지의 안락함은 잘 알겠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즉 이전에 알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서는 어떤 새로운 것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그런 상황입니다. 인간은 자아성찰을 할 수 있는 동물이지만, 마찬가지로 의식을 가진 다른 종의 동물들과 자신을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은하계의 작은 행성에 추방된 최고의 동물입니다. 그가 자신을 모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p.171) - 「칼 융의 편지」 중에서


저자 : 미구엘 세라노(Miguel Serrano)


칠레 출신의 작가, 외교관, 정치가로 독일과 스위스를 여행했고, 스위스에서 말년의 헤세와 융을 만났다. 이 만남은 수차례 계속되었고 1965년에 두 인물과의 만남을 기록한 『헤세와 융의 비밀 클럽El Circulo Hermetico de Hermann Hesse a C. G. Jung』(본서)을 출간했다. 스페인어로 쓰인 이 책은 다음 해에 영어로 번역되어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1997년에는 영어 개정판과 독일어판이 출간되었다. 세라노는 1953년부터 1963년까지 인도에 외교관으로 체류하는 동안 힌두교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그 후에는 유고슬라비아와 오스트리아에서 대사로 재직했다. 1970년 칠레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잠시 공직에서 물러났지만 1973년에 다시 정치에 복귀했다.

대표적인 저술로『빙원으로의 초대Quien ilama en los Hielos』(1957),『시바 여왕의 방문들Las visitas de la Reina de Saba』(1960),『낙원의 뱀La Serpiente del Paraiso』(1963),『노스, 부활의 책Nos, libo de la Resureccion』(1980) 등이 있다.


역자 : 박광자


충남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이며, 한국헤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괴테의 소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독일영화 20』, 『독일 여성작가 연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벽』(마를렌 하우스호퍼),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산책』(로베르트 발저), 『얽힘 설킴』(테오도어 폰타네), 『프라하로 여행하는 모차르트』, 『그랜드 호텔』, 『싯다르타』, 『시와 진실』,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등이 있다.


역자 : 이미선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대학교에서 독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는 『1세대 목사 가정 이야기』, 『루터: 신의 제국을 무너트린 종교개혁의 정치학』, 『소송』, 『수레바퀴 아래서』, 『세 편의 동화』, 『유대인의 너도밤나무』, 『존넨알레』, 『별을 향해 가는 개』, 『불의 비밀』, 『막스 플랑크 평전』, 『불순종의 아이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여행의 기술』, 『누구나 아는 루터, 아무도 모르는 루터』, 『유대인의 너도밤나무』, 『멜란히톤과 그의 시대』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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