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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 ㅣ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우스이 류이치로 지음, 김수경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5년 11월
평점 :

<북유럽 서평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독자는 커피가 아랍산이란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지만 세계사를 바꾸는 엄청난 힘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구체적으로 듣지 못했다. 중동 '예맨'에 커피 주산지이고 거대 무역항이로 발전한 '모카'라는 도시가 있어서 쉽게 알 수 있는 일이고, 우리 커피 제조판매사인 '○○'의 '아라비카'란 명칭이 중동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래서 커피의 원산지는 아랍이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커피 주산지가 세계 무역항으로 발달하고, 특히 유럽 쪽에서 커피를 처음 접하고 확산시킨 사람들은 유럽인이었다.
키 150센티미터의 커피나무 한 그루가 프랑스에 들어온 것은 ‘루이 14세' 때였다고 한다. 당시 세계 무역의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1714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장이 루이 14세에게 바친 선물이었다. 책에 따르면 ‘루이 14세의 커피나무’에서 가능성을 발견한 이는 프랑스령 마르티니크섬 근무 경험이 있는 해군대위 출신 가브리엘 드 클리외였다. 어렵게 커피나무 한 그루를 구한 그는 온갖 고난을 겪으며 그 나무를 마르티니크로 가져가 심게 했고, 놀라운 생산량을 기록하며 몇십 년 후 전 세계 커피산업과 커피무역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또 나폴레옹은 커피를 군대에 맨 처음 보급한 인물이다. 그는 왜 자신의 군대에 커피를 보급하려 애썼을까? 영양분이 거의 없는데도 왠지 힘이 나게 하는 ‘검은 음료’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나폴레옹은 군대에 커피를 보급하기 위해 여러 분야의 발명에 상금을 걸고 산업혁명을 독려했다고 역사에는 서술되었다. 직물기계 개량, 인디고 대체용 색소 개발, 새로운 종류의 설탕 제조 등의 혁신은 그 열매인 셈이었다. ‘영양분이 거의 없는데도 왠지 힘이 나게 하는 음료’ 커피는 나폴레옹의 야망과 뒤얽히며 프랑스 산업 전반을 비약적으로 성장시켰으며, 18세기 이후 유럽과 전 세계 경제를 송두리째 뒤바꿔놓는 ‘산업혁명’의 근간이 되었다.

그렇다면 커피는 어떻게 세계사를 바꿨을까? 이 책 『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의 저자 우스이 류이치로는 "커피와 커피하우스가 없었다면 프랑스대혁명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인류의 역사를 바꾼 커피의 영향력을 강조한다. 저자는 「커피와 권력이 서로를 갈망하고 이용하며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다」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프랑스에서의 커피 선호와 영국으로 확산 등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프랑스령 서인도제도에서 산출되는 막대한 양의 커피는 이슬람 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전 세계 커피산업과 커피무역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프랑스는 커피문화와 커피산업의 판도를 바꿔놓았다고 저자는 밝힌다. 프랑스에서 처음 시작했지만, 이에 앞서 아랍에선 커피가 상당히 유행하는 중이었다고 한다. 즉 대항해 시대에 확보한 프랑스령의 많은 지역에서 막대한 양의 커피가 들어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운송하는 무역업에는 당시 무역 상권을 장악한 네덜란드라에도 엄청난 부를 가져다 준 셈이다. 물론 영국에도 커피 문화가 확산되었다. 영국은 특히 런던에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연 지 30여 년 만인 1683년에 3,000여곳, 1714년에는 8.000여곳으로 늘었다고 하니 확산 속도도 엄청났던 모양이다.
영국에서 커피하우스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커피 산업이 급성장하던 17세기 후반이다. 이후 커피하우스의 열기는 홍차와 티하우스로 옮겨 붙었다. 영국의 커피하우스가 사회적 기능을 다했다는 말이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애초에 영국 커피하우스가 여성을 철저히 배제하며 탄생하고 성장했기에 결국 '여성 청원' 등 거센 반발에 부닥치며 직격탄을 맞아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홍차는 나중에 중국과의 아편전쟁으로까지 비화하며 세계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꿔놓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커피는 원래 이슬람 수피교도가 ‘욕망을 억제하고 수행에 정진하기 위해’ 즐겨 마시던 음료였다. 아마 각성 효과 때문인 것 같다. 그 독특한 ‘검은 음료’는 역설적이게도 17세기 유럽 상업자본가와 정치권력자의 들끓는 욕망을 자극하며 유럽과 전 세계 문화를 송두리째 바꿔놓기 시작했다.

이 책은 모두 8장(章)으로 나뉘어져 있다. 1장 〈이슬람 세계를 지배한 ‘검은 음료’ 커피〉, 2장 〈커피의 상업적 가치를 간파하고 이익을 극대화한 이슬람과 유럽 상인〉, 3장 〈영광의 자리를 홍차에게 빼앗긴 영국 커피〉, 4장 〈프랑스혁명의 인큐베이터가 된 커피와 카페〉, 5장 〈커피를 원하는 권력, 권력을 원하는 커피〉, 6장 〈19세기 후반, 식민지정책을 통한 동아프리카 커피 플랜테이션에 광적으로 몰입한 독일〉, 7장 〈바이마르공화국의 숨통을 끊어놓은 브라질의 ‘커피 대량 폐기 사건’〉, 8장 〈자국의 식민지이자 커피 생산지인 나라에 ‘극단적 모노컬처’를 강요하는 유럽 강대국〉 등이다.
각 장의 제목만 보더라도 커피는 엄청난 힘으로 유럽 사회를 뒤흔들고, 판도를 바꾸는 데 기여했다. 당시 기울어가는 청나라의 운명에 일침을 가한 전쟁이 아편전쟁이었다면, 커피 때문이 아니라 '차(茶)'의 대금을 은(銀)으로만 받던 청나라에, 유럽의 은이 고갈될 상태에 이르자 영국은 대금을 청나라에 아편을 팔아 챙긴 자금으로 치렀다. 그러다 1840년 들어 청 조정에서 이를 억제하는 정책을 펴면서 영국이 몰래 판 아편을 바다에 모두 수장시킨 사건이 벌어진다. 아편 수출이 막히자 영국이 택한 방법은 이른바 '아편전쟁'이다.
아랍 커피 주 수입국이던 영국에서 커피가 홍차에게 밀려난 원인이 여성을 배제했기 때문이라고 앞선 설명에서 지적한 바 있다. 아라비아의 커피는 바다 건너 영국에 ‘커피하우스’를 통해 전파되었다. 영국 런던에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연 때는 1652년이었다. 그 역사적인 커피하우스의 문을 활짝 연 이는 영국인이 아닌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출신의 파스카 로제였다. 그는 레반트를 무대로 활약하던 상인 대니얼 에드워즈의 시종이었는데, 매일 아침 주인을 위해 커피를 끓이던 습관이 커피하우스 창업으로 이어진 셈이었다. 그렇게 출발한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한동안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어느 시점에 이르러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커피하우스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커피산업이 급성장하던 17세기 후반의 상황이다.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하기에 적합한 커피하우스는 영국이 맞닥뜨린 당대의 시대 상황·니즈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고, 커피산업과 커피문화의 급성장으로 이어지며 시민의 일상 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이 책의 6장 〈19세기 후반, 식민지정책을 통한 동아프리카 커피 플랜테이션에 광적으로 몰입한 독일〉에서 저자는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독일혁명의 트리거를 당긴 것이 커피였다"고 전제한 뒤, 「프리드리히 대왕이 의사들에게 명령해 ‘커피에 독성분이 있다’는 거짓 소문을 내게 한 까닭」, 「프로이센 시대 독일인이 반나폴레옹 해방전쟁에 나선 이유는 ‘진짜 커피’에 대한 강렬한 욕망 때문」이었다고 지적한다.
책에 따르면 프리드리히 대왕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은 모순된 면이 많으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묘한 남자였다. 우선 그는 계몽된 전제군주의 정체성과 위상을 몸소 구현하며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냈다. 또 그는 플루트 곡집을 후세에 남기기도 했고, 여자와의 ‘전쟁’에 질린 남자의 슬픔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포츠담에 지은 상수시 궁전에서 잘 때는 늘 애견하고만 동침했다. 이런 타입의 남자가 커피를 마시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고 보면 그가 마시는 커피도 얼마나 모순으로 가득한가. 그는 커피에 샴페인을 넣어 같이 끓인 뒤 마지막에 후춧가루를 뿌려 마셨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계몽적 이성으로는 왜 위대한 프로이센의 국민이 이런 음료를 마시는지, 그리고 결국 매년 70만 탈러의 막대한 자금이 네덜란드로 빠져나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에 그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의사들에게 명해 커피에 독성분이 있다고 소문을 내게 한 것이다. 효과가 있었을까? 아니, 효과는 제로에 가까웠다. 이유가 뭘까? 일반 서민들이 ‘커피가 무서워서 감자를 먹으랴’ 하는 심정으로 그 조치에 강력히 반발했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감자가 독성식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감자가 지닌 몇 가지 탁월한 장점(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재배하기 쉽고 소출량이 많은 데다 쌀·밀 등의 주식 대체용으로도 손색없다는 점 등)도 간파하고 있었기에 장차 독일의 고질적 식량난을 해결해줄 미래형 주식으로 만들기 위해 감자 재배를 장려했다. 그렇다고 해서 프리드리히 대왕이 감자를 무척 좋아해서 그런 정책을 추진한 것은 아니었다.

커피를 광적으로 좋아한 독일은 드디어 커피를 수입을 위해 본격적으로 식민지 개발에 나서서 성공했다. 아프리카와 브라질 유럽 나라들을 통해 수입하던 커피를 직접 식민지 등을 통해 재배하고 사들여 왔으니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을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거센 파도에 맞닥뜨려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성과는 산산이 흩어졌다. 특히 원자재를 다른 나라에 의존하는 현대산업국가는 장기화된 전쟁을 수행하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독일이 일으킨 20세기 최초의 세계대전은 독일 입장에서 최악의 전쟁이 되었다. 영국·프랑스·러시아의 삼국협상 측은 미국을 비롯한 여러 동맹국의 도움으로 각종 원자재를 조달할 수 있었으나 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의 삼국동맹 측은 원자재 공급이 거의 끊긴 상태에서 전쟁을 치러야 했다.
전쟁을 일으켰을 당시 전력적인 면에서 월등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전쟁이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저자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전쟁 발발하던 해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전쟁은 의외로 길게 연장되었으며 독일이 광적으로 쌓아올린 식민지 등의 커피 수입이 불가능해졌다. 커피의 경우 브라질 마저 미국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브라질에서 독일로 가던 커피 폐기가 전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엄청난 양의 커피가 소각되거나 배의 갑판 위에서 바다로 버려졌다. 커피대국 브라질의 파탄은 결코 한 국가의 파탄으로 끝나지 않았다. 식민지로 출발한 브라질은 노예무역과 이민 등을 통해 집요하게 커피 공급기지로의 변신을 강요당해왔다. 그리고 1929년 이후 대공황 시기에는 유럽 근대 시민사회에 ‘검은 혈액’을 흐르게 한 순환구조에 치명타를 입은 것이었다. 브라질의 커피 폐기 뉴스는 그 처참한 광경을 찍은 수많은 사진과 함께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독일의 각 신문도 브라질의 커피 폐기 뉴스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중 한 장의 사진이 있다. 1932년 3월에 발행된 한 잡지에 게재된 것으로, 브라질의 커피 폐기를 전하는 보도사진이다.
사진에는 연기를 내뿜으며 질주하는 증기기관차 위에 네 명의 남자가 서 있다. 두 명은 어이없다는 듯 엷은 웃음을 띠고 있고, 나머지 두 명은 얼굴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다. 한 사람이 석탄을 갑으로 퍼서 기관실로 보낸다.

아니, 자세히 보니 석탄으로 보였던 그 물질은 ‘커피콩’이었다. 커피콩을 에너지원으로, 구수한 아로마를 퍼뜨리며 브라질 전역을 누비고 다니는 증기기관차······. 이 한 장의 사진 앞에서 잠시 생각에 잠긴 이유는 옛날(‘옛날’이라고 말은 했지만, 불과 400여 년 전의 일이다)에 이슬람 세계에 홀연히 나타난 카와가 『꾸란』이 먹을 수 없다고 금지한 석탄인가 아닌가 하는 혐의를 받은 역사적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커피콩이 석탄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논쟁은 왜 필요했을까? 카와라는 새롭고 독특한 음료가 이슬람 세계에서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해,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커피가 세계교역의 대표 상품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불가피한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400년 지난 시점에 전 세계가 커피를 일상적으로 마시는 시대가 된 상황에서 커피의 ‘순환’을 책임지는 운전자이자 심장격인 브라질에서 ‘커피는 석탄이다’ 하고 선명한 사진과 함께 선언해버린 셈이었다.
저자 : 우스이 류이치로(うすい りゅういちろう, 臼井 隆一郞)
도쿄대학 명예교수. 1946년 일본 시즈오카 현에서 태어났다. 1972년 도쿄교육대학 독일문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 동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니가타대학 교양부 조교수를 지냈으며, 지금은 도쿄대학 교양학부(종합문화연구과 언어정보과학 전공) 교수, 테이쿄대학 외국어학부 교수를 지낸 후 2014년에 퇴임했다. 지은 책에 『네티 라드바니에서 안나 제거스로』『바하오펜론집성』『빵과 와인이 돌고 신화가 돌고』『말라버린 나무의 언어』『기억과 기록』『고해정토론』『카를 슈미트와 현대』『아유슈비츠의 커피』등이 있다.
역자 : 김수경
중앙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전문 에이전트로 근무하다 지금은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공저로『잘나가는 회사는 왜 나를 선택했나』가 있고, 옮긴 책에 『커피가 돌고 세계사가 돌고』『기획서는 한 줄』『청춘이란』『마두금 이야기』『조금 다를 뿐이야』『여자 나이 50』『듣기: 직원의 능력을 배가시키는 소통의 기술』『준비된 습관』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