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같이 살고 싶다
김미경 지음, 배성기 그림 / 열림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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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로 살다 시인으로 변신을 꾀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다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된다. 한 사람에게 이렇게 크고 많은 재주를 주는 분이 신(神)이라면 "신은 모든 인간을 사랑한다"는 말을 오늘부터 믿지 않을 것 같다. 피아니스트로서도 빼어난 실력으로 우리를 감동시키더니 이젠 시로써 감동을 주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됐다. 신에게 질투하려는 독자로서는 사실 오늘 피아니스트이자 시인을 만나게 된 것만으로도 기분이 유쾌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김미경의 첫 시집 출간이 기쁘기 그지 없다. 시인은 학창 시절 우연히 참가한 전국 백일장을 계기로 시를 써야 한다는 사명감에 평생을 사로잡혀 있었다고 하니 개인적으로는 오랜 숙원을 푼 셈이다. 그의 시엔 타고난 예술성에 보이지 않는 노력과 예술 사랑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리리라 쉽게 짐작한다.



이 시집 『꽃같이 살고 싶다』를 세상에 내놓으며 비로소 ‘시인’이 되었다는 말은 세속적인 표현이고, 늘 담고 있는 예술적 열정에 이끌렸을 것이다. 예술가의 눈에는 예술가만 보였는지 배우자 역시 화가이자 의사인 배성기 박사라 한다. 이 시집에 실린 아름다운 그림들이 그의 작품이라니 부럽기조차 하다. 김미경 시인은 적지 않은 세월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줄리어드 음대 출신으로 지난 1992년에 데뷔했다. 이후 30년을 대한민국의 피아니스트로 세계에서 널리 사랑받았다.

음악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을 무척 많이 들었을 것이다. 독자도 꽤 자주 들었고 지금도 그의 피아노 독주를 CD를 통해 가끔 감상한다. 곡에 따라 빠르고 변화무쌍한 곡에서의 그의 건반 두드림은 격렬하다 못해 무아지경에 이른 것처럼 느껴진다. 시인으로 첫 발을 내디딘 이 시집은 모두 3부로 이뤄졌다. 1부 「꽃같이 살고 싶다」, 2부 「한 단어로 쓰여진 편지」, 3부 「아름다운 동행」에 모두 61편의 시를 담았다.



팍팍한 삶 함께여서 고마운 이들과 함께 걷던 그 길을 다시 걸어보는 여정에서 이 시집의 한 부분은 시인의 강렬한 생의 의지와 함께 저물어가는 생의 끝을 바라보는 초연함을 담고 있다. 기쁨과 슬픔, 만남과 이별 “모두 나의 순간들”이라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스스로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겸허한 마음이 빛나는 시들이다.

백일장 참가 후 사십여 년이 지난 어느 여름날, 그녀는 가슴에 묻어두었던 불같은 떨림을 스멀스멀 쏟아냈고, 그렇게 하나둘 써 내려가기 시작한 문장들은 더 이상 멈출 도리가 없어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거기 있는 줄 몰랐던, 구석에서 날 바라보며 가슴을 시리게 하는” 작은 존재들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기울이기도 하고(「풀꽃」), “달빛인지 세상인지” 모를 내 안팎의 시련과 맞서면서 “늘 슬픔에 젖어 발밑은 눈물로 흥건”해도 철새와 영혼처럼 떠나지 못하고 “갈데없는” 존재들을 한 줌의 온기로 따스하게 끌어안기도 한다.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모인 그들의 모습은 마치 쓸쓸한 갈대밭, 텅 빈 새벽의 슬픔을 달래는 한 편의 노래처럼 읽힌다(「갈대의 고백」).



어쩌면 우리네 인생이란 가진 것을 잃고, 그것이 망가지는 것을 지켜보는 지난한 과정일지 모른다. 이러한 사실이 짐짓 우리를 실망시키고 좌절시킨다. 시인은 생(生)이 주는 시련에 절망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마저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더 높은 단계로 승화하려는 모습의 그녀의 시 속에는 담겨 있다.

기쁨이나 슬픔이나, 만남이나 이별이나 “모두 나의 순간들”이라고(「그 순간」), “눈물인지 땀인지 범벅이 되어” “눈부시게도 환한 미소로” “인생 그거 별거 아녀” “다 괜찮다네” 하고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다(「냉면과 계란 반쪽」). “잠기고 더 깊이 잠겨야 결국 헤어 나올 수 있”는 아픔, “아리고 더 아려야 결국 깨어 나올 수 있”는 슬픔, “쓸쓸하고 더 완벽히 쓸쓸해야 결국 걸어 나올 수 있”는 외로움(「물속의 돌」). 이토록 고통만이 범람하는 인생에서 김미경이 진정으로 희구하는 삶의 태도는 무엇일까.

훅 떨어지면

다시 일어나지 못함을

모르는 것처럼

살고 싶다

꽃같이 살고 싶다

- 「꽃같이 살고 싶다」 중에서





“가시로 가득한 우리네 인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살아나는 빨간 장미가 되게 하소서” “살아 숨 쉬는 동안 더 붉게 물들게 도와주소서”(「빨간 장미」) 하고 기도하는 강렬한 생의 의지는 대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김미경의 시는 꺼지지 않는 생의 불꽃을 드러내 보이는 동시에 연소되어가는 생에 초연한 태도를 보인다. “훅 떨어지면 다시 일어나지 못함을 모르는 것처럼” 계속해서 삶의 새로운 국면을 향해 나아가고 도전하면서도(「꽃같이 살고 싶다」), 산다는 것은 “무대 위의 조명을 아쉬워하지 않”고 “슬펐던 눈물 한 동이 바다에 떠나보내”며 “함께 걷던 그 길을 다시 걸어보는 것”(「산다는 건」)이라며 저물어가는 생의 끝을 담담히 응시하기도 한다. “아등바등 살았던 엊그제 그 땀을 닦아주는 내려가는 길”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음미하며(「내리막길」).



또한, 시인은 쓸쓸하고 쓰라린 인생을 함께하는 반려자와 동반자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다. 이러한 애정은 그녀로 하여 “어느 날 갑자기 땅에 널브러져도 누구에겐 위로가 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이타적 사랑을 실천하는 계기가 된다. “당신의 온기가 용기가” 되던 “그 길이 우리의 여정이 되었”노라고, “팍팍한 이 생 함께여서 고마운(「아름다운 동행」) 마음을 다른 존재들에게도 전하며 그 선한 영향력을 확산시키려 하는 것이다. “모두 가버린” 공간 혹은 시간에 홀로 남는다 해도 시인은 “슬퍼하지 않는다”. “떠나면 다시 돌아올 걸 알기에.”(「서울역」) 작별이란 새로운 시작의 동의어기도 하니까.

당신은

길목에

서 있었지요

그 길이

우리의 여정이 되었습니다

- 「아름다운 동행」 중에서



젊었을 때 팩팩거리던 성질은 다 죽어 이제는 뭘 봐도 이해가 될 것 같고 타오르기만 할 줄 알았던 열정은 알맞게 식어 이제 선선한 바람을 좋아하며 천천히 내려가는 길을 음미하고 있습니다. 아주 천천히 매일매일 감사하며 그동안의 고단함을 껴안으려 합니다. 그동안 나를 빛나게 비춰주고 있었던 가족들에게 이 시를 바칩니다.

- 김미경, 「시인의 말」 중에서

저자 : 김미경

서울대학교, 뉴욕 줄리어드 스쿨 음악대학에서 학사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탈리아 코모아카데미 부원장과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 FACULTY를 역임했다. 1992년 뉴욕 카네기홀 데뷔를 시작으로 여러 주요 국제무대에서 공연했다. 슈만 카니발, 이영조 작곡가의 KOREAN PIANO MUSIC 독주 등 다수의 음반을 발매했다. 국제 피아노콩쿠르 심사위원으로 가장 자주 초청받는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 현재 연천 국제 피아노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으며, MK INSTITUTE OF PIANO를 설립해 음악교육에 힘쓰고 있다.

그림 : 배성기

의학박사이자 산부인과 전문의. 서울, 베를린, 파리, 바르셀로나 등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고, 〈4인 남매展〉 〈예술과 의술의 만남展〉 〈그림 그리는 의사들展〉 〈의인미展〉 〈한국의사미술회展〉 등 다수의 전시회에 참여했다. 현재 성메디칼산부인과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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